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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8~9 이 글에 등장하는 청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듣는 그 이야기. 네가 원한 일이잖아. 네가 원해서 하는 일이기에 비록 배는 좀 고프더라도 당당해야 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럴수록 더 창의적이 되고 열정을 바쳐야 한다. 비록 지금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지시켜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일화를 예로 들면, 자신이 나태해지면 ‘병원의 응급실을 구경해서라도’ 자신을 자극해야 한다. 그것이 배부른 돼지이기를 거부하고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로 작정한 예술가들이 걸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고발한다. 배고픈 돼지이기를 거부한 소크라테스들이 맞닥뜨리니 현실이 ‘배고픈 돼지의 삶’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유토피아라고 아름답게 약속한 그 미학적인 세상은 배고픈 돼지들이 울부짖는 지옥이었다. 도토리가 아니라 고기반찬을 달라고 노래했던 달빛 요정처럼, 악덕 기업주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진보 정당과 시민 단체의 현실처럼, 밤새 야근을 하고 코피를 쏟더라도 탓해야 하는 것은 노동 구조가 아니라 약해 빠진 자신의 ‘간’인 것처럼. (...) 배부른 돼지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배고프더라도 소크라테스로 살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착각했지만 현실은 그냥 배고픈 돼지였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교훈을 얻는다.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노동 구조이다.
83 “이거 실화예요. 회사 분위기 안 좋고, 펀딩 안 되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가방 하나 맨 애가 문을 열더니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영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더라고요. 근데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일에 감동받지 않아요. 그 애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심경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내가 돈도 못 받고......;’ 였죠. 영화판에 애들은 자꾸 들어와요. 정작 끝까지 가는 사람은 잘 없는데, 계속 유입이 돼요.”
101 회사는 팀장급 이상이 아니면 자기 회사의 인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만 자기네 사람으로 봅니다. 그 밑으로는 그냥 단순이력으로 생각하죠. 결국 팀장들하고만 대화하고, 그들에게 아랫사람 관리를 시키고, 그 밑으로는 마음에 안 들면 갈아 버립니다. (...)
120 다른 영역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지만, 소위 보수적인 조직들이 나름 ‘규모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어서 내부적으로는 ‘진보 단체’들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148 수렵이나 채집을 하며 살던 시기에는, 인간이 초과 작업을 해서 식량을 쌓아 두어 봤자 쓸 곳이 없었기 때문에(시간이 지나면 그냥 썩을 것이다) 무리하게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천성에는 없는 ‘근면함’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이야말로 ‘열정 노동’이 작동하는 완벽한 방식 아니겠는가?
207 저 멀리 이국땅의 시위에 민감하게 반응한 일은 특이한 사건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한국 학생들과는 달리 사회의식이 투철하다’고 말했다. 어느 매체가 이런 시선을 갖고 한국의 대학생에게 시위에 대해 질문하자 그 학생은 이렇게 답변했다. “나도 학자금 대출이 없었다면 시위할 수 있었다.”
212~213 김대중 정부 때 구속된 김영삼 정부도 많았고, 노무현 정부 때 자살한 노동자 역시 그 이전보다 많았다. 이른바 민주 정부 10년에 대한 평가 논쟁에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부분도 바로 노동 분야이다.
222 노동 계급의 약화와 자영업자의 범람은 서로가 서로를 원인으로 지지하면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실천적, 역동적으로 구성해 나가고 있다. (...) 박노자가 지적한 자영업자의 높은 비율 외에도, 부동산 투기가 자산 축적의 중요한 방식이었던 현실, 교육 투자를 통한 학벌 계급의 취득이 자녀를 ‘인간답게’ 부양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던 현실은 우리의 보수성을 유물론의 차원에서 구성해 온 것이 아닌가?
227 자동차 부품 업체인 발레오는 모국인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자체 윤리 강령에 따라 노동조합과 대화를 하지만 한국에서는 퀵 서비스로 해고 통보를 하고 이에 대해 노동자들이 반발하면 일방적으로 공장을 청산한다. 발레오 한국 노동자들이 프랑스 노동조합과 좌파들의 협력 속에 유럽까지 가서 원정 투쟁을 벌였지만 1년이 넘도록 회사 경영진들은 그들과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해외 기업이 국내 시장에 진출하면 새로운 표준이 생기고 개혁에 도움이 될 거라는 논리는 한미 FTA를 추진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력과 그 측근 그룹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비스나 상품의 품질 수준에서라면 모를까, 그러한 경쟁이 기업의 정치적 성격을 반전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