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왕님 만나는 날! 국민서관 그림동화 116
새러 퍼거슨 글, 로빈 프레이스 글래서 그림, 김영선 옮김 / 국민서관 / 2010년 11월
절판


이 동화책의 작가는 새러 퍼거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차남인 요크공작의 부인이었다.
두 딸인 비아트리스 공주와 유진 공주를 키우면서 세상 곳곳에 사랑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작가 소개에 적혀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한 여왕님은, 정말 영국의 그 여왕인 것이다.
표지를 열면 귀족들의 우아한 자태가 곳곳에 나오는데 양면이 서로 대칭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티 테이블이 예쁘게 그려져 있다. 좀 전까지 흑집사를 보아서인지 이런 그림체와 이런 분위기가 몹시 익숙해져 버렸다.

루비에게 우체부 오빠가 초청장을 들고 왔다.
바로 여왕님이 보낸 초대장이다.
루비는 이미 정원에서 여왕님 놀이를 하고 있었나보다.
옆쪽 풀밭에 '공주님 찻잔 세트' 상자가 열려 있는 것을 보니 말이다.
루비는 운동복 차림 위에 질질 끌리는 드레스를 입고 커다란 왕관까지 썼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소꿉장난 찻잔이 아니라 정말 여왕님과 찻잔을 나눌 거라니 어찌 흥분되지 않겠는가.

잔뜩 흥분해서 날뛰는 루비에게 우체부 오빠가 충고를 해준다.
다른 사람이랑 차 마실 때는 꽥꽥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지만 루비 귀에 들어갈 리가 없다.
루비의 상상 속에는 이미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보다 더 근사한 마차가 등장해 있고, 그 마차의 마부는 우체부 오빠가 변신한 상태다.
뿐인가? 덤벙거리면 안 된다고 충고하는 오빠는 왕실 근위병으로 변신완료했다.

놀이터의 친구들은 사교 파티에 초대된 인물들로 둔갑했고
같이 운동하고 발레하던 친구들도 무도회의 손님들로 변신했다.
저마다 화려한 옷을 잘 차려입고서 말이다.
루비의 상상 속 무도회 장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꽤 재미 있다.
나도 어릴 때 저런 그림 많이 그려보고 살았는데 말이다.^^

왕관을 써보는 상상, 여왕님과 함께 오페라를 관람하는 상상, 모두가 루비를 흥분시키는 것들이다.
인형극 속의 황소마저도 상상 속 오페라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다.
놀라운 루비의 능력!

하지만 덤벙거리고 덜렁거리는 루비의 태도 때문에 식구들은 걱저잉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두들 한 마디씩 보태며 충고를 해주지만 과연 루비가 새겨들었을지 의문!

그리고 드디어 여왕님을 만나는 그 날!
서둘러 준비하는 가운데에도 엄마는 지켜야 할 예의범절을 계속 읊어주신다.
음식을 씹을 때는 입을 꼭 다물어야 하고, 입에 음식이 있을 때는 말하지 말고,
공손하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하고 등등등...
그리고 마침내 도착하고 말았다.

여왕님께로. 그 여왕님이란 루비의 할머니!
이 작품의 작가인 새러 퍼거슨의 딸들에게 있을 법한, 혹은 정말 있었을 듯한 이야기의 전개다.
그래도 명색이 여왕님이니 풀샷 한 컷 찍었다.^^
사치스럽지 않고 지나치게 위압적이지 않은 소박하고 예쁜 집으로의 초대라 더 마음에 든다.

응접실의 풍경도 여왕님스럽다. 왕실 관련 인물들의 사진과
왕조사 책들, 황금 마차 조각 등등...

다행히 루비는 여왕님 앞에서 실례를 하지 않나 보다.
설사 실례를 한다 할지라도 여왕님에게는 사랑스런 손녀 딸이니 뭐가 문제이겠는가.
진열장 속 인형들에도 눈길이 간다. 예쁘다.
맨 뒷장도 맨 앞장과 대칭 구조지만 할머니에게 드리는 루비의 깜찍한 답장이 보태져서 다 훈훈하다.
조카 보여주려고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조카도 나처럼 재밌게 봤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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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사이 2011-04-04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막내는 이 시리즈 책들에 시큰둥인데
이웃집 아이는 낸시 시리즈들을 모두 좋아해요.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해서 글을 읽지 못 하는데도
이 책을 펼쳐놓고 얼마나 꼼꼼히 파고들 듯이 보는지 몰라요.
아무래도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저 그림들 때문이겠죠?

마노아 2011-04-04 18:15   좋아요 0 | URL
낸시 시리즈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알라딘에서 못 찾았어요.
제가 검색어를 잘못 입력했나봐요.
우리 조카도 아직 한글 떼기 전이어서 그림만 보고 즐기라는 의미로 골라봤어요.
눈이 즐거웠으면 해요.^^

하늘바람 2011-04-0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대장을 본 순간 저도 막 설레네요. 음 태은이도 좋아할듯싶어요

마노아 2011-04-04 18:15   좋아요 0 | URL
태은이도 좋아할 것 같아요. 봄기운이 느껴지는 책이에요.^^

2011-04-04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4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쨍아 우리시 그림책 12
천정철 시, 이광익 그림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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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 앞에서
쨍아가 죽었습니다.
과꽃 나무 밑에서 죽었습니다.

대체 쨍아가 누굴까요?
좀 더 지켜봐야겠네요.

개미들이 장사를 지내 준다고
작은 개미 앞뒤 서서

발을 맞추고
왕개미는 뒤에서
딸-랑딸랑
딸-랑딸랑

저기 보이는 것은 잠자리군요.
쨍아는 잠자리의 사투리였어요.

딸-랑딸랑

개미들의 장사는 잠자리 사체를 분해해서 나누는 것이건만,
그 모습이 잔인하거나 서글픈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영롱한 빛깔로 표현되었어요.
빛들이 함께 와서 춤을 출 것만 같은 그림입니다.

가을볕이 따뜻이
비추이는데
쨍아 장례 행렬이
길게 갑니다.

길게 갑니다.

소용돌이 치는 저 물결 속에서
쨍아가 다시 새롭게 태어날 것만 같습니다.
개미에게로, 흙으로, 우주로...

천정철 시인의 쨍아는 1925년 '어린이' 11월 호에 발표되었습니다.
어린이는 방정환 선생님이 만든 잡지이지요.
달.리에서 기획한 책 중에 마음에 드는 책이 참 많았어요.
게다가 우리시그림책의 감동도 늘 벅찼지요.
시리즈 15편 중에서 7편을 보았네요.
더 찾아 보고 싶은 책들이 많이 남아서 고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광익 작가님의 다른 그림도 더 살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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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11-04-01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 이 책, 이 그림 너무 좋다... 뭐라 더 할말을 잃었어요.

마노아 2011-04-01 02:04   좋아요 0 | URL
말을 잃게 만드는 시와 그림이에요. 저도 넋을 놓고 보았답니다.^^

섬사이 2011-04-0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그림책, 정말 좋죠?
그림이 또 하나의 시였어요.

마노아 2011-04-01 13:36   좋아요 0 | URL
그림이 또 하나의 시란 표현 정말 근사해요. 그 말이 딱이에요. 참 좋았어요.^^

2011-04-01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4-01 13: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pjy 2011-04-01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적이고 또 감성적이고 감동적이고,, 이거 정말 멋지군요~~

마노아 2011-04-01 23:52   좋아요 0 | URL
3박자를 고루 갖춘 좋은 책이에요. 중고샵에서 건지면서 만세를 불렀더랬어요.^^

꿈꾸는섬 2011-04-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너무 좋아요.^^

마노아 2011-04-02 01:23   좋아요 0 | URL
이렇게 접하는 시가 참 고와요.^^

순오기 2011-04-02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쨍아~~~~~~ 이 책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얼얼하던데...

마노아 2011-04-03 01:09   좋아요 0 | URL
얼얼하다는 표현이 확 와 닿아요!
 
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구판절판


지우개 따먹기라고 해서 내가 처음에 생각한 게임은 지우개의 모서리를 눌러서 상대방 지우개 위로 올라가는 것을 떠올렸다.(이 방법의 게임도 뒤에 나오긴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한 지우개 따먹기는 알까기와 똑같았다. 손가락을 튕겨서 상대방 지우개를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방바닥이 아닌 책상이라면 알까기보다 지우개 따먹기가 훨씬 낫겠다 싶었다. ^^

상보는 지우개 따먹기 대장이다. 그런 상보에게 도전하는 준혁이는 반에서 공부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친구다. 그렇지만 지우개 따먹기만은 상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지우개에 집중하는 저 눈빛을 보시라.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한 판 싸움!

상보의 지우개 상자에는 친구들에게서 이겨서 얻은 지우개가 한가득이다.
엄마가 안 계시고 형제도 없는 상보는 아빠가 회사에서 늦게 귀가하시면 무척 심심해했다. 그러다가 지우개를 갖고 놀기 시작한 것인데 알고 보니 아빠도 어릴 적에 지우개 따먹기 대장이었던 것!
아빠는 지금은 회사를 그만두시고 고물상을 차리셨다. 상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좀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아빠와 상보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이라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책을 만들었다. 무려 열 가지에 이르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은 단순히 지우개를 따먹는 데에만 쓰이는 것이 친구와의 관계, 자신과의 다짐 등등 인생의 법칙으로도 작용한다. 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상보와 준혁이, 그리고 홍미의 이야기도 더 들어보자.

홍미의 엄마는 조향사다. 고객이 원하는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 고객이 왜 그 향기를 찾고 있는지 먼저 이야기를 들어보시는 엄마. 그런 엄마와 함께 사는 홍미라면 남의 속내를 좀 더 잘 읽어내는 착한 아이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짝꿍 바꾸는 날. 홍미는 사실 준혁이와 나란히 앉고 싶었다.
공부, 음악, 미술, 체육 못하는 게 없고 얼굴도 잘생긴 준혁이다. 머리카락은 황금색으로 염색했다고 나오는데 왼쪽 그림에서는 황금빛으로 보이지는 않는 게 다소 아쉽다.
줄 선 대로 앉게 되어 있어서 준혁이와 나란히 앉을 뻔 했지만, 눈이 나쁜 미란이가 그 자리에 앉고 홍미는 지저분한 상보와 짝이 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냄새에 민감한 아이가 상보의 퀴퀴한 냄새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빨에 낀 저 미역 가락은 아빠 생신이라고 직접 미역국을 끓인 자랑스러운 흔적이다. 비록 치약이 떨어져서 양치질을 며칠 째 못하고 있지만....;;;

그 후로도 준혁이는 상보에게 재도전에 재도전을 감행했다. 때로 억지를 쓰고, 어쩌다 이기면 상보의 지우개를 험하게 다뤄 그동안 상한 자존심을 달래곤 했는데 그때마다 상보는 '지우개 따먹기 법칙'을 들먹이며 페어 플레이를 외쳤다. 친구들은 모르는 아빠와 상보만의 법칙이니 잘 먹혀들지는 않지만 말이다.

뒷산으로 야생화 공부하기로 한 날, 모두들 도시락을 지참했지만 상보는 빈 손이었다. 선생님께 도시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이미 다른 친구들이 갖다 놓은 것들이 있어 선생님은 친구에게 양보할 것을 권했다. 상보가 빈 가방으로 온 것을 아는 홍미는 상보를 찾아 나선다. 들판 위쪽 너럭 바위에 앉아서도 돌멩이로 지우개 따먹기 연습을 하는 상보. 홍미는 이참에 연습이란 걸 해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겨보기도 한다. 사소한 거지만 홍미에게는 기쁜 일.

상보가 외롭거나 배고프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자상한 아빠가 도시락을 갖고 오셨다. 비록 똥을 제거하지 않은 멸치가 들어간 김밥이지만, 아빠의 사랑이 가득 든 도시락이었다.
상보의 외관은 외롭고 초라해 보이기도 하건만, 씩씩하고 당당한 이유는 이런 아빠의 보살핌 덕분일 것이다.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것까지 더 열심히 챙겨주시는 좋은 아버지다.

준혁이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다. 홍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직접 향수를 만들었다. 준혁이를 생각하며 근사한 이름도 지었다. '황금 왕자!'
하지만 준혁이의 상태는 결코 황금 왕자가 아니다. 거만하고 욕심 많고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친구를 깔보고, 정성이 깃든 선물의 가치를 아직 알아보지 못한다. 착한 인성의 준혁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련과 보다 많은 감동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그나저나 직접 만든 향수라니,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비누도 (딱 한 번)만들어 보았고 빵도 만들어 보았는데 문득 향수에 발동이 걸릴락 말락~

홍미가 상보의 집을 찾아갔다가 상보의 다락방에서 밖을 내다보는 장면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를 색깔로 치환해서 그림으로 상상해 보는 홍미의 발상에 따라 바깥 풍경을 색으로 표현했다. 그것이 바로 노을지는 붉은 풍경이다. 붉지만 다양한 색이 녹아 있는 따뜻한 정경이다.
아아, 그런데 비탈길에서 저리 자전거를 타다니 너무 무섭다.
외발 달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보면 아찔한데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책에서는 이야기의 진행상 지우개 따먹기 법칙이 순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5-2-4-6-1-7-8-3-9-10의 순서로 소개되었는데, 원래 정해놓은 법칙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1. 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2. 가벼운 지우개를 사용할 것
3. 지우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미리 겁먹지 말 것
4.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켜라
5. 납작한 지우개는 피한다
6. 지우개 따먹기는 둘이 해야 한다
7.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말 것
8. 집중하기
9. 지우개 크기는 비슷해야 한다
10. 지우개 따먹기를 할 때 상대는 나의 친구이다

저 법칙에서 '지우개'를 지우고 읽어본다면 인생에 대한 조언으로도 충분히 들린다. 특히 마지막 법칙이 가장 멋있다. 승부욕이 앞서고 욕심으로 마음이 어두워질 때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 더 중요한 건 내가 얻을 포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100여 쪽에 이르는 짧은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아이들의 다툼과 화해, 고민과 성장이 잘 녹아 있다. 캐릭터가 뚜렷하고 저마다의 장점이 분명한 아이들이다. 즐겁게 책을 읽고, 덤으로 지우개 따먹기 게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오랜만에 나도 해보고 싶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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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3-31 0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우개 따먹기의 10가지 법칙은 인생의 법칙이기도 하지요~~~ 꽤 깊이가 느껴지는 동화예요.

2011-03-31 0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1-03-31 10:40   좋아요 0 | URL
짧은 이야기에 메시지가 제법 많아서 인상적이었어요.
잊고 있다가 생각나서 부랴부랴 리뷰를 썼지요.^^

후애(厚愛) 2011-03-31 0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에 딱지 따 먹기와 구슬 따먹기 했었어요. ㅋㅋㅋ

마노아 2011-03-31 10:41   좋아요 0 | URL
딱지는 동그랗게 생긴 녀석을 많이 했고 구슬 따먹기는 거의 못해봤어요.
참 재밌어 보였는데 그게 아쉬워요.^^

양철나무꾼 2011-04-0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순오기님 서재에서도 봤는데...
전 잠자리의 장례행렬보다는 이런 류의 그림이좋아요~^^

마노아 2011-04-01 00:51   좋아요 0 | URL
편안한 그림체죠? 저는 잠자리쪽 그림이 더 좋긴 해요.
그런데 저 작가의 다른 책들은 저런 분위기의 책이 아닌가봐요.
미리보기로 봤더니 비슷한 느낌의 작품이 없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작가는 김동성 씨예요.^^

꿈꾸는섬 2011-04-02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순오기님 서재에서 봐서 그런가 친근하네요.ㅎㅎ

마노아 2011-04-02 01:23   좋아요 0 | URL
리뷰는 제가 먼저 올렸는데 두 분이 연달아서 거기서부터 보고 오셨군요.^^ㅎㅎㅎ
 
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친구의 딸은 이제 4학년과 2학년이 되었다. 어떤 책을 선물할까 책장을 훑아보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1013이라고 하니 딱 적당해 보인다.  

1976년에 독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확실히 1차 2차 세계 대전을 경험한 할머니가 나오는 것을 보고 꽤 오래전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오래되어서 감동의 빛이 바래진 건 물론 아니다. 

에르나 비텔 부인이 예순 여섯 살이었을 때 아들 부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리하여 손자는 할머니가 돌보게 되었다. 아이의 이름은 칼 에른스트인데 처음부터 줄곧 칼레라고 불리었다. 칼레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는 고작 다섯 살이었다. 할머니는 무척 가난했지만 손자를 고아원에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승강기가 없는 아파트의 5층에 살면서 할머니는 무거운 다리로 열심히 아이를 돌보셨다. 

할머니는 칼레의 아버지를 아주 어린애처럼 취급하곤 하셨고, 아빠와 엄마를 모두 별명으로 불렀지만 칼레에게는 그러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를 조심스럽게 대하셨다. 그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서 말이다. 

어린 아이와 사는 일은 긴장되고 피곤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틀니를 보고 놀라는 아이에게 설명도 해주어야 했고, 엄마에게 음식을 후루룩 소리나게 먹으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아이 덕분에 뜨거운 커피를 소리내지 않고 마시느라 애를 먹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손자를 오냐오냐 키운 것은 아니다. 야단쳐야 할 때는 야단도 쳐주시고, 편을 들어주실 때는 또 확실히 편도 들어주셨다. 가게에서 칼레가 오이를 만지자 가게 주인이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말라고 하자 할머니의 대답이 걸작이다. "저 오이를 칼레 손만큼 자주 씻어 주었나요?"  

혀짧은 소리를 내는 친구를 보고 배꼽 잡고 웃는 칼레에게 할머니는 주의를 주셨다. 누구에게나 흠은 있는 법이라고. 자기는 흠이 없다고 바로 대답하는 칼레에게 할머니가 말씀하신다. "없다고 말하는 그게 바로 네 흠이야!" 그러면서 당신에게도 흠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할머니. 

할머니와의 일상은 세대차이로 인한 갈등도 많이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가 몇 십년 전 일을 흐뭇하게 말씀하시는 것이 지루하고 재미도 없고 같은 말 또 듣는 것도 따분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추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설명하신다. 현재가 늘 최고는 아니라고... 추억을 이해하기엔 칼레가 너무 어리지만, 훗날 자신에게도 추억이라는 것을 되새김할 때가 되면 칼레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최고의 자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칼레는 부모님과 보낸 시간보다 할머니와 보낸 시간이 더 많아질 테니까...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할머니는 칼레에게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안간 힘을 쓰셨다. 노구를 이끌고 여행을 다녀오셨고, 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했지만 축구 수업도 받게 하셨다. 아이가 다쳤을 때는 전단지 돌리는 일도 폐하고 아이의 곁을 지켰다. 아이 앞으로 온 편지가 궁금했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먼저 뜯는 실례를 범하지도 않았다. 가끔 주책을 부리실 때도 있지만 그 조차도 할머니는 귀여우셨다. 칼레는 할머니의 사랑과 헌신으로 열 살까지 성장했다.  

그 무렵에 할머니께서 많이 아프셨다. 감기였지만 늙고 쇠약한 몸에는 이겨내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칼레가 열 살이 되었다는 건 할머니가 벌서 일흔을 넘기셨다는 얘기이니까. 할머니도 칼레도 급작스런 이별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할머니를 잃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이를 또 혼자 남겨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들을 얼마나 공포스럽게 했을지 충분히 그려졌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마음의 대비가 필요함을 서로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애틋하고 돈독해질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이다. 

책은 칼레와 할머니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그 때마다 할머니의 속말 코멘트가 부록처럼 따라온다. 할머니의 진심을 잘 전달해주는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샬롯 졸로토의 '우리 동네 할머니'가 떠오른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책을 많이 본 것 같은데 리스트를 함 만들어봄직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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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3-28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할머니,할아버지 하면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 제일 먼저 떠올라요.
리뷰를 보니 이 책도 재밌겠는걸요~
이런 책, 책의 정보는 어디서 구하세요?
저 위의 '실과 흔적' 저도 찜해 놨어요~^^

마노아 2011-03-28 10:03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서지 정보만 보고서 구입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책이에요.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도 참 좋았어요.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중에 듣고 엄청 충격 받았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작품은 좋지만요.^^
저 꿈에 양철댁님이 나왔어요.(>_<)

양철나무꾼 2011-03-29 14:38   좋아요 0 | URL
작가가 뭐 KKK단이었다나 그랬죠?
전 뭐 신경 안 써요, 정말로 그가 인종주의자였다면 저런 책을 쓸 수 없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복권 사셔야 겠네요, 분명 돼지꿈이었을 거예요~^^

마노아 2011-03-29 15: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작가가 인종주의자라는 게 거짓말로 들릴만큼 작품의 감동이 컸어요.
또 다른 책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 책은 참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으하하핫, 돼지꿈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기분 좋은 꿈이었어요.^0^

진주 2011-03-28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리뷰 썼던 기억나네요.
독일 할머니라서 그런지 참 이성적이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의 할머니는 한마디로 情인데!

마노아 2011-03-28 22:02   좋아요 0 | URL
저는 독일 할머니 치고는 생각보다 정감어리다 생각했어요. 우리나라 할머니를 떠올리니 영화 '집으로'가 떠올라요. 유승호군이 그때 참 어렸는데...ㅎㅎㅎ
 
애니의 노래 어린이를 위한 인생 이야기 7
미스카 마일즈 지음, 피터 패놀 그림, 노경실 옮김 / 새터 / 2002년 10월
구판절판


애니는 나바호라는 인디언 마을에 살아요.
나바호는 간간이 잔물결을 일으키는 넓은 모래밭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애니의 집은 아늑하고 편안한 호간이지요.
호간은 북미 인디언의 집으로 진흙이나 때 등으로 덮어 만들었어요.
호박들이 노랗게 익어 가고 옥수수 수염은 갈색으로 변해갔어요.
아침이 되면 애니의 부모님은 울타리 문을 활짝 열어서 양들이 풀을 뜯어 먹게 했어요.
애니는 양들을 지키는 일을 돕고, 옥수수밭으로 물통을 날라요.
일이 끝나면 애니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서 노란 스쿨버스를 기다린답니다.

할머니는 애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었어요.
애니는 할머니와 함께 있으면 할머니가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할머니와 애니는 재미난 시간을 많이 보냈지만, 할머니가 힘없이 가만히 계실 때에는 애니도 할머니가 이젠많이 늙으셨다는 것을 깨닫곤 해요.
할머니는 넌지시 말씀하십니다.
"애니야, 너도 이제 베틀 짜는 법을 배워야 할 때가 됐구나."
할머니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신 거지만 애니는 아직 받아들일 때가 되어 있지 않았어요.

애니의 가족은 모두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요.
아버지는 은과 불을 가지고 멋지고 묵직한 목걸이를 만드셨고, 엄마는 베틀에서 천을 짰지요.
엄마도 애니에게 베틀 짜는 법을 배우겠냐고 물으셨지만 애니는 고개를 저었어요.
아직 애니에게는 베틀을 짜는 할머니와 엄마의 모습이 더 익숙한 것이지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지금 짜고 있는 양탄자가 완성될 즈음에 땅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요.
애니는 충격을 받았어요.
할머니가 미리 주시는 유품으로 베틀 짜는 막대기를 고르긴 했지만 아직 이별을 준비할 마음을 갖지 못한 거예요.

다음 날, 양탄자가 애니의 허리보다 높이 짜여져 있는 것을 보고 애니는 충격을 받았어요. 양탄자를 천천히 짜주기를 바랐지만, 양탄자를 짜서 팔아야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엄마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하지요.
애니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엄마가 양탄자를 짤 수 없게 만들 묘안을 짜내려는 것이지요.
일부러 학교에서 말썽을 피워도 봅니다. 엄마가 학교에 불려오느라 양탄자를 짤 수 없기를 바라면서요.

울타리 문을 열어서 양들을 풀어버리기도 합니다.

또 다른 날에는 엄마가 열심히 짜놓은 양탄자를 일부러 풀어버리기도 하고요.
셋째 날 밤에도 한밤중에 일어난 애니는 살금살금 베틀로 가려했어요.
그때 부드러운 손이 애니의 어깨를 잡습니다.
바로 할머니였던 거죠.
애니는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설명하고 싶었지만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얼른 담요 속으로 들어갔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이미 애니의 마음을 알고 계실 테지요.

아침에 애니는 할머니를 따라 옥수수밭으로 갔어요.
할머니는 천천히 걸었고, 애니도 할머니의 느린 걸음에 자기의 걸음을 맞추었지요.
이제 할머니는 손녀에게 자신이 가야 함을, 남겨진 자와 가야 하는 자의 시간에 대해서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이 영영 이별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어야 했죠.
할머니는 분명 온화한 목소리로 애니에게 말씀해 주셨을 겁니다.
애니도 이제는 할머니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할머니가 땅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것처럼 자신도 언젠가는 그렇게 땅의 어머니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요.
애니와 할머니는 말없이 손을 꼭 잡은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애니는 베틀 짜는 법을 배워야 할 때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할머니께서 미리 물려주신 베틀 짜는 막대기와 일체가 되어야 할 때라는 것을요.
언젠가 시간이 흘러 애니에게도 지금의 할머니처럼 가야할 때를 설명할 시간이 올 테지요. 애니의 손녀도 애니처럼 할머니의 손때 묻은 베틀 짜는 막대기를 소중히 쓸 테지요.
그렇게 이들의 노래는 영원히 끊기지 않고 오래오래 이어져 내려올 겁니다.
아침에 동쪽에서 뜬 해가 저녁에 땅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림이 담백합니다. 펜선인지 판화인지 잘 모르겠지만, 색을 많이 쓰지 않고 거의 흑백에 강조하는 부분만 약간의 컬러를 썼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은 채 욕심없이 사는 인디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그렇지만 그림보다 글이 더 마음을 울리는군요. 이렇게 인생의 큰 깨달음, 자연의 순환, 삶의 이치...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그림책이 무엇이 있던가 꼽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좋은 책이어서 내 책 한 권, 조카 책 한 권을 따로 구입했어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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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3-20 0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요.^^
주말은 잘 보내고 계시지요?

마노아 2011-03-20 13:16   좋아요 0 | URL
좋은 책들이 많아서 참 다행이에요.^^
기침 감기로 목이 좀 고생을 하고 있지만 제법 괜찮은 주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