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 2:18-29 거짓 선지자를 멀리하라.

중국은 짝퉁천국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정품이 나오면 정품과 똑같은 짝퉁을 만든다고 합니다. 중국 남부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에 사는 미국인 여성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 애플 로그가 새겨진 푸른 색 티셔츠를 입고 아이패드 2를 판매하는 애플 대리점이 3개나 있어 이상하다 했더니 애플 대리점 명단에 들어있지 않는 가짜 대리점이었다고 합니다.(7월 21일자 뉴시스) 가짜 대리점은 진짜 애플 대리점과 똑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품질은 다르겠죠. 이단은 정통교회의 짝퉁입니다. 모양은 같지만 내용은 다릅니다. 애플이 짝퉁으로 골머리를 알고 있듯이 한국교회는 이단으로 골머리를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네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두아디라 교회로, 지금의 터키 아크히사르(Akhisar)입니다. 두아디라는 방직공업이 발달했고 자색옷감 거래가 활발했습니다. 자색옷감은 부유층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두아디라는 방직공업이 발달하다 보니 직공들이 많았고 자색옷감을 거래하다보니 상인들도 많았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자색 옷감장사 루디아도 두아디라 출신이었습니다.(행16:14) 두아디라는 직공들과 상인들이 조합(길드)을 만들어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여자를 취했습니다. 교인들이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공장을 가질 수도 없었고 장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사업을 하려면 모든 거래가 술자리에서 성사되니까 술 접대를 잘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성(性)접대까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두아디라 교인들은 신앙생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우리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 이”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이 빛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주석(놋쇠)같이 단단합니다. 상을 주고 벌을 내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별력이 있고 상벌을 내리시는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합니다. 19절을 통해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사업은 행위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사업(행위) 다시 말해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알고 계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인들이 서로 사랑했습니다. 믿음을 지켰습니다. 교회를 섬겼습니다. 신앙으로 인내했습니다. 고대 수사학에서 처음과 나중에 나오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의 네 가지 덕목 중에서 특히 사랑과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신앙을 지킨다면 칭찬하십니다.

분별력이 있고 상벌을 내리시는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를 책망합니다. 20절을 통해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도다.” 고 말씀합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을 용납했습니다. 이세벨은 누구입니까? 이세벨은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시돈 왕국의 공주로서 북 왕국 아합 왕의 왕비가 되어 그의 남편을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보다 우상숭배를 더 많이 하게 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만들었습니다.(왕상16:30-33) 이세벨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켰듯이, 거짓 선지자가 두아디라 교인들을 타락시켰습니다. 에베소 교회와 버가모 교회의 니골라당도 교인들을 타락시켰습니다. 두아디라 교인들이 왜 타락했습니까? 거짓 선지자인 이세벨을 용납하였고(2:20) 추종하였기(2:22)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가까이 지내다 보니 타락하게 된 겁니다. 두아디라 교회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거짓 선지자가 판치고 있습니다. 이단문제 전문가인 진용식 목사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이단과 사이비가 200여개가 있고 사이비 메시야도 40여명이 있다고 합니다. 한 단체에 십만 명이 있다고 가정하면(200개X십만 명) 2백만 명(또는 백만 명)이 이단에 빠진 셈입니다. 정통교회 중에도 이단에 빠진 교역자가 350여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정통교회 간판을 걸고 교인들을 이단으로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진용식 목사님이 어느 교회에 세미나를 인도하러 갔는데 사회자가 이단이더랍니다. 이단 중에서 가장 악랄한 이단은 신천지입니다. 신천지는 전국에 200여개가 있고 신도는 7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신천지가 가장 활발한 곳은 대전이고 포항에도 5백여 명이 있다고 합니다. 신천지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친절하게 성경공부를 시키지만 나중에는 무한경쟁체제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신천지의 성경공부는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처럼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 가는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하듯이 서로 관계없는 성경구절들을 억지로 연결하여 원숭이가 백두산이 되듯이 이OO가 메시야가 되게 만든다고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가 거짓 선지자를 용납했더니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하게 됐듯이 오늘날도 교회 밖에서 벌어지는 성경공부에 참석한다면 이단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천지는 성경공부는 하지만 제자훈련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천지에 빠지면 이OO를 보고는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지만 부모에게 거짓말하고 남편을 속이고 자식을 버린다고 합니다. 신천지는 교묘하게 접근하기 때문에 신천지인지 모르지만 설문조사를 한다거나 성경공부를 하자거나 선교사를 만나보자 하면 신천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별력이 있고 상벌을 내리시는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 경고합니다. 22절과 23절을 통해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두아디라 교회가 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침상에 던지겠다고 경고합니다. 내동댕이치겠다고 말씀합니다./ 큰 환난 가운데 던지겠다고 경고합니다. 대 환난을 겪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자녀를 죽이겠다고 경고합니다. 자녀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고백해야 천국가지 이OO을 메시야라고 고백하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요한2서 10절과 11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하나님은 이단을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단은 언변이 좋고 미혹의 영이 씌어있어 인정상 뿌리치지 않는다면 미혹의 영이 옮겨 붙어 이단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분별력 있고 상벌을 내리시는 예수님이 두아디라 교회에게 약속합니다. 26절과 27절을 통해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와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28절을 통해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고 말씀합니다. 새벽 별은 바벨론 시대에 통치를 상징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자와 지키는 자에게 재림하실 때 세상을 심판할 권세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29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우리가 서머나 교회를 배울 때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 감독이 순교했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폴리캅은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할 때 이단인 케린투스가 들어오자 그곳에 진리의 대적이 있어서 건물이 붕괴될지 모른다며 목욕탕을 나갔습니다. 감기에 걸리면 감기 바이러스를 옮기듯이 이단은 미혹의 영을 옮깁니다. 성경은 손님을 환대하라고 말씀하지만 이단만큼은 야박하게 내치라고 말씀합니다. 진용식 목사님은 이성의 유혹을 받아 도덕적인 죄를 짓는 것보다 이단의 미혹을 받아 영적인 죄를 짓는 것이 더 큰 죄라고 말합니다. 한 번 이단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몇 년이 걸립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장로님의 둘째 며느님이 이단에 빠져 집안에서 반대하자 결국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이단의 수렁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습니다. 야박하더라도 접촉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단칼에 잘라야 합니다. 짝퉁은 정품과 다릅니다. 짝퉁신앙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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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2-17 음행을 회개하라.

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세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버가모 교회로, 지금은 터키 베르가마(Bergama)입니다. 버가모는 처음에는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지역 수도였으나 나중에는 에베소로 이전했습니다. 에베소는 황제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고 버가모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황제 숭배에 열을 올렸습니다./ 버가모에는 세계 최초의 병원인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약물치료와 음악치료도 했지만 심리치료도 병행했습니다. 병원의 지하에는 200미터의 굴이 있었는데 환자들이 이 굴을 걸어가면 굴 위의 구멍에서 ‘다 나았느니라.’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환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실제로 병이 낫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종의 위약효과(플레시보 효과)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우리 교회에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2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 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검은 심판과 전쟁으로, 로마인들에게는 사형 집행권을 상징했습니다.(롬13:4)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입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는 분입니다.(히4:12) 심판자인 예수님이 버가모 교회를 칭찬합니다. 13절을 통해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고 말씀합니다.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 가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사탄의 권좌는 치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라는 의견도 있었으나 로마 황제의 신전이라는 것이 대다수입니다. 버가모는 황제의 기념 축일이 되면 황제 신전으로 모여 황제에게 제사를 드리고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한 고기를 나누어 먹었습니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의심했고, 황제 신전에 오지 않으면 국가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낙인찍혔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의 생일에 무덤을 참배하고 쌀과 고기를 배급받는 것과 유사합니다. 사실 김일성도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는데 공산주의자가 되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이 됐습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숭배하듯이 버가모에서도 황제를 숭배했습니다. 버가모 교인 중에 ‘안디바’ 는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다고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다.’ 고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편하게 신앙 생활하는 교인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도 꿋꿋하게 신앙 생활하는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어쩌면 한국교회보다 북한 지하교회를 칭찬하실 지도 모릅니다.

심판자인 예수님이 버가모 교회를 책망합니다. 14절을 통해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민수기 25장 1절에서 3절과 31장 16절을 통해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게 하였고 모압의 신인 ‘바알브올’ 을 섬기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하게 했듯이, 니골라당도 버가모 교인들에게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게 하였고, 이방 여자들을 취하도록 부추겼습니다. 성경에서 ‘음행’ 은 우상숭배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성적인 타락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발람과 니골라당은 교인들을 세상 문화에 동화시키려는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세상 문화에 오염돼 가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을 우상으로 섬기듯이 우리도 황금만능주의에 빠졌습니다. 맘몬이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디모데 전서 6장 10절을 통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돈은 모든 악의 뿌리라고 말씀합니다. 돈 때문에 사람을 상하게 하고, 돈 때문에 신앙을 잃게 된다면 돈은 우상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문란하게 살듯이 교인들도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는 불륜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히브리서 13장 4절을 통해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고 말씀합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입니다. 교인의 결혼은 하나님과 남편과 아내가 맺은 언약결혼입니다. 하나님과 사람과 맺은 언약이 깨지지 않듯이 하나님과 부부간에 맺은 언약결혼도 지켜져야 합니다.

심판자인 예수님이 버가모 교회에 경고합니다. 16절을 통해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상을 숭배한 교인들과 음행한 교인들에게 회개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돈을 하나님으로 삼고 문란하게 사는 교인들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겠다고 경고합니다.

심판자인 예수님이 버가모 교회에게 약속합니다. 17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첫 번째 약속은 ‘감추었던 만나를 주겠다.’ 입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집트)을 탈출하고 광야를 유랑할 때 하나님께서 아침에 내려 주셨던 음식입니다.(출16:1-36) 만나는 요한복음 6장 31절에서 33절까지와 48절에서 50절까지와 58절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교인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두 번째 약속은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주겠다.’ 입니다. 로마시대에 재판을 할 때 피고가 유죄면 배심원은 검은 돌을 사용했고, 무죄면 흰 돌을 사용했습니다. 새 이름은 이사야서 62장 2절과 65장 15절을 통해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새로운 본성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믿음을 지키면 무죄로 평결하시고 새로운 본성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버가모 교회는 신앙은 지켰지만 니골라당의 유혹에 넘어가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8월 22일자 신문을 보니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질서과는 ‘신앙생활을 통해 올바른 길로 선도한다.’ 며 집으로 데려온 청소년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김 모 장로(61)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나왔습니다. 김 장로는 신앙이 좋아 장로가 됐고 청소년 선도활동을 한다고 TV에도 출연했지만 성추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버가모 교회처럼 신앙은 있으나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재임스 패커 교수는 [거룩의 재발견]이란 책을 통해 “거룩함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에 놓인 아치와 같아서, 두 기둥 중 어느 하나가 가라앉으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신앙의 집은 영성과 도덕성이란 두 개의 기둥으로 지어집니다. 영성이나 도덕성이나 하나가 무너지면 신앙의 집도 무너집니다. 마귀는 예전에는 영성을 무너뜨리려 했는데 요즘에는 도덕성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마귀는 불륜을 부추깁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정을 아름답게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본성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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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8-11 고난을 두려워 말라.

한자성어 중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란 말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詩經)’의 ‘소아(小雅)’에 나오는 말로, 다른 산의 돌이라도 자기의 옥(玉)을 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도 자기의 지덕(智德)을 닦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두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서머나 교회로, 지금은 터키 이즈미르(Izmir)입니다. 서머나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였습니다. 서머나는 아름다운 도시라서 그런지 미스 터키가 많이 배출되었고 2005년에는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습니다./ 서머나는 일찍부터 로마제국에 충성한 도시였습니다. 서머나에는 로마제국의 여신전과 황제신전이 있어 우상숭배가 만연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서머나 교회에게 주신 말씀인데 서머나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주신 말씀입니다. 8절 하반 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고(계1:8), 처음이요 마지막이십니다.(계1:17) 알파는 그리스어 첫 번째 글자고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예수님은 처음이시오 마지막이시오 창시자시오 완성자시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시어 죽은 자와 산 자의 통치권을 가지셨습니다. 창시자시오 완성자시며 죽은 자와 산 자의 통치권을 가지신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칭찬합니다. 무슨 칭찬을 하셨을까요? 9절 전반 절을 통해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내가 부요한 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궁핍이라는 단어가 환난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것으로 볼 때 서머나 교회는 궁핍으로 인한 환난을 겪었습니다.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서머나는 잘 사는 도시였으나 교인들은 가난했습니다. 왜 가난했을까요? 서머나는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했지만 교인이 상인이 되고 직공이 되면 길드(조합)에 가입하고 이방신전에서 우상숭배를 하고 축제를 벌여야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여자를 취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도 회식을 하면 2차로 나이트도 가도 3차로 모텔도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서머나 교인들은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가정을 지키려다보니 상인이 되지 않고 직공이 되지 않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신앙을 지키려고 불이익을 감수했습니다. 오늘날 교인들이 가게를 운영한다면 ‘주일(일요일)은 쉽니다.’ 라는 팻말을 붙이고 과감하게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게을러서 가난한 교인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려고 가난한 교인은 칭찬하십니다./ 9절 하반 절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고 말씀합니다. 이광진 교수는 서머나 교회가 헬레니즘 문화에 동화된 유대인들에게 비방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세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신앙을 지키려다보니 비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많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계 모음을 하면 자연스럽게 술잔을 기울이고 노래방으로 향하던데 교인들은 성도입니다. 거룩한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동화되는 교인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인을 칭찬하십니다./ 10절 중반 절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고 말씀합니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감옥에 갇히면 벌금을 물거나 추방을 당하거나 처형을 당했습니다. 박해는 키질입니다. 키질을 하면 쭉정이는 떨어지고 알곡만 남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을 이용하는 교인이 아니라 신앙을 지키려는 교인을 칭찬하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고난을 당했고, 세상 문화에 동화된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았고, 로마제국에 박해를 받았지만 신앙적으로 부요한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으로 풍성한 사람보다, 영적으로 풍성한 사람을 부요한 사람이라고 칭찬하십니다. 예수님을 신앙을 버린 부자보다 신앙을 지킨 가난뱅이를 칭찬하십니다.

창시자시오 완성자시며 죽은 자와 산 자의 통치권을 가지신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를 격려합니다. 10절 전반 절을 통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 위로합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환난을 계속해서 당할 것이지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동행해주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10절 하반 절을 통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고 권면합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환난을 당하더라도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충성하면 예수님이 보상해 주십니다. 끝까지 충성하면 갚아주십니다.

창시자시오 완성자시며 죽은 자와 산 자의 통치권을 가지신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에게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11절 전반 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첫 번째 약속은 10절 하반 절을 통해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고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환난을 이기면 천국 면류관을 씌워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8월 27일(토)에 대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립니다. 육상의 꽃은 마라톤인데 마라톤 선수가 사람의 한계를 극복하고 첫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월계관을 받는 것처럼 교인들이 온갖 시험을 극복하고 천국으로 향하는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마라톤은 우승자에게만 월계관을 씌어주지만 천국은 완주자 모두에게 면류관을 씌어줍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1등이 아니라 꼴찌라도 완주만하면 되니까요./ 두 번째 약속은 11절 하반 절을 통해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습니다. 육체적으로 한 번 태어나고, 영적으로 또 한 번 태어나면 육체적으로 한 번 죽습니다. 그러나 육체적으로 한 번 태어나면 육체적으로 한 번 죽고, 영적으로 또 한 번 죽습니다. 그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한 번 태어난 사람에게는 영원한 형벌을 주시지만 영적으로 또 한 번 태어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서머나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책망은 받지 않고 칭찬 받은 교회였습니다. 고난을 이겼기 때문에 칭찬받았습니다. 서머나에는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을 기념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기독교인들을 잡으면 파고스 언덕에 있는 경기장에 몰아넣고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처형했습니다. 게르마니쿠스 총독은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 감독이 노인이라 신앙을 버린다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폴리캅은 거절했습니다.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기고 있소. 그런데 그분은 한 번도 나에게 불의를 행하지 않았소.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한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소?” 총독이 위협했습니다. “나는 사나운 짐승들을 준비해 두고 있소,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그 짐승들에게 던져 버리겠소.” 폴리갑은 자신했습니다. “그 짐승들을 부르시오. 우리는 선을 버리고 악으로 돌이켜서는 안 되오. 오히려 악에서 돌이켜 덕을 택하는 것이 선한 일이오.” 총독이 협박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면 당신을 화형 시키겠소.” 폴리캅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잠시 타오르다가 곧 꺼져버리는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소. 왜냐하면 당신은 장차 임할 심판과 악인을 위해 예비 된 영원한 형벌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요” 군중들은 폴리캅을 화형 시키라고 소리쳤습니다. 집행인들은 장작더미를 쌓고 폴리캅을 살아있는 채로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불길이 아치 형태로 폴리캅을 감쌌습니다. 폴리캅이 불에 타지 않자 군중들은 칼로 찌르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집행인들이 칼로 찌르자 피가 솟구쳐 나와 타오르는 불이 꺼졌습니다. 군중들은 놀랐습니다. 로마제국의 백부장은 폴리캅의 시신을 화장했습니다. 교인들은 폴리캅의 뼈를 추려 안치했습니다. 폴리캅이 순교하자 교인들은 용기를 얻었고, 로마제국은 박해를 중단했습니다. 폴리캅이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했듯이 우리 교인들도 고난 가운데 신앙을 지킨다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고난은 알곡과 가라지를 선별하는 작업이고 지금은 그 과정 중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신앙의 박해를 무릎 쓰고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천국 곳간에 들어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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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2:1-7 처음 사랑을 가지라.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일곱 교회는 오늘날의 터키 서부지역에 있던 교회로 지상에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일곱 교회가 어떻게 신앙 생활했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해야 할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나오는 교회는 에베소 교회로 지금은 셀주크(Selcuk)입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로 아시아 지역의 수도였습니다. 행정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의 해안도로와 서부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했고 근처에 항구가 있었습니다.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여신전과 다이아나 여신전이 있었고 시저와 도미티안 황제 신전도 있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는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이 있었고 사람과 맹수가 싸우는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관광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는 행정과 교통의 중심지다 보니 상업이 발달했고 아데미 신전과 원형극장이 있다 보니 관광객이 몰려들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사도 바울은 2차 선교여행을 하는 동안 에베소를 잠깐 방문하였고, 3차 선교여행 중에는 2년 동안 머물면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가르쳤습니다.(행19:10) 에베소는 우리나라의 부산정도 되는 도시로 사도 바울이 오랫동안 목회한 도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이지만 에베소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주신 말씀입니다. 1절 하반 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옵니다. “오른손에 있는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 라고 말씀합니다.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계1:20) 예수님이 일곱별을 붙잡았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고,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주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님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먼저 에베소 교회를 칭찬합니다. 2절 전반 절을 통해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라고 말씀합니다. 나는 네 행위 즉 네 수고와 인내를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를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수고와 인내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어떻게 수고하는지 우리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 인내하는지 알고 계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수고는 2절 하반 절을 통해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이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거짓 사도에 대항하여 싸우는 수고를 했습니다. 우리도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이단에 빠지지 않는 것도 수고하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단과 맞서느라 수고 했듯이 우리 교인들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단과 거리를 두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인내는 3절을 통해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라고 말씀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박해를 받았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는 인내를 했습니다. 신앙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입니다. 단거리 선수처럼 순간적인 힘이 아니라 장거리 선수처럼 꾸준한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또 하나를 칭찬받았는데 6절을 통해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니골라당은 우상숭배와 음란한 행동을 조장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음란하게 살지 않고 정결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신랑이고 교회는 신부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신랑과 신부가 만납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가 정결하게 살아야 하듯이 우리 교인들도 가정을 지키며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세 가지를 칭찬받았습니다. 이단에 맞서느라 수고했다고, 박해를 견디고 인내했다고, 몸을 정결하게 지켰다고.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책망합니다. 4절을 통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이광진 교수는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과 이웃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해석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지요? 은혜를 받을 때는 주님을 위해서 살겠다고 눈물 콧물 흘리며 다짐했지만 사이다에 김이 빠지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신앙이 약해지더니 주님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을 위해 살기에 급급해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향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았는지요? 가장 가까운 이웃은 부부입니다. 부부는 결혼할 때는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했지만 비바람에 바위가 깎여 나가듯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랑이 식어가더니 천생연분이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고 맙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경고합니다. 5절을 통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옮기리라.” 고 말씀합니다.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처음 사랑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사랑이 식은 원인을 찾아 다시 사랑에 불을 붙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다시 말해 지상에서도 천상에서도 사라지게 하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처음 사랑이 식은 원인은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직분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월급봉투를 감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봉이 작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처음에는 애굽에서 구해주신 것을 감사했는데 광야를 지나면서 목이 마르다고 불평하고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게 되었습니다. 감사가 사라지면 처음 사랑이 식어버립니다. 우리는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어느 날 노만 빈센트 필 목사님에게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했으니 자살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필 목사님은 잃은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잃은 것보다 가진 것이 더 많았습니다. 그 사람은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우리도 없는 것을 불평하기보다 있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차동엽 신부님은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되기 위해 Thank you!와 Congratulation!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마운 일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축하해 주는 게 선진국민입니다.

교회의 통치자요 교회의 주님인 예수님은 이제 에베소 교회를 위해 약속합니다. 7절을 통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네가 영적인 귀를 가지고 있다면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은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고 약속합니다. 생명나무가 어디서 나오는지 기억나십니까?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신 에덴동산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하셨지만 다시 창조하실 천국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계22:2,14,19) 천국은 에덴동산보다 낫다는 말씀입니다. (이필찬 교수처럼 계 21장 1절부터 22장 5절을 천국이 아니라 교회로 해석한다면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교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설교해야 한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회복했을까요? 회복하지 않았습니다. 에베소는 주후 262년에 고투족의 공격을 받아 폐허가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3대도시가 폐허도시가 되었습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촛대를 옮기신 결과입니다. 우리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가정은 전쟁터가 아니라 개그콘서트 현장이 됩니다. 웃음꽂이 만발합니다. 우리가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목사님은 생활을 간섭하는 사감선생이 아니라 천국으로 안내하는 가이드가 됩니다. 천국가이드가 됩니다. 하나님에 향한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부부끼리 처음 사랑을 회복합시다. 그것이 가정이 살고 신앙이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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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2:42 성령님을 받고나서

저는 요즘 성령님에 관해 설교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그림자처럼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해가 뜨면 그림자가 생기고 해가 지면 그림자가 가려지듯이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시는 것처럼 느껴지고 믿음이 약해지면 성령님이 동행하시는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가 뜨든 안 뜨든 그림자는 있듯이 우리가 믿음을 가지든 가지지 않든지 성령님은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해 달라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감정 기복이 심한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보고 용기를 내서 물위를 걸어가기도 했고 바람을 보고 무서워하여 물속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붙잡아가지 못하도록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했고 예수님이 붙잡혀가시자 대제사장의 여자 종에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널뛰기를 하던 베드로가 성령님을 받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마리아의 집(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다가 성령님을 체험했습니다. 베드로와 함께 성령님을 체험한 사람은 120명 이었습니다. 120명이 성령님을 체험하자 예루살렘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마침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명절을 지키러 시골 사람들과 해외 동포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구경하러 왔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새 술에 취했다(성령님이 임하셨다.)고 설교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 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베드로는 능력 있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120 명에서 3,l20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교회도 지금은 작은 교회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놀랍게 부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많은 영혼들을 맡겨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을 주는 교회가 된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몰려옵니다. 물고기는 먹이가 있는 곳에 몰리듯이 마음이 상한 영혼들은 위로가 있는 곳에 모이기 마련입니다. 요즘 국지성 집중호우가 내려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가랑비가 내리면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지만 소나기로 쏟아지면 수마가 땅을 할퀴고 지나갑니다. 우리교회도 갑자기 부흥한다면 혼란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호우예방을 한다면 산사태가 나지 않고 빗물이 스며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작용이 없이 교회가 부흥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 42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아멘! 그들은 새로 예수님을 영접한 3천 명을 말씀합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12 제자를 말씀합니다. 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 중에 120 명은 성령님을 체험한 교인들이었고 3 천명은 새로 입교한 교인들이었습니다. 저는 새로 입교한 교인들이나 성령 받은 교인들이나 모두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초신자가 신앙이 자라는데 기존신자가 그대로 있겠습니까? 어떤 교인들은 더 이상 배우려하지 않고 과거에 매여 삽니다. 신앙은 사골곰탕이 아니라 즉석김밥입니다. 과거를 우려먹지 말고 현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신앙도 반영하시겠지만 현재의 신앙을 잣대로 삼으십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깨끗하잖습니까? 우리의 신앙도 과거의 추억에만 머물지 말고 새로운 신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듯이 우리 교인들도 목사의 지도를 받아 신앙이 자라야 합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모여서 수다 떨고 밥 먹고 노래방 가고 스트레스 풀고 헤어지지만 교인들의 교제는 신앙 지도로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 모임은 회원들의 단합을 목적으로 하는 친목회가 아니라 신앙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코이노니아입니다. 교회 모임에 신앙지도가 빠진다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됩니다. 신앙은 교인과 교인을 연결하는 접착제입니다. 신앙이 약해지면 결속력도 떨어집니다. 우리는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 한 형제 한 자매가 되듯이 교인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아 한 형제 한 자매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교제하지 않는다면 남남이 되지만 우리가 교제한다면 형제가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강의실에서만 만나지 않고 식당에서도 만나고 숙소에서도 만났습니다. 3년 동안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자면서 훈련했습니다. 우리도 예배를 같이 드리고 수련회를 통해 같이 밥 먹고 같이 잠잔다면 친해지게 됩니다. 시뻘건 숯불도 하나만 따로 놓으면 꺼져버리지만 함께 섞어놓으면 활활 타듯이 우리도 혼자 있으면 신앙이 약해지지만 함께 어울린다면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신앙을 주제로 서로 교제했듯이 우리 교인들도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교제한다면 신앙이 자라게 됩니다.

그들은 서로 떡을 뗐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떡은 빵을 말씀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밥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여 예배도 드렸고 성도들 가정을 돌아가면서 예배도 드렸습니다. 성도들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는 빵과 포도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도 하였고 음식을 가져와서 애찬식도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함께 먹는 식사를 아가페라고 합니다. 교회 식당을 아가페 홀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1장을 통해 주의 만찬을 나눌 때 유의 사항을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음식을 가져와 식사를 했는데 부자 교인들은 음식을 많이 가져와 밥도 배불리 먹고 포도주도 많이 마셔 취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교인들은 먹을 음식이 없어 시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고전11:27) 교회에 밥을 가져왔으면 자기 밥이 아니라 교회 밥입니다. 자기 밥이라고 자신이 많이 먹고 안 가져온 사람을 굶긴다면 그것은 죄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밥을 같이 먹으라는 말씀했습니다.(고전11:33) 초대교회 교인들이 같이 밥을 먹었듯이 우리 교인들도 같이 밥을 먹으면서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가 가진 특권입니다. 우리가 걱정거리가 있으면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켜 주셔서 우리가 기쁨이 넘칩니다. 이것을 ‘5기’라고 합니다.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면 기적이 일어나 기쁨이 넘친다. 초대교회 교인들 중에 120명은 성령님을 체험했는데 그들은 오로지 기도했기 때문에 성령님을 체험했습니다. 새로 입교한 3,000명도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우리 교인들도 기도에 힘쓴다면 우리 교회가 놀랍게 부흥하게 되고 교인들의 걱정거리도 사라지게 됩니다. 기도는 우렁각시입니다. 우렁각시가 청소도 해놓고 밥도 해놓듯이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자녀도 마음을 잡고 남편도 돌아옵니다. 이렇게 교인들이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 신앙이 성장하고, 교인들이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교제하고, 교인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고, 기도에 힘쓴다면 우리 교회는 저절로 부흥하게 됩니다. 전도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하는 겁니다. 음식이 맛있으면 소문내듯이 교회 다니면서 행복하다면 전도하지 않겠습니까? 성령님은 그림자처럼 우리와 동행하시고 성령님은 매듭처럼 우리를 사랑의 띠로 묶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을 체험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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