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뷔오네 Evyione 10
김영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2월
품절


무스탕님의 성화에 힘입어 받자마자 바로 올리는 리뷰다. ㅎㅎㅎ

에뷔오네 10권은 이제껏 중 가장 음모가 판을 쳤고, 야신의 활극이라고 해도 무방할 액션대작(!)이었다.

그렇지만 사진 찍은 순서에 의해 그림 이야기부터!
마리엘라의 분노에 찬 얼굴이 인상 깊어서 한 컷 찍어봤다.
그녀의 왕비전하에 대한 애정 혹은 집착은 보여지는 것 이상이리라.
그리고 인어왕 야신! 그의 외모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버릴 것이라곤 없지만 그래도 적당히 벗어준 등빨!이 항상 가장 섹시하더라능!!
저렇게 서 있으면 마주선 근위병마저도 얼굴이 새빨게질 것이다. 어쩜 좋아!
그리고 프랑스 왕자이자 앙트완 공작님의 저 자세도 꽤 마음에 든다.
고고해 보이지만 상대의 얘기에 촉각이 곤두서 있을 것이고, 그럼에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 기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럴 때에 저 작은 크기의 책은 무척 활용도가 높다.

명색이 인어왕이니, '물'이 있다면 그가 무엇인들 못하랴.
이번 이야기에선 거의 첩보전을 방불케 했는데, 물을 사용해서 목표를 추적하고,
또 사랑하는 이를 보호하고, 바다 마녀로부터는 정보도 얻어내는, 여러모로 개인기를 선사한 우리의 인어왕 되시겠다.

왼쪽의 그림은 사실 상하를 뒤집은 것이다.
원래 그림은 추락하는 느낌으로 뒤집힌 것인데 드레스가 예뻐서 내가 사진을 돌려서 붙여버렸다.
그리고 오른쪽 그림은 책 속 부록에 해당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길이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자리에 붙여진 컷이다.
바다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이라고 써놨는데, '바다빛'이란 대체 어떤 빛일까? 흑발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깊은 바다의 그 검푸른 색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여간에 근위병으로도 최고로 섹시한 우리의 주인공 야신 다 퓌레느입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연출이다.
에뷔오네가 함정에 빠져서 아주 위험한 지경에 빠졌고, 그 극적인 순간에 야신이 들이닥쳤다는 것은 진부할 수 있지만,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무사히 도착한 것이 백번 나은 이야기!
아무튼 그가 짐승과 같은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일단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있다. 눈동자가 왼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그 한 번으로 목표를 정하고, 다음 움직임을 설정한다. 그리고 놓치지 않는다. 그가 더 크게 분노하기를, 그리고 제대로 복수해주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 바람은 배신당하지 않는다. 그의 정당한 분노에 브라보!!!

마지막 부분에 실린 그림이다. 드레스와 구두가 예뻐서 찍어보았다.
가운데에 낀 앙트완의 그림은 옥의 티가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의상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작품 속에서 앙트완이 루이 15세의 아들로 나왔던 것 같다. 루이 15세는 루이 14세의 증손이니까 여기서 '조부'의 옷을 입은 셈으로 치면 촌수가 안 맞는 듯!
그리고 오른쪽은 '열왕기' 광고이기도 한데, 여전히 야성의 진수를 보여주고 계신 마왕의 포스가 강렬해서 한 컷 찍었다. 애장판으로 나올 마스카도 기대가 된다. 마스카는 띄엄띄엄 모아서 정렬이 잘 안 되었는데 애장판으로 다시 모을 생각이다.

작가 후기에서 보니 에뷔오네가 원래 3권에서 5권 분량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10권. 그렇다면 이야기가 종반부에 들어갔다는 의미일까? 작가님 블로그도 간혹 들여다 보지만 얼마만큼 남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작품은 길어도 좋고 짧아도 좋지만 작가님 그저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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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1-12-3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어찌 추천하지 않을수 있으리오?! 늘 멋진 리뷰 마음을 담아 감사해요.
리뷰 읽으면 책 보고 싶어 근질근질하면서 왜 아직도 한 장도 안 보고 버티는건지 저도 참 미스테리합니다 ^^;
곧 완결이라는 고지가 보이겠군요. 열심히 기다려야징~~~~

마노아 2011-12-31 21:30   좋아요 0 | URL
스포일러를 조심하느라 줄거리는 거의 언급하지 못했어요. 인어왕의 활극이 아주 기대가 되었던 10편이랍니다. 빨리 두 사람이 행복해졌음 좋겠어요. 저도 읽진 못하고 모으면서 기다린 작품이 있는데 그 와중에 '너의 파편'은 완결이 되었어요. 이제 읽어야 해요. ㅎㅎㅎㅎ

BRINY 2012-01-04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10권이 나왔군요. 요새 바빠서 신간체크를 못했더니!

마노아 2012-01-05 16:03   좋아요 0 | URL
매우 강렬한 장면이 있어서 며칠 잠자리에서 내내 생각하게 했던 에뷔오네였어요.^^
 
백귀야행 17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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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백귀야행을 다시 펼쳤다. 16권까지는 바로바로 읽었는데, 17권부터 밀려서는 현재 20권까지 출간되었다. 대략 한달 전쯤에 야곱에게 백귀야행을 빌려주게 되었는데, 뒷권을 궁금해할 것 같아서 부지런을 떨 생각에 집어들었다. 오랜만에 읽으니 더 정겹고 재밌었다.

 

이마 이치코의 연출 방식은 한 번에 바로 이해가 되질 않고, 다시 되돌아가 짚어봐야 깔아두었던 복선을 다 찾아먹을 수가 있어서 이번엔 아예 두번씩 읽었다. 그랬더니 확실히 이해도 되고 더 재미있고 그림도 눈에 바로 들어온다. 독자를 조금 피곤하게 하는 작가이지만, 그것도 매력일 것이다.

 

 

카이 삼촌은 현실 세계에서 오래 떨어져 있었기에 아무래도 영감의 발달이 리쓰보다는 둔한 것 같다. 알아차리는 게 느린 건 아니지만 반응속도랄까 대응방법이랄까. 현실 세계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거기서 벌어진 차이 때문으로도 보인다. 아무튼,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본인에게만 보이는 저런 요괴들 때문에 난처한 상황도 벌어지고, 또 앙증맞은 복수도 가능한 이 세계가 참 재밌다.

 

아키라도 집안의 핏줄 답게 영감이 발달되어 있지만 평상시에는 잘 안 보이다가 뭔가 특별한 계기가 생기면 꼭 얽히게 된다. 한데서 잠들어 있는 노숙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 이는 역시 요괴다. 업힌 순간 저리 커져버렸다. 이 또한 아키라의 영감과 반응해서 나온 현상일 것이다.

 

'미혹의 벚꽃' 편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아키라와 즈카사, 리쓰가 다 함께 고생했지만 실력들을 잘 발휘하기도 했다.

 

달밤에 사람을 현혹시키는 벚나무의 느낌을 그림으로 잘 표현했다. 무척 몽환적으로 보인다. 저런 나무를 혼자만 보는 것은 범죄라는 저 침입자의 투덜거림이 공감갈 정도로!

 

모두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리쓰의 할아버지 살아 생전의 이야기가 나온 '추격말' 편이 가장 재미 있었다. 아무리 리쓰와 카이 등등이 날고 뛰어도 할아버지의 영감만큼은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니 그는 천상 이야기꾼! 게다가 이마 이치코 특유의 유머가 잘 살아있기도 해서 더 재밌게 읽었다.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 살아나는 엽기적인 사건을 이렇게 유쾌하고 재밌게 포장하다니, 작가들의 능력은 참 대단하다.

 

새해엔 백귀야행 나머지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시작할 것 같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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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2-30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드리 벚나무가 만개한 달밤이라니.. 상상만으로도 어질어질합니다.^^

마노아 2011-12-30 18:03   좋아요 0 | URL
정말 현혹될 것 같은 달밤이지요? 이런 날엔 요정도 나오고 요괴도 나올 것만 같아요.^^

2011-12-30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0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0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0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0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30 2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ra 2011-12-3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에 사람을 현혹시키는 벚나무라 너무 좋네요 . 저도 그런 달밤을 내년에는 꼭 만났으면 해요 .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올해 꾸준히 마노아 님의 서재에 들어오는데 댓글을 많이 올리지 못했네요 글만 읽고 위로와 웃음도 많이 받았는데 감사합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마노아 2011-12-31 21:3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mira-da님! 사람을 현혹시킬 달밤을 누군가와 꼭 같이 누리도록 하셔요. 저도 꼭꼭 누군가와 누려보겠어요. 아흐, 요새는 혼자라는 사실이 소스라치게 서러운 날들이랍니다. 한 해가 넘어가서 더 그런가 봐요. mira-da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님의 댓글에 제가 또 위로를 받습니다.^^
 
칼바니아 이야기 13
토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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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칼바니아 이야기를 만났을 때 두 번 놀랐다. 일단 어린애 그림 같은 유치한 그림체에 놀랐고,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발견을 끄집어내는 글쟁이로서의 재능에 또 놀랐다.

 

칼바니아의 여왕 타니아에게 약을 먹이고 팬티를 벗겨낸 사건으로 공분을 산 나쟈르! 이 몹쓸 인사에게 작가는 또 다른 매력과 명분을 쥐어주고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런 놈의 첫번째 방패막이가 되어준 게 타니아라는 사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데 작품을 읽다 보면 공감할 수 있게 작가가 끌어당긴다. 아주 매력적으로!

 

 

그래서 종이인형 같은 그림체와 배경 그림이 거의 없는 만화라는 사실이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칼바니아 이야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매력이 있는데 바로 '웃음 코드'다. 깔깔거리게 웃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울적할 때 13권 출간 소식에 얼마나 바람같이 주문을 했던지.... 그랬지만 읽는데 한참 걸리고, 리뷰 쓰는 데 또 한참 걸리고 말았다..;;;;

 

아무튼! 나쟈르에 대해서 복수를 감행하는 에큐와 라이안의 열혈 분노가 재밌었고, 그런 라이안을 오해할 뻔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에큐가 대견했다. 이번 이야기에선 붉은 머리 에너벨이 꽤 영향력을 미쳤는데, 감히 타니아 여왕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 당돌한 아가씨는 어떻게 성숙해질지 궁금하고, 그로 인해 인내로 다져진 타니아의 또 다른 성장이 기대된다. 공직자로서, 또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인내'와 '절제'만 미덕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감정을 분출하는 것에서 또 다른 진보를 꺼내어든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후기를 보니 이 이야기가 발표되었을 때가 2010년 9월 초였다고 한다. 세상에! 국내에는 무려 1년 이상이나 늦게 발표된 것이다. 지난 12권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13권이 나와서 감지덕지 했는데, 사실은 엄청 오래 있다가 나온 것이었다. 뭐, 덕분에 14권은 또 빨리 나올 거라고 은근 기대해 본다. 그래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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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신 DIEU DIEU - 어느 날, 이름도 성도 神이라는 그가 나타났다
마르크-앙투안 마티외 글 그림 / 휴머니스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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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연극 표가 있다고 연락을 해왔다. 제목은 '예수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책으로 재밌게 만났던 작품이다. 애석하게도 연극 상영일이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변경되면서 수영 때문에 참석을 못하게 되었고, 대신 엄마가 보셨으면 했는데 날이 지나치게 춥고 거리도 멀어서 결국 관람을 포기했다.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그 연극이 더 보고 싶어졌지만 다음 주 월요일에 수영을 빠질 수밖에 없으므로 오늘은 내 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신이다. 초월적 존재의 그 신, 맞다! 그의 등장은 해프닝 같았다. 인구조사 현장에 주민번호도 신분증도 없이 나타난 이 정체 불명의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신'이라고 했고, 성 역시 '신'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를 부를라 치면 '신 신'이 되어버리는 것.

 

많은 사람들이 신의 등장에 코웃음을 쳤다. 신의 존재를 믿거나 안 믿거나,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 사람을 '신'이라고 인정하기엔 우리의 문명은 지나치게 발달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자칭 신이라는 자를 심문하기 위한 책임자로 정신과 의사가 나섰다.

 

 

 

첫 질문부터 눈앞의 인물을 '신'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물음이었다. 신이라는 자는 그걸 바로 지적했다. 자신의 질문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정신과 의사도 인정한다. 그가 다시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모든 정의를 초월한 자. 나 자신의 정의까지 포함해서.

만약 당신이... 한 권의 책이라면, 어떤 책일까요?

모래의 책

만약 당신이 하나의 숫자라면?

제로. 의미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존재하오.

음악이라면?

침묵.

만약 당신이 동물이라면?

인간.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인간일까요?

갓난아이. 그리고 내가 진짜 갓난아이라면,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도록 애쓰겠소.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이 사내를 신이라고 인정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진, 몹시 철학적인 느낌의 인물이라는 것은 용납할 수 있겠다. 이제 신이 반격할 차례다. 보통의 사람이 뇌의 10%를 사용하면서 산다면, 신의 뇌는 99.91%가 가동되고 있었다. 인간의 두뇌라고는 믿을 수 없는 수치다. 완벽한 100%가 아니어서 오히려 더 완벽해 보이는 숫자! 그는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힉스보존을 발견해냈고, 도서관 안에 들어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분자 수를 세어버렸고, 천체망원경으로 발견하지 못한 외계행성을 육안으로 찾아냈다. 그밖에 여러 사건들이 연일 사람들을 놀래켰고, 그때마다 신문은 '놀라운' 것이 '몹시 놀라운' 것이 되어버렸고, 그 다음에는 '완전 놀라운', 이어서 '놀라 자빠질 만한' 등등의 이름으로 변신하였다. 이러한 사건들을 명명하기 위한 수식어들을 모두 갖다 썼지만 더 이상 쓸 수 있는 말이 없을 만큼 놀라운 일들이었다.

 

자, 이쯤 되면 신의 존재를 믿는 무수한 사람들이 등장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신의 존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인간들에 의해 초유의 대량 소송 사건에 휘말린 신! 불행의 직접적인 원인이 신에게 있다고 고소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신에게 무엇도 요구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태어나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신이 세상을 잘못 다스렸다고 나무라는 이들도 있고, 신의 보수적인 면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어마어마한 소송에 대처하기 위한 변호인단의 규모 또한 어마어마하다. 무려 250명의 변호인! 이들은 소송에 질 경우를 대비해서 보험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하기 시작한다.

신의 얼굴은 변호인단에 의해 초상권 등록이 되어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고, 신의 대필가들은 베스트셀러 목록을 도배해버렸다. 사상 초유의 재판은 모든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객관성과는 거리가 먼 배심원단들도 눈길을 끌었다. 신의 변호인들은 신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신이 인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 시키는 방향으로 변론을 펼칠 예정이다. 승소하기 위해 신을 평가절하시킨다는 게 그들의 전략! 반면 원고 측에서는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논거들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다.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 오히려 신의 존재 가치를 역이용하는 이들이다.

 

이후 등장하는 여러 변론들과 반론, 그리고 신의 대답 등은 무척 형이상학적으로 들린다. 실제로 많은 철학자들이 했던 말들이 인용되고 각색되고 재활용되었다.

 

그들의 말을 다시 가져오는 것도 나에게는 힘든 일. 오히려 환경미화원 남자가 건넨 한 마디가 피고인들의 불만을 응축해준 액기스 같았다. 만들기는 하되 애프터 서비스는 없다!라... 그야말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신을 향한 인간의 불만의 정점 아닌가. 물론, 누가 망가뜨렸는가에 대한 과정이 빠지기는 했지만, 신이 창조자라면 인간 세상에 대한 책임은 분명 있는 것이다. 옆에 졸고 있는 그림은 저 재판에서 바로 나온 장면은 아니지만 붙여놓고 보니 어째 저 모양새가 되어 괜히 송구하다. 인간들이 갑론을박하는 모양새가 웃길 법도 하다. 또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재판은 끝을 모르고 진행이 되어가지만, 그 와중에도 신을 둘러싼 각종 비지니스는 춤을 춘다. 얼마나 좋은 마케팅 대상이던가. 또 얼마나 흥미로운 모델인가.

신의 등장을 기회로 설교자로서 재도약의 기회로 삼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현장학습 장면을 살펴보자.  "당신은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란 익숙한 문장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다.신은 이미 인간들 사이에 와 있으니까. 그랬다고 "오오오 신이시여, 우리는 당신이 와 주실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하기엔 너무 기회주의자 같고, "오오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셨습니까?"라고 하면 그건 기도지 설교가 아니다.

 

 

심각한 와중에 가끔 유머가 나와 쉬어갈 여지를 주고, 재판의 공방을 들여다 보면 신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더 들여다 보게 된다. 장 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한 '신, 그것은 곧 인간의 외로움이다.'라는 문장은, 비록 내가 유신론자 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공감이 간다.

 

재판은 어느 쪽으로든 결말이 날 것이고, 그 전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만든 신의 왕국-테마파크-을 보라.

테마파크에 방문한 입장객들은 입구에서 '세례'를 받고, '영혼'으로 거듭난다. 그 후에 '정화의 샘'에 발을 담그면서 공원에 입장할 수 있다. 마음의 양식만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의 메뉴판에는 주문, 기도, 묵상, 명상 등이 올라가 있다. 투자 없이 확실한 마진이 보장되어 있다. '지옥'으로 표현된 뜨거운 냄비 기구가 하이라이트다. 사람들은 괴로움을 당하기 위해서 줄을 서고, 실제로 그 안에서 고통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했다는 점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 밖에 다양한 기념품 샵이 준비되어 있다. 이러니 신은 또 얼마나 많은 '저작권료'를 챙기겠는가.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서 최고의 반사 이익은 신이 차지하고 앉은 꼴이다. 그는 과연 '신'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작품의 결말은 책 소개에 이미 나와 있다. 요지는 반전의 내용이 아니라 그 속에 깔려 있는 메시지다.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는 특유의 냉소적인 시선으로 신이 창조했다고 하는 이 세상과, 그 세상을 요지경으로 만들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의 화살을 날린 것이다.

 

앞서 읽었던 '아크파크, 꿈의 포로' 시리즈보다 더 기발하지는 않다. 신이 현신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이야기는 무척 많았으니까. 또 그 입을 빌려 인간을 비틀고 풍자하는 예도 드물지 않았다. 그래도 흑백 컬러의 단호한 색을 제대로 활용해서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그러면서도 냉소적인 시선도 거두지 않는 조화를 잘 지켰다. 역시 이름값에 뒤지지 않는 작품이었다. 단 한 번도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신의 등뒤 그림자가 왠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이상은, 신을 믿고 의지하지만, 또 신이 너무도 두려운, 지극히 평범한 한 인간의 감상이다.

 

덧글) 오타가 하나 있다. 73쪽의 '요컨데'는 '요컨대'로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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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7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17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객 22 - 임금님 밥상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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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호의 선장으로 오랜 시간 항해를 하다 보니 팬도 많이 생겼고, 그 바람에 팬들로부터 받는 편지와 선물도 많을 것 같다. 이번 편에서는 그런 편지와 선물 등이 잠시 소개되었다.

 

 

첫번째 사진은 독자가 보낸 진정 어린 편지였으며. 두번째는 군복무 중 패러디 작품으로 만든 '식충'이란 작품집이고, 세 번째는 독자가 그린 캐리커쳐다. 이런 선물들을 받으면 작품 활동에서 오는 고단함을 씻어낼 수 있는 좋은 에너지가 될 것이다. 나 역시 마음으로는 그런 고마움의 박수를 함께 보태어본다. 

앞쪽에는 항상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요리들을 실연해 본 장면들이 나온다. 취재 과정에서 찍은 사진, 혹은 재연하느라 직접 만들어본 음식 등등... 게 중 호박잎쌈과 보리 쌈밥이 배가 부른 상태에서 보았음에도 식욕을 돋우었다. 카메라를 언니가 빌려가는 바람에 핸드폰으로 찍어서 화질이 좀 구리지만 여전히 사진을 보니 침이 꼴깍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병원의 만찬'이다.

 

뇌수술 후 신경을 다쳐서 성욕이 많아져서 여자만 보면 무조건 덮치려는 환자와 식욕이 왕성해져서 입원 한 달 만에 체중이 20kg이나 불어버린 남자, 위아래를 구분 못하고 깍듯이 존댓말만 쓰게 된 남자, 후각이 없어져서 미각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남자, 거식증에 걸린 스님까지... 여러 인물들이 한 병실에서 만났다. 맛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삶의 의욕이 오죽할까. 그런 그들이 '수요일'에는 병원 식사를 거르고 몰래 모여서 집에서 들여온 별미로 일주일을 기다리는 낙을 채운다. 이때 등장한 요리가 호박잎쌈이었는데 흑백으로 보아도 여전히 침이 주르륵!!! 그렇지만 미각을 잃은 할아버지는 이 좋은 맛을 느낄 수가 없다. 그러자 비장의 무기 '오이소박이'가 등장한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아삭!하고 씹히는 소리가 입 안에 생기를 돌게 한 것이다. 아, 소리만 들어도 그 맛이 떠오른다. 역시 이 밤중에 침이 꼴깍! 지난 여름 한참 다이어트 할 때 오이소박이가 있었는데, 그 무렵에는 후각이 너무 예민해져서 오이 비린내를 견디지 못해 소박이를 멋지 못했다. 아, 먹고 싶다. 엄니 말씀으로는 지금은 비싸서 못해 먹는다고.... 슬프다!

 

그밖에 두릅을 가지고 상상 음식도 만들고, 도다리 쑥국도 등장하고, 야식으로 닭발도 등장했다. 닭발은 내가 먹지 못하는 음식이니 탐나지 않았지만, 설명하는 매운 맛에 절로 미간이 움직인다. 매운맛은 혀가 느끼는 게 아니라 뇌가 느끼는 통증이라고 하는데, 우린 너무 자극을 좋아한다.

 

 

이렇게 맛있는 메뉴들이 등장하니 일주일이 모두 수요일일 수밖에! 금요일을 기다리는 직장인의 마음보다 더 간절할 것이다. 마지막 마무리는 스님의 퇴원 전 송화밀수 한 잔으로 건배! 의식을 잃은 환자에게도 평소 좋아하던 별미 이야기를 곁에서 해주면, 자연반사적으로 정말 침이 꼴깍 넘어가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의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가능할 것처럼 보인다. 그게 회복을 당겨주는 역할이 된다면 얼마나 고마운 처방인가.

 

작품 후기를 보니 대형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미각과 후각을 관장하는 신경을 다친 환자들 얘기가 나오는데, 맛을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삶은 상상으로도 끔찍하다. 입맛이 살맛이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는 나로서는 지극히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 아침에 먹을 굴비 한 마리 생각에 다시 침이 꼴깍!

 

취재 기간에 뇌수술 현장을 직접 참관했는데, 수술이 끝나고 수술을 집도한 박사님이 놀라셨다고 한다. 기자나 의대생들도 개봉된 뇌를 직접 보면은 구역질에 기절까지 하곤 하는데, 허영만 화백은 사진도 찍고 중간 중간 수술 용어도 받아적었다나. 그동안 식객 취재를 위해 도살장 같은 곳도 직접 다니면서 내성이 생긴 덕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적인 감성이 메마른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부분이 지극히 인간적으로 보였다. 샘의 감성은 여전하시니 걱정 무, 이상 무!!

 

두번째 이야기 '올갱이 국'에서는 성찬과 진수의 러브러브가 꽤 로맨틱하게 진행되었다. 취재 나왔다가 본의 아니게 야영을 하게 된 두 사람. 때는 여름이고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별 다섯 개 호텔보다 별 억만 개 노상 호텔이 더 좋다는 진수가 참으로 예뻤다. 밤바람을 맞으며 와인 한 잔씩 기울이고 행복이란 놈이 오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두 사람, 그야말로 천생연분이다.

 

본인에게 있던 추억을 얹어서 먹는 음식이라면, 고유의 맛 이상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올갱이 편에서는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문학적 감수성을 곧잘 자극하시는 허영만 샘, 역시 짱짱하십니다.

 

 

방배동에 집을 구하려다가 삼선동으로 옮긴 성찬이의 새집 전경이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더 정감이 간다. 작가의 말처럼 곡선이 없어지고 자꾸 직선만 늘려가는 세태가 나도 못마땅하다. 골목이 사라지고 동네 구멍가게가 사라지고 사람 사이의 끈끈한 정도 점차 사라진다. 재개발이 되고 나면 원래 살던 주민들이 다시 입주할 확률은 17%밖에 되지 않으니, 그들은 정주고 살던 곳을 떠나 이방인이 되어야 하고, 정감 어리던 동네는 투기꾼들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안타깝고 괴로운 현실이다.

 

세번째 이야기 '은어 수박 향기' 편에서는 직장에서 내몰리고 가정에서 설 곳 없는 우리시대 보편적인 가장의 이야기를 다뤘다. 드라마에 심취해 남편은 안중에도 없는 마누라의 행태는 독자의 눈으로도 얼마나 밉살스럽던지! 삶의 주어를 '아이I'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에 크게 공감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이번 이야기에는 시골 폐교를 사진 전시관으로 쓰고 있는 실제 인물이 등장했다. 그가 12년 동안 찍은 독도 사진은 그림 상으로도 흠뻑 취할 만큼 매혹적이었다. 처음 정착했을 때는 긴 겨울과 긴 밤이 지나치게 외로워서 견딜 수 없었다는 그의 말에 조금은 시큰해진다. 그 외로움이 사무쳐서 촛불을 켰다는 사람. 느림의 상징 촛불. 아주 좁은 공간만큼만 비추니, 넓어 휑한 느낌을 지워주었을 것이다. 지혜롭고 로맨틱한 위로법이다.

 

정상을 향해 달려가던 예술가가, 정상에 도착하는 순간 장사꾼이 되어서 내려가더라는 이야기에 섬뜩해진다. 그런 지경에 이르기 전에 내려놓는 삶을 꾸린 그의 용기에 박수를!

 

금슬 좋은 부부가 한 명은 도시를 좋아하고 한 명은 시골을 원해서 인생 후반기에는 주말 부부로 만나더라는 실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같은 이유로 원한다면 침대를 따로 써서 잠자리를 편하게 갖는 부부도 이해가 된다. 서로 합의가 된다면, 그 쪽이 부부의 사이를 더 원만하게, 더 애틋하게 만들 것도 같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은어가 주제인데, 강에 정착한 은어가 매일 먹을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이끼가 붙은 돌 주위 1m 안팎 구역을 갖는데 이를 '먹자리'라고 한단다. 먹자리를 확보한 은어를 먹자리 은어라 하고... 독점욕이 강한 성질을 이용한 낚시법도 함께 소개되었고, 환경과 습성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은어들도 함께 소개되었다. 작품의 특성상 요리의 재료와 맛, 효과와 역사까지 장황하게 설명하기 쉬운데, 그걸 적절히 배치해서 주제와 부합되게 하고, 또 독자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과 메시지까지 전달하는 작가의 내공에 늘 감탄하게 된다. 여기서도 어깨가 짓눌린 가장에게 좋은 위로와 깨달음을 주었으니 독자의 가슴도 훈훈하다.

 

다음 이야기는 보리밥, 열무김치 편! 앞서 사진으로 선보였던 그 메뉴다. 꽁보리밥을 깡보리밥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깡'은 완전히, 전부라는 뜻이라 한다. 그래서 안주 없이 소주만 마시는 걸 깡소주라고 한다고... 호오~ 재밌는 우리말이다.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마지막 이야기 '갯장어' 편이다. 운암정 숙수가 등장해서 이번에도 밉상에 진상 짓을 했다. 여수 아주머니의 호된 호통이 참 시원했다. 맛을 품평해줄 상대는 모 기업의 회장님 한 분! 두 사람의 기 싸움을 중간에서 잘 중재해 주었고, 맛의 편가름도 진정어리게 해주었다. 역시 사람을 다룰 줄 아는 분이다.

 

우리말로는 '갯장어 데침회'라고 써야 하지만 요리의 유래가 일본인인 까닭에 '하모', '유비끼'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햄버거가 햄버거로 불리듯이 일본식 이름도 때로는 유연성이 필요할 것이다. 일본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면 일단 경계부터 하게 되는 게 우리의 자연스런 반사신경이기는 하지만...

 

식객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여전히 궁극의 맛을 자랑한다. 작품 속 등장하는 이야기를 보니 촛불 집회가 한참이었던 2008년에 연재된 내용인가 보다. 3년이 더 지나서야 읽게 되다니 내가 참 늦어버렸다. 이번에는 완결편까지 좀 달려보자. 쭈우욱!

 

덧글) 오타가 있다. 312쪽의 '전체요리'는 '전채요리'로 수정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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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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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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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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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16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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