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개미 오디세이 - 운명을 짊어진 개미의 여정
오드레 뒤쉬투르.앙투안 비스트라크 지음, 홍지인 옮김 / 힘찬북스(HCbooks)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서는 개미학자 두 분이 13개의 장과 50개의 단원을 각자 서술하여 개미들의 생태를 전하는 책이다. 개미들의 생태라면 너무 광범위한데 본서는 그 중에서 저자들이 수렵개미라고 칭하는 개미들의 선발부대원들 또는 특수부대원이나 개미 정부의 요원들과 같은 개미들의 삶을 전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개미는 현재 집계된 것만으로도 13800종에 이르고 아마도 25000종은 지구에 서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는 생물종이다. 인류 경우에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가 각기 생태가 다르다고 추적되었듯 현재까지도 다채로운 종이 활동하는 개미들은 더더욱 현격한 생태의 차이를 보인다. 기대에 차 본서를 읽으려 한 이유는 개미들의 육아와 사회적 헌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렵개미라고 분류한 개미들의 야외활동만을 기록한 책이라기에 다소 실망할 뻔했는데 야외활동에서도 그들의 삶과 모험과 활동 속에서 여지없이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엿보였다.

 

개미들의 삶을 엿보기 전에 그들의 비주얼에 관해 논하자면 개미는 종이 다르기에 외양에 있어 친척 관계일 가까운 종 사이에서도 인간에 비유하자면 인간과 티라노사우르스 격의 큰 격차를 보이는 개미들도 있다. 그리고 얇은 피막에만 둘러싸여 공격시 쉽게 폭발해 버리는 종부터 두꺼운 갑옷을 입고 있어 거북이처럼 느린 종도 있고 병정개미들은 특수양육을 해서 머리가 비대한 공격성 개미로 자라 머리가 무겁기 때문에 곧 쓰러질 것처럼 다니는 녀석들도 있다. 그리고 개미는 자기 체중의 2000배 이상을 들 수 있는데 이는 인간 경량급 역도선수가 자기 체중의 3배를 들고 고체중의 선수가 자기 무게의 1.5배 정도를 드는 인간의 경우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격차이다. 개미의 펀치 속도는 인간의 수백 배에 이른다. 달리기(이동) 속도도 개미를 말의 크기만큼 확대한다면 순식간에 기차를 추월할 정도의 속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종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수영이 가능한 개미 종도 상당하며 수영을 하지 못하더라도 이들은 홍수가 난다거나 했을 때는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해 거대 뗏목을 만들어 온 군락이 탈출한다. 이때 각자 공기방울을 안아 부력을 상승시킨다고 한다.

 

또 개미들은 절대 길을 잃지 않는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개미는 대개 시각을 이용해 위치를 파악하는 것으로 아직까지의 과학은 짐작하고 있다. 홑눈과 겹눈으로 편광까지 계산해 길을 찾는 것으로 아직까지의 연구로는 짐작하는 것이다. 개미들은 출생 초기 애벌레 상태부터 굴 내부에서만 생활하다가 굴 밖으로 처음 나서게 되면 다량의 빛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오며 두뇌가 급격하게 자극받는다고 한다. 개미학자들은 이때 개미의 지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굴 밖으로 처음 나온 개미는 몇 걸음 옮기고는 주위를 뱅글뱅글 돌고 몇 걸음 옮기고는 뱅글뱅글 돌기를 무슨 의례를 진행하듯이 시행하는데 이때 입체적으로 자기 집의 위치를 파악해낸다고 한다. 이 의례가 끝나고 나서는 개미를 아주 먼 곳으로 이동시켜 던져 놓는다고 해도 처음 이탈된 장소로 찾아가 다시 자기 집으로 향할 수 있다고 한다.

 

개미가 버섯농사를 짓거나 진딧물을 사육한다던가 하는 내용은 이젠 상식에 가깝기에 넘어간다 해도 다른 상식인 노예를 부리는 경우는 다시 봐도 신기했다. 다른 개미굴을 습격해 타 군락을 모조리 몰살하며 알을 탈취해 부화시켜서 애벌레 시절부터 자신들의 페로몬을 발라가며 양육하는데 노예개미들은 감쪽같이 이들을 가족이라고 속아 넘어간다. 그렇게 다 자라면 노예로 부린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예가 된 노예개미는 주인 개미를 자매인 혈족으로 알고 그들이 개미지옥 같은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목숨을 던져 구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하지만 노예 개미가 같은 상황에 빠지면 주인 개미들은 못 본 척 무시하고 가버린다고 한다. 개미가 사는 세상도 아주 냉혹한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 성체가 된 이후의 개미들을 노예로 부리는 개미 종도 있는데 이들은 한 개미굴을 목표로 여러 부대가 침입에 타 군락을 모조리 살육하고는 몇몇을 살려두며 노예로 부리는데 가혹한 대우에 노예개미들은 주인 개미들이 보지 않을 때 주인 개미 종의 애벌레들을 살육하기도 한단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특정 개미 종 중 여왕개미가 하나의 군락 자체를 훔치는 경우가 있는데 수태를 마친 이 여왕개미는 다른 종의 궁전에 침입해 미혼산 같은 가스폭탄을 터트리며 주위를 혼란스럽게 한 상태에서 해당 굴의 원래 여왕개미를 도륙하고는 그녀의 피와 페로몬을 뒤집어쓰고는 그 개미 군락 전체를 속이며 그 군락의 여왕으로 군림한다. 그리고는 해당 군락의 모든 개미가 다른 개미 종인 이 여왕개미의 알을 부화시키고 애벌레를 양육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 여왕개미의 알에서 나온 애벌레도 놀라운데 이 알이 부화해 애벌레가 나오면 양육하던 해당 개미들은 자신과 다른 종이란 것을 페로몬으로 알 수 있는데, 새로운 여왕개미의 애벌레 역시 신경 가스폭탄 같은 걸 배출해 다른 개미들이 최면에 걸리도록 만든다고 한다. 살벌하기도 소름끼치기도 놀랍기도 했다.

 

어떤 개미 종은 나무 위에 올랐다가 천적을 만나거나 위험에 처하면 아무리 높은 나무에서도 뛰어내린다고 한다. 이 종류의 개미는 고공 스카이다이빙을 해 바람을 타고 내려오다가 공중에서 비행하듯 나무의 줄기에 안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개미 종은 극소수의 종뿐이다. 그리고 개미는 이동거리를 최단거리로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개미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크고 넓은 공간에 거대하게 지도를 배치해 수십 수백의 여러 지역에 위치를 표시하고 연결해 미로를 만들어 개미들을 풀어놓고 이들의 이동경로를 연속사진이나 특정 색깔을 띠는 색소 등으로 표시해 파악하면 모든 연결점의 최단 거리가 파악된다고 한다. 이를 개미 알고리즘이라고 부른다는데 번거로운 반면에 탁월한 최단거리 파악법 중 하나다.

 

이들은 전투도 이채로우면서 처절한데 이들의 힘과 펀치에 대해 이미 언급했으므로 사실적인 전투묘사는 생략하고 보자 해도 자신의 얇은 피막으로 인해 개미 자살폭탄을 자처하게 되는 개미 종이 있기도 하고 전투 중 작은 부상이나 여러 팔다리를 잃는 개미 전투원도 있다. 치료가 가능한 개미들은 치료를 다른 개미들이 전담하기도 하고 치료가 불가능한 개미는 자신을 옮기려는 다른 개미들에게 저항해 격전장에서 홀로 죽음을 감당하기도 한다. 살아남은 상이용사들은 개미 굴 입구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자신과 같은 소속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초병 역할을 한다. 인간 경우에도 해병대 전우회가 자경단 역할을 하며 우범지역을 돌아보는 등 자원해서 헌신하는 경우가 있는데 개미 경우에도 그와 같아 보인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개미들은 한 지역으로 이동해 공동묘지가 형성된다. 같은 군락의 개미는 그렇게 처우하지만 적군 개미는 따로 버려지거나 적군 개미의 시체를 들고 적지에 가서 포로와 교환하기도 한다. 여기서 개미학자들은 개미는 죽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파악하는지 궁금해 검사를 거치자 그들이 리놀렌산인가의 냄새로 시체를 파악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같은 군락의 개미 하나에 개미 시체 냄새와 같은 것으로 파악된 냄새를 입히자 개미들이 해당 개미를 공동묘지에 버리고 다시 그 개미가 돌아오면 또 공동묘지로 버리기를 반복했다. 이 시체 냄새를 씻기 위해 그 개미는 두 시간을 물가에서 목욕했다고 한다.

 

개미는 세균, 박테리아, 바이러스 등에 저항하기 위해 특정 박테리아를 뒤집어쓰기도 하는데 버섯 농사를 짓는 개미나 특정 식물로 빵을 만드는 개미 같은 경우에 특히 그런 유익 박테리아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종종 유해한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생을 마감하는 개미들이 있는데 이들은 다른 식구들에게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 굴 밖으로 나가 떠돌다 죽음을 맞이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와 비슷한 동충하초가 된 개미의 경우 대부분에 곤충학자들이 개미가 동충하초가 되는 감염으로 개미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거지를 이탈해 먼 곳으로 가 죽는 것으로 판단하는 걸 과거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다. 이 책의 개미학자들도 이들이 주거지 밖으로 나가 죽는 것이 해당 박테리아의 영향은 아닌가 싶어 죽음을 예감한 개미는 다 굴 밖으로 멀리 떠나는지 실험했다고 하는데 대부분의 생물종이 노출되면 죽음에 이르는 CO2를 개미가 흡입하게 했더니 다른 최면 효과는 없을 단순 가스인데도 불구하고 개미들은 모두 주거지에서 멀리 떠나가 죽었다고 한다. 개미들의 의무감, 책임감에서 느껴지는 바가 적지 않았다. 개미라는 작은 생명체는 시계침만한 그 작은 뇌로 어떻게 이렇게 다채로운 삶의 양식과 도덕성을 보이는 걸까 생각되기도 했다. 어쩌면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태생적으로 프로그램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본서를 보면 모든 개미들이 이타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아주 맛있고 영양가 높은 먹이를 발견했을 때 다른 개미부터 데려와 자신들 군락의 거주지로 먼저 가져가는 개미가 있는 반면 같은 종 같은 군락의 개미인데도 불구하고 저 혼자 먹고 마는 개미도 있었다. 개미학자들이 추적관찰 한 결과 한번 이타적인 개미는 쭉 이타적인 선택만 하고 한번 이기적인 선택을 보인 개미는 쭉 이기적이었다고 한다.(일주일의 관찰이었으나 대개 1~2개월이 일생인 일개미의 생애에서 짧은 기간은 아닐 것이다. 여담이지만 단백질 중심의 식단을 받은 일개미는 그보다 더 단명하는 반면 당도 높은 식단의 일개미는 1년 이상 장수를 했다고 한다) 개미들도 개성을 지닌 것이다. 사람 각자의 인격이 다르듯 개미들도 인간의 인격처럼 개미격이 있다면 그것이 다 다른 것이다.

 

이 짧은 리뷰에서 모두 언급할 수는 없었지만 다채로운 개미 종마다 특성과 개미 각자의 개성을 보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품성은 무엇이고 다른 생물종과는 다른 인간만의 독자성은 무엇일까 생각하게도 되었다. 개미의 모험과 일상과 죽음이 인간에게도 깊은 사색과 이채로운 감상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걸 새삼 느끼는 기회였다. 본서에서는 지금까지 파악된 13800종이라는 개미 종 가운데 75종이 언급되고 있다. 개미 종들의 이름이 한국어로 프랑스어로 라틴어로 너무 많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본 리뷰에서는 이름까지 언급하지는 않았다. 사실 다 읽고 난 본인도 개미 이름만으로 어떤 개미였나를 파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름을 모른다고 해도 개미라는 대상이 모호하다가도 친근하게 다가오게 해주는 책이 본서다. 1장의 단락들을 제외하고 48단락의 제목들이 가만히 보니 모두 영화와 문학에 등장하는 제목들이었다. 생물학이자 곤충학이 담긴 책이지만 정말 영화 같고 문학 같은 감상을 남기는 책이기도 하다. 영화 관람처럼 문학 감상처럼 다가서도 좋을 만한 책이라고 선뜻 권해드릴 수 있을 책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
짐 터커 지음, 박인수 옮김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드라마인 신혜선의 [이번 생도 잘 부탁해]나 마크 윌버그 주연의 영화 [인피니트]를 보면 자신의 전생들을 모두 기억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전생의 자신에 능력들을 모두 구현해낼 수 있어 다방면에서 실력과 경험치가 출중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은 전생에 전생에 전생 무수한 전생들 속에서 자신의 인연과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에서 신혜선이 연기한 반지음을 보다가 문득 아련히 생각하게 됐다. 무수한 전생에서 나를 사랑했던 이가 그 전생들을 다 기억하고 태어나 있다면 그리고 어디선가 나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하는 생각 말이다. 그런 이가 정말 있다면 난 말하고 싶었다. 어서 날 찾아와 달라고 아직도 난 널 기다리고 있다고.

 

이런 상상이나 상념에 빠지게 하는 드라마와 영화들에 우리가 빠지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사후세계와 환생에 대한 원형적인 하나의 상을 우리 내면에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본서 [어떤 아이들의 전생 기억에 관하여]는 그런 공상 같은, 인간이 가진 원형 중 환생에 관한 부분을 다룬 저작이다. 본서의 저자 짐 터커는 이안 스티븐슨이라는 환생과 전생의 기억 연구에 개척자이신 분의 제자로 버지니아 대학의 정신의학 및 신경행동과학과 부교수이자 인지연구 소장이라고 한다. 기독교인이었던 짐 터커는 이 분야에 대해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저작을 읽고 관심과 의문을 가지게 되어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연로하셔서 1990년대 은퇴하시고 짐 터커 박사는 본서를 이안 스티븐슨 박사의 그간 연구와 저작들을 인용하기도 하며 2005년 미국에서 출간했다.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2007년 작고하셨다)

 

본서의 소개 카피들은 전생 기억에 관한 책인데도 불구하고 본서에 대하여 과학적인 연구라고 평가하는데, 전생의 기억에 대한 주제라고 하지만 무속인이나 심령가의 막연한 뜬구름 잡는 추측이나 가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과 정신의학을 전공한 학자들의 연구다 보니 가설과 검증에 있어 체계적이고 치밀하려 노력했다고 생각된다. 본서의 독자들 가운데 자신이 상식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 분들 중 일부는 왜 검증이 더 쉬울 현재보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이전까지의 연구로 저술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의혹이 언뜻 스쳐갔으나 의문이 금세 해소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인 현재는 컴퓨터, 스마트폰, 무엇보다 SNS등이 발전해있다. 검증이 쉬운 것만이 아니라 타인의 기록을 누구나 엿볼 수 있는 시대이기에 거짓이나 조작이 더 순조로울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타인의 기록을 쉽게 엿볼 수 없는 과거 사례의 연구가 더 신뢰할 만할 수 있다 생각된다.

 

본서에서 전생 기억을 이야기하는 아기들과 아동들은, 자신의 가족 사이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경우와 지인의 자녀(태아)였는데 다시 태어났다는 극히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전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자신의 전생에 부모라거나 형제라거나 배우자라거나 자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아이들은 그들과 자신 사이의 사소한 이야기들부터 형이었던 전생의 자신이 동생에게 다른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몰래 특정 기종의 권총을 준 둘만의 비밀까지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자신의 아기가 태어나고 얼마 안 가서 죽게 된 여성은 얼마 후 다시 태어나 자라 6살 아이가 되었는데, 자신의 전생의 아기였던 11살 아이에게 보이는 그 아이의 절절한 모성애를 어떻게 거짓이고 연기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6살인 엄마가 11살인 딸이 병들자 안절부절 못하고 애태우는 심정을 어찌 조작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지 가늠이 안 된다. 또 환생한 후 자신의 전생 부인에게 돌아가 결혼한 남아의 이야기도 있다. 물론 자라고 나서 결혼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전생의 자신을 죽인 이에게 보이는 아이들의 공격성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미얀마에서 태어난 전생의 일본군 군인이었던 여아가 보여주는 군에 대한 집착도 설명하기 쉽지 않다. 여아가 전생에 자신이 남자였던 걸 기억하고 톰보이로 자라나며 남성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사례도 있다. 전생의 기억이란 것이 얼마나 상세한지 아기가 전생의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나 손녀만을 알아보는 게 아니라 차만 있는 사진에서 어느 차가 전생의 자신 차인지를 알아보고 가족들도 꺼내보지 않던 할아버지의 유년시절 친구들과 찍은 학급 사진에서 누가 전생의 자신인지 명확히 짚어내는 수준이다. 이 시절에는 타인의 인스타그램, X, 페이스북 등을 통해 타인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이라지만 앞서 말했듯 이 책에서 서술하는 모든 연구는 1950년대의 사례부터 1980년 이전까지의 사례다. 생면부지의 타인의 사생활을 깊이 알 가능성이 없는 시대였다는 말이다. 게다가 연구자들은 전생을 기억한다는 아이와 그 가족이 이익을 목적으로 사실을 조작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금전적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또 본서에 사례로 등장하는 모든 아이들의 전생에 살해당할 때 갖게 된 상처의 위치와 같은 위치에 모반을 지닌 채 태어나거나 전생에 신체적 특징과 같은 모반을 지닌 채 태어난 아이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이 아이들은 다 전생 기억을 주장했는데 확인해 보면 이 아이들이 자신의 전생이라고 주장하는 사망자들의 생전 신체적 특징과 일치했다. 우연이라 보기 쉽지 않은 경우들이다. 전생과 신체적 특징을 공유한 사례들에 대해 저자는 최면을 건 상태에서 차가운 동전을 뜨거운 무언가로 인식하도록 하고 신체에 닿았을 때 화상을 입는 경우들을 예로 들기도 하며 심리적인 각인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모반의 근거로 들기도 한다. 전생을 기억하는 이들의 심리적 각인이 현생의 몸에 모반이라는 변화를 가져오는 근거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예로 들며, 뇌가 손상을 입어도 인격이 변화하는 데 뇌가 형성되기도 전에 전생이 있었으며 그걸 기억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라며 비판하는 이들에 대하여, 저자는 텔레비전을 설치하면 방송이 나오며 텔레비전을 분해했다가 재조립해도 또 갓 생산된 부품으로 조립해도 방송은 나온다고 반박한다. 유물론적 환원주의의 관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본서는 단순하게 봐도 흥미를 끄는 주제지만 흥미만으로 끝나지 않고 삶 이후의 삶에 대한 의문과 관심 그리고 영혼과 우주와 세상의 다차원 구조에 관한 의문에까지 이끈다. 공자께서는 귀신이나 현실적이지 않은 대상에 대한 관심을 배격했고 부처님께서도 무아라시며 나라는 것은 매순간 변화하는 것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현실 그 이상을 바라기도 하고 윤회 전생하는 나는 무엇인가 의문을 품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때론 비현실이 때론 비일상적인 의문이 현실과 일상을 살게 해주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비일상적이기만 한 본서도 읽고 사려해 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집트 사자의 서
서규석 엮음 / 문학동네 / 199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서의 저자는 사회학을 전공한 분으로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계시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출간한 책들이 인류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전공만큼이나 인류학과 신화학 등에 대한 궁금증이 남달랐던 분이 아닌가 싶다. 본서는 저자분이 [이집트 사자의 서]를 국내 최초 출간할 목적으로 사자의 서에 대한 고대부터의 여러 텍스트와 다양한 루트에서 자료를 수집해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티벳 사자의 서][티벳 사자의 여행 안내서]를 읽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는 자체가 명상과 영적 여정을 그리는 것이구나 판단했던 이유가 크다. [이집트 사자의 서] 또한 영적 성장과 영적 평정을 위한 안내서이리라 믿고 선택했다. 이 책이 [티벳 사자의 서]와 차별되는 점이라면 영적 성장이나 영적 성취의 방향이 아니라 주술이랄까 마법 또는 종교 의례를 통한 부활의 목적을 가지고 사용되던 체계를 기록한 것이라는 거다.

 

[사자의 서]의 이집트어 원어 발음은 레우 누 페르 엠 후르라고 하는데 뜻은 낮에 부활하는 장또는 태양과 함께 낮에 부활하는 장이라고 한다. 태양이나 낮은 또는 라고 하는 최고 신에 하나의 측면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일출과 부활을 동일시하며 영생의 염원을 담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사자의 서]는 도굴꾼들에 의해서는 [키탑 알 마이이트]라고 불렸고 이는 죽은 자가 반드시 몸에 지녀야 하는 책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 책이 초기 이집트 연구 학자들에게 주목받고 이집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영어권 학자들은 이 책을 [book of the dead, chapter coming forth by day]라 표현했다고 한다. [사자의 서]로 불리운 계기는 렙시우스라는 학자가 이 텍스트에서 기원전 2010년경 중왕국 초기인 11왕조의 멘투호텝 파라오의 관구문을 해석하면서 [사자의 서 17]내세로부터 무수히 많은 날들의 낮에 출현하는 장즉 부활의 장이라 명명했기 때문이다. 또 아우팡크의 주문을 사자가 내세로부터 창조되어 현세로 인도되는 부활의 장으로 명명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자의 서]는 앞서 말했듯 영적 성장이나 영적 성취보다는 죽을 때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는 법이 다뤄진 책이고 신들의 가호와 판결 앞에 선 영혼의 입장이 담겨진 책이기도 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집트의 영혼과 육신에 대한 관점을 이해하는 게 먼저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의 영혼을 카(Ka)와 쿠(Khu) 그리고 바(Ba)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는데 는 영에 해당하고 는 혼에 해당한다. 사람의 일생과 함께하는 것이 이고 이것이 죽은 후에는 묘에 남아있다고 이집트인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모든 사물에 깃들어있다고 보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영이자 정령인 것이 인 것이다.

는 인간의 육체 내에 머물기는 하지만 인간이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육신에서 빠져나와 여행을 하고 여러 대상을 만나며 경험을 쌓는다고 한다. 사람이 영혼과의 만남 같은 기이한 꿈을 꾸는 것은 의 경험이 꿈으로 드러나서라고 한다.

에 대해서는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생전에는 육체에 있지만 사후에는 몸 밖으로 빠져나와 사자의 미라 주위를 선회하거나 미라 위에 앉아 있다가 체내로 들어간다고 믿었다. 묘지의 여신으로부터 식물과 음식을 제공받아 생존하다가 바가 다시 육신과 결합하면 부활하는 것으로 이집트인들은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시신이 썩지 않고 보존되어야 미래에 부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해부학과 미라를 만드는 기술이 이집트에서 고대부터 발전해온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신을 보존하고 를 묘에서 유지하다가 [사자의 서]에 담긴 주술적 마법적 종교적 의례를 통해 신의 가호로 부활한다는 신앙이 몇천 년의 긴 세대를 거치며 체계화되고 기록되어 [이집트 사자의 서]를 이룬 것이다.

 

[이집트 사자의 서]를 통해 명상적이고 영적인 성장을 엿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무너졌지만, 신화에 관한 관심과 분석심리학적 해석에 어느 정도 보탬이 될 만한 저작이기는 하다고 생각된다. 죽음과 영계가 궁금해서 읽겠다는 분들과 명상서로서 역할해주기를 바라는 분들의 기대를 한껏 충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신화적 종교 의례적 지식을 전하는 책으로서는 제 역할을 할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재천의 곤충사회
최재천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물학자, 생태학자, 동물행동학자이자 국내에서는 개미에 대한 강연과 저작들로 잘 알려진 학자이신 저자분은 국내에서 박물관장으로 정부 부처의 자문으로 사회운동가로 활동해 오시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세 단락으로 이루어져 첫 단락은 저자분의 학창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로 한 명의 학자이자 인간으로 성장해온 저자의 과거를 통해 사람의 생이라는 게 노력과 함께 운명적 흐름도 깊게 영향을 주는구나 하는 감상을 갖게 한다. 저자분의 생의 지점들마다 주어진 우연들이 저자분의 인생을 만든 운명이 되었다는 자신의 설명과 그 설명을 따르며 그런 감상을 갖게 된다.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주어지는 요소들이 사람이 느닺없이 갖게 되는 결심만인 것이 아니라, 그의 생의 저변을 이루는 경험들을 통해 갖춰지듯, 자신의 선택들에서도 우연인 듯 주어지는 요소들과 선택의 기로들이 운명적으로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감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생을 통해 갖는 감상과 다름없지 않나 싶다. 미성숙한 인간은 자신만을 보기에 자신의 의지니 노력이니 계획이니 하는 말만을 하겠지만 자신만이 아닌 모든 영향력과 요소들을 넓게 보다 보면 노력이니 의지니 하는 것의 근원이 운명이었음을 또 그 의지와 노력이 차지하는 부분이 그다지 크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두 번째 단락은 이 책의 제목과 같이 곤충사회를 그리고 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고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우지만 인간 이상의 사회성을 보여주는 곤충들이 있으며 농사, 목축, 낙농, 건축, 분업, 전쟁, 영토확장, 사회 형성, 노예 육성 등을 통해 살아가는 개미와 또 그와 유사한 벌의 삶은 보며 인간의 삶의 모습이 그다지 위대한 지배종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기 헌신과 희생의 면은 곤충이 더 위대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벌은 여왕개미가 임신하고 돌아온 공주개미를 위해 벌집과 일벌들의 절반을 남겨주고 집을 찾으러 나가는 분봉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한국의 결혼하는 자식을 위해 집을 장만해 주는 부모의 헌신을 이야기하며 저자는 벌들은 이보다 더하지 않느냐며 극찬을 하기도 한다. 그저 삶의 양식의 하나로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말씀에 약간은 공감하기도 했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저자분은 이 책 전반의 이야기들을 종합하고 환경문제를 더하며 공진화를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사회와 자연이 다 함께 성장과 풍요를 지속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이다. 나로서는 인간의 영향이 극단적인 영향을 미쳐서 환경파괴가 시작되었다는 종말론적 환경주의를 믿지 않기에 저자분의 말씀의 모든 부분에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다 함께 살아가자는, 함께 진화해 나아가자는 말씀에는 적극 공감했다.

 

본서는 생태학만이 담기기보다 한 사람의 생의 몇 대목을 담고 있기도 하고 곤충의 삶을 공감하고 그를 통해 성찰할 기회도 되며 아울러 자연과 함께 나아가자는 감상까지 갖게 되는 책이기도 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감상이 가져지는 책이다. 지식과 성찰과 지혜가 어우러진 책이 아닐까 싶다. 저자분이 구어체로 일상의 이야기들을 토로하는 투로 저술하신 책이기도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서 교훈과 조언과 성찰을 얻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찾으실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리엔트 문명과 예수 신화 - 신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하여 죽음에서 해방되는 이야기
이원구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에서 문명을 거론하고 있듯 비단 오리엔트 지역의 신화뿐만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도 언급된다. 예수 신화라고 했듯이 히브리 문화가 받은 영향에 대해서는 약식으로 짧게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신화에 비중이 높다. 전작인 [수메르 문명과 히브리 신화]의 연장선에 있는 저작이라고 저자가 앞서 밝히고 있기도 해서 전작을 통해 수메르의 역사와 신화를 잘 알고 있다면 훨씬 더 이해가 용이했을 것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본인도 전작은 읽어 보지 못하고 본서부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이해에 큰 장애는 되지 않지만 전작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수메르의 신화가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칼데아, 아카드, 페르시아 등등 메소포타미아 전체에 영향을 미쳤으며 각국에서 신앙하는 신에게 더욱 신화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랄까 비중이 높아지거나 각국에 익숙한 신과 합일하던가 각국에 익숙한 신 또는 여신의 이야기로 변용되던가 하는 모습들이 보이며 신화를 통해 하나의 문명권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수메르 신화에서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전역의 신화들은 메소포타미아에서만 한정되지 않고 이집트 신화, 그리스와 로마 신화로도 녹아든다. 기원전 2천 몇백 년에 이르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지역의 신화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졌으며 전파되었다. 이런 영향을 히브리 신화라고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구약에서 드러난 유일신의 모습과 행태는 그 영향을 벗어나지 않는다. 예수 신화도 민희식 님의 [성서의 뿌리] 시리즈나 티모시 프리크와 피터 갠디의 [예수는 신화다] 같은 저작들에서 이미 헬레니즘 문화가 융성한 이후 불교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유럽까지 확산한 이후 형성된 예수 신화가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본서에서는 더욱 확연히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4부와 5부는 구약과 신약이 얼마나 그 이전 신화들에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장들이 이어지고 영지주의와 정통 기독교가 대립하고 정통 기독교 내에서의 분열과 숙청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예수와 그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일종 비유라고 받아들이던 영지주의 교파들과 정통 기독교 내에서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던 종파들의 사례를 읽으며 과연 현재의 기독교는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저자의 말마따나 사도들의 시대, 베드로의 시절부터 정치적인 역량만이 강화된 종교가 아닌가 하는 감상도 들었다.

 

본서는 신화가 확산하며 서로 영향을 주면서 전파되어가는 과정과 유대교 기독교가 다른 지역의 이전 신화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충분히 생각해 보게 하는 내용이다. 저자분이 문학 전공이면서 중동지역 신화를 연구하시는 분이라 상당히 몰입감 있게 저술된 저작이다. 오리엔트 지역의 역사와 신화가 궁금해서 펼친다면 더 많은 상식과 더 많은 독서열을 갖게 하는 책인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