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평점 :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행위 그리고 숨쉬고 눈 깜박이기와 같은 본능행위와 같이 자신을 둘러싼 주위 및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공중파를 거쳐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다.흔히 걸러지지 않은 잡된 정보와 엄선된 것처럼 보이는 양질의 정보는 어느 계층에게는 통용이 되고 어느 계층은 간과하기 쉽다.정보,즉 새롭게 들어오는 소식이 모든 계층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마당발과 같이 모든 분야를 섭렵해야 하는 사회 구성원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꼭 알아야 할 최소한의 단위 및 분야도 있다.
현 시대는 종래 고전적인 매체를 떠나 SNS형식을 빌어 주고 받는 소식은 불필요하게 걸러지고 마는 스팸성부터 참고용,기록용,연구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식들을 접하고 있다.지향점,목표지도 없이 부산나케 움직이는 일상은 대개가 생계를 위한 것이고 타자와 사회단위와 같은 공동체적인 이념과 사상은 개인이 움직이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의 지향점이 비슷한 부류들이 조직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꾸려 나가는 것이다.개인에서 사회,국가에 이르기까지 이해 상충관계가 맞물리는 경우에는 정확하고 진실된 소식이 은폐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뉴스라는 개념을 국민학교 2학년때부터 비로소 알게 되었다.당시 시골에는 공중파와 관련한 전자기기는 공무원과 같이 고정 월급을 받는 가구에 한하고 대부분은 마을 이장이 전달하는 소식이 외부동향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였다.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집에도 라디오를 구입하면서 프라임타임 뉴스 및 각종 드라마,스포츠 경기 등을 청취하게 되었던 것이다.그런데 당시 뉴스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주로 국정운영자 및 국내외 관계 등 굵직한 뉴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인식했다.이러한 편협되고 단편적인 인식이 꽤 오랜시간 지속되었다.어느 순간 뉴스라는 것이 국가의 통제.관리를 받아 편집,송출된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뉴스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흔히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이것은 빛좋은 개살구와 비슷한 상황이기도 하다.국민학교시절 라디오,영화관에서 들었던 뉴스는 국가홍보용이 대부분이어서인지 밝고 희망찬 부분이 많았다.이를테면 ∼개통식,수출 몇 십억불 달성 기념과 같이 희망 섞인 내용들이 많았고,그 이면에 드리워진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삶의 어두운 면은 베일이 가려져 알 수가 없었다.물론 사회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잘못된 점은 개혁하고자 들고 일어난 정치적 개혁론자들도 많았다.뉴스가 마치 정치,외교를 대변하고 홍보하는 수단과 같이 비춰졌던 것이며 이러한 뉴스 현상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그래서 뉴스도 비틀어서 읽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자칫 잘못된 이념과 사상에 물들 수도 있음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단견적인 견해는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고칠 수가 없기도 하다.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일수록 힘과 권력에 의한 내리찍기식 통제.검열이 횡행한다. SNS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통제.검열을 하려면 조직과 매수를 통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대표적인 케이스가 지난 정부에서 자행된 민간인 사찰과 공영방송의 무차별적인 부당해고,용산 철거민 사태,쌍용자동차 비정규직 사태 등이었다.비록 나와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손치더라도 사회가 공정하게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나라는 경제 선진국이고 정치 민주화는 언제 가능할까하고 답답한 마음만 든다.또한 선거철이 되면 남북분단에 따른 이념논쟁을 부채질하면서 표심을 보수화 쪽으로 선회시키면서 국면전환을 음모한다.평소에는 없는 빨갱이,종북세력이 선거철만 되면 불거져 나오는데 한국사회와 같은 풍토에서는 잘도 먹히는 것 같다.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그러한 선거용,홍보용 이념논쟁은 썰물과 같이 밀려나고 만다.
뉴스는 발빠르게 움직이면서 정치,경제,해외뉴스,재난,소비자 정보,셀러브리티(명성) 등이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작성되고 편집장에 의해 허가를 받아 뉴스로서 탄생하는 것이다.이렇게 뉴스가 미디어에 의해 탄생하는데 매체가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느냐 아니면 정부의 시녀(侍女)역할에 그치느냐에 따라 뉴스는 시청자들을 단순화시킬 수도 있고 복잡한 사회 가운데 보다 더 성숙한 시민으로 만들 수도 있다.어느 시대,어느 사회이든 뉴스는 정권을 잡은 이들의 눈과 귀를 충족시키는 비중이 큰데,사회구성원이 알권리와 비판할 권리를 주기 위해서는 뉴스도 균형과 조화를 맞춰 나가야 하는 시기이다.누군가,어느 단체,권력기관에 의해 뉴스가 편집(커트)되면서 본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충족되지 못한다면 그 사회의 앞날은 불투명하고 정체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널리스트들은 권력자는 해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낟.그들이 이 땅의 법률을 위반하고도 기소 면제되리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권력자들은 돈을 착복하고 탈세 수익을 숨기고 뇌물을 뿌려서 법률을 제정하며,고용과 환경 법률을 위한바는데다 힘없는 자들을 협각하고 성적으로 희롱한다. -P70
근래는 정치가 자본을 쥔 기업가에게 종속되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신자유주의가 친기업주의적이다 보니 기업의 유연화,기업의 저세금과 같이 기업은 꿩먹고 알먹기를 자유자재로 한다.물론 기업가도 자본,능력이 뒤따라야하겠지만 기업에 부여하는 혜택이 좋은 시절임에는 틀림없다.정치,언론,사법,기업계가 하나가 되어 돈이라면 죄도 감경의 대상이 되고 힘있는 자들은 대가성을 미끼로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운다.분명 이는 일반인들에겐 허탈감과 불신을 안겨 줄 뿐이고,사회구성원간의 이질감과 위화감을 더욱 조장하는 꼴이 된다.왜 사회의 정의와 상식을 부르짖고 있는 것인가.신자유주의는 과연 끝간데 없이 종횡무진할 수 있다는 말인가.자본주의는 분명 개인과 사회를 위해 긍정적이고 유익한 면이 많다.다만 오늘날과 같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가중과 사회안전망의 부실이 지속된다면 국가의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이다.기업,정치권이 사회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 있다.예전과 같이 사회공동체적 분위기도 찾기 어려운 시절이다.이렇게 사회의 잘못된 제도와 문제점에 대해 마음으로 동조는 하나 대부분 관망적이고 방관적일 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영양가 없는 뉴스 건더기들만이 둥둥 떠다닌다.어느 순간부터인지 나는 TV를 보지 않게 되었다.거의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특히 정치,기업,사회면은 거의 도외시하는 편이다.대신 현상을 인식하면서 그와 연관된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분석.통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요즘 한국사회는 갑질이 팽배하고,윤리와 도덕심이 실추된지 오래이다.사회의 제도,질서를 정상적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묘책과 시간이 필요하다.사회지도층은 이제 상생을 위한 묘책을 심도있게 강구해야 할 때이다.자극적이고 현란함만 강조하는 뉴스에서 사회구성원 간의 단합과 공동체적인 삶이 살아나도록 수단과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