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구판절판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 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51쪽

일상 생활 속에서 공간의 의미를 성찰하는 논의는 늘 무성하다. 개항 이래 이 나라에 건설된 주택과 빌딩과 마음과 도시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을 배반했고, 전통적 가치의 고귀함을 굴착기로 퍼다 버렸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강제수용되어 있다는 탄식이 그 무성한 노의의 요점인 듯하다. 비바람 피할 아파트 한 칸을 겨우 마련하고 나서, 한평생의 월급을 쪼개서 은행 빛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찬바람이 분다.-133쪽

추사는 대청마루 위에 '신안구가(新安舊家)'라는 편액을 걸었다.'늙음'이 스며들어 있는 집이 좋은 집이다. 집은 새것을 민망하게 여기고, 새로워서 번쩍거리는 것들을 부끄럽게 여긴다. 추사의 '구가' 속에는 그가 누렸던 삶의 두께와 깊이가 놀아들어 있다.오래 된 살림집은 깊은 공간을 갖는다. 우물과 아궁이는 깊고 어둡고 서늘하다, 불을 때지 않을 때 아궁이 앞에 앉으면 굴뚝과 고래가 공기를 빨아들여서 늘 서늘한 바람기가 있다.물과 불은 삶의 영속성을 지탱해주는 두 원소이다. 이 두 원소는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서 태어난다. 두레박으로 길어올린 물은 그 물을 퍼올린 사람의 생애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그가 깊은 곳에 줄을 내려서 거기에 고여 있는, 갓 태어난 원소를 지상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134쪽

인간은 아늑하고 풍성한 곳에서 다툼 없이 살고 싶다.-138쪽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얼마나 사랑스런 원수덩어리인가. 몸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진대. 장비가 있어야만 몸을 살릴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몸이 나아갈 수 있다.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 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몸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빛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더 먼 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었고 태백산맥의 가을빛은 다만 먼 그리움으로서만 반짝였다.-237쪽

마암분교 이야기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전교생 17명인 이 작은 학교에서는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매일매일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샘솟아 오른다. 날마다 새로운 날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있다. 삶속에서 끝없이 이야기가 생겨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일인가. 봄에는 봄의 이야기가 있고 아침에는 아침의 이야기가 있다. 없는 것이 없이 모조리 다 있다. 사랑있고 죽음이 있고 가난과 슬픔이 있고 희망과 그리움이 있다. 세상의 악을 이해해가는 어린 영혼의 고뇌가 있고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성장의 설렘이 있다. 여기가 바로 세상이고, 삶의 현장이며, 삶과 배움이 어우러지는 터전이다. 자라나는 일이 배우는 일이다. 사람이 되어가는 일인 것이다. 귀봉이와 초이는 올 봄이면 졸업해서 이 학교를 떠나야 한다. 졸업식날 많이들 울 것이 분명하다. 이 졸업생들은 10년 후 운암대교 위에서 만나기로 김용택 선생님과 약속했다. 그때, 나는 또 마암분교에 대해서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다. 창우와 다희의 앞날에 깊은 사랑과 커다란 기쁨이 있기를 기원한다.-2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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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7-03-23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정말 밑줄을 안 그을 수가 없어요 그쵸?

치유 2007-03-2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네..바람님..*^^*
감사합니다.

비로그인 2007-03-2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히, 도시적인 세련미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
저는 언제나 한적하고 숲과 시내가 있는 시골에 전통가옥을 지어서 자연 가까이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복잡한 도시의 시멘트 냄새를 맡으며 자란
나에겐 끝도 없이 이어진 들판과 나무들과 자연의 소리가 항상 고픕니다.

치유 2007-03-2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안 그런 사람도 있더군요..
이 책여러부분에서 맘에 와 닿는 부분이 많았지만 전 끝부분에 있는 꽃피는 아이들편이 젤 맘에 와 닿았어요..어린 아이들의 맘표현에서 같은 무렵 할머니들을 떠나보낸 아이들의 그 그리움이 짠하기도 했구요..
발바닥끝에 매끌매끌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갯벌 사진도 좋았구요..

비로그인 2007-03-23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갯벌. 2004년 여름에 본의 아니게 따라간 적이 있었습니다만,
계속 발이 빠지는 바람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뜨거운 태양에 쪄 죽을 것 같고...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웃음)

홍수맘 2007-03-2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전 '어려워, 어려워' 하는 부분도 있었고, 사회 비판적인 부분에서는 정말 날카롭다 라고 느꼈던 기억이 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 ^.

치유 2007-03-23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SHIN님/아..전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때 가서 그 기억이 더 오래가나봐요..여름이었으면 땡볕이었으니 힘든 기억이셨을듯 싶네요..

홍수맘님/네..그렇더라구요..전 제가 좋은 부분만 푹 빠져서 봅니다..ㅋㅋ

2007-03-24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7-03-2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18속삭이신님/히힛.. 님이 제 책방에 들리시는 날이면 괜히 기분이 좋아져요..
아..그랫었군요..넘 이쁜 모습들에 너무 흐뭇하고 짠해지고 그랬더랍니다..님 주말 잘 보내셨지요?/전 정신 없이 바쁜 주말을 보내고 이제야 의자에 앉았답니다..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I LOVE 그림책
캐드린 브라운 그림, 신시아 라일런트 글,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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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할머니는 로잰느에서 일어나, 프레드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고는, 베치를 몰고서 우체국으로 달려갔어요.
할머니는 늘 누군가로부터 편지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세금 고지서 밖에 날아오지 않았어요.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사는 친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편지를 받을 수 없었던 거에요.
할머니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외로운 노인이 되는게 싫었어요.
다정하게 이름을 부를 친구가 없다는 것도 싫었고요.-.쪽

그날 밤, 할머니는 베개를 둥글게 만들어 로잰느 위에 놓으며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아주착하고 예쁜 강아지라고 생각했지요.

그래도 강아지를 머물게 할 수 는 없었습니다. 강아지를 머물게 하려면 이름을 지어 주여야만 하니까요. 강아지는 프랭클린이나 프레드, 베치나 로잰느처럼 오래오래 살지 못할 게 분명했어요 .할머니가 오히려 강아지보다 오래 살 것만 같았어요. 할머니는 친구들보다 더 오래 살아서 혼자 남겨진다는 게 두렵고 싫었거든요 .

할머니는 앞으로도 계속 강아지를 돌려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쪽

할머니는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친구들을 떠올렸어요.
그러자 다정하게 웃는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사랑스런 친구들의 이름도 모두 모두 모두 생각났습니다 .
그리고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던 게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우리 개 이름은 '럭키'랍니다! '행운 '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죠."-.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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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 네로 - 양장 올 에이지 클래식
엘케 하이덴라이히 지음, 김지영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6월
절판


검은악마 네로 , 태어나다..

독일에서13일의 금요일을 '재수가 나쁜 날'로 여긴다...
...
이탈리아에서는 그런 날이 바로 '17일의 금요일'이다. 게다가 11월을 운이 좋지 않은 달로 생각한다. 그러니 11월 17일 금요일, 더구나 하늘이 어두컴컴하고 천둥 번개가 치고 후드득 비까지 쏟아지는 날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임에 틀림없다. 이런날 마돈니나가 새끼를 낳았다. 그녀가 낳은 네 마리의 새끼고양이 중 수컷 한 마리는 온통 새까맸다. 마돈니나가 검은 고양이를 낳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완전히 검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검은 고양이는 그렇게 천둥번개가 치던, 11월 17일 금요일 낮 열두 시에 태어났다.-12쪽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생기고 말았다. 어느새 네로는 날카로운 발톱이 난 앞발로 농가를 휘젓고 다녔다.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작은 주둥이를 벌려 닭이 낳아 놓은 알을 먹어 치우기도 했다.
..
.....어리석은 닭들은 그 모습을 보고 단단히 얼어 버렸고, 그 뒤로는 아무 불평 없이 매일네로에게 알을 갖다 바쳤다. 그 뒤로는 아무 불평 없이 매일 네로에게 알을 갖다 바쳤다. 네로는 닭들이 바치는 알을 돌에 깨서 후루룩 마셨다. 그러고는 능청스럽게 초록빛 동그란 눈을 꼭 감고 가르랑거리며 쩝쩝거렸다. 알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에는 로자를 불러 남은 것을 먹게 해 주곤 했다.-14쪽

로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코를 고는 듯하더니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이빨 사이로 혀를 축 늘어뜨린 채 후른 사팔눈을 영원히 감고 말았다. 네로는 마치 돌이 된 것 같았다.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웅크린 채, 먹지도 않고 몸을 핥지도 않았다.
...
.... 네로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슬픔에 잠겨 이졸데의 무릎위에 누워있었다. 그 덕분에 생쥐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돌아다니며 수군댔다.-81쪽

네로는 열 시간 동안 바구니에 있어야 하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는 깊게 한숨을 쉬고 몸을 둥글게 만 채 아무 소리 없이 잠이 들었다. 오래 전 동생 로자와 함께했던 첫 여행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독일보다 더 푸르고, 더 가까이에서 별을 볼 수 있었던 이탈리아의 밤을 꿈꾸었다. 벽난로에서 나는 나무 냄새와 15년동안 잊고 있었던 어미 마돈니나에 대한 꿈도 꾸었다.
'엄마! 나 집으로 가요.'-84쪽

"나의 왕자님! 나의 천사! 나의 토깽이! 네로야, 어디에 있는 거니??"
네로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졸데가 농가에 와서 농부에게 네로에 대해 물어 볼 때도 움직이지 않았다. 농부에게 모습을 보이면 이졸데에게 네로가 있는 곳을 알려 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졸데는 울면서 떠났다. 네로는 그 모습을 보며 건초더미에 머리를 묻었다. 별장 덧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와 뒤이어 차에 짐을 싣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막으로 이졸데의 목멘 소리도 들렸다. 이윽고 자동차가 출발하자, 네로는 건초더미에서 기어 나와 지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탁해진 눈으로 자동차가 골목을 돌아 교회 뒤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네로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녕, 이졸데! 잘 살아야 해요. 로베르트, 이졸데에게 잘해줘요. 당신도 알다시피 이졸데는 우리 없인 못 살잖아요."-100쪽

네로는 농가로 내려갔다. 화단에서 괭이질을 하고 있던 농부가 네로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그 악마 녀석 아니냐?"
농부는 네로에게 한 마디만 던지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농부와 네로는 서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농부는 주름진 손을 뻗어 네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왔다."
농부는 다시 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네로는 그런 농부 옆에 앉아 천역덕스럽게 털을 핥았다. 저만치에서 그리기올리나가 신선한 이탈리아 생쥐를 물고 달려오고 있었다.-100~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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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1-19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새삼 느낀건대..리뷰처럼 강한 위력으로 책을 읽고픈 마음을 일으켜요,,
이 책도 너무 매력적인걸요...

치유 2007-01-2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님 잘 지내시지요??
저도 지기 님들 리뷰 보면서 제가 못 본책의 유혹을 엄청나게 받으며 산답니다..

치유 2007-01-20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라야..엄마는 오늘밤에 네로를 만나야 겠구나..
 
네가 있어 행복했어
지니 로비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6년 12월
품절


엄마는 네가 귀가 들리는 사람들의 세계에 섞여 살기를 바라시는 모양이다. 하지만 대부분 귀가 들리는 사람들이 그러듯 네가 소외감을 느낀다는 걸 잘 모르시는 것 같아.-89쪽

그러면 뚜껑이 꽉 닫혀 공기가 통하지 않는 유리병 안에 갇힌 것 같았다. 조이는 차 문을 잡고 엄마가 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 마침내 입을 열었는데, 한참 울고 난 것처럼 숨이 헉헉 짧게 끊어졌다.
"할아버지는 내 기분이 어떤지 이해해 준단 말야."
조이는 말했다. 엄마는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문을 닫더니 가 버렸다.
조이는 입술을 물고 눈물을 삼켰다. 돌아보니 케니가 현관문가에서 보고 있었다. 케니는 웃지도 손을 흔들지도 않았따. 케니는 조이처럼 몸을 돌려 엄마가 요양원 주차장으로 들어가 차를 돌려서 되돌아가는 걸 봤다.
"나 할아버지한테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조이는 이렇게 속삭였다. 엄마는 조이를 돌아보지 않고 가 버렸다.-117쪽

조이는 <수화의 기쁨>을 집으로 몰래 가지고 들어와 침대 발치에 있는 개잎갈나무 서랍장 안 담요 사이에 숨겨 놓았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을 떄는 늘 수화 연습을 했다.
어느 날 창을 마주 보고 침대에 걸터앉아 '위치와 방향'을 수화로 연습하는데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 유리창에 엄마 모습이 비쳤다. 조이의 손이 얼어붙었다. 잠깐 동안 엄마와 조이 둘 다 움직이지 않고 굳은 듯 있었다. 조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엄마가 조이를 노려보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
..
조이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야. 왜 지금까지 잠자코 있다가 이제야 화를 내는 걸까? 그때 조이는 뭔가 깨달았다.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엄마도 조이도 충돌을 두려워했다. 조이보다 엄마가 더 그랬다. 이제는 화를 내고 되는데, 엄마는 화를 꾹꾹 억누르고 상처가 속으로 곪도록 내버려 둔다. 그걸 깨닫고 나니 갑자기 나이가 든 것 같았다. 조이는 록시 생각을 했다.-128쪽

아기 엄마를 보며 입을 열었다.
"전 태어났을 때는 귀가 들렸어요. 그래서 지금도 기억 속의 소리를 마치 듣는 것처럼 착각하지요. 저한테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분어머니는 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고 아버지는 두 살 때 청력을 잃으셨대요. 어머니 식구는 진작에 모두 수화를 배웠고, 결국 아버지도 수화를 배우셨대요. 제 친구는 틀림없이 아줌마가 아기를 위해 선택을 올바로 했다고 말할 거예요."
선생님이 칠판에 이렇게 쓰는 걸 보자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지만 조이는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14.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위해서

수업이 끝나고 아기 엄마가 조이에게 다가와 조이를 끌어안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몇 명 다가와 내 이름은........과 만나서 반가워요를 수화로 했다.-155쪽

이삼 분마다 수카리는 할아버지의 파자마 소매를 살짝 잡아당겨 보고 몸을 기울여 할아버지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조이는 수카리의 허리를 잡고 있었다. 수카리는 할아버지의 속눈썹을 손가락으로 쓸어 보고는 수화를 했다.
거북이 잔다.
조이는 겨우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172쪽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 끔찍한 모습을 도저히 볼 수가 없더라. 차마."
밀러 씨의 눈에 눈물이 고여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도무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아."
밀러 씨는 갑자기 수카리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널 구해 낼 수 있어서 너무 기뻐."
수카리는 잠시 움직이지 않더니 너 착해. 안아줘라고 손짓하고 두 팔을 번쩍 들었다. 조이가 수카리의 말을 통역해 주자 밀러 씨는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수카리가 밀러 씨에게 팔을 두르고 밀러 씨의 등을 두드려 주자 밀러 씨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조금 뒤 밀러 씨는 평정을 되찾고 조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밀러 씨는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머리를 쓸어 넘긴 다음 조이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거기가 문을 닫도록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할게."
밀러 씨는 조이를 살짝 껴안고 서둘러 방에서 나갔다.-291쪽

조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수카리가 죽음이 뭔지 모른다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 반대일 때도 있다. 조이가 사라져버렸다가 다시 돌아왔으니, 찰리 할아버지도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이가 이번에 가 버려도 다시 돌아올 거라고 수카리가 믿으리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수카리가 시간 개념을 알까?-311쪽

내생각
생명은 정말 소중한 것이고 믿음 또한 행복일수 밖에 없다.
조이와 수카리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우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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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2007-01-1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좋은 말이 참 많네요. 이 책 표지가 인상적이라 기억하고 있었는데..
담에 기회되면 읽어봐야겠어요. ^ ^

치유 2007-01-17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꼭 보셔요..옆에 티슈 준비하시구요..^^&
 
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구판절판


정말 대단한 꼬리였다. 집안에 있는 물건으로 무릎 높이보다 낮은 것들은 모두 말리가 휘두르는 거대한 털 방망이에 맞고 나가떨어졌다. 말리는 커피 테이블을 쓸어버렸고, 잡지를 흩어 놓았으며, 사진이 든 액자를 선반에서 떨어뜨렸고, 맥주병과 와인잔을 사방으로 흩뜨리기도 했다. 심지어 프랑스식 창문도 금이 갔다. 바닥에 고정할 수 없는 것들은 모두 이 무시무시한 곤봉의 사정거리 밖 높은 곳으로 피신시켰다. 애가 있는 친구들이 우리 집을 찾아오면 놀라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었다.
"우리 애를 당장 풀어놔도 아무것도 망가뜨리지 못하겠군."-47쪽

거실에 들어서자 마자 멈춰서 버릴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항상 날뛰는 말리가 어깨를 제니 다리사이에 끼고는 큼직하고 뭉툭한 머리를 제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는데 이 꼬리가 우리 두 사람 중하나 아니면 무엇인가를 치지 않은 모습을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눈을 제니 쪽으로 향한 말리는 작은 소리로 낑낑대고 있었다. 제니는 말리의 머리를 몇번 쓰다듬더니 갑자기 얼굴을 말리 목의 두툼한 털가죽에 파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창자를 끊어내듯 격렬하고 멈출 수 없는 흐느낌이었다. 사람과 개는 그런 모습으로 한참 있었다. 말리는 석상처럼 꼼짝 안했고 제니는 마치 거대한 인형처럼 말리를 껴안고 있었다. 나는 마치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엿보기꾼처럼 옆에 서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알수가 없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제니는 얼굴을 들지도 않은채 내 쪽을 향햐 팔을 뻗었고 나는 소파에 앉은 그녀의 몸을 내 팔로 감쌌다. 우리 셋은 그렇게 서로 껴안은 채로 슬픔을 나누었다.-76쪽

어느날 밤 잠자리에 들려고 불을 끄다 보니 말리가 아무데도 없었다. 아기 방에 가보니 패트릭의 요람 옆에 말리가 길게 엎드려 있었고 두 녀석은 행복에 겨운 의좋은 형제들처럼 스테레오로 코를 골고 있었다. 거칠 것 없는 야생마 같은 말리도 힘없고 조그만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듯 했고. 그래서 아기가 옆에 있을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며 아기의 얼굴과 귀를 부드럽게 할아주곤 했다. 패트릭이 기기 시작하자 말리는 바닥에 얌전히 엎드려 패트릭이 등산하듯 제몸을 타고 오르거나 귀를 잡아당기거나 눈을 찌르거나 털을 한 웅큼씩 뽑아내도 얌전히 있었다. 패트릭이 아무리 귀찮게 해도 말리는 끄떡도 하지 않고 마치 석상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말리는 패트릭 주변을 맴돌는 마음 착한 거인이었으며 이제 2등으로 밀려난 것을 기꺼이 받아 들이는 모습이었다.-155쪽

고개를 드니 말리는 우리에게서 3미터쯤 떨어진 곳에 길 쪽을 향해 일찍이 본 적 없는 황소 같은 단호한 자세로 서 있었다. 투사의 모습이었다. 목 근육은 튀어나와 있었고 입은 굳게 다문 모습이었다. 어깨 뼈 위의 털은 곤두섰고 눈은 도로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언제라도 튀어나갈 자세였다 .그 순가간 제니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을 든 범인이 돌아왔다면 먼저 말리를 상대해야 했을 것이다. 말리는 놈이 우리에서 다가오지 못하도록 죽기까지 싸울 것이라는 분명한 믿음이 생겼다. 어차피 나는내 품의 소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감정이 북바친 상태였다 .말리가 그렇게 믿음직하고 단호한 태도로 우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개가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라고? 너무 맞는 말이다.-169쪽

이제 말리의 삶은 덤이었고,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언제라도 또 탈이 날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굳이 몸부림치지 않으려 한다. 그나이에 술을 시키는 것은 잔인한 일이며 솔직히 말해 수술은 말리보다는 제니나 나 자신을 위한것이 되리라. 우리는 그 멍청한 늙은 개를 사랑했고 무수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사랑했으며 아마 결점 때문에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말리를 보낼 때가 다가왔다.-351쪽

내생각
이렇게 애완동물을 통해 온 가족이 기쁨이고 즐거움일수 있다는것..
정말 대단하다.어쩌면 이렇게 사랑이 넘칠수 있는지..
말리는 정말 행복한 그들의 가족구성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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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1-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속삭이신님..흐흑~!!

치유 2007-01-11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참 새해에 들어선 첨 뵙지요??반가워요..13;15속삭이신님..

치유 2007-01-12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