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1-2 산에 올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합니다.(김정은이 BC카드 광고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 라고 한 이후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福)을 좋아합니다. 복을 좋아해서 숟가락에도 젓가락에도 밥그릇에도 국그릇에도 그리고 밥상에도 복자를 새겼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쌀을 이는 용기를 복조리라고 불렀지요. 우리가 성경을 외우기 위해 성경구절을 여기저기에 붙여놓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에 복자를 새겼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중에서 오복을 좋아했습니다. 오복을 좋아해 오복 치약까지 나왔잖아요. 오복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인데 수(壽) 오래 사는 복과 부(富) 부유한 복과 강녕(康寧) 건강하게 사는 복과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복과 고종명(考終命)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오복을 좋아하십니까? 오복은 ‘사람’이 ‘현세’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복입니다. 성경에도 복이 나옵니다. 성경의 복은 오복과 다릅니다. 성경의 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옵니다.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까지를 포함합니다. 물질이 아니라 ‘신앙’적인 복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복은 팔복입니다.

 

팔복은 산상수훈(마 5~7장)의 서두(마 5:1~12)에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 팔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을 산으로 비유한다면 산상수훈은 산봉우리요 팔복은 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부터 마태복음의 엑기스인 팔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5장 1~2절입니다. 1~2절은 산상수훈이라는 산봉우리와 팔복이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매표소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입장할 수 있듯이 1~2절을 이해해야 팔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전후문맥을 살펴봐야 하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을 통해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들의 병과 약함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각종 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께 왔듯이 우리도 문제가 있으면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어디에)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상수훈(팔복)은 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산이 공간적인 배경이죠. 여러분은 산을 좋아하십니까? 저도 산을 좋아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리심 산을 보고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을 보고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보리 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한 장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숫양을 예비하셔서 그것으로 번제를 삼으셨지만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살리셨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죽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는데 천정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그림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세월이 흘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시온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 중에서 다윗의 문 밖에 있는 산인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던 마가의 다락방이 시온 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고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시온 산으로 온다고 생각해 시온 산 방향으로 시신을 묻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온 산을 거룩한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산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생각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유랑할 때 ‘성막’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는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계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강력한 장소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됩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옥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십니까? 어디에서 기도해야 기도가 잘 됩니까? 그곳이 여러분의 ‘산’입니다. 그곳이 성막이고 그곳이 성전입니다. 사람은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듯이 교인은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해야 통화할 수 있듯이 교인도 신앙을 충전해야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하고 신앙도 충전하십시오.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가지십시오.

 

(어떻게) 예수님은 산에서 앉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는 앉아서 가르치고 학생은 서서 들었습니다. 랍비가 앉았다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었다는 중요한 말씀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치다는 동사는 미완료 시제로 예수님은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입을 연다는 표현이 4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어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어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 집사는 입을 열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입을 열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게 설교했습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12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무리는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리가 되기보다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를 구경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가길 바라십니다. (이단들은 이단숫자가 144,000명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말하는데 144,000은 실제숫자가 아니라 상징숫자입니다. 구약 12지파에 신약 12 제자를 곱하면 144가 나옵니다. 여기에 완전수인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들의 수입니다.)

 

(무엇을)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라고 말씀하셨고 여덟 번째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복의 처음도 끝도 천국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수미상관이라고 하는데 천국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팔복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천국의 왕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2:2) 고 물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유대인의 왕 예수’(마27:37) 란 죄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왕으로서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살려면 팔복을 알아야 합니다. 팔복에는 천국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팔복의 세계로 들어오십시오. 우리 팔복을 배워 이 땅을 천국처럼 살아가십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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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11(1~20) 구주가 나셨으니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죠.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는 나오지만 날짜는 나오지 않습니다.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힌트는 나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켰다고 나오는데 이스라엘은 10월부터 3월까지는 비가 오는 우기라 들에서 양을 치지 않았습니다. 4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라 양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양을 칠 때 태어나셨으니 봄에서 가을 사이에 태어나신 겁니다. 이단들이 역사적인 근거를 가지고 공격하면 신실한 교인들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12월 25일이 성탄절이 되었을까요? 성탄절은 로마제국이 12월 24일부터 다음 해 1월 6일까지 지키던 동짓날 축제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제국은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지켰습니다. 로마제국이 태양을 숭배할 때는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교인들을 경기장에 모아놓고 굶주린 사자들로 위협했습니다. 교인들이 배교하면 살려두고 신앙을 지키면 사자를 풀어주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스틸야드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듯이 관중석에서 교인들이 사자 밥이 되는 장면을 구경했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로마제국이 서로마와 동로마로 분열되고 정황제와 부황제가 생겼는데 서로마제국의 부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정황제의 아들인 막센티우스와 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종교인 태양신에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하늘에서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방패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문양을 새겼고 전쟁에서 승리해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황제가 됐다고 믿고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신에게 기도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하셨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신실할 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고 하나님은 콘스탄티누스를 도우셨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기도하는 어머니가 아들을 훌륭한 인물로 키우더라고요. 이처럼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 공인을 받게 되자, 로마교회는 335년(354년?) 경 기독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로 태양의 탄생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바꿨습니다. 로마제국의 최대의 명절이 기독교의 최대의 명절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성탄절도 서유럽과 동유럽이 날짜가 다릅니다. 그레고리력을 사용하는 서유럽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나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는 동유럽은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성탄절은 언제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무슨 날인가가 중요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2장 1~18절과 누가복음 2장 1~20절 두 군데서 나옵니다. 마태복음은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아기께 경배하러 오고 헤롯왕은 다른 가문에서 왕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베들레헴 주변에 사는 2살 이하의 아기들을 무참히 학살한다는 내용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만왕의 왕으로 나셨지만 자기 백성이 배척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아기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지만 천사들의 찬송을 받고 목자들의 경배를 받을만한 메시야라는 내용합니다. 저는 누가복음을 중심으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님인 요셉과 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북부인 갈릴리 지방 나사렛 마을에서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부인 유대지방 베들레헴 마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0Km 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걸어서 사나흘 정도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사렛에서 태어나지 않고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까요? 인구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세금을 징수할 목적으로 모든 남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인구조사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황제가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입니다. 요셉은 나사렛에서 살았지만 베들레헴이 고향이었습니다. 요셉은 만삭인 마리아를 나귀에 태우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걸어갔습니다. 저도 결혼은 대구에서 했는데 혼인신고는 논산에 가서 했습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미가서 5장 2절을 통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고 예언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태어나셨다면 구약성경의 예언이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메시야는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의 예언을 성취하시려고 로마제국을 사용하셔서 나사렛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를 베들레헴으로 보내셨습니다. 로마제국이 아니었다면 요셉과 마리아는 유산의 위험을 무릎 쓰고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가지 않았을 겁니다. 하나님은 악한 정부를 사용하셔서도 선한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방에서 태어나지 않고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을까요? 여관방(손님 방 또는 남는 방)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천신만고 끝에 베들레헴에 도착해 보니 인구조사를 하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여관방이 가득 찼습니다. 1월 1일이 되면 동해안에도 해돋이를 보려고 관광객이 몰려들잖아요. 설상가상으로 마리아가 산통을 시작하였습니다. 방은 없지 마리아는 몸을 풀려하지 난감하였습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딱한 사정을 보고 누군가 마구간을 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시골집은 방 하나를 나누어 사람과 짐승이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시골집도 부엌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은 부엌으로 한쪽은 외양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여물통)에 눕혔습니다. 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실 때 가난한 사람들이 짐승들과 더불어 사는 마구간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화려한 왕궁에서 태어나셨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게 하시어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누구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을까요?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율법을 연구하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아니라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습니다. 목자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천한 직업이었습니다. 도둑처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깨어 있었습니다. 부유하고 유식하고 고귀한 종교지도자들은 자고 있었지만 가난하고 무식하고 비천한 목자들은 양떼를 지키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 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가복음 13장 33절에서 37절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깨어있어라’ 고 당부하셨습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돌보기 위해 깨어있었듯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해 깨어 있어라 고 말씀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겁니다. 그러면 천사들이 깨어 있는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듯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실 겁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일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기 위해 깨어있는 날입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또 하나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듯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지키신다고 말씀합니다. 삯꾼 목자는 양떼를 버리지만 선한 목자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는 깨끗하게 씻어졌습니다. 연약한 양떼가 목자를 의지해서 살듯이 성탄절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가 예수님을 목자로 삼는 날입니다. 그러면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더라도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십니다. 성탄절의 참 의미가 새겨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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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5:1-2 산에 올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인사합니다.(김정은이 BC카드 광고에서 ‘여러분 부~자 되세요.’ 라고 한 이후 달라졌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福)을 좋아합니다. 복을 좋아해서 숟가락에도 젓가락에도 밥그릇에도 국그릇에도 그리고 밥상에도 복자를 새겼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 쌀을 이는 용기를 복조리라고 불렀지요. 우리가 성경을 외우기 위해 성경구절을 여기저기에 붙여놓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에 복자를 새겼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 중에서 오복을 좋아했습니다. 오복을 좋아해 오복 치약까지 나왔잖아요. 오복은 중국의 고전인 [서경]에 나오는 다섯 가지 복인데 수(壽) 오래 사는 복과 부(富) 부유한 복과 강녕(康寧) 건강하게 사는 복과 유호덕(攸好德) 덕을 좋아하고 베푸는 복과 고종명(考終命) 깨끗한 죽음을 맞이하는 복을 말합니다. 여러분도 오복을 좋아하십니까? 오복은 ‘사람’이 ‘현세’에서 누리는 ‘물질’적인 복입니다. 성경에도 복이 나옵니다. 성경의 복은 오복과 다릅니다. 성경의 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옵니다. 현세만이 아니라 ‘내세’까지를 포함합니다. 물질이 아니라 ‘신앙’적인 복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복은 팔복입니다.

 

팔복은 산상수훈(마 5~7장)의 서두(마 5:1~12)에 나옵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르침이 팔복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을 산으로 비유한다면 산상수훈은 산봉우리요 팔복은 정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부터 마태복음의 엑기스인 팔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5장 1~2절입니다. 1~2절은 산상수훈이라는 산봉우리와 팔복이라는 정상에 오르기 위한 매표소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 입장할 수 있듯이 1~2절을 이해해야 팔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는 전후문맥을 살펴봐야 하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4장 23절을 통해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들의 병과 약함을 고치셨습니다. 그러자 각종 병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병자들이 예수님께 왔듯이 우리도 문제가 있으면 예수님께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어디에)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상수훈(팔복)은 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산이 공간적인 배경이죠. 여러분은 산을 좋아하십니까? 저도 산을 좋아합니다. 성경에서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시내 산에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리심 산을 보고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을 보고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보리 산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한 장소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바로 그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숫양을 예비하셔서 그것으로 번제를 삼으셨지만 예수님은 어린양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살리셨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죽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는데 천정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는 그림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내주셨습니다.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반드시 해결해 주십니다. 세월이 흘러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을 시온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시온 산은 예루살렘 성전 중에서 다윗의 문 밖에 있는 산인데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가지셨던 마가의 다락방이 시온 산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다윗의 무덤이 있고 베드로 통곡교회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시온 산으로 온다고 생각해 시온 산 방향으로 시신을 묻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시온 산을 거룩한 장소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산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로 생각했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유랑할 때 ‘성막’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는 ‘성전’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계시기 때문에 예배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가정도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지만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강력한 장소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이 자리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잘 됩니다.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 기도하고 이 자리에서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옥상에서도 하나님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십니까? 어디에서 기도해야 기도가 잘 됩니까? 그곳이 여러분의 ‘산’입니다. 그곳이 성막이고 그곳이 성전입니다. 사람은 공기를 마셔야 살 수 있듯이 교인은 하나님을 만나야 살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해야 통화할 수 있듯이 교인도 신앙을 충전해야 교회 다닐 수 있습니다. 휴대폰도 충전하고 신앙도 충전하십시오.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를 가지십시오.

 

(어떻게) 예수님은 산에서 앉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는 앉아서 가르치고 학생은 서서 들었습니다. 랍비가 앉았다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었다는 중요한 말씀을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치다는 동사는 미완료 시제로 예수님은 반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입을 연다는 표현이 4번 나옵니다. 예수님이 입을 열어 산상수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입을 열어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빌립 집사는 입을 열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는 입을 열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게 설교했습니다.)

 

(누구에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은 12 제자들입니다. 제자는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무리는 병을 고치려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리가 되기보다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십자가를 구경하기보다 십자가를 지고 가길 바라십니다. (이단들은 이단숫자가 144,000명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말하는데 144,000은 실제숫자가 아니라 상징숫자입니다. 구약 12지파에 신약 12 제자를 곱하면 144가 나옵니다. 여기에 완전수인 1,000을 곱하면 144,000이 됩니다. 144,000은 하나님의 완전한 백성들의 수입니다.)

 

(무엇을) 예수님은 천국을 가르치셨습니다. 팔복의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 라고 말씀하셨고 여덟 번째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10) 고 말씀하셨습니다. 팔복의 처음도 끝도 천국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수미상관이라고 하는데 천국이 팔복의 핵심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의 핵심은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팔복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천국의 왕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2:2) 고 물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유대인의 왕 예수’(마27:37) 란 죄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왕으로서 천국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천국처럼 살려면 팔복을 알아야 합니다. 팔복에는 천국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팔복의 세계로 들어오십시오. 우리 팔복을 배워 이 땅을 천국처럼 살아가십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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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4:23 그리스도처럼

 

지난 주일인 12월 4일 오후 5시 20분쯤 검정색 정장을 입은 60대 초반의 남성이 서울 명동 우리은행 앞 구세군 자선냄비에 하얀 봉투를 넣었습니다. 그 봉투에는 1억 1천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구세군이 1928년부터 거리 모금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항상 좋은 일을 하시는 구세군께 존경을 표합니다. 제 작은 성의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소외된 어르신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라는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훈훈하다. 가슴이 찡해져. 구세군 냄비에 1억 수표를 넣을 때 그 분 심정은 어땠을까? 남을 위하는 마음이 대단하다. 나를 돌아보게 됐다. 구세군 냄비에 1억 수표는커녕 100원도 안 넣었다. 1000원도 아까워서 벌벌 떨었는데 이제 나도 기부해야지.” 라며 칭찬했습니다. 구세군은 12월이 되면 존재감이 드러납니다. 구세군은 기독교의 작은 교파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저는 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 1829-1912)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을까를 살펴보려고 합니다.(신약성경에는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전치사가 8개 있는데 오늘은 여덟 번째 전치사로 ‘Like Christ’ 그리스도처럼 을 다루고자 합니다.)

 

 

윌리엄 부스는 1829년 4월 10일 다섯 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부스의 아버지는 형식적인 교인이었지만 어머니는 신실한 교인이었습니다. 부스는 어머니에게서 신앙적인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위인들은 어머니에게 신앙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어머니 수잔나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들이여, 자녀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십시오!) 부스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전당포에서 일했습니다. 부스는 영국 성공회를 다녔지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다 14살 때(1843년) 회심을 체험합니다. 부스는 친구에게 값싼 물건을 싸게 파는 것처럼 팔면서 이익을 남겼는데 친구가 고맙다고 은제필통을 선물하자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부스는 교회에서 회개 기도를 하고 친구에게 은제필통을 돌려주었는데 무거운 죄의 짐이 벗어지면서 마음에 평화가 몰려왔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은혜의 문이 열립니다. 죄를 설거지하시고 은혜를 담으십시오.) 부스는 얼마 후 감리교회 부흥강사인 제임스 코휘(James Caughey)의 설교에 큰 감명을 받아 ‘영혼의 구원’ 이 가장 위대한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스는 23세가 되던 생일부터 전당포를 그만 두고 감리교회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캐서린(Catherine Mumford)을 만납니다. (부스가 세상일을 포기하자 하나님이 평생의 동지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포기하면 하나님이 주십니다.) 부스는 26세(1855년)에 캐서린과 결혼합니다. 부스의 아내 캐서린은 신앙적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캐서린의 어머니는 성경과 기도의 중요성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쳤고 성결, 절제, 죄의 고백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교회 석유난로에는 건전지가 2개 들어가는데 불이 켜지지 않아 1개를 교체했더니 불이 켜지더라고요. 한 사람이 신앙이 약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강하면 좋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부부가 다 열심히 하면 좋지만 그게 안 된다면 한 사람이라도 가정의 파수꾼이 돼야 합니다.) 부스는 감리교회 전도사로 가는 곳마다 교회를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27세에 감리교회 순회전도자가 됩니다. 그러나 부스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 순회전도자 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부스는 감리교회에서 목회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자 32세(1861년)에 감리교를 떠나 ‘기독교 부흥회’ 를 만듭니다. (부스가 감리교회에 머물렀다면 대형교회 목사가 됐을 겁니다. 그러나 감리교회를 떠나자 구세군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일이 막힌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부스는 궁핍, 무지, 재난으로 가득 찬 런던 빈민가에서 복음을 전했고 집회 장소가 없어 마구간, 돼지우리, 노름방, 극장, 상점 등에서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설교를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먹이가 있으면 물고기가 몰려들 듯이 생명의 말씀이 있으면 영혼들이 몰려들 겁니다. 우리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부스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을 기존 교회로 돌려보냈는데 기존교회가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을 환영하지 않자 몇 년 후에 따로 예배처소를 만들게 됩니다. 이게 구세군의 탄생이 되었습니다. 구세군은 1965년에 탄생합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영국 성공회에서 목회할 수 없게 되자 노방전도를 합니다. 그게 감리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감리교회도 구세군도 노방전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부스는 성경, 전도지, 책자 등을 전도용으로 팔았고 부인회, 성경반, 야학 등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일학교와 주간학교도 세웠고, 작은 저축은행을 만들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부스는 복음도 전했고 사회사업도 했습니다. (교회는 선교도 하고 복지도 해야 합니다. 선교관 옆에 복지관도 지어야 합니다.) 부스는 노방전도를 한지 13주년이 되는 해 49세(1878년)에 기독교 선교회를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으로 명칭을 바꿉니다. 선교회원들은 부스를 ‘대장’ 이라고 불렀고 구세군은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공격단체요 죄의 노예에서 사람을 해방하는 군대가 되었습니다. 부스가 51세(1880년)가 되던 해 구세군은 군복을 입고 계급과 군기를 만들고 하나님의 영적인 군대가 되었습니다. 구세군이 눈부시게 부흥하고 발전하자 영국사회는 싸움이 줄어들어 재판이 감소했고 술을 마시지 않아 술집이 문을 닫았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저절로 성시화됩니다.) 그러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구세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악한 마귀가 발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구세군 건물과 비품을 파괴하였고 구세군 군인들은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구세군은 박해를 받을수록 부흥했습니다. 드디어 박해는 사라지고 구세군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박해는 키질입니다. 키질을 하면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되듯이 교회는 박해를 받으면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마귀는 부흥하는 교회를 괴롭힙니다.) 구세군은 세계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인도, 스웨덴, 캐나다, 미국, 호주, 일본 등에 구세군을 세웠고 1908년에는 한국에도 구세군을 세웠습니다. 부스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순회하며 선교여행을 다녔습니다. 부스는 “가라! 영혼에게로, 극악한 자에게로”(막15:15) 라는 말을 자주하였고 최대의 소원이자 포부는 세계를 선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세군은 오늘날 세계 121개국에 퍼졌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소원도 예수님처럼 부스처럼 선교가 돼야 합니다.) 부스의 아내 캐서린은 암 투병 중에도 복음을 전하다 1890년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부스는 아내보다 22년을 더 사역했습니다. 부스는 83세 생일을 마지막으로 사역에서 물러났습니다. (부스는 생일에 사역을 시작해 생일에 사역을 마쳤습니다.) 부스는 말년에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실명이 됐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걱정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계란 반찬이 나오자 “많은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어떻게 나만 계란을 먹을 수 있겠느냐?” 며 계란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부스는 83세(1912년 8월 20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스는 장수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장수했습니다. 88세에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스는 4월 10일에 태어나 8월 20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셨고, 백성들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마4:23,9:35) 부스도 예수님처럼 3가지 사역을 했습니다. 부스는 천국 복음을 전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집회장소가 없어 천막, 마구간, 돼지우리, 노름방, 극장, 상점 등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려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나팔수입니다. 나팔수가 나팔을 불지 않는다면 어떻게 전쟁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도구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는 말도 나오고 복음도 나와야 합니다./ 부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부스는 부인회, 성경반, 야학 등을 시작했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일학교와 주간학교를 열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려면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가르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어린 시절에 신앙생활을 해야 어른이 돼서도 신앙 생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무리가 아니라 예수님을 전하는 제자가 돼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학교 교사가 되고 속회 인도자가 돼야 합니다./ 부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봤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저축은행을 만들었고 실직자들이 직장을 구할 수 있도록 노동교환 서비스센터를 열었습니다. 구세군은 지난해 자선냄비를 통해 33억 7천만 원을 모금해 소외된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행정안전부의 검증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겨울은 구세군의 자선냄비로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려면 영혼과 육신을 돌봐야 합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부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소액기부라도 해야 합니다. 저는 할렐루야 축구팀을 소액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부스처럼 천국복음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도 가르치고, 영육도 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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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5:14-15 그리스도를 위해

중국 진(晉) 나라에 살았던 위무(魏武)라는 사람은 병에 걸리자 아들 위과(魏顆)에게 자기가 죽으면 자신의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키라고 유언하였습니다. 그러다 죽기 얼마 전에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그 여인을 순장시키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위과는 부친이 죽은 후 서모(庶母)를 순장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개가시켰습니다. 얼마 후에 전쟁이 일어나 위과가 위험에 처했는데 적장이 풀에 걸려 넘어지면서 위과가 전공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 위과의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의 딸을 순장시키지 않고 출가시켜 준 은혜를 이제야 갚았다고 말했습니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이란 사자성어의 유래입니다. 결초보은은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는다는 뜻입니다. 노인이 풀을 묶어 은혜를 갚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피 흘리고 돌아가셨으니 결초보은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신약성경에는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전치사가 8개 있는데 오늘은 일곱 번째 전치사로 ‘For Christ’ 그리스도를 위해 를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 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린도후서 5장 14절 하반 절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 개역개정판에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라고 번역하였지만 미국 NIV 에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여기서 한 사람은 예수님이고 모든 사람은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대신 죽으셨습니까? 하나님은 로마서 5장 18절 전반 절을 통해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이 죄를 지으므로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죄와 정죄와 사망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로마서 5장 18절 하반 절을 통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 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돌아가시므로 모든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의와 구원과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 북부지방에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로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폭우가 내려 급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철교가 끊어졌습니다. 다음 날 양치기 소년이 다리가 끊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저쪽에서 기차가 하얀 연기를 내품으며 칙칙폭폭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웃옷을 벗어서 흔들며 기차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기관사가 소년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끼익’ 밟았지만 소년을 덮친 뒤에야 멈췄습니다. 소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새빨간 피가 철로를 흥건히 적셨습니다. 기관사가 안타까워하는데 급류소리가 들리면서 끊어진 철교가 보였습니다. 소년은 승객을 살리고 자신은 죽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우리가 살게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우리도 죽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에 동참했습니까? 세례를 통해 동참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6장 3절을 통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강에 가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가 물속에 잠깁니다. 물에 빠지면 죽듯이 그의 죄도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러분은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의 죄도 죽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서 죄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종이 아닙니다. 죄의 종이 아니니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죄와 하나님은 반대편에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났음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듯이 우리도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부활에 동참하게 됩니까?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6장 5절을 통해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으면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의 죄는 죽고 우리의 의는 살게 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 죽었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불의의 무기로 드리지 말고 의의 무기로 드려야 합니다.(롬6:13)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이켰으면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음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부터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노인이 자기 딸을 살려줬더니 결초보은한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살려주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린도후서 5장 15절을 통해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면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죽으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야지 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달 23일 외교통상부에서 이태석 상을 수여했는데 제1회 수상자로 통합 측 의료선교사인 이재훈 선교사가 수상했습니다. 이태석 상은 다큐영화 ‘울지마 톤즈’ 를 통해 소개된 고 이태석 신부를 기리기 위해 외교통상부에서 제3세계 의료봉사자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저는 인터뷰를 읽으면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이재훈 선교사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에게 처음 용돈을 받아 성경책을 샀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사도행전 16장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는 구절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물질을 사용합니다. 사용하고 남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기 전에 구별해서 드립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물질의 우선순위를 두십시오. 이 선교사는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와 누가 먼저 불교집안인 가족을 구원하는지 내기를 했는데 졌다고 합니다. 이 선교사는 믿음이 부족해서 졌다고 생각하고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고려대 의대를 진학했고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 외과를 전공합니다. 우리나라는 흉부외과와 외과와 산부인과 전공의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대학원은 고려대가 아니라 선교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연세대로 옮겼습니다. 고대와 연대는 라이벌이라 다른 학교로 옮기지 않는데 이 선교사는 선교를 위해 학교를 옮겼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레지던트 훈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진로를 결정합니다. 자신의 출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잘 하기 위해 직업을 선택합니다. 유대인은 조국이 부르면 언제라도 달려가기 위해 보석상이나 부동산을 하지 않고 과일 장사나 생선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을 위해 진로를 선택하십시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 일하기 위해서 일하십시오. 이 선교사는 2001년에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영국에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2005년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요청으로 ‘이톨로시 국립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며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MK뉴스 12월 3일)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위해 고된 훈련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고 고된 훈련을 이겨냅니다. 해병대 교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미숙한 목사와 교사는 미숙한 교인과 학생을 만듭니다. 우리교회는 새가족 훈련과 제자훈련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해병대 교인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강한 군사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우리를 위해 살아나셨습니다. 노인이 풀을 묶어 은혜를 갚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위해 결초보은 합시다. 예수님을 위해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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