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철 천체 사진전. 전시 마감을 하루 앞두고 소식을 들어 마지막 날에 보러 갔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광화랑이라길래, 아무 의심 없이 세종문화 회관을 갔는데 여기가 아니란다. 그래서 뒷편인가 하고 돌아가 봤는데 거기도 없다. 그래서 그곳을 지키고 있는 전경에게 물었더니 반대편을 알려준다. 응? 그래? 그렇게 뱅글뱅글 돌다가 겨우 찾아간 곳은 광화문역 지하도였다. 헐, 맨처음 지나간 곳인데 오른편에 있는 걸 못 보고 스윽 지나간 것이었다. 하아, 굽도 높았는데...ㅠ.ㅠ

 

킬리만자로에 올라 별을 찍는 소원을 십년 동안 꿈꾸다가,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못 이루던 것을 회사 그만두고서야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비용은 퇴직금으로 충당~

 

북반구와 남반구의 별이 지나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 위도에 따라서 별이 수평으로 뜨는지 수직으로 뜨는지 또는 45도 각도로 뜨는지, 그 차이가 한눈에 보이는 사진들이었다.

 

와, 무려 킬리만자로다. 정말 침묵만이 bgm이 될 것 같아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도 빼버렸다. 온전히 별만 보고 싶어서...

 

전시장 안에 로이킴의 영원한 건 없지만-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권오철 작가의 사진 위에 이 노래를 입힌 것이다. 서로의 작품에 잘 어우러지는, 동반 상승 효과가 있는 만남이었다. 독도에서 백령도, 마라도에서 휴전선, 북극에서 남극, 이끝과 저끝을 잇는 공간들이, 그 공간을 가득 메운 별들을, 오로라가 환상적으로 펼쳐졌다. 로이킴의 목소리하고도 잘 어울려서, 연속으로 두번 돌아갈 동안 내내 앉아 있었다(발이 아프기도 했고..;;;).

 

이렇게 가득한 별을 보니 강경옥 작가의 별빛속에가 떠오른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도 함께...

 

 

 

 

 

 

 

 

지난 10월 19금 콘서트 때 '차카게 살자' 공연 소식을 알리자 환성을 지르면서 내 머릿속은 날짜 계산하기 바빴다.

아뿔싸, 연구수업 직전 토요일이네. 당시 엉겁결에 떠안다시피 맡은 지구별 연구수업을 나는 10월 8일에 하고 싶었다. 9일이 한글날이고 그 다음날이 재량휴일이어서 연속 4일을 쉬게 되어 있었다. 후다닥 해치워버리고 푹 쉬고 싶었다. 그러나 시험 끝난 직후 수요일인인 이 날은 7교시 수업이어서 연구수업 불가 통보를 받았고, 덕분에 일주일 가까이 밀려 14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11일에 공연이야...ㅡ.ㅜ

 

맘 편히 놀고 싶었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고, 그렇다고 공연을 포기할 마음은 네버 없었고, 그래서 미리미리 조금씩 수업 준비하고 공연 다녀왔다. 수변무대는 야외여서 실내와는 다른 감동이 있다. 또 본격 기부 공연이기 때문에 취지도 좋았고~

 

 백혈병 어린이 재단을 15년째 후원하고 있는 이 공연에서 기부금 전달을 위한 세 남자가 출연했다.

 

1번 강풀

2번 류승완

3번 김제동

 

공장장의 주문은 자신이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를 3분 동안 어필하라는 것이었다.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사람이 당첨!

 

1번 강풀은 원고를 써왔다. 본인이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형님들 결혼하고 싶은 마음 들고 싶게 깨소금 맛을 흘리고 다니는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형님을 클럽가지 못하게 츄리닝 입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는, 형님들을 건전한 유흥의 길로 인도하는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뭐 이런 식의 멘트~

 

2번 주자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착한 사람입니다. 원래 초대받았던 주진우 기자가 오지 못하게 되어 대타로 섭외되었지만 섭섭해하지 않는 나는, 정말 착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전통적으로 2번을 지지해온 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블라블라블라~~~ 결국 1번보다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3번 주자 김제동 등장

여러분, 1번과 2번 찍어서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3번을 지지해 주십십오~

하고 등장하는데 이미 게임 끝났다. 말빨로 먹고 사는 사람을 무슨 수로 이겨..ㅎㅎㅎ

 

정말 즐겁고 예쁜 공연이었다는 건 두말 하면 잔소리. 사진은 집에 가서 더 추가해야겠다. ㅎㅎㅎ



공연에 참여하는 관람객들을 위한 안내서~



저 남자의 뒷통수가 참으로 안타깝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생들과 함께 다녀온 북서울 시립 미술관이 있다. 지하1층은 유치원생들의 단체 관람이 있었는데 아기자기 예쁜 것들이 많았지만 중학생 취향은 아니었고, 1층과 2층은 재개발과 관련된 도시 건축 디자인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쪽은 또 중학생이 이해하기에는 무리. 학사일정에 따라 방문한 거라서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나한테는 좋은 관람, 애들에게는 다소 비추였다.

 

 

컨테이너 박스를 보는 순간 용산 참사가 생각나서 순간 섬뜩해졌다.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이 폐허의 섬들...

 

 

달동네의 정겨움과 순박함은 이제 기대하기 어려워졌지...

 

 

고향 바닷가를 달동네로 끌어올리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달과 가까운 달동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4-12-16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카게 살자~ 공연은 주욱 계속되는 군요.
착한사람들과 함께 하는 멋진 공연~!!

마노아 2014-12-16 07:07   좋아요 0 | URL
10년만 하고 관둘 생각이었다는데 15년 이상 이어지고 있네요. 이십년도 찍고 30년도 찍었으면 해요.^^
 

 

 

접힌 부분 펼치기 ▼

 

73. 내가 잠들기 전에(로완 조페, 2014)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는 무척 궁금했던 영화다. 머리를 크게 다친 이후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여자 니콜 키드먼.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선 사내가 자신의 옆에 누워 있고 본인은 자신을 이십대 초반으로 기억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40대에 들어서 있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남편은 매일 아침 새롭게 설명한다. 나는 당신의 남편, 당신은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쳤고 이것들이 우리의 결혼 사진들이다 등등등...

 

 

매일 자신을 혼란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아내를 안심시키고 출근을 해야 하는 남편이라니, 보통 지극정성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여자에게는 날마다 전화해 주는 의사가 있으니, 그는 역시나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옷장 안의 카메라를 꺼내라 하고, 그 안에 여자가 날마다 녹화해둔 자신의 육성 동영상 파일을 틀어보게 한다. 여자는 남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해보려고 하지만 그녀의 다친 기억체계는 도통 돌아올 줄을 모른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워낙 자극적으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들어 놨기에 저 사람 인상 더럽네. 분명 범인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보다가 뒷통수 맞았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지..;;;;

 

스포일러만 조심한다면 제법 긴장감있게 볼법한 스릴러 영화다. 물론 영화에 도통한 분이라면 단번에 반전을 눈치채겠지만.

 

그나저나, 영화 속에서 남편 잘생겼다는 설정에 헐~한 부분이 있었다. '잘 생겼다'의 의미가 너무 다른 걸!

 

정말 저렇게 매일매일 기억이 리셋되는 기억상실증이 있는 걸까? 자고 일어나면 새로 세팅된다니, 아 상상만으로도 너무 끔찍하다.

 

 

 

 

 

 

 

 

 

★★★☆

 

 

74. 보이후드(리처드 링클레이터, 2014)

 

같은 배우들을 무려 12년동안, 매년 일주일씩 촬영해서 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 세상에, 이런 장인 정신이 또 있나!

비포 시리즈를 18년에 걸쳐서 세편 찍어낸 감독다운 열정과 정성이다. 아역배우와 성인배우를 같이 캐스팅한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자라서 고스란히 성장해가는 모습을 찍었다. 당연히 젊은 배우들은 조금씩 늙어간다. 에단호크의 한창 때 얼굴을 보다가 잘생긴 얼굴이 중후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이 신기한 경험!

 

 

이야기는 평범하다. 어려서 사고쳐서 아이를 낳은 부부가 결국 헤어졌고, 각자 다른 가정을 이루면서도 부모 자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하는, 연인에서 부부로, 원수에서 다시 친구로 변해가는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해서 특별했다. 이렇다 할 자극적인 소재가 전혀 없다. 학교에 다니고, 직장을 구하느라 바쁘고, 자녀가 독립을 해서 허전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이다. 영화가 워낙 잔잔해서 보는 동안 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몰입도가 좋았다. 참으로 착한 영화다.

 

주인공의 누나로 나온 아이는 감독의 딸이다. 성이 같아서 알아봤네. ㅎㅎㅎ 눈이 엄청 쳐졌는데, 꼭 닮은 아이를 알고 있어서 볼 때마다 이 영화가 떠오른다. ^^

 

 

 

 

 

 

 

 

★★★★★

 

75. 패션왕(오기환, 2014)

 

웹툰을 영화로 옮긴다고 한다. 그게 '패션왕'이라고. 오, 제목이 끌리는 걸?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니 6회까지인가 무료였는데 그만큼 보는 동안 나는 전혀, 정말 재미가 없었다. 내용도 흥미롭지 않고 그림도 너무 성의가 없어서 도무지 뭘 보고 열광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음... 혹시 내가 나이 먹어서 청소년을 이해 못하는 걸까? 그렇다면 곤란하지. 그래서 영화를 봐주기로 했다. 영화로 보면 좀 낫겠지 싶어서.

 

뭐, 결과는 올해의 영화로 등극하시었다. 워스트 영화로.ㅡ.ㅡ;;;;;

 

 

이건 뭐 겉멋만 잔뜩 든 아해들의 재벌놀이 주니어 버전도 아니고...

만화적 상상력과 오버 액션을 한 거라고 이해해주려고 해도, 그렇다면 그런 포지션을 계속 유지하던가...

왕따 문제든, 아님 출생의 비밀이든, 뭐 하나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외모를 포기한 전교1등에 설리가 출연한 순간, 아 저 아이가 수능 끝나면 안경 벗거 머리 펴고 변신을 하겠구나-라고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패션왕으로 거듭나야 할 우기명(주원)은 훌륭한 기럭지에도 불구하고 별로 핏은 살지 않았다. 모델은 아무래도 좀 더 말라야 하는 건가?

 

하나 봐줄만한 캐릭터라면 김성오가 분한 박남정 캐릭터다. 핏도 김성오가 더 좋았음...;;;

 

 

요새 틀면 나오는 이경영도 이 작품에서 잠깐 나오는데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하고 말리고 싶은 심정... 서브 주인공이 악역 캐릭터일 경우 미워할 수 없는 어떤 근거나 사연을 부여하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에선 그것도 공감이 가질 않았다. 이 영화에 맞짱을 뜰만한 작품으로 '차형사'가 있는데, 그래도 차형사는 초절정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씬에서 런웨이 장면은 꽤 그럴싸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눈호강은 시켜줬는데, 이 작품은 잘빠진 배우들 데려다가 그것도 못해.. 하아...

옛날에 드라마 패션왕이 잘 나가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 컨셉으로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그쪽이 훨씬 볼만했음. 끙!

 

 

 

 

 

 

 

 

★☆

 

76.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2014)

 

그야말로 장엄한 영화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에도 관객을 제대로 놀래켰다. 더 재밌었던 건 다크 나이트였고, 더 흥미로웠던 것은 인셉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숙연함 같은 게 있었다. 이런 영화감독이 있고, 이런 작품이 있고, 그걸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마웠다.

 

 

겨우겨우 예매한 아이맥스관. 이 커다란 상영관도 이 작품을 제대로 담아내진 못했다고. 국내에는 이 작품을 온전히 볼 수 있는 극장이 없다고. 헐... 영화를 위해 극장이 있어야 하는데 극장 사이즈에 영화를 맞출 판이네...ㅡ.ㅡ;;;;

 

지구멸망, 혹은 인류멸망의 위기 앞에서 거대한 사명을 띠고 우주로 나가야 하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식상한 설정이다. 근데 그 뻔할 뻔한 이야기를 전혀 뻔하지 않게 시작하고 풀어낸다. 이런 이야기에서는 늘 가족애가 중심이 된다. 돌아가서 만나고 싶은 가족이 있기 때문에 돌아올 힘을 갖게 되는 미션 수행자.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일부러 돌아올 가족이 없는 사람만 뽑은 미션도 있다. 그 아이러니.

 

저 위의 포스터에 나오는 행성에 도착했을 때 공포가 가장 컸다. 그 어마어마한 물기둥이라니. 게다가 한 시간에 7년을 잡아 먹는 어마어마한 갭!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세시간을 소비했고, 지구에서는 이미 이십 년도 넘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려서 헤어진 딸은 떠나올 때의 자기 나이가 되어버렸음을 알게 된 아버지가 오열한다. 사명은 숭고하지만, 그가, 그리고 그의 가족이 치른 희생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못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나라도 지구 전체의 운명을 구하는 대신 내 가족의 곁에서 그들과 함께 지구의 끝을 볼 것만 같다. 답을 미리 알았다면 말이다.

 

어려운 물리학 용어와 설정이 잔뜩 나오지만, 그래도 일반 관객들이 큰 무리 없이 이해하도록 영화를 끌어 간다. 이 영화 덕분에 킵 손이라는 이름도, 칼 세이건이라는 이름도 어찌나 친숙해졌던지...ㅎㅎㅎ

 

 

앤 해서웨이는 숏컷이 무척 잘 어울렸다. 전성기 때의 데미 무어를 보는 기분.

영화는 한 번 더 보고 싶을 만큼 충분히 재미 있었지만 다시 보기엔 너무 길어... 요새 두시간 넘는 영화가 왜 이리 많은 거야.. 방광의 압박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음 영화는 어떤 것일까 크게 기대가 된다. 이만큼의 물자를 동원할 수 있을 만큼, 투자를 받아낼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역량을 키우고 인지도를 높여서 하고 싶은 영화를 기어이 만들어내는 그런 뚝심과 능력을 가진 사나이. 근사하구나!

 

 

 

 

 

 

 

 

★★★★★


77. 카트(부지영, 2014)


전태일 열사가 사망한 11월 13일에 개봉한 카트.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반드시 봐야만 하는 영화였다. 그러나 그런 의리를 내려놓고서도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도 꽤 괜찮은 영화였다. 청소년 관객을 많이 모아준 도경수의 연기도 훌륭했고, 청소년 알바 고용 행태에 대한 실상도 잘 보여주었다. 특히나 급식 한끼를 마음 편히 먹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이 너무 적나라했다. 깜박하고서 급식비를 못 낸 아이라면 내일 내면 되지 뭐~ 하면서 외상(?)으로 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없어 내지 못했다는 걸 아는 아이는 자격지심에 밥을 굶게 된다. 그 상황이, 그 입장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대한민국이 학생들 밥한끼를 못 먹일 만큼 경제력이 없는 나라인데 말이다..ㅜ.ㅜ


홈에버 사건을 다룬 영화 카트. 이런 영화는 필연적으로 가슴 통증을 동반시킨다. 그 끝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실보다 훨씬 소프트하게 접근한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철탑 위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밟힌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일까. 정치의 민주주의도 경제의 민주주의도 모두 후퇴하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

 

78.  퓨리(데이비드 에이어, 2014)

 

1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연구수업 준비를 하던 와중에 이 영화 광고를 보았다. 2차세계대전이었으면 써먹을 수 있었겠다~하고 생각했지만, 뭐 시기가 안 맞았음. 내 수업은 10월이었고, 이 영화는 한달 더 뒤에 개봉했으니까.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 전선을 휩쓸며 살아남은 부대. 브래드 피트가 이끌고 있었고, 탱크의 이름은 퓨리다. 때는 4월. 히틀러가 죽기 얼마 전이었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이 그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만약 알았더라면 마지막에 전투 대신 몸을 피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훈훈하기만 했던 전우애는 아니었지만 결국엔 훈훈할 수밖에 없던 그들이 하나 둘 목숨을 버려야 할 때가 오는 게 안타까웠다. 한달, 일주일, 아니 하루만 더 버텨내도 살아돌아갈 길이 생길 수 있었는데,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독일의 한 마을에서 여자 둘만 있는 집에 들어갔을 때, 저녁 만찬을 즐기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길어서 그 부분이 좀 지루했던 걸 빼면 전반적으로 영화는 좋았다. 지나치게 마초적이지도 않고 어설프게 비극적이지도 않고...

 

개인적으로는 샤이아 라보프의 열연이 돋보였다. 아무래도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한 것만 보았기 때문에 그의 연기력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었나 보다.

 

브래드 피트는 늘 일정한 정도의 작품 고르는 눈을 보증해 주었다. 연기력도 마찬가지. 빵발 아저씨, 이번에도 반가웠어요!

 

 

 

 

 

 

 

 

★★★★

 

79. 거인(김태용, 2014)

 

연관검색어가 '그 김태용이 아니고'란다. ㅎㅎㅎ 탕웨이의 김태용이 아니라 다른 영화 감독 김태용의 작품이다.

 

주인공 영재는 부모님과 동생이 있지만 집을 나와서 천주교 재단의 도움을 받는 쉼터에 머물고 있다. 아버지는 일할 생각도 없고 자꾸 종교 단체 등을 통해서 빌붙어 살 생각만 하고, 엄마는 일하시다 허리를 다쳐 이모 댁에 가 계신다. 이제 고1이 된 영재는 나이가 차서 곧 쉼터를 나와야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것만큼 끔찍한 게 없다. 영재는 쉼터 부모님들의 눈에 들어 계속해서 돌봄을 받고 싶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 되던가. 쉼터 부모님들의 눈에 들기 위해서 신학 대학에 입학해서 신부가 되고 싶다고 말하지만 성적도 그만큼 나오지를 않고, 주변 여건들이 영재를 자꾸 밖으로 내치게 만든다. 아이는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진실을 외면하거나 왜곡하기도 한다. 이 아이의 하루는 너무 치열하고 고단한데, 무책임하고 뻔뻔한 아비는 동생마저도 영재에게 맡길 생각을 한다. 오 마이 갓!

 

 

아빠만큼 뻔뻔하진 않지만 엄마 역시 무대책이었다. 게다가 철없는 동생은 형의 고충 따위는 알 턱이 없다. 그야말로 사면초가.

 

영화를 보는 동안 참 힘들었다. 이렇게 세상에 떨궈진 채 온전히 자기 힘으로 살아내야만 하는,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삶을 견뎌야 하는 어린 목숨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에 대한 참담함과, 이렇게 책임지지 않고 부모라는 것만을 내세우는 위인들도 참으로 많다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담임선생님은 피상적으로 아이에게 던지듯 관심을 표현했고 그게 다였다. 영재의 쉼터 부모님들도 위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었다. 고등학생 정도의 나이만으로 세상에 던져져도 얼마든지 제 입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데, 마냥 어려서 뭘 모르는 나이도 아니고, 알 것 다 아는 나이의 이 친구들에게 세상은 너무 잔인하다. 부모님 건사하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점수까지 갖춰도 만만치 않은 세상인 것을...

 

굳이 어느 쪽이 더 좋았냐고 한다면 내게는 '파수꾼'이 더 좋았지만 둘은 청소년이 주인공일 뿐, 내용과 전개방식이 많이 다르므로 단순 비교는 힘들다. 그래도 마지막에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고 선을 그으며 마무리를 지은 것은 참 좋았다. 여백의 미가 보인다. 포스터의 저 아이는 날아오르는 것일까, 추락하는 것일까. 역설적인 제목의 거인, 좋은 영화다.

 

 

 

 

 

 

 

 

 

★★★★

 

80. 빅매치(최호, 2014)

 

최근 이정재의 영화 선택은 무척 좋았다. 신세계가 가장 좋았고 관상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앞의 호연을 몽땅 깎아먹는 잘못된 선택이지 싶다. 대체 이런 영화 왜 나온겨???

 

격투기 선수 이정재는 살인 사건에 연루된 채 형이 납치되고 본인마저도 의심받는 순간에 유치장을 빠져나와 형을 구출하기 위해 뛰고 뛰고 또 뛰고 끊임없이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함정에 빠졌다. 게임을 기획한 것은 에이스 신하균. 그리고 그들의 하수인이지만 결국엔 이정재에게 도움을 주게 되는 보아가 등장하는데, 이 캐스팅은 정말 미스 캐스팅...;;;;

 

영화는 꽤 강도 높은 액션을 선보였다. 단순히 액션만 보자면 이정재는 꽤 멋있게 나왔다. 명품복근은 그야말로 보너스!

하지만 그게 다다. 아무리 액션영화에 시간 때우기용 영화라 하더라도 일정 정도의 '설득력'은 있어야 하지 않나. 아무 의미 없이 때리고 부수고 깨버리는 영화는 너무 소모적이다. 게다가 배성우가 분한 조폭들의 어줍잖은 개그는 또 무엇인가. 개연성 없는 이들의 파트너십도 어이가 없고, 총체적으로 황망한 영화였다. 패션왕이 아니었다면 올해의 워스트는 이 작품이 차지했을 것이다. 사진도 안 퍼왔다. 시간 아까웠음...;;;;

 

 

 

 

 

 

 

 

 

★★

 

펼친 부분 접기 ▲

 


내가잠들기전에, 로완조페, 미스터리, 스릴러, 영국영화, 니콜키드먼, 콜린퍼스, 마크스트롱, 앤마리더프, 딘-찰스채프먼, 징루시, 아담레비, 르웰라지데온, 찰리가드너, 반전, 보이후드, 리처드링클레이터, 미국영화, 드라마, 엘라콜트레인, 에단호크, 패트리샤아퀘트, 로렐라이링클레이터, 스티븐체스터프린스, 조던하워드, 닉크로즈, 에비톰슨, 브래드호킨스, 데렉체이스힉키, 엔젤라로우나, 톰맥티그, 성장영화, 비포시리즈, 패션왕, 한국영화, 코미디, 오기환, 주원, 설리, 안재현, 박세영, 김성오, 이일화, 신주환, 민진웅, 이수광, 이동휘, 정리현, 김한나, 파비앙, 문재원, 김이안, 박두식, 우상전, 웹툰원작, 차형사, 유치찬란, 이경영, 한혜진, 홍석천, 김나영, 호란, 이주영, 정두영, 오세일, 안선영, 이효재, 황병국, 나나, 기안84, a.T.O, SF, 인터스텔라, 크리스토퍼놀란, 매튜맥커너히, 앤해서웨이, 마이클케인, 제시카차스테인, 물리학,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 킵손, 케이시애플렉, 웬스벤틀리, 토퍼그레이스, 맥켄지포이, 엘렌버스턴, 존리스고, 레아케언스, 빌어윈, 데이빗기아시, 리암디킨슨, 맷데이먼, 조나단놀란, 우주, 지구, 인류멸망, 생존, 행성, 블랙홀, 5차원, 중력, 퓨리, 액션영화, 전쟁영화, 데이비드에이어, 브래드피트, 로건레먼, 샤이아라보프, 마이클페나, 존번탈, 스콧이스트우드, 자비에르사무엘, 제이슨아이삭스, 짐파랙, 아나마리아마린차, 2차세계대전, 탱크, 실화, 히틀러, 거인, 김태용, 최우식, 김수현, 강신철, 신재하, 박주희, 이민아, 장유상, 박근록, 박명신, 김재화, 청소년, 가정, 울타리, 부모, 책임, 천주교, 신부, 서길자, 양익준, 윤승훈, 이재준, 차영남, 빅매치, 최호, 이정재, 신하균, 이성민, 보아, 김의성, 배성우, 손호준, 김윤성, 라미란, 성지루, 맹상훈, 조덕제, 육진수, 성승헌, 김대환, 블라드데민, 격투기, 미션카트, 부지영,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김강우, 디오, 엑소, 도경수, 황정민, 천우희, 이승준, 지우, 박수영, 송지인, 황재원, 김수안, 윤상훈, 비정규직, 노동자, 민주주의, 경제민주주의, 홈에버, 파업, 투쟁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4-12-12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제가 본 영화가 다행히 하나 있어요.^^

마노아 2014-12-15 13:34   좋아요 0 | URL
그 하나가 뭘까요? 인터스텔라? ^^

서니데이 2014-12-15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어떻게 아셨어요^^

마노아 2014-12-15 15:07   좋아요 0 | URL
가장 유명한 영화로 골랐어요.^^ㅎㅎㅎ

순오기 2014-12-16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긴 내가 본 영화 하나도 없어요.ㅜ

마노아 2014-12-16 16:19   좋아요 0 | URL
인터스텔러도 못 보셨다면 정말 최고로 바쁘셨네요. 순오기님도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 아쉽아쉽...
 


오늘 드팩 게시판에서 보고 눈물나게 웃은 뉴스 방송사고다.

직장에서 두번 보고 좀 전에 언니 보여주느라 한번 더 봤는데 여전히 눈물나게 웃김.ㅋㅋㅋ


직장 동료에게 공유시켜 주니 이런 영상을 보여줬다.

http://youtu.be/YelSsChqi6M


처음엔 이게 뭐? 하고 들었는데 나중에 노래 나오고 나서야 이해..ㅎㅎㅎ


그나저나 알라딘은 iframe은 언제 가능해지지? 영상 퍼오기가 많이 불편하네.


이미 보신 분들 많겠지만 아직 못 보신 분들, 한 번 웃고 가세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14-12-11 0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노아 2014-12-11 11:1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Mephistopheles 2014-12-1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전 참 기가막히죠...ㅋㅋ

마노아 2014-12-11 11:20   좋아요 0 | URL
도라지차가 기억에 남을까요? ㅋㅋㅋ

무스탕 2014-12-11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진짜 처음 봤을때 제대로 터져 줬었죠 ^^
또 봐도 재미있어요. ㅎㅎㅎ

마노아 2014-12-11 23:25   좋아요 0 | URL
저는 광대폭발하는 줄 알았어요. 웃다가요. ㅋㅋㅋ
 

 

 

접힌 부분 펼치기 ▼

 

66. 제보자(임순례, 2014)

 

2005년 12월에 경주로 향했다. 이승환 연말공연은 12월 31일이었고, 송구영신 예배 때문에 참석을 못하게 된 나는 애가 탔다. 그래서 대구 공연을 가기로 결정했다. 공연만 보고 오기엔 교통비가 아까워서 답사를 겸하기로 했다. 그래서 간 곳이 경주. 눈이 엄청 오던 날이었다. 찜질방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ㅡ.ㅡ;;;; 그 눈을 다 맞고 오들오들 떨다가, 찜질방에 가서 땀 푹 내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세상은 황우석 뉴스로 온통 도배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빅뉴스.  월화수목금금금 일하고 있다며 화려한 언변을 자랑했던 그의 언론 플레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뭐, 지금도 그 신화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제목은 '제보자'가 주인공일 것 같지만, 제보를 받고 그것을 파헤치는 기자가 핵심 인물이다. 이런 역할에 박해일은 무척 잘 어울린다. 아주 잘 빼입는 것보다 노숙도 감행할 것 같은 옷차림에 수염도 듬성듬성 났어도, 눈빛만은 형형한 그런 역할 말이다.

 

요새 틀면 나오는, 무조건 나오는, 일단 나오는 이경영이 이 영화에서 황우석에 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언론을 등에 업으면 환자 가족뿐 아니라 온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는 걸, 사실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의로운 결말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뒤끝은 개운하지 않다. 그때 그렇게 투쟁했던 분들, 지금은 모두 방송국에서 나와 계시니까.

 

박해일이 이경영과 서 있는 투샷을 보면 박해일이 기럭지에서 우월해 보이지만, 유연석과 나란히 서 있는 걸 보면 이게 또 뒤집어짐..ㅎㅎㅎ

 

방송국 사장의 차를 막으며 방송윤리강령을 외치는 장면은, 설정상 무척 감동스러울 타이밍이지만, 실제로도 당시 정연주 사장이 오케이 사인을 내리기도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여전히 착잡했다. 야성이 살아있는 언론이 너무 간절하다. 그런 바람으로 대안 언론을 후원하고 열심히 챙겨듣지만, 공중파 방송의 위력 앞에서는 너무 작은 촛불이다. 그 작은 촛불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엔 커다란 횃불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으면...... 국익이 아닌 진실이 우선이고 더 큰 힘을 가졌으면......

 

 

 

 

 

 

 

 

 

 

67. 슬로우 비디오(김영탁, 2014)

 

차태현이 나오는 따뜻한 영화일 거라고 짐작했다.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지만 그리 재밌지는 않았다는 게 함정!

 

남들과 다른 능력을 가진 여장부. 그는 동체시력을 갖고 있는데, 남들보다 훨씬 속도를 늦게 체감한다. 아주 빠르게 던져진 공도 그에게 날아올 때는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능력을 각별하게 이용하면 범죄 소탕에도 크게 쓰일 수 있고, 어쩌면 연애를 하는데도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남들과 다르게 속도를 인식하니, 서둘러야 할 때 서두를 수 없다. 빨리 움직이려 하면 그 속도가 감당이 안 되어서 어지럽고 쓰러지게 된다. 이게 과해지면 시력을 잃을 수도...

 

한국의 로맨스 영화에는 빠지지 않는 첫사랑 코드도 등장한다. 이런 드라마와 영화만 보면 모든 연인은 첫사랑하고만 맺어져야 할 판이다.(버럭!)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면서도 아빠가 남겨주신 집을 팔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남상미. 아니, 이자가 얼만데 그걸 버텨! 게다가 본인은 아르바이트 전전하고 있는데 뮤지컬 배우고 되고 싶다는 꿈은 굳게 지키고 있다. 너무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꿈을 포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집을 지키느라고 무리수를 두는 것이...;;;;;

 

여러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소소한 웃음도 주지만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다. 남상미가 대학로 횡단보도 중간에서 전화기에 대고 노래를 부르며 오디션 치르는 장면이 고왔고, 은행잎을 팔에 한가득 담아놓은 것도 예쁜 색감을 자랑했지만 크게 남는 것은 없었다.

 

근데, 동체시력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한 거야???

 

 

 

 

 

 

 

 

★☆

 

68. 초콜렛 도넛(트래비스 파인, 2012)

 

 

게이 바에서 립싱크를 하며 춤을 추는 루디는 옆방에 사는 마르코가 늘 눈에 밟힌다. 애 엄마는 애를 방치한 채 늘 약에 쩔어 있고, 툭하면 집을 비우기 일쑤다. 여자 인형을 갖고 놀기 좋아하는 소년 마르코는 다운증후군이다. 버려지고 방치되는 아이를 못견뎌하는 루디는 제 한몸 건사하기도 힘든데도 불구하고 마르코를 책임지고 싶어한다. 이때 그에게 힘이 되어준 존재는 얼마 전 연인이 된 검사 폴.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고 약물 적발로 감옥에 간 마르코의 엄마 대신 마르코의 가족이 되어 아이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며 안락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은 35년 전이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사회적 편견에 싸여 있을 때다. 폴은 검사직에서 잘렸고, 두 사람은 마르코에 대한 양육권마저도 잃게 된다. 법정의 판사도 마르코의 친모보다 이들 두 사람이 마르코에게 더 안정적인 가정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가슴으로 이해한 그 사실을 게이 커플이라는 머리의 판단이 인정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들이 마지막에 찾아간 변호사가 흑인 변호사였을까. 당신만은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줄 거라는 간절함이 불러낸 결과였다.

 

초콜렛 도넛을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아이 마르코. 해피엔딩 이야기를 밤마다 들려달라고 조르는 해맑은 아이 마르코. 따뜻한 가족의 품이 필요했던 소년 마르코. 그리고 그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지켜내고 싶었던 연인 한쌍. 그러나 이들이 마냥 행복해지게 세상은 내버려두지 않는다.

 

 

두 사람 중 오른쪽의 알란 커밍은 실제로 커밍 아웃한 배우인데, 그래서일까.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볼 때, 폴은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루디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으로 보인다.

 

 

 

실제 다운증후군이기도 한 아이작 레이바는 이 영화가 첫 영화인가 보다. 다른 정보가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마르코의 연기도 연기가 아닌 실제 모습으로 보였다. 뭉클하고, 먹먹하고, 그리고 많이 슬픈 이야기였다.

 

 

 

 

 

 

 

 

 

 

 

69. 나를 찾아줘(데이빗 핀처, 2014)

 

처음으로 시네토크로 본 영화다. 두시간 반동안 영화를 보고, 다시 한 시간 동안 영화 해설을 듣는 시간이었다.

 

 

 

이동진 평론가와 배상훈 프로파일러가 호흡을 맞췄는데, 둘의 호흡이 안 맞아...;;;;

프로파일러 분은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그냥 이동진 얘기만 한 시간 듣는 게 나한테는 더 좋았을 것이다.

그 다음 주에는 표창원과 함께 했다는데 그 둘은 잘 맞았다는 후문....;;;;

 

영화는 역시 데이빗 핀처다웠다. 세븐보다 더 스릴감 넘쳤다고 기억한다. 원작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반전을 알지 못했으므로 영화 중반에 크게 한 번 놀라고, 몇 번이나 엎치락 뒷치락 하면서 몰입하여 볼 수 있었다.

 

 

 

어리숙하고 맹하며, 어눌한 남편 역에 벤 애플렉은 무척 잘 어울렸다.

 

 

하지만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도 로자먼드 파이크이지 싶다.

와, 이건 뭐 살벌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렇게 무서운 와이프라니!

 

 

이동진은 영화를 보면서 그녀의 연기에서 니콜 키드먼과 샤론 스톤이 보였다고 했는데, 실제로 로자먼드 파이크는 그 두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와우!

 

 

영화 중간에 마구마구 먹을 것을 쑤셔 넣는 장면에서 유난히 배가 나와 보이길래 임신 중이야? 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체격이 좀 있는 편인가 보다. 벤 애플렉이 192cm의 거구인 것을 감안하면.

 

 

영화는 무척 재미 있었다. 너무 재미 있었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보고 싶지 않다. 원작도 무척 훌륭할 테지만, 그냥 영화로도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불만이 있다면 제목이다. '나를 찾아줘'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내용과 너무 안 어울린다. 원제처럼 'gone girl'이 더 낫다. '사라진 그녀'가 직접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향으로 상상하진 않게 하니까.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던가?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꾸뻬 씨의 부인인지 연인인지로 나오던데, 이 작품에서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그 찰나의 순간에도 어색해 보였다. 하하핫, 캐릭터가 지나치게 강했어. ㅎㅎㅎ

 

 

 

 

 

 

 

 

 

  

 

70. 우리는 형제입니다(장진, 2014)

 

이승환 팬 중에 cgv 부점장이 하나 있다. 어느 지점이었더라? 지방 어드메였는데... 암튼 이분의 소망은 극장 하나 빌려서 이승환 뮤직비디오를 상영하는 것이었지만 그건 이뤄지지 않았고, 대신 드팩민과 백혈병 어린이 재단 관계자들을 초청해서 영화 상영을 했다. 그게 이 영화였다. 본인은 cgv 직원이지만 정작 빌린 것은 롯데시네마 장안점. 이 영화관은 이름이 계속 바꼈는데 워낙 외져서 장사가 좀 안 됐던 게 아닐까 싶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어서 날이 궂었지만 영화 보는 데는 아무 문제 없었다. 드팩민들의 간식거리 찬조도 있었다. 영화 상영 전에 이승환 뮤직비디오 '화영연화'를 함께 감상하고 영화 시작~

 

장진 감독을 좋아한다. 이제는 좀 식상해진 유머 패턴이긴 한데 그래도 여전히 웃음 끝에 감동이 있다.

조진웅, 김성균, 김영애 등 모두 연기파 배우들이라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30년 동안 헤어져서 사는 동안 서로가 알지 못했던 처절한 시간이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피붙이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을 수 있었던 사연들이 있었다. 게다가 얄궂게도 둘은 목사와 박수무당으로 직업적 장벽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걸 넘어서게 한 물보다 진한 피가 있었다. 단순 신파나 가족애만 강조하는 그런 영화는 아니었다. 오히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것이 다로 느껴지게 한 홍보가 좀 문제이지 않을까. 그 이상의 것이 있는데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게 만들어서 말이다.

 

 

 

 

 

 

 

 

 

70-1. 사라의 열쇠(질스 파겟-브레너, 2010)

몇 해 전에 극장 개봉했을 때 봤는데 늦게 도착해서 앞부분을 보지 못했다. 뒤늦게 다시 한번 보니 더 인상 깊었다. 홀로코스트를 표현하면서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이 아니라, 피해자였던 이들도 가해자였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한 것이 좋았다. 우리 역시 일제 강점기의 피해자이지만, 제주에서, 한국전쟁 와중에, 또 베트남 전쟁에서 얼마든지 가해자가 되었던 역사가 있지 않던가. 마지막에 특히 '이름'에 의미를 둔 게 유난히 좋았다. 이름이 곧 역사가 되고 삶이 되는 과정이 모두 보여서......

 

 

 

 

 

 

 

 

 

71.  다이빙 벨(이상호, 안해룡, 2014)

 

다이빙 벨을 본 날은 신해철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입장해서 울며 울며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도착한 메시지는 신해철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다. 온 세상에 죽음이 가득했다. 무겁고 또 무거웠지만 피할 수 없고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마땅한 다큐멘터리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영활르 봐야 할 사람은 보지 않고, 이미 공감하고 숙지하고 두 주먹 불끈 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온다는 게 문제였다.

 

지난 주 파파이스에는 단원고 생존자 학생이 출연한다고 했는데 내가 본 분량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번 주 분량에 나오지 싶은데, 짐작하고 있는 어떤 내용이 나올까 봐 두렵다. 막연히 상상하는 것들이 정말 현실이었을까 봐. 장기 없는 토막 살해 사건보다도 더 엽기적인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 아닐까....

 

참, 어제 미생 6편을 보는데 배경음악에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 나왔다. 방송 날짜를 보니 그의 죽음 이후였다. 의도된 BGM이었나 보다. 참으로 아까운 목숨이고 아픈 죽음들이다.

 

 

 

 

 

 

 

 

 

72. 나의 독재자(이해준, 2014)

 

이해준 감독의 전작 천하장사 마돈나와 김씨 표류기를 참 좋아했다. 휴머니티가 보이는 감독이랄까.

 

이번 작품이 앞의 작품들보다 더 좋지는 않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는 늘 보장해주는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의 수확이라면 설경구의 재발견이다. 설경구가 연기 잘하는 거야 누구나 아는 일이고, 그래서 그의 열연은 늘 당연하게 여겨져서 큰 감동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달랐다.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하기 위해 김일성 역에 몰입하다 못해 아예 스스로를 독재자로 여기는 주인공처럼 그 자신 설경구가 보이지 않고 극중 인물만 뚜렷하게 보인 것이다. 완벽한 매소드 연기.

 

박해일 역시 연기 못하는 배우가 결코 아닌데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의 연애의 결말이 너무 뻔해서였을지도...

 

 

 

 

 

박해일의 아역 연기를 한 꼬마가 참 예뻤다. 모처럼 통닭을 사온 아빠 덕분에 화기애애한 저녁 식사 시간. 서로 다리를 뜯어주며 먹으라고 내미는 진심 어린 손길이 뜨거울 만큼 따스했다. 정말 가식 없이 순수하게 가족을 위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저 예쁜 배우의 이름은 박민수. 2007년 생이다. 뮤지컬에 출연한 적 없나? 왜 이리 얼굴이 낯설지가 않지?

 

영화 속에서 기어이 이뤄진 가상 남북정상회담. 독재자에 분해서 주인공이 내뱉는 말들 중에는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었다. 통일을 정말 원한다면 결코 흘려듣지 말아야 할 메시지들 말이다.

 

그러고 보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떠오른다.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그 날에 무엇하고 있었냐는 물음... 그러게... 한 시대를 같이 살았다는 것은, 이렇게 공동의 기억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노무현이, 그리고 신해철이 죽었을 때...와 같은 그런 기억들...

 

 

 

 

 

 

 

 

 

 펼친 부분 접기 ▲

 


제보자, 임순례, 한국영화, 박해일, 뉴스타파, 국익, 진실, 유연석, 이경영, 박원상, 류현경, 송하윤, 김강현, 김수안, 김중기, 남명렬, 황우석, 줄기세포, 황재원, 박지소, 박용수, 박진영, 김영선, 이봉규, 이승준, 박성근, 김찬이, 권혁, 장광, 정연주, 피디수첩, 정형석, 권해효, 최용민, 한기중, 김원해, 이미도, 김영재, 황정민, 김영탁, 차태현, 남상미, 오달수, 고창석, 진경, 유영, 김현, 정윤석, 최성원, 동체시력, CCTV, 관제센터, 트래비스파인, 미국영화, 알란커밍, 아이작레이바, 가렛딜라헌트, 프란시스피셔, 그레그헨리, 제이미앤알먼, 크리스멀키, 돈프랭클린, 캘리윌리엄스, 알랜라킨즈, 동성애, 다운증후군, 민디스테어링, 마이클누리, 편견, 성소수자, 장애, 약물중독, 부모, 입양, 슬로우비디오, 나를찾아줘, 초콜렛도넛, 데이빗핀처, 스릴러, 벤애플렉, 로자먼드파이크, 닐패트릭해리스, 미시파일, 타일러페리, 킴딕켄스, 패트릭후짓, 셀라워드, 스쿳맥네이리, 니콜키드만, 샤론스톤, 팜므파탈, 사이코패스, 반전, 코미디, 가족, 우리는형제입니다, 장진, 조진웅, 김성균, 김영애, 윤진이, 이해영, 정민진, 조복래, 최태원, 임기홍, 김진규, 이철민, 조선묵, 권오수, 차은재, 조원희, 손보민, 상봉, 형제애, 가족애, 치매, 이한위, 김병옥, 고은미, 김민교, 김경애, 사라의열쇠, 다이빙벨, 이상호, 안해룡, 다큐멘터리, 세월호, 침몰,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구조, 언론, 재난, 나의독재자, 이해준, 설경구, 윤제문, 이병준, 류혜영, 이규형, 박민수, 손영순, 배성우, 손상경, 김일성, 북한, 전국환, 이준혁, 정인경, 김세동, 정해균, 김은희, 장현석, 박영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4-12-10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날은 잘 기억 안나고
김일성 죽었을때
주유소에서 총잡고 있었던건 기억나네요.
정말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


마노아 2014-12-10 19:35   좋아요 0 | URL
미치게 더웠던 여름이었죠. 저는 친구가 호들갑 떨며 전화했던 게 떠올라요.ㅎㅎㅎ

무해한모리군 2014-12-1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해일이 두작품이나 했네요. 굿다운로드 가능해지면 슬로우비디오가 보고 싶어요.

마노아 2014-12-10 19:35   좋아요 0 | URL
그닥이었지만 안 봤으면 또 아쉬웠을 거예요.ㅎㅎㅎ

다락방 2014-12-10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서함 110 호의 우편물이요...100호가 아니라.... ( ˝)

마노아 2014-12-10 19:36   좋아요 0 | URL
오타예여.ㅎㅎㅎㅎ

순오기 2014-12-12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보자만 봤어요. 오전에 비는 날이 거의 없어 조조영화를 못봐서...ㅠ
연대 언론홍보영상학부 1학년들은 단체관람 했다던가..^^

마노아 2014-12-12 13:08   좋아요 0 | URL
시간 맞춰 영화 보기 쉽지 않을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셨군요.^^
언론홍보영상학부 학생들에게는 꼭 봐야 하는 영화라죠. ㅎㅎㅎ
 

FUN 과학

제 2279 호/2014-12-10

추천하기
  • 파일저장
  • 프린트
  • 트위터
  • RSS
  • 페이스북

매일 아침, 세 개의 알람과 엄마의 쩌렁쩌렁한 고함 그리고 아빠의 호루라기 소리 없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태연. 마무리로 강아지 몽몽이가 시끄럽게 짖어줘야 간신히 바위만 한 눈곱을 떼고 기상을 한다.

“아빠, 도저히 못 참겠어요! 우리도 9시까지 등교하는 그 도시로 이사 가면 안 돼요? 어디는 고등학교는 9시까지 가는데, 저는 초등학생인데 왜 8시 10분까지 가야 하느냐고요. 네?!”

“잔말 말고, 호루라기 더 불기 전에 빨리 안 일어날래?”

“공부를 잘하려면 잠을 푹 자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러셨단 말이에요!”

“그거야 그렇지. 사람의 뇌는 잠을 잘 때 낮 동안 학습했던 정보들을 정리하거든. 그날 학습한 내용을 스스로 반복해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데, 잠을 깊이 푹 자면 장기 기억 저장이 훨씬 더 잘 되기 때문에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된단다. 밤새 벼락치기를 하면 다음날 시험에는 도움이 되지만 며칠 지나면 몽땅 까먹어버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

“거 봐요. 제가 많이 자겠다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성적 향상을 위해서 라고요.”

“아이고, 입만 살아가지곤. 암튼, 너는 매일 9시간씩 꼭꼭 자니까 괜찮지만, 보통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란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걸 보면, 고등학생은 하루에 겨우 5시간 27분, 중학생은 7시간 12분, 초등학생은 8시간 19분을 잔다는구나. 의학적으로 최소한 7~8시간 이상은 자야 건강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잠이 부족한 상황이지. 일부 교육청의 ‘9시 등교 정책’에 대해 아직 찬반 논란이 팽팽하지만, 다른 걸 다 떠나서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좋은 계기가 된 것만은 사실이야.”

“헐, 그럼 저도 고등학교 가면 5시간밖에 못 자는 거예요? 그러기 진짜 싫은데…. 외국 청소년도 저희처럼 수면 부족이에요?”

“우리보다는 덜하지만, 어느 정도는 그런 것 같더구나. 미국소아과학회(AAP)에서도 얼마 전 청소년의 수면 시간을 늘리기 위해 등교 시간을 늦춰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는데, 청소년기에는 수면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저녁에 일찍 재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침에 늦게 깨우는 게 낫다는 거야.”

“수면 패턴이 바뀌어요? 어떻게요?”

“사춘기가 되면 여러 생물학적 변화와 함께 생체리듬도 바뀐단다. 수면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성인보다 최대 2시간 정도 늦게 분비되기 때문에 어른들은 잠이 쏟아지는 밤 11시에 청소년들은 잠이 안 와서 말똥말똥 깨어있고, 어른들이 활기를 되찾는 오전 8시쯤에는 반대로 비몽사몽이 되는 거지. 몸은 깨어있으나 뇌는 잠자는 상태인 거야. 미국소아과학회 주장은 청소년의 수면 패턴이 이렇게 올빼미형으로 바뀌게 되니, 차라리 아침에 늦게 일어날 수 있게 등교 시간을 늦추자는 거란다. 우리나라 일부 교육청의 주장도 마찬가지고. 실제로 등교 시간을 늦췄더니 출석률과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고, 수업 시간에 조는 비율이 크게 줄었다는 실험 결과도 있어요.”

“거봐요, 늦게 등교해야 한다고요!”

“이외에도, 얼마 전 피츠버그 대학 연구팀은 수면이 부족한(6시간 이하) 고등학생의 경우 체내 염증도가 높아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고, 을지대학교에서는 7시간 이하로 자는 청소년이 그 이상 잠자는 경우보다 자살 생각과 우울한 감정 모두 1.4배 높다는 발표를 했단다. 또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하루 평균 5시간 이하를 자는 청소년이 7시간 이상을 자는 아이들보다 비만 위험이 2.3배나 높다는 조사결과를 내놨어요. 모두 청소년들의 수면 부족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지.”

“아침에 늦게 등교하면 밥도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그것도 중요한 얘기야. 등교 시간을 늦추면 아무래도 아침밥을 먹는 아이들이 더 늘어나겠지. 현재는 아침밥을 굶는 청소년이 무려 전체의 1/4이나 되는 상황이거든. 밥을 먹으면 두뇌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이 잘 공급돼, 학습 능률도 향상되고 성적도 올라간단다. 농촌진흥청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아침밥을 먹는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5%가량 높다는 구나.”

“아니, 그럼 더 이상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건강에도 좋고 공부도 더 잘한다는데 왜 저는 일찍 등교 하냐고요!!”

“물론 과학적으로는 청소년들에게 아침잠을 더 자도록 하는 게 맞아. 그런데 9시 등교는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란다. 맞벌이 부모님들은 아이가 일어나기도 전에 출근해야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오히려 아침밥을 먹이기 힘들어질 수도 있으며, 장거리 통학하는 학생들 교통편도 문제고, 지금까지 해왔던 교육 프로그램을 바꾸는 것도 어렵고…. 풀어야 할 문제가 아주 많단다. 이런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고,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 모두 서로의 생각을 잘 조율해서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너 좋은 대로만 할 수는 없어요.”

“아, 몰라요. 일단 저는 자체적으로 9시 등교를 결정할래요. 선생님께 전화하셔서 ‘태연이는 자신의 수면권 보호를 위한 24시간 수면 투쟁에 들어갔다’고 꼭 전해주세요. 아셨죠?”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 이번엔 나팔 분다!!”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아무개 2014-12-10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어야할 문제들이 많기는 하지만, 학교 등교시간 늦추는것, 야자금지 이런것들은 꼭 좀 성사되었음 좋겠어요.

마노아 2014-12-10 08:53   좋아요 0 | URL
저는 선행학습 금지요. 그런데 지금같은 구조에선 택도 없는 일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