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는 다시금 화장실 신세를 지게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곳곳에서 자기도 그랬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저도 화장실 가서 울고 왔어요.
저도 오늘 수업 접고 자습시켰어요.
등등등
분노와 속상함과 짜증이 뒤섞인 종합적인 반응. 이틀 동안 잠잠했던 눈커풀이 빠르게 떨리던 시간.
하루 온종일 머리 속을 지배하는 기억의 반복. 이러다 사람 잡겠구나... 란 두려움...
2.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와 여의도로 길을 잡았다. 7080녹화장으로 고고.
노래 들으며, 폴짝폴짝 뒤며, 열광을 하고 나면 이 마음이 가라앉을까 기대했지만, 잠깐씩 뿐이었다.
그래도 그 잠깐을 잊게 해주어서 고마웠던...
첫번째 가수분은 이미배 씨.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무척 유명하신가 보다.
목소리가 엄청 허스키했는데 샹송을 두 곡, 또 다른 곡 하나를 부르셨다.
멘트가 너무 썰렁해서 장단 맞추기가 힘들었다는 게 유일한 단점.
두번째 게스트는 임지훈 씨. 노래를 듣다보니 어릴 때 보았던 CF의 한 소절이 아닌가!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쥬스를 담았드래요~ 오란C!
오, 이 노래가 임지훈씨 원래 노래에 가사를 조금 변형해서 만든 건가?
같이 간 사람은 나보다 네 살 어린데 이 CM송을 모르더라. 흠, 세대차이가 나네.
당시 모델이 이상아 씨였던가? 거기까지는 자신 없음.
세번째 게스트 유리상자, 네번째는 나의 영웅 이승환!
모두들 3곡씩 부를 때, 혼자 7곡 부르시공...^^
물론, 마지막 곡은 녹화 끝나고 조명 꺼진 뒤 관객과 함께 놀기 위해 부른 곡이지만, 이때 반응이 너무 좋았다.
관객 연령대가 꽤 높은데도 많이들 일어나셔서 함께 즐겨주시는데, 역시 이런 곳에 올 정도의 오픈 마인드면 자리에서 일어나 같이 즐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런 게 또 소박한 감동!
3. 그렇지만 그 잠깐잠깐 사이에도 자꾸 눈물 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눈물 나고, 집에 와서도 꺼이꺼이 눈물 나고, 이것 참 어쩌란 말인가. 다행히 한 밤중이 되자 좀 진정이 됐다. 다음 행보를 결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4. 결정이란 게 대단했던 건 아니다. 내 손에서 안 된다는 걸 인정하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
6년 동안 한 번도 학생부에 학생을 보낸 적이 없는데, 지도부 선생님의 도움을 구했다.
참 놀라웠던 게, 이런 게 관록인가?
학생들 데려다가 한 시간 동안 조용히(이게 1단계라고 하셨다.) 이야기 듣고 또 이야기 해주시고, 바로 내게로 애들을 보내셨다.
거기서 해결이 안 나면 2단계는 조금 거친 목소리, 3단계는 학교 운영위 회부인데, 눈치가 빠른 아이들은 여기서 끝내려면 '죄송합니다' 한 마디면 된다는 걸 안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로 목소리만 죄송하다고 읊고 있지만, 어쩌랴. 여기서 끝내야지. 어제의 괴로웠던 마음에 비하면 조금은 숨쉴만 해졌지만, 씁쓸함은 줄곧 남는다.
5. 3학년 아이들은 수능 마치고 자체 프로그램대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어느 학급에서 평소 매우 친한 두 학생이 주먹다짐을 했다.
눈앞에서 남자애들이 이 정도로 거칠게 싸우는 건 처음 봤다. 정말, 무섭더라. 주먹도, 욕지거리도....ㅠ.ㅠ
옆에서 말리지만 워낙 살벌하니까 한계가 있고, 그거 말린다고 중간에 끼었다가 떠밀렸는데 그 과정에서 학생 주먹에 맞아 팔이 욱신거린다. 팔꿈치 아래 근육을 맞은 것 같은데 밤이 되어도 여전히 아프다.
둘을 떼어냈을 때, 한 녀석의 뿔테 안경은 다리가 부러져 있었다.
담임 샘께 알리지 않는 선에서 종결은 시켰는데, 정말... 심장 떨리는구나...
6. 점심 때 우리 과 회식이 있었다. 스시 집으로 잡혔는데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고... 나 회 못 먹는데...ㅜ.ㅜ
내 옆의 두 분은 회를 안 좋아하셔서 매운탕 드시는 거다. 나는 다 잘 먹게 생겨서 안 물어보셨다고...
흑... 제가 그런 오해를 받습지요.
어릴 때 오징어 먹고 두 번이나 크게 체해서, 그때 이후 오징어처럼 생겼거나, 그처럼 물컹거리는 걸 먹지 않는다.
그래서 해산물을 안 좋아한다. 생선은 먹지만... 결국, 매운탕 얻어 먹었다. -_-V
7. 그 자리에서 들었는데, 다 자란 남학생들은 너무 단단해서 잘못 부딪히면 뼈 상한다는 거다.
실제로 현재 선생님 중 한 분이 담배 피다 걸린 녀석 지도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지셨다.
또 어떤 분은 졸업식 때 잘 가라! 하고 어깨를 한 번 쳤는데 관절이 나가서 그때 이후 지금껏 배드민턴 칠 때마다 손목이 욱신거리신다고... 오늘 내가 맞아보니 이 녀석들 몸은 무기구나 싶었다. 역시 무서븐 것들....;;;;
8. 역시 회식 자리에서 들었는데, '성' 문제로 사고가 많이 난다는 거다.
아, 참에 입에 담지 못할 얘기들이, 사회면 뉴스에 나올법한 얘기가 내 직장에서 벌어졌었다니 잠시 서늘....
9. 오늘 3학년은 좋은 부모 되기 어쩌구 저쩌구 강의를 들었는데, 한 녀석이 뚝 잘라 말한다.
좋은 부모는 돈 잘 버는 부모고, 나쁜 부모는 돈 못 버는 부모예요!
아, 이렇게 무서운 말을! 그런 말이 어딨냐! 그렇게 생각하는 것 아니라고 하니 코웃음을 친다.
샘, 미혼이시라서 몰라서 그래요. 그게 현실이에요!
아, 너는 뭐 장가갔냐? -_-''';;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 가치관들이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겠다는 거다.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돈돈돈 하면서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화끈거리게 다가왔다.
이건, 어른들이 미안해할 일이다.
뉴스를 봐도 답답하지만 현실을 봐도 답답하고 서글프다. 우얄꼬......
10. 오늘은 일찍 자고 싶은데, 역시 오늘도 도와주지 않는구나... 훌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