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1
카루베 준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오늘 

뜬금없이 이 만화이야기가 하고 싶어집니다. 

이 만화의 여자주인공은 청각장애인입니다. 

그녀에겐 들을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헌신적으로 가르쳐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또 그런 그녀가 배우고 취직할 수 있는 일본의 탄탄한 복지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녀의 취직, 임신과 출산 전 과정에서 통역을 담당하는 복지사가 등장합니다. 

집안이나 복지시설에 많은 수가 갖혀살고, 

혼자살 권리를 외치며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우리네 장애인분들을 생각하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사회에 나와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두려움 속에 부모가 되는 우리네 평범한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님의 거센 반대,  

정상인들과의 의사소통의 어려움에서 오는 소외, 

아이도 나와 같을까봐 온 동네가 떠나가라 태교음악을 틀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우는 소리를 옆집 사람이 뛰어오도록 못들어서   

울고야 마는 이야기. 

매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으샤 나도 잘할 수 있어 라고 힘을 내다가도 

잦은 실패에 고개 숙이고 마는 모습. 

그저 유별난 사람도 특별한 이야기도 없이 잔잔히 흘러가며,  

평범한 사람의 삶이 주는 감동을 전해줍니다. 

참 좋은 만화라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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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09-09-07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책인데 아직 못봤어요 ㅠ.ㅠ
휘모리님 리뷰보고 다시한번 찾아보자!! 전의가 불타오릅니다 ^^

무해한모리군 2009-09-07 18:14   좋아요 0 | URL
제 또래라 그런지 청각장애인이라기 보다는 또래 여성의 이야기로 읽혔어요 ^^ 저는 참 좋았습니다.

카스피 2009-09-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흔이 일본 만화를 음란 저질이라고 매도하지만 이렇게 좋은 만화도 무척 많지요.
근데 휘모리님 요즘은 장애인이라는 말은 정상인과 차별해서 부르는 말이라고 장애우라고 한다고 하네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8 09:28   좋아요 0 | URL
장애인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가진 '비정상적인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꺼리는 점이 많은데요. 저도 참 어찌 호칭해야할 지 고민스럽습니다만, 장애우로 부르는 것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아래 글의 일부를 가져와 봅니다.

=============================

일반적으로 사회집단 또는 계급, 계층을 표현하는 개념 또는 단어는 1인칭, 2인칭, 3인칭 모두가 가능한 표현으로 쓰여집니다. 예를 들어 '노동자'나 '여성'의 경우 타인 뿐만 아니라, 자신도 '노동자, 여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우'란 표현은 타인이 나(장애인)을 지칭하거나 부를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 내(장애인)가 나(장애인)를 지칭할 때에는 절대 쓸 수 없는 용어입니다.

즉, 집단을 지칭하는 표현은 모든 인칭에서 쓰여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우'라는 표현은 1인칭에서는 쓸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장애우'란 표현은 사회집단 또는 계급, 계층을 표현하는 단어가 아니며 장애인을 사회집단, 계층이 아닌 비사회적인 집단 혹은 개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우'란 표현은 '장애인'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할 수 없기 때문에 비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합니다.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개념이나 단어는 그 집단의 정체성(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집단의 위치, 또는 사회적 관계)을 표현함과 동시에 주체적인 의식을 표현하는 것인데, 스스로가 자신을 지칭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가 주체적인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출처 : 장애인 실업자 종합 자원 센터 사무국장 '엄태근'님의 글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11&dir_id=110104&eid=k9nQ1yWIfC1ebOoO073trwT++CHlsXO0&qb=wOW+1r/sLCDA5b7WwM4=&pid=fRcLCdoi5TwsssiSMi4sss--265885&sid=SUHNkerFQUkAAAZVFZk

 
나무없는 산
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매서운 겨울날, 

1930년대 경성의 전차 정류장, 

한 아가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지나가는 전차마다 엄마가 안 오냐고 물어보지만, 

눈이 소복히 내리고 날이 저물도록 엄마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가는 코 끝이 빨개지도록 꼼짝하지 않고 엄마를 기다립니다.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일제시대의 경성의 풍경, 

단순한 그림의 여백이 슬픔을 자아냅니다. 

세상은 너무 크고 아가는 너무 작습니다.  

아가의 세상의 전부인 엄마 손을 꼭 다시 잡고  

집으로 돌아갔기를 바래봅니다. 

================================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입 속의 검은 잎>(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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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9-0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독서 목록에 넣어뒀던 책. 다시 생각나네요.

한편 제게 저런 글들을 함께 읽어줄 수 있는지, 그런 자리 옆에 있어도 되는지 물었던 한 청춘에 대한 기억도 떠오르구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7 08:53   좋아요 0 | URL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저도 떠오르는군요..

행복한 한주일 되세요 ^^

프레이야 2009-09-07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도 그림도 너무 좋은 그림책이죠.
저도 참 좋아해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7 18:1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도 좋아하시는군요.
라주미힌님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셔서 읽게되었는데,
한참 찡했답니다.

순오기 2009-09-07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찡하면서도 사랑스럽죠?^^
기형도의 엄마마중은 중학교 1학년 국어에 실렸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7 18:15   좋아요 0 | URL
저 시가 교과서에 나오는군요.
참 기형도의 시답지 않게 서정적이지요.
저도 어머니가 일하셔서 내맘같아서 고등학교때 이 시를 읽고는 금새 좋아졌답니다.

하늘바람 2009-09-2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밥처럼 방에 담겨~

참~

무해한모리군 2009-09-24 17:18   좋아요 0 | URL
참 마음한켠을 시리게 하는 표현이지요..
원래 이런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닌데,
자신의 유년을 그대로 녹였나봅니다.
 
바람의 그림자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직도 아버지가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나를 처음 데리고 갔던 그 새벽을 기억한다.  

(1권, p9)

 
   

이야기는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잊혀진 책들의 묘지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나왔던 살아 움직이던 서고를 떠올리게 했다. 독서가라면 누구나 수만권의 책들로 채워진 나만의 서고를 꿈꾸고, 수백권도 되지 않는 내 소박한 서재에서도 운명처럼 내게 흔적을 남기는 책을 재발견하곤 한다.  이 서고를 시작으로 책의 배경인 바르셀로나 곳곳이 마치 마술 속 세계처럼 희뿌옅게 느껴진다.  

바르셀로나의 중고책 서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에 얽힌 사연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파헤치는 한편, 2차 세계대전 후의 어수선한 사회속에서 성장해 가는 한 소년의 모습이 메비우스의 띠처럼 유연하게 연결되어 흘러간다. 

   
 

"사실 남자란, 다시 프로이트로 돌아가서 은유법을 사용하자면, 백열등처럼 달아오르지. 한순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가 훅 바람이 불면 차가워지지. 반면, 여자는, 이건 과학적으로 확실한 건데, 다리미처럼 달아올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조금씩조금씩, 약한 불로 말야. 맛있는 크리스마스 스튜를 만들 때처럼. 그러나 열 받았다 하면, 그걸 막을 길이 없지. 비스카야의 용광로 같단 말야." 

(1권, p213) 

"여자의 마음은 속임수를 쓰는 남자의 버릇없는 정신에 도전하는 섬세한 미로지. 만일 네가 진정으로 한 여자를 소유하고 싶다면, 그 여자처럼 생각해야 돼. 그리고 그녀의 영혼을 얻는 게 우선이지. 나머지 것들, 즉 사람으로 하여금 감각과 미덕을 잃게 하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포장은 보너스로 오는 거야." (중략)

"나 베르나르다를 여자로 만들어줄 거야. 정직한 여자로 만들지 못하지만 -벌써 그러니까 말야- 적어도 행복한 여자로는 만들어 줄 거야" 

(1권, p214)

 
   

추리소설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한 남자의 절절한 사랑이야기이다. 글 속에는 온갖 종류의 통속적이고 시시껄렁한 우리가 아는 여자와 남자에 대한 은유들이 등장한다. 훌리안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우리가 흔히 보는 티브이 연속극의 그것이지만, 삶의 진리들은 통속적이고 시시껄렁한 가운데 있고, 매번 그것에 마음이 흔들리고 눈물짓게 된다.  

   
 

"토마스는 네가 그렇게 뻔뻔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었는데"
"약간 있는 뻔뻔함을 모두 너를 위해 비축해두었지." 
"왜?" 
너는 나를 겁나게 하니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1권, p284) 

 
   

이야기의 다른 줄기는 앞서도 말했지만 성장소설이다. 청춘은 늘 미숙하고 두렵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 상처받는 것이 모두 두렵고 두렵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이듬이란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에도 무감해지는 것이 아닐까? 눈물짓는 일도 웃음을 지을 일도 자꾸만 사라져간다. 그래도 과거와 현재의 질풍노도의 사랑에 나는 설랜다.

   
  "그래, 때때로 이런 명문 학교들은 정원사나 구두닦이의 아이들에게 한두 개의 장학금을 제공한단다. 단지 자기들의 훌륭한 정신과 기독교적 관대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야." 

"가난한 이들이 자기들을 해코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로 하여금 부자들을 본받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지. 그것이 자본주의가 지가고 있는 독인데..." 

(1권, p319) 
 
   

   
 

이 삶은 서너 가지 이유로 인해 살 만하고 나머지는 들판의 비료 같은 거야. 난 이미 바보 같은 짓거리들을 많이 저질러왔어. 그런데 지금 내가 원하는 유일한 것이 베르나르다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고 언젠가 그녀의 품에서 죽는 거라는 걸 알고 있지. 다시 꽤 괜찮은 남자가 되고 싶어, 알겠니? 나를 위해서가 아냐 - 우리가 인류라고 부르는 원숭이 합창단의 존경은 내게 안중에도 없거든 -, 그녀를 위해서지. 왜냐하면 베르나르다는 그런 것들을 믿거든. 그녀는 라디오 연속극도 믿고, 사제들도 믿고, 누군가에 대한 존경도 루르드의 성녀도 믿는단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고 난 그녀의 그런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단다. 그녀의 턱 끝에 달린 털 하나까지도 말이야. 그래서 난 그녀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1권, p 299~300) 

 
   

이 글 전반에 흐르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 온갖 냉소들 사이사이에도 작가는 끝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애정을 버리지 못했다. 청소년물을 오래 집필해온 탓일까? 그의 빈정거림은 공허하지 않은 따스함이 베어나온다. 

   
 

"일하는 동안에는 인생을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되거든요" 

(2권, p201)  

 
   

젊음을 다룬 글에서 나는 매일매일의 습관적인 생활에서 우리가 살고자 했던 삶을 다시 기억해 낸다. 그것은 젊은 날의 가슴아팠던 순간을 다시 끄집에 내기에 고통스럽고, 그저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문득 스쳐지나가는 생각에 더욱 쓸쓸하게 한다.

그때까지 그것이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이며 부재와 상실의 이야기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고, 그 때문에 그 이야기와 내 자신의 삶이 혼동될 때까지 나는 그 이야기 속에 피신해 있었다고, 사랑해야 할 이들이 단지 이방인의 영혼에 살고 있는 그림자일 뿐일 것 같아 소설 속으로 도망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했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1권, p287)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떻게 인생이 조금씩조금씩 무너져 내리는가를 보는 불행 혹은 행운을 가졌지. 훌리안에게는 그 분명한 사실이 한순간에 몰려왔지만 말야. 

(2권, p288) 

그래, 이 책은 어른이 되면서 우리가 잃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풋사랑, 친구, 부모님과의 따뜻한 대화, 꿈.. 이 글의 주인공 훌리안의 불행은 돌이켜보면 누구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 말솜씨 좋은 작가는 이렇게 흥미롭게 슬픈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가 들려주는 인생이야기를 끝도 없이 들어보고 싶다.

참, 나도 결혼할 때 주례대신 파블로 네루다의 사랑의 소네트 한구절을 나누며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오호 이 소설 속에도 그런 장면이 나온다~ 괜스레 흐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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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09-09-0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은지 넘 오래되서...ㅎㅎ 느낌은 굉장히 강렬했는데...

무해한모리군 2009-09-06 18:05   좋아요 0 | URL
줄거리보다는 분위기가 환상적인거 같아요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일년에 한달은 한번 만났던 책들을 다시 읽어본다. 

올해는 로맹가리다.   

스물몇에 읽었던 이 단편집은 그저 낯설고 어려웠던 느낌만을 남겼는데, 

다시 만난 그는 처음으로 뜨겁게 내게 안겨온다. 

이 인간 천재로군.. 

어느 한 편도 놓치고 싶지 않은 빼어난 작품들이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에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가. 

신앙을 잊었고, 신을 버렸으며, 품위 있는 죽음이 낯설어졌다. 

옆집 숟가락 갯수까지 알던 이웃을 잃었고, 

내 마을 공동체를 잃었다.. 

그러고 보니 인간에게 남은 것은 앙상한 자기자신 밖에 없다. 

그 앙상한 자신이 무엇을 할 자유를 가지든 그게 뭐 그리 대수겠는다. 

유태계 프랑스인이고 그 자신이 2차대전에 참전하기도 했던지라, 

그의 글은 참 스산하다. 냉소적이다.

그의 단편선 전체에서 우리가 믿었던 신념들은 쉽게 부정되고 부서진다. 

그는 이제 아무에게도 편지를 쓰지 않았고, 누구에게서도 편지가 오지 않았으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그 불가능한 일을 하려 할 때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그 역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렸던 것이다. (p15) 

그녀가 흐느꼈다. 그가 대책 없는 어리석음이라고 스스로 이름붙인 그 무엇에 다시 점령당하고 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손안에서 모든 것이 부서지는 걸 목격하는 일에 습관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이런 식이었으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내부에 있는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했다. 그의 삶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황혼의 순간 문득 다가와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줄 그런 행복의 가능성을 은근히 믿고 있었다. 대책 없는 어리석음 같은 것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p20)

이데올로기이든 헛된 사랑의 열병이든, 이상이든 그것을 뭐라고 부르던 간에 종국에는 우리를 허무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근원의 언저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새들이 페루로 가서 죽을 수 밖에 없듯 배반될지 알면서도 다시 한번  대책없는 어리석음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기왕지사 삶이란 그런 것이라면 제길 멋지게 온힘으로 날아가 떨어져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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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31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리뷰로 다시 읽고싶어지는 책,
마지막 문장 너무 멋지잖아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1 09:45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멜랑꼬리에 젖어있거든요 ^^
반가워요 프레이야님~

Forgettable. 2009-08-31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자기 앞의 생]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읽었다가 큰 낭패였지요.
당시에 이거 괜찮다는 친구들 겉멋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면 저도 천재를 알아보는 안목이 생겼을지 궁금하네요- 아마 똑같을 것 같지만 ㅋㅋㅋㅋ 15페이지 부분이 어렴풋이 기억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서 신기해요. 물고기 기억력이라도 차곡차곡 다 쌓이고 있는 것인지..


무해한모리군 2009-09-01 09:44   좋아요 0 | URL
덜컹이는 기차는 기차대로 멋진 세단은 세단대로 맛이 있는거 같아요ㅎ
음..
뭔가 맛을 볼 수 있는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기분이랄까요?
어렸을 땐 아무 맛이 없던 음식들의 풍미를 알아가는 것처럼요~
아직 한참 멀었지만..

바람돌이 2009-09-0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맹가리 - 말로만 들었지 읽어본 적은 없는... 근데 휘모리님 글을 한 번 거치면 왜 이렇게 읽고싶어지는 걸까요? 아 그러고 보니 전에도 하나 휘모리님 글보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 있었는데 뭐였더라.... 이놈의 기억력하고는... 이번에는 적어놔야겠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9-01 14:19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바람돌이님 마음에도 들까?
그럼 함께 스산함을 나눌 수 있을텐데요~
잊어버린 녀석은 인연이 아닌거죠 뭐 ^^

다락방 2009-09-01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친구도 완전 반해서 읽고 있어요. :)

무해한모리군 2009-09-01 14:21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전 고향내려가는 기차에 이 책을 두고내려서 다시 샀답니다 ㅎ
읽던 중간에 잃어버려서 다시 산 두번째 책이예요.
거미여인의 키스와 이 책..
두 책 다 다시 사서 곁에 두고 몇 구절씩 읊어주고 싶은 녀석들이죠~
벌써 제 독서는 가을에 어울려지고 있어요.

머큐리 2009-09-01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거미여인의 키스...좋아요...^^; 이 책도 좋고...이 책을 소개해 준 사람도 생각나네용..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01 19:49   좋아요 0 | URL
각주가 본문만큼 되는 ㅎㅎ
가끔 사랑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땐 그 소설이 떠오르곤 합니다.

비로그인 2009-09-02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밀 아자르, 로맹 가리.. 되뇌다 보니 마치 오래된, 한 때 아껴 읽은, 먼지 쌓인채로 어딘가에 있던 책을 본 느낌이네요.

생각난 김에 먼지를 좀 닦아내야겠습니다 !

무해한모리군 2009-09-02 22:05   좋아요 0 | URL
저희집 책들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습니다만!!

꿈꾸는섬 2009-09-04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정말 좋았어요.^^

무해한모리군 2009-09-07 00:56   좋아요 0 | URL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때 놓쳤던 것들이 더 잘 보였어요 ㅎ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절판


음악에 무엇이 결여되어 그런 것인지 찾아내고자 마이클은 바짝 귀를 기울였다. 잠시 후 느낌이 왔다. 그 음악은 날지 못하는 새와 같았다. 자신이 비행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새였다. 걷는 것은 무척 잘했지만 높이 솟구쳐 올라야 할 부분에서도 걷고 공중에서 내리 꽂아야 하는 부분에서도 걷고 날아올라 날개를 기울이며 급강하를 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걷고 비행의 짜릿함에 몸을 떨어야 하는 부분에서도 걷기만 했다. 그 새는 하늘을 올려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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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13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108, 총 20000 방문
히히힛~~

무해한모리군 2009-08-13 21:55   좋아요 0 | URL
우와 일단 만치님 이만번째 방문 기념으로 용산참사 달력 한부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비로그인 2009-08-14 11:08   좋아요 0 | URL
호호호 감사합니다..
휘모리님 서재 보고 나갔다가, 갑자기 20000이란 숫자를 본게 생각나서 앗!하고 다시 들어왔다니까요~

무해한모리군 2009-08-14 11:56   좋아요 0 | URL
이만히트 이벤트 기획중이었는데 넘어버렸네요 ㅎㅎㅎ
뭔가 참신한 다른 이벤트를 해볼까봐요. 카테고리 이름정하기나 서재이름정하기 뭐 이런걸 해볼까 싶은데요~

비로그인 2009-08-14 13:23   좋아요 0 | URL
ㅎㅎ 이대로 가면 한 두달있다 30000 이벤트 하셔도 되겠는데요?

마늘빵 2009-08-13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기똥한 거 여기도 하나 있군요. ㅋㅋ

무해한모리군 2009-08-14 08:1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침에 당신 글을 봐서 이런 제목이 생각났나봐요~

마늘빵 2009-08-14 09:13   좋아요 0 | URL
왜 자꾸 '찬'을 '한'으로 치게 돼지. -_- 음. 히읗은 검지로, 치읓은 중지로 치는데. 이상하네.

무해한모리군 2009-08-14 09:43   좋아요 0 | URL
저는 둘다 검지로 치는데~ ㅎ

마늘빵 2009-08-14 15:41   좋아요 0 | URL
혹시 독수리 타법 아녀요?

무해한모리군 2009-08-14 15:55   좋아요 0 | URL
왜이래요. 나 손가락이 안보이는 사람이야 이거
투표해볼까요? 검지로 치나 중지로 치나~

머큐리 2009-08-1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16...

무해한모리군 2009-08-14 08:16   좋아요 0 | URL
전 20057...
어허허 머큐리님 아쉬워하시는 중? ^^

2009-08-14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8-14 09:45   좋아요 0 | URL
어 머큐리님 답문자 보냈는데요~
이미 그때 새핸폰 이었어요 ㅋㄷㅋㄷ
h군은 제가 강제로 라도 준비시켜 보겠습니다 ㅎㅎㅎ

보석 2009-08-14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1.+_+

무해한모리군 2009-08-14 11:54   좋아요 0 | URL
헤헤헤 여기 번호세기 놀이중? ㅎㅎ

다락방 2009-08-14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엇. 그럼 저도 이렇게.

오늘 128, 총 20147 방문

무해한모리군 2009-08-16 11:38   좋아요 0 | URL
으흐흐 다락방님 오셨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