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공부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선생님이나, 아이들과의 행복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더욱 치열하게 자기 삶을 가다듬고자 하는 선생님께 권합니다. (2004년 4월)
  

  □ 희망의 교육학,  파울로 프레이리, 아침이슬, 2002년
 
  □ 작은 학교가 아름답다, 보리 편집부, 보리, 1997년
 
  □ 김은형의 교육일기 1, 김은형, 나라말, 1999년
 
  □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도종환, 사계절, 2000년
 
  □ 에스메이의 일기, 에스메이 코델, 세종서적, 1999년

  □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제인 블루스틴, 푸른숲, 2003년
 
  □ 슈타이너 학교의 참교육 이야기, 고야스 미치코, 밝은누리, 2003년
 
  □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조혜정, 또하나의문화, 1996년
 
  □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파커 J. 파머, 한문화, 2000년
 
  □ 페다고지, 파울루 프레이리, 그린비, 2002년
 
  □ 프레이리의 교사론, 파울로 프레이리, 아침이슬, 2000년
 
  □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한 교사론, 송순재,고병헌,황덕명, 내일을여는책, 2002년

  □ 학생들의 심리게임, 이도영·이수연·김남옥·이동길·김규식, 중앙적성출판사, 1997년

  □ 교사와 학생 사이, 하임 G. 기너트, 양철북, 2003년
 
  □ 교사 역할 훈련, 토머스 고든, 양철북,  2003년

  □ 교육신화, 아더 W. 콤즈, 양서원, 1986년
 
  □ 빛깔이 있는 학급문집 만들기-중등, 우리교육 편집부, 우리교육, 2002년

  □ 빛깔이 있는 학급운영 1,2,3 우리교육 편집부, 우리교육, 1999년

  □ 학급활동으로 이어가는 집단상담, 배경숙, 우리교육, 2001년
 
  □ 학급 혁명-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교사의 기록, 고니시 겐지로, 사계절, 1999년
 
  □ 땅콩 선생, 드디어 인권교육하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인권교육분과, 우리교육, 2003년
 
  □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배경내, 우리교육, 2000년

  □ 가끔 아이들은 억울하다, 김대유, 우리교육, 2003년

  □ 학교를 바꿉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출판국,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판국, 2002년

  □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박홍규, 우물이있는집,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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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어른들은 ‘공부만큼 쉬운 게 어디 있냐?’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은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하고 있는 제가 생각해 볼 때 정말 그런 것도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 공부할 수 있을 때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이란 말에도 공감이 갑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것도 분명 힘든 점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과가 금방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공부가 오늘 열심히 공부했다고 해서 내일 성적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에는 왕도가 없’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같은 영어 격언 같은 것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던진 돌멩이는 물속에 가라앉아 있을 것입니다. 단지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지금껏 여러분들이 던진 돌멩이가 물속에서 튼튼한 기둥을 만들어 놓고 이제 곧 물 밖으로 찬란하게 나타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제까지 보이지 않는 기둥이 우리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오늘 갑자기 떠오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지금껏 쌓아왔던 기둥을 보기 위해서 여러분들은 오늘 다시 돌을 던져야 합니다. 어제 던진 돌이 보이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맙시다. 어제 여러분들이 던진 돌은 이제 물속에서 튼튼한 밑돌이 되어 있을 것이니 어제 공부했던 결과가 오늘 나타나지 않는다고 벌써 포기하지 맙시다. 지금이야말로 우공이산(愚公移山)-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어떤 큰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의 고사를 떠올려야 할 때입니다.

 

   지금껏 여러분들은 자기 스스로를 잘 조절해 가며 공부해 왔습니다. 저는 그런 여러분들을 무척 대견하게 여깁니다. 이제 곧 무더운 여름방학이 시작됩니다. 다시, 여러분들은 이 무더위 속을 혼자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가 이 뜨거운 여름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처럼 방학을 보낸다면 넉넉하고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가을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2004년 7월 12일에

 

* 전에 본 메시지님의 '수능성적 여름방학에 달려 있다'는 글을 복사해서 나눠주고 빈자리가 허전해서 저의 짧은 글을 붙였답니다. 학생들에게 저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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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13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티나무 2004-07-13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알아봐 주시니 미안스럽고, 고맙습니다.

메시지 2004-07-14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담당하고 있는 학원아이들이 요즘 많이 기운을 잃었습니다. 어제 대성모의고사를 본 이후 오늘 아침에는 유난히 지각생이 많더라구요. 재수, 삼수라는 힘든 길을 가는 녀석들에게 힘을 주고 싶은데 어찌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 다들 알아서 잘 해나가더니만.... 저도 편지를 써볼까 했는데 어색해서 말았는데...
편지에 느티나무님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나네요. 아이들도 잘 알고 있을거에요.

느티나무 2004-07-14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으면 좋겠어요. 우리 학교도 3학년은 모의고사치던데... 여러가지로 복잡한 심정입니다.
 

   요즘은 기말고사도 끝나고 한창 성적처리기간이다. 나도 지금까지 한 수행평가를 채점해서 학생들에게 확인시키고 있다. 지필평가-흔히 말하는 중간/기말고사-는 컴퓨터로 채점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적지만, 수행평가는 학생들에게 일일이 확인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번에 올린 수행평가 문제지를 채점했는데, 학생들이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고등학교 3학년이라 수행평가 점수로 성적이 갈리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후하게 점수를 매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만점을 받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논술 답안을 쓸 때는 어렵다고 난리더니 점수를 받아들고는 만면에 웃음이다.) 나도 고등학교 3학년 수업을 맡은 '교사'라 아이들의 내신 성적에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오늘 보충수업 시간에 수행평가 점수를 불러주고 확인시키다가 난처한 경험을 했다. 전체적으로 점수를 후하게 주면 모두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나는 대부분이 만점을 받는 상황에서는 1점이라도 낮은 점수를 받은 소수의 학생이 무척 당황해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밝고 쾌활한 친구였는데, 점수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표정이 안 좋더니, 수업시간 내내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미안했다.

   책상에 엎드려 있는 그 마음이 훤하게 읽혔다. '하필 나만 왜?'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것이고, 그런 점수를 준 나를 원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나는 왜 남들 다 받는 점수도 못 받을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어쩌면 자신이 못났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스스로가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나도 그랬으니까...) 나는 안타까워 제대로 위로의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했다.

   어쩌면 그 학생은 지금쯤은 오늘 일을 다 잊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그렇지는 않더라도 다음시간까지 그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의 능력(?)이나 지식(?)을 평가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아직 여리디 여린 학생들의 가능성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은 시기에 하는 평가라 더욱 조심스럽다.

   다시 한 번 수행평가에 대해 자문해 본다. 잘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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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3학년 남학생들이랑 수업을 하고 있으면 자꾸 체육시간에 축구하러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조른다. 저번에 몇 번 수업이 비는 시간에 축구하러 나갔더니 다른 반에서도 우리반에는 왜 안 나오냐면서 궁시렁거린다. 어제는 내가 5교시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좇아와서는 "선생님, 우리반 이 시간에 축구하는데요. 나오시면 안 되요?" 지금은 수업이 있기 때문에 곤란하고, 내일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늘은 집에서 체육복을 챙겼다. 드디어 5교시 3학년 4반 체육시간, 나는 수업이 비는 시간이었다. 화장실에서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나섰다. 체육복 반바지가 조금(?) 짧아서 신경이 쓰여, 여학생들이 모두 교실에 들어간 틈을 타 잽싸게 옷을 갈아 입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운동장에 나서서는 정말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축구도 좀 하는 편이었다. 몸싸움은 싫어했지만, 달리기도 조금 빨랐고, 특히 전진패스는 나의 주특기였는데, 모처럼 운동장에 나섰더니 생각만큼 몸이 잘 움직여 주지 않았다. 게다가 마음도 영 불안해서 더욱 경기에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6교시 수업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체육시간이 끝나기 10분 전에 체육관 안 샤워실에서 몸을 식혔다. 나와서 10분 쉬었다가 수업준비를 해서 교실로 올라갔다. 다행스럽게도 여학생들은 내가 운동장을 뛰다 온 걸 모르는 모양! ㅋ 샤워하다 튄 물 때문에 머리카락에 뭘 발랐냐고만 묻는다.

   아무튼 오늘 나의 몸상태를 확인했으니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다. 정말 조기축구팀이라도 찾아가야 하는 것일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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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고전읽기의 즐거움"(솔출판사)에서 읽은 듯 합니다. 아이들이 야단치는 제 마음을 몰라줄 때 이 글을 복사해서 건네주었지요. ^^ 

 

 아버지의 훈계


강희맹


   시장통의 후미진 곳에다 관가에서 오줌통을 설치해두고는 시장 사람들이 급할 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는데, 선비로서 몰래 그곳에다 오줌을 누는 자는 불결죄를 받는다. 시장 근방에 사는 어떤 양반집에 변변치 못한 아들이 있었는데 몰래 그곳에 가서 오줌을 누었다. 그의 아버지가 알고 호되게 야단쳤으나 아들은 듣지 않고 늘상 그곳에다 오줌을 누었다. 오줌통을 관리하는 자가 금지시키고자 하였으나 그 아비의 위세에 눌려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온 시장 사람들이 모두 그르게 여기는데도 아들은 오히려 무슨 수나 난 것처럼 여겼다. 행신을 조심하느라 그곳에다 오줌을 누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도리어 그를 비웃으면서

   "겁쟁이 같으니라구. 뭐가 겁난단 말인가. 나는 날마다 누어도 탈이 없는데, 뭐가 겁난단 말인가."

   하였다. 아버지가 그 행실을 듣고 아들을 꾸짖기를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너는 양반집 자식으로 백주 대낮에 그곳에 오줌을 누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남들이 천하게 보고 싫어할 뿐만 아니라 화가 따를지도 모르는데, 뭐 좋을 것이 있다고 그런 짓을 하느냐."

   하였다. 아들은

    "저도 처음에는 그곳에다 오줌누는 선비를 보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하였는데, 하루는  오줌이 몹시 마려워 그곳에다 오줌을 누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제가 그곳에다 오줌을 누는 것을 보고는 비웃더니 차차 비웃는 자가 줄어들고 말리는 자도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여럿이 곁에서 보더라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곳에 오줌을 눈다 해서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아버지는

    "큰일이다. 네가 이미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말았구나. 처음에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던 것은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겨 네가 행실을 고치기를 바라서였던 것이다. 중간에 차츰 드물어지긴 했어도 그때까진 그래도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 곁에서 보고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너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아라. 개나 돼지가 길바닥에 오줌을 싸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더냐. 못된 짓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것은 너를 개돼지로 보기 때문이다.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니냐."

   하자, 아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지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체로 소원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도리어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

   하니, 아버지가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 해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보아라. 세상에 부모 없는 자에게는 훈계해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아들이 나가서 남들에게 말하기를

    "노인네가 잘 알지도 못하고 나만 나무란다."

   하였는데, 얼마 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예전에 오줌누던 곳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바람이 일더니 누군가가 그의 이마를 후려쳤다. 한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후려친 자를 잡고 따지기를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 내가 여기에다 오줌눈 지 십 년이나 되었는데도 온 시장 사람들이 아무 소리 안 했는데,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러느냐?"

   하니, 후려친 자가

    "온 시장 사람들이 참고 있다가 이제서야 분풀이를 하는 것인데, 네놈이 아직 주둥아리를 놀리는가."

   하고는, 꽁꽁 묶어서 시장 한복판에 놓고는 돌을 마구 던졌다. 그 집에서 떠메고 돌아왔는데, 한 달이 넘도록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아들은 그제서야 아버지의 훈계를 생각하고는 슬피 울면서 자신을 책하기를

    "아버님 말씀이 꼭 맞았구나. 웃음 속에 칼날이 숨겨져 있고 성냄 속에 사랑이 담겼다더니, 이제 와서 아무리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자 해도 들을 길이 없구나."

   하면서, 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전의 못된 행실을 고치기로 마음먹고 마침내 착한 선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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