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살아간다는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이 책이 먼저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무튼 누군가로부터 ‘허삼관’은 아주 우습고 진지하고, 재미있고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라는 말은 듣고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의 감동에 묻혀서 ‘허삼관’은 상대적으로 내 기억 속에서 금방 묻혀버렸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도 그 책 읽어봤는데, 괜찮던데…’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과시용 책이었다.

   좀처럼 읽은 책을 다시 펼치지 않지만,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기 위한 책으로 이 책을 골랐기 때문에 또 한 번 읽었다. 새롭게 읽으면서 내가 ‘허삼관 매혈기’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책을 읽었다고 폼을 잡았으니 이제야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남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웃기도 했다는데,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던데, 그 재미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재미야 눈물이 나서일 수 있고, 웃음을 주기도 해서 있고, 교훈을 주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먼저 평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을 읽고 든 내 생각을 말해 보고 싶다. ‘허삼관’의 판단대로 본다면 지금 우리 나라는 무척 살기 힘든 곳일 거다. 우리 모두가 가난했던 그 때(?)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때는 ‘허삼관’식으로 본다면 나름대로 평등했던 시대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조금은 풍요롭게 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오직 죽음 앞의 평등 밖에 남은 게 없을 않을까 싶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야.만. 하는 ‘허삼관’은 분노했을까? 아니, 희죽 웃었을까?

  '허삼관'에게 ‘매혈’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책을 덮고 되돌아보면 희미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인생’이다. (이 단어는 이 소설을 쓴 작가의 4년 전 소설-살아간다는 것-을 장이모 감독이 영화화한 ‘인생’이라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어딘지 그 작품의 주제와 비슷하기도 하다.) 피를 팔아서 아내를 얻고, 집안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 하고,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고, 아들의 병을 고치고(그것도 자기 자식이 아닌-그런 점에서 보면 일락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허삼관’이 얼마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자기희생을 통해 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했던 우리 아버지의 인생과 닮았다.

   그러다 결국 맨 마지막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고 할 때는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서 ‘허삼관’의 인생의 의미는 막을 내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허삼관’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이라는 것을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허삼관’의 인생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그런, 보잘 것 없는 삶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위화라는 작가의 전작(前作)에서 꾸준히 천착해 온 주제인 살아간다는 것은 눈물의 강을 건너는 것이고, 우리가 고통을 견디고 인생이라는 고통의 강을 건너고 나면, 그 뒤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의 흔적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결국엔 인생이라는 것은 눈물로 고통의 강을 건너는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니 그런데도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글쎄, 그건 우리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야 할 몫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만약 ‘‘허삼관’이 피를 팔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을 때 ‘허삼관’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허삼관’의 인생에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허삼관’이라는 사람을 마냥 우습게 바라보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어느 집마다 나름대로 사연 한 보따리 정도는 없는 집이 있을까? 돌이켜 보면 우리 집도 그런 듯하다.

   아버지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었다. 온 가족들이 달라붙어 맨주먹으로 개펄을 개간해서 겨우 농사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꾸고 나니, 공항 부지를 확장한다며 나가라고 했다. 그 때는 서슬 퍼렇던 박정희 시절. 온 가족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쫓겨났다. 당장 먹고 살 거리도 힘든 시절을 견디며, 새로운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아버지는 요즘도 시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이 끔찍해서 ‘농사’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신다.)

   아버지 밑으로 다섯 남매가 태어났고, 농사만으로는 살림은 더 어려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여전히 농사를 지었지만, 아버지와 고모들은 일터를 찾아 가까운 도시로 나왔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을 받아주는 일터는 역시나 험한 육체노동의 현장! 아버지는 그렇게 첫 직장인 주물공장을 십 오년 정도 다녔는데, 어릴 때 나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 험한 일이라 회사내에 목욕탕이 있어서 어떤 날은 어머니를 통해서 나를 꼭 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경비실에서 아버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목욕을 해야했다. 그 음습하고 지저분한 목욕탕과 아저씨들의 격의 없는 농담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근데 목욕하러 가는 날은 정말 싫었다. 갖은 핑계를 다 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예순을 넘기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아버지가 집안의 가정이 되었다. 할머니와 고모, 삼촌들도 한 집에서 다 같이 살아서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았고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어머니도 일하러 다녔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언제나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게 8시 30분에 귀가하셨고, 주말이면 늘 큰고모네 댁에 농사를 도우러 가는 분이셨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는 가끔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내에 있던 회사가 진해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이참에 퇴직을 할 지, 회사를 따라 집을 옮길지를 고민하다가, 나이도 있고,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던 때라 퇴직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퇴직에다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탓에 한 동안 방황하다가 사업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사기꾼’한테 당해서 지금껏 벌어둔 돈에다 빚까지 얻게 되어 집안이 쫄딱 망했다.

   우리가 거리로 나앉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평생을 성실하게 산 증거물이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지키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신 건 기억에 분명하다. 결국 부모님은 무서운 빚 독촉을 받을까 봐(지금 생각하면 순박하셔서 그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거의 숨어 지내셨고 우리 세 남매는 작은 아버지네 가족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한두 달에 한 번 다녀가셨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제사만은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시는 곳까지 오라고 하셨는데, 그 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밤길을 달릴 때의 서글픔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아프게 남아있다.

   이후로 한참 시간은 한참 흘러 우리 가족은 다시 합쳐서 살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아버지와는 약간 어렵고, 껄끄럽게 지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허삼관’이 매혈로 가족을 먹여 살린 것처럼 아버지는 한 번도 일하는 걸 멈춘 적이 없다. 끊임없는 육체노동! 오직 그것만이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일해 오신 듯하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그게 고마운 줄 몰랐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 당신이 낳아 기른 세 자식 중에 둘은 이미 결혼을 해 분가해서 그런대로 살고 있고, 막내도 자신의 일터 가까이에 따로 살고 있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시던 그 집에 두 분만 덩그러니 계신다.(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집은 아주 작다.) 이제야 말로, 아버지는 ‘허삼관’처럼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 때 나도 ‘일락/이락/삼락’이처럼 ‘허삼관’의 마음을 모르는 아들이 될까봐 두렵다.


  자, 우리 아버지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누가 이 인생에 대해 ‘의미’를 따질 수 있을까? 그것은 ‘의미’ 이전에 이미 위대한 무엇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일이 어버이 날이다. 카네이션과 선물을 사기 위해 종종거리는 우리 모두는 기억해 두어야 한다. 모든 자식은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4시 30분, 우리 집에 신문이 배달된다.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면 현관문 앞에 지역신문 한 부와 중앙일간지 한 부가 덩그렇게 놓여 있다. 두 신문을 가방에 챙겨들고 직장으로 간다. 직장에도 물론 신문이 있고, 책상 위의 모니터만 켜도 세상의 온갖 정보를 다 알 수 있지만, 직장의 신문은 보기 싫고, 모니터로 읽는 정보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들고 직장에 가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과는 늘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간혹 점심시간에 신문을 펴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생길 때면 이 때야 말로 제법 행복하다는 느낌도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을 내고 자신이 보고 싶은 신문을 선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선택한 신문이  곧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된다. 주인이 된 신문은 ‘당연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가 화를 내야할 때와 박수쳐야 할 때,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라는 ‘괴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자신이 주인인 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분노와 박수, 행동과 멈춤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의 결과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문이 정해준 방식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결정하고 행동하는데도 말이다.

  신문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전해 줄 수 없기에 중요한(사실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신문이 등장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누구에게 중요한가?’와 ‘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모범 답안이 될 테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너무나 모범 답안이기에 신문사의 어느 벽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액자’로 고이 모셔진 글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뀌는 신문사들도 ‘정론직필’이니 ‘불편부당’이라는 액자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다. 즉,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신문사의 인칭대명사일 것이다. (아니, 조금 더 노골적-본질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신문사의 사주가 아닐까 싶다.)그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면, 2000년대 초반에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보인 신문사들의 기형적인 편집 형태를 떠오른다. 세금 탈루의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지면(紙面)을 도배해 가면서 ‘언론탄압’을 부르대던 생경스러운 모습에 쓴웃음이 났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신문사의 편집국이 기자가 쓴 기사를 선택하고 크기와 배치를 결정하는 곳인데, 신문사의 어느 기자의 기사라도 이 편집국의 ‘심의’와 ‘검열’(?)을 거쳐야 기사가 실리는지의 여부와 기사의 크기와 배치가 결정된다. 당연히 신문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신문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사는 빠지거나 축소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건이 신문사의 유/불리를 기준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비슷한 편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는 반드시 신문사의 시각에 따라서 기사의 내용과 배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신문사의 사정을 잘 모르면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자세히 보면 신문의 논리적 어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우리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가 신문을 읽는 행위는 ‘여론’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 하나 읽는 것에도 세심한 주의와 선택이 필요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를 현명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현명한 독자가 되어 신문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권유하고 있는데, 독자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가 읽는 신문에 기사가 실리게 되기까지의 기본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신문 기사가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선택’된 정보임을 파악하고, 신문 기사를 읽을 때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인 수용이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소식을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을 때나, 갑자기 신문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오직 신문에 나왔다는 걸로만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나, 청소년들에게 신문이 객관적인 진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꼭 필요하고도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아울러 언제나 한결같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 오고 있는 ‘손석춘’님께 존경하는 마음과 아울러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이 보잘 것 없는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현명한 신문구독자가 되리라고 다짐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장바구니담기


과거 청산에서 책임자 처벌은 양보해도, 배상과 보상은 포기해도, 위령사업은 축소하더라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진상 규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상 규명 없이 명예 회복이나 배상, 보상에만 매달린 경우가 많았다. 진상 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그리고 국가와 사회, 국가와 개인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의 과정을 통해 국가와 그 대리인들이 범한 범죄와 그 범죄를 저지르게 된 상황이 공개되고, 또 피해의 사실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알려지면 우리는 사회 내에서 타인이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러한 고통을 가져온 배경과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이 가졌던 공포와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084쪽쪽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규명하여 역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은 친일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방 뒤에 어떤 짓을 했는지이다. 일본군 중위나 동네 면장을 지낸 특정한 개인이 일제 강점기에 무슨 짓을 했나보다도, 반민특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와해됐고, 백범 김구가 어떤 세력에게 암살됐고, 이렇게 살아남은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장악하여 민간인 학살과 군사독재 시기의 인권 침해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밝혀내는 일, 이것이 포괄적 과거 청산이다. -086쪽쪽

일본은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다. 국가를 위해 죽는다는 일은 이제 가까운 장래에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일본보다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한 한국도 피해 갈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죽은 이의 죽음을 비극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가치로 현창하는 일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공통된 수법이다. '사의 찬미'는 윤심덕으로 족하다. -110쪽쪽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바로 처리되지 못한 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 여러 가지 악독한 인체실험을 한 일본군 731부대 문제를 미국이 덮어버린 것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미국이 덮어버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전쟁범죄, 반인륜 범죄이지만 당시 미국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의 심리전 당국이 일본군 패전 지역에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지만, 이 문제는 일본 전범을 단죄한 도쿄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00% 덮어진 것은 또 아니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네덜란드 출신 등 백인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로 삼은 일본군들은 전후에 전범으로 처벌됐다. 미국 등 연합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엄청난 전쟁범죄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들 입장에서 볼 때 백인 피해자의 인권과 조선인 등 아시아인 피해자의 인권이 같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116쪽쪽

이때까지는 그래도 간첨을 갖고 웃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간첩은 주로 북에서 내려온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동백림 사건이 터지고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일동포 형제 간첩단 사건이 터지면서 얘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첩이 우리의 일상을 옥죄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우리가 두려워한 것은 간첩 그 자체가 아니라, 간첩 잡는 사람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간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2기가 시작된 것이다. -206쪽쪽

요즈음 박정희의 친일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박정희가 범한 친일행각이며, 좌익 활동과 전향이며, 군사반란이며,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죄가 밉지 사람이 밉나 하며 좀 너그러운 척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일본놈 밑이지만 출세하고 싶고, 남로당이 정권 잡을 것 같고, 반란 음모로 걸렸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지도 팔 수 있고, 정권 잡고 싶으니 군대 동원할 수도 있고... 다 나븐 짓이긴 해도 유독 박정희만 이런 짓을 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멸시와 차별 속에 살다가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국에 온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장학금을 주며 따뜻한 격려는 못할망정 거꾸로 매달아 간첩으로 만든 소행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꾸 <넘버3>에 나오는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마동팔 검사 편에 서게 된다. 죄가 무슨 죄가 있냐구, 죄지은 놈이 정말 나쁜 놈이지...-216쪽쪽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도 사병이 사병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현행 병력 제도,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별다른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불만에 찬 상태에서 24시간 영내 생활-에서 기인한다. 사병 상화간의 가혹행위는 간부 내의 가혹행위- 간부와 사병간의 가혹 행위의 파장이 사병 내부로 미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 또는 고참의 행포란 군대의 위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전가이다.
이렇게 폭력이 전가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인성 교육을 통해 가혹행위를 막아 보겠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중략)
인성 교육도 안 하는 것보다야 백 번 낫겠지만 화가 나게 되는 근본 원인을 그대로 둔 채 그리고, 폭력의 전가와 화풀이를 강요하는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인성 교육만 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284쪽쪽

인분 사건과 관련해 떠오르는 두 가지 문제는 단체 기합과 명령 불복종의 문제이다. 먼저 군대와 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는 단체 기합은 사라져야 한다. 나의 행동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처벌받아야 하는 단체 기합은 대표적인 연좌제이고, 따라서 헌법 위반이다. -287쪽쪽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이 1993년이다. 그동안 한국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단순히 군의 정치적 개입이 차단된 것에 만족할 뿐, 군대는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다. 군사정권 하에서 군인들의 처우와 복지에 대한 수십 개의 법령이 만들어졌지만, 일반 사병들의 권리에 대한 규정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다. 군인도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군인의 인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치일까? 도대체 군인에게 어떤 기본권이 주어져야 하고 어떤 기본권이 법률에 따라 제약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군인인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군대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인권의 신장은 기대할 수 없다. 내 인격이 무시당한 경험, 남의 인격을 무시한 경험, 그 상처를 안고 매년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제복을 벗고 사회로 나온다. 인권 감수성의 하향 평준화가 군대에서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290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구판절판


이 작품은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기보다는 그러한 역사적 격동이 인간과 인간 관계에 어떠한 충격을 주었으며 또 인간과 인간 관계는 이러한 격동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007쪽쪽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을 잘 읽어 보라구.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에 두 위인의 마음속에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씌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의 이론, 그의 실천은 모두 이 '인간'을 실현하기 위한 것, 인간을 '인간'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모든 현상과 그 원인을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었어.-129쪽쪽

먼 길을 갈 때는 가벼운 짐도 어깨를 파고들지. 갈 길은 멀고 당신의 짐은 너무 무거워.-161쪽쪽

말을 하는 것은 항상 나였지만 진짜 '권력자'는 '그'였던 것이다.-162쪽쪽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가 없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우 영원히 말뿐이고 개념뿐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165쪽쪽

객관적 조건에 대한 반응은 지나치게 둔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민감해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법이다.-175쪽쪽

개성은 말이지,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갖고 독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말하지.-180쪽쪽

저마다 '인간'의 소재에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변해 가는 거야. 다른 인생길이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다른 인간이 또다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지. 어떤 길에나 인간이 있고 어떤 인간 뒤에도 길이 있어.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인간에게는 부침(浮沈)이 있어. 길은 서로 교차되고 인간은 서로 부딪히지. 그것이 인생이야.-233쪽쪽

사상은 원래 손쉽게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확립된 사상은 확고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237쪽쪽

인간의 마음은 철로 되어 있지는 않다. 밖에서 열을 가해 뜨겁게 만들 수는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연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참외는 제철이 되어야만 단맛이 나는 법이다.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241쪽쪽

강제는 사람에게 억압을 느끼게 할 뿐이고 자기의 진심을 감추게 함으로써 드디어는 허위로 떨어지게 만든다.-242쪽쪽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367쪽쪽

그들은 발언할 사람들이 아니다. 어떠한 문제의 토론에서도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의결할 때에만 역할을 발휘할 뿐인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자기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얼굴로, 마치 어린애를 끌고 공원 입구에서 해바라기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한 모습을 하고 있다. -400쪽쪽

습관, 습관.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지위를 보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의 가치도 지위에 따라서 다른 법이다. 지위가 높으면 말도 무겁고 지위가 낮으면 말도 가볍다.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실은 흔히 진리보다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일까?-402쪽쪽

루쉰은 변명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자는 불쌍하다고 했었다. 나는 변명할 생각이 없다. -461쪽쪽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 -467쪽쪽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에 대한 모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진실에 대한 작가의 능동적이고도 정확한 반영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술 창작의 최고 임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예술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 태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진실은 생활의 박진적인 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생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태도 및 그 인식과 태도의 적확하고도 생생한 표현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476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구판절판


나의 간지럽고 아픈 부분을 이렇게나 간결하게 짚어준 사람이 내 인생에 또 있었으랴. 공부 못하는 죄를 추궁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서러움을 이해 받는 것은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물러터진 내 마음은 완전히 물에 만 휴지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예쁘고 멋진 데다 현명하기까지 한 박 선생님 앞에서 때아닌 눈물까지 한 방울 선을 보일 뻔했다.-058쪽쪽

선생님이 물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뜻밖에도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오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097쪽쪽

하지만 앞으로 우리 나라 민주화의 여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권력은 정부나 여당이 아니라 군부라구. 이 나라의 18년 군부독재가 박정희 일개인의 똥배짱 하나로 유지되었겠어?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독재의 질서에 익숙해졌어. 박정희가 죽고 나서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봐. 그들은 민주주의를 원치 않고 있어.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면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구?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 없을 거라구?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길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216쪽쪽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 하는 거야.-298쪽쪽

할머니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는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가 부러워졌다. 하지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306쪽쪽

우리 나라의 모든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누비는 강건한 트럭 운전사가 될 것이다. 트럭 운전사가 되어 첫 월급을 탄다면 제일 먼저 선생님의 향수를 사야겠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손수건에, 내 뇌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그 향기를 더해서 아주 오랫동안이라도 선생님을 기다릴 언제나 신선한 힘을 얻을 것이다. 선생님과 나는 어느 모퉁이, 어느 골목길에서 마주치게 될까. 세상의 어느 알지 못할 모퉁이에서 선생님을 만날 때, 선생님이 눈빛만으로도 나를 알아보고 두 팔을 벌리실 그 순간을 생각하기만 해도 나는 가슴이 뛰었다.-313쪽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