돈이 열리는 나무 온세상 그림책
사라 스튜어트 지음, 유시정 옮김, 데이비드 스몰 그림 / 미세기 / 2007년 2월
절판


눈이 번쩍 뜨이는 제목이다. 세상에, 돈이 열리는 나무라니!
그런 나무를 어디서 보셨나요??

1월에 맥 아주머니는 거실 난로 앞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문득 창밖을 내다보니 무언가 처음 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주머니는 2월이 되어서야 낯선 그 무엇이 나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새가 준 선물인가 보다 무심히 넘기는 맥 아주머니.
3월에는 아주머니가 아끼던 연 꼬리가 나뭇가지에 걸리고 말았다.
마치 곡예라도 부리는 것처럼 쑥쑥 자라는 나무는 모양새가 상당히 특이했다.
저런 나무가 주변에서 자라고 있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벌써 취재를 나오고 말았을 것이다.

4월에 완두콩을 심다가 잠시 고개를 든 맥 아주머니는 봄기운에 파릇파릇 푸른 잎사귀로 덮인 나무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금세 자란 나무가 신기하다고 여기면서도 맥 아주머니는 크게 관심을 쏟지 않으셨다. 정말 무심 대마왕이다.
5월에는 이웃 아이들에게 주려고 메이폴을 만들다가 맥 아주머니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무 잎사귀가 나뭇잎 모양이 아니었던 것이다.
저 빳빳한 푸른 돈잎을 아주머니는 조심조심 따서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서 소문을 냈을 거라는 건 뻔한 이치다.
6월이 되어 맥 아주머니가 장미꽃을 따고 있을 때, 이웃집 아이들의 부모가 정원으로 들어왔다.
나무 구경을 하고 싶다는 이웃들에게 아주머니는 나뭇가지를 잘라 조금씩 가져가도록 해 주었다.
그 나뭇가지가 이웃의 집에서 다시 자라 돈이 열렸는지는 알 수 없다.
돈이 열렸어도 안 열렸어도, 이웃들은 맥 아주머니에게로 다시 찾아왔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란 그렇게 끝이 없는 법이니까.

7월에 맥 아주머니는 과수원에서 버찌를 따고 있었다.
이번엔 마을의 공무원들이 찾아와서 특별한 사업에 저 특이한 나무의 잎을 사용해도 되겠냐고 물어온다.
나무는 여전히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머니는 기꺼이 사다리를 빌려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을 무엇을 하든 내버려둔 채 버찌 파이를 만들러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8월에는 사람들이 더 뻔뻔해졌다. 아주머니가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사람들이 나뭇잎을 따서 가방과 바구니에 정신없이 담고 있지 무언가.
그런데 우리의 속세를 초월한 맥 아주머니는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괜찮아. 어차피 가치를 쳐 주지 않으면 제 무게를 못 이겨 부러질 테니까."
아, 이건 대인배라고 해야 할지 해탈이라고 해야 할지......
9월의 달밤, 우리로 치면 한가위 쯤 되었을 무렵의 둥근 달이 뜬 날, 사람들은 구름같이 모여들어 쉬지도 않고 나뭇잎(이라고 쓰고 돈이라고 읽는!)을 줍고 있다.
맥 아주머니는 걱정스레 그들을 바라볼 뿐, 참여하지도 제어하지도 않는다.

저렇게 정성을 다해, 온 힘을 다해 사람들이 집착하고 있는 돈이 열리는 나무.
사실, 눈앞에 저런 나무가 있고 누구든 주워갈 수 있다면 저 안에 참여하지 않을 자신이 내게는 없다.
중학교 시절 지하 보도에 3천원이 떨어져 있어서 앞에 가던 직장인 여성에게 돈 떨어뜨렸냐고 하니 자기 돈이 아니라고 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초등학생 하나가 내 옆을 지나갔다.
난 고민하다가 그 돈을 거기다 도로 내려놓고 지나갔다.
사실 주인이 다시 찾아가기 힘든 돈이고, 분명 내 뒤에 올 사람이 횡재다~ 하고 주워갈 게 분명한데, 어쩐지 난 줍지 못하고 지나치고야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각난다. 그때 주웠어야 했어...;;;;;

10월에 맥 아주머니는 할로윈 데이를 준비하며 호박 등불을 만들고 있었다.
초록빛 잎사귀였던 돈 나무는 이제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지혜의 색이 바뀌면 화폐의 단위가 바뀌는 것인지, 그냥 돈의 색깔이 바뀌는 것인지....
11월에는 겨울을 알리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 아래에 낯선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쌓인 눈을 파헤치고 있다.
앞서 왔던 사람들인지, 뒤늦게 소문을 듣고 온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미 늦었다. 때는 가을이고, 나무는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지 않는다.
12월이 되자 맥 아주머니는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나무를 베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필요한 땔감 때문이었다.
봄이 오면 다시 돈이 열릴지도 모를 나무를 개의치 않고 베어버린 맥 아주머니는 진정 용자!

욕심도 내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맥 아주머니,
이제 아주머니는 평온한 일상으로 고요히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서야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그 동안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피곤하고 신경이 쓰였을까.
다시 나무가 자라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지만, 깨끗이 사라졌으니 그런 사람들은 금세 돌아갈 것이다.
아주머니의 평범한 일상은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책은 사라 스튜어트와 데이비드 스몰 부부의 첫번째 그림책이다.
풍성한 색깔과 자유로운 그림체가 이때에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촉수를 건드리는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 이야기는 지극히 교과서적으로 끝났다.
독자가 오히려 아쉬워서 입맛을 다신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처럼 뜻밖의 횡재를 겪고 욕심이 지나쳐서 오히려 망하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렇게 욕심에 초연하여 스스로 원위치 시키는 이야기는 흔치 않았던 것 같다. 맥 아주머니는 역시 안드로메다에서 오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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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17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방금 <최고의 사랑>을 본 영향인지
저 나무를 베었다고 사람들이 벌떼처럼 공격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에고.

중간까지 읽다보니 돈나무의 끝이 너무 궁금했는데, 맥아주머니가 따스하게 쓰셨다니 좋네요.
직접 구운 빵과 딸기잼, 말린 꽃 한다발... 그보다 소중한게 있을까요. ^^

마노아 2011-06-17 00:47   좋아요 0 | URL
맥 아주머니 기자 회견해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자숙하고 반성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

맥 아주머니는 분명히 만족하셨는데, 그림 속 얼굴이 그렇게 평안해 보이지 않는 건 저의 심술일까요? ^^ㅋㅋ

saint236 2011-06-17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옛날에 봤단 우스개소리와 비슷한데요. 김이병의 이야기...초코파이가 열리는 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름은 오리온이라고 져야지....^^

마노아 2011-06-17 10:20   좋아요 0 | URL
초코파이가 열리는 나무는 귀여운 걸요. 소박한 소원이에요.^^ㅎㅎㅎ

꼬마요정 2011-06-17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나무 가지고 있어도 살아있는 맥 아주머니가 정말 대단한 듯...
총 든 놈들 여럿 와서 온 일대가 피바다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총 겨누고 죽고 싶지 않으면 나무 내 놔라느니, 소유권 이전 하라느니.. 막 이러거나요, 정치인들 떼거지로 와서 이런 나무는 국가 소유라고 한다거나, 맥 아주머니 자식들, 친지들 우루루 달려와서 죽 치고 산다거나.. 특히 땔감으로 벨 때 동네사람들이나 조폭들 달려와서 못 하게 막는다거나..

아.. 이런 생각을 하는 저는 어떤 인간인가요..ㅜㅜ

마노아 2011-06-17 21:03   좋아요 0 | URL
허거거거, 그야말로 호러군요. 저 작품이 영화 버전이면, 특히 성인용 영화라면 꼬마요정님 얘기처럼 진행될지도 몰라요. 크게 공감하는 저는 또 어떤 인간인간요....(>_<)
 


제 1368 호/2011-06-13
현빈과 아이유의 발성기관은 닮아있다?
우리나라처럼 음악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거리나 지하철에는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노래방이 새로운 여가문화 장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끼는 인체의 오감(五感) 가운데, 소리에서 비롯되는 음악이나 노래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다채롭게 분화된 문화는 없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사실 소리는 인체의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인기가수는 확실하고 뚜렷한 경제적 수익을 올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기가수의 노래는 소리의 측면에서 보통사람들과 무엇이 다를까. 언젠가 방송국의 의뢰를 받아 트로트 가수 이미자 씨의 목소리를 분석한 적이 있다.

이미자 씨는 얼굴에 비해 입이 큰 편이다. 속설에 따르면 입이 큰 사람이 노래를 잘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대체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입이 크다는 것은 입 안의 공간이 넓다는 것으로, 이는 소리가 커다란 울림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필수요건이다. 하지만 입이 크다고 해서 모두 다 노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목소리 자체를 만들어내는 성대와 발성능력이다.

음성분석기에 나타난 그녀의 목소리는 보통사람들의 목소리와 달리 톤이 명료하고 배음의 울림이 악기음 같았다. 배음이란 진동체가 내는 여러 가지 소리 중 원래 소리보다 많은 진동수를 가진 소리를 말한다. 흔히 소리가 갈라지기 쉬운 고음에서도 음정의 대역 차이가 또렷했고 음정의 높낮이 변화가 3옥타브(8배 음폭) 동안 안정적이었다. 특히 이미자 씨의 목소리에는 저음에서 중음을 거쳐 고음 영역에 이르기까지 바이브레이션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구구절절 애절한 느낌이 더해졌다. 결과적으로 이미자 씨는 천부적으로 매끄럽고 정교한 성대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빼어난 악기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유의 3단 고음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어떨까. 아이유는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가창력과 귀여운 외모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새로운 국민여동생으로 급부상했다. 그녀의 특기는 팬들 사이에서 ‘3단 고음’으로 불리는 고음처리다. 그녀의 3단 고음을 바로 분석해 발표하고 싶었으나 급상승한 인기를 피해서 수개월 후에 그 분석결과를 학술논문지에 발표했다.(견두헌, 배명진 “아이유의 고음 발성 특성 분석”, 한국음향학회, 2011년 춘계학술대회 학술발표논문지 5월 12일)

아이유는 길고 미끈한 목과 큰 입속에서 울리는 고음이 아주 자연스럽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소리의 근원은 바로 폐활량에 있다. 소리는 폐에 공기를 모으면서 시작하고 성대의 떨림을 통해 공기가 빠져나가면서 기본음을 만들게 된다. 기본음의 음 높이는 성대가 1초에 몇 번 열리면서 공기가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고음 톤일수록 빠져나가는 공기가 많아져서 긴 시간동안 소리를 지속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아이유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고음 톤이면서도 소리의 지속시간이 길다. 폐활량이 아주 큰 편인 것이다.

가창력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고음발성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속하느냐에 달렸다. 보통 일반인들도 가성을 통해 특정고음을 낼 수 있지만 길게 지속하거나 안정된 음정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유의 고음발성은 한번에 3단계 변음을 하면서도 음높이의 안정도가 95%이상이다. 게다가 그 상태로 8초 이상을 지속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것은 발성음정의 안정도가 기계적인 정확도에 근접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아이유는 3단 고음을 낸 다음에 바로 정상적인 목소리 톤으로 돌아온다. 즉 평소에 노래 음정이 300헤르츠(Hz) 대에 머무르는데 500~700Hz 대역의 메조소프라노 3단 음정을 길게 지속하다가 금방 자신의 목소리 톤으로 복귀한다. 이 사실은 그 노래의 음정을 잡는 청감특성이 아주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아이유 3단 고음의 발성특성을 학술논문에 발표하자 그 파급성은 대단했다. 주요 인터넷 뉴스에 메인뉴스로 다루어졌고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실시간 검색어로 탑10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자 KBS ‘스펀지 ZERO’에 재미있는 제보가 올라왔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저속으로 재생하면 (현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그림1] 현빈과 아이유의 발성기관은 닮아있다. 사진 출처 : 동아일보
현빈은 입대하기 전 인기절정의 드라마 주인공으로 연기하면서 그 주제가도 부를 만큼 노래실력도 뛰어나다. 실험 결과 아이유의 목소리를 저음화하면 현빈의 목소리로 들린다는 놀라운 일이 사실로 확인됐다.

아이유의 ‘좋은 날’을 저속화하면서 현빈의 노래와 스펙트럼 비교를 통해 유사도를 측정했다. 78%로 속도를 늦췄을 때 두 노래의 스펙트럼은 92% 정도로 유사했다. 일반적으로 두 노래의 스펙트럼 유사도가 90%를 넘으면 동일한 가수가 부른 노래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두 노래가 서로 비슷한 음정을 가졌다는 것은 두 사람의 발성기관이 유사하다는 의미다. 현빈과 아이유의 명함판 사진을 같은 크기로 좌우 배열해 목 길이와 입, 코의 길이 등을 비교해봤다. 그러자 눈 이하의 얼굴 형태와 발성기관이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내친김에 노래 발성기관인 목의 길이를 비교해 봤다. 한국 사람들의 목구멍 길이는 신장에 비례해 나타낼 수 있다. 남자는 신장의 10%가 목구멍 발성의 길이를 나타내고 여자는 자신의 키에 9%가 된다. 공식적으로 현빈의 키는 184cm이고 아이유는 162cm이므로 목구멍 길이 비율을 측정해보면 두 사람의 음관비율은 79%가 된다. 따라서 그 비율만큼 저음화하면 아이유의 발성이 현빈의 목소리로 바뀐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던 발성에도 과학이 숨어있다.

글 :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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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6-1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년 전 한의원에서 나더러 태음인에 목양체질이라 노래를 못하는 체질이라고 친절하게 말해준 게 생각나는구나. 노래방 34점과 함께...ㅡ.ㅡ;;;;

자하(紫霞) 2011-06-16 10:2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소양인들이 노래를 잘 하더라구요.
저는 메조 소프라노의 소음인~^^

마노아 2011-06-16 11:53   좋아요 0 | URL
저는 저거 검사받을 때 한의사가 목이 짧고 허리가 굵고 노래는 못하는 체질이라고 말해줘서 엄청 충격 받았어요. 좋은 게 하나도 없어...ㅜ.ㅜ

진주 2011-06-18 10:30   좋아요 0 | URL
아..저도 비슷한 체질인가봐요 ㅋ
학창시절엔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음을 다스리는'역량이라고 극찬을 들었었고
찬양대 지휘자께서는 저더러 '요프라노'라고 명명하셨어요.
요리로 가면 요소리 조리로 가면 조소리라는 말인데, 뜻인즉
소프라노 옆에 세워두면 소프라노 소리 내고, 앨토 옆에 세워두면 앨토낸다는 말이죠ㅡ.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이름은 讚美랍니다! ㅋㅋㅋㅋㅋ

마노아 2011-06-18 13:54   좋아요 0 | URL
요프라노는 멀티 플레이어란 소리군요. 진주 님의 성대는 친절한 겁니다.ㅎㅎㅎ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는 능력이에요.^^
 


제 1367 호/2011-06-13

주삿바늘 공포증, 이젠 안녕~


“악, 사람 살려!! 이 언니가 날 죽이려고 해요!!”
주사실에서 들려오는 태연의 절규에 병원 전체가 풀썩풀썩 요동을 친다. 겨우 해열 주사 한 대 맞으면서 간호사에게 살인치사 혐의까지 들이대는 태연이다.

“태연아, 조금만 참자. 앞으로 1~2년쯤 후면 주사를 놓는데 1/10초 밖에 걸리지 않아서 주사를 놓는지 안 놓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통이 없는 무통주사가 개발될 예정이니까 말이야.”

“지, 진짜요? 와~~ 끝내준다. (잠시 생각) 뭐야!! 결론은 지금 없다는 얘기잖아. 그런즉슨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음보다 끔찍한 주사를 맞아야한다는 거고. 난 용납할 수 없어요. 약을 달라고, 약을!”

“내가 살다 살다 열이 40도가 넘는데도 너처럼 괴력을 발휘하는 애는 처음 본다. 그러지 말고 태연아, 주사 딱 한 번만 맞자. 엉? 1분이라도 빨리 열을 내리지 않으면 쇼크가 올지도 모른단 말이야. 약을 먹으면 소화기관과 간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약 성분이 혈관에 도착하기 때문에 빠른 효과를 보기 어렵지만, 주사는 혈관에 직접 주사되는 거라서 열을 금방 떨어뜨릴 수 있다고. 그러니까….”

태연, 아빠의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발을 동동 구르며 억지를 쓴다. 두 명의 간호사가 달려들어도 헐크처럼 밀쳐낼 뿐이다.
“어쨌거나 주사는 안 돼!! 주사 고통으로 인한 쇼크로 죽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욧!”

“물론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이 주사만 있는 건 아냐. 약물을 목표 부위에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효과를 극대화 시키고 반대로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기술을 ‘약물전달시스템(Drug Delivery System)’이라고 해. 이러한 기술에는 생각보다 매우 다양한 방법이 있단다. 가장 쉬운 게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거고 붙이는 파스, 좌약, 흡입하는 약 등도 있지. 특히 에어로졸(액체나 미세한 가루 약품을 가스의 압력으로 뿜어내 사용하는 약품)을 흡입하면 침투성이 매우 뛰어난 뺨 안쪽 조직을 통해 직접 약물이 흡수되기 때문에 약효를 극대화할 수 있어.”

“그렇게 잘 알면서, 왜 에어로졸을 안 뿌리고 주사를 놓냐고요!”

“지금 당장은 없으니까 그러지!”

갑자기 태연은 바람난 고무풍선처럼 기운이 쑥 빠져버린다. 급기야 점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축 늘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를 놓칠세라 간호사들이 주사를 놓는다. 태연도 별 저항 없이 주사를 맞고는 잠에 빠져든다.

“휴…, 간호사 생활 5일 만에 가장 힘이 센 환자였어요. 그나저나 태연 아버지는 참으로 박학다식하시네요. 멋지세요. 호호호. 전 똑똑한 남자를 좋아하거든요.”

아빠는 신참 간호사의 노골적인 호감표현에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결국 아빠의 지식자랑놀이에 불이 붙는다.

“뭐, 무식한 편은 아니죠. 하하하! 아까 어디까지 들으셨더라? 약물전달시스템에 대해 얘기했었죠 아마? 요즘엔 최첨단 시스템도 여럿 개발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자성 나노캡슐’ 같은 겁니다. 이게 뭣이냐 하면 암 덩어리 주변에 자기장을 걸고 항암제를 자성을 지닌 나노캡슐에 넣은 다음 인체에 주입하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장 때문에 캡슐이 암세포 주변에 모이겠죠? 이때 항암제를 집중적으로 쏘아대도록 하는 방법이에요. 간호사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항암제는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까지 죽여서 부작용이 컸잖아요. 이 기술을 이용하면 그런 문제를 크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어머 어머, 정말 똑똑하시다~~.”

“뭐, 이 정도를 가지고. 쿠할할할! 가장 최근의 약물전달시스템들을 보면 이런 것도 있어요. 약물이 들어간 나노캡슐에다 전기 자극에 따라 기공이 열리고 닫히는 ‘스마트 고분자’인 폴리피롤을 붙이는 거예요. 그 다음 인체에 주입시키면 원할 때마다 전기 자극을 줘서 캡슐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거든요.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정확히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시간동안만 약을 내보낼 수 있도록 한 거죠. 몸 밖에서 리모콘으로 나노캡슐을 조절할 수도 있어서 아주 편리하답니다.”

“와, 대단하다. 그리고 또요?”

“레이저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어요. 뇌혈관은 혈뇌장벽이라는 특수한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이 장벽은 대사와 관련된 물질은 통과시키고 그 밖의 물질은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때문에 뇌로 약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큰 장애물이었지요.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레이저빔을 1,000분의 1초 동안 뇌혈관 벽에 쏘아서 장벽의 차단기능을 일시적으로 막고 그 틈에 약물을 쏙 집어넣는 기술을 개발했답니다.”

딱, 여기까지였다. 간호사의 향학열이 즐거울 수 있었던 건…. 그러나 이후로도 아빠의 지식자랑놀이는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갓 졸업한 신참 간호사의 얼굴은 잘 띄운 메주처럼 변해갔다. 잠든 줄 알았던 태연이 어느샌가 일어나 간호사의 참담한 얼굴빛을 즐기고 있다.

“흥, 언니. 내 엉덩이에 무지막지한 주사바늘을 꽂더니만 아주 깨소금 맛이에요.”

“태, 태연아. 정말 미안하구나. 나의 잘못된 칭찬 한 마디가 이토록 참담한 결과를 낳을 줄은 내 미처 몰랐단다. 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진정 없는 것이니?”

“딱 하나 있어요. 아빠한테도 주사바늘을 꽂으세요. 주사를 죽음과 동격으로 여기는 공포증은 아빠로부터 유전된 거니까요.”

태연의 대답 직후 간호사는 빛의 속도로 태연 아버지의 팔뚝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양제 주사바늘을 꽂는다. 그리고 들려온 아빠의 절규.

“악!!!”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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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6-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정말 주사바늘 싫어요.ㅜ.ㅜ
병원도 싫고요.

마노아 2011-06-16 18:48   좋아요 0 | URL
후애님의 공포가 전해져요. 주사 무서워요..ㅜ.ㅜ

꼬마요정 2011-06-16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사바늘 무섭지만 안 그런 척, 강한 척 한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척'하고 나면 주사는 이미 다 맞은 상태.. 엉덩이 문지르면서 아야..하고 말죠 ㅋ

마노아 2011-06-16 23:15   좋아요 0 | URL
어쩌다 한 번 맞는 주사는 그럴 수 있는데 노상 맞아야 하는 분들은 바늘만 연상해도 엄청 힘들 것 같아요. 칼럼처럼 아프지 않고 순식간에 끝나는 주사가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어요.(>_<)
 

 

농협 : 퍼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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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 퍼가요~ ♡

동양종합금융증권 : 퍼가요~ ♡

신협 : 퍼가요~ ♡

통신사 : 퍼가요~ ♡ 

 

*** 

나도 퍼온 글.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 토끼와 거북이 끝내주는 비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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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1-06-15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진짜....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ㅜㅜㅜ 제 월급도 사이버머니라는 그저 스쳐지나갈 뿐이지요 ㅜㅜ

마노아 2011-06-15 21:48   좋아요 0 | URL
사이버머니! 아주 적절한 표현이에요. 돈이 만져보기도 전에 사라져요...;;;;;

turnleft 2011-06-16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_ㅠ

마노아 2011-06-16 09:41   좋아요 0 | URL
태평양 너머에서도 공감하는 거군요..ㅜ.ㅜ

조선인 2011-06-16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 사이버머니... 절대공감... ㅠ.ㅠ

마노아 2011-06-16 09:41   좋아요 0 | URL
크흑, 제대로 공감이 가서 슬픕니다.ㅜㅜ

다락방 2011-06-1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_ㅠ 2

마노아 2011-06-16 11:52   좋아요 0 | URL
눈물이 그렁그렁....

BRINY 2011-06-16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그래서 직장인의 월급은 급여일 후 평균 12일만에 바닥이 난다고 신문기사가 친절하게 알려주더라구요.

마노아 2011-06-16 11:52   좋아요 0 | URL
평균 12일이군요. 끄덕끄덕....ㅜ.ㅜ

다락방 2011-06-16 13:21   좋아요 0 | URL
앗! 다들 그런거였군요!! 물론 전 평균보다 짧은 것 같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달 가는줄 알았어요. 엉엉.

마노아 2011-06-16 13:25   좋아요 0 | URL
뭐랄까... 카드 인생은 한 달씩 빚지고 사는 인생이죠. 할부가 많으면 더 부담스럽고요.
하지만 월급이라도 꼬박꼬박 받으면 일단 부럽다는 거...ㅎㅎㅎ

무스탕 2011-06-16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 끝에 친절하게 하트까지 붙여 주시고... ㅠ.ㅠ
월급이 입금되어도 여전히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팔자는 토끼가 아니고 치타가 뛰어다니는 느낌이에요 -_-

마노아 2011-06-16 18:47   좋아요 0 | URL
친절하게 퍼가니까 더 무서운 거 있죠.
토끼는 약했나요? 치타, 아주 적당한 것 같아요..ㅜ.ㅜ

마그 2011-06-16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죽이처럼왔다가 토끼처럼 가버리는 나의 사이버머니...
월급은 통장을지나갈뿐 ㅜㅜ
마노아님 미어요 흙흙

마노아 2011-06-16 21:04   좋아요 0 | URL
왼손은 거들뿐도 아니고, 월급은 통장을 지나갈 뿐이에요...;;;;;
원래 현실은 잔인한 겁니다. 크흑...ㅜ.ㅜ

비로그인 2011-06-17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해상 : 퍼가요~ ♡

삼성생명 : 퍼가요~ ♡

삼성카드 : 퍼가요~ ♡

롯데카드 : 퍼가요~ ♡

비씨카드 : 퍼가요~ ♡

통신사 : 퍼가요~ ♡



대략 파산.


마노아 2011-06-17 00:49   좋아요 0 | URL
저랑 정확히 겹치는군요. 그리고 몇 개 추가해야 하고...ㅜ.ㅜ
아, '파산'이란 글자를 보니 갑자기 막 어찔어찔...@.@;;;;

비로그인 2011-06-17 01:56   좋아요 0 | URL
어므낫 마노아 님 이 새벽에 잠은 아니주무시고!
`대략 파산'은 `대략 난감'의 주제와 변주라지요.

마노아 2011-06-17 10:21   좋아요 0 | URL
파산 댓글을 끝으로 잠들려고 누웠는데 무려 4시 반이 넘도록 잠이 안 와서 뒤척였어요. 이건 잠을 잔 것도 아니고 아니 잔 것도 아니고...지금 멍~해요...ㅜ.ㅜ

saint236 2011-06-17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가요....온전 공감입니다.

마노아 2011-06-17 10:21   좋아요 0 | URL
제가 일찍이 이렇게 많은 분들의 공감을 끌어내본 적이 없었네요.^^;;;
 

 

 

좋은생각 메일진 제23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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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5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1-06-1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뭐야...주욱 읽어내려가며 아 마노아님이 쓰셨나 보다..했다가 마지막 반전...

넘버 3란 영화에서 검사가 이런말을 하잖아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어떤 XXXXX가 그런 X소릴 했데...죄가 무슨 죄가 그 죄를 지은 사람이 XX일 놈이지 안그래?' 라고요.

마노아 2011-06-15 12:35   좋아요 0 | URL
하핫, 의도하지 않은 반전이 되어버렸네요.
백번 지당한 말씀이에요. 사람이 문제에요, 사람이...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