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꽃 피는 마을
임의진 지음 / 이레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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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진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님의 참수필집 '참꽃 피는 마을'을 읽었다.

   '직녀에게'는 남녘교회에서 예배 때마다 부르는 입당송이다. 강진과 광주에서 하늘날마다 통일을 염원하며 '직녀에게'를 부른다는 것은,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 주일도 거른 일 없이 부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하고 대견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비단 남녘 북녘의 통일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평화와 일치, 천지만유 모든 생명의 합일과 조화로운 상생을 빌려 우리는 '직녀에게'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180쪽)

   교회 입당송으로 부르는 '직녀에게'는 어떤 느낌일까? 매일 예배 때 신도들과 함께 입당송을 부르는 목사님은 어떤 분일까? 이런 저런 궁금증이 일만도 하고, 나름대로 상상도 해 본다. 음, 아마도 갈걍갈걍한 외모에다 성격은 조용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선한 눈을 가진 사람 정도.(더구나 목사님이니!)

   그러나 임의진 목사님의 성격을 똑 닮은 것 같은 이 글을 보면 먼저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부러 쓰는 것이 아니라 '고향말'이기 때문에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나오는 것 같은 싱싱한 글은 물고기가 익숙한 물에서 노는 것처럼 상쾌하다. 또 그의 글처럼 그 분의 삶도 읽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는 한다. 어떻게 하면 똥 푸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 궁리도 하고, 우체부를 위해 <일 포스티노>의 OST도 들려 주고, 살림살이도 내남 것 없고.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한 목사님? 하지만 사람에 대한 정을 뚝뚝 나눠주시는 것은 이 목사님이 아니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퍼낼수록 더 맑은 물이 차는 샘처럼 목사님의 人情도 더욱 더 깊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목사님의 구수한 사투리가 전하는 농촌의 현실은 웃음 뒤에 마음을 짠하게 한다. 농촌에는 점점 빈집만 늘어가는, 부모 없이 크는 아이들도 있다는,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산다는, 명절이 되어도 오는 이가 없어 밤새도록 켜진 외등을 켠 집이 있다는, 사별한 가족을 그리워하며 술로 보내는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들을 전한다. 그래서 '오지게' 맛난 전라도 사투리 끝에 짜한 마음이 들어 눈을 들어 읽던 책을 멈추고 잠깐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이 수필집을 읽는 내내, 오래 전에 친구가 해 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내가 부산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도보여행을 하려고 준비중이었을 때 친구가 기회가 되면 강진에서 백련사로 가는 길에 꼭 남녘교회에 들르라고 했던 적이 있다. 그 때 얼핏 목사님의 성함도 들어두었던 것 같다. 지금 이 책을 읽으니 내가 왜 그 때 남녘교회를 찾아가지 않았던고 후회막급이다. 책에다 이렇게 자기가 일하는 교회 자랑(?)을 잔뜩 늘어놓으셨는데... 아쉽다. 

   나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갖고 강진의 명소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로 내가 사는 남녘교회 예배당을 꼽고 싶다. 가난하고 초라한 예배당에 깃든 초랑초랑한 역사의식만큼 소중한 게 없을 것이란 생각에 이렇게 첫손에 꼽는 것이다. 아담한 남녘교회 예배당은 온통 하얀 색깔이고 사랑방엔 참꽃이 흩날리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종탑은 색깔이 벗겨지고 새똥이 묻어 있지만 예쁜 종이 걸려 있다. 그리고 지금도 새벽과 저물녘이면 종을 친다.

   또한 사상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주어지게끔 국가 보안법을 없애자고 플래카드가 밖으로 내걸려 있다.

   예배당 안에 걸린 십자가는 그대가 이제까지 본 십자가 가운데 가장 슬픈 형상의 십자가일 것이다. 뒤틀릴 대로 뒤틀린 대추나 무로 엮어 만든 십자가는 보는 이마다 성호를 긋게 만든다.

   예배당 뜨락은 봄이면 수선화와 참꽃 진달래가 가득 피어나고 여름에는 감나무 잎이 무성하며 가을에는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 덮인 전나무와 하얀 예배당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다. (127-128쪽)

   글이 쉽다고 깨달음의 깊이가 얕은 건 아니다. 이렇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우리말을 쓰면서도 생활에서 겪은 작은 일상을 깊이 성찰할 줄 아는 자세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글을 쓰시는 걸 보면, 외람되지만 목사님의 고등학교 때 꿈인 '사람'이라는 장래희망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제 해빈(임의진 목사님의 아들)이의 장래희망-지구를 지키는 용사 벡터맨-을 위해 노력해야 할까?

- 남녘교회에 가 보고 싶다. 눈이 펄펄 내리는 날, 그토록 좋아하신다던 모과차 한 잔 얻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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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안준철의 교육에세이
안준철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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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수업을 하고 난 오후에는 시간이 금방 간다. 그래서 금쪽 같은 내 방학의 하루 하루가 손가락에서 모래가 빠지듯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다. 그래도 지금 '내일은 또 어떻게 수업을 할까'를 고민하며 오후에는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다. 이러다 보면 어느새 방학은 끝날 것이고, 이제 가을이 올 것이고, 곧 입시를 치르고 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듯, 다음 학년이 다시 '고 3 생활'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무심히 흘러간다.

   며칠 전에 안준철선생님의 교육에세이집 '그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읽었다. 안준철선생님의 책은 전에도 몇 번 읽으며 감동 받은 적이 있고, 교육잡지에 기고한 글도 구해서 읽고, 교실에서 실천해 보기도 했다. 또, 인터넷신문에 연재되는 기사도 꼼꼼하게 읽었다. 읽을 때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문제들을 담백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리도 담담하게 나타내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안준철선생님과 아이들이 만들어 가는 교실은 '천국'이다. 갈등이 없고, 모든 것이 다 완성되어 있고 완전한 공간, 사람들이 항상 기쁨으로 충만함을 느끼는 공간으로서의 '천국'이 아니라, 서로간의 갈등을 성장통(成長痛)으로 받아들이며 더불어 성장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이 교실은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천국'이다. 그러면 왜 선생님의 말은 아이들에게 통하는 것일까? 그것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철없는 아이들도 진심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다.

  '봄-교사가 된다는 것, 여름-흔들리면서 피어나는 아이들, 가을-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기다림, 겨울-작아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꿈'으로 해마다 시작되는 교실 풍경을 나눠서 담고 있다. 모든 글은 한 편 한 편이 짤막하고 쉬운 말로 교실의 상황을 풀어쓰고 있지만, 그 교육적 내용의 깊이는 명석한 교육학자도 도달하지 못한 교육적 깨달음의 경지에 있다. 이 깨달음이 현장의 교사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당연히 '현장 교육활동 체험'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차가운 머리로 쓰여진 글이 아니라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교사가 가슴으로 짜 올린 글이다.

   어느 책보다도 이 책을 보면서 내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읽으면서 흐뭇한 웃음을 짓게 한 글도 많고(생명값 이야기, 소풍날 뽑는 '베스트 드레서', 아이들과의 은밀한 눈맞춤-나도 평소에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나도 아이들과 함께 해 보고 싶은 활동도 몇 개 챙겨두었다.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점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을 '대상화'시켜서 '관리'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이 큰 다행이다. 또 나를 중심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도 큰 소득이다. 하기야 언제난 깨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실천이 문제지만......

   어쩌면 사람의 마음씨는 타고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닮으려고 해도 안준철선생님과 같을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같아지는 것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만은 교사의 성격이나 능력을 떠나서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 아닐까 싶다. 지금 우리 교육은 이 기본적인 자질에 대한 검증 없이-이런 것을 검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다면 나는 교사로 발령 받을 수 있었을까?- 교사를 양성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아무런 전망도 없이, "죽었다"하고 보충수업에 이 여름을 꼬박꼬박 바치는 나에게 이 책은 부드럽지만, 준엄하게 다시 한 번 묻는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계십니까?'라고. 나는 이 물음에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 것인가?

덧붙임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리뷰를 써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가슴이 뭉클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글이 금방 써질 것 같았다. 부러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가 공감하는 점만 정리해도 충분할 듯 했다. 그러나 나는 며칠 동안 이 리뷰를 묵혀 두었다. 막상 쓰려고 해도 막막하기만 했다. 오히려 리뷰를 쓰고 미안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제대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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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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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화두(話頭)로 세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라는 익숙한 단어들의 낯선 조합을 보며, '별 희한한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도대체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그건 어떻게 사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인도 아니고, 세계시민도 아닌, 아시아인이라니!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별난 개념, 아시아인.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물론 아시아인이다. 그러나 나는 아시아인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아시아인이 또한 아니다. 나에게 낯설게 다가온 새로운 개념, 아시아인. 아시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세상 대부분의 책이 그렇듯 이 책,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는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아시아를 우리 눈(우리라 함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한국인? 아시아인?)으로 바라볼 때 그 아시아는 우리의 과거이면서 또한 우리의 현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아는 그렇게 우리가 아니면서, 또 다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고통스럽게 지나온 모습을 보여주거나 현재 우리 사회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제일 편 '해묵은 거짓말'편에서는 아시아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잘못 알려진 사실-킬링필드와 수하르토의 쿠데타-이나 존경받는 인물들의 부정적인 모습-간디와 아키노(특히, 아키노는 우리 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을 연상하게 했다.)-을 지적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똑같은 역사적 사실을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그들도 우리처럼'에서는 아시아 항쟁의 역사를 소개하고 아시아 각국에게 한국전쟁의 의미,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참담한 문화재 도굴의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에게 5월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짚어보고 있고, 한국 전쟁이 아시아 각국에게 끼친 영향을 소개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유물을 무차별적으로 옮겨가고 있는 서구세력과 그런 현상을 방관하고 있는 무능력한 아시아 정부를 질타하고 있다.

   세 번째는 '혈통과 민족을 넘어' 아시아의 민족주의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다. 폐쇄적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부분에서는 공감이 가고, 국제결혼이 인류화합의 최전선이라는 부분에서는 '글쎄?'하는 물음과 함께 웃음도 나왔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핵무기'와 종교적 갈등으로 적대감이 높은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 지식인의 상호 이해를 위한 편지였다.

   네 번째 'Sex of Asia'에서는 아시아에서 여성이 선 자리, 아시아에서의 여성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사회적, 제도적 억압 속에 고대의 성의 자유와 건강함과 자연스러움 사라지고, 성적 억압이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구속하는 장치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가문의 후광을 업고 정치를 시작한 아시아 여성정치인들의 명암을 소개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다섯 번째 '내릴 수 없는 깃발'에서는 나잉옹(전 미얀마학생민주전선 의장), 구스마오(현 동티모르대통령), 야신(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지도자)의 자서전을 소개하고 있다. 닥터 '나잉옹'은 왜 21세기를 맞은 지금도 정글에서 싸우고 있는지 개략적이마나 알게 되었고, 구스마오는 오랜 투쟁 끝에 동티모르의 독립을 이끌어 내었고, 지금은 동티모르의 대통령으로 동티모르를 이끌고 가게된 과정도 엿볼 수 있었다. 또 얼마 전 이스라엘의 야만적 '테러'로 이제는 더 이상 자서전을 쓸 수 없게 되어버린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야신'의 간략한 자서전에도 공감이 되었다.

   지금껏 나는 동아시아인에게는 약간의 동질감과 함께 긴장감을, 동남아시아인에게는 얄팍한 물질적 우위를 바탕으로 한 우월 의식을, 중앙아시아인에게는 낯설음과 신기함을, 서아시아인에게는 이질감을 느껴왔다. 이런 느낌을 만든 근원은 아마도 '모름'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모름'을 아시아인의 눈으로 이해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해외여행 가이드북보다 훨씬 아시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런 아시아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를 더 잘 이해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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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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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훈의 두 번째 세설을 읽는 동안 독자는 불편하다. 자신이 어느 쪽에 서 있고,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든 대부분은 이 책에서 날카롭게, 의뭉스럽게, 혹은 치열하게 내뱉는 소리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라는 가정은 그만두자. 김 훈식으로 말한다면 그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다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내 생각의 끈이 팽팽하게 당겨진 느낌이었고, 책의 어떤 부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아주 입맛이 썼다. 이 '리뷰'를 쓰면서 내 불편함의 이유를 찾고자 했는데, 인터뷰 중에 이런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현장에 나와보니 삶의 바닥은 지극히 난해한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한다. 수많은 욕망과 생각의 차이들이 뒤섞여 있는 것이 삶의 현장이다. 무수한 측면과 측면들이 저마다 정의라고 주장한다. 점점 판단을 정립하기 어렵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는 근원적 문제보다 존중과 타협이 중요하다. 그 어느 것도 절대 선이라고 주장할 수 없고, 절대 악으로 반박될 수도 없는 나름의 사연과 치열함이 현장을 복잡하게 만든다.(사무라이, 예술가 그리고 김훈, 236쪽)

   그가 지금껏 이런 관점으로 글을 써왔다는 점에서 보면 이 말은 분명 사실이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 새삼 '절감한다'고까지 말한 것은 과장일 수도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오랜 기자생활에서 나온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글쓰기를 너무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이 같은 그의 생각은 이 책 전체에 일관되게 보여지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없는 이 총체적 비극의 지옥 속에서 한 포로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일은 얼마나 무력하고 가엾은가. 그러나 이 가엾음을 진실로 가엾게 여기지 않는다면 인간은 왜 이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영원히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고통의 근원을 사유하며, 86쪽)

   우리는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화해하거나 청산할 수 있다. 화해할 수 없는 대목이 있을 것이다.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화와 단죄조차도 사실의 바탕에 입각할 수밖에 없다. 마침내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의 불화는 역사를 도덕적으로 긴장시켜 줄 수 있다. 그리고 치욕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사람들에 의하여 불화는 더욱 깊어져가고 있다. (치욕, 105쪽)

   김윤식 씨의 큰딸 김선명 씨는 카지노에서 딜러로 일한다. 김선명 씨뿐 아니라 이 카지노에서 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지방 광부의 자녀들이다. 젊은이들은 카지노, 호텔로 변해버린 고향을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았다. 김선명 씨는 "옛 모습이나 지금의 모습이나 양쪽 다 내 고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늙은 광부가 진폐로 쓰러져가고 인간의 삶은 이렇게 끝없이 이어져가고 있었다. (인간은 수몰되지 않는다, 179쪽)

   나는 아직도 어린 탓인지 이런 문제를 '당위'로 해결하려고 든다. 그러나 김훈의 공세적인 질문은 나를 압박한다. 나의 당위적 인식이 현장의, 사실의 무수한 다른 측면을 아니냐고. 나는 내가 당위로 여기는 여러 문제들을 잘근잘근 잘라서 내가 못 본 다른 단면들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하는 그가 못마땅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때문에 내 인식의 틀이 무너지는 것을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삶의 현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고, 어부와 함께 배를 타기도 하며 현장 기자가 되기도 한다. 그가 현장을 겪으면서 예리하게 지적하는 세설은 독자들의 엉성한 인식의 틈새를 가볍게 허물고 저만큼 가버린다. 그의 세설은 사람들을 한 대 쳐놓고, 맞은 사람이 정신을 차릴 때쯤이면 사뿐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그가 늘 중요하게 여기는 '현장에서 본 사실' 중심의 글쓰기는 어떤 사건의 과정과 흐름의 맥락 속에서 '판단'하지 못하는 오류를 낳은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표적인 부분이 '아이들은 청순하기만 한데'인 것 같다. 내가 잘 모르는 '치열한 현장의 사실'이 있는지 몰라도 이 같은 '양비론'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과연 어떤 사건의 여러 측면들을 보여주면 그가 찾고자 하는 '사실'의 진실은 드러나는 것일까. 의문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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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6-02-07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이 느티나무가 그 느티나무였군요..ㅋㅋ 우연히 만나게 되니 반가운걸요~
그의 '양비론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별다섯을 주셨군요. 사봐야겠어요. 개인적으로 김훈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절집나무
고규홍 지음, 김성철 사진 / 들녘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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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이 책과 상관 없는 이야기

   이 책은 알라딘 서재를 돌아다니다 kimji님의 서재에서 이 책에 대한 짧은 평을 보고는 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만 샀던 건 아니라서 내가 언제 이 책을 읽게 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시 서재를 돌아다니다가 메시지님의 서재에 올려진 이 책 리뷰를 읽고는 다른 책보다 먼저 이 책을 펼쳤다.

   컴퓨터에서 내 신분을 밝히는 별명은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고향을 지키는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동네 사람들이 어울릴 때는 넉넉한 그늘을 만들고 시원한 바람을 부르는 넉넉한 마음씨를 가진 나무이고, 사람들이 하나 둘 고향을 떠났어도 늘 고향 마음 입구를 지키고 서 있는, 그래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이라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그런 나무이다. 나는 그런 느티나무를 닮은 사람이고 싶다.(이 책에 느티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다시 한 번 내 별명을 만든 기억이 떠올랐다.)

  •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

   이 책을 읽기 전에 읽은 책이 이시우님의 '민통선 평화 기행'이었다. 이 책의 제일 처음 나오는 절은 '건봉사'인데, '민통선 평화 기행'의 마지막 기행에 건봉사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또 건봉사 이야기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앞에서도 대충 읽은 내용이라 뭔지 모를 답답함을 느꼈다.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절집'과 '나무'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잔뜩 기대했는데, 처음부터 대충 아는 내용이면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 이 책을 읽어가면서 든 생각

   건봉사 한 부분만 놓고 보면 내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이다. 사실, 건봉사는 내가 사는 곳에서 너무나 멀다.(그래서, 이 책을 들고 실제로 건봉사에 가 볼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이 책 한 장 한 장에 소개된 모두 서른 세 곳의 절집에 대한 내력과 그 절집에 살고 있는 나무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고, 소박하고 담담하서도 풍부하고 깊다. 높임말로 두런두런 건네는 지은이의 글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넨다. 처음 이런 글을 읽을 때 느낀 나의 답답함은 지은이의 일관된 글쓰기에 벌써 익숙해져서 아무 곳에서나 책을 펼치게 되었다. 아마도 나 자신도 모르게 '자극적인 글'을 읽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복잡한 절의 내력과 나무의 특성을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글의 저자가 신문기사를 오랫동안 써 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절을 찾아가기 위한 Tip을 꼼꼼하게 적어둔 것도 지은이의 기자 정신이 발휘된 것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본 누구라도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똑같이 셔터를 눌러 보고 싶게 만드는 멋진 사진도 이 책의 장점이다. 나야 사진을 볼 줄 모르는 눈뜬 장님이지만, 그래도 계절별로 그 절집과 나무가 가장 멋진 때를 골라 찍은 사진에 담긴, 그 정성스러움이 아주 돋보인다.

  • 이 책을 덮고 나서 떠오른 다짐

   절집이나 나무와 관련된 책들은 몇 권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절집과, 함께 살고 있는 나무에 대한 내력을 함께 소개한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런 관점으로 쓰여진 책은 드문 것 같다.그러면서 새삼 이 책처럼 절집과 나무를 묶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절집과 나무의 엮임은 무척 자연스럽기조차 하다.

   이제 내가 다시 절집을 찾아간다면 아마 나도 모르게 절집나무에 먼저 눈길이 갈 것 같다. 조금 더 애정어린 눈으로 나무를 보면서 마음을 건넬 수 있을 것도 같다. 나무가 없다면 절은 얼마나 황량할까? 아니, 나무가 없는 절집은 아예 '존재'를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껏 절집에 대한 이야기만 무성했지 절집의 배경인 '절집나무'에 대한 관심은 부족했던 것이다. 도대체 나는 지금껏 무엇을 보면서 산을 오르고, 절집에 찾고, 숲을 걸은 것일까? 아직도 아는 것이 없는 나는 절에 들어갈 때 가져가야할 책이 이제 한 권 더 생긴 셈이다. 나에게 들고 다닐 책 한 권을 더 만들어준 지은이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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