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외투 비룡소 세계의 옛이야기 30
데미 글.그림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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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고른 책이었는데, 그림을 펼쳐보니 내가 이미 구입한 책 같았다.
사두고서 미처 읽지 못한 책.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정말 이미 구매한 책이다. 그래서 40자 평으로 쓰려던 걸 기념(?)으로 포토리뷰로 바꿔버렸다.

터키의 옛 이야기인데, 이야기야 지극히 교훈적이어서 남달리 할 말이 없지만 그림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주인공 나스레틴 호카는 13세기에 살았던 터키의 민중 철학자이자 재담꾼이었다.

그림을 보자. 머리에 큼직한 터번을 둘르고 기우고 기워서 너덜너덜해진 외투를 입고 있는 호카. 그렇지만 기운 자국이 아니라 금빛 무늬처럼 보인다.
발그레한 표정이 인상 깊은데 야동순재가 떠오르는 얼굴빛이랄까.

카라반들이 머무는 여관 안에서 고삐 풀린 염소가 소동을 피우자 사과 조각으로 유인해서 염소를 잡아주는 호카.

그 바람에 초대 받은 잔치에 늦어버린 호카는 옷을 채 갈아입지도 못하고 누덕누덕 더러운 외투를 입은 채 잔치 집으로 갔다. 지저분한 옷도 문제지만 염소 냄새까지 배어서 사람들이 모두 대놓고 박대한다. 초대한 주인장도 얼마나 난처했을까. 조금만 센스 있는 사람이었다면 자기 옷이라도 내줘서 다른 손님들에게 대놓고 따 당하지 않게 했을 텐데, 주인도 그럴 정신이 없다.
이야기에도 끼지 못하고 음식조차도 내주질 않았다. 그렇다. 하인들마저도 박대한 것이다. 이래서 입은 거지가 음식을 얻어먹는다고 했던가.

호카는 살그머니 밖으로 빠져나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향기 나는 비누 단지를 통째로 욕조에 쏟아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몸을 닦았고,
새 구두에 새 터번, 그리고 새 외투도 걸쳤다.
저 상기된 얼굴을 보라지. 새 옷을 입었는데 성형수술을 한 것처럼 환골탈태했다.

다시 잔치집으로 행차한 호카.
이제 누구라고 그를 박대할 것인가.
모두의 환대를 받으며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버린 호카.

그런데 본인 앞에 잔뜩 차려진 음식물을 호카는 입이 아닌 외투 안으로 집어넣는 게 아닌가!
모인 사람들은 다시 경악하고 말았다.
독자도 같이 경악! 저 좋은 옷이 다 버리고 말겠네. 어이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교훈!
이 책의 제목을 확인하시라. '배고픈 외투' 되시겠다.
누덕누덕 기운 옷차림일 때는 문전박대 수준이었는데, 이제 잘 차려입은 옷으로 찾아오니 이리 환대할 수가!
그러니 초대 받은 것은 호카가 아닌 이 외투가 아니겠는가.
배고픈 외투에 음식 투척!
모인 사람들이 뻘쭘해질 차례.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전해져 온 옛 이야기. 우중충한 분위기로 끝날 수 없다. 한 차례 멋진 명언을 남기며 들썩들썩 다시 신나는 분위기로 변신시키는 재주 많은 호카!
이러니 사람들이 그를 '스승'으로 여겼을 테지. 그의 이름은 '스승'이란 뜻!

이 작품을 쓰고 그린 데미는 '빈 화분'으로 이미 만난 작가인데, 빈 화분보다 이쪽이 그림이 더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 다른 작품을 더 찾아보고 싶게끔 만드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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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17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아주 수준 높은 교훈이군요!^^
터키 말로 호카가 스승이란 뜻이라니, 외국어 하나 배웠네요.ㅋㅋ

마노아 2010-11-17 00:0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소설 쓸 때 외국어 이름이 필요해서 교보에서 터키 사전을 들춰봤어요.
발음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루즈가'란 이름에 '바람'이란 뜻이 있어서 등장 인물의 이름으로 사용했지요. 이제 '호카'라는 말도 알게 되었어요.^^ㅎㅎㅎ
 
모치모치 나무 어린이중앙 그림마을 22
다키다이라 지로 그림, 사이토 류스케 글, 김영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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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는 다섯 살 마메타
겁이 많아서 밤중에는 혼자서 뒷간을 가질 못한다.
집 밖 커다란 모치모치 나무가 마치 머리카락을 풀어헤친 것처럼 보이기 때문.

열살 무렵 살았던 집 방문에는 조그마한 창문도 같이 달려 있었는데 창호지에 나무 그림자가 짙게 드리어져 있었다. 뒤쪽으로 큰 나무가 있었고 가로등도 가까이 있어서 보지 않으려고 해도 너무 잘 보였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선 별밤 시그널이 나왔고 그 디링~디링~ 밀어내는 듯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낮에 읽은 셜록홈즈 시리즈가 생각이 나서 정말 무서웠다. 그 집도 화장실은 마당 건너에 있었기 때문에 마메타의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모치모치 나무는 마메타가 직접 붙인 이름. 모치모치가 무슨 뜻일까?
가을이 되면 반짝반짝 빛나는 갈색 열매가 바닥에 수북이 떨어진다.
할아버지는 그 열매를 나무 절구로 찧고 맷돌로 갈아 가루로 만들어서 떡을 만들어 주신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기막힌 맛이라니, 모치모치 나무가 늘 무서운 존재는 아니다.
그렇지만 밤만 되면 귀신 손이 되어 와락 달려들 것만 같아 마메토는 오늘도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다.

밤마다 뒷간 같이 가자고 졸라대는 손자를 귀찮아 할 법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사랑은 그쯤은 기꺼이 이겨내는 법!
두꺼운 판화 선이 투박하건만 자애로운 할아버지 표정은 충분히 표현해 주고 있다.
정면으로 나무를 바라보지 못하는 마메토의 긴장한 표정이라니!

할아버지는 마메토에게서 모치모치 나무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주고 싶다.
배경이 주홍색이 되어버리니 찬란하고 멋있기만 하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신다. 동짓달 스무날 축시엔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진다고.
그 아름다움은 딱 한 명만 볼 수 있다고...
한 명이라니. 그렇다면 한 밤중에 혼자서 모치모치 나무와 맞닥뜨려야 된다는 얘긴데 마메토로서는 택도 없는 일!

그렇지만 뜻밖에도 기회는 금방, 나쁜 방향으로 찾아왔다.
한밤중에 배앓이를 하느라 끙끙 신음하는 할아버지.
놀란 마메토는 두려움도 잊은 채 의사 선생님을 부르러 집을 뛰쳐나간다.
잠옷 바람에, 맨발로, 오 리나 되는 산기슭 마을까지...
마메토는 두려웠을 것이다. 세상에 둘 뿐인 가족인데, 그 할아버지를 잃을까 봐. 그 두려움은 모치모치 나무의 귀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끔찍함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만큼 나이든 의사 선생님은 두루마기로 마메타를 덮어 업고 약통을 메고서 한밤중의 고갯길을 힘겹게 올라가셨다. 이분도 할아버지만큼 자애로우신 분!

그리고 마메타는 만나고 만다. 모치모치 나무에 불이 켜져 있는 광경을!
사실은 칠엽수 뒤로 달이 떠오르고, 가지 사이로 별이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눈까지 내리고 있어 불이 켜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아름답고 멋진 광경이건만, 할아버지 걱정에 마메타는 제대로 구경도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기운을 차리셨다.
그저 자연의 한 풍경이 아니라 산신령의 축제를 본 거라고 손자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멋진 할아버지.
할아버지 자신도 그렇게 어린 시절 두려움을 이겨내고 성장통을 거쳐 지금의 든든한 어른이 되셨을 것이다. 겁쟁이라고 놀리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게끔 격려해주는 멋진 어른. 성장과 사랑을 모두 선물해 주신 것이다.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 동화가 참 좋다. '부엉이와 보름달', '매듭을 묶으며', '숲 속에서', '체리나무' 등등. 이제 이 책 '모치모치 나무'도 좋아하는 목록에 포함시켜야겠다. 우리의 옛 이야기 중에는 통과의례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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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08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내가 좋아하는 판화그림이군요.^^
모치모치는 '떡'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마노아 2010-11-08 22:27   좋아요 0 | URL
오, 모찌떡할 때 그 모치인가봐요! 똑똑한 순오기님.^^
 
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비룡소의 그림동화 126
존 버닝햄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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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책들을 살펴보면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만의 순수한 세계가 자주 그려지곤 했다. 지각대장 존에서 선생님은 존의 지각 이유를 매번 믿지 않았지만 존에게는 지각 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연들이 있었다. 존 버닝햄의 세계에선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도 못된 아이가 아닐 수 있고, 소외된 이도 소외되지 않은 주체로 그려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셜리야, 물가에 가지 마!'와 짝을 이루는데, 역시나 엄마의 잔소리와는 별개의 세상에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해 둔 셜리의 목욕 이야기가 진행된다.  

 

표지의 그림부터 심상치 않다. 꽃밭 위를 춤추듯 달려나가는 저 기사는 혹시 돈키호테?  

 

표지를 열면 나오는 첫 그림이다. 하수관 주변의 풍경이 남다르다. 트럼프 카드가 깃발처럼 걸려 있고, 모험이 이루어질 성이 보인다. 하수관 끝에는 말타고 달려가는 기사도 보인다. 저 기사는 토끼? 어른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거나 쉽게 찾을 수 없는 세상이 이제 펼쳐질 차례다. 

 

목욕 준비를 해주고 있는 엄마의 잔소리 퍼레이드가 시작되고 있다. 그림 속 캐릭터의 표정이 대체로 무표정하다는 것이 존 버닝햄 그림의 특징이기도 한데, 엄마도 셜리도 모두 인형같은 얼굴이다. 표정은 말이 없지만, 정황이 모든 걸 대변해 준다. 아이가 지나치게 커 보인다는 게 다소 흠. 사실, 존 버닝햄 그림은 '예쁜' 맛으로 즐기는 게 아니므로...^^ 

 

엄마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하지만 어떤 어조일지 상상이 간다. 고저 없이 잔잔할 것이고, 아이가 듣는지 마는지는 확인도 않은 채 해야 할 리스트를 줄줄이 뽑고 있는 느낌이다. 체중계의 저울이 지난 번 체크했을 때보다도 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면 표정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 톤도 좀 더 높아질 것이다. 아직까지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분명 기분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엄마의 잔소리 포문이 얼마나 과격한가와 상관 없이 셜리는 이미 쏜살같이 배관을 통해서 자신만의 세계로 달려 나가는 중이다. 두고 온 빗과 주사위(?)와 비누 등은 중요치 않다. 새로운 세계가 셜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장난감 오리 배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낙원으로 인도했다. 푸르른 나무와 풀 뜯는 젖소 등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평화로운 세계에도 위기는 닥치는 법! 

 

나름 '폭포'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고, 들판의 기사들이 위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셜리에게 이 정도 위기는 그저 모험 수준! 

 

가여운 건 엄마 입장이다. 아이의 세계를 존중해 주고, 이해해 주고, 함께 해 주기에 어른의 세계는 너무 복잡하고 갑갑하다.  

엄마의 고백대로 아이를 따라다니며 어질러 놓은 걸 치우는 것 말고도 엄마의 일은 지나치게 많다.  

같이 놀아주고, 그 지저분한 상태를 참아낼 수 있는 엄마는 차라리 대인배랄까.  

비록 내가 엄마가 되어보진 못했지만, 저 셜리가 자라서 엄마가 된다면 셜리의 엄마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그래도 다행히 셜리가 스트레스 꽉 채운 아이가 되지 않고 저렇게 동화같은 세상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아이의 저 모험을 엄마가 이해해 준다면 더 좋을 텐데... 권정생 선생님의 '랑랑별 때때롱'에서는 그런 부모님이 나온다. 아이들이 겪고 온 신비한 세상에 대해서 부정도 하지 않고 허튼 소리라고 면박도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부모님. 정말로 믿는지 안 믿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이의 세계를 무참히 짓밟지는 않는 멋진 부모님이셨다.  

 

아이의 모험이 신날수록 욕조 주변은 어지러웠을 것이다. 그래도 셜리의 엄마는 화내는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두 사람 모두 서로 다른 세상을 다녀왔기에 교차점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타협(?)이다.  

다음 번 목욕할 때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세계가 또 다시 평행선을 긋지 않고 좀 만났으면 좋겠다. 셜리야, 목욕은 얼마든지! 라고 말해도 좋다면, 그것이 서로에게 인상 찌푸릴 일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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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버닝햄도 존버닝햄이지만,
마노아님 진짜 이쁘셔요~
사진의 하얀 클립이 뭔가 한참 쳐다봤어요.
마노아님,참 이쁘다~^^
(나도 사진 찍을 때 참고 해야지~~~힛.)

마노아 2010-10-29 23:50   좋아요 0 | URL
아하핫, 효과 준 것 뿐이에요.^^ㅎㅎㅎ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________^*)

자하(紫霞) 2010-10-30 22:19   좋아요 0 | URL
클립이 효과예요?
저도 뭔가 한참 쳐다봤어요~
사진 잘 나오게 하는 마노아님만의 비결인가? 생각했어요~

마노아 2010-10-30 23:48   좋아요 0 | URL
으하하핫, 프로그램 기능에 있어요.
'포토 스케이프' 쓰거든요.
포토샵보다 훨씬 간편해서 자주 이용해요.^^

같은하늘 2010-11-01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잘 지내셨나요? 방가~~
여기저기 그림책 마니아들의 존 버닝햄 행진이군요.^^
포토스케이프 기억해 둘께요.

마노아 2010-11-02 00:11   좋아요 0 | URL
저는 존 버닝햄 한 권에 헬렌 옥슨버리 한 권으로 마무리 했어요.
이미 읽은 책은 다시 안 보게 되어서요.
포토 스케이프는 무료 프로그램이니까 함 써보셔요~
 
이만큼 컸어요! 웅진 세계그림책 115
루스 크라우스 지음, 헬린 옥슨버리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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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큰 조카가 초등2년이 되자 더 이상 4-7세용 책을 구입하지 않는다. 둘째 조카가 5살로 자라고 있지만 둘 다 활용하기 힘든 책이라 여겼는지 아무래도 그 연령대 책은 마다하고 있다. 그런 구분에 보다 자유로운 나는 아직도 4-6세 용 책들이 더 좋다. 글밥은 적어서 마음에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품는 내용은 작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게 구입해서 좋은 4-6세용 책. 어쩌면 0-3세 용으로도 나쁘지 않은 책이랄까. 

스무 살 넘어가고부터는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하고 원했던 적이 없는 듯하다. 해마다 빨라지는 시간을 체감하며 아쉬워할 뿐. 그렇지만 아이들이야 어디 그렇던가. 떡국을 무리해서 많이 먹어가면서까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하고 자라고 싶어한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아이는 아직 작기만 하다. 강아지, 병아리들도 모두 작다. 아이는 3등신에도 못 미치는 크기로 그려져 있다. 날은 아직 추운 계절이고 아이의 옷차림도 두툼하다. 따뜻한 봄날이 오면 아이도 부쩍 자라 있을까? 

 

나무에 새싹이 돋고 땅에 풀도 자랐다. 헛간 옆에는 꽃이 피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조잘조잘 묻기 바쁘다.  

"병아리도 클까요?"
"강아지도 클까요?"
"그럼 나도 커요, 엄마?" 

그때마다 엄마는 물론이라도 답해 주셨다. 아이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낮이 점점 길어졌고, 밤은 점점 짧아졌다. 풀도 쑥쑥, 꽃도 쑥쑥, 나뭇잎도 쑥숙 자라는 것 같건만, 우리 모두 조금씩 자라는 것 같은데, 아이는 자기만 자라지 않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날이 더워져서 두꺼운 옷은 옷 상자에 담아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날이 추워지면 입어야 할 옷들. 품에 안겨 있었던 강아지는 확실히 눈에 띄게 자라 보인다. 아이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아름다운 계절이다. 흙을 밟고 땅을 매만지며 꽃들에 둘러싸인 전원의 풍경. 그 속에 엄마도 있고 강아지도 있고, 아직도 빨리 자라고픈, 혼자만 뒤쳐진 것 같아 애가 타고 있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다시 묻는다.  

"엄마, 나도 컸어요?" 

한결같은 엄마의 대답, "그럼. 물론이지." 

 

뜨겁고 강렬하던 여름도 지나고 울긋불긋 나뭇잎들이 옷 갈아입는 가을이 왔다.  

병아리들은 자라서 닭이 되었고, 강아지도 자라서 개가 되었다.  

모두들 한 뼘씩 자랐는데 홀로 크지 않은 것 같아 속이 상한 아이.  

엄마가 그리 장담을 해주었건만, 아무래도 아이에게는 눈에 보이는 증거가 필요한가 보다.  

눈에 보이는 증거, 드디어 찾을 때가 왔다.  

 

추워진 계절에 맞추어 여름에 집어넣었던 옷을 다시 입어 보았는데... 

이럴 수가! 옷이 작다! 바지가 꽉 끼고 길이도 짧아졌다. 웃옷 역시 마찬가지!  

새옷 장만해야 할 걱정을 엄마가 할지 안 할지 아이는 모른다. 그런 걱정은 아직 아이에겐 이른 법! 

아이는 그저 제가 자랐다는 사실만이 중요하고 기쁘다. 폴짝 폴짝 재주를 넘을 만큼! 

 

한 해를 기다린 보람이 있었으니 아이의 기쁨이 큰 건 당연하다.  

이제 더는 키가 자라지 않을 나이가 된지도 강산 한 번 변했고, 늘어나는 체중만 걱정이건만, 그래도 자라고 싶을 때를 많이 만난다. 그것은 마음의 키, 관용의 키, 너그러움의 키, 지성과 양심과 상냥함의 키 등등. 자라고 싶은 마음 자리는 아직도 무한대이다. 무엇으로 마음의 키를 재어서 이만큼 컸다고 기뻐하며 재주를 넘을 수 있을까. 아직도 이 모양이냐고 발만 안 굴러도 사실은 다행인 셈.  

지난 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의 키를 내내 생각했다. 아마도 평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마음의 키. 어떤 영양분을 주고 어떤 운동을 시켜서 키워내야 할지는 자신만이 아는 일. 키재는 그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하며 살아야겠지. 표지 속 저 아이처럼 저렇게 즐겁게 반응할 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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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츄리 2010-10-27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이뿌네요

마노아 2010-10-27 14:46   좋아요 0 | URL
그림이 참 정겨워요.^^

순오기 2010-10-2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사랑스런 녀석, 정말 키가 많이 자랐네요.^^
마음의 키를 키우는 일은 아마 평생동안 해야될 듯해요.

마노아 2010-10-27 23:13   좋아요 0 | URL
평생 숙제가 많아요. 내일로 미루면 안 되는, 날마다 해야 하는 숙제예요.^^

같은하늘 2010-11-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동그란 얼굴의 아이~~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있어요.^^

마노아 2010-11-02 00:09   좋아요 0 | URL
한 눈에 확 들어오나요? ^^
 
꽃신 파랑새 사과문고 64
김소연 지음, 김동성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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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표지의 애기씨가 인상적인 책이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김동성 작가의 그림이다. 세 편이 동화가 실려있는데 첫 번째 이야기가 표제인 '꽃신'이다. 기묘사화를 배경으로 집안의 화를 입은 애기씨가 절에 숨어 지내다가 몸을 피하느라 먼 길 떠날 옷차림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맞바꾸게 되는 꽃신과 짚신.  

처음에는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아기씨라고만 생각해서 심퉁이 나버린 아이였다. 헐벗은 옷차림과 벗은 발이 더욱 시리다. 그렇지만 곧 마음을 열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꽃신을 만들어주는 아이. 

 

비단 꽃신보다 더 소중한 민들레 꽃 짚신 되겠다. 눈 내리는 겨울에도 민들레는 저 모양새를 하고 있나? 암튼, 곱고 또 곱다. '기묘사화'라는 사건을 끌어당겼지만 그저 배경으로만 나올 뿐 '역사'동화로 치부할 필요는 없겠다. 전혀 아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두번째 이야기 '방물고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병든 홀어머니를 모시고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덕님이. 돼지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서 돼지 밥을 얻으러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덕님이는 장돌뱅이 홍석이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앞에서 잘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만 보이게 되어서 속상한 덕님이다. 

 

기다리던 홍석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서둘러 상 치우고 나서는 상처입은 덕님이 모습이 애처로웠다. 사건과 사연이 많아 어머니 잃고서 더 막막해진 덕님이, 그러나 시골 인심 따뜻하고, 상도와 정도를 아는 사람들 덕분에 덕님이는 문제 없겠다. 그 자신도 단단하고 말이다.  덕님이의 새 인생을 보듬어줄 존재는 이제 돼지 한 마리가 아니라 '방물고리'다.

 

똑똑하긴 했지만 사람 마음은 잘 헤아리지 못했던 홍석이도 덕님이를 통해서 마음이 좀 더 넓은 사내로 거듭났다. 뒷모습이 벌써부터 듬직해 보인다.  

세번째 이야기는 '다홍치마'
천주교 박해로 유배 온 선비님께 글공부를 배우게 된 천민 숯장수 큰돌이가 주인공이다. 이번 이야기의 배경이 되어준 사람은 정약용인데, 이번에도 설정만 가져왔을 뿐 역사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하다.  

 

그렇지만 의기로운 선비로서의 모습은 정약용 이름 석자에 부끄럽지 않다. 시집가는 딸에게 보내고 싶은 마음을 담아 아내의 낡은 다홍치마에 그림을 그린 선비님. 암수 다정한 새 두마리는 백년해로하길 바라는 아비의 다정한 마음이다. 선비와 큰돌이의 우정, 스승 제자 사이의 마음, 그리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까지, 예쁜 마음들이 가득한 동화였다. 그림도 곱고 글도 곱다. 동 작가의 '명혜'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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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5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동성의 그림이 너무너무 좋아요~^^

마노아 2010-10-25 21:42   좋아요 0 | URL
저두요~ 김동성 작가님의 그림이 모두 좋아요.^^

후애(厚愛) 2010-10-25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신 정말 좋은 책이에요. 그림도 좋구요.
행복한 한주 되세요~ ^^

마노아 2010-10-25 21:42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아요. 후애님도 한 주 즐겁게 시작하셔요~

bookJourney 2010-10-2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지요?!
역사적인 설정에서 소재를 찾은 동화를 읽을 때마다 "이게 사실일까? 허구일까?"를 한 번 짚어보게 되는데, 저희 아이도 그런가봐요. 이 책 읽으면서도 동화의 사실 여부에 대해 질문을 하더니, <<직지>>를 읽을 때에는 꽤 진지하게 "아, 금속활자가 이렇게 만들어졌어요?" 하더라구요. 종종 헷갈려요. ^^;

마노아 2010-10-25 21:43   좋아요 0 | URL
오오, '직지'도 흥미로워요. 예전에 특집 드라마 '직지'도 잘 되었다고 하던데 보지는 못했어요.
저는 책으로 만나야겠네요. ^^ 얼른 검색해 봐야겠어요. 유후~

순오기 2010-10-2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쁜 마음들이 돋보이는 동화였어요~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도 흡족하고요.^^

마노아 2010-10-25 23:48   좋아요 0 | URL
글도 좋고 그림도 좋고, 참 예쁜 동화예요. 좋은 이야기책이었어요.^^

같은하늘 2010-11-01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도 예쁜데다 이야기 마저도 예쁜 책이군요. 찜~~

마노아 2010-11-02 00:08   좋아요 0 | URL
마음에 꼭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