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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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였을까.  난 이 작품의 배경이 1900년대 초중반, 그러니까 식민치하의 조선이라고 여겼었다.  그래서 초반에 바리가 사는 곳 풍경과 시대 느낌이 왜 이렇게 낯설까 당황했었다.

착각에서 빠져나오자 읽는 속도가 제법 붙었다.  북한에서 태어난 바리는 7딸 중의 막내였고, 어려 신내림이 있은 후 말 못하는 언니의 속울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7번째 강아지 칠성이의 목소리도 알아듣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 설화 바리공주에서 차용된 이름 바리.  내리 딸만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워 버려졌던 아이를 데려와 붙여준 이름 바리.  설화 속의 바리 공주는 자신을 딸이라고 버린 그 부모님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이기고 끝내 생명수를 구해 오는 인내의 여인이었다.  작품 속의 바리는 자신의 가족 누구도 구해내지 못한다.  굶주림이 온통 뒤덮어버린 북한 땅에서 그녀는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함께 남은 몸 약한 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가족 찾으러 떠나셨지만 돌아오시지 못했고,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머니마저도 한 순간에 잃어버린다.

살아남기 위해 어디로든 가야했던 그녀의 정처 없던 발걸음은 힘겹기 그지 없었다.  중국 땅에서 발맛싸지 하는 법을 배워 취직도 했지만, 보호자 역할을 해준 샹 언니네 가족이 사기 사건에 연루되면서 중국 땅을 도망쳐야 했고, 그 과정에서 인신매매 되다시피 해서 영국 땅에 밀입국한다.  산 목숨은 어떻게든 살아졌지만 이국 땅에서 이겨야 했던 삶의 신산함이 어디 가벼웠겠는가.

영국 땅에 정착한 바리는 건물 관리인 압둘 할아버지의 손자 알리와 결혼하고 아이도 낳지만, 그녀에게 행복한 미래가 준비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걸어나가는 길목에서는 역사적으로 큰 획을 그었던 굵직한 사건들이 두루 지나가는데(이를테면 9.11테러), 그 모든 사건들은 그녀에게 '삶' 그 자체로 다가왔고 그래서 독자는 '소설'이 아닌 '사실'로서 작품을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커다란 비극과 맞닿아 부서지는 삶을 보여주는데, 작가는 한 번도 흥분하는 적이 없었고, 주인공 바리 역시 목놓아 우는 절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소리없는 흐느낌과 잔잔한 울음은 그러나 독자를 더 큰 슬픔 앞에 놓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대작가의 힘일런가 나는 잠시 숨을 멈추어 보기도 했다.

설화 속 바리 공주는 끝내 생명수를 얻어와 해피엔딩을 맞는다지만, 우리의 바리는 생이별이라는 슬픔만 만났을 뿐, 소생의 기적은 맛보지 못한다.  긴 인생을 살아내신 시할아버지 압둘은 그녀에게 말해준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 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희망, 가질 것이라고는 희망 밖에 없는 사람에게 희망의 상실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어쩌면 가질 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에 주는 헛된 바람일 수도 있겠다. 설령 살아 다시 만나지 못하는 소망일지라도 포기할 수 없는 그 희망에 매달려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한 발을 내딛으며 살아간다.

죽다가 살아 돌아온 알리와 재회한 그녀가, 뱃속에 아기를 가진 채 희망을 만들어갈 때에도 또 다른 테러가 런던을 덮치고, 그 사고 현장을 떠나는 바리와 알리의 두 눈은 온통 눈물로 젖은 채 작품은 끝을 맺는다. 

겨우 찾은 희망은 너무도 쉽게 절망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온 세상을 구원할 생명수 따위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살아있는 한 끊임없이 삶을 위협하는 고통과 직면할 우리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생존 자체의 위협을 받으며 절망의 삶을 살아내기도 할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오고 가며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고 산 자의 염원을 들을 수 있는 바리도 해낼 수 없는 금지된 영역. 

그러나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는 안 되는 우리네 삶의 치열한 고백.  압둘 할아버지는 또 말씀하셨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우리가 약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좀 더 나아질 거다.

힘센 자의 교만도, 힘없는 자의 절망도 모두 우리 것이 아니기를 소망하며, 세상의 모든 바리공주가 희망이라는 생명수를 꼭 찾아내기를 바라며 작품을 놓는다.  그리고 그 생명수가 단지 '희망'으로 끝나지 않고 현실을 보듬어줄 수 있는 힘이 되기를 또한 간절히 소망한다. 

삽화와 함께 다시 만난다면 더 애틋할 수도 있겠으나, 표지는 작품과 너무 안 맞는 분위기다.  작품에 대한 그 어떤 편견을 갖지 않게 하려는 의도적 장치일까?  아무튼, 나로서는 황석영의 작품들을 더 만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긴 목울음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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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결 2007-07-09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좋아서 들렸습니다. 참 좋은 글 감사합니다. 추천하고 갑니다.ㅎㅎ

마노아 2007-07-09 14:1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바람결님~ 힘이 되는 메시지에 감사합니다. ^^
 
에르미따
프란시스코 시오닐 호세 지음, 부희령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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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문학은 처음 접해 본다.  더군다나 우리와 비슷한 근현대사를 겪었던 그들의 이야기라고 하니 더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받아본 책은 생각보다 두꺼워서 놀랐교, 이중표지의 기름종이같은 오로지를 걷어내면 너무나 유혹적인 핫핑크의 강렬한 표지가 드러나서 또 놀랐다.  작은 부제목으로 '전설적 창녀'라는 글씨가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과 비슷한 아픔을 가진 필리핀이 서로 연대하여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비슷한 아픔, 비슷한 굴곡.... 어쩐지 목이 메이는 부분이었다.

작품의 주인공 에르미따는 평범치 못한 출생과정으로 평범치 못한 인생 여정을 갖게 되는 인물이다.  스페인의 식민 지배 300년의 세월을 걷어냈던 필리핀인들은 이어서 미국의 지배를 받았고, 태평양 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모진 고통을 받았다.  작품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 일본인 병사에 의해서 강간으로 인한 사생아를 낳는 로호 가문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연다.   명문 가문으로 이름높은 로호 집안은 스페인 메소티소로 사회의 기득권을 모두 누려온 부호 집안이었다.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온 인생길에서 일본인 병사와의 맞닥뜨림은 일생 최대의 수치였으며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고, 부정하고픈 과거였다.

불필요한 가정이지만, 만약 사생아를 낳게 된 그녀가 그 '대단한' 집안의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과연 그렇게 아이를 냉정하게 버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집안으로 데리고 오지만 20년 동안 한 번도 만나주지 않은 엄마, 10년 동안 아이를 맡았지만 가족은커녕 일꾼 취급을 해버린 이모와 외삼촌이라니...  에르미따의 비극은 누구도 원치 않는 생명을 잉태시킨 일본군 아버지뿐 아니라, 차가운 피를 자랑한 어머니와 그녀의 식구들에게도 있었다.

에르미따가 스무 살이 되면서 로호 가문을 나오게 되는 과정은 조금 싱거웠다.  그녀는 오랫동안 참아온 분노를 마침내 폭발시켰고, 그 대가는 가족처럼 지내온 맥의 가족들과 함께 거리로 내몰리는 것이었다.  나름의 책임의식을 가진 에르미따는 큰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있다고 믿은 유일한) 일을 하기로 한다.  그것은 '창녀'가 되는 것이었다.

'쩐의 전쟁'에서 주인공 금나라가 사채업자가 되는 과정의 그 잔인한 운명과 비교한다면, 그녀의 선택의 최선이 꼭 '창녀' 밖에는 없었을까 안타까움이 앞선다.  또 맥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당장에 먹고 살 일이 걱정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던져 '희생'을 한 대가로 그들의 삶이 이어진다고 한다면, 그렇게 해서 받은 '교육'이 무슨 의미일까 싶으며 그들의 안락함이 얼마나 편안할 지 의심스럽다.  (맥 혼자만이 거부했었다.)

그렇지만 다 제껴두고....;;;
에르미따는 철저하게 달라진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재능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었고,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고, 자신을 망가뜨린 로호 가문에 철저하게 복수한다.  그녀는 많은 친구들을 만들었고, 많은 가난한 이들에게 도움도 되었고, 원하던 미국 시민권에 미국인과의 결혼까지 손에 넣었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다.

복수하는 순간 행복했다고 말하지만, 그 말의 공허함은 그녀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남자들을 그 몸으로 받았지만, 최고의 절정의 순간은 맛보지 못한 것처럼, 그녀의 몸과 마음은 늘 또 다른 '갈급함'에 허덕였다.  그리고 늘 외로웠다.

그녀를 통해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은 필리핀의 현대사를 그대로 재현시킨다.  땅을 매개로 한  타락한 지주계층과 그들의 비윤리성, 군을 이용하여 권력을 쟁취한 사람들, 그들의 독재 권력, 부패한 사회에 대한 반성과 자기 연민으로 가득하지만 현실에 타협하는 지식인, 사회의 부조리함에 항거하기 위해서 젊은 혈기를 모아 덤비지만 허무하게 스러져버리는 가엾은 젊은 목숨들까지...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그 이야기에 절로 탄식이 나오는 것은, 오버랩되어 비쳐지는 우리의 현대사 때문이다.  에르미따의 삶과 그 주변의 이야기들은 지명과 등장인물만 바꾸면 그대로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우리 역사 속의 수많은 에르미따, 그들은 여전히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정체성에 허덕이고 있다.

나는, 작품이 마지막에는 '희망'을 노래하며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맥은 진심을 알아주고 그녀를 다시 안아줄 것이며, 보장된 안락함을 버리고 미국에서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온 에르미따에게 진정한 자유와 평안이 조금은 주어질 거라고 막연히 기대했다.  하지만 맥은 떠났고, 보육원에서 길러준 수녀님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에르미따의 '오래 전 죽음'에 대해서 구슬프게 이야기 한다.  그녀는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녀의 삶은 이미 오래 전에 끝마쳐진 것이라고 수녀님은 얘기한다.  에르미따가 충격을 받은 만큼 독자도 아찔함을 느꼈다.

애써 부정하고 싶은 과거를 덮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애써 행복해지려고 애쓰지만 그것이 얼마나 먼 이야기인지, 애써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이 얼마나 막연하고 막막한 것인지, 독자는 먹먹함으로 이해하고 말았다.

스페인에게 착취당하고 미국에게 이용당하고, 일본에게 크게 얻어맞았던 필리핀.  일본에게 밟히고 미국에게 찢긴 우리나라...  억압받고 무시당하고 왜곡된 길을 걸은 것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것은, 그 수모와 아픔을 고스란히 잊어버린 채, 또 다른 억압 세력으로 바뀌어가는 사회의 부조리성을 발견할 때이다.  먼 훗날, '그때에 이미 죽었다'라는 무서운 선고를 듣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달라진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필리핀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의 비참한 에르미따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또 되지 않기 위해서...

여담인데, 작품을 읽으면서 파울로 코엘료의 '11분'이 자꾸 떠올랐다.  똑같이 '창녀'를 앞세웠고, 그녀 역시 원래 이름은 '마리아'였으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그 생활을 청산한다.  그렇지만 그들의 엔딩은 너무나 다르다.  단순 재미를 따진다면 11분이 매력적이었지만, 작품의 무게감은 에르미따와 비교하기 어렵다.  별점과 무관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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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7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6-07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닥님, 님이 에르미따를 만날 날이 기다려져요. 좀 오래 걸린다 해도 뭐 어때요^^;;;

네꼬 2007-06-08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함. 성실함. 마노아님이 읽고 쓰는 걸 옆에서 보면 떠오르는 말들. ♡

마노아 2007-06-0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서평도서 하루 늦게 올린 게으름뱅이인 걸요, 뭘^^;;;
 
콘트라베이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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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무명이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는 한 남자의 모노 드라마로 진행되는 이 작품은 꽤 독특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처음 내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본 것은 '깊이에의 강요'였고, 지금까지는 그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 다음에 '비둘기'를, '좀머씨 이야기', '향수'를 차례대로 보게 되었다.  이 책 콘트라베이스는 '좀머씨 이야기'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일상적인 소재에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 하나의 소설로 만든 점이 공통점으로 보이고, 느릿한 전개와 어쩐지 슬픈 듯한 인상이 또 닮아 있다. 그러고 보면 '향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범한 소재에서 이야기를 끌어내었다.  평범한 돌덩이도 광석으로 갈아내어 빛을 나게 만드니 작가의 재주에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베이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자랑을 펼쳐놓지만, 자신은 훌륭한 연주자가 아니라고 못을 박는다.  기교에 있어서는 부족한 것이 없지만, 영혼을 싣는 그런 연주자는 아니라고 자조한다.  어쩐지 주인공의 그 착잡한 고백은 작가로서의 그가 스스로의 '글'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닐까 조심스럽게 대조해 본다.  그는 이미 이름을 떨친 명작가가 되었지만,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었으니 그런 생각을 가졌을 법도 하다. 

주인공에게는 세라라는 이름의 성악을 하는 사랑하는 이가 있지만, 자랑스럽게 당당하게 그녀 앞에 나서지를 못한다.  그녀의 훌륭한 재능에 비해서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재주를 서러워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고 또 스스로에게 발견할 수 있는 자신없는 모습 중 하나로 비쳐진다. 

국립교향악단에 소속되어 있는 공무원 신분의 주인공은,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해 주지만 그 이상의 예술적 영감을 펼쳐내지 못하는 자신의 소속 울타리가 갑갑하다.  그것을 떨치고 나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그는 더 고뇌하고 슬퍼한다.  똑같이 대입하긴 어렵지만, 자신의 일상 속 테두리를 떨치고 나가고 싶어하는 우리네 많은 소시민의 모습과 비슷한 슬픔이 느껴진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공연을 망쳐놓아 그녀의 뇌리 속에 '각인'을 시키는 계획을 짜보지만 과연 그가 그 계획을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까...

설령 옮기지 못하고 또 다시 혼자 끙끙 앓고 있다 할지라도 비난하지 않겠다.  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것을...

그나저나, 노다메 칸타빌레에서의 그 커다란 악기 콘트라 베이스를 떠올려 보며 이 악기 소리가 궁금해졌다.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언뜻 잘 떠오르질 않는다.  주인공 연주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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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6-02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둘기를 생각했었어요^^

마노아 2007-06-02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심한 소시민... 맞아요. 비둘기에서도 그랬었죠^^

hnine 2007-06-05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에 읽어 내용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이 작가 참 독특해요, 그치요?
추천 리뷰에 오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마노아 2007-06-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리뷰라니, 부끄러워요^^;;;;
작가의 정신 세계가 4차원 같아요. 신기할 따름입니다^^

프레이야 2007-06-06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쥐스킨트의 이 책은 읽는다해놓고 못 읽었는데 님의 리뷰 보니까 다시...
땡스투!

마노아 2007-06-06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현듯 읽고 싶어진 거군요. 이름을 줄였어요. 혜경님~ 땡스투 감사해요~^^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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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간고사 시험 결과 1등한 반과 꼴찌를 한 반과의 평균 점수 차가 13점이 났다.  10점 이상 격차가 벌어지면 사유서를 제출해야 한다.  둘 다 내가 들어가는 수업이었고, 사회 과목과 함께 시험을 본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사유서는 내가 쓰게 되었다.

처음 써보는 것이기도 했고, 뭐라 써야 할지 막막했다.  똑같은 동일한 수업을 했는데 점수 격차가 많이 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1등한 반은 일단 꼴찌한 반보다 학생수가 3명 적다. 꼴찌를 한 반에는 특수반 학생이 두명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영향을 더 받을 수 있다.  수업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고, 반 구성원도 다르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이유를 내가 딱 댈 수가 없었고, 내가 할 말은 더더욱 없었다.

다른 선생님은 내게 귀띔 하기를, 1등한 반을 설렁설렁 가르치라 하신다. 그렇지 않고는 기말고사 때 또 벌어질 거라고.

난감한 일이다.  부러 안 중요한 얘기만 한다든지, 대충 가르친다든지 하는 일은 역차별일 뿐 아니라, 대단히 본질에서 벗어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는 또한 교사의 의무와도 관련된, 또 자존심과도 관련된 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 답은 간단한 것일 게다.  내가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부진한 반에서 만회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 애쓰는 것.  똑같은 수업일지라도 소화가 더디 된다면, 더 잘게 부수어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어렵다고 아니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마땅해 해야할 일이다.

이 책은, 참 투박했다.  글이 워낙 오래 전에 쓰여진 것이기도 했지만, 작가가 그런 스타일을 추구해서일지도 모르지만, 대단히 거칠게 읽혀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행간에 놓여진 '진심'만은 진하게 읽혀진다.  신참내기 젊은 선생님의 고군분투기가 눈물 겹고, 그 선생님이 알아가고 또 마음을 얻어가는 처리장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의 당찬 모습이 눈에 밟힌다.

체면과 형식에 얽매여 말로만 '교육'을 외치는 학교 관계자, 공무원들도 책속에는 보이고, 치열한 삶의 압박으로 자존심과 양심을 버렸지만, 다시금 되찾기 위해서 애쓰는 우리네 소시민의 삶도 이곳에서 보았다.

나는, 읽기 전에 이미 각오한 일이지만 많이 부끄러웠다.  나는 고작해야 학생들의 성적 격차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그 학생들의 개개인을 돌아보는, 그 마음 속을 헤아리는 참 마음을 가진 교사가 되어보질 못했다.  그건 담임을 맡고 있지 않아서도 아니고, 내게 '마음'이 부족해서였던 것이다. 

내 속엔 늘 내가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었고,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밥벌이가 더 중요했고, 내 근심과 걱정에 더 치여서 다른 것이 헤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었다.  내게 찾아오는 아이를 막은 적은 없지만, 내가 먼저 자청해서 다가선 적도 없다. 

나는 수업을 재밌게 해주는 '교사'가 되어본 적은 있지만, 아이들의 삶 속에서 '先生'이 되어 있었던 적은 드물었다.  아니, 어쩌면 전무할 지도 모르겠다.  짧은 경력에, 덜 여문 인격에 목표가 너무 거창한 것은 아닌가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기도 하지만, 이내 더 부끄러워질 뿐이다.

이래서 사람들은 '초심'을 이야기하나 보다.  처음 마음을 잊지 않는 사람은 한 번 주저앉아도 다시 일어서는 데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다.  첫 마음과 첫 감격을 다시 떠올려 본다.  내가 학창시절에 기대었던 선생님들, 사랑했던 선생님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또 내가 되고팠던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그려본다.

데쓰조처럼 파리를 키우는 학생을, 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지저분하다고 외면할 것이 아니라, 고다니 선생님처럼 함께 파리를 연구하고 아이의 재능을 다독여 주는 그런 선생님.  그것이 '각오'만으로 당장에 실현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조금씩 그 격차를 줄여가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일 것이다. 

마음이 가까와지면 '성적차이'도 줄어들 지는 아직 모르겠다.  1등반을 더 예뻐한 것도 아니므로.  아무튼, 마음의 거리와 성적의 거리를 좁혀 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다.  혹시 아는가.  열심히 과제를 풀어가다 보면, 먼 훗날 내게도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라고 추억하며 이런 글을 쓰는 제자가 하나 나올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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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5-2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의 고민이 뜨거워져가는 봄의 내리막에서
서늘한 한 줄기의 바람이 되어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학급간 성적 격차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너무 평균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마음씀(꼴찌반 아이들에게 더욱 정성껏 가르쳐야지 하는)이 좋습니다.
아이들과의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는 것.. 마음에 새깁니다.

마노아 2007-05-28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 성적 격차가 있을 수도 있는 건데, 10점 이상은 허용을 해주질 않네요^^;;;(반편성을 좀 더 섞어주던가^^ㅎㅎㅎ) 마음의 거리 좁히기. 저도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아자아자!!!(>_<)

마늘빵 2007-05-29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노아 2007-05-29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07년 6월 권장도서 - 김훈의 (남한산성)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핑크빛 표지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산뜻하니 고왔으며 작품의 분위기를 망치지도 않았다.  그것은 김훈 자신이 이 작품을 쓰면서 철저하게 감정을 배제했기 때문일 것이다.

명을 버리고 청을 받들 것을 거부하며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하던 인조와 신하들의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얼어죽는 병사들이 속출했고 굶어죽는 이들도 많았건만, 그 사실을 전하는 김훈의 목소리는 그저 담담할 따름이다.

화친을 말하는 최명길의 충절이 척화를 말하는 김상헌의 피끓는 외침과 크게 다르지 않고, 배삯을 치뤄주지 않은 임금의 일행을 보낸 뱃사공이 청군을 이어 나르겠다는 그 마음이나 사대부로서 임금을 버리고 도망친 유신들의 마음의 크기가 다르지 않았다.  김훈은 그저 담담히 적을 뿐이고, 그 행간에 감정을 실어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김훈의 독특한 필체는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굵고 강직한 그 목소리가, 때로 같은 문장을 비틀어서 다시 말하는 수법을 많이 사용해서 말들이 어지럽고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김훈의 문장이라면 언제나 흠뻑 취해서 갖고 싶어하던 나로서는 뜻밖의 반응이다.  이제 콩깍지가 조금 벗겨져서 약간의 흠이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1급 요리도 자꾸 먹다 보면 질리는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 해도, 명문장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칸이 보낸 문서라던가, 최명길이 임금을 설득할 때의 목소리는 김훈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배어있는 깊은 울림이었다.   심지어 서날쇠가 김상헌의 쓰라린 양심을 찌르며 되묻는 장면도 백성의 골깊은 한과 진실을 관통해서 보는 총명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인조를 참으로 싫어한다.  현대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관점이기도 하겠지만, 광해군을 쫓아낸 그의 명분이 내게 설득력이 있지 않았고, 현군을 몰아내고서 인군이 되지 못한 그의 아둔함에 진저리가 났으며, 훗날 그가 아들에게 보여준 무서운 권력에의 집착이 치를 떨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과오를 같이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는 판단하기를 늘 유보했으며, 신하들에게 먼저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신하들은 그런 임금에게 '책임'을 떠맡기며 역사의 심판을 같이 안으려 하지 않았다. 

싸우자고도 말하지 못하고 화친하자고도 말하지 못하면서 제 몸 사리기에 급급한 김류가 영의정 자리에서 몸보신을 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에도 비슷한 처세술로 고위공직자의 자리를 꿰차고 있는 어떤 인간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여간 씁쓸한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은 소설이며 오로지 소설로만 읽혀야 한다고 작가는 못을 박고 있지만, 실록의 해당구절을 통해서 이 정도로 펼쳐내 보이는 작가의 신들린 솜씨에 독자는 단순히 소설로만 읽혀진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듯하다.  잘 모르는 단어들이 많이 나와서 사전을 끼고서 읽어야 했는데, 책의 맨 뒤에 용어 사전이 곁들여져 있다.  미리 살펴보지 못한 나의 탓이다ㅠ.ㅠ

책은 두께에 비해서 가볍고 딱딱한 표지를 쓰지 않아서 끄트머리가 약간씩 해어진다.  김훈의 책들은 대체로 비슷한 질감의 종이를 썼는데 책을 본 흔적이 책에 꼭 남는 것이 한 특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닳아진' 느낌이 나쁘지 않다.

자전거 여행에서 남한산성을 보며 썼던 명문장을 다시 이 책에서 인용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나오지 않았다.  따로 옮겨둔 것이 있으니 그 메모를 다시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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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8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멜기세덱 2007-04-2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김훈의 소설은 <칼의 노래>를 읽은 게 전분데요..ㅎㅎ 개인적으로 그의 문장은 <자전거 여행>에 나오던가요? 여우치 마을도 나오고... 참 좋더라구요. 글 잘 쓰는 김훈이란 작가를 좋아하시는 마노아님 필치도 산뜻 발랄하네요.

마노아 2007-04-23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가 김훈의 팬이 되게 한 일등공신이었어요. 자전거 여행도 참 좋았습니다. 굉장히 독특한 성향의 작가 같아요. 누군가는 김훈의 문체를 흉내내는 것처럼도 보였습니다. 그만큼 강렬하다는 뜻이겠지요^^

홍수맘 2007-04-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을 멋있게 그러나 어렵게 읽은지라 아직도 고민중이랍니다.

마노아 2007-04-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전거 여행보다는 쉽게 읽혔던 것 같아요. 김훈의 문장은 힘이 팍! 들어가 있는데, 그게 또 매력이에요^^

잉크냄새 2007-04-23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님의 문장이 김훈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는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노아 2007-04-23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르게 김훈의 문체를 따라했을까요? 중독성이 강한 김훈의 문체이기는 해요^^;;;;

마노아 2007-04-23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친절하신 님! 덕분에 오타 수정했습니다. 아이 참 쑥스러워요^^;;;;

마노아 2007-04-23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가 워낙 깊은 인상을 주어서 그때의 느낌을 뛰어넘지는 못했어요. 그래도 역시 '김훈'이란 말은 나오던걸요. 역사소설 많이 써주셨음 해요^^

마노아 2007-04-2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호불호가 좀 나뉠 것 같아요. 스타일이 워낙 강하잖아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점층 대구'를 잘 쓰는 문장을 아주 싸랑하거든요6^^

역전만루홈런 2007-04-2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김훈을 좋아해서 책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는데, 마노아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다들 닳아지더군요, 빳빳한 표지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은데..닳아진만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책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역전만루홈런 2007-04-24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보니 사진이 이승환이군요, 이승환 좋아하시나봐요..저도 참 좋아하는데..ㅎㅎ

마노아 2007-04-24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까망이님. 반갑습니다~ 책의 표지와 종이의 재질마저도 작가의 느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어요.^^ 완소승환, 너무너무 싸랑해요^^

프레이야 2007-04-24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벌써 읽고 쓰셨네요. 흠,,
여기 춤추는인생님 말고 또 다른 김훈팬을 만나게 되네요. 위에 계신 까망이님..
저도 책표지가 맘에 들었어요. 책의 내용에 비해 물리적으로 가벼운 무게감이
묘한 대칭을 이루었구요. 책 뒤에 낱말풀이와 지도를 전 먼저 보았지요.
사전을 끼고 보셨다니 마노아님, 대단하십니다.^^

마노아 2007-04-2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팬이 많을 것 같아요. 한 번 몸을 담그면 헤어나기 어려운 중독성이 있어요. ^^
표지마저도 무거웠다면 선뜻 책장을 펴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탁월한 선택이었죠.
사전은, 독서 삽질이에요ㅠ.ㅠ

2007-07-02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7-02 17:02   좋아요 0 | URL
트랙백 주소를 달았는데 제가 맞게 한 건지 모르겠어요. 아직 2.0이 익숙하질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