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와이다 준이치 사진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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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해 말하는 것의 어려움

 

아인슈타인의 관한 책들은 ... 그는 물론 천재입니다만, 그의 어디가 어떻게 뛰어났는지에 전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그의 연구 성과인 상대성이론이나 양자론을 한마디로 간결하게 가르쳐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은데요, 그거 참 곤란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듣는 사람이 물리학이나 수학에 대해 어느 정도 기초 지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전해야 할 내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최첨단 이론은 예비 지식을 갖추지 않은 상대에게 한마디로 전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과학에 관련된 책들도 어느 정도 수준의 독자를 대상으로 할 것인지 먼저 설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는 그런 면이 있습니다. 최첨단 일보직전까지는 모두 이해하고 있어서 최신의 연구 성과만을 전하면 되는 사람인지, 아니면 초보의 초보에 대한 해설부터 시작해서 최신 연구 성과의 엑기스만을 전달하면 되는 사람인지.... 대단히 폭넓은 선택지가 있고, 그래서 어느 길을 선택했는가에 따라 이야기의 수준도, 또 분량도 모두 달라지는 것. 그렇기 때문에 과학 분야의 책을 읽을 때는 그 저자가 어떤 수준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인지 재빨리 판단하고, 자신이 그 수준의 독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나서 읽지 않으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을 읽게 되기 일쑤입니다. 수준이 너무 안 맞는 책을 읽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설명 수준이 적절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이 판단은 단지 과학만이 아니라 다른 영역의 책을 읽을 때에도 늘 중요합니다.

의사소통에 있어서도 우선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서로 가늠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화제라도 그 화제에 대해 약간의 대화를 통해서 상대의 이해 수준을 판단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입니다. 공학적인 세계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온갖 시스템들을 서로 연결시킬 때 먼저 규격을 맞추고 시작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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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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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36~37/39~40,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오직 독서만이 살아 나갈 길이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 데다 중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悌)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 학문이 이미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지면 특별히 순서에 따른 독서의 단계를 강구하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나는 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서 있는지라 마음 붙여 살아갈 것이라고는 글과 붓이 있을 뿐이다. 문득 한 구절이나 한 편 정도 마음에 드는 것을 만났을 때 다만 혼자서 읊조리거나 감상하다가 이윽고 생각하길 이 세상에서는 오직 너희들에게나 보여 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너희들 생각은 독서에서 이미 연()나라나 월()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나가서 문제를 쓸데없는 물건 보듯 하는구나. 쏜살같은 세월에 몇 년이 지나면 나이 들어 신체가 장대해지고 수염도 텁수룩해질 텐데 갑자기 얼굴을 대면하다 해도 밉상스러워지기만 하지 아버지의 책을 읽으려고나 하겠느냐. 내가 보기에는 천하에 불효자였던 조()나라의 조괄(趙括)은 아버지의 글을 잘 읽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진 아들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너희들이 참으로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내 저서는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눈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것이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이 내 목숨을 살려 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독서의 중요성을 알고, 독서에 힘쓰기를 바람.

폐족의 처지에서 자식들에게 살아 나갈 방도를 가르치기 위해 씀.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를 당해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편지글

* 1, 2문단은 2007 개정 천재교육 독서와 문법36p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59~60,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줘라

 

너희들은 편지에서 항상 버릇처럼 말하기를 일가친척 중에 긍휼히 여겨 돌보아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개탄하더구나. 더러는 험난한 물길 같다느니, 꼬불꼬불 길고 긴 험악한 길을 살아간다느니 한탄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미워하는 말투니 큰 병통이다. 전에 내가 벼슬을 지낼 때에는 조그마한 근심이나 질병의 고통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돌봐 주게 마련이어서 날마다 어떠시냐며 안부를 전해 오고, 안아서 부지해 주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여 주고 양식까지 대 주는 사람도 있어서 너희들이 이런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은혜를 베풀어 줄 사람이나 바라면서 가난하고 천한 사람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의 도움이나 받으면서 살라는 법은 애초부터 없었다. 더구나 우리 일가친척은 서울과 시골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은정(恩情)을 입을 수도 없었다. 지금 와서 공박하지 않는 것만도 두터운 은혜일 텐데 어떻게 돌봐 주고 도와주는 일까지 바라겠느냐? 오늘날 이처럼 집안이 패잔(敗殘)하기는 했지만 다른 일가들에 비하면 오히려 부자라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우리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줄 힘이 없을 뿐이다. 남을 돌볼 여력이 없으나 그렇게 극심하게 가난하지도 않으니, 바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처지라는 뜻 아니겠느냐? <중략> 마음속으로 남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생각을 버린다면 저절로 마음이 평안하고 기분이 화평스러워져 하늘을 원망한다거나 사람을 원망하는 그런 병통은 사라질 것이다.

여러 날 밥을 끓이지 못하는 집이 있을 텐데 너희는 쌀되라도 퍼다가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눈이 쌓여 추위에 쓰러져 있는 집에는 장작개비라도 나눠 주어 따뜻하게 해 주고, 병들어 약을 먹어야 할 사람들에게 한 푼이라도 쪼개서 약을 지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노인이 있는 집에는 때때로 찾아가 무릎 꿇고 모시어 따뜻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공경해야 하고, 근심 걱정에 싸여 있는 집에 가서는 얼굴빛을 달리하고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 고통을 나누고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해야 할 것인데, 잘들 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이런 몇 가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집에서 너희들이 위급할 때 깜짝 놀라 허겁지겁 쫓아올 것이며, 너희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달려올 바라겠느냐? 남이 어려울 때 자기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서 남이 먼저 은혜를 베풀어 주기만 바라는 것은 너희들이 지닌 그 나쁜 근성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로는 평상시 일이 없을 때라도 항상 공손하고 화목하며 삼가고 자기 마음을 다하여, 다른 일가들의 환심을 얻는 일에 힘쓰되 마음속에 보답받을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해라.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 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어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전번에 이리저리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 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 번이라도 입 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 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 버리고 말 것이다.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남의 도움을 바라지 말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라.

남의 도움을 바라는 두 아들을 훈계하고 오히려 남을 도와주라는 가르침을 주기 위해 씀.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지에서 일가친척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한탄하는 아들들의 편지를 받음.

편지글

* 2009 개정_중등 비상() 1단원 창작의 기쁨 선택 학습으로 수록된 제재입니다.

* 맥락 분석의 내용은 올백 교재를 보고 작성하였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117~118,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창비

 

우리는 폐족이니 더욱 노력하라

 

너희들의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인다. 둘째의 글씨체가 조금 좋아졌고 문리도 향상되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는 덕인지 아니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덕인지 모르겠구나. 부디 자포자기하지 말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 부지런히 책을 읽는 데 힘쓰거라. 그리고 초서나 저서(著書)하는 일도 혹시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해라. 폐족이 되어 글도 못 하고 예절도 갖추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보통 집안 사람들보다 백배 열심히 노력해야만 겨우 사람 축에 낄 수 있지 않겠느냐? 내 귀양살이 고생이 몹시 크긴 하다만 너희들이 독서에 정진하고 몸가짐을 올바르게 하고 있다는 소식만 들리면 근심이 없겠다. 큰애가 4월 열흘께 말을 사서 타고 꼭 온다 하였는데, 벌써 이별할 괴로움이 앞서는구나(18022월 초이레지은이).

 

독서의 참뜻

 

종 석()이가 2월 초이렛날 되돌아갔으니 헤아려 보건대 오늘쯤에나 집에서 편지를 받아 보겠구나. 이달을 맞아 더욱 마음의 갈피를 못 잡겠구나. 내가 너희들의 의중을 짐작건대 공부를 그만두려는 것 같은데 정말로 무식한 백성이나 천한 사람이 되려느냐? 청족으로 있을 때는 비록 글을 잘하지 못해도 혼인도 할 수 있고 군역(軍役)도 면할 수 있지만, 폐족으로서 글까지 못 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글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배우지 않고 예절을 모른다면 새나 짐승과 하등 다를 바 있겠느냐? 폐족 가운데서 왕왕 기재(奇才)가 많은데 이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고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거에 응할 수 없게 됐다고 해서 스스로 꺾이지 말고 경전 읽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 글 읽는 사람의 종자까지 따라서 끊기게 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지난해 10월 초하룻날 입은 옷을 아직까지 그대로 입고 있어 몹시 군적스럽구나(1802217지은이).

 

독자

주제

목적

두 아들

폐족의 처지라도 공부의 뜻을 꺾지 말고 학문에 정진해라.

폐족이 되어 글공부를 포기하려는 자식을 타이르고 가르쳐 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함.

매체

필자의 입장

글의 유형

 

유배를 당해 자식과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자식들이 글공부를 포기하고자 하는 의중을 읽음.

편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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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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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석판화 작업

 

 인쇄소에 들렀다가 우체부를 만난 참에 자네 편지를 건네받았네. 자네의 제안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 조만간 그 문제에 대해 서로 의논해 보도록 하세.
 요즘 네 번째 석판화를 작업중이네. 자네가 아직 보지 못한 작품 석 점을 이 편지와 동봉하겠네. 그 가운데 둘, 곧 「삽질하는 사람」과 「카페의 술꾼」은 데생 작업을 하는 편이 더 나을 성싶기도 하네. 석판화 작업을 하려고 거기 필요한 잉크를 썼는데, 종이 위에 인쇄를 잘못 하는 바람에 데생이 생명력을 잃어버렸네. 어쨌든 돌 위에 직접 작업하는 기존 방식과 종위 위에 데생을 옮기는 새 방식을 접목하려고 나름대로 시도 중이네.
 자네 「원 아웃Worn out」 데생 시리즈 기억하나? 최근에 서로 다른 두 모델을 대상으로 세 차례나 그것을 다시 작업했네. 하지만 아직 더 작업해야 할 것 같네.
 내 다섯 번째 석판화 작업의 모델을 발견했네. 늙은 노동자인데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손에 머리를 푹 박은 채 생각에 잠긴 모습이라네.
 내가 왜 석판화 작업에 관한 모든 것을 미주알고주알 자네에게 이야기하는지 아나? 거기에 큰 희망을 품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이네. 마찬가지로 그 작업을 서두르는 이유는 그것이 내게는 특별한 중요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만약 좋은 돌 몇 개를 손에 넣어 작업하게 된다면―그 중 한두 개의 작업은 실패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심지어 영국에까지 작품을 보내볼 생각이네. 말장난이나 하면서 무위도식하기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석판화 교정판을 보내는 편이 기회를 얻을 확률 면에서도 분명 더 이로울 걸세. 데생을 보내는 일은 아무래도 좀 꺼림칙하지. 분실될 수도 있으니까. 새 기법은 돌을 보내지 않고도 꽤 멀리 있는 석판화 인쇄소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네. 그날로 새로운 종류의 잉크와 분필을 구했네.
 지금 내 주소는 센트베그 136번지일세. 동봉하는 석판화 교정판에 대한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네. 고칠 여지가 있다면 미흡한 점들은 기꺼이 고치겠네. 하여간 새로운 「원 아웃」 시리즈가 자네 마음에 들리라 믿네. 내일 당장 돌 위에 작업을 시작하고 싶군.
 편지지가 다 채워진 것 같군. 시종 내 작업 이야기만 늘어놓은 꼴이 됐지만 자네 건강이 이만저만 염려스러운 게 아니네. 몸이 썩 안 좋다고 했잖은가. 올여름 나도 독감에 걸려 고열에 시달렸지. 자네는 그러지 않았음 좋겠군. 어쨌든 하루 빨리 낫기를 진심으로 기원함세. 악수를 청하며.

  날짜 미상


수상 소식

 

런던에서 은메달을 수상했다니 진심으로 축하하네. 자네에게 상을 안긴 유화 「실 잣는 여인」에 대해 최근까지 되풀이했던 내 말에 스스로 흐뭇해지는군. “「실 잣는 여인」의 색 배합은 내가 본 자네의 모든 작품 가운데 가장 안정되고 훌륭하다”고 내가 말하지 않던가.
 어두운 계열의 색깔로 작품을 시작해 최대한 그 상태를 유지하는 기법은 독창적이네. 「실 잣는 여인」을 작업할 때 자네가 쓴 기법이지. 지난 금요일에 내가 또 한 번 말했지. “이 작품은 놀라운 미덕을 가지고 있다”고.
 자네의 방문은 내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네. 이곳에 오면 올수록 자네는 자연에 더 많은 호감을 갖게 될 걸세.
 자네가 떠난 뒤 「물레방아」를 작업했네. 기억할지 모르겠네만, 역 근처 작은 카페에서 자네에게 조언을 부탁한 바로 그 주제일세.
 모델이 된 물레방아는 우리가 함께 보러 갔던 두 개의 다른 물레방아와 거의 비슷하다네. 다른 점이라면 빨간 지붕 두 개를 인데다 포플러나무에 둘러싸여 있다는 정도랄까. 가을엔 더 멋있을 걸세.
 동생 테오가 성신강림 대축일에 이곳에 올 걸세. 잠시 파리를 벗어나볼 요량으로 축제 기간에만 머무를 예정이라더군. 자네의 수상 소식을 들으면 그도 무척 기뻐할 걸세.
 안녕히. 곧 장문의 편지를 보내겠네. 신의를 다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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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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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숙한 곳에 있던 것들은 꺼내본다. 내가 썼던 것인데도 낯설고 간지럽다 싶기는 한데, 그 당시의 내 말투와 내 생각이니까 참아줘야지 뭐....

 

영원한 이방인   2004. 9. 20.       19 : 20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 많이 했다. 외국에 나가서 살면 좋겠다고. 그런데 나는 최근 두 가지 일을 계기로, 그 막연한 생각에 작은 마침표 하나를 찍었다. 하나는 이 책 때문이고, 하나는 친구의 경우 때문이다. 먼저, 친구 이야기를 하자면, 그 아이는 6년 전에 가족 모두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그 친구는 현재 한국을 무척 그리워하고,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는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여건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렇듯 실현 안 될 가망성이 99%에 가깝다.) 이민 가서 처음에는 한국에서 하던 공부를 살려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직종의 일(베이비시터, 썸머스쿨 한국어 교사 등)을 거쳤고, 현재 네일 아트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뉴욕에 사는 한국인 여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아무리 고국에서 수련한 학문의 정도가 깊고 얕고 간에,) 네일 아트 일을 한다는 게 친구의 말이다.(그리 고되지 않으면서도 적지 않은 수입을 가져다 준다고.) 그 아이가 전하는 뉴욕 생활은 한국의 케이블 채널 속 섹스 앤 시티에서 보는 네 여성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곳은 소수 이민족끼리의 갈등도 많고, 주류 백인들의 소수 민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뿐만 아니라 보이는 차별도 심하다고. 특히 9.11 이후에. 게다가 문제는 언어이다. 성인이 다 되어 영어를 완전 마스터하는 것은 어려운 일. 이민자로서 주류에서 자신의 자장을 넓히며, 살기 위해서 한 살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야 하고, 이 책 속의 헨리 박이 그런 것처럼, 한국적인 일체의 것을 자신에게 체화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친구는 말한다.

하지만, 한 살 때부터 그 곳에서 철저히 미국 사람으로 산다고 해서 그가 주류 미국 시민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헨리의 어린아들 밋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주류에 끼지 못하는 이민자들이 국외자로서 갖게 되는 관찰 능력이 있다. 그 관찰 능력이 거대하게 민감해진(그러니까...이렇게 소설의 주인공이자 나래이션으로 설정될 수 있었겠지...) 이민 1.5세대 헨리 박이 주인공이다. 그와 백인 아내 릴리아 사이에서의 아들 밋에 대해 그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엄마를 닮아 흰 피부에 가까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 나는 우리 아들이 고국의 언어를 결코 배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생각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그 애가 자신의 세계에 대하여 하나의 감각만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내 희망이기도 했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러다가 아이가 일곱 살때 백인 아이들과 놀다가 사고로 죽게 된다. 유색 인종에 대한 어릴 적부터의 고질적인 놀림과 치열한 기득권 싸움의 단면을 헨리 아들의 사고가 보여 준다.


그러면서 헨리 박은 생각한다.

“백인처럼 생활을 하면서 백인이 될 수 없는 나는 누구인가.”


헨리 박에게 정체성의 의문이 시작된 것은 그때부터이다.   


이 소설에서 뉴욕에 사는 소수민족 집단인 한인들의 독특한 삶, 즉 비시민권자들의 삶을 희석시키는 것은 아내 릴리아가 맡기도 한다. 그녀의 직업은 이민자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교사이다. 그녀는 언어(영어)를 웃음거리로 삼는 창백한 백인 여자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한다.

 

이 책은 작게는 한국인으로 건너간 미국 이민자의 정체성 찾기를 실감나게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소설이며, 넓게는 이 나라 안에서 살건 밖에서 살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건 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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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7-10-12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가능하면 제가 힘을 행사하기 쉬운 곳에서 살고 싶기 때문에 이민은 어렵겠다고 생각했었어요

글구 책..., 영어나 다른 언어로 수준있는? 어휘를 읽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들까 싶어서 ㅎㅎ

icaru 2017-10-12 22:39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마녀고양이님!!! 느무느무 반가워욤!!!!
저 또한 정이 고픈 사람이라선지 이땅이 살기에는 제일인 듯해요! 교민사회는 더 좁을거라 ...
글구 책... ㅎㅎㅎ 그러게요~ 한국에서 들 해외배송 받아야 하려나 싶고!! ㅎㅎㅎㅎ
 
작가의 책 - 작가 55인의 은밀한 독서 편력
패멀라 폴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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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책이 다 있담, 이제야 만나게 되다니~

읽고 있는 중이라서 꼼꼼한 리뷰는 못 쓸 것이다. (뭐 언제는 완독한 책의 리뷰를 꼼꼼하게 썼다고)

하필 이렇게 바쁜 시국에 내 눈에 들어 오다니 ( 눈앞에 산적한 탑처럼 쌓인 그것을 피해 도피처를 찾아 눈을 휘번덕거린게지), 하기는 비슷한 류의 책을 많이 갖고 있어서,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의 집, 작가의 방과 같은 류-  봤어도 눈에 안 들어왔을 수도 있다. 저기서 나온 작가가 여기서 나올 것이고, 아마도 인터뷰이의 질문 의도 방식에 따라 답변이 달랐을수야 있겠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을테니까.... 하고 보니, 옮긴이가 정혜윤이다. (아아아.... 그래서 내가 곁눈으로 책 표지를 보고 흘렸나보다. 전에....)  정혜윤 작가?피디? 아..님.. 에 대해서는 다소 복잡한 10년에 침대와 책 이런 책을 정말 좋아했던 내가 맞나... ) 이 작가는 그 피디님이 아니었다. 다른 정혜윤 번역자 님.

 

그런데 이 책은 작가들 본인의 독서 습관과 성향을 묻는 것이니까, 완전히 다르다거나 에두르지 않고, 독서라는 장르로 더 세부적으로 들어간 주제라고 봐도 되겠다. 게다가 선정한 작가들도 이언 메큐언 같은 대작가 두엇만 중복되고, 나머지 인물들은 대다수가 모르겠거나 다른 분 서재에서 이름만 걸출하게 들어봤거나 한 사람들이다. 특히 안나와디의 아이들을 썼다는 캐서린 부나  빵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는 고요한 삶을 쓴 애너 퀸들런, 저주받은 사람들을 썼다는 조이스 캐럴 오츠 등은 인터뷰 내용만 보고 반해 버렸다. 세상엔 여성 위인이 적다지만 작가군에서는 꽤 되는 듯도 하다. 황금방울새를 썼다는 도나 타트 라는 작가도 좀 달라 보인다. 피하는 이야기 종류는요? 라는 질문에 저는 이 시대의 미국에 관한 리얼리즘 소설에는 관심이 없어요. 결혼, 자녀 양육, 도시 근교에 사는 이야기, 이혼, 뭐 그런 것들 말이지요. 왓.우.

도로시 파커의 작품을 읽으며 눈물날 정도로 웃었다는 작가도 있는데, 당최 검색이 안 된다. 도시 파커라는 작가는...( 내가 몰랐던 그러나 읽고 싶은 작가와 책의 목록이 엄청 불어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음)

 

 알랭 보통이 어릴 적에 독서보다는 레고를 취미로 갖는 비문학적인 소년이었다는 데에 실낱같은 희망을 느끼는 나라는 사람은 뭔가! ( 책과 안 친한 우리 둘째 아직은 안심을 해도 되는 건가요?)

목차를 보니, 재미 작가도 있다. 영원한 이방인의 그 이창래다. 우아! (뿌리는 토착 환경에서 내리지 않았기에, 그를 한국인이라 볼 수야 없겟지만ㅠ)

 

작가들에게 나가는 질문은 80프로가 고정 질문이고, 작가군(역사 계열이냐, 추리 계열이거나 과학 에세이를 쓰는 (동물학자) 부류냐,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 특수하냐) 에 따라 특별한 질문이 나간다. 고정 질문 중에 우문 같았던 질문 " 웃게 하는 책이 더 좋으세요, 울게 하는 책이 더 좋으세요? 교훈적인 책과 낯선 곳으로 데려가주는 책 가운데 어느 쪽을 더 좋아하시나요?  " 대부분의 작가가 현답을 하는데, 그 대답을 듣고 보니, 그 질문이 우문(웃음과 눈물과 감동과 교훈은 대개 좋은 책 한 권에 다 들어 있으므로)만 은 아니었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또한 실망스럽거나, 과대평가되었거나, 신통치 않은, 좋아해야 마땅하지만 당신에게는 그렇지 안았던 책이 있냐는 물음에 열이면 둘 정도의 작가만 이 질문에 대답하고, 대부분 요리조리 취권을 부리듯 작가는 언급하지 않고 질문의 핵심에는 충실하게 답변하는 묘술을 발휘해 피해감. 그러나 대답했던 이들 중에 한낮의 우울을 쓴 앤드류 솔로몬이 있었는데 올리버 색스 (다행인지, 뭔지 그이는 2년전 고인이 되었네)를 이야기했다. 그가 아주 유려하게 글을 쓰지만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살짝 무대 감독 같은 허세가 있다는 것이다. "이봐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잠시 멈추고 이것 좀 보라고요!" 하는 논조가 깔려 있다고 한다. 그런 관음증적인 정서없이도 의료 행위의 엄격함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아 그럴 것도 같지만, 그런 지점들 때문에 뭇독자들은 올리버색스를 읽는지도. 무엇보다 두 작가 모두 커밍아웃을 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공통점 아닌 공통점.  

 

또하나 발견한 작가들의 공통점 '종이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전자책도 보편적으로 많이 본다는 사실. 이게 나는 왜 놀라울까?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앤 라모트(작동 설명서, 글쓰기 수업 등 국내 번역 안 된 책이 대다수인 듯) : 오후에는 가능한 한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며 보내는 걸 좋아합니다. 현실이 그 추한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는 말이지요. 낮 시간에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책을 읽는데, 이때는 주로 논픽션이나 <뉴요커>를 읽어요. 그리고 열한시까지는 잠자리에 들어서 한 시간가량 책을 읽다가 자는데, 그때는 주로 소설을 읽지요. ...한 번에 여러 종류의 글을 읽는 건 말하자면 즐거운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과 같아요.

 

 

 

지금까지 독자에게 받은 편지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다면요? 어떤 이유로 그 편지가 특별한가요?

한 이탈리아 독자가 자기가 아내를 만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어요. 아내가 버스에서 제 책 중 하나를 읽고 있었는데, 자신이 이제 막 다 읽은 책이더랍니다.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서로 만나기 시작했죠. 지금은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셋이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존재가 그들 부모의 책에 대한 사랑 덕분이었을지 궁금해지더군요. 3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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