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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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문학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었다. 당시 그분이 읽은 책은 "작은 나무야, 작은 나무야"라는 제목이었는데, 내가 다시 그 책을 찾아서 읽을 때에는 제목이 바뀌어 있었다.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 작은 나무야 대신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라고 지은 것을 보고는, 문학적 운율은 좀 떨어지지만, 내용을 생각해 볼 때, 보다 구체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친구에게 선물했고, 고마운 지인에게도 선물하고, 나도 소장해버렸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사도 질리지 않고 뿌듯함을 채워주는 신기한 '맛'과 '멋'을 지닌 책이다.

'인디언'을 떠올리면 신비한 느낌과 함께 막연한 안쓰러움을 느낀다. 고향에서 쫓겨난 그들의 서글픈 운명과 그럼에도 자신들의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는 장인 정신마저도 느껴진다.

자연을 벗하여 사는 그들의 지혜가 책 곳곳에 묻어 있고, 사람을 대하는 기본 정서가 얼마나 깊고 따스한 지 내 마음이 더불어 따스해짐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어른의 눈으로 견주어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학생을 쫓아낸 그 나아쁜!(강조!) 선생님을 마구 욕하며^^;;;; 작은 나무가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는 박수를 쳐주고픈 마음이었다.

그러고 보면 인디언이 등장하는 글들은 매번 좋은 기억을 남겼다. 박희정의 "호텔 아프리카"에서 지요가 그랬고, "위대한 영혼의 주술사"에서도 인디언 여자(앗, 이름이 갑자기 기억 안남..ㅠ.ㅠ)도 그랬으니...

최근 십년도 더 전에 출간된 "작은 나무야 작은 나무야" 제목의 이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했는데, 당시 판매가가 현재 알라딘에서 할인 판매하는 금액과 비등하다.^^;;; (표지는 엄청 촌스럽다.ㅡ.ㅡ;;;;)

이 책은 절대! 새 책 구입하라고 추천한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떠올려 보니 또 다시 미소가 지어진다. 구매해 두었다가 생각날 때 좋은 지인들에게 다시 선물해야겠다.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다. 내 영혼이 같이 부자가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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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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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소설로는 거의 처음 접해보았던 책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서, 내가 먼저 읽고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주었던 책이다.

마지막의 엔딩을 읽지 못하고 선물로 주어버려서, 결국 궁금해서 내 책도 다시 구입했던 책. ^^

그리고 또 한 차례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던 기억이 난다.

어떤 마음이었냐 하면, 이 책을 선물하면, 책을 고른 나의 안목이 어쩐지 폼나 보일 것 같아서. ^^ㅎㅎㅎ

작품은 열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고, 각자 다른 인물의 1인칭 시점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A라는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그 뒷 이야기는 B가 이어서 한다. 물론 자기 중심적으로.

그래서 A와 B의 서로 다른 입장과 변명, 사연이 함께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아는 또 다른 사람 C가 그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같이 한다. 작품 속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관점은 변화하고 그래서 현상 이면의 진실도 바뀌어 버린다.

작품의 배경은 중국에서 문화 혁명 이후의 시기인데, 뭐랄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회주의 체제 속의 중국... 자유로울 수는 없는, 그렇다고 온전히 자유를 포기할 수도 없는 사람들의 정서가 담긴 느낌...

그래서 중국의 황토 바람처럼 조금은 척박하고, 또 조금은 메마르게, 감정의 과잉 없이 어느 정도는 담백하게 읽혔다.

폭발하는 감정의 변화나 감동은 없어도 잔잔히 미소가 지어지는 결말이었다. 보고 나서 흐뭇하게 미소도 지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눈이 갔다.

제목이 무엇보다도 마음이 든다. 사람아, 아 사람아...

왜 사람을 부르짖었을까. 왜 하필 '사람'일까. 작품 속에서 답을 찾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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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5-2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닭털같은 나날... 읽어보세욤... 좋습니당.

마노아 2006-05-20 0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책이네요.고마워요. 읽어볼게요^^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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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로부터 추천받은 책이었다.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고 접해보지 못했던 터키 문학이어서 호기심이 동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색채의 강렬함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약간 기하학적이고도 추상적인 느낌의 이미지가 또 특별했다.

내 이름은 빨강... 이 책은 독특하게 시작한다. 서술 시점은 모두 1인칭이지만, 각 장마다 서술자가 바뀐다. 내 이름은... 나는... 나는.... 내... 이런 식으로, 나를 누구라고 지칭하는 자들이 모두 자기의 입장에서 글을 써 나간다.

16세기 이슬람 세계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 소설에서는 많은 세밀화가들이 등장한다. 우리로서는 낯선 이슬람 문화와 미술 양식인데, 낯선 것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파격적이다. 시작부터 한 남자가 죽는다. 죽은 남자가 시체가 되어서 죽은 채로 이야기한다.(그렇다고 좀비는 아니다.ㅡ.ㅡ;;;)  희생된 사람을 죽인 이가 다시 얘기한다.  이제는 죽은 이들의 친구, 동료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이야기의 흐름을 여러 사람의 화자가 저마다의 입장을 토로하며 이끌어가는데, 이런 부분은 "사람아 아, 사람아"의 형식과 몹시 비슷하다.

또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가 어떤 세속적 재물이나 지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현상과 세계가 깨어질까 봐(이들 세밀화가들은 인간 중심적인 유럽의 화풍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한다. 동시대에 유럽은 르네상스 절정기를 지냈다), 그들이 전부라고 믿고 있던 체제를 고수하려고 하는 자들의 싸움이라는 것에서 "장미의 전쟁"도 같이 떠오른다.

등장인물들은 많이 배운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말이 많은 사람도 있고 말수가 적은 사람도 있다. 그래서 그들이 1인칭 화법으로 이야기할 때는 각자의 캐릭터에 따라서 글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다. 마치 연극에서 독백을 소리내어 말하더라도 무대 위 다른 인물들이 듣지 못하는 그런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런데, 솔직히 나는 아주 탁월하게 재밌지는 않았다.  그것은 너무 낯선 것들이어서 쉽게 앞으로 뻗어나가지 못하는 장애를 만났기 때문이다. 작품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내가 낯가림을 한 것이다.  독특하고 신비롭고 특이하기까지 하지만 내 입맛에 착착 달라붙지는 않았다.  그래서 오르한 파묵의 다른 소설 책까지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수작이지만 별 다섯까지 가지 못하고 넷에서 그쳐버렸다.

그래도, 날마다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노릇, 가끔 시고 떫고 짭짜름한 다른 메뉴도 즐겨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목처럼 강렬한 소스를 듬뿍 쳐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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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밀라 - 미다스 세계문학 1
칭기즈 아이트마토프 지음, 이양준 옮김 / 미다스북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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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라들의 작가가 아닌, 소위 제 3 세계 군에 속하다고 할 낯선 작가의 글이어서 흥미가 갔다.  게다가 제목에서 풍기는 이국적인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솔직히 기대도 좀 있었다고 고백하겠다.  그래서 실망도 컸다는 이야기도 미리 한다..ㅠ.ㅠ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나친 기대는 내가 섣불리 저지른 것일 뿐이고, 작품은 그저 담백하게 자신이 할 말만 했을 뿐이다.

사랑 이야기가 모두 로맨틱하란 법 없고, 성인들의 사랑이라고 다 세속적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황순원의 소나기나 알퐁스 도데의 별과 같은 순수한 사랑만 있으란 법도 없지 않은가.

이 작품은 그 나이 성인이 겪을 법한 감정의 변화와, 그 지역 사람들의 관습과 도덕적 기준에 맞춘 지극히 평범한 연애 소설이고 또 인생을 얘기한 소설일 뿐이다.

독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일방적으로 혹평을 하는 것도 별로 공정해 보이지는 않는다.

내 입맛에 아주 달콤했다거나 그런 매력은 없었지만, 그저 작품 그 자체로만 본다면 담담히 읽어볼 만한 글이었다.

뭐, 그래도 나라면 도서관을 이용하라고 말하겠지만.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 앞뒤가 안 맞나? 침묵......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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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나라 - 하 - 봄꽃과 다투어 피지 마라
김유인 지음 / 오두막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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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나라를 처음 접한 것은 2001년 8월로 기억한다. 토요일이었고, 몹시 지쳐 울던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이제 갓 인터넷 연재를 시작했던 때였고,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은 전혀 없었고, 그저 혜성처럼 나타나 폭풍같은 반응을 일으키는 작품이란 입소문을 들은 뒤였다. 그리고 그 소문은 소설을 읽은 뒤 내게도 사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이 작품과 호흡을 같이하며 웃고 울고(눈물이 주르륵 흘렀다기보다 늘 맺히는 편이었다.) 그리고 감동 받았었다. 그래서 이 작품이 진짜 책으로 출간된다고 했을 때 몹시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 마땅하다는 생각을 당연히 했었다. 출간을 밀어주신 그 교수님 말씀처럼 참 바르고 좋은 글이었으니까.

이틀에 걸쳐서 책을 읽었는데, 상권이 훨씬 책장이 잘 넘어갔다. 아무래도 사건의 주요 핵심이 드러나는 내용이었고 추리해 가는 과정이었기에 더 흥미진진했을 것이다. 하권은 사건을 정리하고 작가가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강조(꽤나 자주)하는 내용이어서, 그리고 내용이 아픈 만큼 진도도 조금 더디게 나갔다.

뭐랄까? 첫 부분에, 황제가 전조와 만나는 장면은 극히 인상적이었다. 시끄러운 시장통에 태사의 화려한 마차, 비단 옷을 입고 구경에 여념 없을 황제(게다가 어린애마냥 군것질을 하던^^;;;)와 남색 유삼을 걸친 전조와, 그의 팔에 난 상처에서 보인 붉은 핏방울까지. 선명하게 대조되는 그 색감이 글로 읽는 독자들에게 영화로 보듯 강렬한 시각적 인상을 남긴 것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될까? 헐리웃 영화는 초반 5분에 일단 관객을 압도시켜 놓고 영화를 전개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기선제압! 초반 내용의 절정은 전조가 객잔에서 눈앞의 사내를 향해 황제를 닮았다고 말한 부분이다. 효과음이 있다면 “쿠쿵!” 정도 되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이미 책을 손에서 놓는 것은 힘들어진다. 왜? 너무 흥미진진하니까. 게다가 작가는 진지한 와중에도 코미디적 요소를 많이 집어넣는다. 아니 집어넣는다는 인위적인 느낌보다 자연스럽게 묻어 나온다는 것이 맞겠다. (작가가 인정할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작품 중에는 코미디적 요소가 꽤 많이 보인다. 그리고 상당히 웃기다!) 이를테면 인종이 덥다고 투정부리는 바람에 전조가 장풍을 일으켜 인간 선풍기가 된다든지, 적청을 만났던 때, 경공을 써 먼저 날아간 전조를 좇아오느라 허옇게 달뜬 그의 모습이 그랬다. 소풍 나갔다가 황제로서 남방 과일 먹어본 게, 온천 한 번 다녀간 게 마음의 빚이 되어야겠냐고 투덜거리는 인종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면 작품 속에서 코미디적 요소를 도맡아 했던 인물은 인종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작품 속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된 인물로 내가 황제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의 미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 번째로 꼽을 것은 각 캐릭터의 성격을 세심하게 나눠놓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드라마 포청천이나 칠협오의 등에서 그저 왕조, 마한, 장룡, 조호 식으로 죽 이름만 나열되었을 사람들에게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주입하는 것 말이다.(이들 네 사람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사형제'에서 가장 뚜렷하게 그 사실을 증명했다.-이 작품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천자의 나라에서는 전조 대신 희생된(라기보다 기꺼이 희생한) 다섯 사람이 그랬다. 또 천풍오랑이 그랬고, 세 명의 가짜 소공자와 북리운천, 적청까지도 모두 그 생김새가 그려질 만큼 작가는 세심하게 캐릭터성을 부여했다. 놀랍고도 부러운 점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선 겹치는 캐릭터 성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그게 나쁘다거나 단점이라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말투가 비슷하기 때문일 텐데, 이를테면 승휴의 성격과 조호가 빼다 박았고, 잠깐 나왔지만 그 대사는 여러 번 재탕된 점소이가 그랬다. (천풍부도 막판에 깨지기 직전엔 좀 비슷했다.) 아, 나중에 제 모습을 찾은 북리현도 많이 비슷했다.

작가는 지나칠 듯 완벽한 캐릭터 전조라는 멋진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도 음으로 가리어질 법도 한 여자 캐릭터에 철저하리만큼 생명성을 부어주었고, 그 빛나는 사내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영리함과 지혜, 반듯함도 부어주었다. 그리고 또 전조 팬들에게 많이 강조된 ‘미남’ 전조보다도 ‘반듯한’ 전조를 더 앞세웠다.(심지어 생김새로만 보면 좌수백이 더 잘 생겼다지 않은가.-사실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적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종국엔 적이라고 할 수도 없었던 위청운의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었다.(그에 비해서 위지량은 존재감이 약했다.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었지만.)

작품의 두 번째 미덕으로 추리물이 주는 적절한 긴장감이다. 아령이 사실은 여자였고, 진짜 소왕야라는 진실은 연재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트릭은 작가가 설명해주기 전에는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완벽한 남자 전조도 그 수많은 수수께끼를 한번에 해결하지는 못한다.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조금씩 푸는 듯하다가 다시 손도 못 대게 섞어 놓고는, 한순간 다시 확 풀어주는 것은 그 테크닉에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하다. (내가 가장 놀란 부분은, 복면 괴한이 사실은 창룡단 고수였던 것, 북리운천이 부러 인종을 떼어내게 했던 그 부분이다.) 

세 번째 미덕은 풍부한 고증과 그것을 준비한 꼼꼼함이다. 작품을 홍보할 때 이미 말했듯이 이 소설은 역사 소설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 수많은 각주들은 읽을 때마다 이 책이 보통 평범한 책이 아님을 수시로 각인시켰다. 흔히들 ‘팬픽’이라고 하는 새로운 장르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을 편견이 안타까울 만큼 이 책은 장인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대체 그 수많은 관리들의 사건 사건들을 어찌 다 찾았을까, 참으로 신기했다.)

네 번째 미덕은 역사 무협이라고 소개했던 것이 무색하지 않은 액션(?)씬이다. 무협소설과 무협드라마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나이지만,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일종의 전투 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영상이 되기에 충분했다.(혹 내가 무협에 너무 무지해서 과하게 환호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수준에서 이 정도 액션이면 눈 황홀했다!) 그리고 그런 만족도를 줄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섬세한 필치, 그러면서도 힘 있는 필치가 주는 문장력의 힘이었다. 유하면서도 강한 그 장면들은 이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대단할까! 라는 상상을 자주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천자의 나라,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그리고 가장 자랑스러운 점은, 작가가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말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에 있다. 천자란 곧 하늘 아들, 그리하여 만백성이라고 설파한, 강한 것이 정의가 아닌 바른 것이 정의라는 기치, 치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등, 이러한 가치관들이 이 작품을 타 작품과 가장 구별시켜 주는, 게다가 고급화시켜주는 핵심 요소들이었다. 이러한 의미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기는 쉽지만, 그 가치들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전조가, 아령이, 그리고 북리현이 짙게 호소하는 대사들은 모두 마음을 움직이는 울림이 있었다.(오죽하면 그 대단한 황제가 감탄하고 탄복하며 변화되겠는가!) 많은 미덕 중, 가장 으뜸을 찾으라고 한다면 나는 작가의 이 가치관을, 그 같은 생각의 틀과 바탕을 꼽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그다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 편인 내가, 작품을 읽으면서 자주 눈시울이 젖곤 했던 부분들은 호소력 짙은 그네들의 대사 때문이었다. 아프고 아픈, 서럽디 서러운 그 사내에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었던 인종, 아주머니 때문에 싸웠습니다... 한마디로 관창우를 섬뜩하게 했던 전조의 모습, 그리고 전조에게서 섭섭함을 느꼈던 황제의 철없는 마음까지도 참으로 절절하게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블로그에서도 대표적인 문구로 찍혔던 그 대사, “사랑하는 마음이여, 봄꽃과 다투어 피지 마라. 한 조각 그리움은 한 줌 재가 되리니.” 이 문장이 주는 여운은 꽤 오래 갔다. 마치, 아령이 회화꽃을 담아 모았을 그 단지에 내가 푹 젖었다 나온 느낌? 그러나 이 명시보다 더 남는 말은 이어서 작가가 덧붙인 구절, “사랑하는 마음이여, 어둠과 다투어 지지 마라. 한 조각 그리움은 한 점 별이 되리니.”였다. 개인적으로 대구를 몹시 좋아하는데, 딱 적절한 표현으로 느껴졌다. (작가가 시작 재주는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이 유려한 문장을 쓰는 사람이 왜 못 한다 할까? 잘 납득 안 되고 있다.) 사실 밑줄 그으며 읽고 싶은 부분이 많았는데, 빌려줄 사람이 많아서 참았다. 줄그으려고 다시 한번 복습을 해야 할 듯^^. 

어디 대사뿐이던가. 모든 수수께끼가 다 풀리며, 그 모든 위험한 순간들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던 사내 이정 선생을 전조가 다시 보았을 때, 재차 누구시냐고 물었을 때, 그의 마지막 바람을 저버렸던 황제가 다시 위험에 빠지고 그를 구하기 위해 희생된 전조에, 다시 전조를 구해내기 위한 007작전까지. 클라이맥스로 확실하게 치달아가는 작품의 구성은 독자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다. 그리고 소제목 하나씩 끝날 때마다 마지막 구절들은 참 애틋하게 여운을 남기며 뒷장으로 손길을 재촉하는데, 마치 일일연속극이 30분짜리 짧은 극일지언정 다음 날을 보고 싶게 만들게끔 마지막 씬에 전력을 기울여 시청자의 마음을 훔치는 것과 비슷했다고 할까. 

그밖에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해 보자면, 작품만큼이나 단정하게, 그리고 여백의 미를 살린 책 표지! 비록 때가 잘 타기는 하지만 매우 고급스런 느낌을 주는 책장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하다못해 글자체까지도 딱! 적당했다.(그렇지만 내부 여백은 아랫단이 좀 컸다..;;;)
또 이채로운 표현들과 순수 우리말 등, 심지어 사전을 찾아봐야 했던 여러 단어들이 주는 신선한 충격도 몹시 즐거웠다. (덕분에 많이 배웠다.)

흠, 생각나는 대로 많은 말을 했는데, 좋단 말만하면 작가가 싱거워할까 봐, (그리고 내가 입이 가벼워서..;;;;) 아쉬웠던, 혹은 불만이었던 점도 얘기해볼까 한다. (그러나 앞에서 고백한 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격도 없을 뿐더러 심히 부담스러운 게 내 입장이다.)

앞서 첫 번째 미덕이라고 짚었던 바로 캐릭터의 문제, 숱한 등장인물 중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인물은 황제였다. 비록 그의 오만함에서 출발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상처 입고 심지어 죽기까지 했지만,(뭐, 그건 작가가 시킨 거다^^;;;) 작품 중 가장 순수하게 보인 사람이 다름 아닌 그 황제였던 것도 사실이다. (가장 큰 사기를 쳤음에도 가장 순수해 보인다니 좀 아이러니하긴 하다.) 그는 세상 물정 잘 모르고 구중궁궐 높은 자리 그저 한없이 귀하고 높기만 한 인물이었지만, 그가 그곳 보좌에서 내려와 겪게 되는 세상과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참 따스하고, 그래서 웃음도 많이 나고 눈물도 나던 그런 모습이었다.(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마음만은 진실이었다고 믿어달라는 그 모습은 꼭 내가 전조가 된 것처럼, 내가 이정 선생이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느끼게 했다.) 전조가 고백했듯이, 황제의 몸으로 전조를 도와주고자 왕야 앞에서 굴러 넘어지기까지 한 그 모습은 참 애틋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그가 맘에 드는 만큼, 나는 갈수록 전조에게 불만이 많아졌었다. (놀랍게도, 작품 연재 시에는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다.)

전조는, 너무 강직했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그 모습이, 그저 ‘바르다’라는 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참 답답했다. 작품 속 그의 성격은, 많이 부끄러워 얼굴이 벌게져도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못 알아차리는 순진함을 보여주는데, 설정이라지만 ‘순진’이라고 부르긴 참 못 마땅하기도 했다. (아아, 돌 맞을 소리란 것 안다..;;;;;) 아령이 북리가의 숨은 여식이었음이 밝혀지던 장면- 분노한 왕야에게 “잘못이 있으면 꾸짖고 가르쳐주실 일이지”는 내가 왕야라도 “버럭!”이었다. 그 똑똑한 전조도 너무 곧다 보니 때로 눈치 없어 보일 때가 있다.(강조하지만 이것은 내가 전조에게 가진 불만이지 작품의 흠이 아니다.) 남에게 있어선 거의 성인 수준의 인격을 보여주는 전조이지만, 자신에게 있어선 너무나 박한 그의 인정이 안타까워서 더 나를 화나게 했던 듯싶다.(자월 십오야에서 황제의 영약... 미타수를 끝내 거부했던 그를 기억한다. 그렇지만 다행히 천자의 나라에선 청룡주를 받았다.-역시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왜일까? 어려서 버려졌던 깊은 상처가 그를 실수해선 안 되는 인물로 다그치게 만든 것일까? 혹은 내재 중에 또 다시 버려질지 모를 거란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의 그 강직함은, 위급한 상황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게 한다. 형틀에 묶여서 풀려날 때, 자신 대신 그 자리를 지키려는 손을 막기 위해 그가 내쏟은 말은 솔직히 감정과잉이었다.(물론 그때 전조의 감정은 격하지 않으면 수상하지만) 마찬가지로 천풍오랑과 싸울 때도 말이 너무 많았다. 그 몸 상태로 그 말 다 할 수 있었던 게 용했다.  또 천풍오랑의 무공을 폐지할 때의 장면에서 ‘-구려’의 말투는 너무 영감 같았다..;;;; 그리고 그의 성격에서 오는 그 답답함은 개봉을 떠나려는 모습에서도 여전히 오버랩 된다.(결과적으론 해결되었지만) 그래서... 종종 묻고 싶었다. 전조 너 자신은 행복하냐고? 그 상처 다 끌어안고 사는, 웃지만 마음 깊은 곳 서러운 울음 간직한 너는 행복하냐고? 혹시 너를 행복하지 못하게, 혹은 행복할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적은 너 자신이 아니냐고? 바라건대, 전조가...... 그가 좀 더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면 한다. 좀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진실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이제, 나의 불만은 아령에게도 이어진다. 물론, 고백하건대, 그녀가 전조의 사랑을 받아서 괜히 부리는 심술은 저얼대 아니다.(사실은 기다!) 그녀의 똑똑함을 배 아파함도 아니다.(거의 맞다!) 아령은, 전조와 비슷한 느낌의 답답함을 주는데, 그것은 ‘완벽’함에서 오는 부담감이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경학과 시문에 밝은데, 그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녀가 읊어대는 시구를 듣다 보면 자칫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뭐랄까? 준비된 대사를 읽는 느낌? 이쯤에서 울어줘야 하고, 이쯤에서 감동을 줘야 하고, 이쯤에서 한 건해야 하는...... 그 정해진 수순을 밟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이것은 황제가, 이정 선생이 매 순간 변화해 가며 성장해 가는 모습과 대조되어 더 아령을 평범하지 않은 여인으로 만들고 그 탓에 더 혀를 내두르게 만다는 것과 같은 일맥이다. 감탄은 하지만, 그것 자체가 감동은 되지 않는. 그래서 그 똑똑함과 더 대조적으로 약한 일신의 모습, 여린 어깨, 잦은 눈물 등이 그녀를 약하게 보이기보다 더 완벽한 무기로 무장하는 모습으로 비쳐진다.(너 그렇게 전조를 꼬셨지!라고 속으로 발악을 했던 이 철없는 독자...;;;;) 그 심성, 사실은 여리다기보다 강하디 강한 강족 처녀라지만, 마지막에 꼭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을까? 전조 곁에 남을 수는 없을까?(혹 작가도 독자처럼 전조 옆에 여인네를 용인하지 못한 것????)

그리고 역시 같은 맥락에서의 아쉬운 점은, 아령만 등장했다 하면 그 부분 내용이 꽤 현학적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전조와 이정 선생 혹은 북리현의 대화에서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데, 아령이 나올 때면 잦은 고사와 싯구(꼭 따라오는 각주-물론 독자를 위한 배려지만)들이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 이상으로 글을 어렵게 만들었다.(독자의 무식함이 작가 탓은 아니지만 말이다.) 속된 말로 하면 작품을 폼 나게 만드는 그 각주들이, 때로 과하다 싶을 때의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진을 파훼하게 만든 공은 칭찬해주고 싶지만, 그 방위체제 솔직히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그때 그녀는 너무 침착했다.(이젠 별게 다 시비야!) 이런 현학적인 부분은 초기에 등장했던, 그리고 자주 인용되었던 점소이의 명대사에서도 보여진다. 아무리 끼어들기 좋아하고 수다쟁이라지만, 그리고 점소이라고 그리 유창하게 말 잘하지 못하란 법 없지만, 그때 점소이의 대사는 넘 유려해서, 역시나 각본대로 움직인 그런 느낌. (황제 기억력 겁나게 좋았다!) 그래서 그의 끼어들기는 상당히 생뚱맞았다.

한참 쓰고 보니 생각나는 대로 거칠게 투정을 부렸는데, 그럼에도 이 작품은 참 소중한 존재감을 지닌다. 자연을 닮은, 혹은 자연을 품은 그런 느낌. 마치 읽고 나면 무언가 내 안에 더러운 것들이 정화되어 깨끗해질 것 같은 기분, 그래서 주변에 퍼트려 나 같은 증세를 마구 전염시켜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을 주는 작품이다. 인터넷으로 처음 소개가 된, 문명의 이기를 충분히 누리며 독자들에게 알려진 작품이건만, 정작 작품의 색깔은 이 땅 소중한 흙을 밟고 있는 느낌? 하여간에, 시종일관 참 따스했다. 아마도 그것은 작가의 시선이 그처럼 따뜻해서일 것이다. 중원 땅에서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사내가(물론 스스로 인정 안하지만!) 무기조차도 녹여 쟁기로 만들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했을 때, 사실 그 꿈은 작가가 꾸는 꿈을 전조의 입을 빌려 얘기한 것이고, 그리고 그 꿈은 어느 순간 독자의 꿈이 되고 만다. 

다시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거듭 든 생각은, 주인공 전조가 참으로 작가를 닮았더라는 것. 아아, 안다! 작가는 분명 펄쩍 뛰며 가당키나 하겠냐고 도리도리를 할 것이다. 흐음, 순전히 주관적인 느낌이라지만, 내겐 그랬다. (심지어 육류를 즐기지 않는 모습과 키 크고 마른 듯한 체형까지도.) 자신의 얘기를 잘 하지 않지만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모습이 그랬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아파해주는 것으로도 능히 위로가 되어주는 그 듬직함이 그랬다. 그리고 이건 정말 얘기하기 민망하지만, 처음 작가의 진짜 이름을 알았을 때, ‘비누향’이란 닉네임이 아닌 ‘김유인’이라는 실명을 들었을 때, 난 꼭 이정 선생의 진짜 정체를 안 전조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설마 그럼 니가 전조? ..;;;;;;;) 흠, 아무래도 작품에 너무 심취했나 보다. 이제 현실과 허구의 세계가 마구 헷갈리고 있다. (지난밤엔 감상문 쓰다가 잠자리에 들었는데 감정이 격해서 잠이 안 왔다..;;;)

너무 길어졌다. 조금만 더 얘기하고 마쳐야겠다. 작가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먼저 썼다고 말했다. 그 힘일까? 작품을 모두 마치고 에필로그로 정리하면서 참 맑고 단정한 느낌, 모든 것이 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역사의 한 묶음을 몰래 엿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 느낌, 돌아올 때 내 얼굴은 웃고 있는 그런 모습. 마음은 차오른 감동에 한껏 들떠 있는데, 입 꼬리는 살짝 미소 지으며 올라가 있고, 이 감정을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마음껏 수다 떨고 싶은 충동. 탁월한 상상력을 지닌 작가 덕에, 난 정말 11세기 중반 송나라에서 이런 그림 같은 검객 있었고, 그림 같은 황제 있었고, 그림 같은 이야기 있었더라.... 라고 믿어버릴 지경이다. 허구의 속성을 마음껏 펼친 무협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음에도 진짜 저런 사람, 저런 이야기 있었구나... 라며 내게 속삭이게 된다. 참 고맙다. 참 반갑다. 참으로 그런 사람, 그런 작품, 그런 작가 만나서, 그리고 내가 영향을 받아서...... 내가 느끼고 받는 모든 감정의 폭주까지도... 참으로 나는 고맙다. 고맙고, 그리고 행복하다. 작가의 독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는 여전히 계속 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쭈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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