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의 금정산 산책이 좋았던지, 안해는 며칠 전부터 또 산에 가자고 졸랐다. 마침 이번 주말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주 5일제 토요휴무까지 있었던지라 바쁜 일은 어제 다 끝내놓고, 오늘은 늦은 아침 겸 점심을 챙겨먹고 집 밖을 나섰다.
사실, 어제는 하루가 무척 바빴다. 금요일은 공부방에 가는 날이라 집에 늦을 수 밖에 없던 탓에 토요일에도 꽤 늦게 일어났다. 서둘러 안해의 외사촌 오빠의 결혼식에 갔었다. 조금은 엄숙했던 예배 형식의 결혼식이 끝나고 처가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오니 벌써 7시였다.
저녁에는 6년 전에 모 고등학교에서 가르쳤던 녀석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몇 차례 문자메시지가 왔다간 이후에 저녁 10시쯤 술자리에 합류하기로 했다. 집에서 한숨 돌리고, 녀석들이 모여 있다는 술집을 찾아갔다. 스물 셋 짜리 청년들 다섯 명이 오종종 모여있었다.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그래도 '선생'이랍시고, 약간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또 잔소리 비슷한 걸 늘어 놓았다. 내가 항상 하는 말-어디서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을 또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근황도 물었다. 이젠 제법 제 앞가림을 하거나, 최소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은 있는 거 같다. 이 녀석들과 보낸 시간들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세상의 바깥에서 자란 아이들이었으니까.
아쉽지만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야 했다. 녀석들은 청춘답게 좀체로 일어설 줄 몰랐다. 나는 12시까지 집 앞의 영화관으로 가야했다. 모처럼 안해랑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너는 내 운명' - 재미있게 봤다. 특히, 잔잔한 음악이 귀에 쏙 들어와서 좋았다. 영화나 연기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세 사람(나문희씨까지)의 연기가 참 편안하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 2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깊은 밤 거리를 걸어 집에 왔다. 돌아와서는 좁은 서재 방에 등을 지고 앉아 안해는 책을 읽었고, 나는 컴퓨터랑 놀았다. 하루가 참 넉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요일. 늦잠 자고 일어나 창문을 열어놓고 거실에 앉아 있으니, 피부를 파고드는 서늘한 바람에 반사작용을 일으켜 하늘을 보았다. 하늘을 보자 마자 바로 결정! - 가자- 금정산으로.
산성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렸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산에 가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미 산행을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도 많아서 동문 근처는 벌써 시장터였다. 안해와 나는 도로를 따라 동문 근처까지 와서 남문 방향으로 길을 잡고 능선으로 올라섰다. 조금만 땀을 흘리면 너럭바위 근처에 닿을 수 있어서 경치 구경하기에 그만인 코스다.
남문 근처에서 국수 한 그릇 말아먹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방향으로 내려왔다. 우뚝한 상계봉이 만들어 놓은 기암들이 우리 눈을 즐겁게 했다. 중간에 석불사를 구경하고도 1시간 만에 만덕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산에 다녀온 덕분에 하루가 알차다는 느낌이었다.
가을 하늘 밑-부드러운 능선1
가을 하늘 밑-부드러운 능선2
까마득한 금정산 정상-고당봉
너럭바위에서 본 부산시내
산 속의 도시-산성마을
남문에서 수박샘으로 가는 길
금정산성의 성곽-상계봉 가는 길
금정산 상계봉
아파트1
아파트2
아파트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