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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 28일 한겨레 14면

질문: 동성애자들의 생각이나 삶을 다룬 책, 영화, 연극을 본 적이 있는지? 그들의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회창


: 본 적은 없다. 동성애자들의 사생활도 인정받고 인권도 보장돼야 한다는 데는 공감이 가는 점도 있다. 그러나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것으로 비치지 않는 현실에서 이들의 사회운동화를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김대중


: 특별히 접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동성애에 동의하지 않지만, 동성애도 이성애와 같이 인간에 대한 애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이단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자 활동 역시 인권보장의 한 부분으로 접근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인제


: 동성애는 아주 미묘한 문제다. 사회에 저항하고 자신의 성아이덴티티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자연의 섭리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이 과연 어떤 형태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화 ‘필라델피아’에 나타난 것처럼 동성애자를 하나의 신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권영길


: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았다. 나는 한국 사회가 동성애 운동을 수용할 수 있는 충분한 사회적 여건을 갖추었고, 당국 역시 이러한 사회 조류에 발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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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7-04-27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려 20년 전 대선후보들의 발언이군요.

어제 연행당한 분들 소식 접하고 진짜 열 받았어요.

게다가 문빠들의 행태는 더더욱 열받게 만들더군요.

무해한모리군 2017-04-27 21:39   좋아요 0 | URL
저는 친구가 둘이나 연행되서 진짜 열받더라구요.
농담삼아 군부대나 4차선 이상되는 도로도 아닌데 왜 연행이 됐냐고 웃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연행자들보고 폭력범 운운하는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사람들의 행태는 기가 차더군요. 무지개기 들고 그만 퍼포먼스도 못한단 말입니까.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제3차 청문회에 증인들이 불출석해 자리(참고인 뒷자리)가 비어있다 있다.

이날 청문회에 강신명 전 경찰청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증인은 전원 불출석했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60902122202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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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대상을 수상한 CBS 세월호2주기 방송인 '새벽 4시의 궁전'을 들으며 출근길을 나선다. 이제 다시는 생일을 맞을 수 없는 아이들의 해맑은 생일파티 음성이 들려온다. 예은아빠는 예은이의 마지막 문자가 '해경이 와서 구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차마 오늘도 끝까지 듣지 못한다. 


부모들은 국회의 그 많고 많은 방들중 한칸을 차지 못하고 김대중기념관으로 쫓겨와 범인들에게 말한마디 건네보지 못한다. 서글프고 서글프다.


청와대는 조윤선 김재수를 당연히도 임명 강행하기로 했단다. 숨길 것이 얼마나 많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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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이 세월호 참사전 3년간 청해진이 국정원과 최소 열두차례 이상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수한 청해진 내부보고및 결제서류를 통해 확인, 보도했다. 국정원이 청해진과의 어떤 연관성도 부인하고 있고, 세월호 특조위 해체가 코앞인 지금 명확히 보도근거를 제시했지만,  이 보도 역시 세월호 관련 나머지 보도들과 마찬가지로 주류 언론에 한줄도 인용되지 않을 것이다. 


업, 업은 운명과 다르다고 한다. 업이라는 것은 원인이 있다. 그러니까 사전의 행동이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진다. 세월호 참사는 절대 우연이 아닌다. 노후선박의 운항, 관리, 출항허가, 구조과정 등등등 모든 과들이 모인 끝에 발생했다. 그러면 그 과오를 저지른 자들이 처벌을 받아야할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이번에도 국회가 아닌 서울시청에서 열려야 하는 청문회를 바라보는 심사가 뒤틀린다.


세월호 참사후 나는 화를 다스릴 수 없게 됐다. 내내 마음에 울화가 치민다. 총선에서 야당조차 세월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엄청난 운으로 야당이 많이 뽑히면 약간이라도 진상이 밝혀질까?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면 반복될 뿐이다. 두렵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8876

2011년 1월28일 “국정원 점심식사 미팅(2월 왕복이용 협의 외)”

2011년 9월9일 “백령노선 관계자미팅(국정원)”

2012년 1월9일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

2012년 1월18일 “국정원특별점검”(오하마나호로 추정)

2012년 1월27일 “국정원 정기모임 참석”

2012년 2월13일 “대형선 관련 국정원 면담”

2013년 2월7일 “국정원 미팅”

2013년 2월21일 “어제 국제터미널 국정원 사무실에 김ㅇㅇ 부장과 다녀왔습니다”

2013년 3월 18-19일 “세월호 국정원 보안점검”

2014년 1월20일 “국정원 미팅(1/20 월)”

2014년 3월5일 “국정원(세기:안보관광 담당자) 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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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금일 사설입니다.


왜 정몽구는 해외를 날라다니고 한상균은 구속입니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21767.html


법이 노사 모두에 공정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재계의 수장 격인 현대차 정몽구 회장. 그는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대법원에서만 세 번이나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정규직을 채용해야 할 자리에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썼다는 죄다. 2012년 법학교수 35명이 정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를 처벌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구했다. 파견법 위반 징역 3년, 근로기준법 9조 중간착취 금지와 직업안정법 위반으로 각각 징역 5년 형을 살 수 있는 범죄다. 죄질도 나쁘다. 회사 조직을 동원한 범죄가 10년 넘게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인가.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힘없는 부품회사들의 영업이익률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친척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까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한둘이 아니다.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해 2013년 연말까지 수사를 완료하겠다던 검찰은 2년이 지나도록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한상균과 정몽구, 누구의 범죄가 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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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참 아이러니 하다.

지난주 열린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아직 사경을 헤매고 있는 농민 백남기씨의 삶을 봐도 그렇다.


백남기씨는 중앙대 68학번,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유신독재반대 운동을 하다 수배생활을 했고, 박정희 잔당인 전두환때는 군부독재 반대를 외치다 구속 고문 당했다. 세월이 흘러 딸은 민주화된 세상에 살라고 민주화라 이름 지어준 이 아비는 그 딸이 서른된 해, 박정희의 딸이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 그 수족인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딸 민주화씨가 묻는다.

'우리 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해서 저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있어야 하는가?'


한결같이 어렵고 필요한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던 이 분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거듭 제나라 경찰에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그저 이 땅에 태어났고 강직한 성품을 가진 불운을 탓해야 하는가.


민주화는 피기도 어렵고 쉬이 시드는 꽃이라 돌보지 않으면 어느덧 이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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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미디어오늘 기사


유신독재·계엄군에 쫓겨 돌아갈 곳 없었던 농민 백남기
물대포 맞고 의식 불명, 연명치료 중단한 상태…
 “30년 동안 농사짓고 농촌살리기 운동한 강직한 사람”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171

<최강은씨가 작성한 백남기 농민 약력>

1947년 8월 24일(음력) -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1963년 2월 - 광주서중학교 졸업
1968년 2월 - 광주고등학교 졸업 (17회)
1968년 3월 -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68학번)
․ 법대 학생회장
․ 군복무
1971년 10월 - 위수령 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1973년 10월 15일 -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1974년~1975년 - 수배 중 명동성당에 피신
1975년 -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1980년 3월 - 복교
1980년 -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1980년 5월 8일 -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1980년 5월 15일 - 서울의 봄 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1980년 5월 17일 -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1980년 7월 30일 -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1980년 8월 20일 -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징역 2년 선고
1981년 3월 3일 - 3‧1절 특사로 가석방
1981년 -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1981년 11월 - 박경숙(율리아나)님과 결혼
1983년 -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1986년 - 가톨릭농민회 가입
1987년 - 가톨릭농민회 보성, 고흥협의회 회장
1989년~1991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1992년~1993년 -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1992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1994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2014년 - 가톨릭농민회 전남 동지회 회장
2015년 -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2015년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2015년 - 11월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


- 파리 테러현장의 연주. Pray for Paris pray for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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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5-11-19 15: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파리의 비극에는 쉽게 공감하면서,
서울의 비극에는 데면데면한 게 이 나라의 정치판입니다.

백주대낮에 공권력의 폭력과 차벽 앞에 무릎꿇은 민주주의가...
정말 누구의 기도도 듣지 못하는 슬픈 시절이네요.

무해한모리군 2015-11-20 09:08   좋아요 0 | URL
글샘님 안녕하시지요? 솔직히 프랑스에도 서울에도 필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정치력이지요. 진인사대천명이니까요.

순오기 2015-11-23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먹먹합니다~ 그 잔인한 세월을 견뎌낸 마무리가 이렇게 되어서는 절대 안되지요!!!

무해한모리군 2015-11-23 11:31   좋아요 0 | URL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이 많은지, 엄청난 말들이 쏟아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