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나는 도다 14 - 완결
정혜나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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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동안 윙크를 구독했었는데, 그때 '탐나는도다'는 이미 중반부까지 진행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드라마가 방영되었지만 나는 드라마를 보지 못했고, 윙크 구독도 중지했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게 마무리 되었는지도 몰랐다. 시작 부분을 보지 못하고 중간부터 봤으니 작품 전체에 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뒤늦게 탐나는도다를 구입해서 읽어보고는 대박 작품을 못알아봤다는 자책을 지난 한주간 했다.

 

때는 1640년. 병자호란이 조선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다음의 시점이다. 영국 스펜서 가문의 윌리엄은 모험심이 많은 청년으로 겁도 없고 철도 없으나 아주 담이 큰 녀석! 엄마 몰래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밀항했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 해안에 떠밀려왔다. 그렇게 제주 좀녀 버진과 마주친다. 고된 해녀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버진에게 이 푸른 눈의 소나이는 미지에 대한 동경이고 바깥 세상에 대한 열망이고, 닫힌 일상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같았다. 거기에서 진상품 밀무역 조사를 위해 귀양다리 행세를 하며 제주로 들어온 뼈속 깊이 양반인 박규가 3각구도를 이룬다. 이양인의 존재는 개방을 하지 않는 나라 조선에서 얼마나 기이하고 위험하게 비쳤겠는가. 충분히 심각해질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작가는 이것을 아주 코믹하게 풀어간다.

 

 

 

흑발이 지는 순정만화가 있냐는 대사가 나를 자극했다. 하하핫, 해묵은 이야기지만 아르미안의 네딸들이 나왔을 때 에일레스파와 미카엘파의 설전이 생각난다. 나의 주장은 늘 이렇다. 순정만화 속 남주인공은 금발이 좋고, 여주인공은 흑발이 좋다고. 그래서 나는 미카엘과 아스파샤를 사랑했지.^^

 

두번째 그림은 사진 네장을 묶었더니 대사가 잘렸다. 윌리엄이 사람들이 환영의 꽃가루를 뿌려줬다고 좋아하니까 버진이 그건 '소금'이라고 알려준다. 숨어 지내도 모자랄 것 같은 이양인이 제주 신화와 설화의 힘으로 신성한 존재로 변신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제주답다고 할까.

 

세번째 그림은 도자기를 보고 음흉하게 변한 윌리엄의 모습이다. 영국에서부터 조선 자기에 홀딱 빠져들었던 윌리엄은 요강과 명품 도자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여러 사건들을 만드는데 거기서 오는 재미도 아주 컸다.

 

마지막 그림은 상투의 속사정을 표현한 것이다. 흑집사 표지가 겉껍데기를 벗기면 속에는 패러디물이 나오는 것처럼 탐나는도다도 그런 설정을 갖고 있다. 겉표지를 떼어내니 저렇게 웃긴 그림이... 사극에서는 상투 머리가 베어지면 머리를 풀어해치며 나름 순정만화스런 그림이 나오지만, 실제 상투 속 머리는 저렇게 속알머리 없는 머리... 아, 환상을 다 깰 수밖에 없다. 그냥 꽉찬 머리로 계속 표현해주기를!!

 

 

 

 

 

 

버진이라고 처음부터 윌리엄에게 마음을 열었던 것은 아니다. 박규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이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마음을 열고, 그 마음을 전하는 과정들은 천천히 진행된다. 설득력 있게! 그 과정에서 참 예뻤던 반딧불이 장면이다. 아래 그림은 한양으로 압송된 윌리엄을 찾아 버진이 한양으로 떠나고 나중에 만난 윌리엄인데, 금발 머리를 잘라서 금실인 양 고리를 만들어 노잣돈을 만든 윌리엄의 짧아진 머리카락이다. 떼쟁이에 철부지였지만 윌이엄은 사실 속내도 깊고 마음도 넓은 아주 건실한 청년이다. 고뇌하는 표정도 일품이다.

 

 

 

 

 

 

 

제주 편에서는 버진의 어머니가 나올 때마다 참 재밌었다. 물질로 단련된 그들의 일상과 진상품에 얽매인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지만, 그걸 아주 씩씩하게 표현해냈다. 이웃 마을과의 대결 구도, 남자보다 더 억세지만 더 생활력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 안에서 윌리엄과 박규의 대조되는 성격도 잘 드러났다. 물질 잘한다고 금세 '고급인력' 취급당한 윌리엄의 강한 생활력도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워줄 만하다. '탐나는도다'를 패러디한 '땀나는도다'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나저나 제목도 참 잘 지었다. '탐나는 도다'라고 읽으면 제주는 섬이다!도 되고, 말 그대로 탐이 나~도 되고... 땀도 나도...^^

 

 

 

 

 

 

윌리엄은 역시 진지할 때 훨씬 멋지다. 오른쪽 나무 장면은 다모의 매화씬이 떠올리는 멋진 풍경이다. 말한마디 없이도 나무 그늘에 앉아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느끼는 예쁜 연인의 모습이다.

 

실제로 어리기도 했지만, 버진은 제주를 떠나올 때 그저 철부지 떼쟁이에 가까웠다. 윌리엄이 그랬던 것처럼. 다만 고달픈 제주 해녀의 삶을 벗어나고 싶기만 했을 뿐, 목표도 방향도 방법도 몰랐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여겼지만 착각이었다. 그것을 깨달으며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버진이 성장한다. 윌리엄도, 박규도 함께 성장했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일으켜주고 채워나가는 멋진 존재였다.

 

 

 

 

후기 만화에 등장한 장면이다. 양반 가문입네~하며 으시대던 박규가 윌리엄 집에 성도 있고 말도 방목해서 키운다는 소리에 식겁하는 장면. 그리고 '박규'라는 이름이 힘주어 발음하면 상당히 욕처럼 들린다는 설정에서 오는 이야기까지... 모두 재밌다.

 

작품은 소현세자와 인조의 갈등, 그리고 13년 뒤 조선에 표류하는 하멜의 이야기까지, 픽션과 팩션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멋진 마무리를 짓는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아주 괜찮은 엔딩이었는데, 마지막에 조금 서두른 감이 있었다. 해서 충분히 감동의 여운을 주었어야 했는데 좀 몰아친 기분이다. 그리고 제주에서 의미심장한 단서를 던져주던 할아방의 정체가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아, 궁금해라...

 

작가의 첫 연재작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보다 더 잘하긴 힘들었을 거라고 여긴다. 그림도 내용도 모두 탄탄하다. 오래도록 잡지는 보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후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과 다시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떤 작품이든 미리부터 기대하게 된다. 애석하게 보지 못한 드라마도 기회되면 찾아서 볼까 한다. 당시 친구 하나가 전화만 하면 드라마가 아주 좋으니 꼭꼭 보라고 강조를 했는데, 역시 기대가 된다. 드라마가 원작보다 먼저 끝났는데 마무리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작가님이 엔딩에 대한 언급을 해줘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갔을지, 아니면 드라마 극작가의 생각으로 마무리 했을지... 이럴 때 보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상, 흑집사 애니메이션의 엔딩 때문에 원작의 엔딩이 더 궁금해진 독자의 질문이다.

 

덧글) 13권이었던가. '봉림세자'라고 오기가 하나 있다. '봉림대군'으로 써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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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2-03-1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정말 좋았습니다. 원작이 끝났다니 원작을 봐야겠군요.

마노아 2012-03-20 00:18   좋아요 0 | URL
2009년 9월 방영이었네요. 벌써 시간이 한참 흘렀어요. 저와 크로스로 즐기게 되었어요.^^
 
코알랄라! 2 - Yami 먹고 그리다
얌이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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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바게뜨 빵은 로망이었다. CF에서 긴 생머리 휘날리며 롱치마 입고 자전거 타는 여인의 바구니에는 바게뜨가 담겨 있고, 장보고 돌아오는 주인공의 봉투 안에도 삐죽이 긴 빵이 얼굴을 내밀었다. 사실 집에서 잘라 먹느니 보통은 빵집에서 잘라오지만 '비쥬얼'을 위해서 바게뜨는 늘 기다란 채로 시야에 들어오곤 했다. 그 바게뜨 빵에 대한 단상이 무척 공감이 가서 한참 웃었다. 사진처럼 생크림을 찍어 먹어도 맛있고, 요새 내가 선호하는 방법은 스프에 찍어먹는 거다. 보노보노 스프는 뜨거운 물만 부으면 금세 스프 한 그릇이 완성되므로 좋아하는 아침 식사인데 그럴 때 바게뜨 빵을 적셔 먹으면 참 좋다. 식빵도 괜찮지만 난 바게뜨가 더 좋더라. 화요일마다 오시는 어느 목사님이 매주 바게뜨 빵을 사오셔서 이번 주도 기대했는데 엊그제는 늦게 오셔서 빈손으로 오셨다는 후문이... 바게뜨를 기다렸는데...(목사님이 아니라...ㅎㅎㅎ)

사진을 붙여놓았더니 카레가 엉뚱하게 이 사진에 박혔다. 나는야 카레 매니아! 그렇다고 카레를 다 정복할 모양새로 덤비진 않지만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카레 전문점 가면 저렇게 램프의 요정이 나올 것 같은 그릇에 담아주는 것도 재밌다. 저 속에서 지니가 나오면 카레범벅일 것 같다는 작가님 상상력이 재밌다. ㅎㅎㅎ

우리집 앞 슈퍼에서는 현재 빙과수를 70% 세일하고 있다. 초기 경쟁 때는 30%부터 시작한 것 같은데 이제는 70%를 깎아준다. 그래도 평균 정가가 무려 2000원 붙여 나오기 때문에 600원 정도면 이윤은 안 남아도 미끼 상품으로 손해는 보지 않을 정도라고 짐작해 본다. 어릴 적 좋아하던 하드들이 떠오른다. 비비빅, 바밤바, 아맛나, 쌍쌍바, 수박바, 더위사냥, 설레임, 브라보콘 등등등... 요새는 바이올린이라는 이름의 하드를 좋아한다. 바이올린 모양으로 생겼는데 호두 종류 견과류가 드문드문 올려져 있어서 아주 맛나다. 내가 슈퍼를 가면 지금 먹을 것만 사오는데, 엄니가 가시면 꼭 10개씩 채워 사오신다. 그러면 사람 마음이 하나 먹고 말 것을 꼭 두 개 먹고 만다는 거... 다음날도 꼬박꼬박 냉장고 문을 열고 다 비워질 때까지 먹게 된다는 것....

중학교 때는 매점도 크고 식당도 아주 컸다. 메뉴도 정말 다양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가보니 중학교 건물 옥상 위에 매점이 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건물 두개를 가로질러 가야 해서 아주 멀었다. 메뉴도 그닥 다양하지 않았는데 잘 익지 않은 채 나오던 쫄면이 생각난다. 쉬는 시간 10분 내에 건물 두 개를 뛰어가서 한층 더 올라가서 쫄면을 주문하고 그걸 다 먹고 종치기 전에 돌아오기란.... 그래서 안 익은채 나오는 게 아니었는지...;;;; 하여간 한 그릇에 700원 하던 그 쫄면은 두젓거락 정도 먹으면 끝나는 아주 소량이긴 했는데 매콤한 맛은 일품이었다. 돌도 씹을 나이였으니 덜익은 쫄면 면발쯤이야! 그 좁은 공간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건 흡사 전투와도 같았다. 비명과 고성으로도 서로 전달이 되던 작품 속 광경이 잘 이해가 된다.^^

좀처럼 채소를 먹지 않는 얌이가 천원에 4개 특가인 오이를 한무더기 사왔는데 어무니도 한무더기를 사오신 것이다. 그러자 바로 고무장갑을 끼고 전투태세에 돌입하신 엄니! 아아, 저 장면에서 주부의 아우라가! 원래 오이소배기를 좋아하는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느낀 오이 비린내에 놀라서 잘 먹지를 못했다. 올 여름에는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또 죽음의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한...ㅎㅎㅎ

스파~게리~! 친구가 한동안 체중이 계속 빠지다가 최근에 잠시 입맛이 좋아졌는데, 다시금 스트레스를 받더니 체중이 마구 빠지고 있다. 그래서 겸사겸사 칼로리 높은 크림스파게티 먹자고 약속해 놓았다. 하지만 난 칼로리 과다 섭취할 필요 없는데...;;;; 여하튼 광화문 뽐모도로 광고는 내가 해놓았으니 모처럼 먹어주겠어!!

밀가루의 운명은 물 다음에 재료에 달렸다는 표현이 신선했다. 그 다음에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빵도 되고 쿠기도 되고 부침개도 된다. 작품에서는 김치가 투척되고 지글지글 부침개가 화려하게 만들어진다. 난 호박 부침개를 12년 전에 먹고 여직 못 먹어본 것 같아서 엄니한테 졸라댔는데 호박이 넘흐 비싸서 안 된다는 거절을....;;;; 12년 만인데...ㅡ.ㅡ;;;; 이러다가 내가 만들어먹을지도 몰라...ㅎㅎㅎ(아직 레시피도 모름;;;)

오른쪽 그림은 무척 웃었는데,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건 '북두신권' 패러디가 아닌가 모르겠다. 네 팔은 이미 부러져 있다고... 톱니 날을 옆에 끼고 팔씨름을 했다가 팔뼈가 휘어진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 본 것 같은데...(초등생용 책이 아니었던 거다. 친구 오빠책을 봤더랬는데...ㅎㅎㅎ)

아무튼! 중국집에서 무거운 냄비를 들고 화려하게 요리를 하시는 주방장님의 포스를 설명하면서 나온 장면이다. 넌 이미 익어 있다! ㅋㅋㅋ

뭐랄까. 코알랄라!의 재미는 이런 깨알같은 감각에 있다. 비슷한 세대로서 추억하는 음식들도 비슷하고, 경험치도 많이 닮아 있다. 보고 있으면 사먹고 싶어지는 것도, 만들어 먹고 싶어지는 것도 아주 많다는 게 다소 흠인데, 그렇기 때문에 한밤중에 읽는 건 좀 곤란하다. 점심 직전에 본다면 메뉴 고르는 데에 다소 도움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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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집사 13
야나 토보소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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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표지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겠다.

 

겉표지는 화이트의 엘리자베스, 속표지는 블랙 주인공들의 잔치다. 그 사이 핑크빛이 봄빛을 닮았다.
하지만 기대되는 건 언제나 겉껍데기 속의 숨겨진 표지!!

 

겉표지가 기사도 정신을 보여주는 엘리자베스라면 속표지는 이중 스파이의 느낌이 물씬~ 게다가 미션 임파서블의 이던 헌트 흉내를 내는 세바스찬이 구출해내는 건 무려 고양이! 세바스찬이라면 능히 그럴 만하다.^^

 

이제 본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지난 12권에서 대반전을 일으키며 독자를 놀래킨 캐릭터는 리지였다. 늘 귀여운 것만 강조하고 어리광만 부리던 리지의 속내가 이번 이야기에서 잘 드러났다. 강한 것을 강조하는 후작 부인 집에서 엄하게 자란 리지였지만 시엘에게는 귀여운 아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살 더 많은 리지는 시엘보다 발육도 좋았고, 무엇보다 강인했다. 그 강인함을 어리광 속에 감추고 시엘로 하여금 보호받는 느낌 대신 보호해주는 사람으로서의 인식을 주고자 했던 세심한 배려의 리지!

 

 

그리고 리지가 시엘 앞에서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노출했음을 간파한 세바스찬의 배려도 근사하다. 악마 출신 집사의 매너는 영국 신사 누구보다 훌륭하다.(이 작품의 배경은 19세기 말 영국!)

 

이들은 현재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는 배위에 있었고, 그 배 위에는 살아 움직이는 좀비 시체들로 가득하다. 그 음모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큰 위기에 닥친 것이었는데, 그 바람에 사신 일행과 시엘 일행이 연합한 상태. 이때 뜻밖의 변수로 장의사가 등장한다. 이 장의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독자는 비명을! 아아, 야나 토보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보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차마 사진은 찍지 않았다. 직접 감상하시라! 토노 야보소는 그림 그리는 재미에 흠뻑 빠진 작가 같다. 곳곳에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작품에서 세바스찬 일행은 또 다시 위기를 겪고, 그 과정에서 처음 시엘과 만났을 때 좌충우돌하던 모습들이 무척 자세하게 표현되었다. 여전히 까칠하고 시건방진 시엘이었지만, 초기엔 이 집사 역시 한 성깔 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악마 특유의 재능을 이용해서 단숨에 식탁을 화려하게 바꿔준 세바스찬. 하지만 저 식탁은 실패작이라는 것...ㅎㅎㅎ

 

어릴 적 명화극장에서 보았던 영화가 떠오른다. 어느 제멋대로 귀족 아가씨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대저택에 고용되어 일을 한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어마어마한 파티를 치르는 과정에서 사람 구실하게된 이 아가씨. 고용인들이 저마다 하나씩 소원을 이야기하는데, 누군가 이 어마어마한 설거지가 모두 깨끗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고, 주인공 아가씨는 당신들의 소원이 이뤄지는 게 내 소원이라고 했다. 요정인지 천사인지가 나타나서 이 아가씨의 소원을 들어주어서 식탁 위의 온갖 더러운 그릇들은 모두 깨끗하게 바뀌고 이들 고용인들을 위한 잔칫상으로 바뀐다.

 

영혼을 거래한 대가로 악마를 집사로 둔 주인공 시엘. 어린 꼬마가 저런 끔찍한 거래를 할만큼 큰 위기에 빠지고 뜨거운 분노에 싸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악마 집사의 무한한 능력을 구경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그의 재주부리기에 한껏 신이 난다. 물론 지금은 저런 마법같은 일 대신 직접 솜씨를 부린 마술을 부리지만!

 

책의 마지막에는 작가 후기에서 토노 야보소 판 '삽질'에 대해서 나온다. 으하하핫, 삽질의 여왕인 나도 웃었다. 세상에서 삽질하는 인간은 얼마든지 있어. 음하하핫!!!

 

개인적으로 애니버전의 엔딩도 꽤 마음에 들어서 원작이 오히려 그만 못할까 조금 조바심이 났는데, 지금 진행되는 것을 보아하니 기우로 보인다. 믿음이 가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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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2-03-0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가 참 맘에 들었는데, 요것도 봐야겠군요..ㅎㅎㅎㅎ
아~ 잼나겠어요 ㅋㅋㅋ

마노아 2012-03-08 00:19   좋아요 0 | URL
완결을 낸 애니도 재밌었고, 원작의 맛도 아주 흥미로워요. 흑집사, 넘흐 섹시해요.ㅎㅎㅎ
 
자학의 시 1 세미콜론 코믹스
고다 요시이에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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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학'과 '시'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의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먼저 읽어본 사람들의 평이 좋았고, 4컷 만화라는 설정에 또 호기심이 일었다. 얼마 전에는 '정말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란 영화를 검색해 보다가 아베 히로시란 배우가 '자학의 시'에 출연했다고 되어 있어서 설마하니 같은 작품일까 생각했다. 4컷 만화를 어떻게 영화로? 라고 선택했던 것이다. 정작 작품을 읽어보니 이 책을 영화로 옮긴 게 맞았고, 비록 4컷 만화지만 작품의 흐름을 생각해 보니 영화로도 옮길 수 있을 듯 보였다.(알고 보니 배두나 주연의 '공기 인형' 원작자이기도!) 이야기가, 사연이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 유키에는 참으로 박복해 보이는 여자다. 함께 사는 남자는 일은 하지 않고 유키에의 등골만 빼먹고 있다. 하루종일 노닥거리다가 경마장이나 파친코로 돈을 탕진하기 일쑤고, 허구헌날 밥상을 들어 엎는 취미가 있다. 그런데도 유키에는 이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며 혼인신고를 해달라고 사정사정을 한다. 하지만 박복하기로는 어릴 때부터 유명한 유키에는 늘 가는 날이 장날이다. 혼인신고하러 나가면 그날이 관공서 쉬는 날이기 일쑤! 이런 남자 어디가 좋기에 유키에는 이리도 목숨 거나 싶은데, 이웃들이 이 남자 욕이라도 할라치면 좋은 사람이라고 감싸기 바쁘다. 유키에가 일하는 식당의 사장님은 유키에에게 빠져서 열심히 구혼 중이지만 유키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처음 1편을 읽을 때에는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사나 답답하고, 이런 와중에 사람들은 어떤 감동을 받았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더더욱 궁금해졌다. 여하튼 제목처럼 자학이 아주 지나친 여자구나 싶었던 것이다. 헌데 2편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유키에게 태어나서 성장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펼쳐졌던 것이다.

 

어릴 때라고 박복했던 유키에의 입장이 달랐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 역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사오와 다를 바 없는 인사였다. 어린 유키에가 신문을 돌리면 그 월급을 빼돌리기 바빴고, 집으로는 늘 사채업자가 상주해 있었다. 엄마 얼굴도 모르고 자란 유키에는 추억 속에서도 박복한 그 운수 덕분에 엄마 얼굴을 기억할 도리가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불행해도 좋을까 싶은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런 유키에에게도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기는 했다. 심지어 아빠 노릇 못해주는 인물 대신에 사채업자가 더 유키에의 어린 나날을 안쓰러워하였다. 굶고 있는 아이에게 다코야키를 사다 주었지만, 그걸 먹으면 아버지의 빚이 늘어날까 차마 손대지 못했던 유키에,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잠든 사채업자에게 이불을 덮어주자 도리상 그럴 수 없다며 사양하는 깡패라니...

 

사랑이 고팠던 유키에는 같은 반 동무에게 지우개를 빌려주면서 '대신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고 속마음으로 이야기한다. 친구에게 숙제를 보여주고 심지어 대신 해주기도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대신 나를 사랑해 주세요.'라고 간절히 중얼거린다. 이 아이에겐 따뜻한 밥과 잠자리도 필요하지만 당연히 사랑도 필요하다. 휴일에 마주친 사채업자 아저씨에게도 가족이 있었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단란한 시간이 있었다. 모두 다 유키에에게는 부러운 것들이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신문배달을 하면서 열다섯 인생이 점점 더 무거워져서 당장이라도 지고 말 것 같다고 중얼거린다. 이젠 어린 유키에에게 들러붙어 기생하는 아버지를 진드기, 흡혈박쥐, 촌충이라고 부르며 입바른 소리도 하지만, 여전히 부녀의 생계는 그녀에게 모두 달려 있다. 이 무렵에 유키에에게 가장 기적 같은 일은 구마모토라는 친구의 등장이다. 유키에만큼이나 가난한 집안의 아이이지만, 누구보다 기가 세고 당당하고 의리가 있다. 제 것을 나눠줄 때는 상대방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티나지 않게 배려할 줄 알았고, 나중에 유키에가 그 어느 때보다 비겁하게 굴었어도 끝까지 남아 우정을 지켜준 고마운 친구였다.

 

그러고 보면 박복한 유키에에게 축복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투신자살을 기도했을 때 때마침 그 아래를 지나가다가 유키에의 쿠션이 되어준 아저씨, 인생을 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 안에서 꺼내주었던 이사오, 칭찬이 필요했던 유키에에게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칭찬을 해주었던 구마모토, 그리고 극적으로 떠오른 엄마의 얼굴까지...

 

굴곡이 많았던 유키에의 인생이었다. 어찌 보면 자학으로 점철된 인생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안에 '詩'가 있었다. 노래가 있었고 감동이 있었다. 그래서 다 읽고 나면 또르륵 눈물 한자락이 흐르게 된다. 유키에게 엄마에게 보내는, 전할 수 없지만 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편지를 옮겨 본다.

 

엄마에게.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얻으면 반드시 뭔가를 잃게 됩니다.

뭔가를 버리면 반드시 뭔가를 얻게 됩니다.

단 하나뿐인,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는 어떨까요?

우리들은 울부짖거나 두려움에 꼼짝 못하거나......

하지만 그게 행복이다 불행이다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대신할 수 없는 것을 진짜로 그리고 영원히 갖게 되는 것!

저는 어릴 적 당신의 사랑을 잃었습니다.

저는 죽도록 원했습니다. 찾아 헤맸습니다.

저는 사랑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렇게 제 안에서 찾을 줄이야...

여태 꽉 쥐고 있던 손을 폈더니 거기에 있었다, 이런 느낌입니다.

엄마,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무섭지 않습니다. 용기가 생깁니다.

이젠 인생을 두 번 다시 행복이냐 불행이냐 나누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인생에는 그저 의미가 있을 뿐입니다.

단지 인생의 엄숙한 의미를 음미하면 된다고 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엄마, 언젠가 만나고 싶어요. 엄마를 항상 사랑하고 있어요.

하야마 유키에 올림.

 

추신. 이제 곧 저도 아기를 낳습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이제 상관없다. 양쪽 모두 가치는 같다. 인생에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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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벌 2012-02-12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죠? 전 이거 보고나서 마음이 멍먹해서...
좋아하는 웹툰작가의 블로그 떠돌다가 우연히 발견한 만화인데. 별로 기대 않고 봤다가 2편에서 눈물 좀 흘렸어요. 요즘은 마구마구 추천 뿌리는 중이에요. ^^

오랫만이에요~

마노아 2012-02-12 18:1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먹먹함 그 자체였어요.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 더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국내에 번역이 많이 되어 있었음 해요.
버벌님, 오랜만이에요! 프로필 사진 아주 훌륭한걸요.^^

버벌 2012-02-13 04:27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합니다. 에바그린. 그래서 조니뎁과 염문설 나왔을때도 전 만세를 부르며 좋아했어요. 너무도 좋아하는 두 배우. 조합이 환상이어서. ㅡㅡ:: (돌 맞을까봐 두렵) 전 저렇게 퇴페적인 미가 좔좔 흐르는 게 좋더라구요 ㅠㅠ

마노아 2012-02-13 09:55   좋아요 0 | URL
오오오, 퇴폐적인 미! 아주 적절한 표현이에요. 에바 그린의 저 눈속으로 빠져들어갈 것만 같아요! 완전 멋져요.^^ 죠니뎁과도 그림이 아주 훈늉해요!!
 
토노 자매의 우왕좌왕 해외 여행기
토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신간 등록 알리미를 통해서 친절하게 새책 소식을 알려주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하나가 토노다. '칼바니아 이야기'가 내게 준 기쁨과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칼바니아 이야기 12권이 나온지 얼마 안 되어서 13권이 나와서 기쁨의 비명을 질렀는데, 그리고 나서 또 얼마 뒤 바로 이 책이 나왔다. 나로서는 '칼바니아 이야기 14'가 더 반가웠겠지만, 아무튼 토노 작가의 책이니 닥치고 구입!이었다.

 

제목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토노 '자매'의 해외 여행기이다. 어떤 여행지는 20년도 더 전에 다녀왔던 곳으로 꽤 까마득한 이야기도 나온다. 여러 곳을 다녔고, 그곳에서 느꼈던 것들을 자매가 각자 나누어서 썼다.

 

등장하는 나라들을 꼽자면 하와이, 독일,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인도네시아(그리고 발리), 마다가스카르(그런데 책의 목차는 '에콰도르'로 나온다...;;;;;)다. 에피소드별로 나누면 토노가 7편이고, 동생이 10편을 썼다. 그림체는 개그체인데 좀... 성의 없게 보인다. 특유의 그림 느낌이 그런 편이기도 하지만 이번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하와이 편에서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 덕분에 낭패를 본 이야기가 재밌었다.

 

 

그림 크기가 다소 줄었지만, 책의 크기를 생각해서 상상해 보시기를! 주문하는 음식마다 양이 많아서 일부러 인원수보다 하나 적게 시켰더니, 지나치게 친절한 웨이터가 서비스로 갖다 준 디저트다. 너무 크고, 너무 단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여행 동지들은 몰래 버릴 방법을 구해 보았으나 답이 없었고,  베풀어준 친절을 생각하며 입으로 다 소화를 시켜야 했는데 비명에 비명을 지른다. 위에서 본 크기, 옆에서 본 두께, 그 위의 장식과 그 옆의 아이스크림 덩어리까지 몇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뭐, 얼마나 끔찍했을지 그림이 그려지지만... 공간을 저렇게 잡아먹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야기들이 대체로 이렇다. 심지어 프랑스 편에서는 가보지 못하고 원고를 맡게 되어서 그 바람에 좌충우돌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뭐지? 뭐 이래???

 

 

독일의 여자들이 모두 근육질에 한 어깨 했다는 부분에선 잠시 이런 망상도 해보았다. 혹시 저런 곳에 가면 나도 좀 가냘퍼 보일까??? 아무리 독일이어도 그건 좀 힘들 것 같다는 결론과 함께 망상도 끝!

 

여행 좋아하는 어머니가 마다가스카르 가셨다가 초죽음이 되어서 돌아오셨는데, 그럼에도 다음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동시에 참 여유있게 사시는구나 싶기도 하고...^^

 

이 책은 정가가 7000원이다. 칼바니아 이야기가 4,500원인 것을 생각하면 참 어이 없는 가격이다. 내용도 너무 없고, 가격은 터무니 없이 비싸고... 토노 작가를 좋아하지만 이 책은 너무 날로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작가님에 대한 애정으로 별 셋을 바친다.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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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12-01-10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렇군요. 살까말까했는데.

마노아 2012-01-10 22:44   좋아요 0 | URL
이 책은 가격이 딱 반값 정도여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