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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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289-300쪽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까지는 그 생각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그게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며 조만간 차분히 앉아 책 쓰는 일을 해야 하리란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외로운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이야기를 지어내고 상상 속의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습관을 갖게 됐는데, 애초부터 나의 문학적 야심은 고립됐고 과소평가됐다는 느낌이 뒤섞여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을 통틀어 써낸 심각한 글은 대여섯 페이지밖에 되지 않았다. ...학교 잡지들은 더없이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었고, 지금으로 치면 제일 싸구려 저널리즘에 들일 수고보다 훨씬 공을 덜 들이고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과 더불어, 나는 5년 남짓 동안 꽤 말하나면 내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일기 비슷한 것을 계속해서 꾸며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어린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공통된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 나는 나 자신을 이를테면 로빈 후드라 상상하곤 했고, 짜릿한 모험을 하는 영웅으로 그려보곤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는 어느새 조잡한 자아도취적 분위기를 벗어나더니 갈수록 내가 겪은 일이나 본 것에 대한 단순한 묘사가 되어갔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물론 그는 마땅히 자신의 기질을 다스려야 하고, 미성숙한 단계에 고착되거나 비뚤어진 심기에 매몰되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받은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린다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 자체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나는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글을 쓰는 동기는 크게 네 가지라고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작가들마다 다 다른 정도로 존재하며 한 작의 경우에도 시기별로나 시대 분위기별로나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 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을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건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대 최상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성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뿐이다. 그런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를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소중하여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인 동기가 상당히 야한 작가들도 많긴 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 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 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떠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하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여기서 말하는 천성이란 막 어른이 되었을 때의 성격이라고 하자.)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다. 평화로운 시대 같았으면 나는 화려하거나 묘사에 치중하는 책을 썼을지 모르며, 내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서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일종의 팜플렛 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나는 안 맞는 직업을 택하여 5년을 지냈고 그뒤로 빈곤과 좌절을 겪었다. 그로 인해 타고난 나의 권위에 대한 반감이 커져갔고 처음으로 노동 계급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만으로는 정확한 정치적 지향을 갖기에는 부족했다. 그러다 히들러가 등장하고 스페인내전이 발발하는 등등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나는 앉아서 책을 쓸 때 스스로에게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쓰는 건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이나 주목을 끌어내고 싶은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나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남들이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학적인 경험과 무관한 글쓰기라면, 책을 쓰는 작업도 잡지에 긴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동물농장>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었다. 나는 7년 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만간 또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 그것은 실패작이 될 게 뻔하고 사실 모든 책은 실패작이다. 단, 나는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쓰고 싶어 한지 꽤 분명히 알고 있다.  (...)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마구 울어대는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동기들 중에 어떤 게 가장 강한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게 가장 따를 만한 것인지는 안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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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8-02-02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핸드폰에 연결해 블루투스 키보드로 타이핑했더니,,, 오타가 ㅎㅎ 아이같이 귀여운 오타가 난 ‘것이어따 ㅎ ‘

반딧불,, 2018-02-04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이젠 타이핑에도 오타가 일상화가 되고 있습니다ㅠㅠ
블루투스키보드 늘 사고 싶다 노래를 부르다가 잊어버리는 품목인데 이번달엔 저한테 선물해야겠네요. 건강하시죠?

icaru 2018-02-04 19:31   좋아요 0 | URL
ㅋㅋ 처음 올렸을 적에 오타가 절반쯤이어서 ㅎㅎ;; 저는 이 블루투스 키보드(뉴플러스 라는 브랜드의..) 정말 사랑합니당 ㅎㅎㅎ
반딧불 님도 건강하시죠? 가끔 님 생각이 날 때가 있네요 ㅎㅎㅎ;;; 이상은의 노래 중에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그 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었던 거 같아요~ 님이나 다른 분들과 즐겁게 교류하고 수다를 나누던 ㅎㅎ;;; 가끔 그립고 호명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죠 ㅎ
 
신경 끄기의 기술 -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
마크 맨슨 지음, 한재호 옮김 / 갤리온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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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끄기의 기술, 이 책을 11월 쯤에 샀는데, 지금 보니까 사은품으로 이 책 디자인의 에코백을 준단다. 아... 이런 것 또한 바로 인생의 고통에 해당되는 항목이다. 그렇지만 바로, 멀쩡한 에코백- 하다못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어온 것까지 포함- 이 많다는 것으로 위안 삼으며, 에코백 수집가도 아니고 내가...

 

인생의 크고작은 고통을 어떻게 다루고 여겨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꽤나 도움을 받고 있다. 리뷰가 되었든 근황이 되었든, 알라딘 서재에 글을 쓰는 것은 사치다, 라고 생각되는 일상을 살고 있다. 사람마다 각자 어딘가에 글을 쓰는 컨셉,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되는 상황이 패턴처럼 존재할텐데 나의 경우에는 평온하고 평범한 그저그런 별일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뭘 좀 적어 볼까, 읽은 책의 밑줄긋기라도 옮겨 볼까' 하는 마음을 먹게 되는 스타일이다. 정말 나이가 들수록 내 한계(별볼일없는 부분)도 잘 알겠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출퇴근길에 척추골절병원에 들러서 좀 있다가 온다. 동생이 여행중에 달려드는 큰개를 피하려다가 높은 데서 떨어져서 일정 도중 입국하여 엠뷸런스로 후송되어 병원에 입원하였고, 막상 대하고 본 동생의 상황은 듣던 것 보다 더 기가 막혔다.  골절된 부분이 부어서 붓기가라앉은 8일째에 수술을 하게 된 게 어제일이다. 우리집 근처에 살고 있는 -마흔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나에겐 어린애 같이 느껴지는-- 동생이라 ... 내 아이에게 당한 일처럼, 내 일상과 내 마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요즘 신변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떤 것들은 신경을 끄고, 어떤 것들은 영 신경이 쓰여 괴롭고 하던 와중이었는데, 동생의 사고에서 나머지 나를 불행하게끔 여기게 했던 사안들이 시덥지않게 느껴졌다. 모든 일이 내가 바라는대로 되라는 법이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요즘처럼 모든 것이 바라는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사실을 소환하며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은 자기 계발 실용서이다. 이런 실용서들이 갖는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면 진정성 면에서 그렇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 정신 건강의 필수 요소인데, 이런 감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문제를 풀지 않고 영원히 남겨 놓는 것이고 말이다. 이 부정적인 감정을 사회적으로 요인되는 건전한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표출해야 함을 이끄는 몫을 해낸다.

또한 성공에 대한 것. 어떤사람이 자신보다 못하다고 여겨진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보다 배움의 고통을 덜 경험했기 때문이고, 정작 성공하는 데 필수적인 수천 시간의 단조로운 연습과 지루함은 드러나지 않기 일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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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13: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로 2018-01-18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 님 기다렸는데, 저에게 필요한 책을 들고 오셨군요,,,
어쨌거나, 뭣보다 동생분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icaru 2018-01-18 13:52   좋아요 1 | URL
쾌유 빌어주시공 감사해요! ;;; 이 책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네요~ 사실 책을 사고 나서 읽는데, 문체가 좀 그래서 (음 뭐랄까 직설적이고 ㅎㅎㅎ 도발적이랄까??) 치워뒀다가, 최근에야 다시 잡고, 빠져들고 있네요!! ㅎㅎㅎㅎ

hnine 2018-01-18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여행 좋아하는 동생분 말씀이시죠? 아이쿠 이런, 이를 어쩐데요... 부디 수술 후 회복 경과가 좋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대로, 책 읽고 알라딘에 들어와 리뷰 쓰고 하는 일들을 하며 지낼 수 있는 것 만해도 평온한 날을 보내고 있는 것임을 알겠어요.


icaru 2018-01-18 13:59   좋아요 0 | URL
네네, 그 아이 맞어염! ㅎㅎㅎ;; 세 달은 휴직계를 내지 싶어요! 요추 1,2번도 금이 갔고, 발목 수술을 해서 운전도 못하고...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 들어와서 리뷰나 근황을 적을 여유는 못 내지만, 책은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렇게 책을 읽거나 내가 생각하거나 느끼는 개념을 글도 풀어서 쓴 구절을 우연히라도 책 속에서 발견하는 날에는 작은 기쁨이랄까 하는 것들이 느껴지는데, 그 순간이 인생의 궁극적인 쾌락의 지점이라고 여겨지니까요... 다른 누구에게 일반화하여 적용할 것은 아니고, 제겐 그렇더라고요~

북극곰 2018-01-1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동생분 빨리 낫기를요. 저도 좀 여유가 있어야 뭐라고 남기게 되는 듯요. ^^ 책은 안 읽은 게 아닌데.. 막 이러면서.. ㅎㅎ 안 산 게 아니데, 이래야 하나. ㅎ

icaru 2018-01-19 09:22   좋아요 0 | URL
북극곰 님!! 감사합니다~ 한결 같이 기록을 남기시는 분들~ 존경합니돠!! ㅎㅎ
저도 안 읽은 것두 아니고 안 산 것도 아님서 ㅋㅋ

고양이라디오 2018-01-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은거 같아요ㅎ 동생분 빨리 쾌차하셨으면 좋겠네요ㅠ

icaru 2018-01-19 09:23   좋아요 0 | URL
네 저자가 실용서를 쓰기에 젊은 나이라 또 놀랐던 것 같아요. 하긴 실용서 쓸 수 있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공 ㅎ
 
죽음의 수용소에서 (보급판, 반양장) - 빅터 프랭클의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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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꽁깃꽁깃해 공들였던 작업 드디어 끝났다. 그것이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은 제출하고 25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꿈에서는 그 일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 일과 사람 두 마리 토끼가 있다면, 두 마리를 토끼를 잡았느냐 놓쳤느냐로 평가를 하곤 하던데, 잡고 놓치고를 떠나 이 토끼 잡기의 과정과 결과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따지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이라는 토끼에 관한 것은 꿈에서도 계속 되어 쉬고 있지만 쉬고 있지 않은 상태를 지속시키고 있고, 나머지 토끼 그러니까 함께 일을 하는 인간에 대한 것. 이번 일을 하면서 인간의 유형에 대해 그 본질에 대해 이나이가 먹도록 모르는 부분이 적잖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좀 충격적인 경험이기도 했다. 사람이라는 토끼를 놓쳤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좀 오만했던 게 어떤 유형의 사람이든 그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으면 (애정을 느끼기까지 그 사람과 함께 보낸 시간과 경험이 수반된 것이니까) 그 사람의 어떤 모습도 내가 감당할 수 있고, 심지어 도움마저 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 보통 오만한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니까, 놓친 것은 아닌데, 내가 등을 돌리고 싶은 거다. 이 일이 끝나면 상종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런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누그러진다. '시간'이란 참 배알도 없다. ㅎㅎ  

일이 끝나고 요즈음 찾아서 봤던 책들 가운데 몇 중에서도 좋았던 것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고 또 음 에니어그램의 지혜라는 두 책이었는데 이러한 저간의 사정 때문에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가다. 에니어그램은 세 가지 종류의 중심으로부터 시작한다. 본능 중심, 감정 중심, 사고 중심이다. 그리고 이 기초에서 9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8,9,1이 본능 중심, 2,3,4는 감정 중심, 5,6,7은 사고 중심이다. 각각 사용하는 에너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1~9번 유형의 성향 모두 다르다. 나는 본능과 감정 중심에 나의 본질이 있고, 그 친구는 사고 중심의 유형에 해당될 것 같지만, 알 수 없다. 좀더 극한 상황에 처해지면 아마 명확하게 그 유형이 보일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이 책이 좋았던 것은 사람은 어떤 극한의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고 덜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체험을 하였기 때문이다.



 

176쪽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229쪽

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샬롯 뷜러가 말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인간의 삶이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은 삶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며 공부하는 것뿐이다. "

물론 이런 전기적인 접근법에 생물학적인 접근법을 가미할 수도 있다. 

 

나는 인생의 4분의 1을 종합병원의 신경정신과에서 근무했으며 그 동안 자신의 곤경을 인간적인 성취로 바꾸어놓은 환자들의 능력을 보아왔다. 그런 사례에 덧붙여서 인간이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실제적인 증거도 있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의 연구원들은 "베트남 전의 전쟁 포로 중에 포로생활의 엄청난 스트레스-고문과 질병, 영양 실조, 독방감금 등-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언터처블 1%의 우정의 영화 음악인 Ludovico Einaudi의 음악만이 나를 살리던 100여일의 나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조각 글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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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8-01-0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간 고생하시고 어느 정도 결실도 보신듯하여 흐믓하네요. 많이 힘드셨던 것 같습니다. 특히 사람이 힘들 때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구요.

빅터 프랭클, 실존상담에 훅 빠졌던 기억이 나네요. 작은 것이라도 사소하더라도 싦의 의미를 스스로 찾는다면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icaru 2018-01-03 10:40   좋아요 0 | URL
앙~ 마녀고양이님!! ㅎㅎ;; 고생한 건 사실인데, 결실을 봤다고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지욤! 끝나서 흐뭇한 것이지 잘 끝내서 좋은게 아닌 듯 해요 제마음의 정체는 ㅋㅋ 정말 사람이 힘드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대요. 저 자신도 정상은 아닌게다 싶었고....

Volkswagen 2018-01-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자기전 이 책을 읽었습니다. 꿈 속에서 얼마나 고통스럽던지...ㅋㅋㅋㅋ
처음부분만 읽다 말았는데 다시 도전 해봐야겠어요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

icaru 2018-01-03 10:43   좋아요 0 | URL
ㅍㅎㅎㅎㅎ 뭔지 잘 알 것 같아요! 그리고 평온한 나날들을 보내면서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 절박함이나 극한의 상황 묘사들이 좀 부담스러워서 완독을 못 했을텐데... 저는 이상하게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도 좀 겹쳐서 읽히구 그렇대요~

icaru 2018-01-03 10:43   좋아요 0 | URL
아 참! ㅋㅋㅋㅋ 새해 복 많이 받으시궁, 계획하던 일 순조롭게 ~~~~ ㅎㅎ

북극곰 2018-01-1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참 나 허무해서. ㅋㅋ 그러니 감히, 등을 돌리세요. 마음에서. 라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ㅎ
 
가토 슈이치의 독서만능
가토 슈이치 지음, 이규원 옮김 / 사월의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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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밤부터 유쾌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책

한편 수많은 고뇌 끝에 다다르는 안심인명보다는 당장 오늘 저녁부터 유쾌해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비극을 읽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다. 비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참담한 처지에서 살아가므로 그런 주인공들에 비하면 자신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살고 있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주인공에 비하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것은 비극을 읽는 효능 중에 으뜸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본성은 위기에 처했을 때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기 위한 중요한 조건 가운데 하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는 것인데, 비극을 읽는 것은 그런 이해를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른 말로 하자면 특별한 위기의 순간에만 나타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 비극이다.

가령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인 영웅들은 신탁으로 운명이 정해진다. “너는 언젠가 네 아버지를 죽일 것이다.”라고 신이 말한다. 그 일이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른다. 아버지와 떨어져서 자라고 있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휘말린 싸움에서 사람을 죽인 영웅은 나중에 상대방이 아버지였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아 스스로 두 눈알을 뽑고 장님이 되어 방랑 여행에 나선다. 이런 터무니없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희귀한 상황으로 분명해지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죄에 대한 가책감, 돌이킬 수 없는 인생, 그 인생을 조종하는 인간의 초월한 힘이 아닐까? 우리의 죄는 부모 살해는 아닐 것이고, 우리의 인생을 조종하는 것은 고대 그리스인 받들던 신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가령 전쟁이나 중대한 사회 현상들은 사람들의 인생을 지배하는, 인간의 의지를 뛰어넘는 힘이다. 또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지 않을 수 없었던 죄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극단적 상황 속에서 분명해지는 인간의 조건은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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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0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내일이 지나면 새해예요.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즐거운 주말, 그리고 희망가득한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icaru 2018-01-02 16:50   좋아요 1 | URL
친절한 서니데이 님 덕에 버려둔 서재인데도 불빛과 온기가 여전히 있는 듯한 착각을 주네요~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고자 하는 일 순조롭게 이루시길 바랍니다! ㅎ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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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씁니다. (퇴계 이황이 기대승에게 먼저 쓴 편지)

병든 몸이라 문밖을 나가지 못하다가, 덕분에 어제는 마침내 뵙고 싶었던 바람을 이룰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요. 감사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아울러 깊어져, 비할 데가 없습니다. 내일 남쪽으로 가신다니 추위와 먼 길에 먼저 몸조심하십시오.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하여 학업을 추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줄이며 이황이 삼가 말씀 드렸습니다. 退

 

(기대승이 이황에게 보냄)

() 삼가 건강이 어떠신지 여쭙습니다. 그리운 마음 끝이 없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염려해주신 덕분에 근근히 지내고 있습니다.

병도 다 낫지 않았는데 몸을 돌보지 않고 면신례를 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치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만, 여러 사람의 핍박을 면할 수 없어서 무턱대고 나아가 일을 마쳤습니다. 이는 곧 저의 식견이 높지 않은 허물 때문이니 다시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그러나 또한 이런 사건에서 세상 살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있으면 사람들의 놀림과 배척을 면하지 못하고, 끝내 몸이 위태로워지거나 뜻을 억눌러야 하는 데에 이르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바라건대 선생님께서 제가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십시오.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했습니다. 이 말의 뜻이 어떻습니까? 제가 드린 말씀을 살펴서 비판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언을 구하는 부분

평생 우러르며 그리워했는데, 단지 두 번 뵙자마자 곧 서둘러 이별했습니다. 그리하여 제비와 기러기가 오가는 것처럼 되었으니 어찌합니까? 제가 근심하고 선생님을 깊이 그리워함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종이를 대하니 아득해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다시 올립니다.

8월 보름, 후학 대승이 머리를 숙입니다. 기운이 약해 간신히 썼습니다. 두렵고도 부끄럽습니다.

 

 

() 기정자 명언에게 답하는 글 (이황이 기대승에게)

이른 봄에 편지 한 통을 멀리 남쪽의 인편에 부친 다음 곧 동쪽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서울 소식도 자주 듣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호남은 천리 밖에 있으니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그사이 그대가 서울로 왔음을 물어 알고서 편지를 적어 나의 뜻을 전하려 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그대는 바야흐로 신임 관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릇 벼슬에 나아가고 들어가는 거취는 마땅히 스스로 결정해야지, 내가 남을 위해 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남이 나와 함께 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호강후(胡康候)의 견해는 뛰어나서 본받을 만합니다. 다만 평소에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 스스로의 결정이 혹시 시대의 도리에 어둡거나 또는 바람과 그리움이 앞서게 되어, 그 마땅함을 잃을 뿐이라는 점이 걱정입니다.

그대는 편지에서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이 말은 진실로 간절하고 지극한 말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제가 헤아려 보건대, 그대의 높은 학문은 크고 넓은 점에서는 볼 만한 것이 있으나 세밀하고 오묘한 정수를 꿰뚫지는 못했으며, 마음을 두고 행동을 다스림에 있어서 사방으로 터져 자유로운 면에서는 얻은 것이 많으나 오히려 몸과 마음을 거두어 들여 굳히는 공부는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말이나 글은 뛰어나지만 더러 들쭉날쭉 모순되는 병페를 면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위한 계획이 비록 보통 사람으로서는 미칠 바가 아니나 오히려 여기에 두었다 저기에 두었다 하고, 나아갔다 물러갔다 하는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니 큰 일을 맡아서 큰 이름을 걸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처신하자면 어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종이를 앞에 두니 마음에 불안해 글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춥고 얼음 어는 철입니다. 시대를 위해 자신을 소중히 하시기 바랍니다. 거듭 삼가 절하며 아룁니다.

기미 1024, 병자 황이 절합니다.

제 편지에 환란을 염려하는 말이 별 까닭도 없이 많은 듯하지만, 늙은이가 세상일을 겪은 날이 많기에 자연히 염려가 이에 미쳤으니, 괴이쩍게 여기지 말기를 바라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일은 평생 갖은 고생을 해가면서 공부해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것인데, 첫발을 내디디면서부터 헛된 명성이 먼저 세상에 퍼진다면,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늘 생기는 환란이니 매우 두려워할 만합니다.

오늘 편지에서는 이처럼 말할 수 있지만, 그대가 권력을 잡고 우뚝하게 드러난 날에는 벼슬도 없는 제가 이런 한가로운 말로 편지를 주고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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