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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 -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질문 20 ㅣ Art of Lving_인생의 기술 4
줄리언 바지니.안토니아 마카로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철학자와 심리학자의 인생 향연
인문학에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철학과 과학과 같은 학문의 융합이라고 생각한다.이것을 고급스럽게 말한다면 학문적 통섭(通涉)이 아닐까 한다.다르게 해석하면 문과와 이과가 만나 사실,현상,의미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면 인간의 삶을 더욱 통찰과 통합의 힘으로 이룩해 나가는 거대한 학문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복잡다단하고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철학적 사유와 심리학적 방법론 그리고 관찰과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이 모여 거대 담론을 이루면서 인류는 가일층 문명의 발전,문명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본래 철학과 과학이 두루뭉술하게 동거(同居)하다 연구하는 대상이 확연하게 달라지면서 철학과 과학은 분가(分家)를 하면서 딴살림을 차리게 되었다고 한다.이렇게 두 분야가 따로 제 갈 길을 오랜 세월 걸어가다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 상황은 현 시대가 요구하는 필연적인 귀결인지도 모른다.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대환영이고 마음 흡족하기만 하다.그것은 사회,문화,예술 방면의 전문가들과 과학 방면의 전문가들이 미디어를 통해 칼럼과 연재를 통해 두 학문의 통합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설파하고 있으며,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자기계발,실용서,무게감 없는 이야기에서 삶의 가치를 음미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와 같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레임에서 학문 간 통섭과 융합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삶의 의미,가치에서 나아가 자기성찰,인간의 행동과 인지,뇌신경과학과 같은 분야가 통합적으로 변화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현실감각과 미래 대응력 등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직관력과 삶의 경험을 통해 풀어내는 지혜의 힘은 개인과 사회,국가의 문명과 문화,예술과 같은 분야에도 두루 힘이 실어지리라 생각한다.
줄리언 바지니 철학자와 안토니아 마카로 심료치료사가 만나 인생 질문 20가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서로의 견해를 피력해 나가고 있는 《최고가 아니면 다 실패한 삶일까》는 인생을 부박하고 의미없게 살아 온 내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인생 탐구서'라고 자칭하려 한다.인생에 대한 질문 20가지에 대해 정답은 없다.20가지의 질문을 받게 되면 십인십색의 개성과 기질,생각과 감정,견해의 차이가 상존하기에 정답은 없지만 참다운 삶의 가치를 실현해 가기 위해 도(度)를 넘지 않은 삶의 표준을 살아가는 것이 기본이 삶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삶의 참다운 가치를 가훈(家訓)처럼 삼되 예기치 않은 상황과 사태에 봉착하게 되면 누구든 이성보다는 경험 속에 축적된 감정이 앞설 것이다.감정은 평온할 때에는 개인의 색깔과 무늬를 잘 반영하게 되지만 불상(不祥)시에는 날카로운 직관력과 감정이 상호작용하기에 자칫 문제해결이 복잡해지면서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것이다.그래서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예기치 않은 사태,상황에서는 한 발짝 물러서서 일의 진행상황을 이성과 지혜의 힘을 빌려 담대하고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심리적,물리적 면에서 수월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라는 사회적 환경과 개인의 심리적 기제라는 면을 살펴 보면 소수계층(10%미만)을 제외하고는 대개가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형국이다.겉으로는 '허허' 웃고 있을지라도 생계,건강문제,노후문제,자식들 교육문제와 같은 삶의 굵직한 현실적 과제가 만만치가 않다.나는 중학교 1학년 때 도덕 선생님에게 '된사람,난사람,든사람'을 배웠다.된사람은 학문과 명예가 있는 사람,난사람은 물질적 부를 거두어 자본가와 같은 사람 그리고 든사람은 인격을 갖추고 세상을 이끌어 가고 교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그 중에 된사람을 마음 속으로 우상화했던 것 같다.시대가 바뀌고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인식하면서 인간의 삶은 우선 의식주가 족(足)해야 주위,사회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든사람을 신주 모시듯 살아왔지만 덜 구워진 도자기처럼 쓸모없게 되어 내팽겨쳐 버렸다.사회 구성원의 1인당 소득은 그저 행정편의적이고 통계라는 기제에 의해 짜여진 수치일 뿐 삶의 질은 벼랑에 서 있는 기분이다.다달이 나가는 금전은 쓰면 쓸수록 더 지출을 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유혹을 하는 것과 같아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맨지 오래되었다.게다가 정책을 관장하는 정부 정책과 사회 시스템,의식 구조가 없는 사람을 위로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게끔 만들어 놓은 제도와 시스템으로 인해 일반인은 철학이 밥먹여 주고 심리학이 마음을 다독여 주냐 라고 빈정거릴 수 있다.괜찮은 사립초등학교 1년 교육비가 1,2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부대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일반적인 생활소득으로는 자식을 그 비싼 곳에 보낼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아예 생각에서 제외하는 것이 신상에 편할 것이다.그리고 국제중,외국어고,자사고와 같은(겉으로는 성적 우수학생을 선발하여 국가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학교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계층과의 위화감 조장을 하고 있다.또한 대학의 등록금은 어떠한가.나는 천문학적인 숫자에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취직이 되는가.그렇지 않다.비싼 등록금을 받아 먹는 대학은 이제 학문의 전당이 아닌 취업을 위한 취업 대기소 쯤은 아닌가 라고 자조(自嘲)한다.참 힘들다,못해 먹겠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말을 못하고 본능적으로만 살아가는 동물과는 다른 것이 인간이 아니겠는가.사회제도와 사회시스템이 소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차선책이라도 선택하되 자신의 재주와 능력,감당할 체력을 고려하여 꾸준히 인내력을 갖고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한다.아무리 불평.불만을 터뜨려 봤자 누구 하나 알아 주는 사람 없을텐데.사회 제도,시스템이 획일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짜여져 있을지라도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맞게 인생의 각본을 짜서 꾸준히 인내력을 갖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 불평등,부조리,잠재 능력도 현실에 어떻게 잘 대응해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한다.인생은 짧다.장 폴 사르트는 잠재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잠재 능력은 상황만 달랐더라면 어떤 일을 해낼 수도 있었을 거란 착각을 느끼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거짓된 위안을 준다.나아가 인간이란 "그의 행동의 총합(總合)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며,그가 살아온 삶이 곧 그 자신이다."상황이 좋았더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거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은 거짓된 위안이다. -P31
무신론적,실존적 관점에서 니체와 사르트르,카뮈의 사상을 흠신(欠身)한다.그러한 차원에서 사르트르는 내게 삶에 커다란 의미가 무엇인가를 교교한 빛깔로 내 마음을 휘어잡는다.사르트르는 "믿을 수 있는 것을 실재뿐이며 꿈,기대,희망이라는 말은 그저 거짓된 꿈,실현되지 않은 기대,무산된 희망을 통해 한 사람을 정의 내리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라는 대목도 현실적인 면에서 냉철하게 수용해 나가고 있다.요즘 자기계발서,실용서로 긍정적,낙관적,힐링과 같은 말과 관련도서들이 속출하고 있다.이를 수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따라 자기계발서의 코드가 부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Flow』에서 "우주는 인간의 안락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하고 밝히고 있다.그렇다.인간의 일상은 트라우마의 연속이고 불편함과 개척의 길이라고 새삼 깨닫게 된다.부모의 슬하(膝下)를 떠나게 되는 순간부터 '나'라는 우주의 원자는 대항해 위에 둥둥 떠 있는 부평초일 뿐이다.내가 배우고 익히고 소통하며 축적한 경험과 직관에 의해 내 삶은 조종되어 가는 것이다.연령대에 따라 해야 할 일,상황에 따라 기민한 직관력으로 선택.결정해야 할 사안,비과학적인 일상 속에서 얻어지는 예기치 않은 행운,소소한 성취로 인해 맛보는 행복감 모두가 인생의 길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들이다.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남에게 사랑을 받으려 몸과 마음을 애태우지 말고 내가 사랑받을 수 있도록 말과 행동에서 사랑스러울 정도의 실루엣과 착한 선행을 쌓아가는 것이 최상일 것이다.사람이 끄는 사람과 끌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자신을 기만하고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위선적 행동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일관적이고 능동적이며 공동체적인 삶의 자세,태도의 차이를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모나지 않고 원만하면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 보면 삶의 통찰력은 더욱 빛나리라 생각한다.그러한 삶이라면 삶이 끝나고 육신이 사라지는 죽음도 아름답고 고귀하게 맞이할 것이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삶은 순간 순간 선택과 도전의 연속이다.누군가 삶의 멘토가 되고 이정표를 제시해 준다손 치더라도 실천으로 옮기는 주체는 자신이다.삶은 무한히 펼쳐져 있는 한 장의 설계도이다.그리고 지우고 첨삭하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레벨,동기는 제고되어 갈 것이다.매슬로우가 말한 욕구 단계 가운데 사회적 욕구 단계를 넘어 존경과 자아실현의 단계까지 도달했으면 한다.그것이 삶다운 삶의 실현이고 행복과 상생을 위한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내면을 살찌우고 삶의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명상,요가,독서와 같은 영적인 삶을 지속시켜 나가고 외적으로는 살아 있는 지식과 돈오점수(頓悟漸修)의 깨달음과 지혜를 타자와 소통해 나가야 할 것이다.'인생 별 거 있어?'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말할 것이다! 신이 나를 탄생시킨 세상은 험난하고 각박하지만 삶의 이치,가치를 깨달으면서 내 뒤를 잇는 자식과 사회에 조그만 밀알이라고 남겨 보라는 가르침이 있기 때문이다.삶 속에서 부딪히고 느끼는 온갖 요소들 모두 지나가는 것이다.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다만,불충하고 미련하며 아둔하여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의식구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인간만이 갖을 수 있는 특징이고 우월함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