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주 목요일에는 친구와 뮤크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보고 왔다. 친구가 표가 생겼다고 연락이 왔는데 자신은 이미 보고 왔으니 다녀오라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청담동에 있다는 공연장을 찾아가기까지, 비오는 날 버스 두 번에 지하철 두 번 타고 갔는데, 알고 보니 한 정거장 위에 우리집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털썩... 

 역삼동에 갔을 때랑 성남 아트홀 갔을 때도 느낀 건데, 왜 그리 밥 먹을 만한 데가 없는 것인지... 결국 김밥천국에서 김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 주에만 저녁을 김밥으로 세 번을 때운 것 같다. 휴...;;; 

공연은 무척 재밌었다. 오페라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지만, 확실히 뮤지컬적 요소를 많이 넣으니까 보다 집중이 잘 됐다. 특히 어린이 관람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꽤 유치할 법한 부분들이 아이들한테는 빵빵 터지는 게 오히려 더 재밌었다.  

 

다만 내용이 돈있고 지위있고 빽있는 놈이 제일 좋게 매듭짖는다는 게 다소 불편했다. 흥! 

2. 그래도 특별한 행운이 있었던 것은 공연 시작 전 추첨에 당첨되어서 '무코타 크리닉' 상품권을 받았다는 것이다. 뭔지도 모르고 받았는데 연예인들이 많이 하는 헤어 영양... 뭐 그런 건가 보다.(대충 검색해 보니....) 근데 이런 건 머리카락이 긴 사람이 해야 하지 않나? 내 머리는 짧은데... 

3. 열심히 다이어트 중이다. 탄수화물을 많이 제한했더니 근육이 먼저 빠진 건지 근력이 부족해서 계단을 올라가면 지나치게 힘들다. 수영 시작 전에 체조하고서 마지막에 팔벌려 뛰기 10회하면 죽도록 힘들다. 민망하다. 며칠 전에 만난 친구는 에어로빅을 새벽에 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다시 가서 한 번 더 한다고 한다. 대패 삼겹살과 닭가슴살로 연명 중이라던데 확실히 운동으로 뺀 친구는 훨씬 탄탄해 보였다. 하지만 난 지금 하는 수영도 아주 벅차 하고 있음...;;; 오늘 뉴스에 소말리아 어린이들이 많이 굶고 있다고 해서 살 뺀다고 적게 먹는 게 무척 부끄러웠지만, 도로 살을 찌울 수는 없는 노릇!ㅜ_ㅜ 

4. 6월 초에 만화가 김지은 샘이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는데 거의 한 달 뒤 만화가 권교정 샘이 대장암 수술을 받고 현재 항암 치료 중이시다. 체중이 40kg도 아니 나간다고 하시니 거의 피골이 상접한 상태... 원래도 마른 분이셨는데 수술 후 더 체력에 부치실 듯... 부디 이겨내시고 건강히 돌아오시기를... 그때까지는 작품 재촉 안 할게요....ㅜ.ㅜ 

 

 

 

 

5. 한 동안 드라마 카이스트를 무척 열심히 보았다. 총 81회였던가? 암튼 꽤 긴 드라마였는데, 66회던가... 그쯤까진 송지나 작가와 다른 작가들이 같이 대본을 썼고, 그 이후로는 동료 작가들이 썼는데, 송작가가 빠진 티가 확 나는 게 지나치게 재미가 없었다. 재미만 없는 게 아니라 드라마가 완전 산으로 갔다. 게다가 배우들도 어찌나 연기를 못하던지... 완전 처음 보는 배우들은 그 후로도 보지 못한 게 설마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드라마였을까? (ㅡㅡ;;;)  

이 드라마는 10년도 더 전에 방영된 작품인데 당시 우리집에서는 sbs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보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열광했을 것 같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인물들이 그때는 이름도 없이 '박사1' 이런 식으로 출연했다는 것도 신선한 재미였다.  

>> 접힌 부분 펼치기 >>

당시엔 별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뮤지컬 스타가 된 정성화의 오버 액션 연기도 재밌었다. 다만 이은주는 시종일관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사 중에 민경진(강성연)이 넌 시집 잘 가서 아이 낳고 잘 살거라는 말도 나왔고, 너 이렇게 피곤하게 살면 마흔도 못 되어서 죽을 거란 얘기도 나왔다. 다만 캐릭터에 의한 대사일 뿐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지 못하고, 또 그렇게 죽어간 그녀가 생각나 안타까웠다. 노래도 잘 하고 당구도 잘 치고 피아노도 잘 쳤던, 그래서 그 많은 재주를 모두 드라마에 녹여냈던 그녀였는데, 젊은 목숨이 참 서럽다. 

6. 지난 달에 예술의 전당 다녀오면서 게시판에서 보고는 반가워서 와락 소리를 지를 뻔했던 뮤지컬 바람의 나라. 올해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올해는 캐스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일단 서울예술단 단원들은 그대로일 테지만, 주연 무휼 역을 고영빈이 할지, 새로운 대무신왕이 탄생할지 흥미롭다. 이전 멤버여도 좋고, 새 얼굴이어도 반가울 것 같다. 고영빈처럼 탄탄한 몸매만 받쳐준다면(응?)... 어차피 무휼은 노래도 두 갠가 밖에 없으니까...^^;;; 

그나저나 바람의 나라는 언제 완결이 되려는지 걱정스럽다.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스페셜 에디션 판도 2권 나오고서 깜깜무소식... 딱히 선생님 건강이 이상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잠자코 기다릴 수밖에....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완결도 궁금하지만 소설 바람의 나라 후속편을 보고 싶다. 소설가가 되었어도 먹혔을 것 같은 흡인력 있는 문체였었다. 바람의 나라가 너무 강렬해서 김진 샘의 다른 작품들이 많이 묻히는 것 같기도...  

소문만 듣고 보지는 못한 1815가 참 보고 싶다. 당최 구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ㅜ.ㅜ

 

 

7. 지난 주였는지 지지난 주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보다가 가수 '영지'를 보고 깜딱 놀랐다. 졸면서 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엘신님이 출연한 줄 알았던 것이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헤어 스타일과 얼굴 등이 아주 비슷하게 보였다. 잠이 확 달아나는 순간이었달까. 그녀가 불렀던 '나 여기 있어요'가 참 좋아서 오래오래 듣고 있는 중이다. 임재범의 '비상'도 아주 좋았지만, 처음 들어본 이 노래가 더 귀에 감겼다.


 

그런데 더 찾아봤지만 이 노래처럼 좋은 노래가 더 없었던 게 상당히 아쉬움... 

8. 언니가 독립했다. 6월에 자기 차례보다 한 달 일찍 곗돈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순식간에 독립을 결행했다. 수원에서 오피스텔 세 군데를 돌아보고는 세번째 집을 계약했다. 일하고 있던 사무실 짐을 일단 집으로 옮기고, 집에서 다시 수원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골랐다. 용달 부르자고 했는데 가져갈 게 많지 않다고 그냥 자기 차로 이사를 한다고 했다. 결국 그 바람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쓰고 말았다. 언니 사무실은 3층이었고 우리집은 2층. 팔 벌려 뛰기 10회도 힘들다고 아우성이던 내가 지난 열흘 간은 날마다 짐 나르느라 무척 땀을 뺐다. 게 중 절반은 비 맞으면서 짐을 날라서 더 고단... 지금도 온 몸이 멍 투성이다. 이사는 수요일에 언니랑 나랑 둘이서 마쳤고, 오늘은 엄마랑 둘째 언니가 다녀왔다. 짐이 조금 더 남긴 했지만 대부분은 옮겼고, 나머지는 배송 중이다. 언니가 집을 나가니 집안이 조용하다. 하하핫,   

  언니 독립 만세다!

9. 언니는 사무실에서도 거의 다 버리고 갈 태세였는데, 내가 가서 꽤 건져왔다. 5층 서랍장 세 개 중 하나는 아예 서랍이 하나도 없었지만 세 개 모두 가져와서 책장 받침으로 썼다. 서랍이 없는 칸은 커다란 도판의 책들을 넣고 쟁여둔 나무 판자 중 적당한 것을 골라서 지지대로 삼아 그 위에는 앨범을 놓았다. 안성맞춤이다. 또 책상 위 어지럽던 책장들을 정리했다. 원래 계산은 종류별 작가별로 잘 정리하고 싶었지만, 지난 토요일에 12시간을 내리 서서 일하고도 끝이 보이지 않아서 나중에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일단 꽂고 보았다. 일요일도 8시간을 내리 서서 일하니 도저히 체력이 받쳐주질 않아서 마지막 한 칸을 아직 정리 못했지만, 그런대로 꽤 깨끗해지고 방도 넓어져서 흡족하다. 그렇게 무리해서 일을 했더니 일어날 때는 목도 안 돌아가고 너무 피곤해서 새벽 5시가 되도록 잠도 안 오고 그랬지만, 그게 다 뭐가 대순가.   

언니가 독립을 했는데!! 

10. 책 정리를 하면서 공간이 남을 줄 알고 야곱에게 보냈던 책들을 택배로 일부 돌려받았다. 그런데 아뿔싸! 남는 칸이 없다. 결국 급한대로 공간박스를 주문했다. 

아마 내일쯤 도착할 것이다. 이번에 돌려받은 책은 모조리 만화책이어서 전부 만화책만 꽂을 것 같다. 그리고 내일은 고대하던 '세븐시즈' 18권이 나온다. 원래 6월초 출간 예정으로 잡혀 있던 책인데 어떤 이유인지 두 달 가까이 연기되었다. 뭐, 19권은 덕분에 빨리 나오겠지....(아닌가??) 

어제 주문한 비밀 9는 오늘 도착할 것이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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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2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빌리아의 이발사 저도 보고 싶네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가 권교정 선생이 아프시다니 어서 쾌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 짧은 머리도 헤어 무시기 받으면 좋지 않을까요? ㅎㅎㅎ

마노아 2011-07-22 16:08   좋아요 0 | URL
오늘자 쿠팡에서 70% 세일해요. 15,000원, 12,000원에 예매가능합니다.
권교정 샘 암진단 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어휴...;;;;
헤어 무시기 받으려면 머리를 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음, 전화해서 다시 물어봐야 하나...

블루데이지 2011-07-2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페라~~본적 없어요!! 좋으셨어요? 재밌으셨다고 하니 !! 저도 좋네요!!

저번에 가수 영지가 라디오 프로에 나와서 노래하고 , 이야기 하는 걸 들은적이 있었는데...
말도잘하고, 노래도 잘하더라구요^^ 그때 저는 그 사람을 처음 알았네요!~~ㅎㅎ
즐거운 자유 만끽하며 보내세요~~

마노아 2011-07-22 16:09   좋아요 0 | URL
센스 있게 말을 잘 하더라구요. 유희열하고도 쿵짝이 잘 맞았어요.^^
울 언니는 나 없는 자유를 누리고 있을 거예요. 하하하^^

hnine 2011-07-2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스트, 송지나...추억의 이름들이군요.
엘신님이 저렇게 생기셨어요? ^^ 노래 들어보려고 플레이시켰다가 실컷 웃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덩달아 외쳐드릴꼐요 "언니 독립 만세!"
언니분께서 보시면 좋아하시려나 서운해하시려나...

마노아 2011-07-22 16:10   좋아요 0 | URL
뭐랄까, 어떤 이미지가 통하는 게 있어서 제가 닮았다고 느꼈나봐요.
사실 가끔 무표정하게 찍힌 제 사진을 보면 더더더 엘신님을 닮았답니다.
우린 분위기가 아주 다른데도 말이지요.^^
아하핫, 울 언니는 더 기뻐하고 있으니 피장파장이에요.ㅋㅋㅋ

... 2011-07-22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다 뭐 대순가, 언니가 독립했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눈물 나려구 해요...

마노아 2011-07-22 16:10   좋아요 0 | URL
저, 많이 울었습니다. 지금도 막 울컥 해요.ㅋㅋㅋ

2011-07-22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2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1-07-2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의 독립에 대해서 저는 마노아님께 축하를 보내요! 꺅>.<

마노아 2011-07-23 00:54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공감해줄 줄 알았어요. 정말 씬나요! 근데 좀전까지도 전화로 심부름을...;;; 아직도 곁에 있는 것 같아요.ㅎㅎㅎ

웽스북스 2011-07-23 11:44   좋아요 0 | URL
잘은 모르지만 다락방님이 축하하니까 나도 축하. ㅋㅋㅋ

마노아 2011-07-23 11:49   좋아요 0 | URL
다 함께 축하, 올레~!!!

순오기 2011-07-23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의 일상은 리얼 버라이어티~~~~~~ 언니의 독립만세에 같이 환호해요!!^^

마노아 2011-07-23 11:49   좋아요 0 | URL
월드컵 4강 진출하는 기분보다 더 짜릿하달까요. 야호~!!!

웽스북스 2011-07-23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흑 송지나의 카이스트..... 너무 보고싶고, 너무 그리워요.
민경진은 정말 사랑스러운 친구였어... 강성연은 그 이후로 저만한 작품, 저만한 캐릭터를 못만났죠....
12년 전에 보고, 7년 전에도 봤는데 또 보고픈 카이스트. 저는 파일을 왜 지워버렸을까요 ㅜㅜㅜㅜㅜ

저도 이은주 죽었을 때 카이스트 구지원 생각했어요. 정말 예뻤는데. 하늘하늘 긴치마, 긴 생머리....

마노아 2011-07-23 11:51   좋아요 0 | URL
다본지 좀 됐는데 웬디님 생각이 나서 한 번은 언급하고 지나가고 싶었어요.^^
저는 아주 후진 화질로 보아서 mp3로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도 보아서 다행이에요.
씨즌2는 씨즌1의 명성을 다 깎아먹더만요. 스킵스킵 해가면서 보았어요.^^
강성연은 정말 이때만큼 좋은 작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아쉬운 일이죠.
이은주와 구지원은 싱크로율도 좋았고, 남자들의 로망인 아리따운 여학생의 외모를 제대로 보여주었는데, 여러모로 안타깝네요. 어제는 다큐 진실이 엄마 편을 보았더니 또 마음이 안 좋았어요. 어휴....

마녀고양이 2011-07-2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어 세븐시즈 18권 나오는군요.
안그래도 브리니님이 비밀 9권 나왔다고 알려주셨는데. ^^

마노아님, 다이어트 많이 하셨나봐요, 하기사 그리 꾸준히 수영을 하셨는걸. ㅠㅠ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으으.........

마노아 2011-07-24 01:26   좋아요 0 | URL
아아, 책은 원래 배송일보다 하루 늦게 왔고 오늘도 하루 온종일 집정리 하느라 책 비닐도 못 뜯었어요.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지금 발바닥에 불이 나고 있습니다. 맛사지라도 해줘야겠어요.ㅜ.ㅜ
그리고 운동으로는 단 한 번도 1kg조차도 빠진 적이 없어요.
수영을 꼬박 1년 했지만 정말 살 빠진 적 없고요. 예전에도 운동 열심히 해도 살은 안 빠지고, 운동 그만두면 바로 찌곤 했어요. 체중을 줄이는 것은 식사를 제한하는 것 박에는...;;;;;
그래서 저는 결국 한약을 먹었어요. 식욕을 억제해주는 한약인데 확실히 효과는 있습니다.
저는 거의 7kg정도 뺀 것 같아요. 맨처음 내원했을 때 적정 체중에 가깝게 간 건데, 갈 때마다 내 몸에 최적 체중이 자꾸 아래로 아래로 조정되어서 아직도 4kg는 더 빼라고 하네요....ㅜ.ㅜ
살 빼서 기운은 없지만 맞는 옷이 많아서 기분은 좋습니다.
혹시 땡기시면 제가 한의원 정보를 드리겠습니다.ㅎㅎㅎ
 
그을린 사랑 - Incendi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가 시작되면서 라디오 헤드의 You and Whose Army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중동의 어느 지역, 한 소년이 머리를 삭발당하고 있습니다. 카메라는 아래서부터 위로 이동을 했는데 소년의 오른발 뒤꿈치에는 세개의 점이 문신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소년의 눈은 카메라를 뚫을 듯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 눈에는 저항과 분노가 가득합니다. 소년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일까요. 소년은 왜, 그토록 슬프고 고통스런 눈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 시간을 점프합니다. 한 공증인이 유언장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쌍둥이 남매에게 남긴 글입니다. 그런데 이 유언이 아주 황당합니다. 

“내 시신은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엎어놓아라. 약속을 어긴 자는 비문이 필요없다. 잔느, 너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전하거라. 시몽은 형을 찾아 편지를 주도록 해라. 편지가 모두 전달되면 너희에게도 편지를 줄게.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내 이름을 새겨도 된다. 햇빛 아래에.”

남매는 아버지가 전쟁 와중에 돌아가셨다고 알고 자랐습니다. 게다가 뜬금 없는 형의 존재라니요. 어머니는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지요. 평소 말씀이 없으셨고, 아마 자식들에게도 다소 차갑게 군다 느껴지는 인상이었을 겁니다. 누나 잔느는 어머니의 마지막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만 동생 시몽은 회피하려고 합니다. 어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거라고, 공증인의 비서로서는 좋은 동료였을지라도 자신들의 어머니로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거칠게 말해버립니다.  

 

잔느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습니다. 뚜렷하게 답이 나오는 문제만 풀어왔을 테지만, 그런 잔느의 직관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어머니는 수영장에서 갑자기 넋을 잃고 있다가 정신을 놓으시고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엄마의 촛점 잃은 눈을 마주했던 잔느의 마음 속에는 석연치 않은 부채감이 자리합니다. 마침내 잔느는 따라오지 않는 동생을 두고 혼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 나섭니다. 그들은 캐나다에서 터전을 잡고 살았지만 원래 어머니는 중동 출신이었지요. 영화는 현명하게도 특정 나라를 지칭하지 않습니다. 원작 연극에선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했고, 영화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내고 있지만 사용되는 지명은 모두 가상의 곳입니다. 가상의 나라, 가상의 장소를 배경으로 풀어나가지만 영화의 모든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실의 우리를 반영합니다.  

엄마가 다녔던 대학을 찾아가 보았지만 이미 3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엄마의 흔적을 찾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지요. 그러다가 사진 한 장이 단서가 됩니다. 사진이 찍힌 장소가 남부의 감옥이라는 것을 누군가 알아본 것입니다. 감옥이라니, 내 어머니가 감옥에 수용될 만한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잔느는 알지 못합니다. 영화는 엄마의 과거를 되밟아 가는 잔느의 여정과 고향을 떠난 어머니 나왈의 행보를 겹쳐서 보여줍니다.  

나왈은 중동에서 태어났지만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회교도 난민이었고요. 두 사람은 몰래 마을을 떠나려고 했지만 형제들에게 들켜버렸고, 그 자리에서 사랑했던 연인은 총살을 당합니다. 할머니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나왈 역시 그 자리에서 명예 살인 되었을 테지요. 당시 나왈은 임신 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왈에게 하나의 약속을 받아냅니다. 아이를 무사히 낳고 삼촌이 계신 곳으로 도망가서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라고요. 할머니는 갓 태어난 아이의 발 뒤꿈치에 점 세 개를 문신으로 새겨넣습니다. 당장은 고아원에 보내지만 훗날 아이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려는 의도였지요. 맞습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나왔던 바로 그 소년입니다. 그 아이의 신산스러웠을 삶의 여정도 충분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지요. 

 

잔느는 어머니의 고향에서 어머니가 불명예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합니다. 그녀들의 마을에 수치를 안겨주었다는 것이지요. 4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어머니의 명예는 찾아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은 인류가 서로 다른 종교 문제로 수천 년이나 싸워온 지난한 역사를 그대로 대변해 줍니다. 이제 잔느는 어머니가 수감되었던 감옥으로 향합니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어느 할머니의 제 엄마의 삶도 모르면서 아빠를 찾느냐는 일갈을 가슴에 새긴 채로 말입니다. 

나왈은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일하며 신문을 만들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내전이 터져서 학교는 습격을 당했고, 날마다 꿈에서도 잊지 못한 아들을 찾기 위해 아들을 맡겼던 고아원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다른 고아원으로 옮겨졌고, 그녀가 도착하기 하루 전에 폭격을 받아 그곳엔 폐허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곳으로 옮겨져 살아있을 거란 희망을 놓치지 않던 나왈은 회교도들이 탄 버스를 얻어타다가 기독교 민병대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을 향해 일제히 쏘아대는 총신에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벌이고 사람을 죽이지만, 신이 원했던 참 사랑과는 지극히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왈은 그 자리에서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내세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버스 안의 생존자는 단 세 명. 한 회교도 여인과 그녀의 딸이 또 있었지요. 그 여인까지 살릴 수 없었던 나왈은 여인의 딸이 자신의 딸이라며 안고 나오지만, 아이가 엄마를 쫓아 달려가는 바람에 결국 모두 죽고 맙니다. 이 비극적인 참사 앞에서 그녀는 테러리스트로 거듭납니다. 한때 글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그녀는 이제 저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줄 때라고 생각합니다. 나왈은 기독교 민병대의 지도자 집에 가정교사로 부임했고, 기회를 노려 그 자를 쏘아 죽입니다. 그렇게, 남부의 악명높은 감옥에 수감되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무려 15년이나 그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노래하는 여인'으로 불렸다는 게 각별했지요. 그녀의 의지를 꺾기 위해서, 그녀의 노래를 그치게 하기 위해서 더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고, 그래도 그녀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잔느가 마주친 어머니의 진실은 상상 이상으로 끔찍했고, 어머니의 고통은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는 먹먹한 것이었습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된 잔느는 동생 시몬을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족처럼 생각해왔던 공증인도 그 자리에 동행합니다. 이들은 점점 더 어머니가 침묵해 왔던 진실에 다가갑니다. 진실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버거웠고, 점점 드러나는 아버지와 형의 존재도 그들의 가슴을 압박합니다.  

1+1=2라는 것이 수학적 진실이었는데,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합리적인 결론이었는데, 1+1이 2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남매는 부둥켜안고 오열합니다. 수영장에서 미친 듯이 헤엄을 치며 힘을 빼보지만 그들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함께 있던 그때처럼 남매는 물 속에서도 서로의 어깨에 기댄 채 눈물을 삭입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을,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과 마주한 그들도 어머니처럼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남매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킵니다. 그들은 아버지를 찾아내었고, 또 그들의 형제를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남긴 편지들을 전달합니다. 이제 어머니가 자신들에게 남긴 편지를 열어볼 차례지요.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처럼 진실의 위력은 지나치게 무서웠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한 시간을 주었던 것입니다. 공포였을 시작을 사랑이라고 바꿔준 어머니, 분노의 흐름을 끊어내기 위해서 약속을 지켰던 어머니... 어머니는 그렇게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졌던 자신의 삶을 평화와 위로로 바꾸어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약속을 지켜낸 어머니는 당당히 햇볕 아래에 비석을 세우고 그 이름을 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그 비석을 알아볼 수 있게, 누구라도 찾아와서 당신을 만날 수 있게......

영화의 충격적인 소재와 흐름은 관객을 몇 번이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올해 최고의 영화는 '인 어 베러 월드'였지만, 벌써 그 기록을 갈아치우게 됐습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노미네이트로 그쳤지만, 적어도 제게는 이 영화가 준 전율이 더 절절했습니다. 이 정도의 메시지라면 청소년들도 충분히 소화하고 새길만 하건만, 18세 이상 관람가는 적잖이 불만을 줍니다. 영화의 의의가 전쟁과 폭력보다 평화와 사랑에 있다는 것을 우리의 청소년들도 분명히 인식할 텐데 말입니다.  

라디오헤드를 비롯해서 영화 전반에 걸쳐 흐르는 음악들도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음악이 부각될 때는 대사 없이 카메라를 멀리서 잡아주는데, 화면속으로 진하게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열연을 보여준 나왈 역의 루브나 아자발의 연기가 훌륭했고, 잔느는 엄마와 비교적 닮은 배우를 기용해서 더 몰입감을 주기도 했지요. 영화의 원제는 'incendies'로 불어로 '불에 그을린'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강렬하고 과격한 사건을 의미한다고 감독은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 비극의 현대판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의 내용과 제목은 몹시 잘 어울립니다. 이탈리아에선 '노래하는 여인'으로, 스칸디나비아 개봉명은 <나왈의 비밀>이라고 하니, '그을린 사랑'이라고 명명한 한국판 제목은 꽤 시적입니다. 무분별한 영어 제목을 한글로 옮기는 행태에 평소 불만이 많았는데, 이런 식의 제목은 언제든 환영이지요.  

큰 비극을 겪고도 그것을 복수가 아닌 사랑과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섣불리 말하기도 힘들지요. 그렇지만, 그런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영화는 130분에 걸쳐서 오감을 다 자극하며 대변해줍니다. 태양 볕이 뜨거운 여름날의 연속이지만, 그보다 더 강렬하고 숭고한 열기를 확인해 볼 수 있을 겁니다. 개봉관이 많지 않으니 좀 더 서두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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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2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꼭 보겠어요, 불끈! 어디서 하죠? 두리번 두리번 (" )( ")

마노아 2011-07-22 16:06   좋아요 0 | URL
일단 무비꼴라쥬에서 합니다. 그밖에 시네큐브까지만 알고 저도 몰라요.^^;;;;
어쨌든 꼭 보는 겁니다.^^

웽스북스 2011-07-22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찜해놨어요! 시네큐브~

마노아 2011-07-22 16:06   좋아요 0 | URL
오, 통했습니다! 시네큐브면 훌륭하죠!

다락방 2011-07-2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예매되어 있지요. 움화화핫

마노아 2011-07-22 16:06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와락 울고 나오겠어요.(>_<)

레와 2011-07-2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요일 부산에서 봅니다! ^^

마노아 2011-07-22 16:07   좋아요 0 | URL
좋은 영화는 두루두루 봐야 해요. 쏘우 굿이에요! ^^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 여씨와 유씨 - 건설과 숙청 김태권의 한나라 이야기 3
김태권 글.그림 / 비아북 / 2010년 11월
절판


역사의 패배자들에게 문학은 영생을 주었다. 유막둥이에게 패배한 항우만이 아니라 여후에게 살해된 한신도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사나이가 되었고, 척부인도 가장 가련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쩌면 이 모든 결과도, 사마천이 <사기>에서 의도한 것일지 모르겠다. ‘항우본기’나 ‘회음후열전’ 등에서 사마천이 유막둥이가 아니라 항우나 한신에게 공감하도록 글을 써내려갔다는 점은, 많은 연구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당시 일어났던 일은 물론 이러한 영웅 판타지와는 다를 것이다. 현실 권력의 앞에는 절대적인 선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영웅도 엄청난 악당도 없다. 패배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안타깝지만, 여러 번 읽으면 그들이 패배할 이유가 없지만은 않다는 점을 알게 된다.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연은 서럽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언제나 정당했던 것만은 아니다.
-5쪽

입술 가운데를 세모꼴로 칠하는 것은 한나라 시대의 화장법이라고 한다.

-31쪽

<사기> ‘고조본기’에 따르면 유막둥이는 황제가 되고 나서 이렇게 말했대요. "계책을 짜내는 일은 내가 장량만 못하며, 백성을 위로하고 양식을 공급하는 일은 내가 소하만 못하고, 백만대군을 통솔하는 일은 내가 한신만 못하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들을 쓸 수 있었고 그래서 천하를 얻은 것이다. 항우 측에 쓸 만한 인재는 범증 하나였지만, 항우는 그마저 제대로 쓰지 못하여 나에게 졌다."
사마천이 보기에 리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이른바 용인(用人), 즉 사람 쓰는 능력입니다. 지도자 본인이 모든 능력을 고루 갖출 필요는 없으며, 다만 각 분야 능력 있는 인재들의 마음을 얻으면 충분하다는 사상이지요. 이러한 생각이 2천여 년을 내려오면서 동아시아의 독특한 지도자상을 형성했어요. <삼국연의>의 유비나, <수호지>의 송강, <서유기>의 삼장법사 등, 이렇게 무능력한 리더들이 다른 문화권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37쪽

당시 사람들도 한신이 정말 모반하려 했을까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민심이 한신에 동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공신들을 숙청하는 동안 황제는 자주 사면령을 내렸는데, 혹시 있을지 모를 민심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56쪽

한신은 몰락 후에 더욱 삼가는 바가 없었다. 몰락 이후의 오만한 언행이 그의 비참한 죽음에 일조했다는 견해도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한신이 말을 공손히 하고 주위를 살폈다고 해서, 유막둥이와 여치가 그를 살려 두려 했을까?

-62쪽

유막둥이는 군현제도 봉건제도 택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진나라의 시황제는 가족도 믿지 못한 채 천하를 직접 다스리겠다며 무리하게 군현제를 밀어붙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어요. 초나라의 항우는 부하들에게 땅을 나눠주며 봉건제를 부활시켰지만, 유막둥이 같은 ‘공신’들이 더 많은 땅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무너지고 말았어요.
유막둥이는 공신들에게 땅을 주어 일단 안심시켰다가 기회가 되는 대로 ‘회수’했어요. 다시 빼앗은 땅 일부는 황제가 직접 다스리는 군현으로 삼고 일부는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자기 아들과 조카들한테 건네주었지요. 여러 공신들 즉 ’이성제후‘의 땅은 하나둘씩 황제 직할의 군현이 되거나 황제의 가족인 ’동성제후‘의 나라로 바뀌었어요. 예컨대 한신에게서 거두어들인 제나라 땅은 유막둥이의 아들에게, 초나라는 그 사촌형에게 넘어갔지요. 이러한 정책 덕분에 한나라는 내전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하는 쪽이야 괴롭겠지만요.
-63쪽

한신이 실각할 무렵 전후로 장량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장량은 신선이 되겠다며 정계를 은퇴했다. 장량은 매우 영민한 사람이었으므로 "신선이란 헛되고 궤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몸을 사리기 위해 그러했다고 사마광은 생각한다. 그러나 장량이 신선사상에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73쪽

유막둥이에게는 서로 다른 여인에게서 얻은 여덟 아들이 있었다. 여후의 아들 유영은 다른 일곱 형제와 경쟁해야 했다. 친누이 노원공주와 그 남편 장오는 유영에게 매우 든든한 지원 세력이었을 것이다.

-78쪽

조나라 땅은 중원에 있고 오래전 전국시대부터 문화의 중심지였다. 유막둥이는 그 땅을 여후의 사위인 장오에게서 빼앗아 척부인의 아들에게 준 것이다. 이후 조나라의 왕 자리를 놓고 여씨와 유씨의 세력 다툼이 일어난다.

-82쪽

<사기> ‘유후세가’는 장량의 전기입니다. 몰락한 귀족 장량은 젊어서 황석공이라는 노인을 만나 수련을 쌓았대요. 황석공의 정체는 신비한 ‘누렁바위(黃石)’라나요. 장량은 전쟁 중에 전쟁터에 나가지도 않고 후방에서 작전을 세워 능력을 발휘하고요, 통일 후에는 ‘상산사호’라는 수수께끼의 노인들을 모셔오기도 하지요. 결국 몸소 신선이 되겠다며 속세와 인연을 끊습니다. 후세의 어떤 연구자들은 장량을 전형적인 도가 지식인으로 이해합니다. 이전 세대 법가 지식인과는 처신이 사뭇 다르기는 하지요. 법가라면 얼핏 모질고 야박하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들은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회 개혁 세력이었습니다. 어쩌면 사회가 서구화된 요즘, 우리에게 더 익숙한 지식인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한비자>에도 나오지만, 이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버려도 좋다는 의식이 있었어요. 상앙이니 이사니 실제로 개혁에 나섰던 법가 지식인들 가운데 제 명에 죽은 사람도 없어요. 그들 덕에 바로 민중의 삶이 나아진 것만은 아니었지만요.
-97쪽

그러나 도가 지식인은 달라요.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거꾸로 자기 몸부터 챙겼답니다. 노자는 난세를 피하여 인간사회를 등졌지요. <장자>에는 벼슬살이에 묶였다가는 자기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철학이 등장합니다. 도가 지식인은 소하나 진평처럼 절묘한 처세술로 복이란 복은 다 누리기도 하며, 장량이나 ‘상산사호’처럼 은일지사가 되기도 하죠. 개인을 중시하는 도가 지식인의 모습은 이후로도 동아시아의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였답니다.
-97쪽

한신을 유막둥이에게 추천한 것은 소하이다. 그러나 한신을 죽이는 일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니 얄궂은 일이다. "한신은 소하 덕분에 성공의 길을 갔고, 또 죽음의 길을 갔다."(이중톈)

-111쪽

노관은 연(燕)나라의 왕이었다. 숙청 당할까 두려워하다가 흉노와 손잡고 모반을 기획하지만, 결국 황제를 이기지 못하고 흉노로 망명한다. 연나라 땅이 변란에 휩싸인 이 무렵, 위만은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조선에 입국했다고 한다.

-134쪽

여후와 척부인의 관계는 단순히 질투심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정치적 대립으로 파악하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여후가 척부인을 숙청하려는 상황은 이전의 공신숙청과 같은 맥락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45쪽

소하의 전기 ‘소상국세가’를 읽다 보면 뭔가 앞뒤가 어색합니다. 전란의 시대에 둘도 없는 행정가였던 소하.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제국의 2인자가 되자 소하는 큰 사업에 손대지 않습니다. 소하에 뒤이어 승상이 된 조참과 진평도 술만 마시며 일을 벌이지 않았지요. 어째서 이렇게까지 일을 안 했을까요? 황제의 질투가 두려워서?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면 한나라는 성공한 제국이 되지 못했겠지요. 조참의 전기 ‘조상국세가’에 따르면 백성들은 이런 노래를 불렀다나요. "소하가 제정한 법... 청정무위의 정책 집행하니 온 백성 한결같이 편안하네." 유막둥이와 여후, 소하와 동료 대신들은, 도가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도입한 것입니다. 되도록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무위이치(無爲而治)’의 정책기조는, 진나라의 까다로운 통치를 싫어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특히 어필했겠지요.
-151쪽

그러나 ‘내버려 둔다’는 기조만으로는 제국을 운영할 수 없죠. 사실 백성들 처지에서도 유력자(豪强)의 횡포를 규제해주는 강력한 법이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요.(힘없는 백성의 입장에서는 자유방임만큼 불리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의 한나라는, 도가 사상의 ‘무위’를 모토로 삼은 채 법가 사상에 입각한 진나라의 제도를 물려받은, 묘한 하이브리드 체제로 운영됐습니다. (사실 도가 사상과 법가 사상을 버무리려는 시도는 진작부터 있었지요.) 한편 이 무렵부터 유가 지식인들도 정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해요. 그 대표적 인물이 바로 숙손통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유가 사상이 통치이념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것은 몇 세대가 지난 후의 일이랍니다.

-151쪽

노자의 부쟁사상. 굳이 경쟁하고 이기려 들지 말라는 의미인데, ‘나서지 말라’는 처세술의 의미도 있다. 진평의 경우에 특히 이런 처세가 눈길을 끄는데, 결국 이것이 내전을 막아 천하를 안정시켰으니 천운이랄까.

-168쪽

짐승의 피를 찍어 입가에 바르는 삽혈(歃血) 은 고대의 맹세 방식이다. 이 맹세에 따르면 여씨 왕을 세우려고 할 때 대신들이 내전을 불사, 들고 일어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진평은 왕릉과 생각이 달랐다.

-171쪽

유막둥이는 공신들한테 맡겼던 땅을 빼앗아 유씨한테 주었습니다. 유막둥이 자신도 항우를 배신했으니만큼, 공신들을 믿기 어려웠겠죠. 그런데 유막둥이가 죽자 권력이 여후에게로 넘어갔어요. 여후로서는 유씨 역시 믿을 수 없었죠. 유씨 왕들 대부분은 남편 유막둥이가 다른 여인들과 낳은 아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힘닿는 데까지 임금 자리를 빼앗고 여씨를 제후왕으로 앉힌 것이지요.(여후가 죽은 후 다시 유씨로 바뀌기는 하지만요.) 결국 여후 역시, 크게 보면 유막둥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을 벌였던 셈입니다. 둘 다 그나마 믿을 사람으로 자기 직계가족을 택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이, 권력의 비정한 속성일까요.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원래 한 가족이던 ‘동성제후’들끼리도 서로 창칼을 겨누고 내전을 일으키지요. 이 내전은 ‘오초7국의 난’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이 과정을 거치는 동안 한나라는, 봉건제도 아니고 군현제도 아닌 새로운 체제의 제국으로 발전했어요. 봉건제와 군현제의 이러한 중간 형태를 군국제라고 부른다지요.
-187쪽

사마천은 여후를 잔인한 여인으로 그렸지요. 사실 사마천의 붓끝에서 멀쩡하게 묘사된 여인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는 "당시 많은 부인들이 유교의 예법...에 속박되지 않고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무슨 특종이라도 보도하듯, 악의를 품고 붓끝을 놀린 사마천의 심리 상태도 정상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사마천이 궁형에 처해진 후 인생관에 변화가 와서 여성에 대한 혐오나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동양사학계의 대가가 쓴 글치고는 다소 도발적입니다. 그러나 지적했다시피, 사마천은 여후를 나쁘게만 그리지는 않습니다. ‘여태후본기’의 말미에 실린 ‘좋은 정치를 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언급했지요. 여태후의 전기는 ‘세가’나 ‘열전’이 아니라 당당히 ‘본기’에 실려 있습니다. 심지어 그 위치마저, 유막둥이의 생애를 다룬 ‘고조본기’(권8) 바로 다음에 아홉 번째 책(권9)으로 이어지지요. 황제의 자리는 아들 혜제(유영)가 물려받았는데도, ‘혜제본기’니 ‘효혜본기’ 같은 것은 따로 없고, 여후만이 진시황제와 항우, 유막둥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221쪽

미야자키 교수도 인정하고 있어요. "고조본기의 뒤에 여후본기를 놓은 것도 훗날 종종 문제가 되었다. ... 사마천은 이 시기의 실권자가 여후였다는 점을 중시해 천자의 존재를 무시하고 ‘여후본기’를 놓은 것이다." 사마천이 여후를 마냥 깎아내리려고 했다고 보기 어려운 까닭입니다.

-221쪽

중국에서 가부장적 국가의 제도적 확립은 주나라의 종법 제도에서 완성된다. 그렇다면 그 이전, 즉 한자의 형성기인 주나라 이전 은나라 때 여성은 가족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였을까? 우선 여(女)란 글자의 형태를 보자. ‘여’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여성이 무릎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고대에는 여자건 남자건 앉을 때 꿇어앉는 것이 기본적 자세였다. 전국시대 조나라 무령왕이 기마 전술을 위해 호복을 채택하기 전까지 바지는 중원의 중국인들에게 낯선 것이었다. 또 한나라 이전에는 의자가 없었고 자리(席, 깔개)를 깔고 그 위에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남자건 여자건 무릎 꿇고 앉는 자세가 예의 바른 기본 자세였다.
-233쪽

그렇다면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은 과연 가치중립적인 일상적 자세였을까? 공경, 경외, 조심스러움을 나타내는 ‘경(敬)과 따름, 복종, 몸에 붙이고 떼지 않음의 뜻을 지닌 복(服)의 갑골문 자형은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데, 모두 가운데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의 요소를 갖고 있다. 무릎 꿇는 동작은 제례에 참여한 사람이 취하는 공손한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갑골문의 여(女) 중에는 윗부분에 가로선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머리 장식을 가리킨다. 이것은 높은 신분의 사람임을 나타낸다. 짧은 머리나 더부룩한 머리는 지위 없는 천인을 나타내는 데 비해 단정하게 정리하여 관(冠)으로 장식한 머리는 높은 신분의 상징이다. 또 결혼한 여성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여 제사에 참여할 수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234쪽

갑골문에서 부(婦)는 녀(女)가 생략된 추(帚)의 형태로도 많이 쓰였다. 추는 빗자루이다. 후대의 용법으로서 아내를 낮춰 이르는 말로 ‘기추지첩(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드는 비천한 첩)이라고 했다. 출토된 갑골문 자료를 보면 이 ’부‘라는 글자는 지배층 여성의 호칭 앞에 붙는 접두사로 흔히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은나라가 제사중심사회였음을 상기해본다면, 추는 청소용 빗자루라기보다는 제례 의식에 앞서 물을 뿌려 제사 장소를 정화하는 용구였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부‘는 제사에 참여하여 집안을 유지하고 나아가 국가 경영에도 참여하는 왕실과 혼인한 유력 씨족 집단의 여성 대표자를 가리키는 글자로 볼 수 있겠다.

-235쪽

최근에는 가부장제 하의 여성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억압적이고 굴종적으로 살지 않았으며 나름대로 자유를 누렸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성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자가 생긴 이래 며느리이자 아내인 부(婦), 아니 여성 전체인 여(女)는 언제나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여성의 낮은 지위의 역사적 연원은 깊고 강고하다. 여성이 무릎을 펴고 자신의 두 발로 일어서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역사를 되돌아본다는 것이 항상 유쾌한 일일 수는 없다. 때로 우리는 철저한 단절을 위해, 그 깊은 뿌리를 확인하기 위해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237쪽

왕,후,장,상은 각각 왕, 제후, 장군, 재상을 의미한다. 동아시아에 이 말이 있다면, 서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길쌈할 때 누가 귀족이었겠는가?(When Adam delved and Eve span, who was then the gentleman?)" 와트 타일러 봉기(1381) 때 영국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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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7-20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내주신 책 어제 받았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잘 읽을께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마노아 2011-07-20 09:40   좋아요 0 | URL
책이 좀 무겁지요? 재밌게 읽으셔요^^

2011-07-20 09: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20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 1391 호/2011-07-18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 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레인부츠. 비에 젖지 않게 도와주는 역할은 물론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

레인부츠는 고무나 합성수지로 만들어지고 무릎길이까지 올라오는 디자인이 많아 다른 여름 신발보다 훨씬 무겁다. 신발이 무거우면 신발을 질질 끌거나 뒤뚱거리는 등 걸음걸이에 영향을 미친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레인부츠는 걸을 때 무릎이 자연스럽게 구부러지는 것을 방해하고 딱딱한 밑창은 3박자 보행을 힘들게 한다. 이렇듯 보행에 방해를 받으면 발목과 무릎관절, 인대에 무리한 힘을 주게 된다. 이런 상태로 계속 걸을 경우 무릎에 통증과 염증이 생길 수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관절, 척추가 약해 심할 경우 골반과 척추 질환까지 생길 수 있다.

레인부츠로 인한 발의 피로를 줄이려면 무게와 사이즈를 고려해야 한다. 들었을 때 무겁지 않아야 하고 종아리 부분이 꽉 조이는 디자인은 피한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것보다는 종아리나 발목까지 오는 것이 가볍고 보행도 편하다. 신발 사이즈는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한 것을 고르고 굽은 되도록 없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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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7-19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무릎 가까이 오는 내 레인부츠는 무겁다. 따라서 걸을 때 불편하다. 지난 주에 딱 3일 신었는데 이제 비가 안 올 모양새라 조금 섭하기도 함. 근데 비가 더 오는 것도 두렵지만, 이런 불볕 더위도 막막하다.

메르헨 2011-07-19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인부츠...제꺼, 엄마꺼, 동생꺼 3개 주문했다가 2개 취소했어요.
배송이 20일 가까이 안되더라구요. 폭주한거죠.^^;;
일기예보 보니 계속 햇님이네요.
레인부츠 배송받고 하루 신었는데 우짜쓰까요....

마노아 2011-07-19 10:50   좋아요 0 | URL
작년부터 무척 신고 싶었는데 올해도 구매가 늦었어요. 내년엔 제대로 본전을 찾을 것 같아요.
메르헨님도 내년부터 본전을 찾으세요. 올해는, 좀 힘들 것 같습니다.^^

sslmo 2011-07-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넘 무거운 신발 신어 피로골절이 온 사람들 여럿 봤어요.
물론 그들의 신발은 등산화였지만여~^^
등산화보다 레인부츠가 더 무겁던걸요~!

신발굽은 없는 것이 좋지만, 뮬 같은 플렛슈즈는 땅의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느끼게 되어 더 안 좋지요.
적당한 신발굽이 좋은 것 같아요~

마노아 2011-07-19 11:02   좋아요 0 | URL
제 부츠를 신어보고서야 크록스가 좋은 이유를 알았어요. 크록스는 부츠조차도 가볍거든요.
전에 어디서 읽었는데 3cm 정도 굽이 가장 좋다고 하던데 제 굽이 다행히 3cm입니다.ㅎㅎㅎ
비오는 날 높은 굽도 부담스럽고, 너무 바닥에 붙은 신발도 발바닥 아파요...;;;;
어제는 7cm 샌들 신고 뛰어야 했는데 발바닥에 물집 잡혔어요. 아직도 아파요...ㅜ.ㅜ

진주 2011-07-1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주에 서울 갔더니 젊은 여자들이 죄다
장화를 신고 있어서 놀랐어요. 비도 전혀 안 오는데 말예요.ㅋㅋ
역시 그 동네는 유행에 민감한가 봐요.
아무리 유행일지라도 옷과 좀 어울려야 이쁜 데
옷은 샬랄라 원피스인데 신은 목장에서 소똥 치우는 장화라니 ㅋㅋㅋㅋㅋ

이거 페이퍼로 쓰려고 했는데 여기서 그만..ㅋㅋ

마노아 2011-07-19 22:44   좋아요 0 | URL
집에서 나올 때는 비가 왔는데 오후에 그친 게 아닐까요? 지난 주는 하루도 쉬지 않고 비가 왔거든요.
저도 비와서 신고 나갔다가 오후에 그친 적이 있었어요. ㅎㅎㅎ
장화는 재작년부터 우리나라 장마가 심상치 않다고 여겨 사는 게 낫겠다 생각했는데 올해 질렀어요.
근데 올해는 너무 유행을 해서 다 신고 다니더라구요. 살짝 화가 났어요.ㅋㅋㅋ

꿈꾸는섬 2011-07-20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올때 레인부츠 ㅎㅎ 아니 장화 사서 신었어요. 인터넷 뒤져서 저렴한 걸 샀는데 남편이 촌스럽다고 어찌나 구박을 했는지 몰라요. 그래도 꿋꿋하게 신고 다녔는데 제건 많이 무겁진 않더라구요.

마노아 2011-07-20 02:20   좋아요 0 | URL
혹시 재질이 비닐인가요? 제 것은 고무인데 무거워요. 근데 비닐은 다리에 달라붙을 것 같더라구요. 디자인과 무게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제품을 찾기가 어려워요. 가벼운 크록스는 디자인이 투박하고, 게다가 비싸요..ㅡ.ㅡ;;;;

비로그인 2011-07-2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궁금한 점 하나.
왜 `장화'라고 하지 않고 레인부츠 라고 하는 것일까 늘 궁금했어요.

마노아 2011-07-20 21:0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굳이 레인부츠라고 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장화라고 하면 촌스럽다고 여기는 걸까요? ;;;;

카스피 2011-07-20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보다 땀이 차서 무좀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되던데요^^

마노아 2011-07-20 21:08   좋아요 0 | URL
양말 신고 신으면 괜찮은 것 같아요. 하지만 맨발로는 상당히 위험합니다.ㅎㅎㅎ
 
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절판


안웅철 작가가 사진을 찍고 김훈이 글을 썼다.
껍데기를 벗기면 책 속 표지와 좌우가 반전된 것을 알 수 있다.
저리 붙여 놓으니 꼭 그 노래가 떠오른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표지 뒷면으로 가서 떡하니 마주칠 것 같은 표지 속 인물들이다.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6년에 김훈은 크레타 섬을 여행 중이었다고 한다.
사진 속 돌 무더기 앞의 김훈 작가가 엄청 부럽다. 그 어디서나 그의 포스는 남다른 빛을 발휘한다.

책의 앞머리와 뒷머리를 장식한 문장이다.
저렇게 보니 축구가 인생 그 자체다.

아이는 인간과 세상 전체를 끌어안고 있다. 아이의 머리도 둥글도 눈도 둥글고 공도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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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힘으로 차올린 공이 풍경 위에 떠 있다.
허공 속에서 공은 많은 천체들과 함께 운행하는 인간의 별처럼 보인다.
높이 뜬 공이 풍경 전체를 사람의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공을 향해 벌린 인간의 두 팔은
비바람 속에서 자족한 나무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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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해맑은 눈망울이 정말 둥글다. 보는 것만으로 평화로운 풍경이다.
두 팔 버린 인간의 모습도, 그늘진 사진 속에서 경이롭기만 하다.
인간이 있기에 완성되어 보이는 사진들이다.

아이들은 주변의 모든 공간을 놀이터로 바꾸는 능력이 있다.
노는 아이들을 들여다보면 놀이야말로 인간의 본능임을 알 수 있다.
놀이는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기도 하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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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얼굴에 천진한 웃음이 가득하다. 오로지 공밖에 보이지 않는, 놀이에 집중한 모습이 보기 좋다. 저렇게 뛰어놀아야 하는 아이들인데, 저런 모습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발바닥의 굳은살이나 닳아진 구두의 뒤축에는 체중이 시간을 통과해나간 무늬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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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살이 익을 것 같이 뜨거운 날에는 안면 몰수하고 저렇게 물 속에 뛰어들어가 놀고 싶다. 그 안에 공까지 있으면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 않고 실컷 놀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돌아오는 길이 난처하겠지만...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이 느껴져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래 사진의 오른쪽 구석의 두 아이가 엄청 예쁘다. 두 팔을 뒤로 젖히고 힘껏 발을 차보지만 공을 빗나간 듯 보인다. 그 앞의 쬐만한 여자아이도 공을 향해 제 몸을 움직이고 있다. 조준은 잘하지 못해도 그 자체로 충분히 신나고 근사해 보이는 아이들이다. 짧은 팔다리이기 때문에 더 예쁜 모습도 분명히 있다.

이 풍경 속에서 공을 차는 인간들은 타워크레인에 짓물려 있지 않다. 크레인 아래서, 사람들은 강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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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차기는 속박과 비상 사이의 떨림이다.
그래서 공을 차는 인간은 때때로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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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는 크레인의 철골 구조를 보면 가슴이 묵직해진다. 입가에 맴도는 말들을 다 뱉을 수가 없다.

아래 사진은 아마도 족구? 족구할 때 쓰는 공은 무얼까? 축구공은 아닐 것 같은데 배구공? 아니면 족구용 공이 따로 있나?
군인들은 족구나 축구 하는 시간이 각별한 여가일 것 같은데, 그것도 취미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잠시 안쓰러웠다.

공을 찬 아이의 동작이 문득 멈추어 있고, 공은 갈 곳이 없는데
공을 찬 아이의 그림자와 돌아서서 가는 아이의 그림자가
같은 시간의 햇살에 길게 빗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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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어쩐지 사연이 있어 보였다. 같이 놀았을 아이 중 하나가 돌아서 가고 있다. 뒤에 공차던 아이가 놀렸던 것일까? 그래서 토라져 돌아가는 것일까? 그림자는 같은 방향이지만 아이의 마음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것 같아서 어쩐지 몹시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분명히 다음 날은 다시 공을 차며 씩씩하게 놀았을 것만 같다.
공의 힘을 빌려, 놀이의 힘을 빌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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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1-07-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이 책 참 좋게 보았던 기억이 나요.^^
다시 들춰봐야겠어요.

마노아 2011-07-18 22:58   좋아요 0 | URL
김훈 작가의 육성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사진도 좋고 글도 좋구요.
괜찮은 사진집을 보고 나니 기분이 참 좋아요.^^

sslmo 2011-07-1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읽으면서...김훈은 소설보다 이런 글들이 더 좋다고 느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사진...님의 해석도 좀 좋아요.

외롭고 쓸쓸하시다지만, 덕분에 전 한껏 훈훈해지는걸요~^^

마노아 2011-07-19 11:10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그러네요. 김훈은 순수 창작 소설보다 어딘가 기대어서 얘기할 때 더 빛나던 작가였어요.
그러니까 모델이 있는 소설(이를테면 칼의 노래처럼...) 말이죠.
누군가는 그게 서사가 약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럴지도 몰라요.^^;;
아무튼, 이렇게 짧고 굵게 마주치는 그의 글들이 참 좋습니다.^^

꿈꾸는섬 2011-07-20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책 너무 좋은데요. 전 몰랐던 책이에요. 찾아보고 싶어요. 근데 품절이네요. 도서관에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마노아 2011-07-20 02:19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이 품절되면 너무 안타까워요. 도서관에는 이 책이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