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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눈물
슬라보미르 라비치 지음, 박민규 옮김 / 지호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도 우리 나라 땅을 내 두 발로 조금은 걸어다닌 적이 있었던지라 '걸어 다니는 것'에 대해서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걸어다닐 때는 이름을 얻지 못한 길가의 꽃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시골마을의 한적한 모습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징하게 끝없이 이어진 오르막길, 숨이 턱턱 막히는 아스팔트 그 길을 걸으면서 가야할 길만 생각하며 걸어다녔던 그 기억. 서너 번의 그 도보여행에 대한 기억은 앞으로도 내 몸 어느 구석에 박혀 있다가 누군가의 '걸어 다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되새김질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걷는 길에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그 길이 인간을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최악의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라면? 그 길을 걷는 동안 같이 걷는 동료들이 죽기도 한다면? 늘 먹을 것이 부족하고 때로는 굶어 죽기도 할 수 있다면? 그 길을 걷는 기한이 단 며칠이 아니라 그 끝을 알 수 없다면? 이런 절망적인 여러 가지 질문에도 모두 '좋다'라며 길을 떠난 일곱 사람이 있었다. 길을 '떠났다'라기보다는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라는 게 더 상황에 맞는 설명일 것이다.
폴란드 기병 중위였던 슬라보미르 라비치는 1941년 러시아 군에 의해 붙잡혀, 러시아 법원에 의해 '간첩죄'와 '적대행위' 혐의로 시베리아 강제노역 25년형을 선고받고, 북극권 근처의 303수용소로 이송된다. 라비치가 재판을 받기 전까지의 상황은 서준식의 '옥중서한'에서 읽은 장면과 비슷하기도 하고,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라는 영화의 장면과 자꾸 겹쳐져서 읽는 내내 괴로웠다.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쿠까지 이송되는 기간의 그 고통스러운 장면은 또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연해주에 살았던 고려인들이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나 이르쿠츠크가 끝이 아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1600킬로미터를 걸어서 레나 강의 북쪽에 있는 303수용소에 도착하는 길은 그야말로 짐승처럼 쇠사슬에 묶여 추위와 맞서 싸우며 걸어야 했던 고통의 길이었다. 그렇게 걸어간 기간이 무려 두 달이었다. 재판 전 고문을 당하면서 오직 살아 있는 것, 살아서 자유를 찾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이유였던 라비치는 험난한 이송 과정에서 자유에 대한 열망을 더욱 키워가게 되었고, 수용소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오스탸크인(일종의 에스키모인들)을 통해서 '수용소 탈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수용소에서 '체력'을 회복한 라비치는 탈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함께 탈출한 여섯 명의 동지들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라비치가 탈출하는데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사람은 라디오 고치는 것 때문에 알게 된 '수용소의 소장 부인'이었다. 수용소 소장 부인의 도움으로 눈보라가 치는 어느 날 겨울밤, 라비치를 포함한 일곱 명은 303 수용소를 손쉽게 탈출했다. 그리고는 끝없이 이어지는 질주. 일곱 명은 추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용소에서 가급적 멀리 달아나야만 했고, 쫓는 자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은밀히 숨어다녀야 했다.
수용소 부근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굶주림과 추위 때문에 일곱 명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매달려야 했다. 그러나, 극한의 생존 상황에서도 남의 물건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가며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추격이 미치지 않는 '인도'까지 걸어가기로 했는데, 몽골의 국경을 넘어 내려가서 맞닥뜨린 내몽골의 고비사막과 티베트를 지나 인도로 넘어가기 전에 만나 히말라야 산맥은 자유를 찾으려는 그들에게는 최대의 '고비'였다.
고비사막은 사막에 들어가는 줄로 모르고 들어선 탓에 더위와 굶주림으로 함께 탈출한 동료들을 잃으며 절망하기도 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쓰러지기 직전에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뱀'까지 잡아먹으며 먹을 것을 해결하기도 했는데, 마지막까지 포기하기 않고 걸었기 때문에 결국 고비사막을 벗어날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는 과정도 감동적이었다. 이번에는 다시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몹시 고통을 겪게 되었고, 산맥을 넘어 내려오다가는 지금까지 함께 했던 동료, '팔루호비치'를 잃게 되었다. 라비치는 그 부분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랫동안 주위를 서성거렸다. 참변은 너무나 급작스러웠고 손을 쓸 겨를이 없었다. 이제까지 우리와 함께 했던 팔루호비치는 이제 없는 것이다. 그가 죽을 거라고 나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절대 쓰러지지 않을 사람으로 보였다. 강인하고 헌신적이었던 팔루호비치 상사는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결국 이렇게,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죽기 위해서 그 먼 길을 왔단 말인가' 스미스 씨는 어느 누구보다도 그의 죽음에 상심했다. 일행 중에서 나이가 많던 둘의 우정은 남달랐다."
팔일 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로 그들은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처음 탈출할 때부터 가고 싶어했던 인도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만난 영국군을 통해 이들의 기나긴 탈출 행적이 알려지고, 드디어 살아남은 네 명은 '자유'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탈출 과정에서 겪은 심각한 정신적 상처로 한 달 동안이나 혼수 상태를 겪기도 한다.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누구나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라비치가 탈출하자고 제안했을 때 라비치와 친했던 그레히넨은 '눈과 추위 때문에 어디든 가기 전에 얼어죽을 것'이라며 정중히 거절했고, 라비치가 청년들에게 농담처럼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부들부들 떨며 달아나 버렸던' 이 무모한 계획은 무엇을 위해 시작되었을까? 나는 라비치에게 , 어리석겠지만,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라비치 당신은, 고비 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의 경험을 다시 하게 된다고 해도 '자유'를 찾아 탈출하겠느냐고?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직접적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 당한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이 자유에 대한 가치가 극한적 상황을 뚫고, 목숨을 걸만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자유의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내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누리는 자유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싸워 온 누군가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라비치와 그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자유를 찾아 극한의 자연환경을 극복한, 진정한 인간 의지의 무한함을 보여준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진 이야기'라는 역설적인 부제가 달린 이 고통스러운 실제 이야기는 자유를 찾아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책도 그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행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