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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라는 구절을 어디서 읽었더라?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라……. 육신이야 ‘영원’이란 말과는 애초에 끈이 닿지 않는 말일 테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이 책의 제목인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듯,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바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삶이 살아있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이들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 어떤 식으로든 이들의 행동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이렇기에 그들의 삶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 사라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서경식 씨가 소개하고 있는 책 속의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는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은 무서운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 싸움, 고뇌, 환희를, 다시 말해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을 빠르게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그것만큼 인간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한국어판을 내면서, 6쪽), 라는 구절이 들어 있는 책의 앞머리를 볼 때, 저자는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삶을 통해 현재의 우리 삶을 성찰하지 못하는, 그래서 한갓 그들의 삶을 과거의 일로 치부해 버리는 우리들의 태도가 못내 안타깝고 그 결과로 빚어질 현실이 무서운 모양이다.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야 할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결국,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 때문이고, 불행한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그들의 불행한 과거가 우리의 미래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들은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미 이들 중 다수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지금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의 인물들은 처음에는 일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음에도 지금은 대부분의 일본인들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는,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았던 사람들이다. 나는 스페인이나 독일에서 일어난 전체주의에 대항한 사람들의 이름 몇은 그래도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에 저항한 사람들은 정말 낯설었다. 특히나 일본인들의 이름은 이상하게도 기억하기가 더욱 어렵다. 하기야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 다른 책에서 이 인물들과 마주친다고 해도 그 이름마저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서 아쉽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이 책에서 소개된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만들어낸 그림자이자 영웅들이다. 시대에 맞서 온몸으로 살아야 했던 이 사람들이 살았던 20세기는 어떤 시대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 군부독재, 외세강점, 전체주의 등으로 집단의 광기가 개인(인간)의 이성을 억압하던 시대였다. 책을 읽으며 앞에 떠오른 낱말을 묶을 수 있는 단어로 나는 ‘억압’이라는 말을 고르겠다. 사람이 살았던 시대치고, 어느 시대인들 억압이 없던 적은 없었겠지만, 에릭 홉스봄의 평가를 살짝 빌려 나타낸다면, 20세기는 ‘극단적인 억압의 시대’라고 불러 마땅하다.(영국의 역사가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라고 평했다.)
이 책은 시대의 억압에 저항한 인물들의 짧은 기록물이다. 부제처럼, 온몸으로 살아간 사람들에게 대여섯 페이지는 너무한 것 아닌가 싶다가도 원래 20세기 천 명의 인물, 이라는 책의 일부분을 분담해서 집필하게 된 저자가 일관된 주제 아래 고른 대상자를 소개한 글이라 길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도 남는 아쉬움은 여전하다. 한 권의 평전으로 엮어도 모자랄 인물의 생애가 턱없이 짧게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이름도 처음 듣는 인물도 여럿이고, 이름만 들어 본 인물은 더욱 많은데, 이 사람들을 이렇게 그냥 스치듯 지나치고, 내 기억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이런 책읽기도 괜찮을 지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이런 제한적인 지면(紙面) 때문에 각 인물편의 구성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 장면을 먼저 보여주고 간략하게나마 인물의 생애가 정리된 형식을 띄고 있다. 그 뒤에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물의 행적이 주는 시대적 의미와 역사적 의의를 짤막하게 서술하였다.(쓰고 보니 전통적인 평전 형식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각 인물마다 뒷장에는 출판사의 수고로 인물의 생애와 가장 관련이 깊은 참고자료도 실려 있다.
아무래도 각 인물에 대한 내용 소개가 짧아서 인물들의 생애를 파악하는데 약간 헐거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면 참고 도서를 바탕으로 새로운 책을 읽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군데군데 깊은 생각을 퍼 올려서 고운 채로 거른 듯한 서경식 특유의 문장이 좋다. 서경식의 글은 한 문장을 읽고 호흡을 멈춰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의미를 더듬어 본 다음, 다음 문장으로 읽어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듯 보이는 문장 속에 붙어 있는 예리한 인식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두 번 을 읽으면 의미가 더욱 풍성해지는 글이라 읽을수록 새로운 맛이 난다.
저자나 편집진의 의도였겠지만, 이 책은 편의상 3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제1부는 스페인의 시인으로 프랑코 정권에 암살된 페레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에서 미국의 게이 운동가인 하비 밀크를 다룬 부분까지이고. 제 2부는 일본적인 것에 도전한 화가 사에키 유조부터 실존 인물이 아니라 야마구치 히토미의 소설 속의 인물로 양심적인 소시민의 전형인 에브라 만 부분까지이며, 제 3부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에서부터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독재정권에 체포된 두 형(서승, 서준식)의 감옥생활을 뒷바라지했던 저자의 어머니인 오기순까지이다.
제 1부에는 주로 1930-1940년에 준동했던 독일의 나치즘, 스페인의 파시즘에 저항했던 인물, 라틴 아메리카의 새로운 혁명을 주도하거나 보수 반동의 군사 쿠데타에 저항한 인물, 아메리카의 억압적 상황에 맞선 인물,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고난(苦難)한 삶을 문학으로 표현한 인물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은 억압자들에 맞서 들었던 무기는 문학과 예술, 총, 그리고 자신의 온몸이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20세기를 피와 땀으로 얼룩지게 했던 그 이름들은, 페레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파블로 네루다, 잭 시라이, 파블로 카잘스, 사코와 반제티, 에른스트 톨러, 카임 수틴, 바실리 칸딘스키, 에리히 케스트너, 숄 남매, 안네 프랑크, 살바도르 아옌데, 빅토르 하라,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폴 니장, 프란츠 파농, 프리모 레비, 갓산 카나파니, 하비 밀크 등이다.
제 1부에서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는 구절은 나치의 탄압을 피해 숨어살면서 나치체제의 야만성과 나치하의 유태인이 겪은 고통을 일기로 쓴 안네 프랑크의 말이다.
“나는 전쟁의 책임이 위대한 사람들과 정치가, 자본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책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싫었다면 너도나도 들고 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어야지요.”(84쪽) 어린 소녀의 눈으로 억압의 시대에 침묵했던 우리 모두의 비겁함을 질타하는 절규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을 울린다. 만약, 지금 안네가 살아있다면, 왜 우리를 기억하지 않느냐고 되묻지 않을까?
제 2부에는 주로 일본의 군국주의, 천황제에 저항했던 인물들이 소개된다. 당연히 일본인들이 대다수지만, 일부는 일본인들과 관련이 있는 외국인들도 함께 다루고 있다. 이들은 주로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를 견디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한 인물들이다. 그들은 화가로, 시인으로, 소설가로, 저널리스트로서 불길한 억압의 시대에 진입한 일본 사회를 증언했다. 그러나, 문제는 저자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금의 일본인들조차도 이들을 기억하고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일본이 이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에 나와 있는 “참화의 기억과 파국의 예감에마저 편안하게 익숙해져버려 이를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병들어 있는 것이다. ‘유일한 피폭국 일본’이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히로시마와 나사사키에는 적지 않은 수의 조선인, 중국인들도 희생되었다. 게다가 핵물질에 오렴된 남태평양의 섬들이 있으며, 체르노빌에서도 방사능 유출로 인한 엄청난 재해가 있었다. 그 후로 반세기……. 사람들은 하라 다미키를 기억하고 있을까? 상투어만이 저 홀로 활보하고 있지만, 미일안보체제의 공고화, 비핵3원칙의 형해화, 그리고 평화주의 헌법을 내던져버리려는 최근의 움직임에 이르기까지 전후 일본의 현실은 하라 다미키가 고통스럽게 예감했던 대로 수많은 희생자들의 기원을 계속 배반하고 있다.”(180쪽) 에서 보듯이 지금의 일본인들에겐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인식’, ‘참화의 기억과 파국의 예감에마저 편안하게 익숙해진’ 일본의 현실에서는 군국주의와 천황제에 반대하고 저항한 이들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일본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 인물들은, 사에키 유조, 아이미쓰, 가모이 레이 ,마키무라 고우, 오구마 히데오, 하라 다미키, 가네코 후미코, 하세가와 데루, 리하르트 조르게, 오자키 호쓰미, 아그네스 스메들리, 가와카미 하지메, 에브리 만 등이다.
제 3부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제국주의에 저항하거나 해방 이후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한 우리나라의 인물, 재일(在日) 조선인으로 살면서 일본의 조선인차별에 저항했던 인물을 주로 다루고 있다. 안중근, 김구, 홍범도, 김산, 양징위, 이극로, 조문상, 김사량,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 윤이상, 이진우, 양정명, 오기순 등이 그들인데,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인물들은 독립운동가를 주로 다루고 있으며 해방이후에는 문학가를 다루고 있다. 재일 조선인으로서는 제국주의 전쟁의 전범이 된 인물도 있고, 일본 내 차별이 발단이 되어 저항하다가 자신과 일본 사회 전체에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온 인물도 있다.
그 중에서도 저자가 20세기를 겪어 온 조선 민족을 상징하는 인물로 내세운 이는 바로 자신의 어머니 오기순이다.
“오기순은 재일조선인 1세 여성으로서 차별과 빈곤을 겪었다. 40년이 지나 재회한 조국은 군사독재의 암흑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 60년의 생애는 금세기 조선민족이 경험한 식민지배와 민족분단을 온몸으로 체현한 듯하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시대의 학대받고 멸시당하는 민중들, 특히 그 어머니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뜻하지 않는 때에 예측을 뛰어넘어 빛을 발하는 저 민중들의 강인함과 지혜는 오기순의 것이기도 하다. (327쪽)”
이쯤되면, 말 그대로 온몸으로 살아낸 20세기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억압의 시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항했으며, 때로는 이 저항이 당사자에게 비참한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비참한 결과를 통해서라도 역사는 진보하여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미 역사가 우리에게 수많은 사례를 통해 알려줬듯이,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기억하지 못할 때 우리는 다시 우리가 지나왔다고 생각해 온 질곡에 빠질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의 삶을 기억하고 오늘에 되새겨야 하는 것은 더 나은 우리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