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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23:6-8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여러분 명절 잘 쇠셨습니까? 저도 잘 쇘습니다. 우리나라는 설날과 추석이 큰 명절이지만 이스라엘은 유월절(무교절)과 맥추절과 초막절이 큰 명절이었습니다. 명절이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모님을 찾아갑니다. 우리나라의 명절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조상을 숭배하기 위해서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명절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유월절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명절입니다.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1월 14일이 유월절입니다. 오늘 말씀드릴 무교절은 유월절 다음 날부터 1주일간입니다.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1월 15일부터 21일까지가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누룩을 넣지 않는 떡(빵) 다시 말해 무교병을 먹는 명절입니다. 무교절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명절입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붙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명절을 한 명절처럼 지켰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애굽(이집트)을 탈출하면서 생겼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셉이 국무총리로 있을 때 초청 비자를 얻어 애굽으로 이민을 갔는데 왕조가 바뀌면서 손님에서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학대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 바로(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바로는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9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가 고집을 꺾지 않자 하나님은 10번째 재앙으로 사람과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죽이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흠 없고 일 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향기가 나는 우슬초 묶음에 적셔서 좌우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면(출12:5-7,22)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12:13,23,27) 유월절이란 하나님께서 넘어가시겠다는 말씀에서 유래했습니다. 숫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의 장자는 위로는 바로에서부터 아래로는 몸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장자는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유월절은 숫양의 피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살렸듯이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살렸다고 알려주는 명절입니다.

유월절 다음 날부터가 무교절인데 장자가 죽자 바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애굽을 떠나라고 지시했습니다. 가축도 가져가라고 허락했습니다.(출12:31-32) 끝까지 버티던 바로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로가 번개 불에 콩 볶아먹듯이 급하게 내보냈기 때문에 빵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킬 시간도 없이 서둘러서 탈출했습니다. 무교절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탈출하면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은 데서 유래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하루와 무교절 7일을 합해 총 8일 간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누룩은 음식을 발효시킵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은 아무 맛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이 음식을 발효시키는 것을 보고 음식을 변질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기억나십니까? 어떤 제사를 드릴 때 누룩을 넣지 않았죠? 소제를 드릴 때 누룩을 넣지 않았습니다.(레2:4) 소제를 드릴 때는 음식을 변질시키는 누룩은 넣지 않고 음식을 보존시키는 소금은 넣었습니다. 예수님도 누룩을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누룩(마16:6,12) 다시 말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누룩을 경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악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고전5:6,갈5:9)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을 죄라고 생각했습니다.

무교절은 예수님과의 교제를 상징하는 명절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연애하는 동안 딴눈을 팔지 않고 서로에게 충실하듯이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는 동안 누룩을 없애야 죄를 없애야 한다고 알려주는 명절입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통해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무교절을 통해 죄를 버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속담처럼 작은 죄라고 우습게 여겼다간 우리의 영혼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룩이 우리 몸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성령님이 머무는 거룩한 전 다시 말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전서 6장 19-20절을 통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몸은 우리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핏값을 주시고 사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우리 몸은 예수님의 몸인데 우리가 술을 마신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취해서 비틀 비틀거립니다. 우리가 담배를 피운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매워서 콜록 콜록거립니다. 우리가 바람을 피운다면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땅을 치며 탄식합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몸을 죄를 저지르는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의의 병기로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룩이 우리 가정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은 성령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전 다시 말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최초의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 하나를 취해 살을 채우시고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다시 말해 가정을 이루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3:24) 사탄은 가정을 깨뜨리기 위해 발악을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됩니다. 사탄은 하와를 유혹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게 했고, 하와는 아담을 유혹해서 그 열매를 따 먹게 했습니다.(창3:6)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습니다. 가정이 파괴되면 사회도 파괴됩니다. 세상을 어지럽힌 사람들 대부분은 결손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가정을 허물려는 사탄의 공격을 방패기도로 막아야 합니다. 먹고 노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기도하는데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어떤 원로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똑같은 목사라도 부모님이 기도를 많이 하신 목사님은 위기를 쉽게 극복하더라고요. 우리의 기도는 보험과 같아서 평소에는 모르지만 위기가 닥쳤을 때 빛을 발합니다. 기도로 가정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누룩이 우리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성령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전 다시 말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전서 3장 16절을 통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성전입니다. 사탄은 잘못된 가르침으로 성전을 더럽히려고 기회를 노립니다. 요즘 가장 위험한 이단은 구원파와 신천지와 안상홍 증인회입니다. 대전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님은 구원파는 교묘하고, 신천지는 악랄하고, 안증회는 황당하다고 하더군요.(기독교타임즈 2009년 1월 3일자) 이단은 성경과 다른 교리를 가르치는 개인이나 단체가 이단이고, 사이비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비윤리적인 언행을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사이비입니다. 신천지는 교회 안에 침투해 교회를 어지럽히는 미꾸라지 같은 이단입니다. 어떤 분이 그러시는데 신천지가 지금 포항시내 각 교회에 스며들어 교회를 쓰러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나 깨나 이단을 조심해야 합니다. 깨끗한 물에 먹물이 한 방울만 떨어져도 더러운 물이 되듯이 거룩한 교회에 이단이 침투하면 교회가 혼탁해 집니다. 하나님은 유월절 통해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무교절을 통해 죄를 버리고 예수님과 교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교제하려면 신앙도 거룩해야 하고 인격도 거룩해야 합니다. 두 기둥 중에 한 기둥이라도 쓰러지면 집은 무너지게 됩니다. 누룩을 없애십시오. 죄를 멀리하십시오. 빛이 어둠과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죄와 공존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몸과 가정과 교회에 누룩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아내십시오. 죄가 틈타지 못하도록 막으십시오. 무교절에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듯이 예수님과 교제하려면 죄를 멀리해야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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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23:4-5 그가 죽고 우리는 살고

이제 며칠 후면 설날입니다. 명절이 가까워 오면 주부들은 명절증후군을 겪게 됩니다. 음식도 장만해야지 설거지도 해야지 명절이 되기 전부터 마음은 무겁고 몸은 피곤해 집니다. 거기다 동서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을 빚거나 시어머니가 지혜롭지 못하다면 그 증상은 더 심해집니다. 차라리 명절이 없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거기다 신앙적인 스트레스도 겪습니다. 시댁이 제사를 지낸다면 참석하자니 신앙을 저버리는 것 같고 참석하지 않자니 시부모들이 싫어할 것 같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됩니다. 이번 명절도 무사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도 명절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설날과 추석이 큰 명절이지만 이스라엘은 유월절(무교절)과 맥추절과 초막절이 큰 명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명절은 조상을 숭배하는데 있지만 이스라엘의 명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명절을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의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은 유월절을 다루고자 합니다. 유월절은 우리나라의 설날과 광복절을 합친 명절입니다. 설날도 큰 명절이고 광복절도 큰 경축일인데 이것을 합쳤으니 얼마나 큰 명절이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음력 1월 1을 설날로 지킵니다. 양력으로는 2월 3일이 설날입니다.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1월 14일을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양력으로는 4월 14일이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지금으로부터 3천 3백에서 3천 5백 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살았는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어 아버지와 형제들을 먹을 것이 많은 애굽으로 초청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 이주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자리를 잡으면 다른 가족들을 초청해서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야곱 가족이 손님 비자를 얻어 애굽으로 이민을 갔는데 왕조가 바뀌면서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왕조의 충신들은 조선왕조가 되면서 역적이 됐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을 보냈습니다.(출12:40) 처음에는 70명이었는데(창46:27) 나중에는 60만 3천 5백 5십 명으로 늘었습니다.(민1:46)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하게 부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구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애굽 왕 바로(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바로는 터무니없다고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고집을 꺾기 위해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바로는 9가지 재앙을 당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열 번째 재앙으로 사람이나 짐승의 처음 난 것을 죽이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흠 없고 일 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향기가 나는 우슬초 묶음에 적셔서 집 좌우 문설주와 문인방에 바르면(출12:5-7,22)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가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12:13,23,27) 유월절이란 하나님께서 넘어가시겠다는 말씀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어로는 유월절을 Passover라고 하는데 pass over 넘어가다는 뜻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애굽의 장자는 죽였지만 피를 바른 이스라엘의 장자는 죽이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바로는 그제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나라고 지시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영원히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12: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양이나 염소를 구워먹었습니다.(출12:8) 양 한 마리당 10명에서 20명이 먹었기 때문에 이웃집과 함께 먹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무교병도 먹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는 빵입니다. 아무 맛도 없는 비스킷입니다. 애굽을 탈출할 때 빵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킬 시간도 없이 급박하게 탈출했다는 의미였습니다.(출12:8,39) 유월절에는 쓴 나물도 먹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았던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출12:8) 백령도에 근무하는 해병대는 빨리 출동하기 위해 군화를 신고 자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빨리 탈출하기 위해 허리띠를 매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하게 먹었습니다.(출12:11)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유월절을 세 번 지키셨다고 말씀합니다.(요2:13,6:411:56,12:1) 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예수님이 3년간 사역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셨는데 그 날이 유월절 전날 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전날 밤에 유월절 식사를 하는데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눠주셨습니다.(마26:26) 떼어서 준 것은 부서뜨려서 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서뜨린 떡이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27)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부서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잔을 가지고 감사기도 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예수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26:28)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흘린 피는 새 언약의 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짐승의 피로 옛 언약을 맺으셨는데 예수님은 제자들과 예수님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을 대체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옛 언약을 따라 짐승을 제물로 드렸을 겁니다.

유월절은 하나님이 제정하셨고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셨는데 사도 바울은 유월절 어린양은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말씀했습니다.(고전5:7) 유월절에 어린양이 피를 흘리고 죽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렸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명절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우리들의 명절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유월절 때 흠 없고 일 년 된 숫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그 집을 넘어갔듯이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을 믿는다면 우리는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짐승의 피로도 사람들을 살렸는데 예수님의 피로는 우리를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하시겠습니까? 어떤 분의 간증을 읽었는데 빗길을 운전하다가 앞차가 멈춰있어 급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천사가 용을 쓰면서 차를 막아 부딪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를 지켜줍니다./ 첫 번째 유월절 때 양의 뼈를 꺾지 않았듯이 십자가에 달린 다른 강도들은 죽지 않아 뼈를 꺾였지만 우리 예수님은 빨리 돌아가셔서 뼈는 상하지 않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손에 못자국과 옆구리에 창자 국을 보여주셨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 때 사흘 간 흑암이 임했듯이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 때 양의 피를 우슬초 묶음에 적셔서 좌우 문설주와 문 인방에 발랐듯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달아 예수님의 입에 갖다 댔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곧 예수님이셨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는데 노르웨이의 어떤 마을에 있는 교회 종탑에는 십자가와 함께 양조각상이 걸려 있다고 합니다. 관광객이 이유를 물었더니 그 교회를 건축하다가 교인이 종탑 위에서 떨어졌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양떼 위에 떨어져 양은 죽었지만 그 교인은 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십자가 옆에 양조각상을 세웠다고 합니다. 구약은 양이 죽어 사람이 산 것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죽어 우리가 산 것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우리가 살아났다고 알려주는 명절입니다.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애굽 사람들은 장자를 잃었지만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자가 살았듯이 우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을 믿는다면 죽지 않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 보혈을 바르고 이번 주도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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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5:16 오분의 일을 더하여

사람에게는 오장과 육부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장기는 심장입니다. 심장은 자기의 주먹만 한 크기지만 사람 몸에 퍼져있는 8만 킬로미터의 혈관에 피를 순환시킵니다. 심장이 피를 빨아들이고 내보내고 펌프질을 해야 피가 온몸을 돌면서 산소를 전달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다른 영양분을 공급해 사람이 살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심장이 중요하듯이 성경은 레위기가 중요합니다. 레위기에서 피의 의미를 설명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피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지금 카타르에서 아시안 컵 축구를 하는데 골인이 되면 그 순간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보여주듯이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을 여러 각도에서 다시 보여줍니다.

오늘은 다섯 번째 날로 속건제입니다. 속건제는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도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바치는 제사이고 속건제도 실수로 죄를 지었을 때 바치는 제사인데, 속죄제는 죄를 씻는 정결제라면 속건제는 손해를 갚아주는 배상제입니다. 고의로 지은 죄는 번제인데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습니다.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소제는 다른 제사를 드릴 때 함께 드렸습니다. 화목제는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드리고, 나머지를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제물을 달리 드렸습니다. 다른 제사는 번제단에서 제물을 불살랐는데 속죄제물은 진영 바깥에서 불살랐습니다. 속죄제물을 진영 바깥에서 불태웠듯이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 바깥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성 바깥으로 가져나가 완전히 없애셨습니다.

속건제는 여호와의 성물을 실수로 건드렸을 때 드렸습니다.(레5:15) 하나님은 레위기 5장 15절을 통해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속건제를 드리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성물은 제사장이 가져야 할 부분을 일반인이 가져가거나,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했다가 지키지 않은 경우에 바쳤습니다. 속건제를 드릴 때는 제사장에게는 원래 금액과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드렸고, 하나님께는 흠 없는 숫양을 바쳤습니다. 우리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했는데 원래 금액 100%에 오분의 일 20%를 더하고 숫양 한 마리를 추가로 바치다 보니 정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컸습니다. 속건제는 하나님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콜게이트 치약을 아십니까? 윌리엄 콜게이트는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고 정확하게 드리고자 돈을 버는 즉시 십분의 일을 떼어 오른쪽 주머니에 넣었다고 합니다. 콜게이트는 “나는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담는다.”고 말했습니다. 회사원은 월급명세서가 나오기 때문에 정확하게 드릴 수 있지만 자영업자는 수입이 생기는 즉시 떼놔야 합니다.

속건제는 사람에게 실수로 손해를 끼쳤을 때도 드렸습니다.(레6:2-3) 하나님은 레위기 6장 2-3절을 통해 “누구든지 여호와께 신실하지 못하여 범죄하되 곧 이웃이 맡긴 물건이나 전당물을 속이거나 도둑질하거나 착취하고도 사실을 부인하거나 남의 잃은 물건을 줍고도 사실을 부인하여 거짓 맹세하는 등 사람이 이 모든 일 중의 하나라도 행하여 범죄하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웃의 물건을 도둑질하거나 남의 물건을 줍고도 돌려주지 않으면 주인에게는 원래 물건과 거기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돌려주었고 하나님께는 흠 없는 숫양을 바쳤습니다. 속건제는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올해 돈을 두 번 주웠습니다. 얼마나 주웠을까요? 20원을 주었습니다. 이런 경우 주인에게는 20원과 거기에 20%인 4원을 보태 24원을 돌려주고 하나님께는 숫양을 바쳐야 합니다. 예수님이 피를 흘려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숫양을 바쳐야 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속건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죽은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소제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킨 예수님이 화목제였습니다. 속죄제는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은 예수님이 속죄제였습니다. 속건제는 사람의 죄를 보상해서 죽은 흠 없는 숫양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속건제를는 반드시 흠 없는 숫양을 드렸는데 양을 잡아 그 피를 번제단 사방에 뿌리고 나머지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은 번제단에서 불사르고 나머지 고기는 제사장이 먹었습니다.(레7:1-6)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10절을 통해 고난 받는 종이 속건제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건제로 드린 어린 양이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번제와 화목제와 속죄제를 통해 제물의 피는 죄를 씻는 속죄의 기능을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속건제를 통해 제물의 피에는 속죄의 기능뿐만 아니라 피해를 갚아주는 배상의 기능도 있다고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대신 돌아가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저지른 손해를 보상하시려고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을 기억하십니까? 신애 전도연은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피아노 학원을 차립니다. 피아노 실력이 부족해 서울에서 학원을 차릴 수 없어 밀양으로 내려왔지만 남편을 사랑했기 때문에 밀양으로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혼자 사는 여자라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돈이 있는 척하며 투자할 땅이 있는지 알아봅니다. 신애는 자신의 실제 모습을 과장해서 포장합니다. 신애가 돈이 많은 줄 알고 웅변학원 원장이 아들 준을 납치합니다. 준은 시신이 되어 발견됩니다. 신애에게 아들은 인생의 전부였는데 그 전부가 사라졌습니다. 신애는 절망가운데 방황하다가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신애는 교회에서도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행세합니다. 신애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듣고 납치범을 용서하겠다고 교도소로 찾아갑니다. 그러나 아들을 죽인 범인은 너무나 태연히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했다고 말합니다. 신애는 자신이 용서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셨다고 하자 분노하며 절망에 빠집니다. 신애는 하나님께 반항하다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납치범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고 신애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욕했습니다. 원래 이창동 감독은 호의적이지 않다 보니 기독교를 저급하게 묘사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납치범의 모습이 기독교의 모습이 아니고 신애 주변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종찬 송강호가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속죄제까지만 안다면 죄를 용서받기만 하면 됩니다. 납치범도 하나님께 용서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속건제까지를 안다면 손해를 보상하기까지 해야 합니다. 납치범은 신애에게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이미 죽은 준을 다시 살려낼 수도 없고 돈으로 보상할 수도 없으니 적어도 신애에게 만큼은 평생을 죄스러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만 받으면 되는 줄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속건제를 통해 손해를 끼쳤으면 갚아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삭개오가 누구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속여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고 하자 오늘 구원이 삭개오의 집에 이르렀다고 칭찬하셨습니다.(눅19:8-9)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가 씨줄과 날줄로 번갈아가면서 짜이는 옷감과 같습니다. 어느 한 올이 풀리면 옷도 풀립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보상하고자 속건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습니다. 남을 속이려 하지 말고 차라리 적게 버십시오. 예수님은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5:23-24) 남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감추려 말고 갚아주는 저와 여러분이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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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4:12 진영 바깥에서 사르되

옛날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안 어른이 사망을 진단했습니다. 코 밑에 솜을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죽었다 생각하고 곡을 했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의사가 사망을 진단합니다. 호흡이 멈추고 심장박동(맥박)이 멈추면 심전계(심장박동에 의해 생겨나는 전류를 그래프로 그리는 기계)가 0으로 떨어질 때 사망진단을 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아있고 죽어있고는 얼굴이 예쁜가 미운가가 아니고 심장이 뛰고 있느냐 멈춰 있느냐가 결정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심장은 어디일까요?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성경의 심장이기 때문에 레위기를 알면 성경을 아는 거고 레위기를 모르면 성경을 모르는 겁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5가지 제사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날로 속죄제입니다. 속죄제는 실수로 죄를 저질렀을 때 제물을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고의로 지은 죄는 번제로 드렸습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고,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고, 화목제는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고,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드리고, 나머지를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는 제물의 종류(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나 고운가루)에 관심을 가졌다면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의 신분(대제사장이나 장로나 족장이나 평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다시 말해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바쳐야할 제물이 달라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같은 죄를 지었다고 한다면 누구의 죄가 더 클까요? 제가 지은 죄가 더 심각합니다. 3절의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일반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가리킵니다. 13절의 ‘이스라엘 온 회중’은 국가나 도시의 지도자인 장로를 가리킵니다. 제사장이나 장로가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레4:3,13) 짐승 중에서 가장 비싼 수송아지로 드렸습니다. 제사장이나 장로는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들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시키고 그 수송아지를 잡아 성막 안으로 들어가서 그 피를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찍어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렸습니다. 그리고 성소의 분향단 뿐들에 그 피를 바르고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혹시 어느 쪽부터 쏟았는지 기억하십니까? 북쪽에서부터 쏟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북쪽을 죄의 근원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북쪽, 서쪽, 남쪽, 동쪽 순으로 쏟았습니다. 그리고 내장에 붙은 기름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 기름과 피는 하나님이 취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번제는 번제단에서 불태웠고 화목제는 나누어 먹었지만 속죄제는 이스라엘 진영 바깥 재 버리는 동쪽에서 불살랐습니다.(레4:12) 번제는 번제단에서 불살랐는데 속죄제는 진영 바깥에서 불살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 속담에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하도 속을 썩어서 선생님하기가 어렵다는 속담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서는 선생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는데 성경에서는 제사장이나 장로가 죄를 지어 바친 제물은 아무도 먹지 않았습니다.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성막 안에 있는 번제단이 아니라 이스라엘 진영 바깥에서 불태웠습니다. 그만큼 제사장이나 장로가 지은 죄는 중차대하다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이나 장로가 죄를 지으면 그 죄가 백성에게도 전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사해야 하는 제사장이 죄를 지었으니 누가 죄를 사해줄 수 있겠습니까?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지휘관을 먼저 쓰러뜨려야 부하들이 우왕좌왕 합니다. 사탄은 저격수가 지휘관을 노리듯이 목사를 쓰러뜨려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사를 노리지만 가정에서는 가장을 노립니다. 마귀는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찾아다니듯이 가장을 유혹해서 가정을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접대문화를 개선해야 하는데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60명 중에 1명꼴로 유흥업소에서 종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고 된 숫자가 그러니 신고 되지 않은 숫자를 합한다면 엄청난 숫자가 돈을 쉽게 벌려고 죄를 조장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자나 깨나 몸가짐을 반듯하게 해야 합니다. 잠깐 방심하면 엄청난 후유증이 따릅니다. 마귀의 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족장이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숫염소를 드렸고, 평민이 죄를 지으면 흠 없는 암염소를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레4:23,28) 요즘은 암컷이 비싸지만 구약시대에는 수컷이 비쌌습니다. 족장은 부족의 지도자인데 족장이 지은 죄는 평민이 지은 죄보다 더 무거웠습니다. 권사님이 지은 죄는 집사님이 지은 죄보다 무겁다는 말씀입니다. 족장이나 평민은 그 숫염소와 암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들의 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키고 그 숫염소와 암염소를 잡아 그 피를 오른쪽 집게손가락으로 찍어 번제단 뿐들에 바르고 나머지 피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그리고 내장에 붙은 기름을 번제단 위에서 불살랐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했을까요? 제사장이나 장로가 바친 속죄제물은 중차대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 바깥 재 버리는 동쪽에서 불살랐는데(레4:11-12) 족장이나 평민이 바친 속죄제물은 제사장이 성막 뜰에서 먹었습니다.(레6:26) 족장이나 평민이 지은 죄는 제사장이나 장로가 지은 죄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웠습니다.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포청천을 보면 사형을 시킬 때 귀족은 용작두로 죽이고 평민은 개작두로 죽였는데 성경에서는 제사장나 장로가 죄를 지으면 중차대하기 때문에 더 거룩한 지성소의 휘장에 피를 뿌리고 분향단 뿔에 피를 바르고 나머지를 번제단에 쏟았으나 족장이나 평민이 죄를 지으면 피를 번제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를 번제단 주변에 쏟았습니다. 목사나 장로는 직분이 무거운 만큼 언행도 권사나 집사보다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속죄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고, 소제는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고, 화목제는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킨 예수님이 바로 화목제였습니다. 속죄제는 자신을 속죄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회복시킨 예수님이 바로 속죄제이십니다. 속죄제는 하나님의 몫인 기름을 번제단에서 불태웠고 피를 번제단에다 쏟았고 나머지는 진영 바깥에서 불태웠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3장 12절을 통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속죄제물이 진영 바깥에서 불태워졌듯이 예수님도 예루살렘 성 바깥에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은 죄를 성 바깥으로 가져나가 완전히 없애셨습니다. 속죄제가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홀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며 아들을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하나를 보며 살았는데 아들은 글공부는 하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르고 타일렀지만 아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회초리로 때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자 자신의 종아리를 걷어 부치고 회초리로 때렸습니다. 종아리가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어머니를 말렸지만 어머니는 자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했으니 맞아도 싸다며 회초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종아리에서 피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고 빌었습니다. 아들은 마음을 잡고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타일렀듯이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이르셨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종아리를 때렸듯이 하나님은 하나뿐인 아들을 속죄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어머니의 피를 보고 아들이 잘못했다고 빌었듯이 우리는 예수님이 흘린 피로 인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 과거에 급제했듯이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을 살렸듯이 예수님이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씻으셨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사람의 죄를 깨끗하게 씻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는 우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었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씻으셨는데 우리가 죄를 저질러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 제가 기도하면서 깨달은 것인데 하나님의 반대말은 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이 깨끗이 세차를 했는데 누가 더럽힌다면 화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속죄제물이 되시어 하나님과 우리와를 회복시키셨는데 우리가 또 다시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우리와를 단절시켜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회복시키셨으니 우리는 죄를 멀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시켜야 합니다. 제임스 패커 교수는 거룩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에 놓인 아치와 같다고 말했습니다.(거룩의 재발견) 우리가 죄를 멀리하려면 신앙적으로도 깨끗해야 하고 도덕적으로도 깨끗해야 합니다. 몸도 깨끗해야 하고 영혼도 깨끗해야 합니다. 하나가 무너지면 둘 다 무너집니다. 우리 올 한해는 신앙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깨끗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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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3:17 기름과 피를 사를지니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성경은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요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창세기는 예수님의 머리이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발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는 어디일까요? 레위기는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얼굴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심장이 멈춰 있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성형하기가 어렵더라도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심장은 살아 있고 죽어 있고를 가릅니다. 레위기는 심장이기 때문에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심장인 레위기를 안다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5가지 제사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날로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다면,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만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도 드리고 제사장에게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면 공동식사를 하는데 화목제는 애찬의 기원이었습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할머니 권사님들에게 어떤 제사가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화목제가 좋다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지난주에 금천교인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시고 고향정 보리밥 뷔페에서 식사를 하셨는데 음식을 드시고도 이야기할 거리가 남았는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화목제는 제물의 피를 흘려 죄를 용서받는 엄숙한 제사이자 제물을 나누어 먹는 즐거운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드렸습니다.(레3:3-5,9-11,14-16) 우리나라는 내장으로 내장탕을 끓이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장에 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은 식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고,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3:17)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기름과 피를 먹지 말고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오봉달 장로님이 쓰신 [성경이 말하는 건강 상식]을 보니 동물은 죽음을 예견하면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독소를 피에 남긴다고 합니다. 살에는 남지 않고 피에만 남는데 그 독소가 아드레날린입니다. 피에는 독소가 남아있으니 몸에 해롭습니다. 선지해장국에도 독소가 남아있으니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성인병은 콜레스테롤과 관련이 있는데 내장에 붙은 기름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합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인데 60세 이상이 되면 60%가 보청기를 끼고 백내장에 걸리고 고혈압으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시기 위해 내장에 붙은 기름은 하나님께 불태워서 드리고 피는 죄를 씻기 위해 번제단 주변에 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는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주었습니다.(레7:30-34)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닭 가슴살을 먹잖아요. 가슴살에는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근육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돼지고기도 뒷다리 살은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담백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가슴은 짐승의 중심이니 마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가슴살을 주듯이 목사님에게 마음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을 싫어하면 말씀이 시빗거리로 들립니다. 자신을 치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좋아하면 말씀이 은혜롭게 들립니다. 말씀에 은혜 받아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져서 멈춰버리듯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주십시오./ 뒷다리는 가장 강한 신체부위로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뒷다리를 주듯이 목사님에게 힘을 실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 눈치를 보면 소신 있게 목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을 하면 이도 저도 못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하고 추진하는 일에는 “좋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해야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 드리는 사람들은 나머지 부위를 먹었습니다.(레7:15-18) 화목제는 하나님께는 조금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어느 정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많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로 드린 고기를 당일에 먹었습니다. 남으면 불태웠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이 예배에 있지 식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지 애찬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천집사님이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오셔도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나서 육신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화목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다면 소제는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화목제는 예수님이 바로 화목제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이가 갈라졌을 때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화목제는 고기를 나누어 먹는 제사다 보니 먹을 것이 없는 비둘기는 드리지 않고 소와 양과 염소를 드렸습니다. 흠 없는 수컷이나 암컷을 모두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위해서도 여자를 위해서도 화목제가 되셨습니다. 얼마 전에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개통됐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전쟁터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고지를 지키려는 아군과 고지를 빼앗으려는 적군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적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아군의 전선이 끊어졌습니다. 적군은 쳐들어오는데 무전기를 연결하는 전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본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나섰습니다. 병사는 전선을 따라 내려갔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포탄을 맞아 땅이 움푹 폐였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잡아 당겼지만 길이가 짧았습니다. 병사는 누워서 두발로 한쪽 전선을 잡았고 두 손으로 다른 쪽 전선을 잡았습니다. 전기가 통했습니다. 병사는 몸이 저렸지만 전선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지에 있는 아군은 포격지원을 요청했고 본부에서는 포격지원뿐만 아니라 지원군까지 보내줘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병사를 찾아 나섰는데 병사는 전기에 감전돼 새까맣게 타있었습니다. 병사가 죽었기 때문에 고지에 있던 아군이 살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포탄에 전선이 끊어졌듯이 우리가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고 감전되어 죽었듯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사는 예수님처럼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은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1장 20절을 통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화해자시니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화해자가 돼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이 집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집사는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옮겨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이간질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간질 집사는 없고 이연지 집사가 있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 집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마음이 상했을 때 두 사람을 풀어주는 화해자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화해자 집사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피이스 메이커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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