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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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 내게 가족은, 가족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줄곧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보낸 며칠이었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서로가 더 보이고 서로를 애틋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란 깨달음으 종착지가 괴로운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해피 패밀리. 언젠가 행복하기도 했던, 그러면서 불안했던, 그리고 어느 사건으로 굉장히 불행해 하던, 그리고 다시 그 불행을 봉합하고 행복을 찾으려 애를 쓰는 그런 가족의 이야기.


모두 열명의 화자가 나온다. 첫 시작은 이 가족의 장남 한민형이 열었다. 촉망받는 인재였던 그는 누이의 죽음 이후 더 끝없는 허무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밤새워 술을 마시는 정도가 아니라 24시간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질 만큼 술독에 빠져 지내는 그는 아버지가 사장으로 있는 출판사의 편집장이다. 언어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특징은 캐릭터에 그대로 녹아들어갔다. 작품 속에서 민형이 보던 책으로 등장하는 번역 소설 '행복한 가족'에도 언어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한민형의 후배 이대리와 민형의 여동생 영미와의 대화에도 언어학자 이야기가 나온다. 등장인물들의 학력 인플레가 심했고,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런 대화를 나눈단 말인가! 싶을 정도의 현학적인 내용들도 많았다. 국어사전을 찾아봐야만 알아먹을 수 있는 어려운 단어들도 여럿 나왔다. 작품의 분위기만큼이나 허무하고 어딘지 허세도 느껴지는 설정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단숨에 읽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열명이나 되는 화자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이들 가족에게 있었던 일들을 교묘히 피해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목차를 보는 순간 그 진실은 마지막 화자 한민희가 등장해야 풀리겠구나 싶어서 더더더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당연한 순서의 목차였지만 기대감을 갖게 하는 지혜로운 차례였다. 사실 초반부터 누이의 죽음에 민형이 깊이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암시를 주었기 때문에 한민희의 목소리가 등장했을 때에도 그리 놀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민희가 이렇다 할 이야기를 하지 않고 유서로 내용이 넘어가서 얼라?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 한 문장으로 독자는 머리를 얻어맞았다. 준비를 했는데도 제법 충격이 컸다. 그럴싸한 한방이었다!


물론, 한민희의 분량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아쉬움은 남는다. 이 각별히 섬세하고 특별히 아름다운, 그래서 더 잔인한 캐릭터를 이해하게 만드는 단서들이 부족하다. 그 자체로 보여주는 것만큼만 이해하고 알아먹으라는 듯한 불친절함! 그런데도 그게 또 어울리는 묘한 여운이 재밌다.


캐릭터들의 면면은 우리가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다분히 속물적이고 가식적이고, 또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인간 군상이었다. 그럼에도 특별한 게 있다면 몇몇 인물들은 그 속에서 아주 섬세한 신경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정신을 갉아먹는 강박증으로도 나오고 누군가에게는 밤을 지새우고도 계속 비워내게 되는 술잔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다다랐을 때, 누군가는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그렇기에 죄값을 치르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인물은 반성할 줄도 모르고, 원인을 알지 못하니 해답도 없고 대책도 없다. 


다시 제목을 읽어 본다. 해피 패밀리.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은 가족의 이야기였는데, 작가는 이 제목이 역설적이지만은 않다고 했다. 글쎄, 어떤 면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대개들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로 하나의 가정을 이루며 지지고 볶고 살고 있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을 꿈꾸며 살지만, 정말로 넘치도록 행복한 가족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냥 이해하고 서로 맞춰가며, 부족한 대로 그냥저냥 살아가는 것 아니던가. 작가의 표현처럼 하나의 '관성'처럼 살아가는 우리들. 누구보다 큰 위로를 줄 수 있는 게 가족이고, 누구보다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것도 가족. 가시같이 아프지만 뽑으면 더 큰 출혈을 감당해야 하는 가족. 


행복이라는 게 아주 커다란 무엇이기 보다, 불행하지 않으면 그 정도면 행복한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야말로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내 행복의 기준이 그렇게 높았던 것일까. 이 가시, 뽑아야 하는 걸까? 뽑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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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09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0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10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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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게 일이다보니, 저자들과 자주 어울리게 된다. 그러면서 글과 사람의 차이에 대해 자주 놀란다. 아니 처음에 자주 놀랐다. 이젠 그런 일을 하도 많이 겪어, 으레 그러려니 한다.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 글쓰기는 그 주체를 미화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심지어 자학적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학적 글의 저자는 그 자학으로서 자신을 미화한다. 자기혐오르 제 윤리성의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다. 글을 보고 반한 사람은 많지만, 만나본 뒤에도 여전히 매혹적인 사람은 좀처럼 없었다. 거의 예외 없이 실망하게 된다. -11쪽

민형 형에게는 세상에 대한 연민이 있다. 꼭 사람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꼭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숨탄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고양이에게도, 염소에게도, 비둘기에게도 연민을 느끼는 것 같다. 물어보진 않았으나, 그는 아마 어려서도 벌레 한 마리 죽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과 숨탄것들에 대한 그의 연민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그에게 자기 연민이 거의 없는 듯하다는 점이다. 때때로 그는 자신을 학대하는 것 같다. 그의 연민은 오로지 그의 몸 바깥으로만 향한다. 그 연민이 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마음의 연대는 몰라도 몸의 연대로까지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순수이성이나 판단력은 그의 실천이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니, 그의 실천이성은 그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격렬한 실천으로까지는 말이다. 그는 늘 자신을 우익이라 말한다. 그건 무슨 겸손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는 실제로 자신을 우익이라 여기는 것 같다.-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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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트리오 Super Trio 5 - 완결
황미나 지음 / 세주문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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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학교 시절에 아이큐 점프를 열심히 봤다. 많은 연재작들에 관심이 없었지만, 거기에 황미나 샘의 파라다이스가 연재됐기 때문이다.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슈퍼트리오도 그 즈음에 연재했을 것이다. 소년지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남자 청소년들의 판타지를 어느 정도 맞춘 작품으로 느꼈다. 다시 읽어본 작품도 역시 그랬다. 여러 멤버 중에 하나 있는 홍일점은 섹시하게 나온다. 가끔 과하지 않은 노출씬도 허락해 준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초등학생도 풋!하고 웃을 정도지만 20년 전에는 이런 뽀뽀 수준의 키스도 청소년들의 마음을 왈랑거리게 했을 것이다. 뭐, 나도 그랬더랬다. 시리즈 중 김준원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어느 왕국의 비요르 왕자가 사실은 여자였다는 설정이었는데,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물을 먹이기 위해서 마우스 대 마우스로 전달하는 장면은 어린 나를 마구 콩닥거리게 했다. 헤어지기 싫었지만 부러 모진 말로 보내버리고 홀로 눈물 짓던 첩보원 출신 008. 그가 마지막에 유럽의 어느 왕족이 자기를 양자로 안 삼아줄까? 라고 던지는 유머는 그래서 무척 가슴이 아팠다. 


황미나 샘은 캐릭터를 참 잘 설정해 두신다. 오늘날에는 뭐든 다 갖춘 진지한 슈퍼 히어로보다 토니 스타크처럼 자뻑 심하고 바람둥이에 돈은 많은, 그런 영웅들이 먹혀주는 시점이다. 그런데 20년 전에 고구마는 백작이면서 희대의 도둑이고, 뭐가 허당스럽고 몸개그 느낌이 충만하지만 또 한 여자를 향한 순애보를 가진 캐릭터였다. 008김준원도, 숀 코넬리도 모두 빼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하나씩 허당이어서 이들의 수퍼트리오 조합은 무적이면서 또 무지 불안하다. 웃길 때 웃겨주고, 진지할 때 진지해 주지만 기본 줄기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간다. 독자층이 어렸기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 읽다 보면 다소 유치하다 느낄 수 있지만, 그것마저도 즐겁게 소화가 된다. 추억도 반짝반짝 빛나고, 그 시절의 유행은 이런 느낌이었구나.... 새삼 떠올려 보았다. 


네이버에 보톡스를 연재하던 때에 수퍼트리오도 같이 연재했었다. 컬러로 다시 보는 게 참 좋았는데, 누군가 황샘이 두가지를 연재하는 것에 대해서 항의를 해서 도중에 연재가 중단 됐다. 새 작품도 아니고 기존 작품을 컬러로 채색해서 선보이는 건데 그것도 특혜라면 특혜였던 걸까. 여러모로 아쉬웠다. 그나저나 보톡스는 자체 단행본 제작을 하다가 인쇄 사고가 나서 엎어졌었는데 그후 다시 추진이 안 되고 있나 모르겠다. 단행본으로 꼭 다시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웹툰도 즐겁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꼭 종이책으로 해야 제맛이다. 아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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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08-06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트라는 순정만화 잡지가 생각나네요. 고등학교때 나왔던거 같은데 그거 그시절엔 꽤 후끈했었어요.
그나저나 이미라씨는 아직도 작품활동하는지 갑자기 궁금해 지네요.
인어공주를 위하여의 푸르메 참 좋아 했었는데...털보만화방에서 보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스멀스멀....

마노아 2013-08-06 09:00   좋아요 0 | URL
저 고등학교 때 창간했는데, 첫호 표지 그림을 신일숙이 그렸어요. 뭔가 굉장히 야시시한 분위기로 말이죠.
당시로서는 꽤 수위가 있는 책이었어요. 19금 제약이 없는 언니들을 위한 순정만화지였죠.^^
이미라 작가님은 그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네요. 연재가 중단된 작품도 많았는데 늘 아쉬워요. 지금은 뭐하고 계시는지...
 


날마다 더 놀라게 만드는 다이나믹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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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보면서 디스토피아를 떠올렸다. 유토피아가 누구에게만 낙원이듯, 디스토피아도 누구에게만 절망의 공간일까.

답이 없는 세상이라면 모두 닫고 지구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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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3-08-0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레이드 러너와 아키라가 빠졌군요.

마노아 2013-08-06 08:56   좋아요 0 | URL
앗! 블레이드 러너를 적어놨는데 추가를 안 시켰네요. 아키라도 넣었어요~

마립간 2013-08-06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 하야오의 몇 작품도 추천합니다.

마노아 2013-08-06 08:57   좋아요 0 | URL
댓글 보니까 빠진 게 많네요. 스탠리 큐브릭 것도 추가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