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가면 1 : 원시 신화 까치글방 160
조셉 캠벨 지음, 이진구 옮김 / 까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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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인류의 보수적 성향, 역사적 요인이면서 동시에 지역적 요인이랄 수 있는 것을 종족적 관념이라 정의했다. 또 인류 전체의 그 보다 더 광대하고 온전한 보편적 공유의식을 근본적 관념이라 정의했다.

 

이런 보편적 공유 의식인 근본적 관념은 역사적 요인과 지역적 요인이랄 수 있을 종족적 관념을 통해서야 구체화 된다고 한다. 저자는 ‘신화는 독립적 이미지들의 연속이 아니라 의미 있는 전체이며 그 안에 현실 세계의 특정한 면이 반영되어 있다’ 고 말한다.

 

이 말은 아마도 ‘근본적 관념은 종족적 관념 속에 반영되고 그를 통해서야 비로소 드러난다’ 는 설명일 수 있다. 각 문명권의 특색 또 각 국, 각 향토만의 관습, 윤리, 예절 등의 전통과 놀이, 예술, 제도 등 문화 전반을 통해서야 근본적 관념이 자신을 변용하며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근본적 관념은 종족적 관념을 통해 구체화된다고 말하면서도 인류 공통의 의식인 근본적 관념이라는 것은 한 시대나 특정 지역에 한정된 인류 즉 특정인종이나 특정국가 국민이거나 특정 민족의 독자적인 성향을 초월한다고 주장한다.

 

‘사회로 부터의 “이탈(disengagement)" 을 위해서 봉사’ 하는 상징, ‘지역 전통의 이미지가 전통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 분출되는 어떤 충격적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무한한 반복의 길을-종종 경멸의 태도를 가지고- 던져버린다’

 

이런 말들은 기존의 사회가 ‘정상적인 삶’ ‘정상적인 태도’ 로 한정한 규정화된 제도와 윤리, 상식 등을 깨는 여정이 샤먼이 걷는 길이라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는 초월적 존재에 순종하고 경외하면서 동시에 사회 동화적인 다시 말해 기존 사회의 제도와 윤리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존재가 사제(성직자)라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반면 저자가 또 한층 줄곧 이야기하는 바는 샤먼은 ‘진보적 이탈자’ 라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기존 사회에서 누구나 관행적으로 맹목적으로 따르던 가치들이 과연 문제없던 것일까 하는 의혹과 시험의 무대가 되는 것이라 한다.

 

 

전세계 누구라도 모를 이가 없을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샤먼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있을 것이다. 그의 삶은 사제(성직자)적인 면모도 있었으나 그 누구 보다 샤먼 다웠다.

 

- 샤먼의 정의는 초월적 존재(각 문화권에 속한, 그 문화권에서의 유일신이나 계보를 지닌 신들)와 소통하며 병을 치료하거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고 위안하고 개인적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며 이적을 보이고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거나 그 시간들에 연결되는 이를 말한다. 여기서 예언은 그리 큰 가치를 지닌 그 또는 그녀의 속성도 아니다. 죽음마저도 초월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이러한 샤먼에 대한 정의에 모두 해당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샤먼이라 하는 것이다. -

 

예수님이 보인 이적과 부활은 샤먼의 정의에 완벽히 일치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목해야할 측면은 그가 보인 진보적 이탈자 정신이다.

 

예수님은 유대문화에서 태어나 유대사회에서 사역을 하시면서도 유대의 종교와 사회를 정면반박하며 이의 제기를 하던 분이다. 외식하는 자들이라며 유대교 신앙인들을 비판하며 유대인들의 신앙생활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셨다. 게다가 유대사회는 분명 성경에도 공정한 되와 공정한 저울이 등장하리만치 또 사후에 천국으로 향하는 심판에서 “너는 얼마나 사업을 공정하게 했느냐?” 라는 질문부터 받는다고 하는 경제를 중시하는 국가였다. 종교만큼이나 경제의 중요성을 높게 여기는 문화권에서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 며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확언하다시피 하신 분이다. 더더군다나 성전 앞에서 환전하는 환전상의 상을 엎으며 실제적 테러까지 서슴지 않으셨다.

 

이러한 사회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들과 예수님을 믿는 교세의 확장이 더해지니, 유대 사회와 유대교 사제들 및 유대교 신앙인들에게 불안을 키웠던 것 같다. 물론 그렇기에 예수님의 죽음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교 사제들과 신앙인 등 유대사회 대다수의 탄원으로 예수님을 죽여야 할 수밖에 없을 때 예수님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인 민중에게 둘 중 하나는 살려주겠다며 “밧세바라는 도둑과 예수 중 누굴 풀어주랴?” 고 물었었다. 그런 제안에도 유대인 민중 대다수는 밧세바를 선택했다. 밧세바가 의적이었는지 어떤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도둑에게도 밀릴 정도였다면 예수님은 유대민족의 주류에게도 서민층 대다수에게도 받아들여지지는 못하셨던 게 확실한 것이다. 그래서 사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녕 죽으리라”고 실락의 날에 아담에게 하셨던 저주가 깨어지라고 있는 저주라는 것을, 사망은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할 수 있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다 이루었다" 는 사역 완수의 기회는 외면받고 배신당하고 핍박과 고문을 거쳐 살해 당함으로써 갖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종교집단과 사회의 일상과 상식을 정면 반박하는 과정이, 동시에 하나의 신적 의지와 목적을 완수하는 여정이 되었던 것이다.



 → 이어서 계속됩니다

"정녕 죽으리라" 로 시작되어 "다 이루었다" 에 이르는 고독과 고통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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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가면 1 : 원시 신화 까치글방 160
조셉 캠벨 지음, 이진구 옮김 / 까치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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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셉 켐벨은 그의 저서 《신의 가면1 원시신화》에서 신화가 주는 의의의 공시적 측면과 통시적 측면 둘 다를 깊이가 남다르게 전하고 있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낱낱의 사람들에게 신화가 어떤 의미인지를 전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변화의 양상을 띠며 다가오는 순간마다 획기적인 국면 전환의 요소였음을 일깨우고 있다.

 

그러한 관점을 전하기 위해 수렵부족과 농경민족, 사냥꾼과 농경인, 남성심리와 여성심리, 완고한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 정직한 사냥꾼과 샤먼 등으로 상징들을 대비시켜 이해를 돕고 있다.

 

수렵부족은 남성심리로 완고한 마음을 지니는 정직한 사냥꾼이라 상징화하고 있다. 그 근본적 주제는 성취와 달성에 있다고 한다. 이는 농경민족으로 대변되며 여성심리로써 부드러운 마음이 상징하는 샤먼의 대칭인 것이다. 이들의 주제는 기도 즉 주술을 행하는 것이다.

 

사냥의 세계에서는 남성적 심리가 지배적이라 여성적 원리는 비교적 침묵을 지키며 남성적 덕목과 함께 어떤 유치한 순수성이 우세하게 드러난다고 한다. 농경의 세계에서는 여성의 경험이 지닌 전적인 신비가 드러나며 이것은 처녀의 신비 속에서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방식으로 구체화된다고 한다.

 

-아마도 ‘처녀의 신비’ 라는 표현은 ‘처녀’ 라는 어휘가 지닌 순결과 순수를 상징하기 위해 쓰인 것은 아닐 것이다. 그 보다는 ‘처녀작’, 처녀비행‘ 의 표현들처럼 신비(일상에서의 경이)를 체험하는 이들에게 첫걸음과도 같을 신선함으로 다가갈 것이기에 더해진 표현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분법적으로 나눈 이 속성이랄까 역할이 상호작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완고한 마음의 소유자는 자기가 속한 지역적 세속적 조건에 애착을 보인다. 그러나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는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것을 지향한다. 여기서 신화의 변형을 초래하는 자극은 남성과 여성의 상호 작용 및 상호 간의 영적 풍요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상징은 두 극에 의해서 경험되고 해석되지만 동시에 두 극 사이의 적대적 협력(antagonistic cooperation)을 이루어 낸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대칭의 중재나 통합만이 신화의 경험과 해석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그런 투의 전개가 이 저작 전체를 꿰뚫으며 거듭 반복되니 말이다.

 

샤먼이 걷는 ‘고통의 길’ 은 ‘마르가’라고 하며 ‘심리학적 변형의 길’ 이라고 한다. 샤먼은 이 여정을 통해 ‘영적인 죽음과 부활’ 을 거치며 ‘개인적 경험의 지평이 확장되고 깨달음의 깊이가 심화’ 된다.

 

샤먼은 정신 그 자체의 신비와 접촉하여 영혼과 그 세계에 관한 지혜를 얻는다고 한다. 그리고 샤먼이 가는 ‘고통의 길’과 ‘그 길을 통해 얻는 지혜’가 ‘과거에 안주하여 창조성을 상실한 사회를 새로운 깨달음의 영역과 깊이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한 자들의 ‘영적 위기와 깨달음’ 속에서는 ‘비역사적 요인이 지배적 역할’ 을 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지역 전통의 이미지’가 그 전통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 분출되는 ‘어떤 충격적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 에 불과하단다.

 

다시 말하면 관습이나 관행, 윤리나 제도, 상식 등 사회 구조를 이루는 견고함에 균열을 일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샤먼은 성직자들과 같이 ‘사회의 보수적 측면을 대변’ 하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순종과 경외의 태도’ 를 보이지 않는다. ‘자기 충족적이며 비타협적인 태도’를 지닌다고 한다. ‘신의 분노에도 개의치 않는 바벨탑의 건설자’ 라 저자는 정의하고 있다.

 

‘바벨탑의 건설자’ 라는 것은 신에게 저항하고 아니 저항하는데 그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너머 신에게 의존함으로써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는 나 스스로 쌓아올리고 스스로 검증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신은 그에게 굴종의 대상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 회유의 대상 정도일 것이다.

 

저자가 샤먼의 이런 독립성, 독자성, 일탈성 즉 진보적 이탈 성향만을 두둔하고 지지하느냐면 또 그건 아니다. 그와 동시에 집단의식이랄까 보수성향이랄까가 하는 제 역할의 중요성을 상당 부분 인정하고 있다.



→ 이어서 계속됩니다

사냥꾼들의 세상에서 `마르가`를 거치며 드러나는 `처녀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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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선물용 특별판) -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1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루시드 폴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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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기에 Grotesque http://blog.yes24.com/document/8616451


위에 이 책에 등장하는 어휘들을 사용하여 작문을 해보았습니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낱말이 다 쓰인 것은 아니나 나름 낱말이 주는 의미들이 어떤 감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 짐작해 볼 수 있을 거에요.


이 책에는 다양한 나라의 많은 어휘가 등장합니다. 

저는 무엇 보다 '구르파'라는 한줌의 물을 뜻하는 낱말이 심장을 채우는군요. 

설레임(킬릭)도 벅찬 사랑의 환희(포렐시에)도 아늑하고 포근한(헤젤리흐) 한 때도 나뭇잎 사이 드리우다 내리쬐는 한가로운 햇살(코모레비)도 물가에 찰랑이는 은은한 달빛(몽가타)도 자연과 맞닿아 충만히 홀로인 그런 심정(발다인잠카이트)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 같아서 입니다. 오아시스는 커녕 목마름을 채워 주지도 못할 신기루 사이만 헤매이다 보니 한줌의 물이 나름 더 소중하다 여겨지네요.


누군가 '와비사비'에 이르러야 한다 말한다해도 그저 흩어지고픈 심정과 달관하는 것은 다를 것입니다. '와비사비'란 말에 고추냉이 먹은듯 코가 시큰거립니다. 


이 책을 보며 깊고 훈훈한 감동을 기대한다면 좀 지나친 기대일 거라 말씀 드려야 할 것 같네요.

하지만 '바름두셔'들 말고 '루프트멘시' 같은 면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읽어 보세요. '사마르'에 지칠 때쯤, 어느 한가로운 날에 '마밀라피나타파이'가 하나인 이들과 함께하는 '피카' 자리에서 조용한 주제가 될 수 있을 책이니까요.


아니면 자신을 향해 '티암'을 보내는 그 또는 그녀에게 '카푸네' 해 주며 몇 마디 인용하거나 의미를 담아 읊조리는 것도 운치 있겠네요. 


편지 쓸 때나 시나 소설을 쓸 때 영감을 줄 수 있을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낱말들의 의미가 어우러지며 독자가 느낀 감상이 보다 깊고 큰 감상을 품게 되는 글로 재탄생할지 모르니까요. 그것이야 말로 이 책이 '콤무오베레'를 더 깊고 더 오래도록 울리는 걸음이게 하는 것이겠군요.





와비사비 달관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

바름두셔 뜨뜨 미지근한 사람

루프트멘시 눈을 반쯤 뜨고도 꿈꾸는 사람. 바람 속에 구름 속에 걷는듯 자유로운 공상가

사마르 친구들과 함께 빠이팅 넘치게 밤새 놀아재끼는 것

마밀라피나타파이 성향과 관점과 목표가 같아 의기투합하는 것

피카 친하거나 뜻 맞는 이들 끼리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 한담을 나누는 것

티암 처음 본 누군가를 향해 설레임어린 채 빛나는 눈빛

카푸네 사랑하는 이의 머리결을 쓰담쓰담하는 것

콤무오베레 깊고 훈훈한 감동

 

- 각 낱말에 대한 의미는 이 책의 내용과는 다소 다르게 의역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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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선물용 특별판) -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 없는 세상의 낱말들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1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루시드 폴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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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쓸 때나 시나 소설을 쓸 때 영감을 줄 수 있을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낱말들의 의미가 어우러지며 독자가 느낀 감상이 보다 깊고 큰 감상을 품게 되는 글로 재탄생할지 모르니까요. 그것이야 말로 이 책이 `콤무오베레`를 깊고 오래도록 울리는 걸음이게 하는 것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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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김선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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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트라우마와 부정적 방어기제 그리고 그를 이겨내는 회복탄력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가 권하는 바는 회복탄력성을 키워 외상 후 성장을 이루거나 적어도 상처에 무던해지기라도 하라는 것이다.

 

1장 받아들이기 / 2장 이해하기 / 3장 변화하기 / 4장 구체화하기 / 5장 극복하기

 

이렇게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제는 다양한 용어 사용과 표현을 달리하며 중언부언하고 있지만 핵심을 반복해 주지시키며 적용할 방법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트라우마 Trauma는 과거 겪은 충격적 사건으로 인한 정신적 상처로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 방어기제에 대해서는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 ‘심인성 질환’, ‘두뇌의 양동작전’, ‘노이로제’등 다양한 분류와 표현으로 이르고 있다.

 

부정적 방어기제는 충격적 사건을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 그것을 심리적 신체적 증상으로 외부에 드러내고 마는 일종의 비명이나 절규이자 통증인 거다.-방어기제 Defence Mechanism 는 자아가 위협받을 때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나타내는 심리의식이나 행위를 말한다. 긍정적 방어기제와 부정적 방어기제로 나뉜다.-

 

이것의 심리적 영향력이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이고 육체적으로 나타날 때 ‘심인성 질환’이라고 한다. ‘두뇌의 양동작전’은 감당 못할 스트레스를 감정 표출을 하지 못할 때 신체적 증상으로 왜곡되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결국은 심인성 질환에 대한 설명과 다를 바 없다.

노이로제는 한번 생겨난 감정들이 무의식에 영원히 남아 삶과 생활 전반에 심리적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노이로제 자체가 지속되면 즉 부정적 방어기제의 지속은 인격의 변화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트라우마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그 상태를 방치하고 체념한 채 지내다 보면 결국 기존의 ‘나’라는 인격이 붕괴되고 만다는 말이다.

 

-부정적 방어기제가 지속되는 것을 방치하면 인지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 인지왜곡은 습관적으로 부정적 생각을 하는 과정을 말한다고 한다.-

 

이것에 대응하기 위해 작용하는 것이 긍정적 방어기제이다. 가볍게는 스트레스나 심각하게는 트라우마에 대항하는 심리적 면역체계가 긍정적 방어기제이다. 또 다른 표현으로 성숙한 방어기제라고도 하는데 본능과 도덕성, 양심이 충분히 조화를 이루는 상태라고 한다. 저자는 긍정적 방어기제를 활용하기 위한 출발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증상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거듭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하라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 부정적인 감정을 긍정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한다. 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은 나의 해석과 인식의 필터를 거쳐 재창조된 나만의 감각이라고 한다.

나의 감정은 사건 자체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해 반응하는 나 자신으로 인한 것이다. 따라서 나의 반응을 조율하는 것이 감정을 다스리는 최적의 방법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표현하고, 흘려보내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과는 달리 긍정적 경험은 사고기능과 행동양식의 확장을 불러온다. 더구나 학습된 기억이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되어 다시 새로운 긍정정서를 경험하는 선순환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저자는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향복해져야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행복은 성공의 결과라기보다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라 보아야 한다며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게 아니라 무언가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더라도 잔인한 말이 아닌가 싶다. 한참을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에게 행복해지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행복한 사람은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난다고... 이런 말을 보고 한국에선 “염장 지르냐?”그러는데...-

 

어쨋건 저자는 자신의 해석이란 필터를 거친 부정적 생각이나 감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기 위한 방법들을 매 장 마다 제시하고 있다.

 

◇ 정서조절 방법 중 대화로 변화를 이끄는 10단계 p65~p66

◇ 트라우마를 외상 후 성장으로 바꾸는 단계적 방법 p149~p150

◇ 스스로 감정의 변화를 이끄는 7단계 p156~p157

   -몰입 / 자각 / 질문 / 인식 / 관조 / 이해,조절 / 깨우침(달관)-

 

◇ 감정관리 기술 11가지 p162~p165

◇ 부정적 감정을 이겨내기 위한 7가지 활동 p170~p172

◇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의 7가지 특징 p196~p198

◇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 향상시켜야 하는 것들 p204~p205

   -자기조절능력(감정조절/충동통제력/원인분석력), 대인관계능력-

 

이런 과정들이 외상 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 PTG으로 이르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외상 후 성장은 외상 사건을 겪고 트라우마를 입었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정신적 성장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단지 트라우마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초월적 변화를 경험하는 주관적이고 긍정적인 심리변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픈 만큼 성장한다'기 보다는 '아픔을 극복한 만큼 성장한다'고 정의해 주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알고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하며, 감정의 원인을 알아낸다면 나 자신과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서로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인식할 수 있습니다"라는 저자의 말에 비추어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사람은 자신에 대한 이해만큼 타인에 대한 세상에 대한 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 저자가 알려주고자 하는 것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고통, 시련, 고난, 수난 어쩌면 수치와 모멸의 순간을... 자신이 붕괴되는 것만 같던 시절이 다른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인용하며 저자가 언급했던 것이다. 분명한 현실 판단이 아니라 그저 '막연한 희망'은 ‘좌절의 나락’으로 빠지게 하고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는...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지 못하면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잃어버린다.‘

 

’육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내적인 힘, 즉 이 끔찍한 경험을 개인의 성장에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내면의 본질에 삶의 가치를 두고 자신에게 한 발짝 타협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두어라. 그대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다.”

 

빅터 프랭클의 이 말들을 인용하고서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존재여야 한다고... 남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을 찾아내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여러분을 강하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럴 수 있는 내적 자원을 강화하는 과정이 심리치유인 것이다. 초월심리학까지 이르면 그때는 이미 심리학을 너머 수행의 세계, 명상의 차원으로 들어서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단계적 심적 영적 성장이랄까 성숙이랄까는 직장인, 전업주부, 실업자들, 노숙인, 수감자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까지 체계적이면서도 깊이있고 다양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이러한 치유라는 것이 결국 운명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방식은 ①개인의 신념체계와 트라우마 이전의 ②경험, ③주변의 지지 수준, ④내적 자원, ⑤유전적 소인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 생각해 보면 명확해지는 것이다.

 

② ③ ④ ⑤를 ⒜ 생득적 운명

① ② ③ ④을 ⒝ 2차적 운명(생득적 운명의 작용을 통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아 형성되는 2차적 운명)

 

⒜와 ⒝라는 운명들을 통해 형성되고 갖춰진 것이 다시 ⒝' 를 이루고 그것을 통해 다시 결정하게 되는 삶의 선택들은 3차적인 운명 ⒝" 이 된다. 그리고 그 3차적인 운명 즉 자신이 결정한 삶의 선택들은 재차 ⒝"' 에 강력한 원인이 되며 이러한 작용은 은둔하거나 수감자가 되어 독방에 갇히지 않는 다음에는 죽는 그 순간까지 순환하게 된다. 그러니 결국 인간은 운명으로 시작해 운명 속에 살다가는 것이다.


-굳이 설명이 불필요할만큼 잠시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들이지만 혹시라도 표현이 딱딱해서 이해가 어렵다는 소년 소녀들이 있을까봐서 설명을 남긴다. 아기가 태어날 때 부터 지닌 무언가를 더 선호하고 싫어하는 성향은 ④ 내적자원 과 ⑤ 유전적 소인의 영향이 다소 작용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도 결코 타고난 그대로에서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으로 주어진 '가족과 가족의 거주 지역 환경(거주 지역 내의 자연과 이웃)과 혈연관계라는 환경, 재정적 계층의 단계라는 경제적 환경 등은 서로 어우러지며 작용해 개인 유년시절의 ② 경험을 이루게 되고 최초의 ③ 주변의 지지 수준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유년시절의 인적 재정적 자연적 환경들은 자신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라 볼 수 없을, 누구나가 운명이라고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 일 것이다. 유년시절 최초의 환경들이 최초의 ③ 주변의 지지수준(인적 환경, 가족 친지 이웃 친구)을 구성하는 것이고 이것의 절대적 영향력 내에서 겪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유년시절의 ② 경험을 이루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경험들에는 주어진 환경만큼이나 타고난 ④ 내적자원과 ⑤ 유전적소인으로 인한 개성에서 비롯되는 개인적 선택들이 강력하게 작용하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작용이 다시 개인사적인 ② 경험이 되고 그 경험과 함께하며 개인적 특성이랄 수 있을 ④ 내적자원을 강화하거나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가치관, 인생관이라는 ① 개인의 신념체계가 갖추어져 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여정 속에서 혈연 지연 외의 학연이나 동종업종의 지인 등 인맥이 형성되어 ③ 주변의 지지수준이라는 운명에 거듭 변화를 가져온다. 물론 주변의 지지수준은 환경변화에 따른 영향도 적지 않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가족의 거주 지역 환경이나 경제 계층적 환경이 변화할 시 강력한 영향을 받아 변할 수도 있는 것이 ③ 주변의 지지수준이라는 운명의 요소이다. 또 이것은 바로 개인적 ② 경험이라는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타고난 운명적 요소들을 ⒜ 생득적 운명이라고 칭했는데 이것은 사실 최초시점으로 볼 때만 생득적인 것이지 꾸준히 삶에 영향을 미치며 변화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변화는 다시 ⒝ 2차적 운명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이렇게 타고난 천성이랄 수 있을 ⒜ 생득적 운명과 살아오며 영향을 받아 변화를 거친 ⒝ 2차적 운명은 개인 가치관의 변화(① 개인의 신념체계)에 죽는 순간 까지 거듭 영향을 준다. 이것이 인생의 여정 그 자체인 개인의 선택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 개인의 신념체계와 ④ 내적자원의 바탕이 되므로 결국 삶은 운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면서 동시에 늘 변화하고 있는 것이 운명이라는 말이 된다. 더군다나 ⒜ 생득적 운명의 마지막 요소인 ⑤ 유전적 소인 마저도 개인의 삶에서의 선택들로 갖춰지는 ② 경험들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잉태되어있던 시기 부모의 ⑤유전적 소인이거나 부모의 습관들로 아이가 흡연선호 유전자나 알콜중독성향 유전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A)성향 유전자, 비만 유전자 등의 ⑤ 유전적 소인을 지니고 태어난다 해도 살아가며 이러한 유전적 소인은 당사자의 선택과 노력으로 변화 가능한 것이다. 그러게 인류가 진화한 것이 아닌가? 결국 운명에 변화를 주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결론이 그래서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강력하고 지배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운명이다. 생의 첫걸음에는 선택사안에 없던 이 운명이란 것에 피동적으로 놓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운명을 통해 지니게 되는 ④내적 자원과 ①신념체계 즉 가치관 인생관이 인생에 놓인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결정할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운명을 통해 운명을 갖추게 되고 그 운명이 생의 여정이라는 운명을 다시 만들어가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각 운명의 요소는 상호작용하며 그 자신을 갱신해 가며 미래라는 운명을 만들어가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각 운명의 요소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다. 고로 운명은 변하는 거다. (무엇보다 이 말을 정말 하고 싶었다.)


자신의 생을 변화시키려는 능동적 태도나 타인의 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변화해야 할 그 자신의 태도와 결합되어 시너지를 이루면 ①신념체계나 ④내적 자원 뿐 아니라 ③주변의 지지 수준을 바꾸어 삶의 ②경험들이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운명의 각 요소들의 영향력은 앞서 말했듯 눈감는 그 순간까지 순환하고 순환하는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더욱 주목해야만 할 것은 ⓛ신념체계와 ④내적 자원의 변화로 일상 속에서 한결 같이 지속하는 습관(경험을 통해 형성되고 다시 경험을 만들어가는 ②경험 그 자체)이 변화하게 되면 심지어는 ⑤유전적 소인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타고나는 것일 뿐이라 여기는 운명까지도 변하게 된다. 그렇게 운명의 모든 요소는 늘 변화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렇게나 초중고를 비롯해 할 수 있다면 대학까지 교육과정 전체에 심리치료와 심리학 전반을 모두 아우르는 커리큘럼을 갖추어 적용해야 한다고 늘 말해온 것이다. 교육과 심리치유의 결합은 아이들의 운명을 바꿔주는 길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치유의 과정은 성장과 성숙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운명을 바꾸는 여정인 것이다. 누군가가 치유되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누군가의 운명을 바꾸는 과정에 자신의 손길만큼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치유된 사람은 다른 눈으로 바라보며 다른 다리로 일어서서 다른 손을 내밀며 다른 걸음으로 다른 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기에 운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모르고 바라보면 "그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던데?"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숨이 다를 것이다 그 심장이 다를 것이다. 그 치유된 사람이 자신이건 가족이건 친구건 자신에게 호의가 있던 이건 하다 못해 사업관계로 만난 사람이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길은 제법 큰 의미를 주는 길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참고 함께 걸어줄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리고 당신이 참고 걸어온 그 길의 끝에 누군가의 입가에 지어진 뒤셴 미소 Duchene's Smile는 하품처럼 당신의 입가로 옮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넓고 깊게 모두에게 전해질지도...



※ 그림치료 책인데 그림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안한 것 같군요. 그림 안봐도 본 것 같은 착각을 권하고 싶은 구절들을 통해 느껴 보셨기를 바랍니다.  



☆ 권하고 싶은 구절들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습니다

삶에서 우리는 위기 상황에 놓인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기다려야 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은 그 목적과 방향이 분명할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또한 산길을 걷기도, 잘 다듬어진 길을 걷기도 할 것이며, 험한 길을 걸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림 속 여인처럼 책임져야 할 몫이 있을 수 있고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을 거쳐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또는 길의 끝에 마주했을 때의 기분은 어떠할까요? 결국 목적을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함께 지나온 길들이 아픔보다는 추억으로 변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 - 성경

이 밤이 지나면 동트는 새벽이 올 것입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파도는 반복적입니다. 하나가 가고 나면 새로운 하나가 계속해서 다가옵니다. 그 자리를 피하지 않는 한 끝없이 몰려올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익숙해져야지요. 파도의 주기적인 움직임에도, 파도소리에도, 때론 내 발끝에 닿는 차가운 물에도 익숙해져야 합니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 - 파울 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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