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1-3 그리스도를 통해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성경은 오실 예수님을 예언하고 신약성경은 오신 예수님을 말씀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과 우리(교인)와의 관계를 8개의 전치사를 사용하여 말씀합니다. 이 전치사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전치사로 ‘Through [θrú]’ ‘… 을 통하여’ 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Through Christ’ 그리스도를 통해 입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Through’를 사용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중보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부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올려 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부산과 경남을 연결하는 거가대교처럼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리가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우리는 죄를 지은 인간입니다. 바다가 부산과 경남을 갈라놓았듯이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죄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서 아르헨티나처럼 너무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르헨티나를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가듯이 죄를 지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가려면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십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장 1-2절을 통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통하여’ 라는 전치사가 2 번 나옵니다. 하나님은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개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십니다.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디모데전서에도 예수님이 중보자라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통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이십니다. 수학에서 집합 A와 집합 B가 있을 때 A와 B에 공통으로 속하는 집합을 교집합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교집합처럼 하나님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형편을 이해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사람이어야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이해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어야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장 3절 중반 절을 통해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죄를 씻어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짐승이 대신 피를 흘리고 죽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친히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짐승의 피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구적으로 효과가 있습니다. 짐승의 피는 죄를 짓고 회개하기를 반복했지만 예수님의 피는 한번으로 충분했습니다. 단번에 효과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카니발의 타이밍 벨트를 교환했습니다. 카니발의 타이밍 벨트는 8만 킬로 전후에 교환하지만 타이밍 체인은 반영구적입니다. 타이밍 벨트는 또 다시 8만 킬로가 되면 교환해야 하지만 타이밍 체인이라면 교환하지 않아도 됩니다. 짐승의 피는 타이밍 벨트처럼 일시적이지만 예수님의 피는 타이밍 체인처럼 영구적입니다. 타이밍 체인은 반영구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구적입니다. 한 번으로 끝납니다. 어쨌든 짐승의 피로도 사람의 죄를 씻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의 피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뿐만 아니라 로마서에도 예수님의 피를 통해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나옵니다. 하나님과 화해했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5장 10-11절을 통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미암아’ 가 3 번 나오는데 말미암아는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말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불화했을 때 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돌아가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북군 병사가 전쟁 중에 아버지와 형들을 잃었습니다. 이 병사의 집안은 농사를 지었는데 농장에서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려면 남자가 필요했습니다. 그 병사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돕기 위해 전역하기 위해서 상관의 허락을 받고 링컨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비서가 면담을 거절했습니다. “자네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네. 지금 전쟁 중이라는 사실을 모르나? 대통령은 매우 바쁜 분이야. 이제 돌아가게 젊은이. 전장으로 돌아가서 저 남군과 싸우게 그게 자네가 할 도리야!” 그 병사는 낙심한 채로 백악관 근처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그 때 어린 소년이 다가왔습니다. “군인 아저씨 왜 슬퍼하세요? 뭐가 잘못 되었나요?” 그 병사는 전후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소년은 그 병사의 손을 잡고 백악관 뒷문으로 들어가서 보초병들을 지나고 장군들의 회의실을 지나고 장관들의 사무실을 지나더니 대통령 집무실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 소년은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덜컥 열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국무장관과 회의를 하다가 소년을 쳐다봤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니 토드?”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아빠! 이 군인 아저씨가 아빠와 얘기 할 일이 있대요.” 그 병사는 아버지와 형들이 전사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국무장관과 상의를 하더니 승낙을 했고 그 병사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소년이 병사를 데리고 대통령에게 찾아갔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데리고 하나님께로 나가셨습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셨습니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갈라졌을 때 우리 대신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의 중보자십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고 예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예수님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다시 오십니다. 소년이 병사를 대통령에게 데리고 갔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신앙의 중심으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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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8:15-17 자녀의 권세를 활용하라.

미국 시카고에서 어떤 거지가 일주일에 3달러씩 내는 초라한 임대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거지는 20년간 시카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했는데 며칠간 보이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수소문해 봤더니 침대 위에서 죽어 있었습니다. 경찰이 부검을 했더니 영양실조로 인한 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의 집에서 23,000달러가 나왔습니다. 그 당시에 그 정도 액수라면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일류 호텔에 가서 최고급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그 거지는 돈은 가지고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거지가 돈을 사용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권세는 언제 주어질까요? 하나님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만약 우리 중에 대통령의 자녀가 있다면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을 겁니다. 아버지가 대통령인데 누가 건드리겠습니까? 우리는 대통령보다 높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왕자요 공주입니다. 우리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인데 이 세상에서 누가 우리를 건드리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시시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옆 사람보고 이야기 합시다. 당신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존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무슨 권세일까요? 말의 권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창1:3) 예수님은 말씀이셨는데 사람이 되셨습니다.(요1:14) 말씀이신 예수님은 사나운 바람이 불자 ‘바람아, 멈추어다오.’ 라고 부탁하지 않고 ‘잠잠 하라. 고요 하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으로 명령하시니 성난 바람이 그치고 사나운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막4:39) 하나님은 로마서 8장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양자입니다. 하나님의 친자는 예수님이고 우리는 양자입니다. 우리나라는 혈통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친자와 양자를 차별하지만 로마제국에서는 친자와 양자를 똑같이 취급했습니다. 하나님의 친자인 예수님이 말씀의 권세를 가지셨듯이 하나님의 양자인 우리도 말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말의 권세를 받았으니 서로를 축복해 주십시오. 우리 옆 사람을 축복합시다. 당신은 우리 교회의 복 덩어리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면 하나님이 복 내려주시고 우리가 저주하면 하나님이 저주하십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일이 생기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대로 되고 불신의 말을 하면 말한 대로 됩니다. 하나님이 말의 권세를 주셨으니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축복하는 말을 하고(망할 놈이 아니라 흥할 놈이라고 하고) 부정적인 말이 아니라 긍정적인 말을 하고(나는 경품 추점할 때마다 떨어졌어가 아니라 이번에는 당첨 될 거야) 불신의 말이 아니라 믿음의 말을 합시다.(하나님도 나를 포기하셨어가 아니라 하나님은 언제나 나와 동행하셔)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말의 권세를 어떻게 활용할까요? 첫째,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마귀는 우리를 낙심시키고 우리 가정을 불화하게 만듭니다. 모든 나쁜 일의 배후에는 마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적인 마귀입니다.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가 사람 뒤에서 마음이 상하도록 부추깁니다. 괜히 애먼 사람과 싸우지 말고 마귀와 싸우십시오. 하나님의 친자인 예수님이 ‘사탄아 물러가라.’ 고 호통 치자 마귀가 사라졌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야 물러가라’ 고 호통 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7절을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에게 주눅 들지 말고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쫓아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인 말의 권세를 받았으니 마귀야 물러가라고 명령하면 마귀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갑니다./ 둘째, 병이 나았다고 선포하십시오. 모든 병은 마귀가 주는 것은 아니지만 마귀는 병을 통해 장난칩니다. 데릭 프린스 박사는 2차 세계대전에 영국군으로 참전했다가 피부병에 걸렸습니다. 후방으로 후송되어 치료받았지만 도대체 낫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구세군 준장인 로스 여사가 교인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령한 교인들과 함께 프린스 박사를 찾아와서 막무가내로 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뜨겁게 기도했던지 차가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프린스 박사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4절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죄뿐만 아니라 우리의 질병과 고통까지도 짊어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잠언서 4장 22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은 건강이다 다른 번역으로는 ‘약’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린스 박사는 병에 걸리면 처방약을 받아 하루 3번씩 복용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약으로 삼아 하루에 3번씩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을 복용했더니 피부병이 깨끗이 고쳐졌습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8장 17절을 통해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통해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셨고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인 말의 권세를 받았으니 그동안은 ‘하나님 고쳐주세요.’ 애원했지만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병은 나을지어다.’ 라고 선포하면 예수님이 모든 질병을 낫게 해 주십니다./ 셋째, 물질이 풍성하도록 기도하십시오. 저는 개척교회 목사다 보니 수중에 돈이 없고 필요할 때마다 성경구절을 암송하며 삽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 4장 19절을 통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하게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2절을 통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뿐인 아드님도 아끼지 않고 내주셨습니다. 하나뿐인 아드님도 내주셨으니 그까짓 돈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면 마른 샘에 물이 고이듯이 텅 빈 통장이 채워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으니 우리의 수준도 바뀌어야 합니다. 마귀의 종일 때는 거지처럼 애원했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됐으니 왕자처럼 공주처럼 명령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의 권세를 가졌으니 마귀가 유혹해도 사람과 싸우지 말고 우리의 주적은 마귀이니 ‘악한 마귀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라고 명령하고, 질병이 생길 때도 병원만 찾아다니지 말고 ‘예수님이 내 병을 짊어지셨으니 깨끗하게 나을지어다.’ 라고 선포하고, 가난이 찾아와도 ‘하나님이 아드님도 아끼지 않으셨으니 풍성하게 채워질지어다.’ 라고 고백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인 말의 권세를 가졌으니 우리가 믿고 고백하고 선포한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믿음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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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4-22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서머나 교회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아 칭찬을 받았습니다. 폴리캅 감독은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은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라톤은 우승해야 월계관을 주지만 신앙은 완주하면 면류관을 받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버가모 교회는 음행을 회개하라는 경고를 들었습니다. 신앙의 집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으로 지어집니다. 마귀는 도덕성을 무너뜨려 영성도 무너뜨리려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거짓 선지자를 멀리해야 했습니다. 이성의 유혹을 받아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보다 이단의 미혹을 받아 영적인 죄를 짓는 것이 더 큰 죄입니다. 이단은 교주를 메시야라고 고백하니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데 교회는 한 병사가 투구를 떨어뜨려 비밀통로로 드나드는 바람에 사르디스 성을 점령당했듯이 우리가 작은 틈바구니를 준다면 마귀에게 점령당할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도둑같이 갑자기 오시니 흰옷을 입고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으로 인내하여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윌리엄 펜은 펜실베니아 주의 첫 벗째 도시를 필라델피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빌라델비아가 예수님께 칭찬받은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규모는 작지만 신앙으로 인내하여 칭찬받는 교회가 돼야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지금의 터키 데니즐리(Denizli)입니다. 라오디게아의 북쪽에는 히에라폴리스가 있었고, 서쪽에는 골로새가 있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교통의 중심지라 무역을 하였고 돈을 많이 벌다보니 대형 은행이 생겼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주변에 광활한 목초지가 있어 양을 쳤고 검은색 양모와 양탄자를 만들었습니다./ 라오디게아에는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학교가 있었고 눈에 바르는 안약을 잘 만들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지진이 나서 도시가 파괴됐지만 로마제국의 지원을 받지 않고도 복구할 만큼 부유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는 물이 부족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우리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유대인들은 확실한 경우에 ‘아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확실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충성되고 참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시를 충성스럽고 참되게 증언하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근본이신 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동참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증인입니다./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증인인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합니다. 다른 교회는 칭찬부터 하고 책망하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은 하지 않고 책망을 합니다. 3장 15절을 통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내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고 말씀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물이 부족해서 북쪽에 있는 히에라폴리스와 서쪽에 있는 골로새에서 물을 끌어다 썼습니다. 히에라폴리스에는 온천물이 솟아나와 목욕하기에 좋았습니다. 석회석 온천도 있었고 황토 온천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로를 통해 약 8킬로미터를 흘러오다 보면 뜨거운 온천물이 식어서 미지근해졌습니다. 골로새에는 샘물이 솟아나와 마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러나 수로를 통해 약 14킬로미터를 흘러오다 보면 생수가 뜨거운 햇살에 데워져서 미지근해졌습니다. 뜨거운 물은 목욕하기에 좋았고 차가운 물은 마시기에 좋았는데 미지근한 물은 어중간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어중간하게 신앙 생활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3장 17절을 통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고 탄식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자 도시였습니다. 예수님은 부자라고 자만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보고 가난하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이 많은 사람이 부자가 아니라 환란을 이겨낸 사람이 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2:9,3:18)/ 라오디게아는 검은색 양모를 잘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양모를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인에게 벌거벗었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정결하고 거룩한 흰 옷을 사서 수치를 감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3:18)/ 라오디게아는 안약이 유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안약이 특효약이라고 자랑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보고 눈이 멀었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계3:18)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눈이 먼 사람이 맹인이 아니라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이 맹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9:39)/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등 따습고 배불렀기 때문에 느슨하게 신앙 생활했습니다. 우리도 배고프고 힘들 때는 주님을 찾았는데 배부르고 편하니까 딴생각을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증인인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권면합니다. 3장 19절을 통해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식에게 매를 한 대 더 때리듯이 사랑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회개하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미지근하게 신앙 생활하는 우리에게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3장 20절을 통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보라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주인이 문을 열어야 손님이 들어가 음식을 나누어 먹듯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증인인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약속합니다. 3장 21절을 통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승리하여 하나님의 보좌 옆에 앉는 것 같이 이기는 교인들에게 예수님의 보좌 옆에 앉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좌는 예수님이 통치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시험을 이기고 승리한다면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통치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2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온천물처럼 뜨겁지도 않고, 샘물처럼 차갑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주방에서 곰팡이와 세균은 섭씨 22도에서 25도 사이와 습도 70%에서 80% 사이의 고온 다습한 기온일 때 잘 번식한다고 합니다.(아토세이프닷컴에서 인용) 바닷물은 온도가 섭씨 15도에서 25도 정도가 되면 플랑크톤이 폭발적으로 번식해 적조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한국농촌공사) 물이 뜨겁거나 차갑거나 하면 세균이 맥을 못 추지만 미지근하면 세균이 왕성하게 번식합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신앙 상태는 미지근하여 마귀의 공격에 취약했습니다. 사소한 일로도 시험에 들었습니다. 미지근하면 넘어지기 쉽습니다. 지옥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은 지옥이 있는 것은 알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온천처럼 뜨겁든지 샘물처럼 차갑든지 자신의 재능과 은사에 따라 주님의 몸은 창대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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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7-13 작은 능력으로 인내하였다.

퀘이커교도인 윌리엄 펜은 영국 찰스 2세 왕에게 북아메리카 댈라웨어강 서쪽에 대한 지배권을 받고 펜실베이니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펜의 숲이 있는 지역’이라는 뜻입니다. 펜은 첫 번째 도시를 만들고 필라델피아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필라델피아는 요한계시록에 여섯 번째로 나오는 빌라델비아입니다. 빌라델비아는 그리스어로 ‘형제 사랑’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펜이 첫 번째 도시를 필라델피아라고 지은 것을 보면 빌라델비아가 하나님께 칭찬받은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지금의 터키 알라세히르(Alasehir)입니다. 빌라델비아는 로마제국의 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했기 때문에 상업이 발달했습니다./ 포도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농업이 발달했습니다./ 포도주를 생산하다 보니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숭배하였고,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를 재건해주다 보니 로마 황제를 숭배하였습니다. 우상 숭배가 발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우리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7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진실하신 하나님입니다.(계6:10)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진 메시야입니다.(계5:5,22:16) 예수님은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하늘나라 입장권과 거부권을 가진 분입니다. 하늘나라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 입장권과 거부권을 가진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합니다. 8절 하반 절을 통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고 말씀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졌습니다. 작은 능력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빌라델비아의 상황을 보면 교인수도 적었고 교회재정도 모자라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빌라델비아는 상업과 농업이 발달해 상인과 농민이 많았습니다. 상인이 되고 농민이 되면 조합(길드)에 가입하고 이방 신전에서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고 신전 창녀와 성관계를 가져야 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신앙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려고 조합에 가입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했습니다. 또한 빌라델비아 교인들은 황제 숭배를 하지 않아 로마 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당했고 디오니소스를 숭배하지 않아 지역 주민들로부터 비방을 받았습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됐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신앙을 지키려고 손해를 감수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빌라델비아 교인들을 비방했지만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을 감추고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 칭찬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앙을 버린 부자보다 신앙을 지킨 가난뱅이를 칭찬하십니다. 저도 교인들에게 적당히 타협하며 신앙 생활하라고 하기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신앙 생활하라고 설교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보다 입에 써도 귀에 거슬리더라도 영혼을 살리는 설교를 좋아해야 합니다.

하늘나라 입장권과 거부권을 가진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예언합니다. 9절을 통해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넘겨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신앙을 지킨다고 교회를 박해하는 사탄의 회당을 빌라델비아 교인들의 발 앞에 무릎 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회당을 무릎 꿇려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한다고 알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0절을 통해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박해를 받았지만 인내했기 때문에 대 환란을 면제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한 박해는 작은 환란이고 하늘나라에서의 심판은 큰 환란입니다. 예수님은 작은 환란을 인내했으니 큰 환란을 면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살지가 결정됩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요 하늘나라는 영원합니다.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아가십시오.

하늘나라 입장권과 거부권을 가진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권면합니다. 11절을 통해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곧 재림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재림하실 때까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신앙을 지키라고 권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하지 못하고 신앙을 버린다면 면류관을 빼앗겠지만, 인내하고 신앙을 지킨다면 면류관을 빼앗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해야 월계관을 씌워주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신앙을 완주하기만 하면 면류관을 씌워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완주하면 천국에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완주하면 천국에 가긴 가는데 예배에 빠지면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계단이 한 칸씩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예배를 드려야 신앙이 충전되니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시다.

하늘나라 입장권과 거부권을 가진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약속합니다. 12절 전반 절을 통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절을 통해 하늘나라에서는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첫째, 하나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둥은 건물을 유지합니다. 예수님은 인내한 교인들에게 하늘나라에서 크게 들어 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2절 하반 절을 통해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을 통해 새 이름은 믿음을 지킨 교인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둘째,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새겨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내한 교인들에게 성전의 기둥을 삼고 이름을 새겨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13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신앙심이 깊은 윌리엄 펜이 첫 번째 도시를 만들어 필라델피아라고 이름 지은 것은 빌라델비아 교회가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를 통해 역할모델로 삼을 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에베소나 버가모는 큰 교회였지만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는 작은 교회였지만 칭찬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외적인 규모가 아니라 내적인 신앙을 중요시 여기십니다. 필라델피아 시민들은 필라델피아가 첫 번째 도시이자 첫 번째 수도라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한 해 2천개의 개척교회가 문을 닫는 이 때에 상가를 벗어나 건물을 가지게 되었으니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우리 교회도 작은 교회이지만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인내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칭찬해 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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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1-6 흰 옷을 입으라.

알렉산더 대왕이 리디아 왕국을 공격할 때의 일화입니다. 리디아 왕국은 황금을 많이 가진 나라였고 수도 사르디스는 산 위에 세워진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무리 공격해도 사상자만 발생하자 성을 점령할 방법을 찾는 장졸에게 큰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한 병사가 성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을 지키는 병사가 꾸벅꾸벅 졸다가 투구를 성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병사는 주위를 살피더니 비밀통로를 통해 성 밖으로 나와 투구를 주워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사는 그 사실을 알렸고 알렉산더 대왕은 그 비밀통로 들어가 성을 점령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사르디스가 요한계시록에 다섯 번째로 나오는 사데입니다. 지금의 터키 살리히리(Sahlili)입니다. 사데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으나 전쟁에 패배하면서 쇠퇴하기 시작해 대 지진이 발생하면서 몰락했습니다./ 사데는 양모공업이 발달해 양의 털을 염색하면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데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우리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절 중반 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신 이” 라고 말씀합니다. 일곱 영은 일곱 천사를 가리키고(계1:4)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천사)를 가리킵니다.(계1:20) 예수님은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지셨습니다. 모든 교회에 통치권을 가지셨습니다. 교회의 통치권을 가진 예수님이 사데 교회를 책망합니다. 다른 교회는 칭찬부터 하고 책망을 했는데 사데 교회는 책망부터 하고 칭찬을 합니다. 1절 하반 절을 통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가 겉으로는 살았으나 속으로는 죽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데 교회는 오늘날 한국 교회와 비슷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기독교인의 인구는 1.5% 이었으나 3.1 만세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3.1 만세 운동이 활발한 도시는 기독교가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기독교인의 인구는 18.3% 로 종교인구수는 두 번째지만 언론에서 종교지도자들을 인터뷰할 때 가톨릭 추기경을 먼저 하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그다음 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을 맨 나중에 합니다. 기독교의 위상이 하락했습니다. 사데 교회가 겉모습은 번창했으나 속 모습은 쇠퇴한 것처럼, 한국 교회도 외적으로는 성장했으나 내적으로는 침체되었습니다. 사데 교회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도 교회 안에서는 믿음이 있는 신실한 교인이지만 교회 밖에서는 돈만 아는 비교인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거짓 선생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했는데(딤후3:5) 우리들도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은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데교회는 살았으나 죽은 교회였는데 우리도 자칫하다가는 교인이지만 비교인이 될 수 있고 살았지만 죽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의 통치권을 가진 예수님이 사데 교회에게 경고합니다. 2절 전반 절을 통해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고 말씀합니다. 사데 교회는 영적인 침체에 빠져 있었습니다. 잠자고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도 지금 영적으로 졸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이 다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5장 14절 전발 절을 통해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에게 잠에서 깨어나라고 말씀합니다. 한국 교회에도 각성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다시 일어나라고 말씀합니다./ 3절을 통해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사데 교회가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였는지를 생각하고 영적인 침체에 빠진 것을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잠에 빠진 것을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어떻게 신앙생활 했는지 살펴보고 구원의 감격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도둑같이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졸고 있을 때 갑자기 오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데는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기습공격을 받아 점령당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갑자기 오신 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도둑같이 오십니다.(마24:42-44,살전5:2,벧후3:10) 도둑이 갑자기 들어오듯이 예수님도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도둑같이 오시기 전에 우리들은 깨어있어야 합니다.(마24:42-44,눅12:35-40,살전5:2-6)

교회의 통치권을 가진 예수님이 사데 교회를 칭찬합니다. 4절 전반 절을 통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라고 말씀합니다. 대부분의 사데 교회 교인들은 영적인 침체에 빠졌지만 그 중에 몇 명은 옷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깨어있었습니다. 나무나 풀 등을 베고 나면 밑동인 그루터기가 남는데 교회 안에도 대부분 잠을 잤지만 깨어있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루터기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깨어 있는 교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도 그루터기 교인이 돼야 합니다.

교회의 통치권을 가진 예수님이 사데 교회에 3가지를 약속합니다. 4절 하반 절과 5절 전반을 통해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라고 말씀합니다. 유대교에서 흰 옷은 하늘의 옷으로 여겨졌습니다. 유대교 제사장들은 흰 옷을 입었습니다. 이방 신전의 제사장들도 흰 옷을 입었습니다. 흰 옷은 정결하고 거룩한 자들이 입는 옷으로 깨어있는 자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윤리적으로 정결하고 신앙적으로 거룩한 자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있으면 첫째,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늘나라 백성으로 삼아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5절 중반 절을 통해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제국은 도시마다 시민들의 명단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민은 추가하고 추방된 시민을 삭제했다고 합니다. 생명책은 영원한 생명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두루마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있으면 둘째, 하늘나라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시민권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5절 하반 절을 통해 “내가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과 누가복음 12장 18절을 통해 우리가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시인하면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교인이라고 시인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깨어있으면 셋째, 하늘나라 법정에서 교인이라고 증언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변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6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우리가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남의 허물을 보고 시험에 들 수 있지만, 우리가 예리한 귀를 가지고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있어야 합니다. 흰 옷을 입어야 합니다.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리디아의 수도 사르디스가 한 병사의 실수로 비밀통로가 발각돼 멸망한 것처럼 우리가 영적으로 방심한다면 작은 틈이 빌미가 돼 마귀에게 점령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도둑같이 갑자기 재림하십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흰 옷을 입고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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