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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꽃 피는 마을
임의진 지음 / 이레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강진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님의 참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을 읽었다.
'직녀에게'는 남녘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부르는 입당송이다. 강진과 광주에서 하늘날마다 통일을 염원하며 '직녀에게'를 부른다는 것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 주일도 거른 일 없이 부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하고 대견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비단 남녘 북녘의 통일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평화와 일치, 천지만유 모든 생명의 합일과 조화로운 상생을 빌려 우리는 '직녀에게'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180쪽)
교회 입당송으로 부르는 '직녀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매일 예배 때 신도들과 함께 입당송을 부르는 목사님은 어떤 분일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일만도 하고, 나름대로 상상도 해 본다. 음, 아마도 갈걍갈걍한 외모에다 성격은 조용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선한 눈을 가진 사람 정도.(더구나 목사님이니!)
그러나 임의진 목사님의 성격을 똑 닮은 것 같은 이 글을 보면 먼저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부러 쓰는 것이 아니라 '고향말'이기 때문에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 같은 싱싱한 글은 물고기가 익숙한 물에서 노는 것처럼 상쾌하다. 또 그의 글처럼 그 분의 삶도 읽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는 한다. 어떻게 하면 똥 푸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도 하고, 우체부를 위해 <일 포스티노>의 OST도 들려 주고, 살림살이도 내남 것 없고.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목사님? 하지만 사람에 대한 정을 뚝뚝 나눠주시는 것은 이 목사님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퍼낼수록 더 맑은 물이 차는 샘처럼 목사님의 人情도 더욱 더 깊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목사님의 구수한 사투리가 전하는 농촌의 현실은 웃음 뒤에 마음을 짠하게 한다. 농촌에는 점점 빈집만 늘어가는, 부모 없이 크는 아이들도 있다는,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산다는, 명절이 되어도 오는 이가 없어 밤새도록 켜진 외등을 켠 집이 있다는, 사별한 가족을 그리워하며 술로 보내는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들을 전한다. 그래서 '오지게' 맛난 전라도 사투리 끝에 짜한 마음이 들어 눈을 들어 읽던 책을 멈추고 잠깐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이 수필집을 읽는 내내, 오래 전에 친구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부산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도보여행을 하려고 준비중이었을 때 친구가 기회가 되면 강진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에 꼭 남녘교회에 들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얼핏 목사님의 성함도 들어두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왜 그 때 남녘교회를 찾아가지 않았던고 후회막급이다. 책에다 이렇게 자기가 일하는 교회 자랑(?)을 잔뜩 늘어놓으셨는데... 아쉽다.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강진의 명소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로 내가 사는 남녘교회 예배당을 꼽고 싶다. 가난하고 초라한 예배당에 깃든 초랑초랑한 역사의식만큼 소중한 게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이렇게 첫손에 꼽는 것이다. 아담한 남녘교회 예배당은 온통 하얀 색깔이고 사랑방엔 참꽃이 흩날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종탑은 색깔이 벗겨지고 새똥이 묻어 있지만 예쁜 종이 걸려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새벽과 저물녘이면 종을 친다.
또한 사상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주어지게끔 국가 보안법을 없애자고 플래카드가 밖으로 내걸려 있다.
예배당 안에 걸린 십자가는 그대가 이제까지 본 십자가 가운데 가장 슬픈 형상의 십자가일 것이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대추나 무로 엮어 만든 십자가는 보는 이마다 성호를 긋게 만든다.
예배당 뜨락은 봄이면 수선화와 참꽃 진달래가 가득 피어나고 여름에는 감나무 잎이 무성하며 가을에는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 덮인 전나무와 하얀 예배당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127-128쪽)
글이 쉽다고 깨달음의 깊이가 얕은 건 아니다. 이렇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쓰면서도 생활에서 겪은 작은 일상을 깊이 성찰할 줄 아는 자세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글을 쓰시는 걸 보면, 외람되지만 목사님의 고등학교 때 꿈인 '사람'이라는 장래희망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해빈(임의진 목사님의 아들)이의 장래희망-지구를 지키는 용사 벡터맨-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 남녘교회에 가 보고 싶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그토록 좋아하신다던 모과차 한 잔 얻을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