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51:11 성령님의 상징은?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이 성경공부 시간에 할머니 권사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권사님, 하나님은 몇 분이시죠?” 목사님은 하나님의 본질이 몇 분인지 물었습니다. 권사님이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한 분이시지유.” 목사님이 기뻐서 다시 질문했습니다. “그러면 한 분이신 하나님은 몇 개의 위격이시죠?” 권사님은 잠시 망설였습니다. “두 개의 위격이지유.” 목사님은 순간 당황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교회당 벽에 걸려 있던 성화를 봤는디유 수염 달린 할아버지(성부)와 젊은 청년(성자)과 비둘기(성령)가 그려져 있었구먼유.” 목사님은 답답했습니다. “그럼 세 개의 위격이잖아요.” 권사님이 손사래를 쳤습니다. “목사님은 젊어서 모르시는 것 같은디유 나도 이렇게 늙었는데 그 수염 달린 할아버지는 벌써 돌아가셨을꺼구먼유. 그러니 두 개의 위격이겠쥬.” “......” 시골교회 권사님은 비둘기가 성령님을 상징한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죽지 않으신다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 하면 비둘기를 떠올립니다만 성경에는 성령님에 관한 상징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상징을 통해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성령님은 물로 묘사됐습니다. 아이들이 밖에서 흙장난을 하고 지저분해져서 집에 들어오면 엄마는 아이에게 가서 씻으라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애찬을 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손을 씻기잖아요? 물이 더러움을 씻어주듯이 성령님은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어주십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듣고 시편 51편을 지었습니다. 다윗은 시편 51편 7절 하반 절을 통해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라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죄를 지었으면 성령님을 찾으십시오. 성령님이 여러분의 죄를 씻어주십니다. 다윗이 성령님을 거두지 마시라 기도했듯이 성령님은 여러분을 떠나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바람으로 묘사됐습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바람이 부는 소리는 들리는데 바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오순절에 마리아의 집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장 2절을 통해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온 집을 가득 채우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바람이 눈으로 보이지 않듯이 성령님은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신비로운 분이십니다. 성령님을 보고 싶습니까? 성령님은 바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호흡으로 묘사됐습니다. 사람은 호흡이 멈추면 죽습니다. 사람이 쓰러져 의식과 호흡이 없으면 119에 신고하고 가슴압박을 해야 합니다. 심폐소생술이 예전과 달라졌는데 인공호흡을 하지 않고 가슴을 1분에 100번 정도 강하게 압박하면 피가 짜져서 뇌로 전달된다고 합니다. 119 구급대가 5분 안에 와서 전기충격을 가하면 호흡이 돌아온다고 하네요. 하나님은 창세기 2장 7절을 통해 땅의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생령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생기가 호흡입니다. 생기는 사람에게 육체적인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37장을 통해 마른 뼈들이 널려있는데 생기를 들어가게 하시니 이 뼈 저 뼈가 연결되어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생기는 사람에게 영적인 생명을 줍니다. 여러분 혹시 시동 꺼진 자동차처럼 신앙적으로 멈춰버렸습니까? 호흡이신 성령님을 사모하십시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주십니다.

성령님은 불로 묘사됐습니다. 인류 역사 상 가장 큰 발명은 불의 발견입니다. 불을 발견하면서부터 사람은 날 것을 먹지 않고 익혀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불은 잘 사용하면 엄청난 유익을 주지만 잘못 사용하면 커다란 피해를 줍니다. 산에서 쓰레기를 태우다가 산불이 나 수십 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이 새까맣게 타버리잖아요? 불은 엄청난 위력이 있습니다. 오순절에 마리아의 집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사도행전 2장 3절을 통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이 들불처럼 퍼지고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불이 엄청난 능력이 있듯이 성령님은 엄청난 능력을 내려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님이 임하시자 권능을 받고 권능을 받자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능력을 체험하고 싶습니까? 불이신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성령님은 기름으로 묘사됐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에게 기름을 부어 직분을 맡겼습니다. 히브리어로 ‘메시야’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자 선지자이자 왕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후서 1장 21절 하반 절을 통해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사도가 되었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 직분을 맡았습니다. 사명을 감당하고 싶습니까? 성령님으로 기름 부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김 집사님은 ‘주님, 선교부장을 감당하게 기름 부어 주세요.’ 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성령님은 비둘기로 묘사됐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님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임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비둘기를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에서는 온순과 순결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16절 하반 절을 통해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둘기가 온순을 상징하듯이 성령님은 우리의 성품을 온순하게 가꾸십니다. 여러분의 성격이 불 같습니까? 자신의 성격을 다듬고 싶으면 비둘기 같은 성령님을 찾으십시오.

성령님은 도장으로 묘사됐습니다. 도장을 찍는 경우는 보통 세 가지 경우입니다. 화가가 미술작품에 낙관을 찍어 자신의 작품이라고 확인하는 경우와 소나 말에 낙인을 찍어 자신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경우와 우편물에 도장을 찍어 아무도 열어보지 못하도록 인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1장 13절 하반 절을 통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장을 찍어 소유권을 주장하듯이 성령님은 우리에게 도장을 찍어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보증해 주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까? 성령님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보증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은 성령님을 여러 가지 상징으로 묘사하셨습니다. 물이신 성령님은 우리 죄를 정결하게 씻어주셨습니다. 바람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신비롭다고 알려주셨습니다. 호흡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셨습니다. 불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내려주셨습니다. 기름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부어주셨습니다. 비둘기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온순하게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도장이신 성령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보증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님의 어떤 모습이 필요합니까? 물 정결, 바람 신비, 호흡 생명, 불 능력, 기름 사명, 비둘기 온순, 도장 보증. 성령님은 이외에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무지개처럼 7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무지개는 비나 물보라나 안개가 햇빛이나 달빛이 비출 때 땅에서부터 하늘에게까지 나타나는 반원형 고리입니다. 무지개의 색깔이 분명하지 않아 나라마다 몇 가지인지 다르지만 무지개의 색깔은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깔입니다. 무지개가 일곱 빛깔일 때 가장 아름답듯이 성령님도 일곱 가지 상징을 가질 때 가장 완전합니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듯이 성령님을 골고루 알아야 건강한 교인이 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으로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수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중생하게 하시고 성결하게 하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적용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예수님 대신에 보내주신 분이십니다. 요즘 프로야구가 인기인데 성령님은 예수님의 대타(代打)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 대신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도 성령님과 함께 합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은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우리를 아름답게 가꿔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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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9:2 성령님은 누구신가?

아프리카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가 성령님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가 비둘기와 비교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교사는 비둘기 한 마리를 구해 새장에 넣고 주일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예배시간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는 아프리카인 관리집사에게 새장을 강대상에 가져다 놓으라고 부탁했습니다. 관리집사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어젯밤에 고양이가 성령님을 잡아먹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관리집사는 비둘기를 성령님으로 오해했습니다. 아프리카인 관리집사 뿐만 아니라 우리도 성령님이 누구신지 오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님이 계신다는 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성령님은 히브리어로 ‘루아흐’라고 하는데 바람, 호흡, 영이라는 뜻입니다. 바람이 보이지 않듯이 성령님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성령강림주일을 맞아 성령님은 누구신지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누구실까요?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신데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 이렇게 세 분으로 구분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고 위격은 셋입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제3위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제3위의 하나님이라고 해서 하나님에게 서열이 있는 것은 아니고 편의상 구분한 겁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피차간에 동등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인격이십니다. 인격이신 성령님은 지성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요한복음 16장 13절을 통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과거의 일과 미래의 일을 아십니다. 인격이신 성령님은 감정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4장 30절을 통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할 때 근심하십니다. 인격이신 성령님은 의지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8장 26절을 통해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성령님은 에티오피아 내시를 구원하시기 위해 빌립 집사를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은 어떤 일을 하실까요? 성령님은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 후서 1장 21절을 통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은 다시 말해 성경은 성령님이 성경 저자들을 통해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의 저자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중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디도서 3장 5절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위로부터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배속으로부터 한 번 태어나고 성령님으로부터 또 한 번 태어납니다. 한 번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습니다. 수명이 다해 육체적으로 한 번 죽고 지옥에 떨어져 또 한 번 죽습니다. 영원히 죽습니다. 그러나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습니다. 수명이 다해 육체적으로 한 번만 죽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도행전 15장 8-9절을 통해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시 그릇을 깨끗이 설거지 하고 음식을 담아먹듯이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분하자면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으로 죄로 물든 세상을 살리기 위해 구원을 계획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으로 구원을 완수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거듭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분으로 구원을 적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과 예수님은 많이 배웠지만 성령님은 소홀히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 하도록 새 힘을 공급해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을 멀리하면 신앙도 게을러지고 성령님을 가까이하면 신앙도 즐거워집니다. 성령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데 한국교회 초창기 부흥사 중에 김익두 목사님이 계십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기적과 치유를 일으킨 한국의 베드로였습니다. 청년 김익두는 사기를 당해 재산을 탕진하면서 타락하였습니다. 주색잡기에 빠졌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불량배가 되었습니다. 김익두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사람들은 성황당에 ‘오늘 호랑이 익두인지 억두인지 만나지 않게 해 주소서’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김익두는 만나는 사람마다 강제로 돈을 빼앗아 ‘김내라’라는 별명도 붙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양 여자가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김익두는 ‘뭐 나더러 (서)양귀신을 믿으라고?’ 하며 전도지로 코를 풀어 길바닥에 팽개쳤습니다. 서양 여자는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 라고 경고했습니다. 김익두는 그 일이 있은 후에 ‘어느 모로 보나 자기보다 개화되어 있는 서양 여자가 멀리 이국땅에 와서 저러는(전도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친구인 박태후의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도 더하다고 김익두는 한문 신약성경을 100번 읽으며 신앙에 심취했습니다. 김익두는 삼 일간 금식기도를 하고 산에서 내려 올 때 큰 불덩어리가 가슴에 떨어져 화끈거리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하늘에서 ‘김익두야! 김익두야!’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김익두는 자신 같은 죄인을 부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익두는 회심하고 나서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사람을 때린 장소를 찾아가 통곡했습니다. 김익두는 평양신학교를 3회로 졸업하고 부흥사가 됐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특히 병을 고치는 치유의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임택권 목사님은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에서 기적이 일어난 장면을 기록하고 사진을 찍어 ‘이적증명회’를 만들었습니다. 만 명 정도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알려졌습니다. 동아일보는 ‘김익두의 이적’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는 젊은이들이 파도타기를 합니다. 여러분 혹시 신앙의 파도타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목사님보다 더 뜨겁게 신앙 생활했다 어떤 때는 초신자보다 더 차갑게 신앙 생활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성령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는 순간 낡은 차가 시동이 꺼지듯이 신앙의 배터리가 방전되고 맙니다. 성령님은 피로회복제 박카스입니다. 성령님은 휴대폰 충전기입니다. 성령님은 자동차 주유소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저 선풍기를 움직이는 전기입니다. 하나님이 흙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된 것처럼 신앙의 시동이 꺼진 교인들을 성령님에 플러그 인 하십시오. 베드로는 성령님을 체험하기 전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성령님을 체험하고는 한 번 설교하자 3천명이 회개했습니다. 불량배인 김익두를 사람들이 피해 다녔지만 부흥사인 김익두 목사님에게는 사람들이 안수해 달라고 달려들었습니다. 성령님을 체험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누가복음 11장 13절을 통해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작은 선물은 나중에 구하고 오늘부터 큰 선물을 구합시다. 액세서리는 나중에 붙이고 자동차에 시동을 겁시다. 그리고 활기차게 도로를 달립시다. 성령님, 저희에게 임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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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05:4 말씀의 권세

미국의 찰스 캡스 목사님은 목사님이 되기 전에 농장을 경영했습니다. 찰스 캡스는 농장은 성공적으로 경영했지만 다른 사업을 실패하면서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농장에 목화씨를 심고는 ‘비가 많이 와서 싹이 올라오지 않을 텐데 뭘’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비가 많이 와서 싹이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씨를 심고는 ‘날이 가물어서 비가 오지 않을 거야’라고 투덜거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씨를 심고는 ‘일찍 서리가 내려서 목화가 피기도 전에 얼어 죽겠지’라고 저주했습니다. 그랬더니 말한 대로 서리가 내려 목화가 얼어 죽었습니다. 찰스 캡스는 사업에 실패하고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그러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이 쓴 [옳은 생각과 틀린 생각]이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책에는 ‘틀리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리게 믿고 틀리게 믿으면 행동도 틀리게 한다.’ 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찰스 캡스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말을 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 여호수아는 전기기능사 시험을 치르면서 60문제 중에 36문제를 맞으면 합격하는데 ‘36문제를 맞아 스릴 있게 합격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36문제를 맞아 합격하기는 했지만 한 문제를 고쳤는데 맞게 고쳤는지 고치지 않았는지 몰라 가슴을 졸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이 씨가 됩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터오듯이 여러분이 말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은 말과 관련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이셨는데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했다.’ 고 나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이 사람인 예수님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는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의 설교와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 잠잠해졌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말문이 열립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시자 120명의 성도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은 말씀과 관련이 있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말씀의 권세를 가지셨듯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도 말의 권세를 가졌다는 겁니다. 우리가 가진 말의 권세는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메스로도 사용될 수 있고 남의 돈을 뺏는 흉기로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말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악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말을 선하게 사용하려면 말이 어떻게 나오는지 알아야 합니다. 말은 마음에서 생산됩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마음을 가지면 좋은 말이 나옵니다. 말은 마음에서 생산되어 혀라는 수단을 통해서 입이라는 통로를 통해 나옵니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면 엄청난 영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우리도 말을 통해 창조적인 능력을 나타낼 수도 있고 새싹을 짓밟는 파괴적인 능력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선포하면 창조적인 능력이 나타납니다. 믿지 않거나 선포하지 않으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지만 믿고 선포하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믿고 선포할 때 문제를 말하지 말고 해답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카드결제일입니다! 연체되지 않게 해주세요!’ 하지 말고 ‘하나님 카드 대금이 결제되고도 잔금이 남을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픕니다!’ 하지 말고 ‘하나님 깨끗하게 고쳐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 피곤하다!’ 하지 말고 ‘새 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렇게 현재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의 결과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를 기도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지만 해결을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은 잠언서 6장 2절을 통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얽히는 말을 하면 얽히게 하시고 풀리는 말을 하면 풀리게 하십니다. 풀리는 말을 하십시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얽히는 말을 합니다. 배고프면 ‘배고파 죽겠네!’, 깜짝 놀라면 ‘애 떨어지겠네!’, 위험하다싶으면 ‘다치려고 그러니!’ 자녀에게 욕할 때 ‘이 망할 놈아!’ 우리가 부정적인 말을 쏟아내면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벙커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골프를 잘 하려면 모래 벙커에 빠지지 않아야 하고 벌타를 받지 않으려면 벙커를 잘 탈출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의 수렁에 빠지지 않으려면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 하고 인생의 대로를 달리려면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말이 벙커샷입니다. 긍정적인 말 중에서 최고의 말은 믿음의 말입니다. 예수님은 집까지 가서 안수하시지 말고 이곳에서 말씀으로 병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마8: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말을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병이 낫는다고 믿고 선포하면 병이 고쳐집니다. 하나님은 잠언서 4장 22절을 통해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도 주고 건강도 준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건강은 약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받으면 약사가 약을 조제해 주고 우리는 약사가 시키는 대로 약을 복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약입니다. 세상 약을 믿고 먹으면 낫듯이 하나님의 약도 믿고 먹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처방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선포하면 질병이 고쳐집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3장 5절을 통해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라고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8장 17절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도다 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통해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선포하면 병이 치유됩니다. 우리 모든 가정에는 급할 때 먹는 가정상비약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아플 때 먹는 가정상비약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병은 나을지어다.’ 선린병원에 가면 ‘하나님은 고치시고 우리는 봉사한다.’는 액자가 있잖아요? 고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병원 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을 복용합시다.

우리가 돈이 생긴다고 믿고 말하면 돈이 생깁니다. 자신만 잘 먹고 잘 쓰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데 쓴다면 돈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빌립보서 4장 19절을 통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고 말씀하셨고 로마서 8장 32절을 통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 밖에 없는 아들도 아끼지 않으셨는데 그까진 돈을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마음으로 믿지 않거나 입으로 선포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셨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속속들이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말해야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믿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찰스 캡스는 집을 짓고 ‘하나님, 이 집이 팔리게 해주세요.’ 라고 간구 기도를 했더니 팔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집들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팔릴지어다.’ 라고 명령 기도를 했더니 팔렸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쌓을 곳이 없을 곳까지 돈이 부어질 지어다.’ 깨끗한 가난뱅이보다 깨끗한 부자가 주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깨끗한 부자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고 욥도 부자였고 다윗도 부자였습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해 물질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권세를 가지셨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말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의 권세로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합시다. 질병을 고칩시다. 물질을 받읍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선포할 때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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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4:11-12 퇴근 후 5분

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가정상담학자의 도움을 받아 4주 동안 결혼생활의 사계절이란 주제로 부부문제를 다뤘습니다. 오늘은 정신분석학자의 도움을 받아 자녀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사람의 성격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걸까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걸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천적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성격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어머니입니다. 아이에게 있어 어머니는 온 세상이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우주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성격을 형성하는 토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지만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한 아이는 부정적이고 절망적입니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100이라는 자극을 받으면 50정도로 작게 느끼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는 150정도로 크게 받아들입니다. 옷을 고르는데 누가 그 옷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면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옷이 어울리지 않으니 다른 옷을 골라야지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외모를 비난한다고 생각하고 기분 나빠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말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어머니가 인격적으로 미숙했기 때문에 자신도 미숙해진 겁니다. 인격적으로 미숙하면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텅 빈 공간을 채우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것저것을 찾아 헤매다가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녀를 사랑으로 키울 수 있을까요?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4-6세가 되면 이성의 부모에게 애정을 느끼고 동성의 부모에게 질투심을 느낀다고 합니다. 아들은 엄마를 좋아하고 딸은 아빠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청소년기가 되면 이성 친구에게 눈을 돌립니다. 아들은 여친을 딸은 남친을 사귑니다. 부부 사이가 좋으면 아이가 이성 부모를 좋아하는 에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게 됩니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 이성 부모를 좋아하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부부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입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합니다. 아이는 세 살이 될 때까지 엄마의 반응을 통해 자아상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엄마가 한결같이 사랑해주면 하나님도 한결같이 사랑해준다고 믿어집니다. 아빠가 한결같이 사랑해도 비슷한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특히 퇴근 후 5분 동안 아이에게 충분한 스킨십을 해주면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고 자신은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한다고 합니다. 하교 후 5분 동안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아이는 사랑이 충전됩니다. 아이가 건강한 자화상을 형성하는 게 공부 잘하는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퇴근 후 5분 동안 잔소리하지 마시고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아이를 믿어줘야 합니다. 부모는 아이가 백지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간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인생의 청사진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자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부모는 아이가 어떤 그림을 그리든지 믿어줘야 아름답고 창조적인 그림을 그린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가 믿어줘야 아이가 성공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합리적인 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아이가 잘했을 때는 칭찬해주고 사소한 잘못을 했을 때는 주의를 주고 큰 잘못을 했을 때는 따끔하게 야단쳐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가 잘못해도 나무라지 않고 방치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작은 잘못도 심하게 나무라면 분노를 품은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칭찬을 할 때는 당근을 주고 꾸중을 할 때는 채찍을 주고 이것을 일관되게 해야 자신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초자아가 발달한다고 합니다. 기분 좋다고 그냥 넘어가고 기분 나쁘다고 뭐라 하면 아이가 혼란스럽고 교육효과가 떨어집니다.

부모님의 사랑이 적은 경우 선생님도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모난 성격이 다듬어 집니다. ‘딥스’는 과학자인 아빠와 외과의사인 엄마 밑에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며 살았지만 정신적인 장애가 있었습니다. 액슬린 박사는 딥스가 지능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상처로 장애가 생겼다고 판단하고 딥스가 자아를 발견하도록 ‘놀이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딥스는 아빠 인형을 모래 산 아래에 묻고, 아빠를 신호등에 걸리게 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아빠를 불난 집에 가두어 두고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빠에게 적대적이었습니다. 딥스는 마음속에 쌓아놨던 분노를 표출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아빠 인형을 모래 산에서 꺼냈다고 합니다. 화를 삭이면 내가 병들고 화를 토하면 남이 병듭니다. 화를 낼 때는 내야지 참는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

배우자도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가 100%를 채워줄 수 있다면 배우자는 60%까지 채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해준 것만큼 아내에게 요구하면 실망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해준 것만큼 남편에게 기대해도 실망하게 됩니다. 부부는 탁구공을 주고받듯이 사랑을 주고받아야지 폭포수가 흘러내리듯이 사랑이 흘러내릴 수 없습니다. 어쨌든 배우자도 사랑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빌은 가구회사의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빌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어머니가 그림을 그려서는 먹고 살수 없다고 핀잔하자 지하실에 숨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빌의 아내는 남편의 그림 실력을 알아보고 미술평론가를 초청해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미술평론가는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감탄하며 전시회를 열어주었고 빌은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빌은 자신을 억압하는 엄마로부터 해방되어 꿈을 이루었습니다. 배우자는 성공하게도 만들고 실패하게도 만듭니다. 배우자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격려하십시오.

하나님은 어머니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부모는 조건적으로 사랑했더라도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사랑의 저수지가 가득 찹니다. 어떤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년의 집은 가난했고 아버지는 술주정을 부렸습니다. 청년은 열등감이 심했습니다. 청년은 교회 수련회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청년은 가치관이 변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건강한 자아상을 회복했습니다. 장난감이 배터리로 움직이듯이 사랑은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 그중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강력한 배터리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이처럼 자녀는 부모와 선생님과 배우자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충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랑하며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착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악한데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갈라졌을 때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회복하셨습니다.(요일4:10,2:2)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여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요일4:11)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요일4:12) 우리가 사랑을 하더라도 상대방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5가지가 있습니다. 인정하는 말, 함께하는 시간, 선물, 봉사, 스킨십. 사랑의 언어가 5가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하더라도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사랑을 느끼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를 구사해야 사랑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정하는 말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내 딸아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함께하는 시간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하늘보좌를 떠나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선물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속죄 제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봉사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씻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가 예수님의 봉사입니다. 예수님은 스킨십으로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교제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스킨십을 합니다. 예수님이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셨듯이 우리도 자녀에게 부부에게 사랑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면 사랑의 저수지가 가득 차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칩니다. 하나님은 시편 27편 10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아멘! 부모님의 빈자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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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31 결혼의 사계절-가을

요즘 SBS 플러스의 ‘미워도 다시 한 번 2’가 장안의 화제라고 합니다. 이혼직전에 놓인 네 쌍의 부부들에게 어마 어마한 상금을 걸고 댄스스포츠를 추게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는 부부들이 몸을 맞대고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화해하게 된다고 합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뿐만 아니라 KBS 2TV의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도 MBC의 ‘4주후에 사랑더하기’도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만큼 부부문제가 사회문제가 되었고 그 갈등을 풀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결혼생활의 사계절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자연계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결혼생활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습니다. 결혼의 봄은 신혼시절이 아니라 결혼생활에 대한 희망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여름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때가 아니라 결혼생활이 안락한 상태입니다. 가을은 자녀를 출가시키고 두 사람만 남는 때가 아니라 결혼생활이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겨울은 인생의 말년이 아니라 결혼생활이 불만족스러운 상태입니다. 자연계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계절이 결정되지만 결혼생활은 부부가 어떻게 말하고 행동 하느냐에 따라 계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 사람만이라도 노력한다면 계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결혼의 사계절 중 네 번째 시간으로 가을입니다. 가을은 오색 단풍이 물드는 화려한 계절이자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낙엽이 떨어지는 우울한 계절입니다. 결혼생활이 가을인 부부의 감정은 슬퍼하고 근심하며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낍니다. 결혼한 지 20년 된 아내의 말입니다. “우리 부부의 결혼생활은 이미 늦가을에 접어들어 곧 겨울을 맞게 될 시점에 이른 것 같아요. 지금 혼란스럽고 두렵고 기진맥진하고 실망스럽고 스트레스가 많아요.” 남편의 말입니다. “(우리 부부는) 끔찍합니다.” 이처럼 결혼생활이 가을인 부부는 함께 살지만 혼자 사는 것처럼 외롭고 쓸쓸합니다. 배우자에게 고운 정은 사라졌고 미운 정만 남았습니다.

결혼생활이 가을인 부부의 태도는 어떻게 될지 미래가 불확실합니다. 앞일을 예측할 수 없으니 바람 앞에 등불처럼 불안합니다. 결혼한 지 8개월 된 아내의 말입니다. “두려워요. 뭔가 변화가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남편의 인생에 내가 과연 적합한 사람인지 또 그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요. 시댁 식구들이 결혼하고 몇 개월 동안 우리의 삶에 간섭했어요. 신뢰가 깨어졌거나 처음부터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우리는 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나는 불안한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매일 하나님께 기도해요.” 남편의 말입니다. “아직은 희망적인 듯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 것이라고 믿지만 지금은 거의 매일 말다툼을 하는 상태지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돌보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고 계시는 중입니다. 결혼세미나에서 배운 내용이 너무 좋아서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비록 시작은 험난했지만 가을에서 봄으로 전환하여 결혼생활을 굳건한 토대위에 올려놓고야 말 것입니다.” 이처럼 가을인 부부는 가을 날씨가 변덕이 심하듯이 결혼생활이 흐렸다 맑았다 예측할 수 없습니다. 가을인 부부는 상황이 악화되어 겨울로 접어들까 봐 걱정합니다.

가을인 부부의 행동은 무관심입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발자크는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가장 고통스런 고문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받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상처입니다. 소가 닭을 보듯이 부부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부부가 투명인간을 대하듯이 있어도 없는 척 모른 체 합니다. 초겨울이 되면 오색 단풍이 소리 없이 떨어지듯이 부부사이가 서서히 벌어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결혼생활의 여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공감적인 대화를 해야 합니다. 대화는 결혼생활을 여름으로 가게 할 수도 있고 겨울로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겨울로 가려면 내 입장에서 내 생각과 감정을 집어넣어 대화하면 됩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꼬투리 잡는 판단하는 대화를 하면 겨울로 직행합니다. 그러나 여름으로 가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고려해서 대화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감적인 대화입니다. 내 입장에서만 말하면 찬바람이 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면 봄바람이 불어옵니다. 사람은 수다쟁이 형과 꿀벙어리 형이 있는데 수다쟁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전화통이 불납니다. 이동통신사가 좋아하는 고객입니다. 꿀벙어리는 아무 것도 안 보고 아무 것도 안 들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본요금만 냅니다. 놀라운 사실은 수다쟁이는 말을 들어주는 꿀벙어리에 매료되고 꿀벙어리는 말을 해주는 수다쟁이가 편안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조합이 아니라면 공감적인 대화를 배워야 합니다. 공감적인 대화를 하려면 첫째, 눈으로 들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말하면 텔레비전을 끄고 행주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봐야 합니다. 눈은 마음의 통로입니다.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하면 마음도 느껴지지만 눈을 돌리고 이야기하면 소리만 들립니다. 상대방의 눈을 봐야 공감적인 대화가 이뤄집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라보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고개를 돌리잖아요? 시선을 외면하면 감정도 외면될 수 있습니다. 둘째, 입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보통 17초 정도 듣다가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고 합니다. 너무 장황하게 이야기하면 끼어들고 싶어서 입이 간질거립니다. 너무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반격하고 싶어서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5분 정도 입을 꾹 다물어야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까지 끼어들지 않아야 공감적인 대화가 이뤄집니다. 말을 자르면 관계도 잘릴 수 있습니다. 셋째, 목으로 들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거려야 당신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 는 표시가 납니다.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주유소 앞에서 춤추는 풍선인형처럼 상체를 앞으로 움직여야 당신의 말에 집중하고 있다 는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상대방이 말할 때 목과 등은 움직여야 공감적인 대화가 이뤄집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습니다. 넷째, 발로 들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데 화가 난다고 자리를 떠서는 안 됩니다. 가스 불을 켜 놨으면 양해를 구하고 꺼야 합니다. 전화가 왔다면 양해를 구하고 받아야 합니다. 배우자와 이야기하는 자리를 지켜야 공감적인 대화가 이뤄집니다. 자리를 뜬다면 두 사람 사이도 떠집니다. 다섯째,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남편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관심을 두지만 아내는 속에 감춰진 마음을 중요시 합니다. 아이가 “엄마, 나 학원 끊을래.”하면 “어머, 얘 좀 봐, 학원비 낸지 얼마나 됐다고.” 했다간 대화가 끊깁니다. “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어야 아이가 마음을 엽니다. 마음을 열어야 공감적인 대화가 이뤄집니다. 여섯째, 배우자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야 합니다. 배우자가 실컷 말하고 나면 “알았어.” 또는 “그게, 아니라니까.”하지 말고 “내가 그렇게 말해서 당신이 마음이 아팠나봐?”하고 내용을 정리해서 말해야 말을 귀담아 들었다는 표시가 됩니다. 배우자의 말을 이해해야 공감적인 대화가 이뤄집니다. 일곱째,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십시오. 배우자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고 난 후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줘야 상대방이 내 이야기도 들어줍니다. 대화를 자꾸 자르다 보면 분위기가 험악해 져서 오해가 생기지만 대화를 충분히 들어주면 분위기가 무르익어서 오해가 줄어듭니다. 대화는 여름으로도 겨울로도 갈 수 있는 분기점입니다. 공감적인 대화를 하면 여름으로 가고 판단하는 대화를 하면 겨울로 향합니다. 대화는 부부갈등을 일으키는 시발점이자 부부갈등을 해결하는 해결점입니다. 하나님은 잠언 15장 1절을 통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공감적인 대화입니다. 공감적인 대화를 하면 분노가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과격한 말은 판단하는 대화입니다. 판단하는 대화를 하면 분노가 끌어 오릅니다.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내 생각과 감정만 쏟아내면 찬바람이 붑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면 봄바람이 붑니다. 옛날 어느 웅변학원에 쓰여 있던 글귀입니다. 침묵은 금이다. 말을 하려면 금보다 나은 말을 하라. 상대방의 말을 꼬투리 잡는 판단하는 대화는 금보다 못한 대화이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공감하는 대화는 금보다 나은 대화입니다. 공감적인 대화로 결혼생활을 여름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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