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구판절판


"변호사에게 가장 끔찍한 의뢰인은 무고한 사람이라고 했어. 까딱 잘못해서 그가 감옥에 갈 경우 평생 괴로워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지."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대충 그런 뜻이었네. 무고한 고객에게는 중간이 없다는 거야. 타협도, 협상도, 중도도 없어. 오직 한 번의 판결뿐이지. 점수판에 '무죄'라고 적어놓기라도 해야 할 거야. 무죄 말고 다른 선택은 없으니까 말이야."-112쪽

다리우스는 크랙코카인의 형식으로 죽음과 파괴를 전파했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폭력이나 드러나지 않은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처음부터 아무 기회도 제공받지 못한 수많은 낙오자 중 하나였다. 그가 아는 건 오직 길거리 생활뿐이었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랐고, 마약 거래를 배우기 위해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마약 밀매장에서 돈은 정확하게 세지만 그렇다고 당좌거래를 터본 적은 없으며, 로스앤젤레스를 떠나기는커녕 카운티 해변에도 가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이제 창살이 달린 버스를 타고 생애 첫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다.-118쪽

그 순간 내 울분이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루이스가 늦어서도 거짓말을 해서도 아니었고, 샘 스케일스가 나를 돌팔이 사기꾼 변호사라고 욕해서도 아니었다. 그건 대박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 사건에는 재판도 없고 여섯 단위의 수임료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 받은 계약금 정도만 챙겨도, 에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할 정도로 쪽박이 된 것이다.-152쪽

"왜, 카피를 10부나 보내야 하죠? 하나가 아니고?"
"하나는 자기가 갖고 다른 아홉은 교도소에 뿌려야 하거든. 그래야 전화가 걸려올 거 아냐? 항소심에서 승리한 변화사는 교도소의 황제와도 같은 존재라고. 놈들이 개떼같이 전화할 거야. 그러면 당신은 옥석을 가려, 가족도 있고 돈도 있는 자들을 골라내야지."-242쪽

나는 금방 이 방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 라울의 마지막 표정이 과거의 모든 기억들을 완전히 덮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만 것이다. 저 두 눈을 영원히 떠올리고 싶지 않다면 결국 그를 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254쪽

"그러니까 내가 변호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악하지 않아, 매기. 유죄이긴 하지만 그래도 악한 건 아니라고. 무슨 뜻인지 알지? 차이가 있어. 그 친구들의 말을 듣고 노래를 들으면,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해야 했는지 이해하게 돼. 그 사람들은 그저 살아가려고 한 것뿐이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거라고. 그 중엔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태어난 치들도 있고. 하지만 악은 달라. 근본적으로 달라. 그러니까... 모르겠군. 악은 스스로 원하는 거야... 모르겠어. 설명할 수가 없어."-274쪽

열두 명의 이방인들이 당신의 인생에 판결을 내리는 기분을 아는가? 내면에서부터 치고 나오는 이 치열한 싸움을? 지금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형사법 변호사. 피고에 대한 판단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난 한 번도 의뢰인의 유무죄를 따져본 적이 없다. 솔직히,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288쪽

나는 그를 보았다. 너무 가까웠다. 증오가 아니라 사랑한다 해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거리였다. -290쪽

민튼은 창녀나 매춘 같은 단어는 애써 피하고 있었다. 그 역시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까 염려되어서이다. 나는 메모지에 그 단어들을 적고 변론할 때 써먹어야겠다고 작심했다. 검사가 빠뜨린 부분이니 나라도 돌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297쪽

판사에게 빨리 끝내겠다고 말한 이유는, 배심원들이 검사의 이야기만 듣고 점심 식사를 한다는 게 맘에 들지 않아서였다. 햄버거와 참치 샐러드를 먹으면서 오직 검사 쪽 주장만 되새김질할 것이 아니겠는가?-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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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베러월드 - In a Better Worl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한 아이가 엄마와 작별 인사를 합니다. 엄마는 암 투병 중에 돌아가셨지요. 소년은 장례식장에서 안데르센의 '나이팅게일'을 읽어줍니다. 황제에게 편안한 잠을 선사해 주었던 나이팅게일의 노래처럼 소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리며 엄마에게 작별을 고합니다. 이어 소년은 할머니의 시골 집으로 이사를 갑니다. 런던에서 지내던 아이가 덴마크의 전원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소년의 이름은 크리스티안. 새 학교에 가자마자 목격한 것은 엘리아스라는 동급생이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으며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분출하지 못하는 슬픔으로 가득차 있던 크리스티안은 엘리아스가 답답합니다. 곁에 있다가 자신에게까지 폭력이 미치자 크리스티안은 더 큰 폭력으로 왕따를 주도했던 학생에게 되갚아줍니다. 그 바람에 부모님들이 다 불려오고 경찰관까지 동원되었지요. 하지만 크리스티안은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후회도 없습니다. 이제 놈은 자신들을 괴롭히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고, 그렇게 만들어주는 게 마땅하다는 게 아이의 생각이니까요.  

엘리아스의 부모님은 현재 별거 중입니다. 두 분은 꽤 사이가 좋은 의사 부부였지만, 그래서 그것이 엄마의 큰 자랑거리이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한때 외도는 엄마로부터 모든 신뢰를 걷어가게 했습니다. 아내 곁에 머물지 못하게 된 아빠 안톤은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며 가끔 엘리아스와 동생을 만나러 덴마크에 다녀가지만 그때도 엄마 집에 가지 못하고 별장에서 지냅니다.

 

엄마에게 큰 상처를 입힌 것을 빼면 안톤은 이상적인 아버지였습니다. 하루는 크리스티안까지 포함해서 세 명의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가 막내 아이가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와 시비가 붙습니다. 그네를 누가 타느냐와 같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지만 상대 아이는 다소 폭력적인 구석이 있었지요. 안톤은 두 아이를 말린 것 뿐인데 상대 아이의 아버지가 나타나서 다짜고자 안톤의 뺨을 몇 차례나 칩니다. 그리고는 제 아이를 데리고 돌아가는데, 아이한테 하는 말을 들어보니 아이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습관을 가진 것 같았지요. 안톤은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아이들은 불만이 많습니다. 되갚아줘야만 한다고 분개하는 모양새였지요. 특히 크리스티안이 그랬습니다. 앞서 엘리아스를 괴롭히던 아이에게 앙갚은 해주던 때와 똑같은 반복입니다. 두 친구들은 안톤에게 폭력을 쓴 남자가 일하는 자동차 정비소 주소를 알아와서는 경찰에 신고할 것을 종용합니다. 안톤은 아이들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 상대 남자를 찾아갑니다. 다짜고짜 폭력부터 휘두른 그 남자가 사과할 리는 만무지요. 안톤도 그걸 기대한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폭력이나 휘두르는 그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역시 상대는 말이 통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주먹부터 날립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여전히 안톤이 저 남자에게 졌다고 생각합니다.  

안톤의 생각은 몹시 바른 것이었고 이상적이었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폭력을 목격한 아이들은 그것이 진정으로 이겼다고 납득할 수가 없었지요.  더 많이 분개한 것은 이번에도 크리스티안이었습니다. 아이는 창고에서 할아버지가 쓰던 폭죽을 찾아내었고, 화약을 추가해서 폭발하는 실험까지 성공시킵니다. 그리고 엘리아스를 자극해서 그 나쁜 남자의 차에 복수하자고 주장하지요. 엘리아스가 주저하던 와중에 크리스티안이 과거 급우를 협박할 때 썼다가 선물로 준 칼을 엄마에게 들키고 맙니다. 엄마는 당장 크리스티안의 집으로 달려가지요.  

크리스티안의 아버지는 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당장 아이에게 왜 그랬냐고 하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아빠의 말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아빠는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이가 왜 이러는지 몰랐으니까요. 아이는 말합니다. 아빠는 거짓말쟁이라고. 엄마가 죽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엄마가 죽어버렸고, 또 엄마가 죽기를 바랐다고요. 아빠의 마음이 찢어집니다. 암으로 고생하다가 암세포가 뇌에까지 미쳐서 스스로 죽고 싶어하던 엄마의 고통, 그래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외침, 하지만 그것이 곧 엄마가 죽기를 바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가 알아차리기엔 너무 어렸으니까요. 아이가 엄마를 잃은 것처럼 아빠는 아내를 잃었는데, 인생의 반려를 잃은 그 슬픔이 엄마를 잃은 것만큼이나 슬프고 아프다는 걸 알아차리기에 열 두 살 나이는 아직 많이 어리지요.  

안톤의 아프리카 이야기도 해보지요. 의료 캠프에는 매일같이 큰 부상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게 중에는 반군 지도자에 의해 강제로 배가 갈린 임산부도 있었지요. 제 부하들과 함께 태아의 성별을 내기하다가 멀쩡한 임산부의 배를 갈라보는 게 그 반군 지도자라는 자의 행태였지요. 사람들의 그에 대한 증오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는 총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의 부하들도 모두 무장을 했습니다. 맨 주먹의 주민들은 가족을 잃고도 억울하다는 표현조차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반군 두목이라는 자가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캠프로 찾아온 겁니다. 안톤은 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모든 무장을 해제한다는 조건으로 놈을 받아주고 치료해 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아프리카의 간호사들은 안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겐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였으니까요.  

 

이제 엘리아스와 크리스티안은 자체 제작한 폭약을 그들의 공공의 적인 정비공의 차에 설치합니다. 불은 붙여졌고 이어서 화약은 터질 겁니다. 아이들의 순진한 기대처럼 차만 파괴하고 사람은 전혀 안 다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이 사고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안톤이 앞서 몸소 보여주었던 것처럼 폭력을 폭력으로 갚는 것은 악순환의 반복일 뿐, 결코 정상으로 회복되는 것도 아니고,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인지라 이성의 통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분명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많은 것들을 질문합니다. 당신의 그 이성과 이상과 원칙을 어디까지 지킬 수 있는지...... 또 어른과 아이의 역할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멈출 수 없는 분노 앞에서 이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한 발자국을 더 나아갈 수 있어야 성숙한 사람이겠지요.  또 죄책감에 대해서도 묻습니다. 죄책감이 사람을 얼마나 벼랑 끝까지 몰아갈 수 있는지, 더불어 자신이 던진 말이 누군가에겐 비수가 될 수 있다는 것도,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까지도 모두 말해 줍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덴마크에도 주목하게 됩니다. 남한 면적의 절반 가량 되는 땅덩어리에 인구는 500만 명을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 덴마크 안에서도 전원적 풍경이 펼쳐지니 더 외딴 곳이 배경이 되겠지요. 엘리아스의 가족은 스웨덴에서 온 사람들인데 덴마크 사람들이 스웨덴 사람들을 경계하고 적의감을 보이는 것을 종종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유럽에서도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정비공의 지위보다 훨씬 높은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정비공의 행태는 그가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고, 또 자신이 폭력에 노출되어 성장한 것처럼 제 아이도 그런 환경을 되물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 없이 나쁜 것이었지만 그 무지함에 대한 연민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덴마크에서는 아이들의 싸움도 경찰이 와서 조사를 하고 정리를 해주지만, 그런 보호장치가 없는 아프리카에서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나은 세상, 더 좋고 안전한 세상은 모두가 꿈꾸지만 그 세상은 참으로 멀게만 보입니다. 멀고 아득한 그 세상이지만, 또 포기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한 것이 우리 모두의 딜레마이지요. 지금 당장 내가 사는 곳은 안전하고 평안할지라도, 이웃의 아픔은 당신의 심장을 쿡쿡 찌를 게 분명하니까요.  

영화 속에서 던져지는 복합적인 질문들은 인류의 보다 깊은 성찰을 지속적으로 요구합니다. 당신이 만나고 싶은 더 나은 세상을 구체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도 함께 말입니다.  

여성 감독 수잔 비에르는 어려운 주제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펼쳐 나갔습니다. 아이와 어른 연기자 모두 상처입은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고, 덴마크와 아프리카를 오고 가는 목가적 풍경은 인간들의 잔인한 세상살이와 대조적으로 아름답기만 합니다. 배경에 깔리는 음악들도 마찬가지로 훌륭했고요.  유수한 상들을 휩쓴 것도 모두 공감이 갑니다. 더 많은 개봉관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지네요.  

제8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2011)
제6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2011)
제41회 인도국제영화제 (2010)
제5회 로마 국제영화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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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데이지 2011-06-25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수냐..용서냐...꽤 어렵겠는데요~~ㅋㅋ
연기도 기대되고, 몰입도도 꽤 될것같은 스토리일것같아요~~
좋은 영화 알고 갑니다...보러갈래요~~

마노아 2011-06-25 10:22   좋아요 0 | URL
어려운 주제죠? 영화 참 괜찮았어요. 블루데이지 님도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다녀오셔요~ ^^

마녀고양이 2011-06-27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군요, 폭력에 폭력을 언급하신 영화가....
그러게요,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악순환일 뿐이라고 하신데 깊이 공감하게 되네요.

마노아 2011-06-27 14:24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 복수와 용서를 테마로 한 영화를 리스트로 만들어 봐도 꽤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복수만 다룬 영화보다는 아무래도 화해와 용서를 말할 때 더 찡할 것 같아요. 말과 가슴이 일치하기는 참 어렵지만 말이에요.
 
피난 열차 작은 동산 2
헤미 발거시 지음, 크리스 K. 순피트 그림, 신상호 옮김 / 동산사 / 2009년 12월
절판


한국전쟁을 다룬 그림책인데 작가가 모두 외국 이름이어서 눈길이 갔다. 글을 쓴 이의 외할머니의 경험을 책으로 옮긴 것인데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었다. 작품 속 인물의 이름이 수미인데 작가의 이름 헤미와도 어감 상의 공통 분모를 노린 건 아닐까 싶다.

첫번째 그림은 시원하게 뻗어있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열차의 모습이다. 작품의 배경이 수미의 엄마가 갓 태어났을 때의 한국전쟁이니까 수미의 나이를 고려하면 80년대 초 쯤으로 봐야지 싶다. 당시 우리나라 열차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나무 통나무집도 우리나라 정경은 아니라고 본다.
80년대에 저런 부엌 싱크대도 역시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뚝배기는 한국스럽지만 오븐렌지는 좀...

주인공 수미는 외할머니와 함께 꽃마을에 산다. 어감이 어쩐지 꽃동네를 연상시킨다. 엄마는 군복무 중이고 아이는 5시면 지나가는 기차를 날마다 보는 취미가 있다.
며칠 뒤면 수미의 생일. 오지 못하는 엄마가 선물을 먼저 보냈다.
엄마가 그리운 수미는 심통이 나버린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 우리네 정서를 생각하면 역시 그림이 외국 사람이 그린 티가 난다.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고 봉투 공장에서 근무하던 엄마는 지난 봄에 군대에 가셨다. 군인이 되면 대학에 다닐 수 있게 학비가 나온다는데, 그 학비는 엄마의 학비라는 의미일까?
아무튼 엄마가 군대에 입대한 것도 우리네 분위기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어느덧 할머니도 나오셔서 수미 곁에 앉으셨다. 그리고 기차를 보면 떠오른다는 할머니의 추억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머니에게 기차가 주는 연상은 춥고 고단했던 한국전쟁의 순간이고 이별의 시간이다.

외할머니 부부는 서울에서 살고 계셨는데 그림을 보니 꽤 부유했나 보다. 자개장식이 들어간 문갑도 그렇고, 그 위에 놓여진 도자기며, 밥상에 놓인 신선로까지!
근데 수미의 외삼촌은 젓가락질을 잘 못하네...^^
외할아버지는 왼손잡이고.

외할머니 부부는 전쟁이 났을 때 깜깜한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면서 버텼다.
외할아버지는 한시 바삐 피난을 떠나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집을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버텼는데 추운 겨울날 중공군에 의해서 다시 UN군이 후퇴하자 할아버지는 끝내 피난행을 결심했다.
보따리 세 개와 그들 네가족이 가진 것의 전부였다.
무사히 강을 건너 남쪽으로 하염없이 걸었던 외할머니 가족.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겨우 잡았지만 좌석이 없었다.
마지막 열차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기다릴 수도 없다.
결국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께 기차 지붕 위로 올라가라고 하셨다.
그리고 당신은 자원입대하겠다며 아이들을 맡기신다.
난 이 부분이 상당히 불만이었는데, 달리 가족을 돌봐줄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애국심에 겨워 가족을 위험한 피난길에 방치한 채 군으로 간다는 것이 심정적으로 용납이 안 됐다.
실제로 작가의 외할아버지는 전기 기술자로 전쟁 초기에 북한군에 잡혀가셨다고 한다.
이야기의 감동을 위해서 나름 변형을 준 것 같은데 다소 불편하다.
실제로 대의를 생각하며 자원입대한 분들이 분명 계실 거지만, 그리고 그런 분들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지만 씁쓸한 일이다.

부산에 무사히 도착한 외할머니는 그곳에서 한동네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을 모두 만났다고 한다. 뭐, 그것도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무슨 드라마처럼 너무 작위적이지 않은가? 어째 책을 읽으면서 자꾸 삐딱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린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된 분이다. 이 작품에 그림을 그릴 때 사진 자료를 많이 참고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외할아버지는 자꾸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떠오른다. 뭐, 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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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하늘 2011-06-24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해맑은 웃음 여전하시지요?
알라딘에 못 들어오는 동안 마노아님의 그림책 소개 항상 궁금했어요.^^

마노아 2011-06-24 20:53   좋아요 0 | URL
같은하늘님, 이제 좀 여유가 생긴 거예요? 그 동안 소식 궁금했어요.^^

후애(厚愛) 2011-06-2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이 6.25 한국전쟁날이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마노아 2011-06-25 10:24   좋아요 0 | URL
네, 오늘이 그날이네요. 마음 착잡한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주말은 즐겁게 보내어요, 우리.^^
 

방학이 다가오고 있다면 눈길 가는 전시회도 많아지는 법. 현재 찜해 둔 전시회는 네개다.  

 

대동여지도 간행 1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으로 7월 8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다. 기사를 얼핏 보고는 으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착각했던 나는 방금 이 글을 쓰다가 '도서관'이라는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랐다. 검색해 보니 예술의 전당 근처다. 그러고 보니 남부터미널 역에서 마을버스를 탔을 때 내가 내리던 곳 다음이나 다다음 정거장이었던 것도 같고.... 아, 그건 국립국악원이던가? 그럼 국립중앙도서관은 전혀 모르던 곳이네.  

암튼, 가면 실물을 볼 수 있겠지. 다 접었을 때는 책 한 권의 사이즈지만 모두 펼치면 대략 가로 3미터에 세로 7미터 정도 규모의 대동여지도. 이게 정녕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가 감탄이 나오지 싶다.  

은교를 무척 재밌게 읽었지만 비즈니스에서 좀 깼기 때문에 고산자까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혹 전시회를 보고 나면 달라질지도.... 

어린이 책 대동여지도는 무척 크게 할인을 해서 언니더러 사라고 종용해놓고 정작 나는 보지 못했다. 가기 전에 보고 가야지.  

다음은 다음 주 내로 가기로 결심한 지구상상전 

 

퓰리처상 수상전과 내셔널지오그래픽전의 감동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환경 관련 전시인 만큼 이벤트도 특별하다. 6월 30일까지는 폐휴대폰을 소지하고 가면 무료입장이 가능하다. 예전에 쓰던 내 폰을 언니에게 주었는데 언니도 쓰지 않고 있으므로 그걸 달라고 했더니 안 준다.(이럴 수가!) 다른 휴대폰 더 찾아보라고 압력을 놓고 있다. 분명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8월 10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한다.  

그리고 어제 발견한 오르세 미술관전! 

 

9월 26일까지 마찬가지로 예쑬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하고 있다. 보통 이런 전시회는 대도록을 사면 평일 전시 관람권이 들어 있었는데 이번엔 이벤트 내용이 바뀌었다.  

화제의 예술도서 2만원 이상 구입해야 평일 전시 관람권을 주는데, 일단 대도록이 18,000원이고, 2천원을 추가하기 위해서 살 수 있는 책들도 대개 15,000원 상당의 책들이다. 게중 읽어보려고 염두에 둔 책들이 있긴 하지만 같이 사자니 비싸서 좀 주저하게 된다.  도록을 그냥 작은 걸로 살까? 그림 보기에 답답하지 않을까? 앗, 이제 보니 '화제의 예술도서'에는 소도록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끙... 속상하네.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게 두 개인데 한 번에 두 개를 다 볼 수 있을까? 지나치게 다리가 아플 것 같은데 그래도 그 먼 곳을 두 번 가는 것도 힘들지 않은가. 일단은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일단 폐휴대폰부터 장만하고!(불끈!)  

(다시 수정!) 

대도록만 사도 평일 입장권 준다고 한다. 아침에 안내받은 고객센터 답변에선 없다고 했는데 브론테님 서재에 MD님 댓글 보니 준다고 한다.

 

뭐, 본의 아니게 삽질을 하게 됐지만 추가 구입 없이 관람권을 얻을 수 있다면 좋은 거지.(그렇지만 좀 맘 상함...)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이미 표를 구입한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8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한다. 난 쿠팡에서 50% 할인받아 구매했는데 쿠팡 입장권은 7월 15일까지 마감이다. 방학하면 관람객이 너무 많아지니까 그 전에 일찌감치 다녀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계단, 문명을 오르다'는 전에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보지 못한 책이다. 이런 책은 소장하고 봐야 하는 책인데... 

'패션 역사를 만나다'는 친구 딸내미 생각해서 장만한 책인데 지난 번 책 보낼 때 내가 아직 다 보지 못해서 같이 못 보냈더랬다. 이참에 챙겨서 봐야겠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어제 중고샵에서 발견하고 1권을 주문했는데 바로코와 로코코는 2,3권에 걸쳐져 있다. 앗, 지금 검색해 보니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주문을 하지 않았구나. 판매완료다.ㅜ.ㅜ  

삼베 이불부터 주문하고 나중에 주문한다는 것을 홀라당 잊어버렸구나. 하아...;;;; 

그리고 메일 정리하다가 하나 더 추가! 

서울 역사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스크바의 초상이다. 

 

작년에 엄마와 함께 런던의 초상을 재밌게 보았는데 올해는 모스크바다. 엄마와 함께 다시 나들이를 해도 좋을 것 같다. 

모스크바의 초상은 사이버 기획전시도 같이 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도 관람이 가능하다. 직접 보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못 가게 된다면 아쉬운대로 사이버 공간에서 대리 만족을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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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23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르세 미술관전 다녀왔어요. 무려 열흘도 넘게 지났네요. ^^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전시중에는 <디즈니 특별전>이 가장 탐나던데요?

마노아 2011-06-23 14:06   좋아요 0 | URL
벌서 다녀오셨군요! 오르세 미술관전 어땠어요? 좋았나요? 디즈니 특별전은 오르세보다 관람료가 더 비싸네요. 역시 디즈니예요.^^;;;

... 2011-06-23 16:15   좋아요 0 | URL
페이퍼 썼어요^^

마노아 2011-06-23 16:42   좋아요 0 | URL
발빠른 브론테님! ^^

하늘바람 2011-06-23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세미술관전이 탐나요

마노아 2011-06-23 17:29   좋아요 0 | URL
오르세 미술관전 볼 거리가 많을 것 같아요.^^

순오기 2011-06-24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휴대폰은 지원해줄 수 있어요.^^
보내줄까요?

마노아 2011-06-24 01:56   좋아요 0 | URL
우왕! 감사해요. 보내주시면 저의 행운이지요.^^

자하(紫霞) 2011-06-24 0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좋은 정보를...
휴대폰 찾고 있는 베리베리ㅋ

마노아 2011-06-24 12:39   좋아요 0 | URL
잊지 않게 잘 기록해요! 나도 다이어리에 정리해야겠어요.
기억을 믿을 수가 없어요.^^ㅎㅎㅎ

머큐리 2011-06-24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르세전과 모스크바의 초상...아...언제나 가보려나..^^;

마노아 2011-06-24 12:40   좋아요 0 | URL
서울 한 번 나오면 한큐에 몰아서 다 해치우는(?) 겁니다.^^ㅎㅎ

프레이야 2011-06-24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르셰미술관전 보고 싶어요.^^

마노아 2011-06-24 20:52   좋아요 0 | URL
헤헷, 서울 원정 한 번 오셔요.^^

네꼬 2011-06-2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좋은 정보 고마워요. 찜!

마노아 2011-06-24 20:52   좋아요 0 | URL
도움 되었다니 마이 플레져~ ^^

2011-06-24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4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6-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도 예술의 전당에 멋진 전시회가 많군요.
코알라 방학하자마자 그리로 날아가야겠어요. 앞에서 수제 햄버거도 먹고 말이죠.

오르세와 디즈니 전을 봐야겠네요. 정보 감사드려요!

마노아 2011-06-27 14:27   좋아요 0 | URL
오르세와 디즈니면 마녀고양이 님과 코알라 모두를 만족시킬 거예요.
수제 햄버거도 물론이고요. 얼른 방학 날을 기다려야겠어요.^^
 
춘추전국 이야기 3 - 남방의 웅략가 초 장왕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3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강남 지역은 고대에는 변방의 오랑캐 땅이었다. 역시 당대에 오랑캐로 지목되었지만 당당히 춘추의 패자로 군림했던 인물이 초의 장왕이다. 문자는 잘 몰랐지만 유식한 그 어떤 군주보다도 대담하고 자비로웠던 이 웅략가가 춘추전국이야기 3편의 주인공이다. 영웅시대를 열었던 진 문공이 망명객 시절에 30리 씩 세 번 후퇴해 주겠다고 호기를 부렸다면, 장왕에게도 그 성정을 엿볼 수 있는 고사가 있다. '절영지회'다. 촛불이 꺼진 찰나 왕을 모시던 미인에게 수작을 부린 자의 갓끈을 여자가 취했으나 장왕은 불을 켜기 전에 모두의 갓끈을 끊게 해서 그가 누구인지 찾지 않았다. 이때 목숨을 구한 이는 훗날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왕을 지킨다.

장왕이 처음 등극했을 때는 한 나라의 군주가 납치를 당했을 만큼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 위기를 겪은 그는 3년간 정사에 손을 놓고 관망하며 때를 노렸다.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났을 때에는 구정의 무게를 물을 만큼 성장해 있었다. ‘구정’이란 주나라 왕실의 권위의 상징인 아홉 개의 거대한 구리 솥으로 제후들은 감히 입에 올리지 못했던 때였다. 이후 춘추의 강국들은 모두 자중지란을 겪으며 혼란스러워할 때 장왕은 솟구치는 기세로 북으로 뻗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춘추의 두 번째 패자였던 진나라를 필의 싸움에서 이기며 누른다. 하지만 장왕은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 그는 멈춤을 아는 드문 군주였다.

“응당 승리의 군영을 만들고 적의 시체를 모아 경관을 만드시지요. 듣건대 적을 물리치고는 반드시 자손에게 고해 무공을 잊지 않게 한다고 하더이다.”

그러나 장왕의 생각은 달랐다.

“이는 그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대저 武라는 글자는 ‘창을 멈춘다(止+戈)는 뜻이다.”

이것이 유명한 창을 멈추는 무, 곧 ‘止戈之武’라는 고사의 기원이다. 후대에 지과지무는 무인들의 이상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충무공 이순신의 칼에도 ‘지과’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 203쪽

 그의 목표는 북쪽을 경계케 한 뒤 동쪽으로 뻗는 것이었다. 동쪽의 무수한 작은 나라들이 초나라 앞에 굴복했다. 초의 군사들은 자급자족이 가능했고 심지어 성을 에워쌌을 때는 주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기다리는 군대였다. 그런 군대를 앞에 두고 성안에서 버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초의 진군 속도는 빨랐다. 무너진 동쪽의 나라들은 초의 지배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것은 초 장왕이 그들을 무력으로 억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랑캐 소리를 듣는 남쪽 땅의 군주였지만 그 덕은 중원의 도를 이미 넘어섰다. 그러니 그런 그를 중국의 정신이 놓아둘 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초 장왕의 북벌은 중국사의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 ‘오랑캐 군주’가 중원의 군주보다 낫다? 오랑캐의 우월을 인정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즉각 화하인 특유의 민첩성이 발휘되었다. 물론 중원이 오랑캐보다 못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초의 오랑캐라는 꼬리표를 떼면 될 것 아닌가? 장왕 이래 초는 중국사에서 더 이상 오랑캐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전국시대가 되면 초는 대국이자 문명국으로서 위상을 떨친다. 이후 북방에서 유가와 법가 철학이 무르익고 있을 때 남방에서는 기술학과 노장 철학이 만개하게 된다. 남북의 우열 시대는 끝난 것이다. – 227쪽


하지만 초의 기세가 일방적으로 뻗어나갈 만큼 춘추 시대가 만만하지 않았다. 초의 동방 진출은 초나라보다 더 오랑캐 취급을 받던 오의 각성을 불러왔다. 춘추 시대 다음 패자가 등장할 분위기가 그렇게 익어가는 것이다. 초가 싸움에서 유리할 수 있었던 승리의 요인으로 저자는 구리를 언급했다. 또 이제 등장할 오나라는 전차가 아닌 뱃길을 이용해서 싸움에 임하고 운하를 파는 것도 설명해 준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지형적 조건이 이들의 운명을 많이 좌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자'는 구체적인 사람 이름이 아니라 책 이름이었다고 결론지은 것이 눈길을 끌었고, 마지막에 나온 저자의 초 땅 답사기도 관심을 끌었다.

3편은 1편이나 혹은 2편보다는 다소 몰입도가 떨어지기는 했다. 한 인간으로서 초 장왕은 진 문공보다 내게 더 매력적이었고, 그를 보좌한 손숙오도 비할 데 없이 훌륭한 관료였지만, 그래도 관중의 카리스마를 넘어서진 못했다. 그렇다 해도 좀 더 후대로 넘어오니 보다 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확실했다. 더불어 피의 전국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나올 4권은 '위대한 재상들의 시대'라고 한다. 천하를 주름잡는 패자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런 패자를 있게 한, 혹은 그런 나라를 상대로 작은 나라를 지키려고 애를 쓴 빼어난 재상들의 이야기도 심장을 들뜨게 한다.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하는 건 역시 그 안의 사람들임이 분명하다.

이번 편에서도 오자가 몇 개 눈에 띄었다.

60쪽 수신제가체국평천하>>수신제가치국평천하
82쪽 그러나 초의 한 개 현은 작은 나라에 해당했다. >>문맥상 '그러니'가 되어야 할 것 같다.
153쪽 손숙오가 죽자 장왕은 그 아들에게 비옥한 토지는 내렸는데>>>토지를 내렸는데
223쪽 저의 아비 무외는 죽을 줄 알았으니 >>알았으나

그리고 내 책은 새 책인데도 앞쪽 약 60쪽까지는 제본이 들떠서 종이를 넘기자 모두 낱장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몹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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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2 0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23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1-06-22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장왕은 몰랐는데, 절영지회는 좀 멋지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요즘 종종 노자가 사람이름이 아니라, 책 이름이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마노아 2011-06-23 00:30   좋아요 0 | URL
저런 고사들을 만나면 막 짜릿해요. ^^
노자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정설이 되려면 시간이 걸릴 테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