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 종종 상상하곤 했다.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세상 탓하면서 해소도 않을 억울함 느끼는 것 바라지 않아.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히원씨가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 그냥 무시해버렸으면 좋겠어. 나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난 희원씨가 상처의 원인을 헤집으면서 스스로를 더 괴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다음 문장이 어떻게 완성되었을지는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떤 문장이든, 그녀는 내가 자신보다는 나은 경험을 하기를, 자신이 겪었던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자존심이자 힘이었으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겪는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그 마음이 그녀를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는 마음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84ㅡ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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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대 비극 -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민애.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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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드립니다, 라는 프로그램이 재미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나도 뒤늦게 알아 몇 번 못봤지만 엊그제 종영한 프로그램이 재밌다고 얘기하는 친구를 보니 나보다 더 늦는 사람도 있구나, 싶다. 아무튼 티비를 잘 보지 않는 친구도 재밌다고 할만큼 재미있는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햄릿을 읽어 줄 때 뒤늦게나마 본방을 봤다. 그런데 재방송을 찾아보고 싶을 만큼 정말 재미있는 것이다. 햄릿이 재미있는 건 알았지만 햄릿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대한 해설을 듣고 있으려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배는 더 위대한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몇년만에 새로 읽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비극을 읽으려는데 설레인다니 뭔가 모순된 듯 하지만...

 

4대비극의 내용자체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고 대표되는 햄릿은 저돌적인 돈키호테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많이 회자되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우유부단함때문이 아니라는 걸 새삼 강하게 깨달았다. 문화적으로 복수는 비도덕적인데 부모에 대한 복수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지... 그런 도덕적인 딜레마에 빠져든 햄릿을 그저 우유부단하다고만 치부할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맥베스를 읽을 때도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줄거리 축약본으로 읽을때의 느낌은 양심의 가책으로 선뜻 손에 피를 묻히기 힘들어하는 맥베스를 그의 부인이 악을 종용하고 실행하게 만든 원흉이었는데 희곡 원본으로 보니 원초적으로는 맥베스의 야심이 그 모든 악을 초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글들은 그 줄거리만을 따라가도 재미있는 최고의 만담꾼의 이야기가 되지만 희곡대본으로 대사를 치듯 글을 읽다보면 그 내용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진리와 지혜의 말을 읽게 된다. 사실 명대사에 밑줄을 그으며 읽어볼까 하다가 나중으로 미룰만큼 필사하고 싶은 대사가 너무 많아 오히려 책을 읽는데 자꾸 멈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리어왕의 경우 처음 접할 때부터 희곡으로 읽어서 그런지 이번에도 그리 큰 차이는 못느꼈다.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지 못하는 권력자인 리어왕이 아첨에만 현혹되는 모습이나 자신을 내친 아버지에게 끝까지 효심을 보이는 코딜리어를 보면서 조금은 단순하게 효도에 대해서만 생각해보기도 했다.

예전에는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했던 오셀로나 비현실적인 상상처럼 느껴졌던 맥베스가 더 인상깊었는데, 오셀로의 이아고도 그렇지만 맥베스에서 악의 씨앗을 뿌리는 악으로 등장하는 마녀들의 모습에서도, 어리숙한 광대의 대사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말 모든 등장인물들에게서 인간의 성격과 심리가 세세하게 묘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다른 번역서와 비교하지 못해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이 책에는 우리말 번역으로는 그 의미가 전해지지 않을 경우 역자가 원문의 표현을 언급하며 비교 해설을 해 주기도 하고, 당시의 문화적인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고 있어서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더 쉽다. 역자의 작품 해설을 읽고 난 후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또 그 느낌이 다를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읽어보고 또 기회가 된다면 - 아니, 이건 능력의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영어판본으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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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왜 번식을 원치 않을까? 대격변 이후 아이를 낳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졌던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파괴했기에 인구증감을 조절할 권리가 없다. 번식을 원치 않는 사람을 선택자라 부른다.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류를 우리가 전부 다 먹여 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대부분 기아와 수난을 겪으며 사망과 절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인간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감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여기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기아와 수난을 겪고 있지 않지만,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다 겪고 있다. 그러니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감히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한 답변은 다양하다. 그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 이게 한 가지 답변이다. 신이 우리에게 응답해 주신다는 것,
이게 일부에겐 먹힐 답변이다. 그렇지만 최고의 답변은, 아니 어쩌면 내 생각에 제일 합리적인 답변은 그냥 왜냐하면 이다. 왜냐하면, 가장 인간적인 질문에 대한 최고의 답변이자 최악의 답변이다. 우리는왜 존재하는가?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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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가 봤을 법한 일, 그가 했을 법한 일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하니까 이해하기가 더 쉬워졌다. 그때 이후 나는 더 이상속임수를 쓰지 않았고, 샛길로 빠지지 않았고, 지름길로 가지 않았으며, 모든 일을 100퍼센트 규칙대로 수행했다. 나는 원칙주의자가되었다. 내가 비록 벽에 있을지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기에도 최소한 인간적인 면, 해석의 여지, 관용이나 수용이 통하는 자유스러움,
좀 비겁하긴 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변명할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 이제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재량권도 없었고, 자유스러움도 없었으며, 온통 흑백 논리, 즉 규칙 아니면 무법천지였고, 온통 벽과 상대와 항상 대기 상태, 기회주의, 성난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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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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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의 제목을 들을 때는 응? 하는 느낌이었다. 생강빵이 진저브레드 아니었나? 그런데 저자가 번역가네? 그리고 부제가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인 것이다. 번역가의 산문집이어서 제목이 이런가보다, 라는 생각을 가볍게 했다. 아니, 책을 읽기 전에는 말 그대로 번역가 김지현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인가보다 생각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기전에는 그저 가볍기만한 마음이었는데, 실상 이 책은 가볍다기 보다는 산뜻하면서 내가 처음 맛보는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의 느낌이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한가득이라면 그런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즐기는 디저트의 느낌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너무 잘 만든 코스 요리 한 상을 받은 느낌이다.

 

산문집의 구성 자체가 코스 요리처럼 빵과 수프 먼저 나오고 주요리와 디저트, 그리고 부엌과 관련있는 찬장, 식료품 저장실 스토브, 벽난로, 포치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있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우리말만큼 세분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영어 단어를 익히면서 좀 더 근접한 표현이 뭔지 알고 싶어 사전을 뒤적이며 유의어를 찾아보거나 아주 간단한 영영사전을 보기도 했었는데 단어에 대응되는 적확한 우리말 표현을 기본적으로 알고 싶었다. 그런데 처음의 의욕과는 달리 지금 영어는 못하지만 그 의미에 더해 말이 주는 어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저자의 표현처럼 생강빵과 진저브레드가 같은 말인 듯 다른 말이라는 것이 아닐까. 

 

"문학 작품들 속 낯선 음식들의 '실체'를 밝히는 것 보다 문학속에만 존재하는 문학적 음식들에 대해, 그것이 한국어로 옮겨져 우리에게 도착했을 때의 '맛'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라고 한다. 단추 수프에 담긴 의미를 문화적으로 풀이해주기도 하고 거북 요리나 바닷가재요리에 담겨있는 지역에 따른 문화적 차이도 이야기하며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게 하기도 한다. 실제 이 책을 읽고난 후 작은 아씨들이나 톰 소여의 모험 등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넘쳐났다. 그뿐인가. 요즘 이국의 독특한 요리도 왠만하면 다 맛볼 수 있겠지만 줄리와 늑대에 등장하는 순록 스튜는 이누이트들조차도 식료품점에서 구한 식품으로 음식을 요리해 먹는 현실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지구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문학적 상상력이 없이는 절대 먹어 볼 수 없는 음식이라는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동화 속 음식에 얽힌 번역 이야기, 인 것 같지만 왠만한 인문학적 에세이를 능가하는 깊이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콘비프에서 콘을 옥수수라고만 생각하면 도대체 어떤 음식이지? 하게 되는데 여기서 콘,은 소금에 절였다는 뜻임을 알고 나면 금세 어떤 음식인지 이해할 수 있다. 순우리말임에도 이게 뭘까 궁금해지는 월귤은 오히려 영어표현인 블루베리가 더 친숙하다. 그런데 우리말로 월귤이라고 번역되는 베리는 그 종류가 다양하여 실제 원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베리는 무엇인가 궁금해지기도 한고.

이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이 다 흥미로워 한 권의 책이 금세 끝나버리는 것이 아쉽다.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김지현 산문집 두번째가 기다려질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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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만나는 산책길
공서연.한민숙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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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전은 서울지역에 있는 옛 건물이나 골목길의 원형을 찾아 산책하듯이 역사를 살펴보는 그런 책인 줄 알았다.

어릴때는 몰랐지만 나이를 먹고나니 옛거리의 멋스러움이나 원도심의 역사 이야기가 선조의 역사일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과도 맞물려 떠오르는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 느낌과 비슷하게 이 역사산책길을 걸을 수 있으려나..라는 조금은 가벼운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는데 뜻밖에 조금 더 진중하고 깊이있는 역사산책길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멋진 도시,라는 말에 나 역시 외국인들처럼 공감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궁궐에 근현대의 역사가 담겨있는 건축물들만 떠올려봐도 서울은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다녔던 성당건물도 그대로 있다면 백년이 넘겠지만 너무 노후되고 벽에 금이가 리모델링이 아닌 신축을 해야했고,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건축사에 있어 기념비가 될만한 건물이었는데도 공무원들의 무지함 혹은 무심함으로 멋없는 주차공간을 만드느라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외적인 조건만으로도 서울은 볼거리가 한가득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의 올레길을 걷고 그에 대한 로망을 꿈꿔보듯 나는 서울의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산성을 휘돌아 둘레길을 거르며 서울 도심의 거리를 바라보고 싶다는 소망은 언젠가 이뤄볼 수 있겠지. 작년에 좀 오랜기간 서울에 머무르고 지낼 때 하루 시간을 내어 버스 타고 수원 화성에 갔었다. 아무런 정보, 지식 없이 무작정 수원 화성 근처에 내려 성곽이 보이는 곳을 따라 걸어가다가 돌고돌아 정문으로 입성하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나왔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찾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그저 성벽이 이렇게 낮은데 왜 전쟁을 할 때 성벽 하나를 무너뜨리지 못했을까, 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화성에 간 보람이 있다고 느꼈었는데 말이다. 성벽은 높은 지대에 쌓았고 저 밑에서부터 적이 올라오고 있을 때 인해전술만 아니라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뜻이다. 몇백년전이라면.

 

이전에는 외양만 보고 감탄을 하거나 말로만 전해들었던 이야기들을 구체적인 역사 이야기와 맞물려 그 안을 들여다보게 해주니 더 좋았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서대문형무소와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서 우리의 현대사도 직시해보고 싶어졌다.

책에는 서울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강화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의 역사를 돌이켜볼 수 있게 해 주고 사람사는 모습에서는 전주의 재래시장, 국제시장에 대한 언급도 하고 있다. 사실 이렇게까지 은근슬쩍 확장하지 않고 오롯이 지역적으로 서울과 서울의 근교에 해당하는 지역에 대한 이야기만 집중적으로 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그래도 서울에 집중된 역사 산책길 책인것은 확실하니, 서울에 가게 된다면 이 책을 들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행 자제의 시기가 지나면 시간을 내어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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