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해야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국수 한그릇을 먹고 간식 쪼가리를 먹으며 버티고 있으려니 몸이 추욱 늘어지는 일요일 오후였다. 아무 생각없이 나는 가수다를 켜놓고 윤뺀이 끝까지 가늘고길게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보다가 끝나자 바로 TV를 돌렸다. 한참 진행되고 있는 1박2일의 장면은 승용차 안에 이수근, 강호동, 김종민이 힌트 낱말을 들고 해답을 찾는 거였다. '벨'이 뭘 말하는거죠?
중간에 봐서 벨은 전화와 연관되었을텐데...하며 보다가..................
그들이 ball을 벨이라고 했다는 걸 보고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그냥 평소처럼 낄낄거리며 웃고 지나가려는데, 마침
마실나가셨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저녁으로 뭘 먹냐..하다 내가 어머니에게 비 에이 엘 엘을 어떻게 읽냐고 물어봤다.
-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어머니는 일흔여덟되셨고, 작년 여름에 내가 쓰다 버린 노트를 주워들고 영어공부한다며 알파벳을 쓰던걸 내게 들키셨는데 그때 수많은 아이들이 헷갈려했던 것과 똑같이 소문자 비와 디를 거꾸로 써서 나를 박장대소하게 하신분이다.
아무튼
뭔말이냐 하며 어머니는 내 얼굴을 쳐다보다가 망설임없이 '벨!' 하고 외쳤다.
나는 눈물나게 웃었고, 어머니는 그게 벨이 아니냐? 그럼 발? 하고 재차 묻는데, 내가 볼이라고 말하니 볼은 비오엘엘이라며 헛소리하지 말라고 한다.
한참을 웃다가 나는 1박2일의 진실에 가까운 사실을 보여주는 쌩날방송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난 왠지 1박2일이 더 좋아질 것 같단말야.
예능 PD로서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게 있어? 아니면 앞으로 예측 가능한 예능 프로그램의 판도 같은 것은?
글쎄. 잘 모르겠네. 그런데 난 리얼 버라이어티는 아직 초기단계라고 생각해. 우린 여행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다룰 수 있는 건 무궁하다고 보고 있어. TV를 볼 시간이 별로 없는데도 아주 재미있게 보는 프로가 있는데, <라디오 스타> 코너랑 <개그콘서트>야. 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보면서 넋놓고 웃을 수 있다는 거 말야. 웃기는 데 전력투구하겠다는 의지가 보이거든. 난 그런 프로그램이 참 좋아.
1박 2일의 방향은 뭐지?
개인적으론 조금은 가학적이고 공격적이라고 욕을 먹더라도 일정 수위만 유지하면서 재미를 최고의 가치로 놓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만 내가 하는 프로그램은 주말의 가족 시청 시간대잖아. 같잖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시간대 방송을 만드는 PD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감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난 개인적으로 감동을 추구하지는 않는데 시간대가 시간대이니만큼 8 대 2, 혹은 7 대 3 정도로 2,3할은 재미가 아닌 다른 걸 보여주려고 하고 있어. 감동이든 경치든 메시지든 뭐든 섞어야지. 얼마 전에 했던 외국인 노동자 특집에서 그들이 가족과 만나는 것을 보면서 찡한 느낌을 받고 엄마한테 전화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그거로 된 거라고 생각해.
[나영석 피디와의 인터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