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한 지 이틀 지났다. 올해는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번 해에는 담임이 없다. 수업만 고등학교 3학년 16시간, 1학년 2시간. 그리고 내 담당업무는 작년에 맡았던 교과서와 학습자료 준비는 그대로 가져오고, 도서실 운영이 추가되었다.

   남들이 보면 무난하다고 하고, 담임 없어서 편하겠다고도 할 것인데 나는 담임을 맡지 않은 건 약간 서운하다. 밀려난 느낌도 들고... 자충수를 둔 점도 있고... 사실은 작년 1학년 담임을 맡았으면 아이들과 같이 2학년 담임과 수업을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나, 2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입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 국어 수업이 더 재미없을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1학년 담임을 희망한다고 구두로 이야기했더니, 담임 없는 대신 3학년 수업을 전담해서 맡아 달라는 부탁도 들어오고-아마 2학년을 희망했으면 이런 부탁을 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어찌어찌 하다가 결국 담임은 없는 것으로 정해져 버렸다.

   지난 2월 27일에서 3월 1일 오전까지 여행하는 동안 '번개 안 하냐고? 애들이 눈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문자메세지를 받았다. 사실은 종업식 하는 날(2월 21일), 아이들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메세지로 번개 날짜와 시간을 보내면-그 연락을 받은 학생은 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고 해서- 시간되는 사람 모두 모이자고 말해 둔 터였다. 그래서 여행 중에 이미 3월 1일 12시에 번개하기로 정해 두었고, 문자메세지로 알렸다.

   나는 번개하는 날 아이들에게  줄 책 한 권씩을 선물로 준비했다. 알라딘에서  44 종류의 책을 미리 주문해서 책은 벌써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나도 서둘러 여행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3월 1일 11시에 바로 학교로 도착했다. 그 다음엔 아이들에게 점심으로 줄 자장면을 주문하는 일. 그러나 실제로 몇 명이나 올 수 있을까? 짐작조차 어려웠다. 12시는 점점 가까워지고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학교에 맨날 지각하던 녀석들은 그날도 역시 지각이었다. '자장면 20그릇이요' 하고 전화를 끊고나니 한 명 두 명 더 늘어나 전화하기를 다시 여러 번. 결국 서른 두 그릇의 자장면을 주문해 놓고는 1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우리반은 모두 40명이다)

   책을 미리 교실 책상에 한 권씩 펼쳐 놓았고, 마음 속으로 가지고 싶은 책을 점찍어 두라고 일렀다. 배달된 포장 상자 안에 각자의 소지품을 한 개씩 내면, 내가 추첨을 통해서 책 고르는 순서를 정했다. 자기의 소지품이 내 손에 들려지면 나와서 책을 고르는데, 대충 아무거나 집어드는 녀석, 신중하게 살피는 녀석, 내용을 뒤적거려 보는 녀석, 가격부터 살피는 녀석, 아는 책부터 찾는 녀석, 만화책이 있냐고 묻는 녀석... 모두 다 제각각이다. 그래도 1시간 동안 자기가 가지고 싶은 책들 한 권씩은 손에 들게 되었다. 신기한 듯 모두 책을 만지작거리며 교실이 왁자지껄하다.

   나머지 책-번개에 못 온 녀석들, 그 날 저녁에 문자메세지가 2명한테서 왔었다, 못 와서 죄송하다고 ㅋㅋ-은 개학하면 불러서 다시 고르게 하면 될테니까 내가 따로 챙겨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른 두 그릇의 자장면이 왔고, 아이들과 신나게 자장면을 먹었다. 먹을 때는 무척 조용했다. 마지막으로 교실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모두 교실 뒷편에 섰다. 그 때 내가 마지막으로 몇 마디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도 그 순간에는 어떻게 느꼈는지 약간 분위기가 묵직했다. 나로서는 올해 이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하지 않는 게 좀 섭섭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자장면도 감지덕지인 나이들이지만, 이 녀석들이 자장면이 얼마나 값싸고 평범한 음식인지를 알게 될 나이가 되면 담임인 내가 정말 자기들을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그 녀석들이 앞으로 자장면을 먹게 될 때 혹 한 번 쯤은 '2004년 3월 1일의 자장면'을, 책상을 이리저리 붙여 놓고 옆에 앉았던 그 친구들을, 그 때 그 담임을 떠올리며 빙긋 웃을 때가 있을까?

   오늘에서야 한 권 남은 책도 다 전해 주었고, 2003년 담임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는 끝이었다. 혹 나 혼자만 '이별이 힘들다'고 느끼는 건 아닌지 못내 억울한 생각도 들지만, 이게 내 운명이고 팔자려니 해야지 뭘 어쩌겠는가?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이별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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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3-0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셨군요... 알라딘에는 선생님이 많으신 것 같아요. 저는 교사지망생이예요. 임용고시 공부 중이지요... 반갑네요. 선생님.

아, 국어선생님이시더군요. 저 역시 국어과로 임용고시 준비하고 있습니다...

soulkitchen 2004-03-04 0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학교다닐 때, 나름대로 간부도 하고 했는데, 왜 그렇게 선생님들께 마음을 못 열었던지..그 땐 늘 그렇게 생각했었답니다. 선생님은 우리랑 다른 사람이다. 선생님 편에 서지 않고 아이들 편에 서는 반장이 되야겠다. 근데, 느티나무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졸업한 지 십 년이 지났는데도 거리에서 절 보시고 반갑게 등을 쳐 주시는 선생님들을 뵈면서 제가 얼마나 못난 놈인가를 깨닫습니다. 느티나무님의 글은 언제나 새로운 깨우침입니다, 제게. 그 아이들도 아마 십 년쯤 뒤에, 아..우리 선생님, 참으로 멋지셨지..할 겁니다. 갑자기 선생님들이 너무 뵙고 싶습니다..

2004-03-04 0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굼 2004-03-04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장면이라...고 2때 하도 지각을 자주 하는 반으로 찍혀있어서 자체적으로 지각하면 벌금 1천원을 내기로 했었죠. 별 탈 없이 다들 잘 내고 나서 1년이 지나고 나니 한 반 전체가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시켜먹을 돈이 나오더군요^^;
 

   개학이다.

   항상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날 밤은 싱숭생숭해진다. 내일이면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면 좋기도 할테고, 새롭게 시작하려니 마음가짐도 새로울 텐데 항상 착잡하고 긴장된 마음이 앞선다. 내일, 첫날부터 아이들에게 큰소리라도 치게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감도 있고, 모든 것이 덜 정돈된 상태일 것인데 모든 것을 일상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이들은 오늘밤 무슨 생각을 하며 잠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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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rim 2004-02-1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때는 개학해서 좋았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거 같네요...^^;;
초등학교 교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개학을 해서 아이들을 보니 너무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선생님들 마음은 그런건가 봅니다...

느티나무 2004-02-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오늘 개학하고 이제 곧 마칠 시간입니다. 휴!~ 오늘 하루 힘들었어요. 근데,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별로 안 했답니다. 역시 마음의 여유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 마음이 좀 오래가야 할 텐데요.오늘은 많이 피곤하니 집에 가서 쉬어야 하는데, 공부방에 가는 날이라...아마도 귀가가 늦겠지요? 그냥 저 혼자 하는 소리였습니다. 우리반에는 별다른 사고 없이 다 왔네요. ^^
 

   이 글은 제가 1,2,3학년을 따라 다니며 담임을 맡았던 아이들이 졸업하던 그 날-결코 올 것 같지 않았던 바로 그 날!- 제가 아이들에게 읽어준 '종례' 글입니다. 아직도 내 마음에 박혀 있는 그 아이들, 녀석들은 새까맣게 내 당부를 잊었겠지만 내 말보다도 씩씩하고 당당한 삶이 더욱 빛나게 살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부신 청년들!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바위처럼 살아가 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 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 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니,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우리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여러분들은 이 가사를 보면 노래의 가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제가 학급회시간이나 조·종례시간에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준 노래 중에 하납니다. 우리는 '나이 서른에 우린'이라는 노래를 배우기도 했고, '사노라면'이라는 노래도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기억이 납니다. 제가 왜 여러분들에게 이런 '노래방에도 없는 노래'를 가르쳤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겐 지난 3년간의 시간이 어떻게 느껴집니까? 혹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나쁜 시간이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의 그 기억의 한 자리를 제가 차지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 아픕니다.
   지나오고 보니 여러분들과 함께 했던 지난 3년간의 시간들이 저에게는 무척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고,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여러분의 좋은 친구가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학교가 요구하는 여러분의 모습에 맞추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여러분들이 원하는 학교의 모습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고민했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들의 이해를 얻지 못해 실패로 끝난 학급활동 때문에 혼자 잠 못 들고 고민하기도 했던 날도 많았고, 그래도 또 다른 시도를 할 때는 새로운 설렘으로 무척 맘이 들뜨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호응에 크게 기뻐하고, 여러분의 서툰-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말에 쉽게 맘이 상하기도 하는, 여러분은 이런 저를 보고 '삐돌이'라고 놀리기도 했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쉽게 감추지 못 하는, 여러분을 너무 사랑한, 담임으로서 여러분 앞에 서 있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생각하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여러분과 함께 한 대부분의 시간은 제겐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고, 첫사랑의 열병처럼 여러분들의 알 수 없는 매력에 푹 빠져서 보낸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제게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준 여러분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젠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종례를 해야할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에게 했던 저의 수많은 잔소리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지만, 진정으로 여러분의 맑은 눈빛을 사랑했고, 자기의 마음과는 다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여러분의 거친 말도 이해하고자 했던 이 담임이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더 배워야 합니다.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더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그 마음만큼 행동도 같이 성장해야 합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행동이 따르지 못하는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 싶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도록 마음도 더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얽혀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이 불행해야 내가 행복해지는 구조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공동체 정신이라고 제 믿음은 확고합니다. 내 주변의 작은 행복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노래에 나오는 '바위'처럼 '절망하지 않고 시련에도 꿋꿋하며 세상의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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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30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또 평준화가 문제란다. 정작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학교 밖에서 들려온다. 학교라는 '체제'나 '제도'는 너무나 커다랗기에 바깥에서 봐야 제대로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학교내의 목소리는 아직 '평준화'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는 것 같다.(오늘만 해도 고교 평준화에 대한 여러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신문에 나오는 기사는 거의 믿지 않는다. 따라서 거의 보지도 않는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꼼꼼하게 적어볼 생각도 했으나, 지금은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으므로 평준화에 대해 짧은 생각만 덧붙이기로 한다. 지금의 평준화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기여하고 있다. 고등학교 교육이 거의 의무교육이 된 마당에 이러한 기회의 균등을 주는 것마저 포기한다면 심각한 교육불평등 현상이 초래될 것이다. 정말 문제는 최소한의 기회 균등마저 '정신분열증'으로 매도하는 소위 '먹물들'의 삐뚤어진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은 교육이 한 사회의 통합과 계층순환 기능을 수행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평준화야 말로 바로 이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모든 사람에게 숨쉴 수 있는 권리가 공평한 것처럼 의무교육은  모두에게 공평한 것이어야 한다.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원인은 아니다. 만약 평준화가 학력저하의 근거라면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막연히 '그럴 것이다'하는 추정말고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평준화 이후에 학력이 올랐다는 연구 결과들은 무수히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리게 된다는 미래 사회를 위해서 평준화 제도를 바꿔야한다는 주장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일단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을 떠나-그럼, 그 한 명을 위해 나머지는 희생당해야 하는 것인가? 교육이 정말 그런 것인까?- 설령 그렇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영재를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인가는 의문이다. 그런 사람은 아주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다. 지금도 영재교육원이나 영재학교를 통해 수만명을 먹여 살릴(?) 그런 천재들은 특수 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냥 '명문' 고등학교에 갈 정도의 실력으로 수만명을 먹여 살릴 천재가 될 수 있을까? 어림 없는 수작이다.

   평준화가 오히려 소득수준에 따른 학력 격차를 가져왔다는 최근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부모의 소득격차와 교육격차가 가장 적은 국가에 속하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명백한 사실이다.(언론에 소개되지 않으니 모를 수 밖에!) 이번에 나온 언론기사는 특수한 대학의 특수한 학과를 통계를 너무 맹신하고, 언론이 이를 교묘하게 자기 입맛대로 악용한 흔적이 분명하다. 그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마도 전문직 고소득층의 문화자본과 학교에서 요구하는 교육내용의 상동관계를 비교해 보는 것이 더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지 싶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정에서 받은 문화자본이 학교에서 발달시키기를 요구하는 문화자본과 비슷하기 때문에 교육 성취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연구가 더 개연성이 높을 것 같다.

   평준화가 오히려 사교육비의 증가를 가져왔다는 주장도 무리한 주장이다. 평준화가 사교육비 증가를 불러왔다는 분명한 인과관계가 설명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사교육비를 가라앉힐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평준화가 해제되면 입시 열풍은 중학교로 내려갈 것이고, 사교육시장은 그만큼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러면 고등학교 사교육시장은 줄어들 것인가? 전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사교육시장의 팽창 원인을 잘못 진단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공교육의 부실이 사교육시장을 키운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가정을 해 보자. 공교육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올라서 자기 아이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상대평가에 따른 입시 제도라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성적-성적은 곧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지표를 의미하고, 대학은 그 아이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강력한 꼬리표가 될 수 있으니까-을 얻기 위해 또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평준화 해제로 맞춤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교육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논리는 분명히 허구적이다. 평준화 해제는 사교육의 시장의 폭발적인 양적 확대와 사회적 서열화 조장으로 더 강한 사교육 욕구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평준화 해제는 고등학교의 교육과정 정상화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가 서열화되면 대학 진학하는데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반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모든 고등학교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데, 그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고등학교 생활을 판달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 단계로 내신성적 반영을 최소화하거나 없애자고 주장할 것이다.(이는 '가정'이지만, 과학고 학생들의 대량 자퇴 사태를 보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나마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지금처럼이라도 운영되고 있는 이유는 미미한 변별력이지만 내신 성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마저 없어지면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어려울 것이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제대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않고 오로지 대입만을 목표로 하는 학사 운영이 될 것이라고 본다.

   평준화 해제는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논리이다. 평준화 해제의 목소리를 사회 기득권층에서 아주 강력하다. 그들은 '평준화가 사실은 서민들에게 더 불평등을 강요하는 제도'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나 서민들은 그런 평준화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교육에서도 효율성도 무시할 수는 없다. 비단 교육제도 뿐만 아니라 어떤 제도라도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것도 국민 모두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기본교육(의무교육-사실 돈만 국가가 안 내줄 뿐이지 고등학교 교육도 의무교육과 뭐가 다른가?)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라져야 한다. 아무 곳에도 효율성이 만병통치약인 것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때가 있는 법이다.

- 하고 싶은 말은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여기까지만.[사실, 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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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언덕 2004-01-28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아프신가요? 저도 지난번 감기가 아직 다 낳지 않았는데... 조심하시구요.
중학생 딸을 둔 학부모로서 평준화에 대하여 생각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교육의 활황과 공교육의 부실 속에서 평준화 해체는 그 짐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아프신 것 빨리 낳으시구요. 여행계획 잘 세우시구요.

nrim 2004-01-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많이 아프신가요?? 얼른 나으셔야할텐데;;;
제가 비평준화 고등학교를 나왔거든요.... 고등학교부터 재수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아 정말이지.. 그 시절은 함께한 친구들을 빼면 기억하기 싫은 것 투성이로군요;;;

느티나무 2004-01-29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퍼에도 썼지만 많이 아픈 것은 아니구요. 그냥, 촌놈이 너무 맛난 걸 절제하지 못하고 그만...흑흑흑! 덕분에 기운 짱짱해졌습니다. 다음에는 맛난 걸 앞에 두고도 절제해야죠! 하하하. 재미난 경험이었어요.

2004-02-06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그냥 종이 울리면 교실에 들어가서(사실, 가끔씩은 아주 빨리, 쉬는 시간에 다른 반에서 주로 놀다가 종소리와 함께 들어가는 경우도 좀 있었다.-참고로 아이들이 무지 싫어한다.) 혼자서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반갑습니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책을 꺼내려고 사물함으로 달려가거나, 친구와 다하지 못한 이야기에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실, 몇 년동안 아이들에게 '차렷, 경례'를 시켜본 적이 없다.(어떤 반의 반장은 그게 불만이다.ㅋㅋ) 그런 인사의식이 수업을 시작하는 신호가 될 수는 있겠지만(반장이 큰소리로 차렷-경례로 구령을 붙이면 잠시 조용해진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게 싫기 때문이다. 뭐, 선생님들에 따라서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앞으로도 나는 그런 방식으로 수업을 시작하기는 싫다.

   그래서 작년 2학기부터는 다음과 같은 시를 읽기로 했다.(물론 내가 처음 시작한 방법은 아니고 같이 모임에 참여하고 계신 '이영두' 선생님의 방법을 배운 것이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 이해인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있기 떄문입니다.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균형을 유지하면서 쉽게 타오르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겸손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언제나 낮은 자리와 낮은 목소리를 즐거워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용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패배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귀하고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관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한 장씩 이 시를 나눠주고, 책 속 표지에 붙이라고 말해두었다. 그리고 내가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자~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 학생들은 내 말을 이어받아서 "나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을 읽는다. 욕심에는 수업시간마다 읽다보면 '학기가 끝날 때쯤에는 외울 수도 있겠지'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아직은 욕심에 그친 것 같다.

   나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자신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이 시가 자기 암시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발휘했으면 좋겠다. 아니, 학교에서의 생활이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인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교육의 전부가 아닐까? (그러나 내가 수업시간에 그 목표를 향해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아직은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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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교사 2004-01-2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가 수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달의 시'를 읽고 있도록 하는데... 아이들이 한달쯤 지나면 저절로 외우더라구요. 그리고 달이 넘어갈 때마다 은근히 새로운 시가 뭘까 궁금해하구요.
근데 위 시 내용이 너무 좋네요. 정말 아이들에게 자기 암시가 될 수도 있을 것같기도 하고. 주문을 걸듯이! 저도 위의 시를 한 번 읽혀 보아야겠어요.

느티나무 2004-01-2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 시를 읽힌다? 멋진 병아리선생님이시네요. 근데 다음 주에 언제 시간납니까? 가능하면 저녁에요...병아리님 발령 받고, 우리(장김준호,느티나무, 병아리교사님)가 만난 적이 있던가요?

2004-01-26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te 2015-08-1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도 학창시절 담임선생님과 함께 이 시를 읽었던 한 명의 제자입니다. 문득 이 시가 생각나 검색하다 댓글까지 쓰게 되네요. 아마 제가 선생님께서 만났던 학생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훌륭한 선생님들 덕분에 저는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혹은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려 마음으로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