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 아홉 번째 이야기

낚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이었다. 한번 시작된 장마는 추석연휴가 다 끝날 때 까지 그치지 않을 태세였다. 주름을 자글자글 잡으시며 반갑게 맞이 해줄 부모님 얼굴을 떠올리자 고향 내려갈 채비가 더욱 바빠졌다. 간만에 찾아온 황금연휴를 축하해주듯이 자동차 시동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아니 벌써부터 차가 먹히다니, 이런 원…….'

해가 뜨고 있었다. 보통 고향을 내려가는 가족원들은 그 인원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출발하기 어려울 것 이라는 생각에 독신이라는 나름의 핸디캡을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예상은 앞 뒤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경적소리와 함께 무너지고 말았다. 며칠 째 쏟아지는 비 때문에 도로 사정도 썩 좋지 않은 듯 했다. 거북이와 달리기 경주를 해도 우위를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느릿느릿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 속에서 고속도로로 빠지면 한결 낫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로 하고 있는데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다리가 불어난 시냇물에 잠겨서 마을이 고립돼버렸다는 소식이었다.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되물어 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고향으로 갈 수 없다. 아침부터 꼭두새벽같이 일어나 채비를 한 것이 다 헛수고가 돼버렸다.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차 키를 빼버리고 싶었다. 먹구름에 가려 거무죽죽해진 아침 해가 벌써부터 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밤은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고립이라니…… 고립되신 부모님 걱정보다는 아침부터 허탕친 일에 대해 더 분해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거슬렸지만 분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와 건어물을 꺼네들고 텔레비전 앞 소파에 몸을 눕혔다. 맥주 한 캔을 단숨에 들이키고 건어물을 입에 문 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댔다. 얼마 뒤 적당히 취기에 오른 나는 거실에 불을 모두 끄고 텔레비전 소리를 자장가 마냥 은은하게 맞춰 놓고 노곤히 잠을 청했다.

시원하게 뻥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옆으로는 시골 경치가 보였다. 시골 특유의 향토적인 내음이 코 속을 파고 들었다. 좀 더 가니 넓은 저수지가 보였다. 낚시터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문득 낚시를 하고 싶어졌다. 어릴 적 아버지와 몇 번 낚시를 다녀왔을 때 말고는 낚시대를 잡아 본 적 없었지만 언젠가 한번 그 때처럼 아버지와 같이 낚시를 다녀오고자 저번 해 장만한 차 트렁크 속 낚시대가 생각났다. 장비를 챙겨 저수지 쪽으로 가다보니 낡은 낚시터 하나가 보였다. 주인 같아 보이는 노인이 혼자 낚시를 하고 있었다.

"영감님, 여기 주인 이세요?"

붙임성 좋게 싹싹한 억양으로 말을 붙이며 자연스레 노인 옆에 앉았다. 노인은 미동도 앉고 찌만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영감님, 제가 미끼가 없어서 그런데 영감님 갯지렁이 몇 개만 빌려써도 될까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내가 주의깊게 보지 않았더라면 알아채지 못 했을 정도로 미미한 움직임이었다. 노인의 무관심한 태도에 약간 빈정이 상했지만 낚시에 몰입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미끼통 속에는 갯지렁이들이 흙속을 제 집 안방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놈을 잡아다가 흙 밖으로 끌어올렸다. 다 끄집어내보니 생각외로 길이가 꽤 됐다. 보통 길쭉한 놈은 살이 없고 홀쭉한 놈들이 많은데 이놈을 보니 월척 하나는 거뜬히 물어 줄 것 같아 괜시리 웃음이 났다. 대가리를 잡아 바늘 끝에 갔다 댔다.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빠져나오려고 온갖 발버둥을 처댔다. 몸집만큼이나 힘도 장사였다. 바늘이 녀석의 꼬리 부분을 뚫고 나올 쯤이 돼서야 녀석은 박제된 것 마냥 움직임을 멈췄다. 미끼를 끼우고나니 노인과 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이 분위기를 깨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져보았다.

"영감님, 연세도 꽤 되시는 것 같은데 낚시 하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55년"

하염없이 찌만 바라보던 노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얼른 맞장구 처 주었다.

"우와, 정말 오래 되셨네요."

노인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약간 놀라버렸다. 노인은 방금전까지의 표정과는 다르게 무언가 아주 흥미롭다는 듯이 광기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정말 오래되었지. 그런데 말야, 나처럼 이렇게 낚시를 오래 하다보면 종종 이상한 것들을 낚게 될 때가 있지."
"신발이나 자전거 바퀴 같은거요?"
"아니아니, 아니야. 그것보다 훨씬 이상한 것이지."
"뭐, 뭔데요?"
"궁금하나?"
"네."

노인은 건너편 물 속에 잠긴 올가미형 그물을 가리켰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건너편 올가미 그물로 곧장 걸어갔다.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덧 그물에 다다른 나는 그물을 매단 밧줄을 잡아 당겨 그물을 물 밖으로 끄집어 내고 있었다. 그물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물통 안엔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물에 불어터진 하얀 살점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급히 노인이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노인은 없었다. 다시 그물통을 보았다. 입이 있을꺼라 예상되는 부위에서 말이 흘려나왔다.

"걸렸다!"

눈이 반 쯤 떠졌다. 큰 소리였더라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겠지만 텔레비전 음량은 다행히도 누가 옆에서 속삭이는 정도였다.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았다.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낚시대를 열심히 휘감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방금 꿈 속에서 노인이 내게 말할 때 지었던 표정와 닮아있었다. 등짝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그와 동시에 등이 온통 식은 땀 범벅이 된 걸 알아차렸다. 꿈에서 깨어난게 세삼스레 다행처럼 느껴졌다. 화면은 요통치는 찌를 향해 클로즈업됐다. 밤 낚시였음 에도 불구하고 형광색 찌가 달빛에 반사되어 제법 선명하게 잘 보였다. 찌의 움직임으로 봐선 고래가 걸린 듯 했다. 꽤나 월척임이 분명했다.

"오우, 제 낚시 인생 15년 만에 이만큼 힘 좋은 놈은 처음 같아요. 사람으로 태어났음 천하장사 몇 번은 했겠는걸요?"

리포터의 재치있는 멘트에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 리포터는 팔뚝에 힘줄을 바짝 세우고 낚시대를 당기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둘은 그러고도 몇 분 동안 더 사투를 벌였다. 승리는 당연히 노련한 리포터의 것이었다. 사투를 끝낸 리포터의 이마엔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 모습이 퍽 멋있어 보였다. 어릴적 낚시를 하다 보았을 아버지의 모습 같아 보였다.

"물고기는 잡자마자 기력이 넘칠 때 그 자리에서 바로 회 떠 먹는게 제 맛이죠"

리포터는 옆에 있던 간이 도마 위에 녀셕을 놓더니 회칼을 집어들어 녀석의 머리는 내리쳤다. 회칼은 제법 날카로워 보였으나 단번에 잘리지 않았다. 세 네 번을 더 내리치고 나서야 녀석은 아가미를 뻐끔대며 몸통과 분리되었다. 갈퀴와 꼬리를 마저 잘라낸 리포터는 칼등 전체를 손바닥에 감싸 쥐더니 빗살 방향으로 긁어가며 노련한 솜씨로 비늘을 벗겨냈다. 칼이 몇 번 왔다갔다 하지않았는데 눈 깜작할 새 비늘이 다 벗겨지고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곧바로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뼈를 간추려냈다. 도마에 물을 한바가지 붓자 도마 위가 새하얀 덩어리 두 개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아참, 대가리는 버리지 마세요. 나중에 매운탕 해먹을 때 진가를 발휘한답니다."

말을 끝 낸 리포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회를 한 점 떠서 초장도 묻히지 않고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리포터의 입안에서 쫀득하게 씹히는 살점의 오디오 음향이 스피커에서 여과없이 흘러나왔다.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이때부터 낚시에 본격적으로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이씨 부부는 낚시 동호회에서 만난, 나보다 나이가 세 살 적은 동갑내기 부부이었다. 나와 그 둘은 전국 곳곳 낚시 명소를 찾아가며 다양한 물고기들을 낚아왔다. 장소 조사는 주로 사전 경험으로 인해 지리에 바싹한 이씨가 맡았다. 그 날도 나는 이씨가 조사한 낚시터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알싸한 시골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차에서 내리자 큰 저수지가 보였다. 장비를 챙기고 부부를 따라 낚시터로 보이는 곳으로 내려갔다. 낚시터는 꽤 오래 된 것으로 보였다. 입구에는 '초록 낚시터’라는 철제 간판이 삐걱대며 위태롭게 붙어있었다.

"여보, 여기 맞어?"
"응, 분명 여기 확실한데…… 어, 저기 저 노인이 여기 주인 아냐? 가보자."

안으로 들어서자 낚시를 하고 있던 노인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여기 주인이시죠?"
"그래, 그래. 아이구, 오랜만에 보는 손님이네. 낚시터 사정이 안 좋아진지 오래 되어서 손님이 통 없네. 허허."
"왜 그럴까요? 내가 보기엔 물만 깨끗하구만."
"달빛도 잘 비치고, 주위에 갈대밭도 깔려 있고, 밤 낚시하기 딱 인거 같아요. 여보."
"그래, 어서 갑시다. 가자구요, 형씨!"
"네."

"아이참 더럽게 안잡히네."

두시간 째 고기통은 텅텅 비어 있었다. 달은 중천을 지나고 있고 챙겨왔던 미끼는 어느덧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영감님 여기 미끼팔죠?"
"아니, 여긴 낚시만 해서 미끼를 사려면 저쪽 갈대밭을 지나 마을까지 가야되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걸어서 30분 정도 될꺼야."
"그럼 제가 갈래요, 저 갈대밭 무지 걷고 싶었거든요.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요. 헤헤."

이씨 부인이 수확없는 낚시질이 지겨웠는지 선뜻 나섰다.

"거리는 얼마 안되는데, 갈대밭 길이 꼬불꼬불해서 자칫하면 길을 잃게 될 수 도 있는데."
"그럼 영감님이 같이 가면 되겠네. 나는 이제 오기가 생겨서 꼭 한 마리 잡아내고 말겠어요."
"그럼 여보, 빨리 갔다 올게."

한 시간 뒤 노인이 미끼통을 들고 왔다.

"아내는요?"
"아, 그 여자는 근처 갈대밭 구경 쫌 더 하고 온다 하던데. 허허."

"미끼통은요? 아 여기있네."
"이씨 거, 오늘은 일진이 쫌 아닌 것 같네요. 대충하고 집에 갑시다. 그냥."

나는 낚시하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눈을 붙이던 참이었다. 이씨는 정말 오기가 붙었는지 낚시 바늘에 지렁이를 몇 마리씩 끼우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나두면 제풀에 지치겠지 생각하고 마저 눈을 붙쳤다.

"저기 형씨 지금 몇 시에요?"
"두시요."
"엥?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런데 이 노무 여편네는 두 시간이 지났는데 올 생각을 않지? 안되겠어. 이거 예감이 좋지 않는데…… 형씨, 나 아내 쫌 찾으러 가볼께요. 오늘 일진도 사납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거 아냐? 아이고!"
"잘 찾아봐요. 설마 그럴 리가."

이씨의 말에 잠이 번쩍 깼다. 이제 낚시터엔 노인과 나만 남아있었다. 낚시나 해볼까 하고 노인이 들고 온 미끼통 뚜겅을 열어보니 갯지렁이들이 흙판을 제집마냥 뒹굴어 대고 있었다. 살집이 제법 오른 놈을 골라 바늘에 끼워 넣었다. 찌를 던지기 전에 주위를 한번 쓱 훑어보았다. 왠지 낯익은 듯한 느낌이었다. 저번에 꿨던 그 허연 송장을 그물에서 꺼내던 꿈과 풍경이 많이 닮아있었다. 그때 생각을 하자 등짝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노인에게 아무 말이나 던졌다.

"낚시할 때는 미끼가 참 중요하죠?"
"그래…… 미끼가 참 중요하지. 얼마나 대단한 미끼를 던지냐에 따라 그만한 걸 건질 수가 있지."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노인의 얼굴에는 광기가 어려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건너편 그물통 쫌 확인하고 올테니까……."

갑자기 노인이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광기어린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노인의 갑작스런 이상 행동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만약 찌가 흔들리거든 망설이지 말고 내 낚시대를 들어 올려주게나."
"……."

노인은 건너편 그물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내 머릿속엔 온갖 망상들이 떠올랐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히 떠오른 망상은 노인이 이씨의 아내를 헤쳤을 가능성이었다.

그러고 보니 노인은 이씨의 아내와 미끼를 사고 온 이후로 한번도 낚시대를 들어 올린 적이 없었다. 낚시대에 뭐가 걸려 있길래 노인은 한번도 낚시대를 물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지? 우리에게 보여주면 안 될 무엇이 있나? 내 머릿속은 온통 저 낚시대를 들어 올려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노인의 행동을 주시했다. 어느덧 그물에 다다른 노인은 그물을 매달고 있는 밧줄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물통이 물가에 다다랐다. 그물통엔 뭐가 있을까? 꿈에서 처럼 물에 불어터진 허연 송장이 들어 있는건 아닐까? 설마 이씨 부인이 저곳에? 곧 그물통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노인은 깊은 한 숨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그물통은 텅 비어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노인의 낚시대 뿐이었다. 나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참으며 손잡이를 움켜 잡았다. 노인이 눈치 채지 못하게 낚시대를 슬쩍 들어 올려보았다. 이럴수가! 낚시대 끝에 뭔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검은 가닥이 늘어져 있는게 사람 머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건 어떤 민물고기 낚시 미끼도 저것보다 크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저것은 사람의 머리다!

어느덧 노인은 가까이 와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전투신경을 곤두세웠다.

"낚시대를 들어 올려봤나? 뭐가 있던가?"
"……."
"사람의 머리지."
"미친! 당신 이씨의 부인을 어떻게 한거야!"
"진정하게. 난 자네와 싸울만한 이유는 없어. 당신 말대로 그건 사람의 머리가 맞아. 그런데 그게 왜 저기 있냐하면은…… 꽤 오래전 얘기인데, 난 옛날에 여기서 사람을 죽였다네. 지금 자네가 있는 바로 그곳에서 말이야. 칼로 목을 절단해 죽였지. 아니, 그런데 말이야. 이놈의 몸뚱아리가 낚시터에 빠져 버린거야. 그러자 다음날부터 물고기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가더군. 낚시터는 한달도 안돼 망해버렸어. 물이 다 썩어버린거지. 시체 때문에 말이야. 나는 시체를 건져내고 싶었지. 그런데 잠수복을 입고 들어가 구석구석 뒤져봐도 보이질 않는거야. 그 커다란 걸 민물고기가 다 먹어치웠을 리가 없거든. 그래서 기막힌 방법을 하나 고안해 냈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몸뚱아리의 머리를 미끼로 다는거야, 큭큭큭. 어때 대단한 미끼지 않나! 큭큭."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구로 향해 뛰었다. 이씨와 그의 부인과 맞추쳤다.

"이노무 여편에가 그만 갈대밭에서 길을 잃었더라고요. 아니 그런데 어딜 그렇게 뛰어가세요? 집에 가실려고요? 우리도 이만 가려던 참이었어요. 가서 장비 챙기고 집에 돌아갑시다. 이제 느낀건데 왠지 여기 쫌 기분이 이상하네요. 흠흠."

뒤를 돌아보니 노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이 영감님이 어딜 가셨나? 아무튼 저흰 이만 늦어서 가보겠습니다. 영감님 수고하세요."

입구에는 초록 물고기 간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우리는 뒷면에 쓰인 글귀를 볼 수 있었다. 1955년 11월 3일 초록 낚시터 폐장.

다음날 인터넷으로 1955년 11월 3일자 신물을 뒤져보니 일면에 크게 이렇게 나와 있었다. 충정남도 **면 **지 초록 낚시터서 머리 없는 시체 한 구 나와. 도망간 낚시터 주인, 용의자 유력. 아직 찾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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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열곱 번째 이야기

1박 2일

더운 여름, 에어컨 없는 작업실을 피해 전 더위를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땐 24시간 개방 롯데리아에 가서 작업을 하곤 한다. 한창 작업하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여대생들이 떠든 이야기를 옮겨본다. (그 여대생의 시점으로 쓰겠다.)

저는 올 여름, 친한 오빠들과 친구 등, 8명이 펜션을 빌려 1박2일 여행을 갔다. 펜션은 넓은 방이 두개 있었고 시설이 깔끔했음에도 유난히 싼 숙박비 때문에 다들 만족하며 짐을 풀고 놀기 시작했다.

펜션에서 밤늦게까지 먹고 마시고 놀다가 일행 중 4명은 지쳐 옆방으로 잠을 자러 갔다. 남은 저를 비롯한 네 명은 다른 방에서 계속 떠들고 노는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자러 들어간 언니 중 한명이 천천히 엉금엉금 기어 나오다. 그러더니 방문과 현관문 사이에 놓인 냉장고에 머리를 쿵쿵쿵 박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쿵쿵쿵 박더니 다시 자던 방으로 엉금엉금 기어들어갔다.

잠이 덜 깬 건지, 그 꼴이 우린 너무 웃겨서 깔깔 거리며 웃었는데, 점차 아무도 웃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방으로 기어들어간 언니가 다시 천천히 기어 나오더니 또 냉장고에 머리를 쿵쿵쿵 박고 다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쿵쿵쿵…….

점차 우리는 무서워져서 그 언니를 깨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언니를 일으켜 세워 억지로 잠을 깨웠습니다. 그랬더니 정신을 차린 언니가 마구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더니 우리가 놀고 있는 방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다시 잠을 청했다. 우린 괜히 오싹하기도 하고 기분도 묘해져서 더 놀 기분도 들지 않아 다들 그 방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궁금해져서 그 언니에게 어젯밤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언니를 비롯해, 옆방에서 잠을 자던 4명의 친구들까지 전부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친구 중 한명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사실, 옆방에서 자던 언니를 비롯한 일행 4명은 전부 동시에 가위에 눌렸다. 그리고 4명이 동시에 어떤 머리를 산발한 여자 귀신을 봤다.

그 여자귀신은 네 명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결정했다는 듯, 그 언니의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질질 끌고 갔다고 한다. 그 언니는 당연히 끌려가지 않으려고 저항하다 냉장고에 머리를 쿵쿵쿵 박았고, 냉장고에 걸려 귀신이 머리채를 놓치면 언니는 다시 방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끌려나오길 반복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가위에 눌린 채 언니가 귀신에게 끌려 다니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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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일곱 번째 이야기

밤낚시

연말에 친구와 함께 근처 저수지로 밤낚시 하러 갔다.

평소에는 사람이 없던 곳이라 자주 갔던 곳이다.
그런데 연말이라 그런지 우리 말고도 누군가 있었다.
저수지 낚시 하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숲 앞에 차가 서 있있고,
숲 속에서 캠프파이어라도 하는지 빨간 불빛이 새어나왔다.

우리만 찾는 곳에 다른 사람들도 찾아온다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낚시하는데 문제 되거나 하지 않아서 신경 쓰지 않고 낚시 준비를 했다.

그런데 숲 속으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이런데 뭐 하러 왔어?"
"밤낚시죠. 뭐 방해되는 거 있나요?"
"아, 아니. 별로 상관없어."

그렇게 말한 남자는 바로 돌아갔다.
우리도 신경 쓰지 않고 낚시 하다가 돌아갔다.

그리고 보름 후.
신문을 보니 2주 전에 아내를 살해하고 산에서 태워 증거 인멸을 도모한 남자가 체포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니 그 때 저수지에서 본 그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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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여섯 번째 이야기

엘리베이터 장난

나는 아파트 19층에 살고 있었다.

그 날은 학교 수업이 늦게 끝나 집에 가니 7시가 넘었다.
매일같이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학원이 시작되는 시간은 7시 30분.
서둘러 가지 않으면 지각이 분명하다.

초초한 마음으로 집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엘리베이터가 오지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19층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 30분이 넘었다.

화가 나서 1층에 도착하자마자 20층까지의 버튼 모두 누르고 나왔다.
누군가 애 먹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니 밤 10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말을 건넸다.

"잘 다녀왔니?"
"응."

"혹시 오늘 11층 아이 죽은 거 아니?"
"아니."

뭐, 이름은 알고 있지만, 안면은 없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니, 저녁쯤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아이였는데, 요새는 발작도 거의 없어져서 오늘도 혼자 산책하러 나왔었대."
"응."

"그런데 집에 오다가 발작이 났나봐. 곧바로 집에 가서 약을 먹으면 괜찮아졌겠지만……."
"……."

"누가 엘리베이터에 장난을 쳐서 올라가면서 계속 층마다 멈췄던 모양이야. 대체 누가 그런 장난을 한거지? 우리 **는 아니지?"
"……."

나는 끝내 대답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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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 다섯 번째 이야기

어여 손 잡아!

2009년 12월 시흥에서 있던 일이다.

그때 당시 저는 집을 나와 자취하고 있었다. 워낙 외로움을 많이 타서 친구였던 가양을 룸메이트로 불러다 같이 살았는데, 가양이 기가 센 덕분에 종종 무언가 보이곤 했던 전 함께 지내는 동안만큼은 편히 잠을 잘 수 있었다. 물론, 보이는 일 역시 없었다.

가양과 지내는 동안 보이지 않는 일에 익숙해지고, 서서히 잊고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가양이 배가 고프다고, 밖에서 사먹고 오자고 보챈 탓에 새벽에 외출을 하게 되었다. 마침 고양이 모래도 사와야 할 때라, 나간 김에 이것저것 사다보니 돌아오는 길엔 군것질 거리와 고양이 모래를 비롯한 여러 가지로 양 손에 한 짐씩 들게 되었고.

그때 가양은 남자친구와 전화를 하고 있었고, 양 손에 한 짐인 저와 달리 작은 비닐봉투 하나를 들고 저만치 앞 서 걷고 있었다. 들린 짐의 무게 탓인지, 걸음의 탓인지 저보다 빨리 걷던 가양은 어느 샌가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있었다.

자취방으로 가려면 직선으로 늘어선 세 개의 교차로 중 두 개를 지나 세 번째 교차로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야 들어가야 하는데, 저는 첫 번째 교차로에 있었고, 가 양은 세 번째 교차로에 접어들고 있었다.

겨울 새벽이라 날은 어두웠고, 길도 어두워서 누가 불쑥 튀어나올까 무서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야 했다. 다행히도 길 양쪽에 주차하더라도 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넉넉하게 넓은 2차선이라 누가 지나가든 훤히 볼 수 있어서 주위만 잘 살핀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느 정도 방비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이른 새벽이긴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유흥가가 있어서 그런지 새벽부터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나와 계신지 모르지만 첫 번째 교차로의 왼쪽 길에서 가만히 서 계셔서 저는 두 번째 교차로를 지나며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고, 세 번째 교차로에 접어 들 때까지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보지 못하고 별 일 없이 오른 쪽으로 길을 꺾었다.

멀리서 웬 사람이 하나 서 있는 것이 보이고. 가 양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보이는 형체에 이 시간에 나온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원룸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원룸에 가까워 질수록 사람의 형체는 점점 뚜렷한 모습을 띠며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음으로 바뀌더니, 형체가 완전히 눈에 들어오자 그 사람이 첫 번째 교차로에서 본 할아버지임을 알았다.

제가 밤눈이 아무리 어둡다지만 세 번째 교차로를 지나야 갈 수 있는 이 길로, 할아버지가 달려가는 것을 못 볼 수가 없었다. 길 구조상 분명 그러했고, 전 두 번째 교차로에서 할아버지가 한 자리에 가만히 서 계시는 것을 분명히 봤으니까.

그제야 전 할아버지가 산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그 사실이 너무 무서워져 슬며시 눈을 아래로 깔고 걸었다. 걸음은 무거웠고 제가 걷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사라지셨는지 확인하고자 슬쩍 시선을 올렸는데, 그때 그만 마주쳐버린 겁나다. 한 자리에 꼼짝 하지 않고 서 계신 할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친 할아버지는 얼른 오라는 듯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드셨다. 겁에 질린 전 제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손짓의 횟수를 더 할수록, 고개를 저으며 끝까지 거부하자 할아버지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더니 할아버지 쪽에서 다가오시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할아버지와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아서 먼저 간 가 양을 부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가 계신 탓인지 할아버지 뒤로 밤안개가 낀 듯 까맣게 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 앞에 당도하신 할아버지는 당연하게 손을 내미셨지다.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손은 저더러 잡으라고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손을 잡으면 전 분명 끌려간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전 손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네. 분명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앞 서 말씀드렸다 시피, 제 양 손엔 고양이 모래 등의 무거운 짐이 잔뜩 들려 있었고, 그 탓에 내민 것은 손이 아니라 들고 있던 커다란 비닐봉투가 되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그리 되어버린 상황이 무서운 가운데에서도 어찌나 우습던지.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써야 했는지 몰라다. 그 탓에 제 얼굴은 일그러졌고, 그 상황이 유지될수록 할아버지의 얼굴도 더 무섭게 일그러졌다.

할아버지께서는 끝끝내 꼼짝도 하지 못하는 저를 더 이상 기다리실 수 없으신지 손가락질을 하며 무척 화를 내셨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 좀처럼 들을 수 없었지만 할아버지의 말이 반복될수록 조금씩 귀가 뜨이는 것처럼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할아버지께서 뭐라 화내시는 지 조금은 알 것 같을 때쯤이 되자 할아버지께서는 손가락질을 그만 두시고 직접 끌고 가시려는 것처럼 제게 손을 뻗으셨다.

그때,

"야!"

가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와 저 외엔 없었던 기묘한 침묵을 찢고 들린 가양의 목소리는 무척 또렷해서, 그 소리를 들은 할아버지께서는 못 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며 제게 뻗었던 손을 거두셨다.

"너 거기서 뭐해?"

가양이 버럭 소리치며 다가오자 할아버지께선 더 이상 제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손가락질도 하지 않으셨고, 방해받아 몹시 속상한 것처럼 잔뜩 얼굴을 찌푸리시더니 가양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제 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지셨다. 그 날 이후 자취를 그만 둘 때까지 새벽 외출은 하지 않았고, 두 번 다시 할아버지를 뵙는 일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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