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된 아빠 살림어린이 그림책 20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노경실 옮김 / 살림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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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아기가 된 아빠 이야기다.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아이+1명을 추가해서 이야기하곤 한다.
아이 아빠 역시 아이라는 뜻.
어느 집이나 그런 얘기는 꼭 들려온다.
이 책속에서는 그 상태가 많이 심하다.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것을 최고의 매력으로 생각하는 존의 아빠.
젊은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머리 모양도 자주 바꾸고
시끄러운 음악을 즐겨 들으며 장난감도 하나 가득인 존의 아빠.
정말 젊어서 젊음을 누리기보다는, 젊어 보이고 싶어서 악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였다.

거울 앞에서 멋 부리기 바쁘고,
조금이라도 아프려고 하면 온갖 엄살을 부리던 존의 아빠가,
하루는 건강식품 가게에서 수상한 음료수를 사 왔다.
'젊음을 돌려드립니다'라고 쓰인 음료수 한 병을 다 마셔 버린 아빠.
엄마랑 같이 나눠 먹든가 하지 혼자 홀랑 다 마셔버리다니,
분명 후환이 있을 터!
과하게 젊음을 돌려받아 아기가 되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노안은 그대로 가지고 간 채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영화 버전 말고 소설 버전으로!

엄마는 기저귀를 갈아주고 존이 쓰던 아기 의자를 꺼내와 앉힌 뒤 이유식도 만들어 주셨다.
존과 엄마는 아빠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귀엽다고 야단법석이었단다.
진심으로 귀여웠을까?
난 좀 징그럽던데...;;;;

존의 엄마는 속도 좋다. 똥 기저귀도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갈아주신다.
존은 아빠와 놀아주려고 탑도 쌓아보지만 아빠는 여전히 아들과 노는 데에 관심이 없다.
아기용 변기에서 울음을 터트린 존의 아빠.
아, 너무 못나 보인다.
다행히 이 해프닝은 오래 가지 않았다.
금세 원위치로 돌아왔지만 그것이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하는 존의 아빠.
과연, 그게 꿈이었을까?
존의 아빠는 여전히 젊은 척하는 오빠로 살아갈 수 있을까?
쉽진 않아보인다.
마지막 사진은 숨겨주는 센스!

같이 도착한 올챙이 그림책 광고를 겸한 숫자 익히기 포스터와 워크북이다.
본편의 책보다 워크북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책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가족 생각도 실컷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었으니...

우리 아빠의 사진을 붙여보고
아기가 된 아빠와 해보고 싶은 놀이,
그리고 어른인 아빠와 해보고 싶은 것들을 그려볼 수 있는 공간이다.
많은 아빠들이 정말 아기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게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많이 못 보내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이가 이런 그림을 그려놓고, 심지어 벽에 붙여놓고 아빠를 짱구의 눈빛 공격으로 바라본다면, 아빠들도 뭔가 깨닫는 게 있지 않을까.

책만 보면 유아용 책으로 꼽을 법한데, 워크북에는 편지 쓰는 곳도 있어서 어린이까지 연령대를 좀 더 높여도 되겠다.
꼭 아빠로 한정지을 필요 없이 엄마에게 편지를 써도 좋겠다.
때마침 어버이 날도 다가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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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03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렇게 포토리뷰로 봐야 멋지지요

마노아 2011-05-03 14:38   좋아요 0 | URL
이제는 포토리뷰가 습관이 되어버렸어요.^^

순오기 2011-05-03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서니 브라운 책은 다 관심이 가는데, 어째 이 책은 별로 안보고 싶던데~
젊은 아빠보다 잘 놀아주는 아빠에 한표!

마노아 2011-05-03 14:39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재치와 유머는 별로 느껴지지 않아요.
잘 놀아주는 아빠를 대박 원해요.^^ㅎㅎㅎ

섬사이 2011-05-03 0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 속 아빠가 어쩐지 존 트라볼트를 닮은 것 같아요. ^^

마노아 2011-05-03 14:39   좋아요 0 | URL
오, 맞아요. 저도 존 트라볼타가 떠올랐어요.ㅎㅎㅎ
 
10살에 꼭 만나야 할 100명의 직업인
한선정 글, 이동철 만화, 이규철 AZA 스튜디오 사진 / 조선북스 / 2008년 9월
절판


열 살이면 되고 싶은 것도 많고 알고 싶은 직업군도 한참 많을 나이. 그리고 원대한 꿈을 눈치보지 않고 맘껏 품어볼 수 있는 나이.
그 아이들을 위한 직업 소개 책이다.

먼저 책의 구성을 보자.
100가지 직업을 15개로 분류해 놓았다.
음악과 춤이 좋아/미술이 좋아/책이 좋아/동물과 자연이 좋아/공부가 좋아
컴퓨터가 좋아/방송이 좋아/영화가 좋아/운동과 여행이 좋아/남을 돕는 게 좋아/
사회가 좋아/사람을 만나는 게 좋아/디자인이 좋아/새로운 걸 만드는 게 좋아/경제가 좋아

각각의 인터뷰 대상자에게 10살 때 꾸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도 물었다.
자신이 품은 꿈을 이룬 대상은 25%에 이른다.
어떤 과정을 통해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짧게 소개하였고
그 직업을 가지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지도 물어보았다.
이 직업을 갖기 위해 기본적으로 밟게 되는 공부 코스도 간단히 알려준다.

호기심 해결 코너에서는 그 직업에 대해서 갖게 되는 궁금한 점을 소개했고,
어떤 어린이에게 이 직업이 좋은지, 무엇을 해야 도움이 되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눈길 끄는 직업들을 몇 개 짚어보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저작권 에이전트'였다.
소개된 이구용 씨는 1998년 독일의 한 저작권 에이전트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다음날 노벨문학상 발표가 났다.
그리고 그 에이전트과 관리하는 주제 사라마구가 상을 받아서 국내 작품에 대해 독점 관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막힌 우연과 운이다.
날마다 쏟아지는 책들에 거의 깔릴 것 같은 사람일 것이다.
좋은 책이지만 출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서 사진을 찍어봤다.
책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번역비와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렵거나 책 속에 담긴 사진 등의 저작권 문제가 정리되지 않아서 출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책은 2008년도에 출판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언급된 '세기의 편지들'은 출간되지 못했나보다. 판권 문제가 빨리 정리되었으면...

번역가 편의 일러스트가 재밌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거짓말 잘하고, 약속 안 지키고 목소리 큰 사람이란 뜻인데, 풀어쓰자니 너무 길고, 이걸 한 단어로 압축할 단어가 필요했다.
그리고 찾아낸 단어 '정치인'
아, 기막힌 번역이건만 씁쓸하다. 더군다나 아이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을 번역할 때 보통 우리 말로 세 번 정도 옮긴다고 소개했다.
인터뷰이는 김주경 씨인데 프랑스어를 우리말로 그대로 옮기는 초벌번역, 두번째는 우리나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문장을 고치는 단계, 그리고 세번째는 소리내어 읽으면서 매끄럽게 다듬는다고 한다.
전문 서적을 번역하기 위해선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더해주어야 하니 번역가들의 교양 수준은 어마어마할 것 같다. 동시 통역가들도 비슷할 듯.

동물 조련사 편에서 고래를 구분해 주었다.
돌고래처럼 이빨을 가진 이빨 고래, 이빨 대신 수염을 가진 수염 고래.
돌고래는 숨 쉬는 데 필요한 콧구멍이 한 개이고, 수염 고래는 두 개란다. 어머나, 신기하다.
수염 고래는 크릴 새우를 좋아하고, 돌고래는 생선, 새우, 문어, 오징어 등을 먹는데 씹지 않고 통째로 삼킨다고 한다.
돌고래의 식성이 생각보다 육식스럽네.

프로게이머가 명심해야 할 일로 꼽아준 대목 중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강조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프로 게이머뿐 아니라 어떤 직업군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념할 부분이다.
또 세번째로 지적한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조언도 인상적이다.
단지 게임에 날 새는 줄 모르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서 덤빌 직업은 분명히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겠다.

성우 편에서 실린 일러스트인데 무척 재밌다.
최수진 씨의 실화인가보다.
상대 성우는 정말 감정 잡기 힘들었을 듯.
내가 좋아하는 성우 강수진 씨가 문득 떠올랐다.^^

쇼핑 호스트 편의 호기심 해결에서 홈쇼핑에서 팔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었다.
약이나 술, 담배 그리고 사행심을 조장하는 상품은 팔 수 없다고 한다.
뭐 이건 당연한 거고...
분유 또한 모유 수유를 권장하기 때문에 판매할 수 없다고 했다.
아핫, 그랬구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은 제대로 안 만들면서 말이지....;;;;;;

건축가 문훈이 소개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건물 세 개다.
프랑스 대사관, 폐광촌, 소쇄원
소쇄원 밖에 보질 못했다.
소쉐원은 누구라도 손 꼽을만한 아름다운 정원을 갖고 있다.
프랑스 대사관 사진을 찾아 보니 지붕 처마가 한국의 정자 느낌을 갖고 있다. 신선하다.

도시 건축가 승효상 씨는 제일 좋은 건축 재료를 시간이라고 꼽았다.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도시들이 오랜세월을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만들어진 모습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서울은 지나치게 인위적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사가 깊은 것에 비해서, 역사의 숨결을 느끼긴 좀 힘들지 싶다. 아쉽다.

파티시에 편에서 몇 가지 빵의 유래를 소개했다.
베이글과 크루아상, 카스텔라였는데 베이글이 독특하다.
오스트리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불리해지자 폴란드에 구원병을 요청했고, 폴란드 기마병의 도움으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등자 모양의 빵을 만든 것이 베이글의 시초라고 한다. 베이글이 딱딱한 것도 같은 이유일까? ^^

200쪽이 조금 넘는 책인데 글밥이 많아서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한 자리에서 다 읽으면 지치기 쉬우므로 관심가는 직업군부터 골라서 읽어보는 게 좋겠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그 안에서 좀 더 구체적인 직업을 만나보면 꿈을 조각하는 것이 더 쉬워질 것이다.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인물들을 만나는 것도 반가웠고, 몰랐던 직업이지만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을 소개받아 즐겁기도 했다.
특히 문지애 아나운서의 입사 면접 때의 발언이 뭉클하다.

"지름길을 찾지 않았습니다. 늦더라도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한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죽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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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5-0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사진 업로드 기능에 문제가 있나 보다. 추가했던 사진 한장이 엑박으로 나오더니 글 올리자 사진이 날아가면서 같이 썼던 글도 날아갔다.
이렇게 황당할 데가...ㅜ.ㅜ

pjy 2011-05-02 17:24   좋아요 0 | URL
해결이 언젠가 되겠죠~에휴휴~ 여행기를 쓰긴 썼는데 이미지땜에 천천히 올릴려고 생각중입니다^^;

마노아 2011-05-02 20:37   좋아요 0 | URL
그나마 하나가 날아갔으니 무시하고 올렸지, 다 날아갔으면 그 후폭풍을 어떻게 했을지...;;;;
pjy님은 천천히 올리셔요. 여행기에 이미지가 없으면 안 되죠.^^
 
장승 - 솔거나라 전통문화 그림책 8 전통문화 그림책 솔거나라 18
주강현 지음, 이규경 그림 / 보림 / 1995년 2월
평점 :
절판


주강현 씨가 글을 썼다고 해서 그림책이지만 뭐랄까, 보다 학술적인 느낌의 책을 상상했다.  

그런데 책을 펴는 순간 난감했던 것은 그림이었다. 

 

도저히 학술적인 느낌과는 어울릴 수 없는 그림이다. 그리고 저 광활한 여백이라니, 말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설명할 것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마구 실망이 밀려올 즈음, 나름의 반전이 있었다.  

뜻밖에도, 재밌는 거다. 

나무의 사계절을 보여준 뒤, 시집 장가가는 나무들로 인해 모두가 흥분된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신랑 각시되어 마을 입구에 우뚝 서게 된 장승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앞에 마을 처녀 총각들도 큰절을 올리며 저마다 소원을 빈다.  

시집 장가 가게 해주세요! 

올 농사 풍년들게 해주세요! 

아, 나라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하나... 중얼중얼... 소원이 너무 많은 걸! 

 

뒷부분에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읽는 장승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얼핏 험악한 얼굴로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해학적인 우리네 얼굴의 장승 사진도 반갑다. 

심슨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첫 장승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이읍리의 벅수다. 벅수는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이름이다. 

두번째 사진은 전남 승주군 송광면 대흥리의 벅수다. 코가 높다라한 것이 오똑한 걸! 

마지막의 퉁퉁한 얼굴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벽송사 입구의 호법대신이다. 온갖 잡신들이 들어섰다가 호되게 놀라며 당장 도망칠 듯 부리부리하다. 

요새는 시골에 가도 축소된 도시 느낌이 나서 장승들이 잘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 지키고 친근해져야 마땅한 우리 유산에 대한 반가운 그림책이다. 비록 절판되었지만 이런 시리즈를 접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제주도 장승 돌하르방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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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9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마노아님의 그림책 구경하러 왔잖아요.
역시..... 이쁜 사진이예요. 전 색상 이쁜 그림책이 넘 좋아요.
(그렇다고 구매하지는 않고, 대신 마노아님 서재 오기언니 서재 같은하늘님 서재에서 눈팅 열심히.. ㅋ)

마노아 2011-04-29 23:23   좋아요 0 | URL
처음에 그림이 너무 유치해서 실망했는데 보다보니까 정감도 가고 어린이 눈높이에 잘 맞춘 것 같아서 호감으로 변했어요.
제가 앞으로도 포토 리뷰 많이 쓸 테니 자주 감상하셔요~!

버벌 2011-04-2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역사를 좋아해요. 그리고 이런 토속신앙을 너무 좋아합니다. 솟대도 좋아하고, 정승도 좋아하고, 무당도 엄청나게 좋아합니다. 잘 알지 못해서. 그게 문제입니다. ㅡㅡ;;

마노아 2011-04-29 23:48   좋아요 0 | URL
헤헷, 역사를 좋아하는 버벌 님이 근사해요. 솟대 참 멋져요. 솟대 박물관도 함 가봐야 하는데 계속 미루게 되네요.^^;;;

양철나무꾼 2011-04-30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주강현 님 좀 애정해요.
근데 그림만 보이고, 글이 없어 아쉽네요.
그림을 보니 괜찮을 듯 한데...절판이네요~ㅠ.ㅠ

마노아 2011-04-30 23:00   좋아요 0 | URL
글이 너무 적지요? 검색해 보니 장승 관련 어린이 책이 더 있나봐요.
서점에 가서 찾아보고 싶어요. 아님 도서관이나...
어른용 책은 너무 길고, 이보다 좀 더 내용을 보강한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한여름 밤 이야기 비룡소의 그림동화 106
아이린 하스 글 그림, 백영미 옮김 / 비룡소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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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더운 여름 밤
루시가 창문을 열자
개구리 한 마리가 방으로 폴짝 뛰어 들더니
루시에게 생일잔치 초대장을 주었다.
게다가 생일잔치 때 쓰라고 요술종이 모자도 하나 주는 게 아닌가.
개구리는 다시 폴짝 뛰어 정원으로 돌아갔다.
루시로서는 느닷없는 이 한밤의 초대장,
하지만 거절하기에는 지나치게 아까운 기대가 아닌가!
더구나 요술모자도 받았으니 가야하는 건 당연지사.

요술 모자를 쓰고 집 밖으로 나가자 달님의 부드러운 손길이 모자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루시는 나뭇잎만큼 작아지고 말았다.
정원의 딱정벌레들이 강아지만큼 커 보이고
불 켜진 할머니 방 창문은 하늘만큼 높아 보였다.
모든 것이 어리둥절해진 루시 앞에 택시 한대가 끽! 서버렸다.
아기 새가 운전하는 택시였다.
루시는 자연스럽게 생일잔치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가는 길에 루시의 택시는 여러 친구들을 태우게 되었다.
모자를 꾹 눌러쓴 생쥐 아줌마도 만났고,
조금씩 기어서 열심히 가고 있던 자벌레도 만났다.
낡아 빠진 조그만 인형도 동행이 되어버렸다.
어느 더운 여름밤에 주인이 자신을 잃어버렸다고 고백한 인형은 오래오래 외로워하고 있었다.
루시는 이들 친구들의 손을 잡고 즐거운 마음올 생일 잔치가 열린 곳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올빼미한테 잡아먹힐 뻔한 위험이 닥쳤지만
올빼미가 우산을 빼드는 사이 이들 택시 일행은 빠르게 도망쳤다.
그리고 마침내 커다란 웅덩이 앞에 다다라서는 택시에서 내려 각자 배를 잡아타고 물 위를 달렸다.
루시랑 아기 새랑, 생쥐 아줌마랑, 자벌레랑 인형까지 말이다.
이들이 탄 배가 재밌다.
물고기도 있고, 자라도 있고, 빈 병에 딸기까지.
모두 자신에게 걸맞는 멋진 배가 되어주었다.

정원에 사는 이웃들은 빠짐없이 생일 잔치에 모였다.
귀뚜라미는 여름 노래를 불렀고
쐐기아저씨는 맛 좋은 토끼풀을 내놓았다.
흥겹게 춤을 추는 정원의 식구들!
여백 없이 꽉 들어찬 그림은 일견 숨이 막힐 것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황홀함마저 주는 환상적인 그림 축제를 펼치고 있다.

알고 보니 생일 당사자는 올빼미였다.
벌레를 잡아먹으려고 들이닥쳤던 올빼미는 자신의 생일 축하를 위해 모였다는 것을 알고는 머쓱해지고 만다.
축하 노래도 들었는데 벌레를 잡아먹을 수는 없는 노릇!
오늘 밤만은 생일 케이크만 먹기로 결심한다.
이거, 생일 끝나면 바로 잡아 먹는 것 아닌지 고민을 아니 할 수 없다.

케이크를 먹은 자벌레는 멋진 나방으로 변했고,
날 수 있게 된 자벌레는 아기 새에게도 비행법을 알려 주었다.
루시는 생쥐 아줌마에게 사탕 스무 개를 주며 고양이를 위한 예쁜 모자를 부탁했다.
허헛, 생쥐에게 고양이 모자를 부탁하다니, 루시는 참 너무하네!

생일잔치는 끝이 났고, 아기 새는 루시와 인형을 태우고 밤하늘을 훨훨 날아 할머니 방에 도착했다.
요술 모자를 벗자 루시는 다시 원래의 크기로 커져버렸다.

루시가 데리고 온 인형은 할머니가 어릴 적에 잃어버렸던 소중한 인형이었다.
인형도 옛 주인을 다시 만났고, 할머니도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났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밤이던가!
여름 날의 더위도 잊고 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기쁨을 나눌 수 있다.

이야기의 힘은 다소 약하지만, 그림이 주는 충만감이 있다.
동양적인 느낌의 정반대에 서 있는 그림의 느낌이다.
꽉 차 있고, 풍성하고, 화려하다.
아이의 눈에는 이 싱그럽고 신비로운 정원 속 세계가 꿈나라처럼 멋지게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을 보고 조카가 예쁜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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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4-2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바빠서 살짝만 봤는데
오늘 다시 들려서 찬찬히 보네요.
곱다 곱다 했는데, 다시 보니 더 고와요. 색상이 사르르 녹을거 같아요.
모자 쓴 부엉이 그림도 너무 마음에 들구요.

마노아님, 이쁜 사진들 감사드리고, 즐거운 한주되세요.

마노아 2011-04-25 12:49   좋아요 0 | URL
저는 방금 마고님 서재에서 비창을 들었어요.
마고님은 여기 계셨군요.^^
그림이 환상적인 작가예요.
미처 찾아보지 못했는데 다른 그림책도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마고 님도 한 주 즐겁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셔요.^^

카스피 2011-04-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이 참 환상적이에요^^

마노아 2011-04-26 12:52   좋아요 0 | URL
그림에서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어요.^^
 
크림, 너라면 할 수 있어! 생각하는 숲 10
미야니시 타츠야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10월
구판절판


고양이 크림. 쥐하고도 사이 좋게 지내는 귀여운 크림.
나무에 오르지 못하는 고양이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게 참 좋다.
내 생애 최고의 작품에 꼭 꼽히는 삼미 슈퍼 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생각나게 하는 삼미 정신이다.
고등학교 때 울 학교 교훈은 '하면 된다'라는 교장샘의 신조였는데 출산 휴가 때문에 3개월 간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신 강사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해도 안 되는 게 있지!
그땐 그런 말이 참 충격이었다. 오른쪽 그림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교훈이 더 상식적이었으니까. 경우에 따라서, 오른쪽과 같은 교훈도 필요하고, 왼쪽과 같은 교훈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결정하는 것은 본인 몫!

양파 할아버지는 크림에게 조언을 해주시는 훌륭한 멘토.
인생을 안경과도 비유해 주시고 모자와도 비유해 주신다.
지가한테 꼭 맞는 인생을 살 것.
남의 인생을 기웃거리지 말고 내게 맞지 않는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 것!

기쁜 일이 없었어도 슬픈 일이 없었다면
그 하루는 고맙고 고마운 하루.
내가 좋아하는 이승환의 10집 앨범에는 내 생애 최고의 여자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 중에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지 않아 그렇지만 그리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해"

라는 내용이 나온다. 가수 자신의 생각이 작사를 통해서 노래에 담겼다.
오늘 오후 2시 5분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한 거라고. 행복한 나...

늘 보던 풍경에서 가끔씩 눈높이를 바꿔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나무에 올라가지 못한다면 언덕에 올라가도 좋고,
또 언덕 아래로 내려가서 눈높이를 맞춰야 할 때도 있다.
역시, 그걸 파악하고 선택하는 것은 당신의 일!

먼저 사과하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아니라,
사실은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당신은 진정한 용자!
그리고 용기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한 걸음.

지구 위이 나는 한 줌의 흙보다도 미세한 존재.
하지만 지구를 들어올릴 수 있는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존재.
곰같은 힘이여 솟아라, 번쩍!

하얀 표지보다 겉껍데기를 벗겨낸 속살의 노란 색이 더 마음에 든다.
커스터드 크림을 보는 기분이 든달까.
그러고 보니 주인공 고양이 이름도 크림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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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4-10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너무 좋은데요.^^

마노아 2011-04-10 22:30   좋아요 0 | URL
미야니시 타츠야는 언제나 저를 만족시켜요. ^^

순오기 2011-04-1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니사 타츠야 책은 참 간결하면서도 매력적이에요.^^

마노아 2011-04-11 11:59   좋아요 0 | URL
군더더기가 없어서 좋아요. 어린이도 어른도 같이 만족시켜주어서 또 좋고요.^^

섬사이 2011-04-1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니시 타츠야다~~~~
얼마전에 새로 나온 <찬성>이랑 <고양이가 찍찍>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근데 이 책은 나온지 꽤 됐는데 왜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어요. ^^
막내가 미야니시 타츠야의 책은 거의 다 좋아하는 편인데
그냥 한 권 사줄까요? ^^

마노아 2011-04-11 13:19   좋아요 0 | URL
새로 나온 책은 아직 못 보았어요.
언능 보고 싶어요.
미야니시 타츠야라면 질끈 감고 사도 좋아요.
비도 안 오잖아요.^^ㅎㅎㅎ

pjy 2011-04-1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 대범하게 사과했더니 니탓이야니탓이야돈내놔~~
이런=ㅅ=;; 비주류는 이렇습니다
모든일에는 예외가 있습니다ㅠ.ㅠ

마노아 2011-04-11 23:19   좋아요 0 | URL
아하하핫, 그런 예외를 위한 교본도 필요하지 말입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