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강 세븐
A. J. 라이언 지음, 전행선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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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해줬어. 내 이름은......

이 소설의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녀의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찾은 그녀는 희망도 찾은 것일까.

붉은 강 세븐은 세기말의 암울한 지구를 떠올리게 하는 미래 세계의 오염된 세상에서 아무런 이유를 알 수 없는 여정을 시작하는 일곱명의 이야기,이다. 바다 위 선실에서 갈매기의 울부짖음에 깨어난 헉슬리는 그저 자신이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뿐 아무런 기억이 없다. 물론 본인의 이름도 기억에 없지만 팔에 새겨진 문신이 헉슬리여서,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편의상 헉슬리로 자신을 인지할뿐이다. 그의 옆에는 콘래드라는 문신이 새겨진 남자의 사체가 있고 그들 모두에게는 알 수 없는 수술자국이 있다. 그가 깨어난 배에는 그 외에도 그와 똑같은 수술자국이 있고 이름이 새겨진 문신이 있고 그들 모두는 자신에 대한 기억이 없다. 그리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세상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점령당해 인류가 멸망해가는 미래 세계의 이야기는 자꾸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게 했다. 특공대처럼 꾸려진 일곱명의 인물들이 알수없는 정체에 조종당하며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이 세상의 모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세부적인 묘사를 읽을 때 상상력이 부족한 나 자신이라 다행이란 생각을 할만큼 끔찍한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 멋진 템즈강이 온통 붉게 물들어 괴생물체가 기생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충분히 괴기스럽다.

미스터리 스릴러는 흥미롭지만 괴기한 호러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이야기 자체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책을 다 읽고서야 잠이 들었다. 결국은 생존과 종족의 유지,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인류의 과오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지만 소설의 구성 자체가 흥미롭고 새로움이 느껴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기억'이 담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여 그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들의 미래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책을 다 읽고나면 그들의 미래가 지금의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싶어지는 '붉은 강 세븐'은 곱씹어볼수록 자꾸만 여러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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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
이천우 지음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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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난처에 잘 있습니다'라는 글은 2010년 8월 칠레의 광산이 붕괴되어 매몰된 광부들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땅속을 파고들어간 드릴의 끝에 매달려 나온 메모에 적혀있던 글에서 나온 말이다. '삼남매의 대환장 타임루프' 이야기인데 왜 이 소설의 제목이 저거야? 라고 묻고 싶어지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왠지 그냥 수긍하고 싶어진다. 


삼남매의 맏이 진태는 아내와는 이혼 갈등 상황에 놓여있으며 직장에서는 희망퇴직 권유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어머니는 5년전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의식없이 병원에 누워계시고 이런 상황에서 동생 진수가 극단선택을 시도하다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고 동생을 찾으러 간다. 사랑에 배신당했다며 울먹이는 동생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며 본인이 이성애자가 아닌 동성애자라며 커밍아웃을 하는 동생 해민까지 삼남매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삼남매의 삶의 이야기인가,하면 또 그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삼남매 아버지의 삶의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장례까지 치른 삼남매는 집에 모여 술을 마시다 잠이 드는데 그 날 이후 무한 타임루프가 시작된다. 처음엔 뭔가 대비를 하거나 다른 행동을 하면 시간의 흐름이 뒤바뀔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보지만 세부적인 부분이 달라져도 진태의 손목이 부러지고 진수가 한강물에 뛰어더는 것은 똑같이 되풀이되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고 장례식을 치른다. 


무엇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들에게만 과거로 소환되는 대참사가 무한으로 반복되면서 익숙해져가는 일상이 되어가기도 하고 그 와중에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아버지의 과거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삼남매에게 변화가 시작되는데......


반복되지만 반복되지 않는 일상의 이야기가 조금씩 그 의미를 찾아가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찾게 되는 이야기가 묘한 감동을 느끼게 하고 있어 좋았다. 이야기 곳곳에 진지함은 못견딘다는 듯 유머러스한 대화의 흐름이 무겁고 서글픈 이야기들을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들어주고 있어서 안그래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읽기에 빠져들게 하고 있어 금세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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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두 사랑의 실패자였다.
한 사람은 사랑을 끝내려 했고, 한 사람은 거짓 사랑에 목을 맸고, 한 사람은 아예 번지수부터 틀렸다.
진태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가진 것과 이룬 것이 너무 초라해서, 그 실패들이 마치 자신들의 인생을 대변하는 양 더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이 노력조차도, 그 패배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쉬운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멀어지는 것으로, 도망치는 것으로.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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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 원하는 시간대로는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가보면 자기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거나, 쪽팔린 일을 당하거나, 실패를 겪거나 하는 때인 거예요.  그래서 그 발명가 아저씨는요, 음∙∙∙∙ 그 불쾌한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잠시 지우는 데만도 며칠씩 걸리는 그런 장면들을 고스란히 다시 지켜봐야 했어요. 뭐 이런 개떡 같은 타임머신이 다 있담? 자기가 만들어놓고도 아저씨는 막 화가 났어요. 실망이 정말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돈이며 시간이며 투자한 게 얼만데요. 아저씨는 금세 의기소침해졌어요. 그래, 내가만든 게 이렇지 뭐. 이게 내 한계인 거지 뭐. 근데 그랬더니 슬슬 오기가 생기지 뭐예요? 원인을 꼭 알아내고 말 테다! 아저씨는 다시 타임머신에 올라탔어요. 그러고는 자기의 실수를,
실언을, 개쪽을, 대실패를, 정말 수도 없이 다시 목격했어요.
근데요......처음엔 그렇게 짜증만 나고 몸서리만 처지고 그러더니, 계속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자기가 왜 그런 바보짓을했었는지, 왜 그런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실패를통해서 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었는지…. 더는 화가 나지않았어요. 괜히 뿌듯한 기분도 들었어요. 꼭 인생의 신비라도알아낸 것 같아서. 그렇게 수십 번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온 아저씨는, 마침내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돼요. 그게 뭐냐면요, 타임머신이라는 건 애초에, 누가 만들든 어디서 만들든요.
우리를 원하는 시간대로 데려가 주는 물건이 아니었던 거예요. 오로지 실패의 순간으로만 데려가는 물건이었던 거예요.
바꿔 말하면, 오직 실패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깜찍한 물건이었던 거죠. 서울대에 다니는 애들이 그랬다면서요, 최고의 공부 비결은 복습이라고 시간여행의 미덕도 바로 거기에 있었던 거예요. 복습. 예습이 아니고, 히히."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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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먼 길 - 임성순 여행 에세이
임성순 지음 / 행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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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 임성순이 러시아에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석달간 유럽을 여행하고 돌아 온 여행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표지는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과는 약간, 아니 좀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구도로 오토바이 여행자의 뒷모습이 찍혀있는 표지기에 흥미로운 여행에세이에 진지함 한스푼을 넣은 글이 담겨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으로 책을 펼쳐보게 한다.


"쓸데없고 의미없는 여행은 없다"라며 무계획으로 호기롭게 시작하고 있는데 이 여행기에서 쓸모있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으려나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은 말이다. 러시아에 가본적은 없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한번 가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러시아 미술은 잘 모르지만 동방교회의 이콘화는 실물을 볼만하다고 알고 있으며 미술관뿐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의 생가도 한번쯤은 볼만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작가는 오로지 오토바이를 받기 위해 남는 시간을 보내려고 관광지를 다니기 시작한다. 무계획이라는 건 나와 비슷하지만 내가 계획없이 여행을 다니는 것은 패키지를 다니기때문일뿐이고 작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애초에 내가 경험해볼 수 없는 여행일 것이라 예상하게 되는데 나와 다른 스타일의 여행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별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지만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 슬며시 빠져들어가게 되는 여행 이야기가 되었다.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몇몇 나라는 가본곳이었기에 관광지에 대한 느낌이 새롭기도 했고, 피렌체 두오모성당에 내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갔었나 기억에 없지만 세례당의 청동문을 본 기억은 확실하다. 작가는 문짝 사진만 남겼다고 하는데 내게 남아있는 건 두오모 성당 안에서 어리버리 두리번 거리고 있는 나를 자꾸만 힐끔거리며 보던 경찰이 무서웠었는데 머뭇거리다가 결국 내게 다가와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알려주려고 했던 마음씀씀이가 세심한 경찰이었다는 것만 여행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 역시 관광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베네치아 등 세계 유명 관광지들이 점차 관광객에게 점령당하고 있어서 지역민들이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고 성수기와 비성수기에 따라 지역의 상권이 형성되는 것에 극공감을 하게 된다. 소매치기가 극심한 이탈리아에서 난민에 대한 편견을 가진 것에 대한 일종의 실험처럼 촬영을 했더니 오토바이에 두고 다니는 저렴한 물품들을 훔쳐간 것은 잘 차려입은 이탈리아인이었다는 결론도 의미심장했다. 구내식당도 없는 듯 도시락을 먹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대학생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젊은이들뿐 아니라 세계 어느곳이든 젊은이들의 삶은 녹록치않다는 것을 깨닫는 작가의 글에 세상살이에 대한 통찰을 되새겨보기도 한다. 

생미셸의 패키지 여행을 통해 역시 패키지를 외쳐보고 있기는 하지만 패션도시 파리에서의 이야기가 똥과 오줌으로 뒤범벅이 되는 외곽도시의 슬럼화를 언급하는 것이었으며 레 미제라블에 대한 설명과 단상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하기도 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아름답습니다. 때때로 일상으로 인해 바래 잘 보이지 않게 돼도 멈춰 서서 보면 믿을 수 없이 찬란한 순간이 있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 그러니 다들 부디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랍니다"(에필로그, 어쨌든 모든 여행은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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