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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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허나 린타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린타로의 추리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런 글을 읽으려니, 정말 소설 속 인물인 린타로가 느끼는 한기가 내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다. 소설의 중반쯤 읽기 시작하면 더이상의 범인 찾기가 무색해진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범인을 유추해내는 추론 과정과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즐거움으로 읽는 것인데 이 책은 도전장을 던지듯 이미 사건의 끝이 있고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논리적인 추론은 잠시 미뤄두고 지레짐작으로라도 다른 범인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고 또 실제 범인이 누구인지 조금은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건 단순하게 생각하면 추리소설로서의 매력을 못느끼게 되는 것이 될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다른 시점에서 도전장을 내미는 작가의 트릭을 간파하기위한 즐거움의 책읽기라기보다 그 의미에 대해 떠올려보며 더 깊이있게 읽기를 시도해보게 된다.

 

프롤로그처럼 시작된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는 살인고백으로 시작된다.

공원에서 사체로 발견된 딸 요리코,는 단순 사고가 아니라 교살의 흔적이 있는 살인사건으로 판명된다. 3년전에도 성폭행 후 살해된 소녀가 있고 그 후에도 미수 사건이 있었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그와 같은 범행으로 여겨지고 있지만 요리코의 사건을 맡은 형사는 왠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진 니시무라 유지는 독자적으로 사건을 파헤쳐나가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요리코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요리코의 학교 선생님인 히이라기인 것을 밝혀낸다. 니시무라 유지는 14년전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 마비가 된채 생활하고 있는 아내 우미에가 혼자 남겨질 것이 괴롭지만 끝내 요리코를 위해 히이라기를 죽이는 것으로 복수를 하고 살인에 대한 자신의 죄의 댓가로 죽음, 자살을 선택한다.

니시무라 유지의 고백으로 인해 사건은 깔끔하게 해결된 듯 했으나...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재조사가 시작되고 추리소설가로 등장하는 탐정 린타로는 조금씩 진실을 밝혀낸다.

 

이 이야기의 이면에 담겨있는 심리적인 요소, 등장인물들의 오해와 사랑, 집착은 가족이지만 가족의 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관념의 괴물로 부른 그 자신으로 인한 이 모든 비극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과거 행복했던 가족에게 일어난 불행이 불행으로 끝나게 되는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더 강한 사랑이 되어 행복으로 끝나게 되는지....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폐허처럼 고립된 사랑, 그게 당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형태란 말인가? 그런 것에 사랑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허나 린타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린타로의 추리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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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임이랑 지음 / 바다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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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출을 자제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달라는 이야기가 날마다 되풀이되고 있어서 봄이지만 봄을 느끼기 힘든 2020년의 봄이 되었다. 그렇게 추욱 늘어지게 되는 날들이지만 나는 그나마 활기있게 지내고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바로 코 앞에서 봄의 새 순이 돋는 것을 보고 화사한 봄꽃이 피는 걸 볼 수 있어서 그렇다.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그냥 심심풀이 삼아 식물 화분을 사고 이쁜 꽃이 탐나서 화분을 사 들이고 화려한 시절이 가면 잊어버리는 그런 식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반려식물'이라는 표현에 피식,하고 웃다가 언젠가부터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과 죽어 없어진 것 같은 겨울을 넘기고 봄이 되면 변함없이 새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생명체를 길러내고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이다.

 

그런데 임이랑 작가님도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작은 화분 안에서 씨앗을 틔우고 싹을 올리며 경이로운 삶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존재들. 그들은 언제나 그들에게 정성을 쏟는 꼭 그만큼의 싱그러움으로 나를 이끌어주었습니다"

가장 무해하고 이타적인 식물,이라는 표현은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주는 것은 식물밖에 없으며 지구에서 산소를 만들어 공기를 정화시켜주고 인간이 생존할 수 있게 하니 아무런 조건없이 이타적인 식물이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식물을 돌보고 식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의 일상과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 이야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쓰윽 읽힌다. 그러면서도 자꾸 뭔지 모르게 마음을 들썩거리게 한다. 임이랑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돌아오는 장날에는, 다음 휴일에는 가까이 있는 화원이라도 찾아가보고 싶어진다. 서울의 양재 꽃시장에 갔을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던 기억도 나고 지방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식물, 화초들을 보면서 집에 갖고 오고 싶어 살까 말까 망설이며 애꿎은 화분만 들었다놨다를 반복했었던 기억도 난다. 그때는 잘 키워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뒀지만 지금은 왠지 조금 더 정성을 들이고, 조금 더 관심을 갖고, 나의 관점이 아니라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을 인식하면서 잘 키워볼 수 있을 것 같아 이제 또 기회가 되면 초보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식물을 하나씩 늘여나가고 싶다.

 

사실 집 현관에는 오래전에 분양(!)받은 파피루스가 있고 - 이건 물이 마르지 않게 거의 수경재배하듯이 물속에 담궈두기만 하며 알아서 잘 큰다 - 산세베리아나 스파티필름, 스투키도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몬스테라를 키우고 싶어진다. 게다가 앙증맞은 잎모양이 이쁜 필레아도 키우고 싶다. 서울의 식물원이나 종로 꽃시장에도 가보고 싶다.

그 무엇보다도 단지 이쁘다고 식물을 들였다가 죽여먹는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식물이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환경에 적응하며 잘 자랄 수 있도록 관심을, 때로는 무심함도 가져보겠다고 결심한다.

 

"웃으며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내 식물 친구들도 물과 양분, 해와 바람이 모자라거나 넘치면 이파리를 떨구고 포기할 때가 있어요. 이제는 잘 알아요.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 꽃을 피우는 좋은 시절이 오리라는 걸. 잃어버린 마음 대신 어딘가 새로운 마음의 조각을 찾는 날이 오리라는 것도요. 

아름답고 흠결없이 완벽한 날도, 형편없는 모양으로 겨우 하루를 사는 그런 날도 모두 나의 삶이고 나의 정원이에요. 불행 속에서도 하나의 씨앗을 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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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슬기로운 의사생활, 을 보고있다.
인간적인 사제의 모습, 아니 때로 비인간적으로 묘사한다고 해조 이해는 하겠지만.
나름 독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제와 사제성소를 희망하는 의사인 그 둘이 어떻게 성전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지.
디테일하게 간식은 성전이 아니라 ㅅ
성당 마당에 앉아서 먹는것으로 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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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4-0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거기까지 안 봤지만, 처음부터 좀 짜증(?) 나더니
3회 시작부터 계속 볼수가 없더라구요,,,연기자들이 다 좋은데...좀 어거지 설정이 한계랄까...
그런데 그런 내용도 나오는 군요!

chika 2020-04-05 20:10   좋아요 0 | URL
ㅎ 응답하라 시리즈가 그랬던 것처럼. 드라마 작가와 연출자는 현실의 드라마라거나 의학드라마를 찍으려고 하는건 아니라더라고요. 의학에 대해 공부하고 조사하고 감수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나? 아무튼 그런 의미였던거 같아요.
 
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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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소설인가, 에세이인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만의 소설집이 왔다...

한때 유행했던 영화 속 문구를 패러디해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느낌이기도 하고. 처음 책을 펼쳐들 때는 사실 소설을 쓰기 위한 글쓰기 수업 교재,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건 그런 형식을 띄면서도 명백히 소설인 것이다.

처음 헤밍웨이의 완벽한 소설 4개의 문구를 이야기할 때도 느끼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기승전결- 발단, 전개, 절정, 결말이 있는 이야기인 것이고 그것은 소설의 길이에 관계없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를 그냥 글로 풀어서 설명했다면 소설 쓰기에 별 관심이 없는 내게는 그저그런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군더더기 없이 그냥 툭, 던져지는 이야기가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고 있어서 이것이 소설인가, 하게 된다. 그래서 읽다보니 재미있고 그렇게 책 한 권을 끝냈다. 다 읽고 보니 이 책이 '소설의 순간들'이다.

 

더 짧게 줄이지 못해 아쉽다,고 했던가? 아무튼 작가는 이 소설을 더 짧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오히려 내게는 너무 짧아서 이들의 이야기가 뭐지? 할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깊이 박히는 이야기는 발단에 있었다. 워밍업,이라는 부분을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나는 막연히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주제에서의 시작,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소설에 있어서 시작은 예를 들어 서핑을 하려고 할 때 서핑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라고 하면 안된다는 말에서 뭔가 느낌이 왔다. 모두가 다 아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커다란 파도와 그 파도를 마주한 서퍼의 모습을 서술하는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이야기가 단숨에 설명이 되고 이해가 된다. 이것이 '소설의 순간들'이다.

 

사실 이 글도 길게 쓸 이유가 없다. 내가 쓴 서평을 읽기보다 직접 이 짧은 소설을 읽는 것이 더 나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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