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허슬 - Kung Fu Hus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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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어설픈 건달 싱은 구태여 '악당'이 되고자 한다. 이유는 '선'해서는 결코 세상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 누구라도 그의 이러한 가치관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처가 아닌 이상. 때문에 악인인 척 하는 싱은 사실 진정한 악인이라 할 수 없다. 그저 현대인을 대변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악당 '도끼파'의 일원이 되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부와 명예를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포부는 '돼지촌'이라는 빈민마을에서부터 막히기 시작한다. 별볼일 없어보였던 돼지촌에는 사실 숨은 고수들이 강호를 떠나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이다. 벌집을 들쑤신 꼴이 된 싱은 약삭빠르게 '도끼파'에 붙게 되고, 마침내 '돼지촌' 고수 대 '도끼파'의 전면전이 시작된다. '도끼파'는 '돼지촌'을 멸하기 위해 계속해서 킬러들을 보내고 건드려서는 안 되는 절대 악 '야수'까지 불러오게 된다. 이 과정에서 싱은 어린 시절, 자신이 구해주었던 벙어리 소녀와 재회를 하게 되고, 무공의 참 진리도 깨닫게 되어, 잠자고 있던 내공에 눈을 뜨게 되고, 여래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된다.

시각적 효과는 '소림축구'에서 몇 단계 업그래이드 되었다. '쿵푸'액션은 이제껏 보아왔던 '최고'의 경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롬비아'측의 막대한 제작비가 낳은 현란한 CG와 '원화평', '홍금보' 콤비의 무술 액션이 환상적 조화를 이루어내니 현존하는 '최고'의 '쿵푸액션'이 나올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눈과 귀의 즐거움은 충만했다. 생각보다 '액션'은 엄청 거대하고 오래도록 이어졌다. 대신 상대적으로 '코믹'이 조금 줄어든 것은 아쉬움이었다. 또한 주성치의 전작들에 비해 '주성치'의 분량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움이었다. '액션'이 '주성치'마저 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동안의 영화들이 주성치의 압도적인 원맨쇼였다면 이번에는 골고루 분배를 한 주성치의 전략이자 배려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필자가, 주성치의 매니아가, 주성치의 영화에서 바라는 모든 것이 '쿵푸허슬'에는 있었다. 3년간의 기다림을 충분히 만족시켜줄 희극버라이어티로 그는 팬들에 보답을 한 것이다. 확실히 그는 누가 뭐래도 이 시대 '최고'의 희극지왕이다. 이번 영화에서 필자가 정말 좋았던것은, 개인적으로, 벙어리 소녀와의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남는 로맨스였다. 특히 극 중반에 우연히 마주친 그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명.장.면.이.었.다. '구원자'소년이 '약탈자'건달이 되어 나타난 그 절묘한 상황에서의 물결치는 듯한 음악과 영상의 조화는 말못하는 벙어리 소녀의 애틋한 심정만큼이나 보는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적셨다. 주성치가 정말로 '감동'의 깊이를 조절을 할 줄 아는 명장의 반열에 들어섰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패러디 장면들도 영화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극 초반에 '소림축구'를 의식한 듯한 대사나, 김용의 소설 '신조협려'를 패러디한 설정들, 뮤지컬 고전 '탑햇'의 명장면을 연상시키는 극적인 재회장면. 그러나 무엇보다 압권은 '샤이닝'의 한 장면을 '공포'스럽게 패러디한 장면이 아닌가 싶다!(개인적으로 과연 주성치다운 허를 찌르는 발상이었다, 라고 생각한 장면. 주성치가 호러영화에도 관심을 가졌을 줄이야, 하는 감탄과 함께)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악인'이 어떻게 '선인'으로 거듭나느냐 하는 이야기다. 그것을 주성치는 '도끼'와 '막대사탕'으로 대치시켜 절절하게 '인생'이야기를 그려낸다. '소림축구'는 물론 '식신''파괴지왕''희극지왕'등에서 무수히 다루어졌던 힘없고 나약한 '서민'들의 애환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처절함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한 사랑이 이 영화속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도끼'를 주형하는 금속액처럼 뜨겁고 강렬하게, '막대사탕'을 만드는 설탕과 색소처럼 달콤하고 아름답게!

이런 영화라면 정말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세속의 '악'에 찌든 현대인 누구라도 '싱'처럼 아련히 간직하고 있을 어린 시절의 순수한 '선'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마법같이 자극하는 '라스트'의 특별한 여운은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삭막한 가슴'에 뿌려지는 '단비'같은 선물이었다. 

 

P.S. 단언컨대 이 작품은 주성치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대략 서유기 때부터, 주성치는 계속해서 전작을 뛰어넘거나 전작에 버금가는 걸작을 연이어 만들어왔다! 서유기, 007북경특급, 파괴지왕, 식신, 희극지왕, 소림축구, 쿵푸허슬...!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문제는... 과연 주성치가 쿵푸허슬을 능가하는 걸작을 또 만들어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3년에 한 편씩 영화를 만드는 주성치이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초조하다. 주성치도 점점 나이를 먹고있다. 부디 젊었을 때 더욱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어서 쿵푸허슬을 넘어서는 또다른 걸작을 계속 만들어주길 희망한다! 나는 희극지왕의 능력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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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 - Sh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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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찍는 카메라, 라는 익숙하지만 신선한 아이디어가 우선 영화 전체를 힘있게 이끌어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가 촘촘한 복선으로 꽉 짜여져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절대적으로 본받아야 할 부분이지요. 조금은 익숙한 설정이라고 할 지언정, 각본상에서 대충 '공포로 때우기'식의 전개가 나오면 영화는 아주 망쳐버리죠! 우리나라 공포영화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성공한 '공포영화'들의 '공포장면'을 차용해 오는 것 만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셔터가 좋았던 이유는 공포영화가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아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몇 몇 장면은 감독의 호러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진짜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그런 순간이 몇 번 있었지요) 적어도 감독은 관객이 어느 때에 지루해할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관객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감각적인 연출력을 보였고 '아주 걸작'이 아닌 이상 그정도면 관객은 대게 만족하는 편입니다. 복선은 치밀하게, 반전은 단 한번의 스트레이트로, 플롯은 복잡하지 않고 타이트하게, 공포는 화끈하게, 대략 이정도면 호러 매니아들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할 겁니다. 간단해보이지만 사실 이게 쉬운 게 아니죠! 복선은 산만하게, 반전은 시시한 잽으로, 플롯은 복잡하고 늘어지게, 공포는 짜증나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기 십상이죠!

특히 마지막 반전과(물론 예상 가능한 반전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앞뒤가 딱맞아 떨어지는 반전은 그 자체로 충분한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줌) 함께 이어지는 최후의 공포는 역시 이 작품이 꽤나 수작일 수 있는 이유를 보여주었습니다. 질질 짜면서 슬픈 호러, 감동 호러를 표방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각본상으로 안 되면 꼭 이런 식으로 한국인의 눈물 정서를 자극하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공포 같지 않은 공포, 요 몇년간 국내공포영화 속에서 질리도록 봐 왔죠...!

크게 기대하고 본다면 크게 만족할 만한 영화는 아닐 것입니다. 또한 개인적인 편차에 따라 시시하네, 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링, 주온, 디아이도 시시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주관적, 객관적인 평을 종합적으로 아우러 볼때 '셔터' 정도면 상당히 깔끔하게 잘 만들어진 공포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섬뜩했고, 으스스했고,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며, 무엇보다 귀신이 무서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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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2 - Kill Bill: Vol.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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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는 분명 90년대가 탄생시킨 최고의 감독이다.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은 천재 감독의 탄생을 알렸고 타란티노 이전 영화, 이후 영화라는 큰 획을 긋게 했다.(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이전은 고루함, 이후는 답습) 서부극, 홍콩 쿵푸영화,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무라이 영화, 오우삼의 느와르, 드 팔머의 스릴러등 다양한 문화적, 장르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만들어낸 타란티노는 기존의 장르 관습을 해체, 재구성 하면서 잔혹하고 감각적인 테크닉으로 포장하며 헤모글로빈을 분출케 했다.

그런 그가 <킬빌>이라는 신작을 내놓았을 때 필자는 타란티노로 하여금 두 가지 사실을 짐작하게 했다. 우선 그가 전작인 <재키 브라운>으로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었을 것이라는 것. 또 한 가지는 그렇기 때문에 <킬빌>을 만들어 보여 복수를 하고 싶었다는 것.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가 밝혔듯이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보다 재미 없는 영화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가장 만들고 싶어 했던 영화였다. <재키 브라운>은 <저수지의 개들><펄프픽션>이 보여준 시간의 재구성과 거미줄같은 캐릭터의 구성이 한층 치밀하고 복잡해진 영화였다. 전작들에서 보여진 현란한 잔혹 영상미가 줄어든 대신 서로 얽히고 설키는 뒷골목 인생들의 시니컬한 스토리가 꼼꼼하게 스케치된다. 타란티노의 많은 재능 중 필자가 가장 최고로 꼽고 싶은 것은 놀라운 입담이다. 그에 의해서 창조되는 무수한 캐릭터들은 그들이 내뱉는 불꽃튀는 대사들의 향연으로 생명력이 결정되어질 정도다.(헐리웃 내에서 그의 대사 처리 능력은 '특A급'으로 정평이 나있다. <크림슨타이드>의 경우 토니 스콧 감독이 완성된 각본을 일부러 타란티노에게 손보게금 했을 정도. 물론 그의 손을 거쳐 탄생한 <크림슨 타이드>는 보석같이 빛나는 대사들의 향연으로 품격이 올라갔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뒷골목 3류 인생들의 저급한 농담에서부터 시니컬한 비애까지 훤히 꿰차고 앉아 자유자재로 캐릭터를 뽑아낸다.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들은 스스로 살아숨쉬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갈 정도다. 그러한 살아 숨쉬는 캐릭터와 꽉찬 스토리의 힘은 <재키 브라운>에서 가장 미끈하게 뽑혀나왔던 게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가 가장 애착이 갈만한 작품이고 그래서 가장 타란티노 다운 작품인 것이다. 타란티노는 <재키 브라운>의 아쉬움을 6년 후 마침내 <킬빌>로 풀어낸 것이다. 정말로 그가 하고 싶어서 온 몸이 근질근질했던 이야기, <재키 브라운>으로 관객과의 소통에 실패한 그가 몸살 날만큼 보여 주고 싶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의 애너지를 <킬빌>로 분출시킨 것이다.

그는 <킬빌>에서 <재키 브라운>과의 차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바로 승부수가 되었다. 전작이 관객과의 소통에서 실패를 한 원인을 그는 재빠르게 캐취해낸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만의 전매특허 헤모글로빈의 시가 부족했던 탓이리라. 분명 <킬빌>은 <재키 브라운>과 일면 닮은 부분이 있다. 느와르에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그 여자 주인공이 거대한 세력에 휘둘리면서도 재치있고 당당하게 맞선다는 것.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느와르, 이것이야말로 타란티노가 오래도록 가슴 속에 품어왔던 이야기일런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완성된 <킬빌>을 두 조각으로 나눈다. 1부에서는 관객들이 자신에게서 그토록 목말라하던 헤모글로빈의 시를 현란한 테크닉으로 마음껏 분출시킨다. 피가 낭자하는 청엽옥의 결투씬, 오렌 이시이의 머리가 날아가는 충격영상으로 관객들의 얼을 빼놓은 후 그는 살며시 2부를 내보인다. 빌은 왜 그녀를 죽여야만 했는가, 그녀는 왜 빌을 죽여야만 하는가, 빌은 누구이고, 그녀는 누구인가? 퍼즐처럼 흩어져 있던 비밀의 조각들이 하나 둘씩 끼워지고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타! 란티노는 <킬빌 1>을 통해 관객들을 강렬하게 끌어당긴 후 비로소 <킬빌 2>를 통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를 완성시켜 나간다. 자극적인 영상미에 이끌려 흘려보낸 무수한 수수께끼들의 답은 오직 <킬빌 2>에 있는 것이고 관객들은 '상'권을 읽은 지금, 반드시 '하'권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 챕터를 확인하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

이러한 전략은 탁월했다. 타란티노는 다시한번 장르적 특성을 활용해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쥐고 흔든다. 전편에 암시되어졌던 브라이드의 살아있는 딸이 등장하고, 어째서 빌이 브라이드를 암살하려 했는지에 대한 배경이야기가 나오고, 브라이드가 페이 메이로부터 무술을 전수받는 과정이 나오고, 브라이드가 빌을 떠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빌과의 최후의 대결이 그려진다. 재미있는 것은 숨겨진 사연들에 대한 타란티노만의 놀라운 입담이다. 술집에서 해결사 노릇이나 하며 보스로부터 온갖 구박을 당하는 3류 건달로 전락한 버드의 사연이나, 한쪽 눈을 잃게 된 엘 드라이버의 사연, 브라이드가 조직을 떠나게 된 사연 등. 그들이 뿜어내는 대화의 힘은 전편의 청엽옥 결투씬 만큼이나 압권으로 와닿는다.(그만큼 살아있는 대사의 힘은 너무나 훌륭했다) 특히 빌의 사연이 절정을 이룬다. 잔인무도하고 얼음같이 차갑게만 비쳐졌던 전편의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애수짙은 빌의 모습은 가히 놀랍다. 브라이드의 결혼식장에 악기를 연주하며 나타난 빌, 자신을 찾아온 옛여인 앞에서 딸과 함께 노는 빌,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브라이드를 향해 모든 진심을 얘기하는 빌, 그러한 빌의 진면목들은 전편의 관객들을 정서적으로 공략한다. 이처럼 계산된 감독의 연출에 관객들은 보기좋게 빠져들며 빌과 브라이드 두 캐릭터 누구의 손도 들어줄 수 없게 되버린다. 결국 피할수 없는 최후의 대결은 운명처럼 다가오고 복수의 끝이 남긴 가슴저린 비애만이 관객들의 정서를 지배한다. 그리고 대서사시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강렬했던 두 권짜리 펄프 픽션은 막을 내린다.

우리가 <킬빌 2>에서 기대할 것은 청엽옥 결투나 오렌 이시이와의 진검승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1편을 한번더 보며 만족해야 할 것이다. 이 복수의 서사시는 vol 1과 vol 2 즉, 상, 하권으로 나누어진 하나의 이야기다. 총 10개의 챕터를 가진 한 편의 소설이다.(장르는 느와르 혹은 하드보일드쯤) 싸구려 소설 제목 같은 '피의 복수를 다짐한 여자'가 있고 그녀의 잔혹한 복수극이 있고 후반부로 갈수록 숨겨져 있던 비밀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무수히 읽어 보았음직한 이런 류의 소설들, 그 틀을 우리는 알고 있다. 타란티노 역시 알고 있고 그는 그러한 소설들을 헤밍웨이나 포크너보다 숭배시한다. 이점을 잊지 말자. 우리모두 헤밍웨이나 포크너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을 원했던 것이다. 그는 그 장르에 충실했다. 혀를 내두르는 잔혹함으로 책장에 몰입하도록 만들었고 유려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과시하며 다음 챕터가 끊임없이 궁금하도록 만들었다. 챕터가 거듭될수록 비밀은 밝혀지고 최후의 대결만이 남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을 그는 적재적소에 배치한 음악과 현란한 영! 상미 감각적인 테크닉으로 포장했다. 이제 <킬빌 2>에서 복수는 마침표를 찍었고 우리들은 vol 3이 나오기를 혹은 그의 신간이 출간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테다.

장르를 충실하게 활용하면서 그것에 변칙을 가하는 것, 그러면서 그것을 멋지게 포장하는 것, 이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공식을 타란티노만이 능숙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그의 펄프 픽션은 언제나 유쾌하고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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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3 - 레볼루션 - The Matrix Revolu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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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를 다시 쓰게 한 충격의 사건, <매트릭스>는 천문학적인 상업적 흥행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매트릭스 추종자'들을 만들어냈다. 워쇼스키 형제 감독은 1편의 거대한 성공으로 제작사로 부터 2편과 3편을 동시에 찍을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얻어낸다. 그리고 그들은 <매트릭스2 : 리로디드>를 거쳐 마침내 거대한 디지털 서사시의 종지부인 <매트릭스3 : 레볼루션>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매트릭스 추종자'들은 의문으로 가득했던 <매트릭스2 : 리로디드>의 속시원한 해답을 <매트릭스3 : 레볼루션>에서 찾고자 마지막 빨간 알약을 먹고 네오와 함께 매트릭스에 최후의 접속을 한다.

말그대로 <매트릭스> 1편의 기술적, 철학적, 작품적인 완성도는 속편에 대한 팬들의 기대치를 끝 간데 없이 높여 놓았고 그로 인해 시리즈의 완결편인 <매트릭스3 : 레볼루션>에 거는 팬들의 기대는 거의 무한대에 이르렀다. 이제 상상의 극치를 영상화한다고 해도 관객들은 그 이상을 기대하게 되 버렸다. 감독으로선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고 기다리는 팬들로선 엄청난 불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부담과 불안을 안고 전세계 동시 개봉이라는 유례없는 방법으로 매트릭스 시리즈의 완결편이 개봉되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결말' 이라는 근사한 카피로 완결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 <매트릭스3 : 레볼루션>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수많은 추종자들의 선택을 받게 될 운명에 있다.

필자도 그 추종자들 중 한 명이었고 오늘 그 디지털 성서의 완결을 감상했다. 이제부터 지구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던 <매트릭스>의 최후의 이야기에 대한 간략한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으니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읽기를 멈추시길~!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매트릭스3 : 레볼루션>은 필자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한 영화였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필자의 기대치가 너무나도 높았다는 것이다. 시리즈의 한 편이 아닌 독립된 SF영화의 한 편으로 본다면 <매트릭스3 : 레볼루션>는 더할 나위 없이 통쾌하고 장엄한 액션 대작으로 손색이 없음을 분명히 말해둔다.

하지만 대다수의 매트릭스 추종자들이 그러하듯 필자 역시 과도한 기대감을 갖고 영화를 감상했으니 어느 정도 실망과 당혹감은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충분히 각오한 일이지만. (관객들을 네오로 만들어버려 스크린 속의 스미스 요원이 튀어나오게 만들지 않는 이상 끝 간데 없는 기대치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

<매트릭스3 : 레볼루션>에서는 전체적으로 '사랑과 희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매트릭스2 : 리로디드>에서 수없이 재기되었던 많은 의문점들은 이 '사랑과 희생'이라는 숭고한 정신 속에 묻혀버려 결국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오라클은 시종일관 '그건 이미 네가 알고 있어' 혹은 '그건 나도 몰라. 네가 선택해야 할 문제야'라는 다소 김빠지는 대답만을 던진다. 2편에서 매트릭스 설계자에 의해 자신이 한낱 시스템의 통제자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비밀을 듣게 되는 네오였지만 그것과는 무관하게 3편에서는 'The One'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부각된다. 또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던 스미스에 대한 비밀도 풀리지만 특별히 기막힌 비밀 같은 것은 없다. 네오의 대칭점, 다르게 해석하자면 네오와 함께 서로를 견재하며 능력을 상승시키는 동반자 같은 존재다. 마치 '드래곤 볼'의 손오공과 베지터처럼.(물론 스미스는 베지터 보다 더 사악하지만...!)

감독은 정말로 멋지고 기발하며 센세이션할 만한 그러한 결말은 처음부터 없었나 보다. 굉장히 무난하고 평화적인 라스트를 선택하며 안정적인 결말을 그려낸다. 그로인해 인간미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던 무자비한 기계조직, 현실과 너무나 비슷한 매트릭스라는 가상공간, 또 시온이라는 구시대적인 현실공간, 그리고 전쟁과 구원자라는 복잡하고 현학적인 관념들이 해피한 앤딩을 위해 밋밋하게 마무리되어 버린다. 그것은 각각의 존재성에 대한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어 버려 명쾌한 해답을 기다리던 관객들에겐 미지근한 인상만을 안겨다 준다. 결국 한 시대를(매트릭스 안에서 혹은 현실 세계에서) 살다간 영웅들의 이야기는 기나긴 세월(매트릭스 혹은 현실의)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역사로 남을 뿐 위험과 악몽, 사랑과 희생, 전쟁과 평화는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결말인 것이다.

어쩌면 <매트릭스> 1편의 결말이 '감히 상상할 수없는 결말'이었던지 모른다. 네오가 총알을 피하고, 죽었다가 살아나고, 도저히 대적할 수 없었던 스미스 요원을 한방에 날려버리며 엄청난 기계조직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벅찬 라스트, 그것이 정말로 멋지고 기발하고 센세이션한 결말이 아니던가. 필자의 개인적 생각은, 감독은 처음부터 매트릭스 시리즈를 3부작으로 기획했었다지만 어쩐지 거짓말같다. 1편으로 끝날 것을 억지로 2, 3편으로 늘였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매트릭스> 1편은 감독이 평생동안 만들고 싶었던 숙원의 기획작품이었을 테다. 그 벅찬 라스트의 뒷 이야기에 대한 에피소드들은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그려두었을 것이다. 그러했던 것을 1편의 성공에 고무되어(평생동안 준비해온 1편에 비해) 다소 기획력이 떨어지는 속편들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은 씁쓸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김빠지는 소리를 많이 했지만 앞서 얘기했듯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기대치가 지나치게 높았던 탓이다. <매트릭스3 : 레볼루션>는 상당히 뛰어난 시각적 효과를 자랑하는, 여지껏 만들어진 최고의 블록버스트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1, 2편 처럼 늘어지는 철학 강의는 초반 20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고 나머지 런닝 타임 동안 내내 긴박감 넘치는 액션 장면과 입이 딱 벌어지는 디지털 영상의 혁신을 보여준다. 특히 <인정사정 볼 것없다>의 라스트 씬을 연상케하는 네오와 스미스의 최후의 빗속 대결은 헐리웃 디지털 기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매트릭스 시리즈의 액션 씬들을 잊게 할 만큼 장엄하다. 17분간의 액션 씬을 위해 4천만불이라는 제작비를 쏟아부었다고 하니 과연 슈퍼 버럴(Super Brawl)이라 불릴 만 했다. (그래도 1편의 총알 피하는 장면이 계속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개인적으로 클럽에서 메로빈지언이 말한 인상적인 한 마디가 <매트릭스3 : 레볼루션>를 이해함에 있어서 가장 큰 키워드가 아닌 가 싶다. '뺏을 수는 없으나, 받을 수는 있는 것' 그는 그것을 원했다. 오라클의 눈이 상징하는 것은 트리니티를 위해 희생되는 네오의 눈이자 시온 국민들의 헌신적인 힘이자 모피어스와 니오베의 믿음일 것이다. 또 트리니티와 네오의 사랑이며 네오의 메시아적인 희생일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은 초반에 중간계 지하철 역에서 한 남자가 말한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한 숭고한 의미로 와닿게 된다.

<매트릭스3 : 레볼루션>이 타 시리즈에 비해 휴머니티와 드라마적 감수성이 유독 짙게 배어 있는 이유가 바로 '뺏을 수는 없으나, 받을 수는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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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 빌 - Kill Bill: Vo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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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빌>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이자 그가 <재키 브라운> 이후 6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그런 만큼 그의 '헤모글로빈의 시'를 기다려 온 많은 팬들로부터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관심과 비평의 중심에 놓이게 될 작품이다.

필자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의 B급 액션에 녹아 있는 폭력미학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또 개인적으로 공포영화 마니아라 피가 난무하는 잔혹한 영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스토리가 복잡한 영화는 싫어하는 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킬빌>은 제작 과정에서 부터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영화였다. <킬빌>은 복수라는 가장 간단명료하면서도 매혹적인 테마로 장장 3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피와 광기로 물들인다.
 

조직을 떠난 킬러, 브라이드는 결혼식 날 조직의 보스 빌로부터 피의 응징을 당한다. 그리고 4 년 뒤 그녀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서 자신의 인생을 파멸시킨 다섯 명의 인물들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간다. 이 간단한 스토리에 타란티노는 자신의 주 특기인 B급 액션 영화의 모든 매력들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킬빌> 1부에서는 타란티노가 일본 사무라이 영화에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청엽옥 결투에서 일본 사무라이 영화가 가진 칼 끝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매력과 비장함, 그리고 사지절단의 잔인함을 모두 보여준다. 그는 사무라이 영화에 매혹당했던 무명 시절의 기억들을 폭력과 블랙 유머의 펄프픽션으로 포장해 과도한 액션의 연속에서 분출되는 흥분과 쾌락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분명히 극과 극으로 찬반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오마주니, 짜집기니를 운운하기 전에 철저히 관객의 입장에서 보다 가시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예전부터 타란티노의 가장 큰 특기 중 하나는 장르와 관습을 해체하고 재조립해서 전혀 다른 색깔, 다른 디자인을 만들어버리는 솜씨라고 생각했다.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픽션>에서 그는 시간의 재조립을 통해 내러티브의 파괴를 시도했고 수 십년 동안 내려오던 장르적 고정 관념을 깨버렸다. <킬빌>에서 그는 사무라이 영화에 대해 간직하고 있던 열정들을 미국 웨스턴 무비의 내러티브 속에 중화시켜 국적불명의 독특한 액션영화를 재창조한다. 그 결과 적어도 관객의 눈을 지루하지 않게 할 폭발적인 애너지의 오락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게다가 개성강한 개릭터들이 뿜어내는 카리스마의 향연과 사건의 근원에 대한 감추어진 사연들은 유쾌한 보너스다.

이번 영화에는 그의 예전 작품들에 있었던 대중 문화에 대한 블랙 코미디적인 철학은 없다. 그저 한 여인의 복수에 관한 잔혹한 이야기만 있다. 복수는 강렬하면서도 단순해야 한다. <킬빌>은 바로 그러하다. 청엽옥에서의 결투가 그러하고 고고와의 대결이 그러하며 오렌 이시이와의 진검승부가 그러하다. 타란티노는 그 위에다 추억의 명곡들을 향수처럼 깔아놓아 잔혹한 폭력 뒤에 쉬어갈 수 있는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는 역시 장르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탁월한 역량가임에 틀림없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러닝타임이 좀 길다는 것이다. 너무 길어서 반으로 자른 것이 1시간 50분인데, 사실 오락 영화로서는 좀 긴 러닝타임이 아닌가 싶다. 시종일관 즐거워야 할 영화임에도 액션과 액션의 공백이 다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액션의 임펙트가 너무 강한것에 대한 반작용인 듯 싶다. 약 15분 정도 짧았더라면 더욱 타이트한 오락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시각적 즐거움을 표방하고 나선 영화라면 액션의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을 피해가기 위해서라도 러닝타임을 최대한 짧게 해야 치고 빠지는 효과를 크게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킬빌>은 오락 영화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지 않는 관객들이라면 필견의 가치가 있는 영화다. 우마 서먼이 노란 추리닝을 입고 사무라이 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사지절단하는 일당백의 결투씬과 라스트 루시 리우와의 눈밭에서의 진검승부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지나친 폭력이나 단순한 오락영화에 거부반응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장르적 특성을 훤히 꿰뚫고 자유자재로 변형시켜 폭력미학으로 승화시킬줄 아는 타란티노의 네 번째 펄프픽션과 조우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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