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들 - 전쟁의 한복판에서 살아 돌아온 인간들의 역사
이준호 지음 / 유월서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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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아야 세상을 해석하는 눈이 생긴다거나 역사를 통해 사람과 삶을 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들은 흔히 접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대개 그 폭과 깊이가 헤아리기 힘든 역사의 면면은 다가서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자신이 절실히 느끼는 삶의 주제와 닿는 역사는 무엇인지 평소 헤아려 보며 사는 분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드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대개 부와 경제, 전쟁 또는 지리라는 주제로 많은 분이 대중 역사서를 찾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그렇다면 평범한 우리에게 와닿는 역사의 주제는 무엇일까? 지금과 같이 다음 팬데믹을 우려하고 각지의 전쟁이 확전될까를 염려하며 경제 불안이 가중되는 게 걱정인 시대라면 생존이 아닐까? 어떻게든 살아남자는 생각이 잦은 분들에게는 경제적 생존과 사회적 생존 그리고 말 그대로의 생존 자체가 화두가 될 수도 있을 시절이다. 그런 까닭에 본인 역시도 [생존자들]이라는 본서의 출간과 함께 다른 미사여구를 고려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 책에 이끌림을 느꼈다.

 

본서에 등장하는 생존자들이 겪은 전쟁의 참상과 그들의 생존기는 처연하기도 무겁기도 했으나 전쟁이 무언지 그리고 전쟁이 그치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했다. 독일의 점령으로 900일간을 살육과 폭력, 죽음의 공포에 놓였던 레닌그라드 시민들과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1시간여의 클래식 음악 연주를 방송한 소련의 선택 그리고 굶주림으로 연주 연습 도중 연주자들이 사망하는 사태까지 이어지는 데도 연주를 감행한 연주자들의 역사는 처연함과 장엄함 그리고 안타까운 가운데 희망이 움트는 듯한 환상을 안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군이 독일의 각지를 점령하게 되었을 때 소련 군인들이 보여준 집단 강간이라는 복수의 모습은 그들 소련군과 독일군의 행태가 오러랩되며 인간의 본성에 대한 실망과 절망으로 이르게 했다. 본서 내용을 벗어나 더 나아가 보자면 우리 민족이 겪은 일제 강점기하의 일본의 강제 징용과 위안부 사건,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 실험 등도 인간에 대한 실망과 절망을 하기에 충분한 예시들이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자원해서 잠입했던 폴란드군인 비톨트 필레츠키의 사례나 독일군의 수용소인 폴란드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저항하고 탈출한 알렉산드르 페체르스키의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이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기도 한다는 인간 승리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종전 후 폴란드의 이념 갈등으로 같은 수용소 출신의 폴란드 수상에게 사형당하는 비톨트 필레츠키의 말로 그리고 소련군의 독일 각지 점령시 독일 민간인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야만과 침탈 그리고 종전 14년 후 피해 여성의 고발 회고록에 대한 당시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생의 허무함과 부조리 그리고 착잡함을 느끼게 했다. 함선이 침몰하는 속에서도 승선원들과 망망대해에서 상어 떼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은 찰스 맥베이 함장이 생존했다는 이유로 거쳐야 했던 억울하게 책임을 모두 전가 당한 판결 역시 사람과 삶에 대한 착잡함과 비애를 갖게 했다.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 야만과 폭력과 인권 유린을 감당하다 못해 일본군이 식인을 하기 위해 마구 살육하는 사건들 마저 감당하고도 살아남은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일본과의 우방으로서 관계마저 책임을 다했다. 여기서 인간 정신의 승리로 마무리 되나 싶었으나 다시 독일군의 고문 전문가이자 살육가인 클라우스 바르비는 유대인들을 선별해 살인하는 수용소로 보내기 위해 유대인 어린이들이 있는 고아원까지 급습했다고 한다. 유대인 여성들을 지속적으로 강간하기까지 하며 전방위적으로 그 자신의 악마성을 드러내는 이 인물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하게 하는 건 그의 행위만이 아니다. 종전 후 그런 그를 임용하고 국제재판소에서 전쟁범죄로 그를 검거하려 하자 그를 도피하도록 도운 미국 정부는 한층 더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면 악마도 이용하고 악마 그 자체가 되기도 하는 것 그게 인간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서는 생존이란 화두만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역사란 결국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인간 스스로에게 다양한 정서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잘못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역사가 필요하다는 말들은 많이들 한다. 하지만 인생을 조금만 살아봐도 인간이란 같은 잘못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교훈과 정서적 동요를 다시 또다시 새겨야 할 일이다. 반복이 끝나기를 다짐하면서 말이다. 개인으로서는 무력한 것이 전쟁이라 해도 우리는 알아야 하고 새겨야 한다. 우리에게 그칠 힘이 갖춰지는 날까지. 그런 의미에서 읽고 새길 가치가 큰 저작이라 생각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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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민족 사회 대한민국 - 이주민, 차별, 인종주의
손인서 지음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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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에 끌린 이유는 이전부터 난민 문제에 대한 관심이 깊었고 다문화 가정에 정부가 부여하는 특혜로 원거주민들이 받는 역차별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본 저서는 이러한 문제들에서 이주민이 받는 불평등과 차별만을 강조하는 것 같기에 사유의 균형을 찾기 위해 읽게 되었다.

 

책의 저자 소개를 보면 무엇보다 주목되던 것은 이민자와 성소수자 등 사회적으로 낙인찍힌 이들이 겪는 불평등과 차별을 연구하고 가르친다는 대목이었다. 저서를 읽으며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겪는 불이익을 이야기하며 외국인 가사 노동자가 육아만이 아니라 장보기, 요리, 설거지, 빨래등 가사노동 전반을 부담하며 그런 가정에서 남자는 그저 돈만 벌어 올뿐 가사를 분담하지 않는다는 저자 나름의 비판을 보며 이 저자가 과연 남자인지 여자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까지 해보았다. 외국인이라 분류되어서 그렇지 가사 노동자라고 하면 당연히 가사를 전담하는 업무이고 저자가 지적한 가사 노동자의 노동 부분을 한국에서는 가사’, ‘가사 노동이라는 말로 정의할 것이다. ‘가사 노동자가사를 돌본다고 차별이고 돈 들여서 가사 노동자를 고용한 남자가 가사 분담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오묘한 서술을 보며 참 놀랍다는 감상도 들었다.

 

저자는 자신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한다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한듯하고 그런 견지에서 사회를 보며 대부분의 경우를 차별로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대목들의 차별이 존재하고 그런 부분들은 개선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 사실이겠으나 본서에서는 차별과 불평등에만 주목하여 균형을 잃은 듯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저자가 이야기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받는 차별이나 불이익들은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겠으나 한국의 청소년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집단 폭행한 사건이나 회사에서 얼어죽은 노동자의 사건에서 책임을 개인이나 회사에 묻는 것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로 돌린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성폭행한 사건을 두고 모든 남자가 쓰레기니까 모든 남자가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하며 참회해야 할 문제다라고 해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보인다. 제도적으로 외국인이 불이익을 당하는 대목들은 제도 개선을 하면 될 문제일 것이지만 외국인을 차별하는 개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자체가 문제라는 논리는 그러한 시각 자체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저자는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에 주목하도록 하면서 그러한 문제는 인종주의 차원의 문제이고 다양한 외국인을 외국인이라는 하나의 인종으로 구분짓기에 그렇다며 이러한 차별적인 인종화를 인종 기획이라고 한다고 사회학적 관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런 인종 기획에도 백인과 비백인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가 있다며 대중의 시선을 인종에 맞추려 하지만 여기에서 시각은 백인과 비백인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출신 국가의 계층에 따른 차별이 사람들이 인식하기에 더 선명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외국 어느 나라에서든 이러한 차별은 존재할 텐데 이것이 인종 문제인 지역도 있지만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이방의 존재에 대한 불신과 경계라는 측면에서 더 경향성을 띠지 않는가 싶다. 지역감정으로 보면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간다거나 전라도 사람이 경상도에 가서 느끼는 외로움과 차별이 인종 문제라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인종 문제가 아니라 이방인에 대해 배척하고 경계하는 인간의 본능 차원의 문제이지 않은가.

 

그리고 본서에서는 외국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서는 명백히 보여주면서 대한민국의 외국인 우호 정책은 외국인을 착취하고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 외국인 취업자가 취업 기간 2년이 되어 체류 연장 허가를 받고 그 이후에도 한 직장에서 직장 생활이 3년이 되어야 특혜가 주어지는 제도를 차별과 불평등이라 들며 이걸 회사가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용하기 좋은 제도라고 매도하는 저자의 견해에도 다소 거부감이 커졌다. 그럼 이직이 자유로워 계속 이직만을 하면 회사가 감당하는 고용 불안정성은 어떡하라는 것이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국인이 그렇다고 그런 제도로 특혜를 받느냐 하면 비정규직으로 언제 회사에서 짤릴지 모르는 상황이 주어지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더 많은 실정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게 사무직 근로자가 아니라 육체 노동자를 말하는 것이라는 데 방점이 있겠다. 노동자 중 이직하고 싶다고 맘대로 이직하면서 지내는 내국인 노동자가 몇이나 되나 고용이 해제되어 다른 직장을 찾는 것이지. 또 외국인에게 임금이 차등 지급된다고 차별이라고 하는데 해당 국가의 임금과 (저자가 비판하는) 현재 한국에서의 임금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한국까지 와서 노동을 하는 것이고 회사로서도 임금의 격차가 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닌가. 가사 노동 임금을 예로 들어도 한국인들이 적정선이라는 임금으로 내외국인에게 다 통일한다면 애초에 외국인이 고용될 여지는 줄어들 것이다. 내외국인의 임금 격차는 차별만이 아니라 암묵적인 적정 합의가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외국인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그 가운데서도 진짜 사회적 약자인 외국인만을 들어 그들이 겪는 차별과 불이익을 통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주제로 삼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외국인이 받는 불이익도 분명 있겠으나 실제 이주민들에게 그런 불이익과 불평등만이 있는지 저자의 주장과는 다른 예를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한해 외국인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조 단위이고 그 가운데 대부분은 저자가 한국에서 차별받는 대표적인 외국인이라 예를 들고 있는 중국인들이다. 심지어 한국 요양원 혜택까지 중국인이 대거 수혜를 입고 있다. 더욱이 외국인 투표권도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모든 제도는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주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과연 한국인이 이런 혜택을 받는 나라에만 그런 특혜가 적용되는지 더 세심히 살펴야 될 문제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에게도 복권 당첨시 당첨금을 수령하게 한다. 최근 40억 원을 수령해 간 태국인까지 몇 해 걸러 한 번씩 외국인 수령자 소식을 보게 된다. 과연 우리가 그 나라에서 복권 당첨시 수령할 수 있는 국가의 국민에게만 혜택을 주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불법 체류자들까지 한국에서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에 대한 교육, 의료, 양육에서 혜택을 주는 나라가 한국이다. 해당 아이가 자라면 국적 취득도 용이하고 말이다. (언제부턴가 역대 정부들은 인구감소를 이주민 수용으로 타계하려 하고 있는데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대대적으로 상용화되고 대중화되며 다수의 인구가 초대량 실업자가 될 것은 자명하다. 이런 시기에 무책임한 이주민 수용 정책은 이후 사회의 거대한 부담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책의 감상에서 벗어난 부분이니 다시 돌아가자면) 외국인이 받는 차별과 불이익을 개선하면서 제도적인 불균형이랄까 병폐는 해소해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시절 내국인에게는 11주택을 강제하고 법적 차별을 주면서 외국인에게는 제한을 두지 않아 중국인 건물주들이 대거 증가했고 제주도는 중국인들 점유지가 되다시피 한 것이 미디어를 통해서도 접하는 현실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개선해야 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과제겠지만 무엇보다 내국인이 역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데 더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국가와 정부는 외국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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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제한선 - 1% 슈퍼 리치는 왜 우리 사회와 중산층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가
잉그리드 로베인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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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이 분야에 대해 읽은 모든 책들(제이슨 히켈의 [격차],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의 [승자독식 사회], 앤드류 세이지의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테크노퓨달리즘], 대니얼 마코비스의 [엘리트 세습], 스티븐 맥나미와 로버트 밀러 주니어의 [능력주의는 허구다], 로리 파슨스의 [재앙의 지리학], 자크 파월의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클라우스 슈밥의 [자본주의 대예측][위대한 리셋], 박선미와 김희순의 [빈곤의 연대기], 노암 촘스키의 [불평등의 이유],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드워드 로이스의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등등)의 내용이 총망라되어 결론지어지는 책이었다.

 

세계의 격차, 불평등은 능력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며 부가 정점으로 축적되며 하위로 가는 길이 차단되는 것은 상속과 증여 등의 역할이 더 크다는 것에서 시작해 정점으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초극부층은 세계의 운영 원칙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제어하고 있으며 그들의 부가 더욱 정점으로 쌓이도록 원칙과 제도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이 능력주의 사회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며 수긍하고 있는데 이미 그런 관점에 대한 수용의 한계는 붕괴되고 있고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려면 대다수가 부를 제한하는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책의 분량이 그리 과도하지 않다 보니 초극부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제도와 원칙을 제어하는 사례들에 대한 제시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부자들에게도 불리하기만 하지는 않다고 설득하는 장에서는 사실 이런 주장이 부자들이 설득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사회 대다수가 부의 제한선에 주목하며 공론화하자면 현재의 부가 정점으로 쌓이는 구조와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주요 쟁점으로 삼고 극부층이 자신들의 부를 악용해 사회 제도와 원칙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제어하는 데 대하여 다채로운 사례를 제시하는 텍스트가 따로 더해지고 그런 연구가 지속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능력주의 사회라면서도 진짜 초거대 부는 상속과 증여로 세습되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 것은 피케티였으나 그 이후에도 대중은 문제의식을 크게 갖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사회에 대한 익숙함과 결별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지근한 물에서 이젠 열탕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개구리와 가재는 냄비 밖으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회가 불공정했고 어떠한 방식의 부조리가 이 불평등들 유지해 왔는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익고 쫄여지고 불탈 때까지 어떤 개구리와 가재도 냄비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목조르는 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체감하지 않는다면 남의 얘기에는 무감각한 다수의 대중은 그냥 자신이 익어가는 상황을 남의 일인양 감당하고 말 것이다. 부의 제한선이라는 기준을 제시했으니 그 기준에 모두가 수긍할 수 있기 위해 소수가 주도해온 불공정이 무엇이었고 그런 부조리를 어떤 방식으로 실행해 왔는지 상세히 제시하는 연구가 발표되어야 할 것이다.

 



+++ 밑줄 긋기 (주목할 대목이 많았지만 가장 제시할 필요가 있는 대목만 기록한다)

 

일례로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전 세계 상위 1%는 나머지 99%가 얻은 소득과 부의 두 배 이상을 얻었다. - P44

 

많은 경제학자가 빈곤선을 2011년 미국에서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루 7.40~15달러 선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앨런은 현재 빈곤선인 하루 1.90달러로는 19세기 미국 노예만도 못한 생활 수준밖에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더 현실적으로 10달러를 빈곤선으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 세계 인구의 10%가 아니라 무려 3분의 2가 여전히 극빈곤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2011년에 미국에서 10달러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67

 

오늘날 미국에서 인종 간 부의 불평등은 백인 노예 소유주들이 흑인을 체계적으로 착취했던 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노예제가 폐지되기 직전이던 1860년에 미국에는 남성, 여성, 아동을 포함해 노예가 400만 명이었다. 이들이 노동에 대해 받지 못한 상실 임금의 현재 가치는 203,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조상이 노예를 소유한 적이 있고 그 노예들이 받지 못한 돈의 일부라도 상속을 받은 모든 미국 가구와 기업은, 만약 노예들이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부를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말이다. ...... 현재 흑인은 미국 인구의 13.6%를 차지하는데도 미국 전체 부 중에서 가지고 있는 몫은 4.5%밖에는 안 된다.- P101

 

1978년부터 2021년 사이에 미국의 CEO 보수는 1,460%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전형적인 노동자의 임금은 18% 증가했다. CEO는 전형적인 노동자보다 (추산 방법에 따라) 많게는 399배나 더 번다. - P212

 

실제로 상위 20%가 전체 부의 84.4%를 가지고 있었는데 응답자들은 상위 20%가 전체 부의 50%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이상적으로는 상위 20%가 전체 부의 31%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실제 분포에서 하위 20%는 부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전체 부의 0.1%를 가지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이들이 전체 부의 3%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이상적으로는 이들이 11%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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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세가 한눈에 읽히는 부의 지정학 - 앞으로 5년, 글로벌 경제 질서는 어떻게 재편될 것인가
이재준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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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정세를 통해 경제 현실을 직시하도록 하며 미래 경제를 예측하는 인플루언서들 중 유명한 분들도 많다. 본인도 그 가운데 미르라는 분의 블로그를 이웃추가한 상태인데 자주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경제적 혜안을 가진 분들의 현실 분석이나 미래예측이 놀라울 때가 있다. 본서도 그런 시각으로 지정학적 관점에서 세계 정세를 돌아보며 경제 현실을 분석하고 경제 미래를 예측하는 혜안을 담은 책이다. 다만 경제학을 전공하신 분들이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을 경제에 입각하는 것과 다르게 본서의 저자분은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원이셨던 분으로 지정학을 논하는 책이지만 지정학에 관한 방점이 더 짙은 책이기도 하다.

 

본서는 현재의 어떤 변수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미리 파악할 수 있다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미래를 가늠해보는 일이 가능하다는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다. 정치학에서는 사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을 중시한다는데 이 원인을 분석하고 원인으로부터 야기되는 결과를 예측하는 과정을 예시하면서 9가지의 리스크와 그로 예측 가능한 경제 현실과 미래를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려보도록 하고 있다.

 

10장인 본서는 1장에서 2020년 전후해 경제안보의 가치가 부각되었다며 경제안보의 정의를 주지시키며 시작된다. ‘자유로운 국제무역질서가 국가 간 갈등이나 정치적 의도에 의해 교란되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자국의 경제와 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경제안보라고 정의라고 한다. 이러한 정의와 정치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일깨운 후 미국 대선 리스크, 중국 공산당 리스크, 강대국 복합 경쟁 리스크, 인도*태평양 리스크, 대만해협 리스크, 유라시아 리스크, 중동 리스크, 북한 리스크, 일본 리스크 이렇게 9가지 리스크를 들어 세계의 정치 군사 현실을 담론하고 있다. 9가지 분류로 세분화했지만 미국 행정부가 바뀌며 복귀하는 트럼프 리스크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 이스라엘이 야기한 중동의 격동, 미중 간의 전쟁 가능성이 불러올 위협에 북한과 일본이 주는 불안정성을 대략적으로 돌아보는, 지정학에 근거한 대전략서라는 느낌이다. 세계 경제의 미래가 경제안보를 추구하는 각국의 운영 아래 향방이 어찌될지를 분석하고 예측하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으로 막연히 세계 경제를 우려하거나 전쟁은 잠잠해지겠지 하며 안도하고 있는 분들에게 트럼프가 처음 당선되던 시기에도 이전 오바마 정부와 결이 완전히 다른 정책을 펼치지는 않았으며 과도하게 고립주의를 내세우던 공약과는 다르게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었던 걸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 국제적인 개입을 주춤하던 건 이미 오바마 정부 때부터이지만 트럼프의 대외적인 코멘트 자체가 미국 고립주의와 자기 나라는 자기가 지키라는 선을 긋는 발언들이라 각국을 더 불안하게 했다는 기조의 발언이 실려 있기도 하다. 그러다 바이든 정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군수산업이 활성화되었고 우리 군수산업 역시 수혜를 입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 중국의 대만 흡수 의지가 어떠한 양상의 문제들을 보이는지 반도체 산업을 위시해 대만 해협에서 충돌한 상황들을 예로 들며 전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전쟁 이전에 중국 공산당 자체에서 문제가 있음을 직언하기도 하고 있다. 또 이스라엘 전쟁과 그 파장으로 중동이 격동하는 과정을 평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함선 축조가 미국 자국내에서 활발하기 어려운 이유와 한국이 수혜를 입을 가능성을 기술하기도 하는데 전체적으로 320페이지 정도 밖에는 안되는 분량을 고려할 때 이 시절에 주요 정치 군사 이슈를 두루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미 뉴스에서 상당히 언급된 부분들에 대해 더 깊은 시각을 느껴 보고 싶기도 했는데 분량 때문인지 저자가 대략적인 윤곽만 그린 대목들이 있어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기는 했다.

 

본서는 부의 지정학이라는 주제이지만 분명 보다는 지정학에 더 방점이 찍혀 있고 사실 그래서 더 깊은 흥미와 몰입을 불러오는 책이기도 하다. 국제 정세에 대해 깊이 다룬 유투버들도 있지만 어떤 유투버들은 분량이 상당한 강의를 하다보니 다 들어보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 까닭에 국제 정세에 관한 최근 이슈를 두루 다룬 본서는 자신이 더 상세히 알고 싶은 대목만 분별한 후 해당 부분만 파고들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된다. 세계 정세와 군사적 변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빠져들 만한 책이고 이미 해당 분야들에 대해 나름 정보를 쌓아나가고 있다는 분들도 전체를 정리하는 입장에서 읽어볼 만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 본서의 특징 및 장점

1 세계의 정치 군사 현실이 어떠한 경제적 여파를 불러오는지 돌아볼 수 있다.

2 주요 시각과 관점은 지정학, 정치외교적 시각이므로 그런 부분의 시야가 생길 수 있다.

3 세계의 정치 외교 군사적 흐름이 우리 경제와 안보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가늠해 보도록 한다.

4 세계의 변화에 무감각했다면 우리에게 실제 피부로 와닿는 영향을 주는 변화라는 것을 직시하도록 해 준다.


비즈니스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계정세가한눈에읽히는부의지정학 #이재준 #비즈니스북스 #경제경영서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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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사회 - 소수가 모든 것을 독점하는 사회
로버트 H. 프랭크.필립 쿡 지음, 조용빈 옮김 / 서삼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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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허구다], [엘리트 세습], [테크노퓨달리즘]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됐다. 본서는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대부분에 책들의 원조격으로 1995년 출간되어 30년을 능력주의 대표 비판서로 회자되어온 책이다. 국내에서는 절판되었다가 많은 독자들의 요구로 올해 복간된 책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이제는 유명한 경제학자들로 저자 소개글이나 본서의 소개에 해당하는 글들을 보아도 경제 문외한들까지 다들 알 정도의 경제서들을 집필한 저자들이다. 30년 전부터 이미 능력주의를 비판해 온 것에 대하여도 놀랐는데 본서를 보면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 책이 집필된 시기로부터 이미 100년 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는 130년 전이니 승자독식이라는 문제가 불평등과 사회 문제로 인식된 것은 누적된 문제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문제였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본서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1등이 싹쓸이해 가고 2등과 3등은 주목도 받지 못하는 현실이 팽배해진 것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한다. 스포츠 스타와 음악, 영화, 드라마, 스타들의 사례라는 친근한 대목부터 컴퓨터 운영체제 시장이나 비디오 VHS와 베타의 경쟁이라는 일상에 친근히 접하던 기기들의 사례까지 들고 있고 경제학자들의 시각답게 기업의 사례들과 CEO들의 사례도 주목한다. 더불어 일상의 아이템들 하나하나까지 기능이나 성능보다 먼저 주목받고 선점하게 되면 시장을 압도하게 되는 사례들을 들고 있다. 승자독식이 능력주의만이 아닌 점도 본서를 통해 두드러지게 인식되는 바다. 자연히 이런 시각은 불평등에 이르고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이른다. 다만 세금 제도나 사회적 인식 변화가 대안이기에는 이 시대의 능력주의는 이미 사람들의 무의식을 지배하기에 이르렀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압도한다.

 

이제는 문제 의식을 갖는 경우에도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없을 것이고 기술봉건주의 시대로 나아가며 불평등의 궁극이 가져올 미래를 장밋빛이려니 체념하는 것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 포기하면 정말 늦은 일이 되겠지만 다음 세대 또한 답을 내놓지 못할 것은 이 시절이 가고 있는 방향을 볼 때 자명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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