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굴레 - 뉴 루비코믹스 913
타마키 렌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이번에도 사막을 배경으로 한 아랍물이다. 사막의 정수시설 사업 허가서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날아온 마리. 그는 상사와 연애 관계에 있었는데 부장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이번 임무를 꼭 완수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우드 전하는 난공불락의 성같은 인물이었다. 사업권을 따내기는커녕 사우드 전하의 하렘에서 첩이 되어버린 마리. 하하핫, 잠시 웃자. 마리가 여자였어도 웃기는 진행이지만, 성별만 남자일뿐 아주 가느다란 선을 가지고 연약한 심성을 가진 마리라는 캐릭터는 참 한숨 나온다. 게다가 알고 보니 사랑을 속삭이던 부장님은 마리를 이용해서 사업권을 따내려던 계획이었다. 아랍의 사우드 왕자가 남성 취향이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철저히 이용 당하고 농락 당한 마리. 그렇다면 다음 진행은 뭘까? 이용 당하고 버림 받고 여러모로 눈물 바람인 마리는 그제서야 자기가 정말 사랑한 건 사우드 전하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자신을 그가 붙잡아주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 소심한 사내는 입밖에 내지 못하고 속만 끙끙 앓는다. 어휴, 요새는 막장 드라마도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만들진 않는데 이 책은 참... 민망한 진행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중에 가계도가 나오는데 사우드 전하의 형제 사촌 모두 동성애자들! 이슬람교의 나라에선 있을 수 없는 설정인데 모두들 어찌나 대놓고 들이대시는지... 아라비안 나이트 배경도 아니고 현대물에서 이런 설정은 너무 무리수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한승희 작가의 천일야화는 이야기의 개연성과 드라마적 강점을 포기하지 않고도 BL물의 강점을 잘 살려냈다. 물론 '천일야화'라는 기본 이야기 토대를 갖고 갔으니 가능한 거지만 그래도 무시 못할 내공이다. 이야기는 전진석 작가님이 썼으니 전작가님을 더 찬양해야 하려나. 그나저나 막 떠오른 건데, 내가 갖고 있던 천일야화 11권을 친구에게 빌려줬는데 이 친구가 못 찾고 있다. 만화책만 몇 상자를 빌려줬다가 몇 년만에 돌려받았는데 거기에 천일야화를 비롯해서 몇 십권이 빠져 있었다. 심지어 아르미안의 네 딸들까지...ㅠ.ㅠ 엉엉, 내 책 다 어떻게 찾아... 몹쓸 친구 같으니...;;;;


어제 오늘 이어 BL 만화 세 권을 내리 읽었는데 처음부터 별점이 5,4.3으로 계속 줄어든다. 반대로 읽었으면 몇 권 더 찾아 읽었을 법도 한데 이 책으로 관심이 사그라들었다. 당분간은 좀 멀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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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신부 - 뉴 루비코믹스 1040
히하라 마리코 글, 아마네 유키 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사막의 신부'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은 딱 할리퀸 문고다. 미남 재벌에 강인한 근력까지 가진 남자 주인공에 신데렐라 콤플렉스 가진 여주인공이 만나서 연애하는 이야기. 이 책은 거기서 여주인공을 남주인공으로 살짝 바꿨을 뿐이다. 남자 주인공은 모두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다. 족장이거나 어느 나라의 황태자 정도쯤 된다. '석유왕'이라는 별명은 그들의 재력을 보여준다. 아랍 인물답게 구리빛 건강한 피부를 자랑하고 다들 '마초'스럽다. 또 다른 남자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예쁘장하게 생겼다. 말 조련사는 거의 소년처럼 보였고, 엘리트 의사는 샌님 스타일이지만 똑똑하게 가는 선을 가졌고, 호리호리 날씬한 체형의 표제적 사막의 신부 주인공은 무려 정보기관 특수요원이다. 여자처럼 가녀리게 생겼지만 특수요원답게 무술의 달인이다. 그런 인물들도 사막의 마초남 앞에서는 모두 한떨기 꽃처럼 변해버린다. 하하핫, 쓰면서도 좀 웃기다. 그러니까 이런 작품들은 그런 모든 막장드라마스러운 뻔한 설정들을 알고서도 봐주고, 알면서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그런 작품 되겠다. '사막'이라는 설정은 워낙 극한의 공간이기도 하며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고, 모르는 만큼 동경하게 되고, 거친 만큼 아름다운 공간이기도 하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서 사랑이 언제나 아름답고 근사한 것처럼.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은 재벌이거나, 재벌에 준하는 재력가이고, 직업들도 모두 잘 나가는 군에 속한다. 사막의 남주인공이 사막의 황태자가 아니라 사막의 건설 노동자인 법은 없다. 그런 건 현실적인 이야기이지 욕망과 환상을 자극하는 조건이 되지 못하므로. 비현실적이라고 욕할 필요도 없다. 막장드라마가 왜 시청률이 좋은데. 욕하면서도 즐기는 것 아닌가. 나도 그렇다. 코웃음 나게 만들지만 그런 재미로 본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림은 꽤 매력적이라는 것.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따로 있던데 그림 작가 쪽에 좀 더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래도 어제 읽은 '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챙겨보고 싶어졌는데 이 책은 그 정도는 아니다. 소모적인 독서였지만, 그 자체로 충분하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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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즈 워즈 1 - MM 코믹스 인 디즈 워즈 1
Guilt|Pleasure 지음, 이혜리 옮김 / MM코믹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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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 보는 작가인데 무척 유명한가 보다. 출간 소식에 팬들이 환호를 했다. 호기심에 나도 구입해 읽었다. BL물을 딱히 싫어하지도 않지만 딱히 좋아하지도 않는 편이다. 이 작품은 그림도 영화를 보는 듯한 힘이 있고 내용도 무척 감각적이고 자극적이다. 1편이 끝나는 순간 2편이 몹시 궁금해질 만큼. 애석하게도 2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표지가 두개다. 해골에 입맞추는 본 표지가 있고, 껍데기를 하나 더 벗기면 책 속 또 하나의 주인공인 연쇄살인마가 체스판의 말을 들고 독자를 노려보고 있다. 작품을 보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니 섬뜩해질 지경이다. 


주인공  아사노 카츠야는 정신과 의사다. 그는 희대의 살인마를 잡기 위해 덫을 놓았다. 그가 저지른 범죄임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작품'인 양 언론 플레이를 해서 놈을 자극시킨 것이다. 경찰에 잡힌 연쇄살인범은 카츠야 앞에서만 말을 하겠다고 의사를 지목해 놓았다. 그런데 이 일을 맡고 나서 카츠야는 악몽에 시달린다. 꿈 속에서 그는 연쇄 살인범에게 사로 잡혀 학대를 박도 강간까지 당한다.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나면 범인과 대질해서 사건의 진전을 보여야 하는 임무가 이어진다. 그는 점점 초조해지고 무서워지지만 상대방은 여전히 포커 페이스다. 


그리고 마침내 사건이 일어났다. 터널 붕괴 사건으로 가까이 있는 경찰들이 모두 동원되는 바람에 수용소와 아파트를 출퇴근 시켜주는 운전수 역할을 하던 경찰이 오지 못한 것이다. 덕분에 수용소에서 하룻밤 자야 했고, 자신을 지켜주던 우락부락한 체격의 경찰마저도 살해되어 카츠야는 연쇄살인범에게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마치 그가 연속으로 꾸어 온 꿈처럼.


그러니 당연히 2권의 내용은 꿈속에서처럼 포로가 되어 학대받고 강제로 범해지는 순서가 될 것 같은데, 혹시 모르지. 그런 예측을 뒤엎고 색다른 반전이 일어날지도. 


내용이 무척 자극적이고 수위도 꽤 높다. 흡사 이건 포르노를 보는 듯한 느낌? 그렇지만 그 불편함만 걷어내고 본다면 문학적으로 가치 있어 보인다.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작가의 내공이 무척 뛰어난 듯. 2권을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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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 1 - 뉴 루비코믹스 1355
요네다 코우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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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귀는 새는 날지 않는다. 어쩐지 문학적인 제목이다. BL물이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아주 수준 낮은 이상한 책들도 쏟아지고 있지만, 반면에 BL이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도 나름의 예술성을 갖춘 책들도 종종 보인다. 얼마 전에 읽은 '인 디즈 워즈'도 무성히 쏟아지는 칭찬과 갈채만큼 이름값을 하는 작품이었다. 이 책도 그래 보인다. 아직 1권밖에 출간되지 않아서 긴 호흡의 이야기까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하고 대략의 분위기와 배경을 설명하는 선에서도 만족스럽다. 글밥이 제법 많은 편인데 귀찮지 않을 정도는 된다. 그림은, 좀 취향이 나뉠 수도 있겠다. 순정만화라면 남자지만 아주 예쁜 주인공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은 굳이 그런 식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남자로부터 '아름답다'는 표현을 듣는 주인공 야시로의 인물은 여성스러운 게 아니라 중성적으로 보인다. 그런 인물이지만 조직의 간부급 인사다. 게다가 성적 취향은 'M"이라고 하니 평범한 캐릭터는 결코 아니라 하겠다. 단순히 남성과 남성을 성적 판타지로 취급하는 그런 자극적인 책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각각의 사연들이 하나의 드라마를 이룬다. 야시로의 경호원이 된 도메키 치카라는 무척 무뚝뚝한 인물이다. 경찰이었던 그가 징역을 살고 나와서는 돈을 벌기 위해 조직폭력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남성을 좋아하는 성향도 아니면서 야시로에게 끌렸던 것이다. 첫눈에 끌린 것이지만, 바로 그런 그에게 한눈에 반한 야시로가 치카라에게 보여준 성의와 온정은 꽤 따스했다. 외모가 아니라 인간적인 면모가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만 역시 BL물답게 적절히 자극적인 면면도 보여준다. 19금 딱지 붙는 게 당연하다. 2편이 나온다면, 아마도 궁금해서 또 읽게 될 것 같다. 그게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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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아 : 돈과 마음의 전쟁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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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꼽사리다를 한참 들을 때 우석훈의 소설 출간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까 지난 대선 전이었나보다. 영화로도 제작이 될 것이고 어쩌고 저쩌고... 우석훈은 몹시 흥분되어 있었고 들떠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분은 소설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우린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민주 정부 10년을 지냈지만, 그 10년 동안에도 참 허덕이며 살았다. 물론, 이때의 '우리'는 지금도 재산 숨기느라 분주한 그런 사람들을 말함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해도 경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걸 경험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지난 대선에선 '경제 민주화'가 화두였다. 본심이야 어떨지 몰라도 박근혜 후보 역시 표면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쳤다. 뭐, 믿지는 않았지만.


바로 그 경제 민주화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세글자를 꼽을 수 있다. 모.피.아. 이 책은 바로 그 모피아와 모피아의 권력을 찾아와 시민의 품으로 안겨주려고 하는 세력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이른바 쩐의 전쟁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돈의 단위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오히려 실감이 덜 난다. 모피아의 대부 이현도는 시민의 손으로 뽑힌 대통령을 흔든다. 첫번째 공격은 22조였다. 하핫, 이거 4대강 사업에 들어간 돈 아닌가. 1조라는 돈은 만 명의 사람에게 각각 1억원 씩 나눠줄 수 있는 돈이다. 거기에 곱하기 22. 1억도 어마한데 1조를 넘는 단위가 계속 나온다. 대통령은 이 돈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경제권을 넘겨주고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한다. 그 과정에서 모피아들은 야금야금 경제 부처를 장악하고 국무총리 자리를 차지하며 자기들의 기득권을 확장한다. 이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국민들은 힘없고 무능한 대통령을 타박한다. 힘껏 밀어서 겨우 정권교체를 이루어 냈는데, 그후로도 나아지는 삶이 없으니 얼마나 힘이 빠지겠는가. 


지난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이루지 못했지만, 이루었다 해도 위와 같은 시나리오가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까 하나마나한 정권 교체가 의미 없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껏 이렇게 배불려 온 모피아라는 실체가 두렵다. 눈에 보여서 대놓고 욕할 수 있는 재벌 그 이상이 아닌가 싶다. 


이현도는 공격에 앞서 오지환이라는 한국은행 팀장을 청와대에 심었다. 오지환은 성실한 인물이었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이현도는 젊은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며 대통령이 최소한의 방어는 할 수 있게 똑똑한 인물 하나를 내준 것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오지환을 더더욱 신임하기 어려웠다. 적이 보낸 이 실력자가 진정 내 사람인지, 아니면 스파이인지 어찌 판단할 수 있을까. 물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가 보여준 진심들이 결국은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은 지나치게 낭만적이다. 설득력은 부족한. 


작품에는 대단하다 싶은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팬타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기녀 김수진, 돈세탁 전공 경제녀 허세연, 마지막으로 법률녀 남진경까지. 킬러들이 등장하고, 그 킬러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영화적 캐릭터들이다. 뭐랄까. 영화로 만들면 정말 그림은 잘 나오겠다 싶지만, 그 영화 역시 개연성이나 설득력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본업이 소설가인 작가가 아니다 보니 대사들도 좀 어색하다. 또 특유의 어려운 말 많이 쓰는 습관이 나와서 경제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대목들이 많았다.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불친절하다. 


대통령은 권력을 상실하고 반쪽 권력자가 되었지만 절치부심했다. 다시 올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 오지환을 비롯한 세력들이 방어진을 구축했고, 22조의 기금을 마련했다. 다시 환 공격이 시작되었을 때 막어내야 할 밑천이었다. 또 대통령은 북한과 접촉해서 은근하게 통일을 준비했다. 그 대목에서 김정은과 리설주까지 나온다. 언론을 통해 접하던 이미지보다는 훨씬 살아있는 냄새가 나는 캐릭터로 말이다. 대한민국이 통일을 준비하니 미국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다. 강정에 해군기지를 세우겠다고 하니 이번엔 중국이 버럭 성을 낸다. 이렇듯 이 책에는 새누리당과 민주당,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등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들도 쏙쏙 끼어 있다. 심지어 마지막에 무한대 금액의 공격이 들어올 때는 방어하기 위한 작전 명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나온 구호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 문구 말이다. 


3부에 등장한 머니 전쟁은 그야말로 치열했다. 모피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대통령, 통일로 다가서려는 대통령에게 하야를 하지 않으면 무한대의 돈으로 공격하겠다고 이현도는 선포했다. 오지환을 비롯한 청와대 쪽 인물들은 밤을 지새우며 막아냈지만 준비한 돈을 다 털어냈을 때 환율은 2,200원이었다. 여기서 200원만 더 올라가면 대한민국이 파산이었다. 상대는 우체국 연기금마저 끌어다 썼다. 국민의 세금으로 국민을 치는 공격이 나온 것이다. 정말 야비하고 더럽기가 한량 없다. 누구누구 닮았다고 말하고 싶어지는구나!


밤새 50조원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오지환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자신들이 지금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대통령이 어떤 입장에 있는지, 그리하여 대한민국이 얼마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설명하고 국민들에게 하루만 돈을 빌려달라고 호소했다. 공적자금과 연기금이 자국의 화폐를 공격하는 이 이상한 나라의 역사를 바꾸자고, 국민의 마음이 담긴 돈이 투기자금을 이겨내는 걸 보여주자고 전 세계를 상대로 호소했다. 시민과 연대의 정신이 투기의 시대를 극복하고 신냉전으로 가는 걸 이겨내자고 읍소했다. 잘 쓰면 유용한 이 돈이 더 이상 무기가 되어 돌아오지 않게, 평화의 돈으로 만들자고 절규를 담아 부탁했다. 동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으로 확대되었고, 대통령은 국회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두른 띠의 앞에는 '원화를 지키자'라고 써 있고, 뒤쪽에는 '경제 민주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의 행렬에 시민들이 동참했고, 방송국들은 앞다투어 그 장면을 보도했다. IMF 때 돌반지 꺼내가며 나라의 위기에 십시일반으로 도움이 되었던 그 국민들이 또 다시 대통령을 돕기 시작했다. 꼬깃꼬깃 구겨진 만원자리 몇장에 주름진 손에 오래도록 걸쳐 있었던 금반지를 대통령의 주머니에 넣어줬다. 시민들은 은행으로 달려가 돈을 이체하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전 세계를 향해 확대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어도, 이 무시무시한 돈의 전쟁에서 검은 돈이 설치지 못하도록 힘을 보내려고 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 것이다. 재밌었던 것은 중국 반응이었다. 무려 1조원 이나 되는 돈을 빌려준 인민 은행은 일본쪽 엔화는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메시지를 같이 보냈다. 하하핫, 나름 깨알 같은 재미랄까. 


세계적 연대는 원산 부두 노동자 파업을 떠올리게 했다. 일제 강점기 원산에서 있었던 총파업. 그때 세계 노동자들이 연대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 중에는 식민본국 일본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국경을 넘는 뜨거운 연대였으며 참여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모습이 겹쳐졌다. 어찌 보면 무척 감상적인 접근이고 또 어찌 보면 작위적일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이 신파스런 장면들은 뜨거웠다. 마음이 돈을 이겼던 것이다. 잔돈이 목돈을 이겼고, 푼돈이 큰돈을 이겼다. 시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지켜냈다. 하야 선언을 할 뻔한 국회 앞에서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했다. 머니 전쟁에서 시민들과 국제 연대의 힘으로 이겨냈고, 빌린 돈을 갚고도 무려 30조원이나 남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외환은행을 '원화은행'으로, 국민의 돈을 지키는 공공의 은행으로 전환하자고 말했다. 또 이번에 희생양이 된 산업은행은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시민은행으로 전환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민을 위한 경제, 시민경제를 받치는 은행을 만들자고. 모두모두 반가운 소리였다. 이게 소설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작품에는 나름 로맨스도 나온다. 오지환과 무기녀 김수진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자연스럽지 않다. 단지 사십 대의 사랑이라는 표현으로 어떤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아무튼 두 사람은 사랑을 했고 가정도 이뤘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북한에서 출생했다. 그 옛날 '신라방'이 있었던 것처럼 평양에는 '한국방'이라는 것이 생겼다. 당장 개성공단만 보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참으로 소원한 일이지만, 정말 언젠가는 한국방이라는 것이 평양에 생기고, 조선방이라는 것이 서울에도 생기며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협력할 때가 오기를 소망한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나 보는 것 말고, 현실 속에서 실체적으로 이루어지기를... 퇴직 공무원들의 로펌 취직을 10년 간 금한다는 법률안 제안이 책 속에 있었는데, 현실에서도 이런 것 이뤄졌으면 좋겠다. 모피아라는 곰팡이가 대한민국을 장악하며 악취를 풍기지 못하도록 말이다. 


이야기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고, 이어지는 흐름은 다소 부자연스럽다. 엔딩씬은 문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끼게 했다. 그래도 이야기 속에서 만나고 싶은 우리나라가 있었다. 만들고 싶은 우리 사회도 있었다. 그걸 보여준 것은 또 하나의 공이지 싶다. 돈과 마음의 전쟁! 과연 대적이 가능할까 싶은 그 대상과 당당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소설처럼, 영화처럼. 


덧글) 오타가 좀 있다.

78

유독 내려하지 않거나 >>> 내려가지 않거나

104

시민의 정부에서 청와대는 뱅커들이나 기업들이 움직임을 잘 관찰하고 있었지만 >>> 기업들의

109

김수진의 팔이 오지환이 어깨를 감쌌다. >>> 오지환의

121

노 대통령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어깨가 흔들리던 이현도의 눈에서 살짝 눈물이 흘렀다. >>> IMF 때 이야기니까 김 대통령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125

오지환이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공개적으로 움직이는 돈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면 허세연은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야말로 검의 돈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다. >>> 검은 돈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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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3-07-2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돈을 빌려달라, 검은 돈이 더 이상 설치지 못하게 하자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에서 뿜었습니다. 내용은 비장한데 드래곤볼의 원기옥하고 똑같은 설정이라. 우석훈이 드래곤볼을 재미있게 봤나봐요.

마노아 2013-07-27 23:43   좋아요 0 | URL
저는 7번 방의 선물을 떠올렸어요. 말도 안 되는 신파에 억지 설정인데도 눈물샘을 자극하잖아요. 천만 명이 볼만큼의 영화가 아니건만 거뜬히 천만이 보고서 꽤 호평도 받았던... 꼭 그런 느낌이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7-28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거 소설이었습니까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마노아 2013-07-28 10:43   좋아요 0 | URL
네! 무려 소설이었습니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