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세운 ‘가정‘의 힘

AI시대에 사람들이 세우는 가정은 어떤 형태일까?
왜 가정이 그토록 중요할까?
그리고 가정이 틀릴때 어떤 문제가 생길까?


동일한 문제를 연구하는 두 팀이 서로 다른 데이터 집합을 연구하고 다른 답을 내놓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연구 주제가 인간의 건강처럼 복잡한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과학은 종종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어떤 근거는 한쪽 방향을 가리키고 다른 근거는 다른쪽 방향을 가리킨다. 오직 시간이 흘러야만 어떤 방향에 근거가 더 많이 축적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지구상에는 두 가정 중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하는 기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말해 스스로 가정을 제안하고 검사하곶증명할 수 있는 알고리즘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알고리즘은 지시받은 내용만 수행할 뿐이다.

실제로는 똑똑한 기계들이 우리에게 더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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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되고 정보가 불충분한 의사결정 알고리즘은 작은 두뇌 속에 있다고 해서 작은 실리콘칩에서 작동하는 것보다 결코 덜 해롭지 않다.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AI로부터 다른 조언을 듣게 된다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AI알고리즘의 추론과 편향은 고칠 수도 있으니까.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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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주인
로버트 휴 벤슨 지음, 유혜인 옮김 / 메이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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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소설, 이라는 걸 알았으면서도 이 암울한 소설의 마지막을 대하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다. 아니, 사실 이런 결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3부의 '승리'는 정말 가톨릭의 승리, 세상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하며 영광스러운 가톨릭의 지배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그런 세상을 떠올렸는데 소설은 당연하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물론 그 끝이 세속에서 말하는 그 끝과는 다르다는 걸 생각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저자 스스로 장황한 프롤로그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백여년전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고 놀랍지도 않다는 것이 조금은 기대치를 낮추게 된다. 하지만 한세기 전에 이미 이런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고 있다는 것에 이 소설의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읽은 조지 오웰의 1984는 사회주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단순한 반공도서였지만 몇년 전 그 책을 다시 읽으며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었던 것처럼 세상의 주인은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

 

프롤로그를 통해 세상의 구조적 상황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펠센버그라는 인물에 대해 뚜렷한 사상에 대한 설명도 없고, 그가 세상의 평화를 위해 행동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의 등장만으로 모두가 빠져들어가는 인물 펠센버그는 연설 하나로 전쟁의 위기에 놓인 동서방의 세계를 평화로 이끌어낸다. 그 후 펠센버그는 유럽을 넘어 세계의 대통령이 되고 신이 아닌 인간인 그를 신격화하고 의례를 만들어낸다.

펠센버그와 외모가 닮았지만 가톨릭 사제인 퍼시는 무너져가는 가톨릭을 세우기 위해서 새로운 교회공동체를 설립해야 할 것을 역설하는데 그런 그를 교황은 로마로 불러들인다. 퍼시 신부의 제안대로 가톨릭교회는 쇄신을 꿈꾸지만 종교적인 탄압은 거세어지고 그 와중에 과격한 가톨릭교도들의 폭탄테러 계획을 빌미로 오히려 로마가 폭격을 당해 결국 가톨릭 교회는 무너지고 그 속에서 살아남은 퍼시 신부는 가톨릭의 교계를 잇는 교황이 되어...

결말을 이야기하기에는 이 책의 내용을 너무 단순화시켜버리는 것 같아 더 이상 언급하기가 어렵다. 양분화된 두 세계의 모습과 그 세계를 이어주듯 정치가인 브랜드 부부가 나오는데 무신론자이면서 그리스도 신앙을 무시할 수 없는 메이블의 죽음에 대한 선택은 그 자체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보다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해야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소소한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메이블과의 만남 후 깊은 생각에 빠지는 배교자 프랜시스의 모습에서도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내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일까.

 

세상의 끝,에서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본다. 어느 한 명의 인간에 의해 모두가 개성을 잃고, 하나된 세계를 말하지만 그것은 더이상 공동체가 아닌 일원화된 집단일뿐임을 깨닫게 되는 것 역시 새로운 시작일 것이다.

세계가 파괴되어가고 있지만 거룩한 미사성제가 거행되고 성경의 은유와 교회를 파괴하기 위한 폭격의 모습이 환상처럼 펼쳐지며 세상의 끝을 이야기하고 있는 그 의미에 대해서도, 왜 프란치스코 교종이 이 책을 추천했는가에 대해서도... 자꾸만 많아지는 생각들을 더 깊이있게 담아야겠다. 이것 역시 끝의 시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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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을 믿는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대리인을 통해 무엇을 요구하셨는지지체 없이 알려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는 이에게 주님께서 직접 약속하신 것 외의 보상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 외의 평화를 약속하지도 않습니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자에게 집을 내주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경멸을 견디는 자에게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하느님 안에 감추어진 영원한 생명 외에 생명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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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보물 고대 그리스 -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 손바닥 박물관 2
데이비드 마이클 스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성안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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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 세계의 박물관 소장품에서 선정한 유물로 읽는 문명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 부제에만 집중을 하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책을 읽으며 내심 또 다른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은 그동안 띄엄띄엄 봤었던 고대의 유물을 시대순으로 한번에 보고 있으려니 점차 정교해지고 풍요로운 표현들이 담겨있는 예술적인 변화도 볼 수 있어 좋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박물관을 중심으로 그곳에 있는 각 지역의 고대 유물과 보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을 읽었었는데 이 책은 그 경계를 넘어 '고대 그리스'의 유물을 다 담아내고 있어서 더 좋았다.

 

엘긴스 마블로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이 런던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그건 누가봐도 그리스의 유물이고 빼앗긴 보물이다. 우리의 많은 보물도 그렇지만 전 세계적으로 빼앗긴 유물 반환에 대해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이 책에 담겨있는 유물들의 소장 지역을 보면 정말 다양하다는 것으로도 그 문제를 떠올려볼 수 있다. 이건 그리 썩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대 그리스의 유물들을 보다보면 금세 감탄하며 유물 그 자체에 빠져들게 된다.

 

'손바닥 박물관'이라고 해서 유물의 실제 크기를 손바닥 크기와 비교해서 실물을 가늠해보게 해 준다는 설명은 책을 읽기 전부터 알았지만 별 관심없이 무심히 넘기다가 손바닥 크기와 비교된 실물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란 다음부터 꼭 크기를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상아로 만든 조각품들을 보다가 상아라는 재질에 크기가 작겠다 싶기는 했지만 손바닥과 비교된 그림을 보고 표기된 실제 크기가 12센티미터가 안되는 것을 확인하니 책 속의 사진 크기가 실물 크기와 비슷할 것 같았고 박물관에서 직접 보는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좋다.

 

눈에 익숙한 유물도 많지만 처음 보는 것들, 특히 프라이팬이라고 되어 있어서 고대의 주방기구가 이렇게 현대적인 무늬를 새겨넣고 만들어졌다고? 하며 다시 보니 실제 프라이팬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모양이 프라이팬과 닮아서 그렇게 부르고 있다는 말에 혼자 피식하며 웃고 말았지만 지금으로부터 삼천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유물들이 어떤 용도로 쓰였건 - 대부분은 제례의식용으로 쓰여졌겠지만 - 대단한 미적감각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물에 대한 설명을 읽고 다시 한번 사진만 훑어보고 있으려니 또 새삼 위대한 고대의 유물들이라는 감탄을 하며 보게 되는데 이 책은 간접적인 박물관 관람 체험으로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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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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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혼란스럽고 망가진 곳처럼 보이고 암담한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 나는 집에서 나와 나무들이 있는 곳까지 5분동안 걸었다. 이 땅뙈기에서 자라나는 토끼풀, 잔개자리, 들장미, 검은수레국화, 사향채, 가시자두 등의 친숙한 식물을 바라보노라면 잎사귀들이 그리는 무늬와 미묘하고 다양한 색의 꽃들, 그리고 다채로운 녹음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효과적으로 내 마음을 가라앉혀준다."(251)

 

책을 다 읽고난 후, 아니 책을 읽는 내내 그랬지만 야생의 위로라는 책 제목은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도, 책에 담겨있는 사진들과 저자의 스케치도 또한 책을 읽고 있는 내 마음까지 똑같이 야생의 위로를 느끼게 해줬다. 그리고 책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오늘 나는 자연속에서 평화로움과 안정을 느꼈다. 이건 나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해가 지평선에 가 닿는 동안 올빼미는 먹이를 물어뜯고, 나무와 산울타리에는 황금빛 후광이 내려앉는다. 평생 목격한 것 중에서도 손꼽게 아름다운 풍경이다. 새삼 내가 얼마나 우울증에 지치든, 얼마나 기만당하고 무기력해지고 황폐해지든 간에 이런 광경과 만나고, 그에 따른 치유 효과로 머리를 채울 수만 있다면 계속 싸워나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112)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오랜 병원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오셨지만 오랫동안 혼자 외출을 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셨던 분이 집에 혼자 계셔야했으니 무료함을 넘어 우울함을 말씀하시곤 했지만 아침이면 출근을 해야하는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그저 점심시간에 짬을 내 전화 한 통 하는 것뿐이었다. 별다른 일없이 지루한 일상이 되풀이되는 듯 했는데 조금씩 어머니가 수다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코딱지만한 마당에 식물이 자라기 시작하고 새가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라고 기억하고 있다. 오늘은 토마토가 두 방울 열렸다,라거나 작은 새들만 오더니 오늘은 큼지막한 새가 와서 앉았다 가더라, 오늘은 새가 토마토를 쪼아 먹더라, 오늘 보니 지난 해에 묵은 깨를 마당에 버렸는데 깻잎이 났더라....

그러면서 어머니는 활기를 찾으셨고 나 역시 나도모르는사이에 자연이 주는 치유력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야생의 위로를 읽다보니 몇년간의 일들이 스쳐지나가며 백만배 이상 공감하게 되는 이유들이다.

 

물론 이 책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공감이 없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도시에 살면서 접하는 도시 공원의 환경과는 전혀 다른 숲과 자연의 환경에 대해 읽게 되지만 그 또한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더구나 아름다운 사진을 보는 즐거움에 더해 매월 시작하는 첫장에 담겨있는 저자의 수집품 사진을 보면 괜히 나도 뭔가를 모아놓고 싶어진다. 희귀종 식물이 아니라면 저자는 채집을 하여 압화를 만들기도 한다는데 어렸을 때 이쁜 나뭇잎이나 꽃잎을 모아두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한번 올 한해동안 주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꽃이나 식물을 채집하고 스케치를 시도해볼까...하는 마음이 든다.

이처럼 뭔가를 시도해보고 싶어지고 마음이 즐거워지는 것, 이것이 또한 야생의 위로,가 주는 또 다른 위로와 행복이 아니겠는가.

특히 지금, 생명력이 넘쳐나는 봄, 화사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계절에 외출을 자제해야하는 우리에게 직접적인 자연의 체험을 못하더라도 화사한 색상으로 자연을 묘사해준 이 책으로 자연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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