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시즈 7SEEDS 19
타무라 유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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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시즈 18권이 지나치게 늦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국내 발간이 늦었던 건가보다. 19권이 무려 한 달 만에 나왔으니 말이다. 덕분에 19권은 금방 볼 수 있었지만, 그 덕분에 20권에 대한 기다림은 조금 더 길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고 형부가 아직도 나오네!하고 놀라버렸다. 오래 전에 형부가 만화책 딜러할 때 나오던 책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오랜 시간 애쓰고 계시는 작가님께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달까.  

18권 마무리에서 여름 A팀의 안고와 료는 모두 총을 들고서 위기감을 느꼈다. 안고는 동굴 같은 곳에서 자신의 오랜 트라우마인 시게루를 환각 속에서 보는 바람에 아라시를 향해 총을 쏘았고, 료는 세미마루를 향해 발사했다. 평소 불량스럽게 살아왔지만 총에 손댈 생각 없었다며 반성하는 세미마루의 중얼거림이 인상적이었다. 결국 자신이 쏜 총알은 불발이 되었고 오히려 자신이 총을 맞았음에도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 착한 녀석! 지난 번에 안고가 자신의 실수로 배를 놓친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새와 똑같다. 여름 A팀은 최정예 부대로 이 세계로 넘어왔고, 여름 B팀은 본시 살던 세계에서도 낙오자 그룹에 속하던 녀석들이지만, 이 친구들이 훨씬 긍정적이고 삶에 대한 전망이 건강하다. 그렇다고 여름 A팀을 나무랄 수도 없다. 오로지 지구 멸망 위기에 미래로 보내지기 위한 최정예 부대 7명에 선발대기 위해서 살아온 아이들이 아니었던가. 그런 사정을 모르는 세미마루는 아무 것도 해본 게 없다는 료를 지나치게 촌구석에서 온 줄 알고 있지만 말이다.  

탁구대나 농구 골대를 보고서 놀이감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세미마루와 달리, 구기종목은 생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료를 비교한다면, 단연코 료 쪽이 훨씬 가엾다. 이제 그런 모습들이 조금씩은 변화될 거라고 기대하지만 말이다. 

 

수직으로 세워진 배 안에서 몇 차례나 죽을 위기를 겪게 된 이들 앞에서 결국 료의 분노가 폭발한다. 팔랑팔랑 소년 세미마루도 기가 팍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 특유의 유쾌함으로 또 다른 진보의 한 발자국을 내딛는 모습이 대견스럽다.  

마츠리도 마찬가지다. 칠칠치 못한 성격으로 보였는데 밝고 명랑하며 건강하다. 대두를 가지고 나눈 대화가 인상 깊었는데, 농가소녀였던 마츠리의 역할이 앞으로 더 커질 근거를 남겼다. "마츠리는 진화한다"라는 글자가 재밌으면서 믿음직하다.  

안고가 미래 세계에선 컴퓨터나 기계 쓸 일이 없을 것 같아 배우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렇게 모든 게 사라져버린 세계이니 농사의 중요성이 더 클 테니 말이다.  

안고와 아라시를 구하는 과정에서 나츠의 역할이 무척 컸다. 늘 소심해서 큰 소리로 말도 못하던 아이가 이제는 누군가의 생명을 책임지는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시게루에 대한 기억으로 나츠더러 위험한 일은 전혀 못하게 하는 안고에게 자신의 쓸모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츠야말로 제대로 진화한 셈이다.  

문제는 배의 상태다. 이 배가 작동을 멈추었을 무렵, 그러니까 아직 이 배에 사람들이 살고 있을 때에 그들은 일본 열도를 향해 미사일을 쏠 것과 배의 자폭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오랜 시간동안 멈춰있던 그 프로그램이 이들의 등장으로 재가동되었고, 12시간 이상 남아있을 때만 멈출 수 있었던 프로그램은 12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자동 멈춤은 불가능해졌다. 어떤 명령어로 멈추는 게 가능할지, 혹은 배의 상태가 안 좋아서 미사일이 발사가 안 될지 아직 알 수가 없다.  

또 쇠붙이를 먹고 증식하는 박테리아가 아주 빠르게 번지고 있다는 것도 위험 신호다. 하나의 시험을 통과하면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인류라는 종이 아예 멸망할 만큼의 큰 시험이 온 뒤니, 이 정도의 테스트는 군소리도 없이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빠르게 진화하고 적응하고 있다. 이전이라면 옛날 세상에서 보던 물건들과 마주했을 때 그리움이 더했겠지만, 이제는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게 된 것에 스스로를 칭찬할 만큼 강해졌다.  

부디 인류 보존의 프로젝트 세븐 시즈가 무사히 뿌리 내리고 싹을 틔워 열매까지 맺기를! 그리하여 이 지구를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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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1-08-2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바사라'를 읽던 학생시절이 생각나네요. 벌써 언제적 이야기인가요.

마노아 2011-08-29 12:17   좋아요 0 | URL
바사라는 꿈의 작품이었어요. 지금도 그때의 왈랑거림이 선명히 떠올라요!!

pjy 2011-08-2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도 책장의 바사라 완전판을 한번 쓰다듬고 므흣하게 웃었더랬지요^^

마노아 2011-08-29 14:17   좋아요 0 | URL
바사라 완전판이 친구 집에 있는데 친구가 여행 간 동안 그 집에 알바 하러 갔더니 옷걸이가 무너져 내려서 그 위에 있던 바사라도 아래 떨어져 있더라구요. 다시 쌓아놓기는 했지만 도로 집어서 갖고 오고 싶었어요. ㅎㅎㅎ
 
세븐시즈 7SEEDS 18
타무라 유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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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운석과 지구가 충돌해 인류를 포함한 지상의 생물이 괴멸적 타격을 입은 시점. 정부는 세븐 시즈 프로젝트를 투입해 재능있는 남녀를 7인 1조 5개 팀으로 만들어 냉동보존시켜 미래로 보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팀과 부적응자로 구성된 여름 B팀이 그들이다. 이들이 미래 사회에서 맞닥뜨린 환경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고, 이미 많은 희생도 낸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이런 미래에 보내진다는 걸 전혀 모르고 도착한 애들보다, 철저하게 서바이벌 훈련을 받고 거기서 생존해서 미래로 보내진 아이들의 절망과 분노가 유독 심했다. 이들이 여름 A팀인데, 그 중 안고와 료에 의해서 하나가 큰 위험에 처했고, 이제 하나의 연인 아라시마저 바다에 혼자 남은 채 배가 떠나버렸다.  

 

표지는 바다 위에서 수초에 감긴 아라시 모습이다. 원래 살던 곳에서 수영 선수를 하던 아라시는 설마 하니 자신이 물살에 떠밀려 왔다고 생각했지, 료에 의해서 조난 당했다고는 상상하지 못한다. (착한녀석!) 지구 환경이 많이 달라져서 알 수 없는 생물들이 많이 등장했다. 저 수초들은 무척 끈적끈적하고 부력이 강해서 바다 위의 아라시의 체온을 보호해 주었다. 방향을 알 수 없어서 섣불리 수영을 할 수도 없던 아라시는 처음에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느껴버린다. 

 

시커먼 바다 위에서 느낀 철저한 고독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다행히 수초 덕분에 아침까지 살아남았고, 그간의 서바이벌 경험으로 불을 피워서 조개도 익혀먹으며 씩씩하게 연명한 아라시. 

한편 뒤늦게 아라시가 행방불명된 것을 알게 된 동료들은 배를 돌리지만 저 무시무시한 수초 덕분에 배가 꼼짝을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안개가 걷히고 발견하게 된 거대한 배무덤들. 그 중에서 가장 멀쩡해 보이는 배는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셸터였다. 모두 7개가 공개되었는데 방위를 따진다면 하나가 부족했던 것이다. 소재를 알리지 않았던 것은 그 안에 함께 보관된 무수한 무기들 때문이었다. 섣불리 무기의 존재를 알고 미래로 보내는 것이 정부 입장에서는 불안했을 것이다. 물론, 그 배 안의 사람들도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사람이 배에 오르자 신호를 받아 90도로 서버린 배. 저 상태로도 가동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실제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배가 있다고, 과학향기에서 읽은 것 같은데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남극에서 사용하는 배던가??? 

여름A팀의 살벌한 두 친구는 부적응자로 구성된 여름B팀의 존재에 절망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피튀기며 싸워서 도착한 이곳을, 평범한 수준도 아닌 수준 이하의 자들도 와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그 와중에도 잘 살고, 또 자신들보다 훨씬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게 당연하다. 이렇게 막막한 세계에서는 위험한 곳과 위험하지 않은 곳 자체가 구별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발 딛고 헤쳐나가고 전진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키워진 탓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그들의 영혼도 부디 안식을 찾았으면 한다.  

그나저나 마지막으로 찾아낸 셸터는 생각보다 훨씬 위험해 보인다. 그 배에 마지막까지 살았던 사람들의 절규와도 같은 최종 결정이 지극히 위험했다. 누구도 내려서는 안 되는 결정을 내린 그들, 그리고 그 영향을 대신 받아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19권에서 확인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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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07-25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이것이 언제!!
정말 반갑구나, 세븐시즈야!!

(전 정말 이렇게 땡투 아낌없이 날릴수 있는 리뷰가 그리워요 ㅠ.ㅠ)

마노아 2011-07-25 21:36   좋아요 0 | URL
두달 가까이 왜 안 나오나 기다리면서 지난 지진 피해 때 해라도 입으셨나 별 망상이 다 드는 거 있죠.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시미즈 레이코 샘과 함께요.^^ㅎㅎㅎ
 
비밀 9
시미즈 레이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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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목차가 '플로로그/최후의 만찬/END GAME'으로 되어 있어서 순간 완결편인가 하고 맨 뒷장부터 확인했다. (플로로그는 '프롤로그'의 오타인 듯!) 다행히 완결이 아니다. 아직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벌써 마무리 지을 리가 없지... 그렇지만 이번 이야기는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권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어서 궁금증은 평소보다 더 크다는 게 다소의 아쉬움이랄까.  

때는 서기 2062년의 일본. 뇌과학 연구의 혁신으로 죽은 사람의 뇌를 스캔해서 최장 5년 동안의 기록을 들여다 보고 수사를 하는 법의 제9연구실. 초절정 미모와 차가운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마키 경시정은 오늘도 서릿발을 날리고 있다. 수사 시간에 꺼두라고 한 핸드폰이 잘못 울리는 바람에 불연소 휴지통으로 바로 직행한 휴대폰과 모두의 사색이 된 얼굴이라니....

 

비밀이 처음 시작될 때 마키 경시정의 잃어버린 동료들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희대의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들여다본 뇌에 대한 충격으로 동료들이 사망하고 자살까지 했던 그 이야기가 다시 꺼내졌다. 그때 충격으로 정신병원에 수용된 제9 연구실 소속 연구원이 돌아왔다. 그의 출연은 마키 경시정에게 큰 혼란과 충격을 주는 듯 보였다. 그가 밝히지 못한 과거의 연결고리가 다시 꿈틀대는 중이다. 아오키는 마키에게 혼자서 비밀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테러의 위협을 받는 것이라고, 비밀을 함께 공유하자고 얘기하지만 마키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들의 업무는 혼자만의 생명의 위협이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 모두의 목숨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염려가 현실화됐을 때, 감정이 앞설 때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것은 이미 늦은 일이다.  

마키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방탄복을 평소에도 입고 있었다. 테러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죽게 된다면 정확하게 머리를 쏘기를, 그리하여 자신의 뇌에 담긴 기억이, 그가 보아왔던 모든 수사자료가 그대로 묻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인 '비밀' 그대로 말이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무시무시한 범죄가 저질러졌고, 살인범의 조롱 섞인 메시지가 소름 돋게 했다. 뉴스에서는 노르웨이 테러범 기사가 계속 나오니 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뇌가 보았던 영상을 읽을 때 소리는 들리지 않으므로 제9 연구소 직원들은 독순술을 공부한다. 입술 모양으로 말소리를 알아내는 것이다. 상대의 표정과 입술 모양으로 그가 하려던 말을, 그가 느낀 감정도 더 뚜렷하게 읽어낸다. 마치 텔레파시라도 하듯이...  

만화 속의 내용은 작가의 상상력이 창조해낸 가상의 세계이지만 2060년대가 되면 정말 저런 기술이 없으란 보장도 없지 않을까? 분명 뇌가 본 영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범인을 잡는 일은 보다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기술이 진보하는 동안 범죄자들의 수법도 똑같이 진화할 테지. 그리고 저렇게 현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여러 트라우마에 노출되고 희생을 무릅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고... 놀라운 세상을 살고 있지만 정말 어처구니없게 놀랄 일도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 다이나믹한 세상살이다. 양으로든, 음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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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3
강풀 글 그림 / 문학세계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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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강풀의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은 계보가 있다. 아파트가 시작이었고, 타이밍, 이어서 이웃사람, 그리고 어게인으로 이어졌다. 첫 시리즈에는 저승사자라고도 불리는 메신저가 한 명 등장했지만, 타이밍에서 한 명 더 추가 되었고, 그리고 어게인에서 또 한 명이 추가되었다.  

 

각각의 저승사자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듣게 되면 사람이 죽고, 누군가는 눈이 마주치면, 또 누군가는 손에 닿으면 죽게 된다. 이들은 평상시에는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는 했는데, 가끔 별종이 나올 수가 있다. 어게인에서 등장한 목소리 저승사자가 그랬다.  

첫 시작에서 그는 교통사고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내버려두면 곧 죽을 터였다. 그를 데리러 온 저승사자가 목소리로 사람을 잡는 인물이었는데, 어차피 곧 죽을 터였기에 사자는 그의 목숨을 당장 거두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변수가 생겨서 사자의 능력은 죽어가던 이 남자에게 옮겨갔고, 그는 어게인이자 메신저로 부활한다.  

어게인. 사람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온전히 살아내지 못한 자신의 생만큼을 더 살아간다. 어게인은 자신이 어게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데, 박태민은 메신저이면서 어게인이기 때문에 누가 어게인인지, 또 누가 언제 죽을 것인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이때 생명은 누군가가 죽으면서 또 누군가가 태어나는데 그 주기가 10개월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가 자라는 기간. 어게인을 죽이면 태어나야 할 아이가 죽게 된다. 반대로 아이를 죽이면 어게인의 생명이 연장된다. 박태민은 어게인들을 모아서 지속적으로 수명을 연장해 왔지만, 임산부 연쇄살인을 덮기 위해서 대형참사를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 더불어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사명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바로 타이밍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했던 시간 능력자들이다. 

 

첫번째 남자는 시간을 10초 전으로 돌리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으로도 가스 폭발 사고로 죽은 아내와 아이를 살리지 못한 충격에 능력을 쓰지 않고 침울하게 살아가고 있다. 두번째 기형이는 손으로 만지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저승사자이고, 세번째 박자기 선생님은 꿈을 통해 대형참사를 미리 예측한다. 기형이와 박선생은 어차피 벌어질 참사를 막을 수는 없지만,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일에 힘쓰고 있었다. 물론, 사전에 말하면 미친 사람 취급 받고, 사후에는 범인으로 몰리는 수모를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구하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네 번째 영탁이는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갖고 있다. 멈춰진 시간 속에서 그 혼자만 움직일 수 있지만, 공기도 멈춰버리기 때문에 호흡이 가빠지는 단점이 있다. 마지막에 오드아이를 갖고 있는 여자는 기면증이 있는데, 잠이 들면 10분 후에 벌어지는 일을 미리 보게 된다.  

이렇게 다섯 사람이 뭉쳐서 어게인들의 임산부 살해 사건을 해결하고자 뭉쳤다.  그 와중에 박태민의 생과 연결된 아이가 곧 태어나려고 한다. 산모는 인도네시아 사람이다. 아이 아버지도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는 항상 죽음을 비켜가는 사나이였다. 지뢰밭에 들어가도 지뢰 하나 밟지 않고 나올 수 있었고, 그는 늘 가장 안전한 곳이 어디인지를 알아차렸다. 크리스마스에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갔는데 쓰나미가 덮쳤고, 그때 목숨을 건져준 인연으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현재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게다가 태어날 아이 하나는 아버지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고, 또 하나는 박태민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아이의 아버지도 사실은 어게인이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살리려면 아이가 죽어야 하고, 아이를 살리면 아버지가 죽어야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어게인 박태민과 곧 태어날 아이가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그 속내용까지 드러나고 났을 때는 호흡을 한 번 가다듬어야 했다. 강풀의 이야기는 늘 보여지는 것 이상의 뭉클함을 던져주곤 했는데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 시리즈에도 예외는 없었다. 누구보다 인간적인 저승사자가 등장하고, 특별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으로도 제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소시민이 등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임산부를 계속 죽이게 만든 무시무시한 인간 박태민에게조차 두 손 내밀어 잡아주고 싶은 사연이 등장한다.  

와우 아파트 붕괴! 거기서 출발할 거라고는 상상 못했다. 그렇게 서럽게 죽은 목숨이라면, 작가의 상상처럼 어게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시간을 되돌리고, 시간을 멈추고, 또 미래를 미리 내다보는 특별한 능력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람의 간절한 염원, 그 지극한 마음의 둘레를 보고 말았다. 연민을 넘어 뜨거운 감동이 솟았고, 정해진 숙명을 벗어날 수 있게 내 마음 한 조각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사실 작가는 타이밍2를 쓰고 싶었는데 외전 격으로 이 작품을 먼저 썼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타이밍은 예전에 읽고서 중고로 팔아버렸는데 뒤늦게 후회가 된다. 스포일러를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찾아보고 재차 감상할 만한 책이었는데 너무 가볍게 떠나보냈다. 다시 구입해서 모아야겠다. 그래야 나중에 타이밍2가 나오면 연결해서 다시 보고 또 폭풍감동을 받을 게 아닌가.  

강풀 작가의 주인공들은 모두 따뜻했다. 버릴 만한 인물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가장 '연민'을 느낄 사람으로 어게인의 박태민을 꼽겠다. 그의 강한 염원에 진심으로 동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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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1-07-16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매해서 보고싶은데..ㅜ.ㅜ
서울에 비가 많이 왔지요?
날씨가 좀 시원해지면 좋겠어요.^^

마노아 2011-07-16 12:11   좋아요 0 | URL
강풀 작가의 책은 언제나 추천이에요.^^
서울은 비가 많이 와서 빨래가 좀처럼 안 말라요. 수건은 죄다 선풍기로 말리고 있어요.ㅜ.ㅜ

2011-07-18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8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의 포로 아크파크 5 : 2.333 차원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4월
절판


꿈의 포로 아크파크 시리즈 대망의 마지막 권이다.
이번엔 또 어떤 기상천외한 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첫 장의 제목은 현실의 파수꾼들이다.
이 파수꾼들이 대체 어떤 일들을 하는지 궁금하다.
이들은 꿈 활동 검사반인데 불시에 아크파크 씨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그의 모자를 들춘다.
모자를 열자 머리 속에서 날아가는 꿈 조각들.

커다란 그물로 꿈을 건져내는데, 아뿔싸!
꿈 한장을 놓치고 말았다.

놓친 한 장의 꿈 제목은 '꾸어서는 안 될 꿈'이다.

씁쓸한 의혹을 남기는 꿈 하나를 꾸고 방금 일어난 참이었다만...
내가 정말 깨어난 것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꿈이 시작된 것이었을까?
나야 꿈의 모험에 닳고 닳은 베테랑이었으므로 이런 불확실한 상황이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라고 말을 하는 아크파크 씨. 과연, 그럴까?

꿈속에서 깨어난 아크파크 씨. 그러니까 그는 지금 꿈꾸는 꿈을 꾸고 있는 중인 것이다.
불현듯 그의 방 벽면이 모두 누워버린다.
바닥이 되어버린 벽의 끝으로 이동하자 누군가 매달려서 수리를 하고 있다.
수리공 왈, 소실점을 갈아끼우는 수리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소실점이 잘못되면 원근법이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 소실점을 갖다 달라고 했는데,
그만 발이 걸리는 바람에 소실점을 놓치고 마는 아크파크 씨!
소실점을 잡으려다가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꿈에서 깨어난다.
무려 1m82cm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확실하게 꿈에서 깼다고 생각하는 아크파크 씨.

깨어보니 오전 9시다.
지각 위기에 놓인 그는 파자마 위에 바로 버버리와 모자를 걸치고 뛰쳐나갔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 지름길 거리로 들어선 것이 화근이었다.
자발적인 시위가 일어난 탓에 아침의 교통체증은 더 난리였다.
이들의 구호가 재밌다.
"우리는 두께를 원한다"
"납작함은 가라"
"평면 결사반대" 등등....
이곳에서 평면부 직원가 마주친 아크파크 씨.

그의 손에 이끌려 평면부로 간 아크파크 씨.
원래 부피는 지평선 상에 위치하는 두 개의 소실점으로 표현되는 것인데,
소실점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 바람에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두께가 없는 평면으로 납작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도 아주 완벽하게 평면은 아니고 얄팍한 두께는 갖고 있다. 그래서 이 공간은 2차원과 3차원의 사이라고 해서 2.333차원이라고 부른다. 이번 편의 제목이기도 하다.
당황스러운 것은 순식간에 잃어버린 소실점을 찾아나설 수 있는 영웅으로 둔갑해 버린 아크파크 씨다.
결국 그는 소실점을 찾기 위한 발사대에 제 몸이 설치되는 지경에 이르른다.
비행기 모양으로 접히는 아크파크 씨!

하지만 발사과정의 실수로 비행계획 서류를 떨어뜨리고 간다.
그리하여 하부 세계에서 미아가 되어버린 우리의 아크파크 씨!
재밌게도 이곳에서 자신의 이웃 일라리옹 영감님과 부딪힌다.
노인은 아르바이트로 이륙 실험에 참가하였던 것이다.
비행하는 그들의 눈앞에 등장한 것은 별의 띠처럼 보이는 무수한 잔해들.
바로 만화의 원고들이었다.

쓰레기처럼 취급되어 버려진 그들은 데생 단계의 원고들이다.
작화되어버린 그림의 선명한 선과 대도적으로 흐릿하게 그려진 그들의 그림은 무척 비교가 된다.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 비교하자면 정규직을 바라보는 비정규직의 눈망울같달까.
데생 원고 별(?)에서 다시 다음 공간으로 떠나버린 두 사람.
그들이 살았던 별이 보인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다.
말로만 듣던 평행 우주의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우주를 비행하다가 '그레이홀'에 빨려들어간 두 사람.
블랙홀이 아니라 그레이홀이라는 게 재밌다.
그리고 더 재밌는 것은 여기부터는 그림이 3D로 그려졌다는 것이다.

책에는 3D용 안경이 있어서 그걸 착용하고 그림을 보면 중첩되어 보이는 글자들이 바로 읽히고, 그림들은 모두 입체적으로 보인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다양한 배경들을 분배, 배치하는 감독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소실점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아크파크 씨!

앞서 나왔던 꾸어서는 안 될 꿈 2탄이다. 하지만 대사가 흥미롭다.

나는 확실한 예감을 남기는 모험을 경험했다... 나는 꿈에서 꿈을 깨려 했고, 그로써 또 다른 현실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나야 현실의 모험에 닳고 닳은 베테랑이었으므로 이런 확실성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의혹을 품었다.

-앞서의 대사와 정반대로 가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또 재밌는 것은 그의 방 시계다. 숫자가 1부터 10까지만 있다. 우리처럼 하루에 두 바퀴 도는 것이 맞다면 아크파크 씨가 사는 세계의 하루는 20시간인 것이다. 하루에 4시간이나 줄다니, 아찔한 일이다.

시작 부분에 나왔던 파수꾼들, 그들이 놓쳐버린 '꾸어서는 안 될 꿈' 한 장을 다시 잡아서 원위치 시키고 있다. 하지만 그 한장의 내용은 이미 완벽하게 바뀌어 있는 것을 이들이 알고 있을까. 아님 이들에 의해서 뒤바뀐 것일까.
암튼 이들의 지침에 눈길이 간다. 절대로 한 사람의 꿈을 모두 다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이다.
그 꿈이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으니...

책 안에 들어있던 안경도 같이 찍어보았다. 처음엔 내가 만들었던 안경이 이 속에 들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각이 잡힌 것이 나의 삐뚤삐뚤한 솜씨가 아니어서 책 속 부록임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다섯 권의 시리즈를 읽으면서 각종 다양한 시도들을 접목시키면서 이 놀라운 꿈의 세계와 꿈의 포로를 표현한 마르크앙투안 마티외의 천재성에 두루 놀랐다.
마치 거대한 음모론을 본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까지도 진짜일까? 의심하게 되고 자꾸 제자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찔함이 이 작품에 있다.
만화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만화. 궁극의 실험, '꿈의 포로 아크파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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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7-1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그침체를 보니 전형적인 유럽 스타일 그림이네요.일본풍의 그림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좀 거시기 하지요^^
유럽은 만화도 일종의 예술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책이 100페이지 이상 넘는것이 드문데 일본 만화는 100권이상 되는 것도 상당히 많으니 정말 서로 차원이 다른 만화죠.

마노아 2011-07-12 13:31   좋아요 0 | URL
이 정도 그림이면 깔끔하니 좋은 것 같아요. 그래픽 노블 중엔 아주 무겁고 글씨도 많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책도 많으니까요.
확실히 만화에 대한 대우가 좋은 것 같아요. 유럽도, 일본도요. 우리나라만 그 부분에 있어선 아직 많이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