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38 성령님을 받으려면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업체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1,336명을 대상으로 성년의 날에 받고 싶은 선물을 조사했더니 ‘이성 친구’(23.9%)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어 했습니다. 2위는 ‘노트북’(15%)이었고, 3위는 ‘스마트폰’(13.2%)이었습니다. IT제품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을 조사했더니 남녀 모두 ‘꽃다발’(남 45.7%, 여 32.1%)을 꼽았습니다. 우리 천집사님 큰일 났습니다. 2위로 남학생은 ‘속옷 · 의류’(14.2%)를, 여학생은 ‘키스’(15.5%)를 꼽았습니다.(엑스스포츠뉴스 2011년 5월 13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습니까?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저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미국의 드와이트 무디 목사님은 성령님을 선물로 받고 백만 명을 전도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김익두 목사님은 성령님을 선물로 받고 28만 명을 전도했고 만 명을 치유했습니다. 제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은 사도행전 2장 38절을 통해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아멘! 하나님은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려면 첫째,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죄로 향하는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겁니다. 미국의 22대와 24대 대통령을 역임한 클리블랜드는 젊은 시절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술집을 가다 예배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클리블랜드는 교회당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친구는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클리블랜드는 변호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었고 친구는 죄를 저지르다 사형수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감옥에서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에 취임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통곡했다고 합니다.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가 평생을 좌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로 향하는 발걸음을 하나님께로 돌리십시오. 저는 회개를 영혼의 설거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나면 물로 깨끗이 닦아놓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음식을 담아서 먹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죄를 짓게 됩니다. 그릇이 지저분해지듯이 영혼이 지저분해집니다. 그러면 물로 그릇을 깨끗이 씻어야 하듯이 회개로 우리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지저분한 그릇에 음식을 담지 않듯이 하나님은 더러운 영혼에 성령님을 부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릇을 설거지하고 음식을 담아먹듯이 우리가 회개해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려면 둘째,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설거지하면 그릇이 깨끗해지듯이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일본 여자 성경학교 기숙사에 도둑이 들어 어떤 여학생의 외투를 훔쳐갔습니다. 주머니를 뒤졌더니 돈은 없고 작은 가죽 책이 있었습니다. 도둑은 궁금해서 그 책을 읽었습니다. 도둑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성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도둑은 북해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목회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남편의 책을 정리하다가 낯익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 성경책에는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 주시는 현상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지우개로 글자로 지우는 건 눈으로 보이지만 죄를 용서 받는 건 마음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으면 마음속에 평화가 밀려오고 몸은 솜털처럼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다면 물먹은 솜처럼 몸과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다고 확신하면 그제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교회를 다닌 지 6개월이 됐다고 세례를 받기보다 죄를 용서받았다고 확신이 생기면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세례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예식입니다. 교인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려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셋째, 성령님을 선물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 11절에서 13절 말씀을 통해 기도하면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생선을 먹고 싶다는데 뱀을 잡아 주지 않을 것이고 딸이 계란을 먹고 싶다는데 독이 있는 전갈을 잡아주지 않을 겁니다.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고 좋은 옷을 입히고 싶어 합니다.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녀가 달라고 기도하는데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성령님은 이성 친구보다도 더 좋은 선물입니다.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보다도 더 좋은 선물입니다. 닌텐도보다도 더 좋은 선물입니다. 성령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누가복음 11장 10절을 통해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해야 받고 찾아야 찾고 두드려야 열립니다. 엄마는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달라고 매달리십시오. 하나님은 야고보서 4장 2절 하반 절과 3절을 통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실 때까지 달라고 하지 않으니 받지 않는 겁니다. 달라고 하더라도 잘못 사용하기 때문에 주시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은 의사에게 메스를 맡기지 강도에게 흉기를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한다면 반드시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받는다면 무엇이 유익할까요?

어떤 교인이 추운 겨울에 서울에 있는 삼각산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산에 오르는데 누군가 농담을 건넸습니다. “한 시간 기도하는 사람은 일등병 신자입니다. 세 시간 기도하는 사람은 부사관 신자입니다. 하루 기도하는 사람은 위관 급 신자입니다. 3일 기도하는 사람은 영관 급 신자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이상 기도하는 사람은 장군 신자입니다.” 그는 형제봉 정상에 올라 자리를 잡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한참 기도하고 시계를 보니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추워서 하산하려는데 지나가던 사람의 농담이 생각났습니다. “일등병은 될 수 없지. 조금만 더 기도하자!” 그는 이렇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도하다가 3일 동안 금식하며 철야했습니다. 그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3일 만에 하산하는데 소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바람이 불더라도 흔들리지 마세요.’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어떤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찬양을 부르며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무릎이 깨져 피가 났습니다. 그는 “성령님을 받았으니 교만하지 말라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하셨구나!” 라고 깨달았습니다. 그가 산을 내려와 도로를 건너려는데 택시가 ‘삑’ 하고 급정거했습니다. 택시기사가 눈을 부라리며 “야! 너 눈 뼜냐? 눈 똑바로 뜨고 다녀!” 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는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니 몸을 소중히 가꾸라고 하시는구나!” 라며 감사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입이 삐쭉 나왔습니다. 그는 아내의 토라진 모습이 사랑스러워 “아무 연락도 없이 며칠 만에 들어왔으니 걱정 많이 했지?” 라고 부드럽게 말했더니 아내도 이내 풀어졌습니다. 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에게 환경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택시기사가 욕설을 퍼부어도, 아내가 토라져도 마음이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이 임해 병도 고치고 기적도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외적인 능력도 주십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받는 것은 잘 벼린 칼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님을 받으면 또 어떤 사람에게는 인격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인격이 변화된 것은 칼을 보관할 수 있는 칼집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인격이 겸비되지 않으면 브레이크 없는 차를 모는 것처럼 위험합니다. 우리에게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인격은 더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을 받아 능력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인격이 변화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둘 다 받고 싶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기도하여 외적인 능력도 받아 하나님의 살아계심도 나타내고 인격이 변화되어 예수님의 성품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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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16 성령님의 역할은?

교회 입구에 ‘신천지의 출입을 금합니다.’ 라는 경고문을 붙였습니다. 신천지는 교회로 들어와 미꾸라지가 흙탕물을 만들 듯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악랄한 이단입니다. 신천지에서는 교주인 이만희를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한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처음 보혜사는 예수님이고 또 다른 보혜사는 이만희가 아니라 성령님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간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사도들은 마리아의 집(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한지 7일 또는 10일 만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처음 보혜사이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은 강림하시고. 성령님은 예수님의 대타(代打)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대신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님은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동행하십니다. 성령님은 어떤 역할을 하실까요?

성령님이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는 ‘보혜사’라는 단어 속에 담겨있습니다. 보혜사는 그리스어로 ‘파라클레토스’인데 영어성경 NIV에서는 Counselor ‘상담자’라고 번역하였고 NRSV에서는 Advocate ‘대변자’라고 번역하였고 NKJV에서는 Helper ‘조력자’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상담자시오 대변자시오 조력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상담자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출생과정과 성장과정을 통해 부모나 형제에게 상처를 받았습니다. 결혼생활을 통해 부부간에 상처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상처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어른에게 상처를 받아 자녀에게 안겨줍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으면 자화상이 병들고 대인관계가 어려워집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다듬어지지 않은 돌처럼 여기저기서 부딪힙니다. 미국에서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상담사와 정신과의사와 목사가 협력하여 상담을 합니다. 성령님은 상담사와 정신과의사와 목사가 협력해서 상담하는 것보다 근본적이고 완벽하게 상처를 치료하십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4장을 통해 수가 여인은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낮잠을 자는 정오시간에 우물을 길러 왔습니다. 우물가에는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며 상담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수가 여인에게 남편이 다섯 명이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가 여인은 메시야를 만났다며 동네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수가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대인 기피증도 고쳤고 남자 중독증으로부터도 벗어났습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으면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찾아 헤매다가 중독이 됩니다. 어른 같으면 술 중독이 되고 어린이 같으면 컴퓨터 중독이 되고. 성령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8장 26절을 통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혹시 마음이 아프십니까? 최고의 상담자이신 성령님과 상담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가 마음 아플 때 같이 마음 아파하시고 우리가 쓰러져 있을 때 훌훌 털고 일어나도록 기도해주십니다.

성령님은 상담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변자이십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는 대변인이 있습니다. 대변인은 정당의 의견을 대표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정당의 입입니다. 우리나라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도 프리젠테이션의 첫 주자인 나승연 대변인의 공이 컸다고 합니다. 나승연 대변인은 냉정하게 동계 올림픽을 유치해야하는 당위성을 역설했고 김연아는 평창의 꿈을 이루어달라고 열정적으로 호소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대변자가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대변자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대신해 말씀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8장을 통해 소돔과 고모라가 죄를 너무 많이 저지르자 멸망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45명이 있으면, 40명이 있으면, 30명이 있으면, 20명이 있으면, 10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10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죄를 지은 소돔 사람들을 대변해 주었듯이 성령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우리를 대변해 주십니다. 혹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셨습니까? 최고의 대변자이신 성령님께 의뢰하십시오. 변호사는 수임료를 받지만 성령님은 무료로 변론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십니다.

성령님은 상담자이고 대변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조력자이십니다.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유명한 장군 밑에는 유능한 부하가 있었습니다. 유능한 부하가 있었기 때문에 유명한 장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정운 장군이라는 선봉장이 있었습니다. 정운 장군은 죽음을 무릎 쓰고 돌격했고 부하들은 뒤따랐습니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는 또 다른 이순신 장군이 있었습니다. 중위장 이순신 장군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다방면에 걸쳐서 이순신 장군을 보좌하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유능한 참모 덕분에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돕는 배필입니다. 아내가 기도로 도와주어야 남편이 마음 편하게 사회생활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교인은 목사의 돕는 사역자입니다. 교인이 도와주어야 목사가 하나님 눈치를 보며 목회 할 수 있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이라는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17장을 통해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전쟁을 할 때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아론과 훌은 돌을 가져다가 모세를 편안히 앉히고 이쪽과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무찔렀습니다. 하나님은 히브리서 13장 5절을 통해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분이십니다. 혹시 인생이 힘드십니까? 천국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으십니까? 최고의 조력자인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스웨덴의 작가 셀마 라게글로프(Selma Lagerlof)의 저서 [진홍가슴 새의 비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잿빛 털을 가진 새를 만드시고 ‘진홍가슴 새’라고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다. 작은 새는 물에 자기 몸을 비춰 보면서 어느 곳에도 진홍색이 없자 궁금해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저는 온통 잿빛 털을 가지고 있는데, 왜 진홍가슴 새라고 하셨나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네가 참사랑을 베풀 때 그 이름에 어울리는 깃털을 가지게 될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진홍가슴 새가 사는 둥지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지더니 한 사람이 못 박혀 매달렸습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던 작은 새는 마치 자기의 가슴에 못이 박힌 것 같은 아픔을 느꼈고 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 그에게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을 보니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시마다 피가 흘러 얼굴이 피로 물들었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작은 새는 작은 부리로 가시를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가 뽑힐 때마다 이마에서 피가 솟구쳤습니다. 그 피가 튀어 작은 새를 물들였습니다. 작은 새는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작은 새는 일을 마치고 나서 물로 씻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가슴에 묻은 피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목덜미와 가슴에 핏자국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작은 새의 새끼들은 태어날 때부터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색을 띠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진홍가슴 새가 되었습니다. 작은 새가 사랑을 베풀자 진홍가슴 새가 된 것처럼 성령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은 피를 흘려 사랑을 베푸셨고 성령님은 가시를 뽑아주며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성령님은 상담자가 되시어 우리의 아픔을 위로하시고 대변자가 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 호소하시고 조력자가 되어주시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도록 도우십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계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도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시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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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22-23 성령님의 열매는?

우리 속담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콩 씨를 심으면 콩 열매가 맺히고 팥 씨를 심으면 팥 열매가 맺히듯이 육체의 씨를 심으면 육체의 열매를 맺고 성령님의 씨를 심으면 성령님의 열매가 맺습니다. 성령님의 씨는 어떻게 심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의 씨가 내 안에 심어집니다. 우리 교회는 글 없는 책으로 구원 상담을 하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성령님의 씨가 뿌려졌습니다. 성령님의 씨가 뿌려진 후 성령님과 친하게 지내면 성령님의 열매가 맺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성령님이 주시는 열매입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과실수를 심었는데 에스라가 태어나고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는 처음에는 좁쌀만 한 크기의 연두색 열매가 맺히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구슬만한 크기의 자주색 열매로 커져가더라고요. 포도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포도송이가 달리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성령님의 열매가 맺힙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니 일꾼이 과수원 주인에게 앙심을 품고 과실수를 싹둑 잘랐다고 하더라고요. 포도를 따 가면 한 해 농사를 망치지만 포도나무를 자르면 몇 년간 손해를 봅니다. 과실수가 잘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하나님과 떨어져 있으면 성령님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발버둥 칩니다. 돈에 약한 사람은 돈으로 유혹하고 이성에 약한 사람은 이성으로 유혹하고 감투에 약한 사람은 감투로 유혹합니다. 사탄은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나님과 갈라지면 성령님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어야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을 꼭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을 붙잡는다고 성령님의 열매가 금방 맺히지는 않습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시간이 필요한 열매입니다. 바나나는 열매를 먹으려면 1년이 걸리고 파인애플은 2년이 걸리고 키위는 3년이 걸립니다. 과실수를 심으면 시간이 지나야 열매가 달리듯이 성령님의 열매도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KBS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을 보니 제주도에서 파란색 감귤을 따서 에틸렌가스로 분사하니 노란색 감귤로 바뀌더라고요. 강제 착색시킨 감귤은 당도도 떨어지고 빨리 썩습니다. 과일을 인위적으로 빨리 익게 하면 부작용이 생기듯이 성령님의 열매도 갑작스럽게 맺으면 설익게 됩니다. 신앙은 콩나물이 자라듯이 갑작스럽게 자라지 않고 나무가 비바람을 견디면 나이테가 생기듯이 점진적으로 자랍니다. 이 기간이 시련기고 시련기를 견뎌야 성령님의 열매가 알차게 열립니다. 아이도 아프고 나면 크잖아요? 신앙도 시련기를 거쳐야 한층 성숙해 집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시련기를 거쳐 몇 개나 열릴까요?

성령님의 열매는 하나의 열매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포도송이와 비슷해서 포도 한 송이에 여러 포도 알이 달리듯이 성령님의 열매는 한 송이에 9가지 열매가 달립니다. 포도송이에 알이 떨어져있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듯이 성령님의 열매도 9가지가 달려야 완전한 열매가 됩니다. 성령님은 성령님의 은사를 각 사람에게 맞게 몇 가지를 주시지만 성령님의 열매는 모든 사람에게 9가지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9가지 열매가 모두 달리면 하나님의 성품이 완성됩니다. 9가지 열매는 크게 하나님과 이웃과 자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희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기희생이 사랑입니다.(롬5:5)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마땅합니다. 희락은 내적인 기쁨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안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사도 바울은 환란 가운데도 기뻐했습니다.(고후7:4) 우리가 기뻐해야 우리의 행복한 얼굴을 보고 전도가 됩니다. 우리가 오만상 찌푸리고 ‘예수 믿으세요.’ 하면 ‘너나 믿어라.’ 고 핀잔합니다. 화평은 내적인 평화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입니다. 돈이 있어서 편안한 게 아니라 고난이 닥치더라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고 인사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보낼 때 인사말에 ‘주님의 은혜와 평화를 빕니다.’ 라고 썼습니다. 기독교서점에서 파는 액자에도 ‘여기 들어오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이웃과 관련해서는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인내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납해야 합니다. 눈에 거스른다고 담을 쌓다보면 온 세상이 담벼락이 됩니다. 예수님은 70번씩 7번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한대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했는데 주먹은 멀고 인내가 가까워야 합니다. 자비는 친절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만난 유대인을 외면했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은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친절하고 나쁘면 불손하지 않고 기분에 상관없이 상황에 관계없이 친절해야 합니다. 양선은 선함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담임목사인 바나바는 부목사인 바울을 자신보다 유명한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악한 끝은 있어도 선한 끝은 없다 고 했습니다. 남에게 악한 일을 하면 보응을 받게 되고 착한 일을 하면 보답을 받게 됩니다. 선행을 베푸십시오./ 자신과 관련해서는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어야 합니다. 충성은 믿을 수 있음입니다. 사람은 신실해야 합니다. 장사도 신용이 있어야 사업할 수 있듯이 사람도 신실해야 사람이 따릅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온유는 부드러움입니다. 모세는 온유했습니다. 모세는 불평덩어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간 이끌었습니다. 부드러운 물방울이 강한 바위를 뚫잖습니까? 강한 다이아몬드도 물의 압력으로 잘리지 않습니까? 우리 부드러운 사람이 됩시다. 절제는 자기 다스림입니다. 운동선수는 자기를 다스리고 훈련에 매진해야 메달을 딸 수 있습니다. 우리도 자기를 다스려야 신앙과 인격을 지킬 수 있습니다. 말도 절제하고 행동도 절제하고.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마칩니다.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할 수 없고 절제가 없으면 은혜롭게 마무리 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절제로 마무리합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고 어떤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있습니까? 성령님의 열매는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면 시련기를 거처 한 송이에 9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9가지 열매를 모두 맺으면 하나님의 성품에 도달하는데 우리는 포도 알이 떨어져나간 포도송이처럼 9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국도를 타고 고향으로 가다보면 상주시 모서면 포도단지를 지나게 됩니다. 포도를 살 때 포도 알이 떨어져나간 포도송이를 고르면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몇 송이를 더 얹어 주더라고요. 우리는 포도 알이 떨어져나간 포도송이처럼 서로 부족합니다. 그러나 포도송이를 얹어 주듯이 우리가 서로를 보완해준다면 포도 알이 꽉 찬 포도송이처럼 값이 나갑니다. 우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공동체가 됩시다. 나의 부족한 부분은 남이 채우고 남이 부족한 부분은 내가 채우고. 우리는 포도 알이 떨어졌으니 몇 송이를 얹어서라도 예수님의 성품에 도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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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2:4-11 성령님의 은사는?

오늘 예배 후에 삼겹살을 구워먹습니다. 우리가 고기를 먹으려면 뇌가 고기를 집으라고 명령합니다. 손이 고기를 집으면 입이 크게 벌리고 이빨과 혀가 협력해서 고기를 씹습니다. 목구멍이 속으로 넘기면 위가 주물럭거려 창자로 보냅니다. 창자는 영양분을 흡수하고 찌꺼기는 작은 것과 큰 것으로 나누어 배출합니다. 우리 몸의 기관들은 자기 은사에 맞게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죠. 교회도 교인들이 자기 은사에 맞게 봉사해야 건강한 교회로 부흥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성령님의 은사에 대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의 은사란 무엇일까요? 미국의 교회성장학자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은사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성령님께서 교회의 지체들에게 허락하신 특별한 영적 능력이다.” 고 정의했습니다.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성장을 위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2장 7절을 통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려고 은사를 주십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은사를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은사를 주십니다./ 은사는 누가 주실까요? 은사는 성령님의 뜻대로 주어집니다. 은사는 구한다고 주지 않고 성령님이 주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12장 11절을 통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은사는 누구에게 주실까요? 은사는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시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사람은 선천적으로 재능을 타고나기도 하고 후천적으로 재능을 개발하기도 합니다. 은사는 재능과 연관되지만 재능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은사는 교인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우리가 재능이 있더라도 은사를 사모해야 재능을 능가하는 은사를 성령님이 주십니다./

성령님의 은사는 몇 가지나 될까요? 성경에는 은사목록이 나오는데 로마서 12장과 고린도전서 12장과 에베소서 4장과 베드로전서 4장에 나옵니다. 이것을 기억하기 쉽게 12-12-4-4 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는 25가지의 은사가 나옵니다. 교회성장연구소의 홍영기 박사는 25가지 은사를 네 가지 은사로 분류했습니다.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 찾아보십시오. 첫째로 언어와 관련된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와 방언통역의 은사와 예언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방언의 은사는 배우지 않은 언어로 기도하고 찬양하는 은사입니다. 방언통역의 은사는 방언을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알려주는 은사입니다.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개인과 교회에 전달하는 은사입니다.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저는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둘째로 인격과 관련된 은사가 있습니다. 지식의 은사와 지혜의 은사와 섬김의 은사와 긍휼의 은사와 권면의 은사와 돕는 은사와 구제의 은사가 있습니다. 지식의 은사는 교회에 유익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은사입니다. 정선희 사모님은 지식의 은사가 있습니다. 저에게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를 줍니다. 지혜의 은사는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은사입니다. 섬김의 은사는 교회의 부족한 부분과 필요한 부분을 채우는 은사입니다. 박 권사님과 천 집사님이 섬김의 은사가 있습니다. 긍휼의 은사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은사입니다. 김수영 집사님이 긍휼의 은사가 있는 것 같아요. 긍휼의 은사가 있어야 기부도 잘 합니다. 소액기부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권면의 은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와 조언을 해주는 은사입니다. 돕는 은사는 지도자를 도와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 은사입니다. 구제의 은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물질을 드리는 은사입니다. 헌금이 구제의 은사입니다. 저는 돕는 은사가 있습니다.

셋째로 사역과 관련된 은사가 있습니다. 사도의 은사와 목사의 은사와 복음전도의 은사와 리더십의 은사와 행정의 은사가 있습니다. 사도의 은사는 교회를 다스리고 목사를 감독하는 은사입니다. 감독과 감리사는 사도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의 은사는 성도의 영적성장을 위해 양육하는 은사입니다. 복음전도의 은사는 전도를 잘하는 은사입니다. 전도는 은사이자 의무입니다. 리더십의 은사는 교회를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를 부여하여 그 비전대로 추진하는 은사입니다. 행정의 은사입니다. 교회의 장단기 목표를 수립하고 실행하는 은사입니다. 행정의 은사는 다스리는 은사라고도 합니다. 권 집사님은 사장이니 동기를 부여하고 추진하는 리더십의 은사와 회사의 장단기 목표를 수립하는 행정의 은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영산업이 청소용품업계 1위가 됩니다. 저는 목사의 은사가 있습니다.

넷째로 표적과 관련된 은사가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와 능력 행함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가 있고 기타 은사로 중보의 은사와 독신의 은사와 청빈의 은사와 순교의 은사와 선교의 은사가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은사입니다. 능력 행함의 은사는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적을 일으키는 은사입니다. 영분별의 은사는 어떤 일이 하나님께 나온 것인지 사람에게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에게 나온 것인지 확실히 아는 은사입니다.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그것을 실천하는 은사입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교회가 부흥하려면 목사에게 리더십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기타 은사에는 중보의 은사가 있습니다. 중보의 은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응답받는 은사입니다. 독신의 은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평생을 혼자 사는 은사입니다. 청빈의 은사는 검소하고 깨끗하게 살아가는 은사입니다. 순교의 은사는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에 마주칠 때 기쁘게 죽는 은사입니다. 선교의 은사는 다른 문화권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거나 선교사를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는 은사입니다. 저는 중보의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두 가지의 은사가 있는데 대표적인 은사가 있고 보조적인 은사가 있습니다. 저의 대표적인 은사는 가르치는 은사이고 보조적인 은사는 돕는 은사와 목사의 은사와 중보의 은사입니다.

우리가 은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연합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삼겹살을 먹을 때 입은 먹으니까 즐겁지만 위는 소화시켜야하니까 힘듭니다. 위가 힘들다고 파업한다면 입은 입맛이 당기지 않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먹지 않으면 영양분이 전달되지 않으니 몸은 힘이 빠집니다. 우리 몸의 신체기관 중에서 보이는 입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위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 중에 폼 나는 은사도 중요하지만 궂은일을 하는 은사도 중요합니다. 전부다 가르치는 은사만 있다면 누가 섬기겠습니까? 전부다 비전을 제시한다면 누가 돕겠습니까? 하나님은 로마서 8장 28절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은사를 합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사용하시길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은사를 합하여 행복한 가정을 가꾸길 바라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부족합니다. 나의 은사와 다른 사람의 은사가 합해져야 화목한 가정이 되고 부흥하는 교회가 됩니다. 하근찬 선생이 쓴 [수난시대]라는 책을 보면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가 팔 한쪽을 잃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한국전쟁이 일어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는 기차역까지 마중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들에게는 한쪽 다리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보며 비통해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말없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외나무다리가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로는 외나무다리를 건널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망설이다 아들에게 등을 내밀었습니다. 아들은 마지못해 아버지 등에 업혔습니다. 두 다리가 성한 아버지는 조심스럽게 외나무다리를 건넜고 두 팔이 멀쩡한 아들은 아버지를 꼭 잡고 중심을 잡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의지해 외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쪽 팔이 없거나 한쪽 다리가 없습니다. 부부 한 사람의 힘으로 가정을 아름답게 꾸릴 수 없고 목사 한 사람의 힘으로 교회를 크게 부흥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가정을 화목하게 가꾸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의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주님을 위해 봉사할 일입니다. 아이들이 걱정되면 교사가 되고 지저분한 게 보이면 청소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자기 은사를 찾아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부흥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합하여 선을 이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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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18 성령 세례와 충만은?

우리나라 말 중에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에 대해 말도 많이 하고 탈도 많이 생길 때 하는 말입니다. 요즘 대학 반값 등록금 문제가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등록금을 내리면 세금을 올리게 됩니다. 대학 등록금 문제뿐만 아니라 성령님에 관한 생각(성령론)도 교파마다 생각도 다르고 평가도 다르기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웨슬리안(감리교와 성결교)과 오순절(순복음)은 성령님에 관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개혁주의(장로교)는 아직 성령님에 관해 일치된 생각을 정리하지 않습니다. 저는 감리교회의 입장에서 성령 세례와 충만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거듭납니다. 중생합니다. 거듭나면 두 번 태어났기 때문에 한 번 죽습니다. 개혁주의 일부에서는 이것을 성령세례라고 합니다. 중생한 순간이 성령 세례를 받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감리교회는 이것을 1차 체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듭나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성령님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2차 체험이라고 합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이것을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능력이 임합니다.(성경에는 성령 세례에 관한 본문이 7번 나옵니다. 세례자 요한이 네 번 언급했고(마3:11;막1:8;눅3:16;요1:33), 예수님이 한 번 언급했고(행1:5), 베드로가 한 번 언급했고(행11:16), 바울이 한 번 언급했습니다(고전12:13)). 베드로는 성령 세례를 받고 한 번 설교하자 3천명이 회개하고 또 한 번 설교하자 5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능력 있는 목사가 됩니다.

미국에 드와이트 무디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수선공으로 일하다 나중에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열심히 기도하고 설교를 준비했지만 어떤 여자 교인이 ‘무디 씨의 설교에는 힘이 없다.’ 고 불평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은 그 교인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무디 목사님이 뉴욕에 갔을 때 이상한 힘이 머리 위를 누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힘이 너무나 강력해 무디 목사님은 호텔로 들어가 ‘오 하나님이시여, 손을 멈추어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무디 목사님이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성령님을 부어주셨고 무디 목사님은 능력 있는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 세례를 받으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 세례는 딱 한 번만 받으면 됩니다. 단회적 체험입니다. 오순절에 마리아의 집(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강한 바람 소리가 들렸고 불이 번져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120명의 성도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순복음에서는 성령 세례를 받은 증거가 방언이라고 합니다. 감리교회에서는 성령 세례를 받아도 방언을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은 무엇일까요? 성령 충만은 성령님으로 가득 차는 겁니다. 성령 세례는 한 번만 받으면 되지만 성령 충만은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성경에는 성령 충만에 관한 본문이 10번(?)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9번 나오고(행2:4;4:8,31;6:3;7:55;9:17;11:24;13:9,52), 에베소서에 한 번(엡5:18) 나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5장 18절을 통해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에 네 개의 동사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동사가 어떻게 성령 충만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성령 충만하라는 동사는 첫째, 명령법으로 나옵니다. 명령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왜 성령 충만해야 할까요? 우리가 몸이 약하면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해 몸살에 걸리듯이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시험에 들게 됩니다. 우리는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둘째, 복수형으로 나옵니다. 복수는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입니다. 목사만 성령 충만 하지 않고 우리 교인들 모두가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감기에 걸리면 전염되니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특정한 사람에게 성령님을 부어 주셨지만 신약시대에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님을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 교인들 모두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수동태로 나옵니다. 능동은 자신이 주도하지만 수동은 다른 사람이 주도합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 힘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겁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제자들처럼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에 성령님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 충만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현재시제로 나옵니다. 헬라어로 명령법이 현재형이면 그 행동은 계속적인 겁니다. 즉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겁니다. 예전에는 성령 충만했는데 지금은 충만하지 않다면 성령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신앙은 사골 곰탕처럼 과거를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즉석 김밥처럼 지금 만들어가는 겁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면 은혜로운 교인이 됩니다.

박금출 목사님이 쓰신 [실화사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에 명물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마른 막대기 목사’와 다른 하나는 ‘마른 막대기 교회’ 이었습니다. 마른 막대기 목사님은 부임하는 교회마다 6 개월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성질이 까다롭고 은혜가 없는 목사였습니다. 마른 막대기 교회는 싸움만 하고 사랑이 없는 교회라 목사님이 6 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교회였습니다. 마른 막대기 목사님이 노회장을 찾아가 교회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회장이 신경질을 부리며 ‘아니, 이 사람아! 자네가 갈 교회가 어디 있나?’ 라고 야단을 치고 있는데 마른 막대기 교회 장로님이 찾아와 목사님을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노회장은 같은 날 목사는 교회를, 교회는 목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지 않을까 싶어 서로를 연결시켜 주면서 마른 막대기 교회 장로에게 ‘이번에 가는 목사님이 마지막이니까 잘 모시지 못하면 그 교회를 폐지하겠습니다.’ 라고 엄포를 놓았고 마른 막대기 목사님에게는 ‘이번에도 6 개월을 넘기지 못하면 목사 자격이 없으니 목사직을 사임하시오.’ 라고 다짐받았습니다. 싸움만 하는 마른 막대기 교회에 은혜가 없는 마른 막대기 목사님이 부임했으니 큰일 났습니다.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마른 막대기 목사님은 부임 설교를 하고 교인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성질이 드러나니까 아예 산으로 올라가서 기도하고 성경 읽고 토요일이 되면 내려와 주일 예배를 드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 성령 충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마른 막대기 교회는 교인들이 서로 조심하면서 목사님이 안 계신 동안 교회로 나와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지냈습니다. 3 개월 후 노회장이 그 지역을 순회하다가 마른 막대기 교회를 방문하였습니다. 노회장이 교회 가까이에 가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노회장은 ‘아이쿠, 또 싸움이 났나보구나.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더니.’ 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일입니까? 마른 막대기 교회 교인들이 기도하고 찬송하느라 교회가 용광로처럼 활활 타올랐습니다. 노회장은 깜짝 놀라 ‘장로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장로는 ‘노회장님, 마른 막대기 교회에 마른 막대기 목사님이 부임하여 둘 다 불이 붙었으니 얼마나 잘 타겠습니까?’ 라며 활짝 웃었습니다. 그리하여 마른 막대기 교회는 펜실베이니아 주의 가장 은혜로운 교회요 마른 막대기 목사님은 가장 능력 있는 목사님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성령 세례와 성령 충만을 사람의 말로 설명하기 불충분합니다만 새차를 뽑는 것과 운전하는 것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아도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새차를 뽑고 운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하다면 새차를 뽑아 운전하는 것처럼 아주 신이 납니다. 중생과 성령 세례는 새차를 뽑는 것이요 성령 충만은 운전면허증입니다. 주유소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몰다보면 기름이 떨어지듯이 우리가 살다 보면 신앙이 시들해 집니다. 그러면 주유소에 가서 기름을 넣듯이 우리가 교회에 와서 성령 충만해져야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차는 기름이 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빨리 주유소에 가서 주유하십시오. 빨리 교회에 가서 성령 충만을 받으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살고 여러분이 살아야 여러분의 가정도 살고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야 여러분의 교회도 살 수 있습니다. 새차를 뽑았으니 교회에서 성령 충만을 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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