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 :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이야기
민홍규 지음 / 글로세움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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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설 연휴 때 숭례문이 남자 노파에 의해 대거 소실되었다.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심장이 철썩 내려앉는 것 같았다.1398년 조선 태조 때 준공된 숭례문은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이 현판을 쓰고 화기를 제압하는 방법으로 '세로 현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를 근거로 옮겼다고 한다.화기를 누르는 현판으로는 수(水)를 위로 화(火)를 아래로 갖춘 현판 형식이 숭례문에 맞는 형식이고,주역 63번째 수화기제(水火旣濟) 괘를 살렸다고 한다.숭례문을 세울 당시 정도전은 염준의 힘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주역의 풍수지리 사상은 각종 건축물을 지을 때 막힌 기운을 풀어내어 대길지로 터를 잡을 때 각별히 신경을 쓴다.터를 잘못 건드리면 말 못하는 터에도 영령이 살아 있어 그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개인,사회,국가의 미래에 좋지 않은 흉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할 땅,돌 등을 건드리면 땅의 기운이 좋지 않은 염준으로 변해 세상을 시끌시끌하게 만들고 만다.개발논리,행정편의주의적인 잣대로 인해 땅의 좋은 기운을 빼앗아 가는 일이 불과 몇 년 전에 발생하고 그 직후 가족의 비극,사회의 대재앙이 찾아 왔다는 것은 간과할 일이 아니다.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좋지 않다고 하는 금기사항은 기계로 파헤치고 훼손하여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쓴 민홍규 저자는 4대 국새를 만들어 3년간 아무 문제없이 사용해 오다 별안간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쓰고 3년 동안 영어 생활을 하다 출소한 뒤 좋은 터를 찾아 다니다 대길지 터를 찾았다고 한다.경남 산청군 금석명의 '금석면 특골'이라는 곳인데 금석면의 지명은 오행으로 토생금을 부르는 곳이다.토생금의 금은 물기운을 살리는 곳이고,이 물기운은 금석면의 석(바위)으로써 막힌 기맥을 처방하는 바위가 놓일 터임을 예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바위의 성향인 물, 즉 수(水)가 젊은(火) 생명을 살린다는 기운(水生木)과도 연결되어 금석면 특골의 의미는 특별히 쓰일 곳이라고 예견했다.이 터의 지명에서 보듯 이 땅의 운기를 살릴 수 있다고 보고 산중에 깊게 묻힌 거북바위를 들어 올려 풍수사상에 적합한 터에 배치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저자는 세불이 국새를 산청을 터로 삼아 석경,귀감석,복석정,등황전과 지붕의 삼족오 치미(雉尾),산과 산,전각전과 굴뚝이 지닌 예술적 매력에 흠뻑 빠지고 터를 조성하는 대역사(大役事)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세불은 등황전 위로 길을 내어 팬션타운을 지으려 산을 파내면서 동티가 나고 말았다.해당군에서는 이해관계에 대한 집착을 떨치지 못하고 팬션 허가를 내 주는 바람에 생명의 지기가 흐트러지고 땅의 저항이 시작되었다고 한다.세불은 땅이 무언으로 뿜어내는 응징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하고 징역살이까지 하였으며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산청군에서 세계전통의약엑스포에 열렸는데 등황전을 동의전(東醫殿)으로 현판을 바꾸어 버렸는데 황(皇)의 자원이 흰 옷 입은 왕이라는 의미로 흰색은 우주의 빛,황은 하늘의 빛 즉 천지의 이치를 깨달은 왕이라는 의미를 간과하고 극히 현실에 맞게 현판을 개조했던 것이다.등황전에 담긴 '진리를 깨달아 세상의 빛이 되는 자'라는 깊은 의미를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 갈 지라도 고래로부터 전해져 오는 풍수지리사상의 놀라운 영험력은 실로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순리를 알고 이에 따르는 것이 재앙을 예방하는 현명한 처사가 아닐 수가 없다.

 

 땅의 회전입자들이 자연의 모든 형상에 드러나 생명을 키우고 붕괴하기도 하며 '지자기의 극대화'가 맺힌 곳이 혈처이다.입자세계가 요동치는 곳이 힘있는 혈처가 된다고 한다.긴 혈맥으로 긴 세월 흐르다 몇 개의 산에 지자기를 두르기도 하며,집터나 묘자리 혈처로 쓰이는 급수도 있다고 한다.혈처에는 우주의 거울자리와 같은 명혈,기맥의 기운이 큰 용을 꽈배기처럼 꼬아 두르고 진행하고 합세된 힘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다는 통파혈,바위와 관계하는 사람의 기혈로서 활처럼 휘어버린 탄파혈처가 있다.혈처를 잘못 건드렸을 때에는 기가 미쳐서 관계된 사람 또는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숭례문 소실 사건,세월호 침몰 사건은 혈처를 잘못 건드려 생긴 국가의 대재앙은 아닐까 싶다.풍수지리에 입각한 좋은 터는 국운의 융성과 민복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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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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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 대한 지식은 극히 일부분이다.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읽은 것이 고작이고,(1962년)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는 정도이다.그런데 헤르만 헤세의 전 생애를 그리고 있는 글을 접한 것은 문학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의미와 가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글로 먹고 사는 사람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가 없다.헤르만 헤세는 수많은 글을 남기고 작가의 로망인 노벨 문학상의 권좌에 올랐지만 그의 전 생애는 굴곡으로 점철된 삶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899년 헤세의 가족 사진

 

 

 헤르만 헤세는 출판사를 경영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게 되는데,집안이 지식인 성향이 가득하며 경제적으로는 유복하지만 훈육법이 엄격한 편이었다.특히 정신적 영향은 어머니 마리아으로부터 받은 것이 컸다.19세기 후반 독일은 대부분의 가정과 사회적 분위기가 그러하듯 헤세의 집안도 대대로 이어져 오는 인습이 지배적이었는데,기독교적 신앙의 가르침이 컸다.헤세가 남긴 <낭만적인 노래들>이 출간되고 어머니 마리아가 이를 보고 따끔한 지적을 했는데 "만일 네가 신을 찾았다면,신이 주신 아름다운 재능을 온전히 그에게 바쳐야 하는 거란다"라고 헤세는 이 지적이 매우 거슬렸던 것 같다.게다가 헤세는 늘 약골 기질로 병을 달고 살았던 탓에 신경질적이고 진득한 기미가 없었다.문학적 재능과 감수성은 천재로 불릴 정도였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스스로 구속을 받지 않으려 했다.그런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은 가정을 갖고 있는 가장(家長)이 집안 일은 남 일로 생각하고 떠나고 싶은 곳,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려 했던 그야말로 매우 자유를 즐겼던 흔치 않은 자유인이었다는 생각을 한다.그는 그를 마음으로 사랑했던 세 여인과 가정을 갖게 되었지만 불협화음을 조장한 그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가정 생활은 삐거덕거렸고 쓰라린 파경의 경험을 맛보기도 했다.불안정한 성격과 당돌하게 변하는 그의 성격은 언제 어떻게 흘러갈 지 아무도 예측을 못했던 것이다.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베르누이(1903년경)

 

 

두 번째 부인 루트 벵거(1929년경)

 

 

 

세 번째 부인 니논 돌빈(1927년경)

 

 

 헤세는 상기 그림과 같이 세 부인인 마리아,루트,니논과 가까워질 듯 말 듯 하다 헤세의 편집증적이고 괴팍한 성격 특히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던 탓에 부인들은 헤세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면서 파경을 맞이하게 된다.싫든 좋든 헤세의 마지막 삶까지 함께 했던 부인은 니논이다.첫 번째 부인은 그보다 아홉살 많은 연상의 부인이었던 마리아는 얼굴형이 현모양처 그대로이다.남편인 헤세가 창작의 모티브를 얻기 위해 외유(外遊)를 즐기고 집안 일을 소홀히 해도 싫은 내색 하지 않는다.오히려 헤세의 마음으로 돌아가 그를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부인이다.마리아 부인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사진기술을 갖은 사진사로서 헤세 및 헤세 가족의 사진을 많이 찍어 기록으로 남겼기에 후일 당시 헤세의 가족의 일상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어 다행이다.두 번째 부인 루트는 첫 번째 부인과 소원해지면서 우연찮게 만나게 되지만 마리아와의 관계가 청산되지 않은 상태이고 헤세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루트의 집안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면서 오래 가지를 못한다.정신 질환 상담사인 헤세의 친구 랑 박사와 루트가 가까워진 것도 헤세와의 혼인 생활을 길게 이어가지 못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마지막 세 번째 부인인 니노는 헤세의 작품에 매료되고 그를 마음으로 흠모했던 스무살 연하의 여인이다.그녀는 고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리스 고대문화에 대해 다년간의 연구를 했다.학자풍의 면모를 갖은 셈인데 세상에 그녀의 작품은 아쉽게도 결실을 맺지 못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헤세도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면서 그의 죽음을 예견했는지도 모른다.그가 남긴 마지막 시는 <부러진 가지의 삐걱거리는 소리>로서 삶에 대한 희망 담고 있다."그의 노래가 딱딱하고 거칠게 들러온다./고집 세고 비밀스럽고 불안스럽게 들려온다./또 한 번의 여름./또 한 번의 겨울 동안."-P522 그리고 시를 지은 다음 날 그는 세상과 하직한다.신경쇠약,우울증 등은 아버지의 DNA기질을 많이 닮은 것으로 보이며,다독과 다상량,다작을 하다 보니 안구질환까지 찾아 왔던 것이다.그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지만 양육권 문제로 마리아 부인과 원만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무에서 유를 창조해 나가는 작가들은 매우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다만 작가를 남편으로 둔 부인은 작가의 직업특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하며,작가인 남편은 이왕 좋아하고 사랑하여 결혼을 했다면 집안 일을 어느 정도는 책임감을 갖어야 하는 것이 본연의 자세이다.인세와 판매량,인지도에 따라 작가의 수입은 들쭉날쭉할 것이다.문화로 먹고 살기라는 것도 직업정신이 없다면 오래 가지를 못할 것이다.헤세는 자신이 세 여인에게 먼저 대쉬한 것이 아닌 세 여인들이 그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와의 혼인을 고집했던 것으로 보인다.그래서인지 헤세는 겉으로는 물만난 물고기마냥 자기 세상이었지만 심리 기저에 놓인 그의 편향적이고 자유분방한 성격은 세 여인 아무로 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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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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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침체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일반인들의 활력이 사라져 버렸다.삶이 재미가 없다고 하소연 한다.더욱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절망을 느끼는 동시에 무기력증까지 더해져 삶의 방향타를 잃은 사회구성원이 많아졌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감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아무리 개인의 잠재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질서,제도,시스템이 대다수를 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제도,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사회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도서는 1950년대 절망의 사회를 그린 희곡 작가 존 오즈번의 도서 제목에서 기인하고 있다.60여 년 전의 영국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한 사회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데,현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공감이 충분히 간다.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기에 노력 여하에 따라 대가와 보상을 예측할 수가 있다고 보지만,능력과 가능성이 있어도 돈과 물질적인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세도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현 주류 이데올로기는 사회통합,경제민주화,복지문제 실현 등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양극화,소득 불균형,자살률,삶의 질 등은 최악으로 보인다.이러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인간의 내면에는 욕구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기본적 삶의 조건이 욕구라고 한다면 욕망은 이를 뚸어 넘어 뫼비우스의 띠마냥 끝이 보이지 않는 괴물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욕구는 기본적 생리 요건인 먹고 자고 배설하며 생식을 이어 가는 것과 같이 본능에 가까우며 욕망은 인간의 탐욕과 같이 정해진 기준이 없는 무한의 경지라고 할 수가 있겠다.인간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되어 온 생물이지만 욕망,탐욕과 같은 조건은 진화할 수가 없나 보다.특히 교육수준,경제적 수준,의식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자유는 이기주의로 변하고 공동체적인 삶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대신 돈과 물질이 개개인을 평가하면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도덕적,윤리적 소양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게다가 사회안전망마저 부실하면서 세월호와 같은 대형참사를 빚게 되었던 것이다.이것은 돈과 물질이 우선 순위이다 보니 생명존중의 정신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면서 가장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총체적인 난국을 수습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가면을 쓴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온갖 사회적 문제가 터지고 나면 늘 '사후약방문'격으로 수습하기 바쁘다.발본색원은 하지를 않으려 한다.입바른 소리로 내지 않는다.그것이 올바른 처세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해방후 한국 사회는 말그대로 굴절의 연속이다.인위적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것도 모자라 뭇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세뇌화 시켰다.반공,승공통일 등 안보를 내세워 정권에 맞서 발언,행동을 하던 용기있는 인사들,운동권 학생들은 서슬퍼런 취조와 고문을 당하며 정치민주화를 이룩하기도 했다.그리고 IT산업이 발호를 보이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정치이데올로기보다는 돈과 물질을 더욱 향유하려는 본능과 욕망이 거세져 가고,IMF를 맞이하면서 대단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기업의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비정규직,파견직 등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공공요금을 비롯하여 교육비 등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자식을 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허리가 휘고 있다.경제적 능력 없는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또 한 번 기가 죽는다.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입지도 당연 좁아진다.가정에 경제적상황이 악화되면서 가족 해체,미래에 대한 비관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대는 소수계층을 위한 잔치임에 틀림없다.대다수는 절망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으며,유례없는 정신질환자들이 늘고 있다.그래서 힐링,치유,행복이라는 단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 또한 현혹되면 안된다.근본적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 나가야 대다수가 안고 있는 절망과 무기력증이 해소될 법한데 사회 주류층은 철옹성과 같다.요지부동이다.게다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의 부재도 큰 문제이며,대다수가 힘들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려는 마음은 있되 대부분은 냉소적이고 관망적인 소극적 자세에 머물고 있다.특히 야당 정치인들마저 자기 밥 줄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 아닌 무념무상의 밑바닥을 기는 삶이 지속되어도 누구하나 위로 한 마디,희망 넘치는 연대의식을 보여 주려는 사람도 없다.즉 소통 없는 불통의 일방통행만이 최선인 사회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현대 한국사회에 내놓으라 할 만한 8인의 인문학자들은 진실로 절망을 이기는 법이 무엇인가를 밑바닥 생활을 한 사람의 심정으로,고통과 상처를 직접 느껴본 사람의 심정으로 그 해결법이 무엇인가를 다양한 각도로 경험과 인용,지혜를 모아 들려 주고 있다.시대의 상징이면서 아픔이기도 한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분명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음에 그나마 마음 든든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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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선택 아로파 - 고장난 자본주의의 해법을 찾아 65,000km 길을 떠나다
SBS 최후의 제국 제작팀.홍기빈 지음 / 아로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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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타 섬

 

 

  그 어느 때보다도 돈과 물질에 대한 강렬하고 간절한 탐욕과 욕망의 시대에 살고 있다.돈과 물질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세속의 모든 제도와 시스템,그리고 사회구성원을 지배하는 논리는 돈과 물질에 의해 매겨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렇게 돈과 물질을 숭배하고 이에 종속되어 가다 보니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와 협동,연대의 정신은 개인주의,이기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돈,물질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왜냐하면 인간은 밥과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이듯 의식주 해결과 동시에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적인 존재이면서 개인의 질적인 삶이 자신을 비롯하여 문명발전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태어나 고교시절까지의 고향마을을 회고해 보면 한 곳에서 태어나 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이 많았다.이동의 자유는 있을지라도 농경문화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내리 삶을 이어갔기에 타지로 이동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그리고 고향마을은 30여 가구에 주민수는 150여 명 정도였다.음력 설날에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사는 이웃집으로 청년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세배를 다녔다.이웃집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 정도로 서로 터놓고 지내면서 동질감과 친밀감이 강했고,경조사가 생기면 내 일,네 일 구분하지 않고 서로 품앗이과 같이 돕고 살기도 했는데,모심기,(홀테를 이용한)벼타작이 상부상조의 전형적인 풍습이었다.지금 생각하면 참 따뜻하고 정겨운 이웃간의 돕고 사는 모습이 아닐 수가 없는데 지금은 그러한 정경을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국가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국민소득을 높이면서 부와 번영을 이룬 것은 경이롭기만 하다.지난 시절 보리고개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염을 감출 수가 없다.미국이 발기한 자유무역협정은 전세계를 하나로 묶는 (표면적인) 효과가 있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경제 강대국의 입맛에 맞게 짜놓은 불평등 경제무역 각본은 경제개발도상국 및 주변국가들을 종속적 관계로 전락시키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고 있다.나아가 총체적 국가경제를 이끌어 가는 고위관료들은 정권의 경제 이데올로기에 맞추는 한편 성장 일변도의 거품경제를 부추기기도 했다.그 결과 알짜배기 산업화,도시개발에 따른 정보는 일부 특수계층들이 선점을 하고 대다수 서민들은 이삭줍는데에 만족해야만 했다.신자유주의는 자본시장의 논리로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접목시켜 실행해 가고 있지만,그 부작용은 불평등 요인은 사회 양극화,소득의 불균형이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통계수치이지만 한국인의 1인당 소득이 2만 불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지만,실상 서민들이 느끼는 연소득은 그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이다.2008년 미국발 경제,금융위기의 타격은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린 꼴이 되었다.신자유주의는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그 능력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다고 되어 있지만 힘있는 소수계층이 짜놓은 경제정책은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문제는 한 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과 의지는 안개 속일 뿐이다.

 

 SBS 창사특집대기획으로 마련된 최후의 제국 편의 <최후의 선택 아로파>는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꼬집으면서 그 대안으로 신뢰와 협동,연대를 모색하고 있다.개인의 이기적인 속성과 탐욕이 빚은 자본주의는 자수성가형 부자,세습형 부자,기회를 잘 포착하고 이를 잘 활용한 행운의 부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주지하다시피 한국의 부자들은 세습형 부자들이 많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이들은 막대한 자산을 바탕으로 부의 창출에만 눈이 멀고 사회로부터 받은 각종 제도의 혜택과 소비자들 주머니로부터 나온 이윤이 오로지 자기네들의 값진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 거둬들였다고 인식하는 기업인들이 많다는 점이다.이러할진대 부의 형성,부의 창출 과정도 문제이지만 기업이익의 일정 부분은 정기적으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청렴정신은 싹이 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아로파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재려는 삭막한 의식보다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살아가겠다는 상생의 정신인 공동체적인 삶을 보여 주고 있다.현실적으로는 피부에 와닿지는 않지만 인류의 상생과 미래를 위한 길은 소수계층의 배만 불리고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서는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점에서 '아로파'는 신선한 자극이고 충격이다.

 

 자본주의가 시장교환과 화폐 경제로 인해 인간관계마저 삭막해지고 탈인격화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G2국가인 미국과 중국이 부의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경제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일본,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부의 편중과 양극화 현상은 이민 갈등,인종 문제,세대간 갈등보다 더욱 심각하기만 하다.SBS제작팀.홍기빈 저자는 미국이 안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그늘과 중국의 자본주의 상징도시인 상하이의 현상을 그대로 투시하고 있다.나아가 비대해진 자본주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이누타 섬,히말라야 브록파와 파푸어뉴기니의 상각부족의 경제생활을 탐방하여 현지인의 삶을 들려 주고 있다.탐욕적 개인이 부의 무한대의 부를 불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신자유주의와 비교하여 이누타 섬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은 보기 드물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자본주의가 과연 공존을 지킬 것인가,아니면 공멸의 길로 갈 것인가.그것은 한국사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판을 짜고 실행해 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탐욕적인 이기주의의 상징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협동조합,보편적 복지라는 길로 가는 것만이 현재의 사회 양극화,부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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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 심리학 - 당신이 미치지 않았는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야오야오 지음, 박진영 옮김 / 스카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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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몰랐는데 인간의 내면은 선과 악의 순환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부모가 자식들에게 이상적인 훈육과 양육이 이루어진다면 정상적이고 원만한 사회인으로서 삶을 꾸려 갈 것이다.자아가 싹트기 전인 유아기 때 가정에서의 부모의 역할을 절대적이고 자아가 싹트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시절의 질적인 교우관계였느냐에 따라 청소년기,사회인으로 개인의 삶의 방향과 인간관계,인격형성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삶의 값진 교훈이다.유아기 때의 놀라우며 공포스러운 끔직한 일을 당했다든지,부모의 무관심과 일관성 없는 애정 결핍 속에서 성장했다면 개인의 내면심리는 불안과 공포,대인기피증,애정결핍 등의 현상으로 자리잡게 마련이다.이것이 내면에 장기간 잠재되어 있다 어느 순간,어느 계기를 통해 정신적,심리적 결핍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비록 부모의 양호한 훈육과 양육이 이루어지고 풍요로운 가정경제하에서 성장했더라도 반항과 주변기의 상징인 사춘기를 거치게 마련이다.이 시기가 빨리 찾아 오든 더디게 찾아 오든 기성세대와 몇 번이고 생각과 의견,주관이 달라 충돌과 갈등을 빚게 마련이다.사춘기가 빨리 찾아 오는 요즘 시대에서는 부모 및 어른들이 사춘기에 놓여 있는 청소년들을 멋지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고답적이고 융통성 없는 방식으로 사춘기의 청소년 및 자녀들을 다루어서는 안될 것이다.내 경험으로 보면 기준선을 정해 놓고 그 범위를 일탈하지 않는다면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또한 부모가 자식들에게 보여 주는 양호한 부부관계 및 소통,대화는 사춘기의 아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방황을 할지라도 좋은 부부관계를 보이고 가정에 충실했기에 언젠가는 바른 길로 되돌아 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정신적 내면의 결핍 증상은 현대인 및 사회가 안고 있는 커다란 손실요인이다.물질이 지배하고 정신적 훈육이 소홀하다 보니 요즘 청소년들의 정신상태는 매우 나약하고 무기력하기만 하다.게다가 가정의 결손 및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사회양극화가 빚은 사회구성원간의 위화감,타자와의 원만치 않은 관계,탐욕과 욕망의 지나침 등이 인격에 커다란 결핍을 보이고 정신적 질환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본다.사회적 질병이 신체질병보다 더 무섭다는 정신질환 환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사회생태 환경이 밝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그중에 개인의 인성을 좌우하는 것은 따뜻하고 애정이 부족하고 규율과 절도가 없는 방임주의라고 보여진다.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에 중심을 잡아 주고 흔들리지 않은 정신력,인성 위에서 사회적 우등생,사회적 지도자가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신적 결핍 현상은 유년기,청소년기에 거의 결정된다는 것이다.한 번 습관화되고 내재된 인성은 제2의 천성으로 굳어지면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발현하기도 한다.그렇지만 이상적인 훈육과 양육이 인성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요인은 아니다.개인이 갖고 있는 무의식과 오랜 세월 지역 및 사회에 전래되고 고착화된 집단무의식은 개인 대 개인,개인 대 사회라는 범주 안에서 갈등과 분쟁을 빚는 것이다.지나침은 아니 한 것 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개인의 결핍 현상 즉 다중인격,성도착증,대인공포증,특정 대상에 대한 공포증,불안,광장공포증,신경성 폭식증,거식증,자살,성동일성 장애,정신분열증,강박증,인격 장애,물질 중독(알코올,마약,헤로인),소아성애증,노출증 같은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수치심까지 안겨 주는 결핍현상의 원인을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삐뚤어진 기질,행복하지 않은 삶,개인 및 사회에 대한 복수심과 응어리의 표출,그리고 조울과 우울이 치유되지 못해 삶을 마감하는 자살 등은 결국 마음 든든한 애정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사회에서 배제,소외 되었다고 스스로 낙인을 찍다 보니 사람이 싫어지고 사회는 더욱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정신적 결핍,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양질의 치료 및 사회적 관심과 계도 프로그램이 실질적으로 확산되어 건강한 사회로 변모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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