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행
정명섭 지음 / 텍스티(TXTY)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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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다크 판타지이 소개가 무엇보다 끌리기도 했지만, 등장 캐릭터들 소개도 나름 매혹적이었다. 송현우, 이명천 등 주요 인물과 소진주, 진운, 정원석 같은 주변 인물의 소개부터도 설정과 서사가 몰입하게 하는 듯했다.

 

책을 펼치면 내지의 제목이 나오고 바로 뒷장부터 바로 [등장인물 소개]가 등장하는데 독자가 몰입하도록 만드는 요소는 여기부터가 아닌가 싶다. [조선판 다크 판타지]라는 사뭇 신선한 장르이기도 한데 등장인물들의 설정부터가 끌리는 데다가 읽어나가며 낙죽장도와 마패 등 아이템들의 특색도 잘 살린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극 판타지이면서 호러, 오컬트 장르와 미스터리 서스펜스 장르가 잘 어우러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편소설이다.

 

과거시험에서 문과 장원급제를 한 주인공 송현우는 무과 급제를 한 이명천과 막역한 사이였다. 장원급제한 그는 암행어사로 낙점되어 암행을 떠날 날을 앞두게 되지만 이명천의 여동생과 급제 이후 바로 혼인을 한다. 혼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별채에서 밤을 보내고 바로 다음 날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아내는 죽어 목이 잘려있다. 놀란 그는 안채에 가보지만 이미 어머니가 돌아가신 상태고 사랑채의 아버지에게 가자 아버지 역시 사망하고 머리는 잘려 머리가 어디 있는지조차 찾을 수도 없는 상태이다.

 

이 모든 상황에 놀라고 분노한 그에게 안개와 함께 외눈 귀신, 외다리 귀신, 외팔이 귀신이 나타나자 그는 아버지 시신 곁에 놓인 피에 물든 사인검을 들고 무작정 공격한다. 포도청에 포교로 자리하게 된 이명천은 살인 사건이 났다는 그것도 자신의 친구 송현우의 집이라는 말을 듣고 달려간다. 그리고 이명천은 송현우의 아버지인 병조판서와 그 아내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을 보게 되고 송현우 주변인들의 고변을 듣고 송현우를 포박한다. 포도청 옥사에 갇힌 송현우는 절망하고 자결하려 하지만 목에 그은 상처가 나으며 까마귀를 따라가 천격당의 소진주를 만나 여정이 시작된다.

 

가족의 죽음, 갓 혼인한 아내 죽음에 되려 살인범으로 몰리는 현실에 좌절하면서도 이 모든 상황을 가져온 존재에 대한 분노의 힘을 동력으로 여정을 떠난다. 애초에 암행어사로 낙점되어있던 그는 암행에 필요한 장비들을 숨겨둔 곳에서 마패 등 장비를 챙기고 소진주가 배려한 진운이란 인물과 어둠이란 개와 함께 암행을 시작한다. 신비한 힘을 지니며 시작된 그의 암행을 그를 쫓으라는 밀명과 함께 암행어사가 된 이명천과 이 모든 사건의 실체를 밝히라는 명을 받은 부마 정원석이 각각 그를 뒤쫓으며 여정이 이어진다.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 곁 병풍에도 쓰여있던 무원’, 그리고 천격당주 소진주가 언급한 무원을 밝혀내고자 무원이 있다는 남쪽으로 향하는 송현우는 마주치는 고을에 이어지는 변고에서 자신의 가족과 아내를 죽인 귀신들의 흔적을 찾게 되고 그들을 무찌르게 된다. 그런 그를 뒤쫓는 이명천의 오해는 깊기만 하고 가짜 암행어사 송현우와 진짜 암행어사 이명천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결국 송현우는 무원의 비밀이 담긴 섬에 이르고 자신의 부친과 전대 임금부터 이어지던 은밀하고 음침한 진실에 다가서게 되는데...

 

이 소설은 역사 소재이면서도 장르부터도 판타지와 호러, 오컬트,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담고 있고 전대부터의 비밀과 얽힌 복수 그리고 어둠의 길을 가는 암행어사의 암행이라는 서사가 어우러져 있다. 또 등장하는 귀신들과 주인공 송현우가 지니게 된 귀기어린 힘과 그의 아이템 낙죽장도와 마패가 보이는 십이지신과 귀령들이 보이는 진기한 장면들과 독특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몰입감있게 소설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역사 오컬트 판타지라는 독특한 장르를 매끄럽게 묘사해낸 저자의 스토리텔링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소설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이 책 분량으로 끝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실제가 되어 다음 권을 기다리는 설렘을 지니게 되기도 한다. 던져진 대부분의 미스터리는 부담스럽지 않게 무사히 해소되지만 마지막에 주어지는 주박신은 과연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다음 미스터리를 기대하게 한다.

 

호러와 미스터리를 자주 접하지 않는 분들도 무겁지 않게 다가설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고 앞으로 여러 콘텐츠로 재생산될 이야기일 것 같아 더더욱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무겁기만 한 주변 때문에 색다른 휴식처가 필요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다가서 볼 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 텍스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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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스 :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제나 새터스웨이트 지음, 최유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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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해피북스투유]로부터 도서제공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의 소개는 아주 화려한데 ‘2024년 올해 가장 기대되는 소설’, ‘2024년 참신한 공상과학 소설’, ‘2024년 독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미스터리&스릴러’, ‘2024년 최고의 데뷔소설’, ‘이달의 베스트 심리스릴러 신작’, ‘2024년 가장 기대되는 공상과학&판타지 소설등 소설에 주목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미사여구다. 최고의, 기대되는, 참신한, 미스터리&스릴러, 심리스릴러, 공상과학&판타지로 정리될 텐데 리뷰를 미리 스포일러 하자면 이런 수식어들이 전혀 과장되지 않은 소설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신스]의 원제는 [MADE FOR YOU]. 영어 제목을 그대로 번역해서 한국어 제목으로 삼았다면 그다지 첫 이끌림은 없는 책으로 인식되었을 것 같기도 한 제목이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요 소재이자 전체 흐름과 대미를 장식하는 근본적인 주제를 담은 소재인 신스자체를 제목으로 삼은 듯하다. 책 소개글을 조금이라도 보셨거나 이 리뷰를 보시기 전 입소문이라도 들어보신 분이라면 이미 아실 것이듯 신스는 인조인간을 지칭하는 이 소설에서의 용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조인간 즉 신스인 여성, 줄리아다.

 

소설은 줄리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을 찾으러 왔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번갈아 가면서 반복되며 전개된다.

 

과거부터 설명하자면 그녀는 조쉬라는 한 남성의 연인이 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조쉬가 출연하는 조쉬를 차지하기 위한 여러 여성들의 서바이벌 연애 프로그램인 [더 프로포즈]에 출연하는 것이 그녀가 탄생 후 최초로 갖는 업무이다.

 

그리고 현재에서는 이미 남편이자 딸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조쉬는 여행을 갔다가 소식이 없고 이야기는 금세 조쉬의 살인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 서스펜스로 이어진다.

 

과거와 현재는 각 한 챕터씩 순환하며 반복되는 데 과거라는 이름의 장들은 줄리아와 조쉬의 [더 프로포즈]에서의 첫 만남과 이어지는 방송에서의 달콤한 연애담이 이어진다. 결국 줄리아가 조쉬를 쟁취하며 둘의 결혼과 함께 순조로운 연애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같지만 결혼을 앞두고 조쉬의 엄마가 줄리아가 신스인 것을 문제 삼아 결혼을 반대하며 이 연인들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말기암 진단을 받은 조쉬의 엄마 문제로 조쉬가 스트레스를 극심히 받으며 완벽한 외모의 매력적이기 이를데 없는 연애 상대인 조쉬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신스지만 기증된 난자로 배란을 이어가고 있는 줄리아는 이미 조쉬의 아기를 임신하였다는 걸 알고는 이 사랑의 결말이 이렇게는 안 된다는 심정과 함께 운명에 끌려가듯 결혼을 하고 임신 초기부터 조쉬의 엄마인 말기암 환자 리타를 돌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매력적인 연애 상대 조쉬는 리타가 사망하자 자신의 부정성을 극한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며 이야기는 끝간데 없이 전개된다.

 

과거와 교차 순환하는 현재라는 이름의 장에서 결혼 후 1년 몇 개월이 넘은 현실이 펼쳐지고 홀로 여행을 떠난 조쉬를 기다리는 줄리아는 이미 애널리라는 아기의 엄마이기도 하다. 결국 조쉬에 대한 실종 신고를 하려던 그녀에게 방문한 경찰 미첼은 살인 사건을 의심하는 발언을 하고 줄리아는 자신을 제작한 앤디와, 가끔씩 그녀가 애널리를 맡기는 베이시터 에덴, 그리고 수상쩍은 이웃 밥, 그리고 [더 프로포즈] 방송 당시 난입해 자신을 공격했던 데보라를 용의선상에 놓고 의심한다.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줄리아는 처음에는 여느 순수한 여성과 다를 바 없는데 그녀가 신스라는 인조인간으로 사람과 다르다는 인상을 받게 되는 건 초반부에는 그녀를 향한 공격자 데보라와 경찰 미첼의 적대적 반응과 선입견이 다일 것이다. 후반부에 와서야 에덴이 그녀에게 행한 일들 그리고 앤디를 향한 마지막의 그녀의 반응과 대응이 최종적으로 그녀를 신스구나 하고 차이점을 인식하게 한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서스펜스와 공상과학 판타지로서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주고 결말에 가까워져서는 심리스릴러로서도 완벽한 소설이라는 감상을 갖게 한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세히는 적을 수 없지만 순수하던 그녀가 앤디가 했던 마지막 말처럼 완전히 고장나 버렸다는 것을 소설의 맨 마지막에 그녀가 애널리 방에 가져다 놓아야겠다는 무엇으로 인해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선명하다가 결말로 가서는 모호해진다. 그녀를 그리 만든 것이 앤디라는 에덴의 말도 신뢰할 수 없다. 에덴의 계획에 줄리아와 앤디가 희생당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앤디는 줄리아가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아무것도 몰랐지 않은가? 앤디가 줄리아에게 어떤 욕동을 프로그램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모든 건 웨크테크사의 CEO 자리를 빼앗기 위한 에덴의 계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 이 소설은 명백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소설은 달콤한 연애와 현실인 결혼 그리고 가정 폭력 속에서도 대외적으로는 멋진 부부를 연출해야 하는 모습 등의 대비를 보여준다. 타인들이 보기에 멋진 연애 상대인 조쉬와 현실에서는 쓰레기인 그가 대비되듯이 그리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플루언서이자 신스라는 이유만으로 대중에게 폭력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줄리아를 통해 이 시대의 차별철폐 주의를 강조하려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그녀가 결말의 그녀로 남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거북하지 않게 잘도 묘사해낸 작가로 인해 줄리아에게 한마디로 단언하기 힘든 묘한 감상이 남기도 한다.

 

공상과학 판타지이자 미스터리 서스펜스이기도 하지만 또 심리스릴러이기도 한 이 소설은 가볍고 쉽게 페이지를 넘기는 중에 자각하지 못하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내가 언제까지나 순수 속에 있기에는 세상은 많이 난해한 곳이구나 하는 감상을 갖게 할 것이다.

 

사람도 인공지능도 똑같이 이렇게 고장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무섭도록 현실감을 주는 소설이다. 재미 삼아 읽기에도 뛰어나고 이 시대에 내가 돌아보지 않으려던 현실을 새삼 주시하게 해 준다는 데서도 탁월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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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책세상 세계문학 2
안네 프랑크 지음, 배수아 옮김 / 책세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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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안네의 일기는 많이도 언급되고 청소년기에 읽은 사람들도 많았던 책으로 알고 있다. 아마 요즘 세대 중에서도 독자층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로서는 전쟁 시기를 거친 사람들의 당시 심정과 그 시기의 대처법 등이 궁금하기도 해서 선택한 책이다. 점점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시절이다 보니 현재에 닥칠지 모를 위협에 대해 알아두어 나쁠 게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에 쓴 일기문이자 하나의 기록문학이랄 수 있는 본서를 읽고 난 감상은 당시의 건조하고 위협적이면서 공포를 불러오던 현실을 간접 체험하게 해주는 소중한 기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942년부터 194413살부터 15살 사이의 시기 안네 프랑크가 쓴 이 일기는 전쟁의 막바지가 거의 이르러 끝나는데 이 일기문의 중단 이후 안네 프랑크의 가족은 함께 은신처에 숨어있던 다른 유대인 가족들과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안네의 가족은 아버지를 제외한 모두가 수용소에서 사망하고 다른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일기문에서는 안네의 가족이 은신처로 먼저 숨어들고 이후 속속 다른 유대인 가정이 합류해 함께 생활하며 일어나는 소소한 갈등과 유대 그리고 전시에 겪는 일반 시민의 두려움과 유대인으로서 이는 공포 등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십대 소녀에게 이는 섬세한 정서와 반항과 욕정까지 그대로 담겨 있기도 하다. 사실 안네와 그녀의 어머니 사이의 갈등은 별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자기 친엄마에게 상당히 되바라진 안네의 성향이 잘 드러나 있고 시대적으로 금욕적이었을 당시 유럽 청소년과는 다르게 상당히 성적으로 조숙하고 까져있는 안네의 모습은 대중에게 공개되기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버지는 안네의 일기 중 엄마와의 갈등과 페테와의 일화 가운데 일부 등을 제외한 내용만 출간했었다고 한다. 21세기가 되어서 기존 유럽의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하지 않은 안네의 모습까지 수용할 만치 세태가 변하자 안네의 일기 미공개분까지 그녀의 친필인지 검증을 거쳐 공개되었다. 본서는 21세기 공개분까지 함께 수록된 완전판이다.

 

안네의 일기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유대인의 수용소 생활 등을 다루고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독일의 많은 이들이 이건 실화가 아니다라고 반발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네의 일기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들 중 당시까지 생존해 있던 인물들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대중이 실화라고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명 이 책에는 전시에 은신해 있는 이들의 건조한 일상이 담기긴 했지만 폭격을 두려워하거나 자신들이 은신이 들킬까 조마조마해 하는 정도일뿐 전쟁의 참혹함이 담기지도 그렇다고 유대인 수용소 생활이 담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반발한다. 증거가 명확해도 이런 반응들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한 실상을 밝히는 이들의 증언에 대한 반응이 이보다 더하다 해도 이상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안네 가족의 사망을 미리 알고서 본문을 읽는 이들은 이 일기가 끝나는 마지막에 격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은신한 이들의 삶이다 보니 이들이 겪는 내적 격동들과는 다르게 참 단조로운 일상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 과정을 담은 안네의 정서를 통해 여과를 거치며 담백하지만 무서운 현실감을 갖게 된 것이다 싶다. 시대와 소녀가 시대에 처한 이들의 이야기에 어떤 빛깔을 갖게 했다. 그런 빛깔과 이들이 맞이한 결론이 다시는 재현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안네의일기 #안네프랑크 #배수아 #책세상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제2차세계대전 #네덜란드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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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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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이라는 역사적 상흔을 그려낸 소설이다. [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가 한강 작가의 시대를 향한 시선과 생존자들의 시절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돌아보기에 좋은 작품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 같은 경우는 부커상 수상 이후 자신의 경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희망이 담겨진 소설 같다. 그럼에도 [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는 시절을 보는 관점이 작가와는 다른 이들의 비판을 듣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 논란 때문에 역사 해석 논란이 없는 [채식주의자]부터 읽고 이 소설을 읽었는데 채식주의자의 시선과 같은 시선이라고 느껴졌다.

 

[채식주의자]에서는 폭력과 방관 내지는 목격만이 태연히 이어지고 자신에게도 야만성이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며 야만을 벗어나려는 영혜가 느껴졌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시절의 상처를 건네받은 인선과 그 시절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멈춘 숨이 느껴졌다.

 

나무의 우듬지와 그를 덮고 있는 눈꽃송이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새가 먼저 죽어가고 살아남은 새도 물을 마시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징, 그리고 손가락이 절단되어 접합수술을 받고 신경이 죽지 않도록 3분마다 상처를 찔러 피를 내야 하는 인선의 손가락 등 여러 상징으로 시절을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지만 초반의 이 상징들이 이 책의 색깔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상징화한 것이 나무의 우듬지였다면 그 우듬지를 덮고 있고 하염없이 내리며 세상을 덮어버린 눈송이들은 상처를 낫지도 드러내지도 못 하게 하며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덤덤하게 흘러가고 있는 세상과 시절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우듬지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을지 눈물이 흐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눈송이 같은 시절과 세상은 그 모두를 덮어버리고 얼려버려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세월이 흘러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인선의 절단되었다가 접합한 손가락을 신경을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3분마다 찌르듯이 살아남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은 살아남아 상흔과 비명을 모든 순간 삼키고 있다. 인선과 인터뷰를 한 한 생존자와 그의 딸의 모습처럼 이 상흔과 괴로움은 되물림되고 있다. 한 시절에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만 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는 생존자의 말은 살아남은 것마저 죄로 느끼고 있는 생존자들의 심정을 드러내는 말이지 않은가. 이들은 죄인마냥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감당해내야 했다. 말하는 새가 먼저 죽어버린 새장처럼 표현할 수 있는 자격은 죽어간 사람들과 함께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싶다. 살아남은 새는 눈길로 반려인이 돌보러 갈 수 없어지자 하루 동안 물을 못 마시면 죽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다. 그 새의 하루는 도대체 어느 만큼의 시간을 말하는 걸까를 헤아리려는 마음이 생존자들에게 향한다면 과연 이들은 언제까지 감당하고 언제까지 입을 막고 살아야 했다는 말인가 하는 물음이 든다.

 

제주 4.3 사건은 2000년경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시로 진실규명이 시작되었지만 사실 자체의 규명만큼이나 피해자의 심정을 공감하는 기회가 과연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의 손아귀에 숨겨져 있다 바닥에 떨어진 물려 뜯어 죽어버린 작은 새의 사체처럼 대부분에 사람도 갑작스레 시대가 사람이 야성을 드러내면 언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르는 게 현실이다. 사위가 어두운 밤길을 걷다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두려움이 몰려들 듯 사람은 사람의 야만성 또 사람이 만드는 시대의 야만성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다. 지금 이 시절의 시대 상황이 두려운 이유도 바로 사람이 자신의 그리고 집단의 야만성이 드러날 수 있는 시절임을 알고 있어서가 아닌가. 어쩌면 어느 시절에나 그 시절을 제대로 통찰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사람이 모두 뒤집어져 보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세상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로 보려면 누구라도 채식주의자의 영혜처럼 물구나무를 서야 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난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물구나무를 선다 해도 우듬지가 생겨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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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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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부커상 수상 때까지도 그녀의 작품에 큰 끌림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그녀의 작품들에 뚜렷한 비판적 시선이 끊이지 않기에 그게 더 그녀의 작품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채식주의자] 만큼은 역사 해석에 대한 많은 이들의 이견을 신경 쓸 일 없이 서사와 그녀의 문학적 빛깔만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선뜻 다가설 마음이 생겼다.

 

이 소설을 향한 눈길이 지속되며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시적 산문이라는 그녀의 문체에 대한 수식어로 인해 미사여구가 화려한 문체일 거란 선입견을 가졌는데 그게 가장 먼저 깨졌다는 것이다. 헤밍웨이가 연상되리 만치 담백하고 직설적으로 다가왔다. ‘채식주의자’, ‘몽고 반점’, ‘나무 불꽃으로 이어지는 폭력과 파괴와 목격이 건조하지만 붉게 흐르는 피처럼 다가오도록 만드는 그녀의 문체는 거북하면서도 다시금 그녀의 소설로 다가서도록 만들 것만 같았다.

 

자각 (채식주의자)

 

영혜의 남편 시선과 드문드문 이어지는 영혜의 시선으로 채식주의자는 가장 가까운 사이 마저 물들이는 인간의 태생적인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구나 싶었다. 그리고 영혜는 그런 인간의 폭력성을 꿈을 통해 마주하고 그런 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살고 싶어한 거라 여겨진다. “꿈을 꿨어라는 그녀의 고백이 있기까지 그리고 그 꿈이 있기 전까지 또 그 이후에도 그녀는 인간이 만든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폭력과 야만을 경험하고 살았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녀 자신에게도 역시 그런 폭력과 야만이 있으리라는 깨달음이 그녀를 채식주의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녀에게 돌아온,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해치지 않으리라는 그녀의 발심에 대한 대답은, 가장 가까운 이들의 폭력이었다. 관계에 무심해진 그녀를 강간하는 남편, 그저 육식으로 대변되는 폭력에 저항하는 그녀를 향한 그녀 아버지의 폭력 그리고 사람들의 태연한 방관. 이 모두는 그녀가 자신을 해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녀는 아마도 저항한다는 자각도 없었으리라. 그녀의 집에서 감자를 깎으며 상의를 벗어버린 또 병원으로 이송된 이후 병원 벤치에서 상의를 벗어버린 그녀의 행동 그리고 그녀 아버지의 폭력에 미친 마냥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 그녀의 행동들은 미미한 소소한 그러나 붉디붉은 항거였을 것이다. 그녀가 미쳐가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과정이 나로서는 하나의 자각이자 회복에 대한 여정이었다고 보였다. 인간의 본성이 야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궁극의 본성이 깨달음이라면 그녀는 하나의 약한 본성에서 다른 하나의 강한 본성으로 전이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이 죄를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했듯 그녀를 보는 세상의 시선은 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과녁에서 벗어난 화살이 되어가는 듯하다.

 

자행과 흑화 (몽고 반점)

 

영혜의 형부 시선에서 그려진 다음 이야기는 아내에게 영혜의 몽고 반점 이야기를 듣고부터 처제인 영혜에게서 관능을 느끼는 형부와 그로부터 침범당하다 서로를 또 자신을 속이는 몸짓으로 이어진 일탈로 모두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형부는 영혜를 탐하기 전까지 녹아가는 밀랍 같은 상태였으나 영혜에게서 관능을 느끼고부터 하나의 불길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은 자신의 아내를 향한 야만으로 범해지기도 한다. 그는 영혜를 자신의 그림으로 뒤덮고 그녀를 범하고자 하지만 영혜는 어떤 남자도 아닌 몸에 그려진 꽃에 끌리고 있다. 형부는 그런 그녀의 심리를 알고 자신의 몸에 꽃을 그려 그녀의 관심을 돌리며 결국 그녀를 품는다. 그걸 목격한 영혜의 언니 인혜는 그 둘을 정신 병원에 넣는다. 우리가 덤덤한 일상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영혜와 형부와 인혜를 죽이고 있었듯 우리를 죽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죽음을 벗어나려는 반역은 결국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우리가 무너지는 현실을 가져온다. 영혜는 채식주의자에서 세상과 자신을 자각했으나 벗어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영혜의 형부는 일상과 다른 불길은 안게 되지만 이 여정에서 자각을 얻지는 못한다. 이 둘의 마주침은 둘 다의 흑화를 낳는다. 깨달음의 과정에서 필요한 과도기일 수도 있지만 이 둘 어느 누구도 깨달음이나 깨우침을 얻지 못하며 무너져버리는 계기만이 될 뿐이다. 영혜의 언니 인혜는 묵묵히 참고 감당하는 인물이었지만 결정적인 순간 영혜와 영혜를 범한 자신의 남편을 늪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녀 자신과 가족까지.

 

수용이거나 붕괴이거나 (나무 불꽃)

 

인혜의 시선에서 이제 자신이 무너지듯 동생 영혜의 몰락을 목격한다. 정신 병원의 영혜는 나무가 되는 자신을 꿈꾸지만 하혈하는 언니 인혜와 같이 희망과 회복은 그녀에게서 영영 떠난 이야기되어 간다. 인혜는 남편과의 이혼과 그 이후 자신에게 다가온 현실을 그녀가 늘 그랬듯 묵묵히 감당한다. 영혜는 흑화가 절정에 치달아 자신의 보호자로 남은 인혜를 제외한 가족과 세상과의 관계가 끊어지지만 이런 흑화가 그녀에게 거듭남이나 깨달음을 안겨주지는 못하리란 걸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혜는 영혜 그리고 영혜의 남편 그리고 아버지의 폭력과 영혜가 손목을 그었던 날 또 자기 남편과 자신의 만남, 남편이 영혜에게 관능을 느끼던 순간, 또 둘을 병원에 입원시킨 순간 등 하나하나의 날들을 떠올리며 어느 순간을 바꿨다면 이런 현실이 오지 않았을까를 헤아리려 한다. 그러나 과거는 가정을 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이 마주한 야만과 혼란과 몰락과 붕괴는 우리 누구라도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일탈이 아니라 일상인 것이다. 무난하고 무던한 일상이기만을 바란다고 그런 날들이 영원할 수 있을지 우리로서는 자신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이런 야만과 몰이해와 자신과는 다른 이에 대한 배격이라면 당연히 인간이 일군 문명 역시 그런 속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기에 우리 누구나가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마주한다면 우리는 침몰하거나 붕괴될 수도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현실을 조금 비꼬고 과장한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나는 결단코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고 이 이야기에서 거북함 이상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당신이라면, 어쩌면 인간이 만든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면 축복만 받은 영혼일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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