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아, 사람아!
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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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문화혁명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한다기보다는 그러한 역사적 격동이 인간과 인간 관계에 어떠한 충격을 주었으며 또 인간과 인간 관계는 이러한 격동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007쪽쪽

마르크스, 엥겔스의 저작을 잘 읽어 보라구. 되풀이해서 읽는 동안에 두 위인의 마음속에는 '인간'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씌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그의 이론, 그의 실천은 모두 이 '인간'을 실현하기 위한 것, 인간을 '인간'일 수 없도록 만들고 있는 모든 현상과 그 원인을 소멸시키기 위한 것이었어.-129쪽쪽

먼 길을 갈 때는 가벼운 짐도 어깨를 파고들지. 갈 길은 멀고 당신의 짐은 너무 무거워.-161쪽쪽

말을 하는 것은 항상 나였지만 진짜 '권력자'는 '그'였던 것이다.-162쪽쪽

잘 보이지 않는데다가 어느 누구도, 그를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가 없다. '마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그의 경우 영원히 말뿐이고 개념뿐인 것이다.
생활이란 것은 참으로 사람을 교육시키는 힘이 있다.-165쪽쪽

객관적 조건에 대한 반응은 지나치게 둔해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민감해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되는 법이다.-175쪽쪽

개성은 말이지, 인생이나 사물에 대해 독자적인 견해를 갖고 독특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말하지.-180쪽쪽

저마다 '인간'의 소재에서부터 진정한 인간으로 변해 가는 거야. 다른 인생길이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고, 다른 인간이 또다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지. 어떤 길에나 인간이 있고 어떤 인간 뒤에도 길이 있어. 길에는 우여곡절이 있고 인간에게는 부침(浮沈)이 있어. 길은 서로 교차되고 인간은 서로 부딪히지. 그것이 인생이야.-233쪽쪽

사상은 원래 손쉽게 확립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손쉽게 확립된 사상은 확고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237쪽쪽

인간의 마음은 철로 되어 있지는 않다. 밖에서 열을 가해 뜨겁게 만들 수는 없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연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참외는 제철이 되어야만 단맛이 나는 법이다. 억지로 받아들일 필요가 어디 있는가-241쪽쪽

강제는 사람에게 억압을 느끼게 할 뿐이고 자기의 진심을 감추게 함으로써 드디어는 허위로 떨어지게 만든다.-242쪽쪽

인생이란 것은 과거 우리가 상상했던 것처럼 멋진 것은 아니다. 하물며 과거에 상상했던 것만큼 무서운 것도 아니다. 인생은 인생일 따름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고 끊임없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바로 인생의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인간의 영혼을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드높이 단련시키기도 한다. -367쪽쪽

그들은 발언할 사람들이 아니다. 어떠한 문제의 토론에서도 그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의결할 때에만 역할을 발휘할 뿐인 것이다. 오늘도 그들은 자기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얼굴로, 마치 어린애를 끌고 공원 입구에서 해바라기라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긋한 모습을 하고 있다. -400쪽쪽

습관, 습관.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사람들은 모두 지위를 보고 있다. 사람의 가치는 물론, 그 사람의 말의 가치도 지위에 따라서 다른 법이다. 지위가 높으면 말도 무겁고 지위가 낮으면 말도 가볍다.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사실이다. 사실은 흔히 진리보다도 설득력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 우리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일까?-402쪽쪽

루쉰은 변명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인 자는 불쌍하다고 했었다. 나는 변명할 생각이 없다. -461쪽쪽

인생이란 얻는 것과 잃는 것 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얻는 것을 좋아하고 잃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잃는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잃지 않으면 얻을 수도 없는 법이다. -467쪽쪽

예술의 진실은 생활의 진실에 대한 모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진실에 대한 작가의 능동적이고도 정확한 반영인 것이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예술 창작의 최고 임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예술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 태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진실은 생활의 박진적인 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생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태도 및 그 인식과 태도의 적확하고도 생생한 표현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476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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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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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간지럽고 아픈 부분을 이렇게나 간결하게 짚어준 사람이 내 인생에 또 있었으랴. 공부 못하는 죄를 추궁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못하는 서러움을 이해 받는 것은 생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물러터진 내 마음은 완전히 물에 만 휴지처럼 흐물흐물해져서, 예쁘고 멋진 데다 현명하기까지 한 박 선생님 앞에서 때아닌 눈물까지 한 방울 선을 보일 뻔했다.-058쪽쪽

선생님이 물으시는 대로 조심스럽게 대답을 하면서 나는 뜻밖에도 후련한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 이런 이야기들을 물오본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다들 착하고 똑똑한 영주, 미련 맞고 덜렁대는 동구라고만 생각했다. 커튼을 젖히고 무대 뒤편으로 가보면 그곳에는 아직 어리고 미숙한 영주, 생각 깊고 마음 넓은 동구가 있었다. 선생님이 지금 처음으로, 어두운 무대 뒤편에 쪼그리고 있는 착하고 멋진 나를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순간이었다.-097쪽쪽

하지만 앞으로 우리 나라 민주화의 여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권력은 정부나 여당이 아니라 군부라구. 이 나라의 18년 군부독재가 박정희 일개인의 똥배짱 하나로 유지되었겠어? 그 긴 세월 동안 사람들은 독재의 질서에 익숙해졌어. 박정희가 죽고 나서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통곡하는 사람들을 봐. 그들은 민주주의를 원치 않고 있어. 누구든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독재자에게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의탁하고 싶어한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맞닥뜨리게 되면 무능하다느니, 권위가 없다느니, 산만하다느니 하면 불평을 늘어놓게 되지.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구? 그들도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서 저항할 수 없을 거라구? 아니야, 독재에 잘 길들여진 사람들은 또 다른 독재가 자라날 수 있는 가장 비옥한 밑거름이야. 이렇게 기름진 밭이 있는데 독재라는 질길 덩굴이 왜 성장을 멈추겠어?-216쪽쪽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살아간단다. 네 힘으로 당장 고칠 수는 없어. 중요한 건 네게 나중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잘 하는 거야.-298쪽쪽

할머니처럼 세상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나는 마음 한편으로 할머니가 부러워졌다. 하지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한편 그 사람에 맞춰서 좀더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다른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306쪽쪽

우리 나라의 모든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누비는 강건한 트럭 운전사가 될 것이다. 트럭 운전사가 되어 첫 월급을 탄다면 제일 먼저 선생님의 향수를 사야겠다. 선생님이 남겨주신 손수건에, 내 뇌수 가장 깊은 곳에 새겨진 그 향기를 더해서 아주 오랫동안이라도 선생님을 기다릴 언제나 신선한 힘을 얻을 것이다. 선생님과 나는 어느 모퉁이, 어느 골목길에서 마주치게 될까. 세상의 어느 알지 못할 모퉁이에서 선생님을 만날 때, 선생님이 눈빛만으로도 나를 알아보고 두 팔을 벌리실 그 순간을 생각하기만 해도 나는 가슴이 뛰었다.-313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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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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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흔히, ‘OO에 눈이 멀었다’는 표현을 한다. 그 OO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으나, 자신의 온 관심이 그 OO이라는 것에만 집중되어 다른 주변의 상황이나 사물을 잘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할 때 쓴다. 만약 그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이 책은 만약 ‘우리 모두가 눈이 멀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를 상상해 본 소설이다. 대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치고 있는 심각하면서도 예리한 주제도 흥미롭지만, 이 책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단문 위주의 문장과 쉼표와 마침표만 있는 문장부호 등이 있어 책을 읽는 것 자체도 만만치 않은 즐거움과 호기심이 생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한 좋은 리뷰를 썼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내가 조금 더 보태고 싶은 부분만 기록하고 싶다.


1. 빛나는 아포리즘의 보고(寶庫)

   이 소설의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것은 아포리즘으로 읽을 수 있는 구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만약에 책에 처음부터 밑줄을 치기 시작했다면 이 책을 다 읽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들었을 거라고 확신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이 책은 꼼꼼하게 표시를 해 가면서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이런 구절들이 눈에 들어왔다. 


- 두려움은 실명의 원인이 될 수 있어요, 그거야말로 진리로군, 그것보다 더 참된 말은 있을 수 없어, 우리는 눈이 머는 순간 이미 눈이 멀어있었소, 두려움 때문에 눈이 먼 거지,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계속 눈이 멀어있을 것이고.

-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2. 인간다움은 부끄러움을 아는 것!

   이 글을 통해서 볼 때 인간다움의 정체는 다름 아닌 ‘부끄러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자기 속에, 자기 행동에 대해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평가할 눈을 가진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게 바로 ‘자의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내 안의 이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도록 나를 설득하기도 하고 격려하기도 하며, 때로는 다그치기도 한다. 결국  이 사람은 내 마음 속에 살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가 있어야 활동을 시작하는 불가사의한 존재인 것이다. 언제나 나의 행동을 보고 있다는 가정 안에서 나의 행동을 따라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자질이다.

   이 책에서 가정하고 있는 ‘눈이 멀었다’는 표현은 인간이 자기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 모두가 눈이 멀어서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모른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내 마음 속의 나도 더 이상 나에게 더 이상 ‘인간다움’을 강요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머지않아 소설의 가상 상황이 현실의 공포로 변할 수 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자 부끄러움을 잃어버린다. 이는 곧 인간다움의 상실이다. 부끄러움을 잃어버린 ‘인간’은 점차 절도, 폭력, 강간, 살인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며, 그 가운데에서도 폭력에 기반을 둔 권력이 생겨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야만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에 무기력하게 당하거나 굴종하게 된다.

   이제 문제는 결론이 비관적이냐 희망적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결론이 지금의 현실 상황에 비춰 보아서 얼마나 진실한 것이냐를 따지는 것이다.


3. 우리는 이미 눈이 먼 것일까? 

   많은 사람들의 리뷰를 읽으며 모두가 탁월한 지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도 우리는 이미 '눈이 멀었다'는 자각은 이 책의 작가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있기에 눈이 멀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는 눈이 먼 것이 아닐까라고 의심을 가져볼 때, 과연 우리의 어떤 상황을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좀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사람들이 자기 문제이기도 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두고 생각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눈이 먼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관심이 있는 기사들은 어쩌다 포털사이트의 댓글까지 읽어 볼 때가 있는데, 그 때마다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 수준이 점차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멀거린다. 시민들의 합법적인 시위나 노조의 합법적인 파업 등과 같은 집단행동에 보이는 네티즌들의 과격한(?) 반응은 그들이 과격하다고 욕하는 행동보다 훨씬 더 과격한 수준이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금 나의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에 제도화되고 정당화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한 나를 차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옆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차별’하는, 뻔히 보이는 현실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는, 벌써 오래전에 눈이 멀었지만 아직 우리가 눈멀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독특한 문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현실의 문제와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어서 제기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이 소설은 그 명성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소설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읽고, 진지하게 이야기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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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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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도 아내랑 얘기를 했지만, 나는 알라딘의 서재를 통해서 좋은 책을 참 많이 알게 되었고, 그것을 늘 고맙게 생각한다. 만약 내가 서재를 몰랐다면 아마도 읽을 책이 바닥이 나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을 것인데, 알면 알수록 더욱 더 읽을 게 많아지는 게 책의 세계라는 것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그 여러 권의 책 중에서도 손꼽을 수 있는 멋진 작품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들고 싶다. 나는 이 책은 지금껏 열 권 쯤 샀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려고 말이다. 짧은 메시지와 함께 보낸 책은 이내 읽은 사람들의 기쁨과 깊은 감동을 담아서 나에게 메일로 되돌아왔다. 특히, 서른이 넘은 사람들에게서는 공치사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이렇게 좋은 책을 알게 해 준데 대한 고마움을 담은 편지도 받았다. (앞으로도 여전히 나의 책 선물 목록 제일 앞자리는 이 소설일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홀로 밭을 가는 노인 복귀의 기이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황당한 인생을 소개하는 이 소설이 우리네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회고의 말하기방식에 있는 것 같다. 복귀는 자기가 살아온 끔찍한 삶을 달관한 사람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소설의 패기가 없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인간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기’에 ‘패기가 없다’는 평가는 이 소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온 ‘삶의 오롯한 진실’을 담고 있다는 평가에 견준다면 기꺼이 감수해도 될 만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에서 나오지 않은 삶의 희망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책에서 역사는 각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복귀라는 한 인물과 그 가족을 통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복귀와 그의 가족들은 혼란스러운 중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복귀 가족의 삶은 멀리서는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대약진 운동과 59년 대기근, 문화대혁명 등,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겐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되는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또한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수 많은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이다.

 

   복귀의 가족은 혼란스러운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차례차례 죽게 되는데, 대부분의 죽음이 인물의 성격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귀의 가족들이 살아가야만 했던 당대의 현실 때문이었다.

   대변을 보다 죽게 되는 아버지, 국공 내전에 끌려갔다 와보니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 복귀와 함께 죽을 고생만 하다가 죽게 되는 아내 가진, 헌혈을 하려다가 의사의 실수로 너무 많은 피를 뽑아버려 죽게 된 아들 유경, 이희와 결혼해 아이를 낳다가 죽은 귀머거리 딸 봉하, 공사장에서 일하다 콘크리트 틈새에 끼여 죽게 되는 편두 사위 이희, 시름시름 앓다 삶은 콩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터져 죽은 손자 고근……. 이들이 차례로 복귀의 곁을 떠났고 복귀는 결국 소 한 마리와 노년을 보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 같다. 이런 인생도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도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살아야 하는가? 작가 자신은 이런 말로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해 두고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나도 작가의 질문을 씹어본다. 우리도 가끔은 사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곧잘 말한다. 그러면서도 늘 오늘의 고통스러운 삶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줄 밑거름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결국엔 현재 우리의 고통스러운 삶이 지나가고 나면 이 고통 속에서 피어난 그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화의 소설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 보건데, 우리가 눈물을 보태며 고통스러운 강을 건너더라도 그 강 건너엔 우리가 기대한 그 무엇도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네 삶은 비루한 것인가? 희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희망이 없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삶이 비루하다는 데는 대체로 수긍한다. 그러면 그런 비루한 삶은 왜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돌려주고 싶다-살지 않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고? 사는 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한 번이라도 책을 읽고 울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특히 죽은 아들 유경이의 무덤을 찾아가는 복귀와 가진, 아들의 무덤 앞에 엎드린 가진의 모습을 읽을 때에는 책 읽는 걸 한참이나 멈추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또 하나 소설을 읽으면서 더욱 마음이 아릿하게 느껴진 이유는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의 삶은 최근까지 우리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조상들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많은 부분이 겹쳐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초인적인 인내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폭력을 견디며 근근이 살아온 우리 조상들-결국 나의 부모님이 아니시겠는가-의 삶이 겹쳐져서 더욱 가슴이 찡했다.


   리뷰랍시고 대충이라도 쓰고 보니, 이 책의 리뷰만큼은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화유산답사기의 유홍준 씨가 감은사를 보고 말한 것처럼 쓰면 소설에 누가 되지 않는 리뷰가 될까? 리뷰의 처음부터 끝까지 - 아! 위대하도다, 살아간다는 것이여! 아! 위대하도다, 살아간다는 것이여! 아! 위대하도다…… 

 

   자, 현재 삶의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두고 한 번이라도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주저 없이 이 책으로 밤을 지새우며 살아간다는 것의 위대함을 음미해 보기를 바랄 뿐이다.

 

* 1년 전에 읽었던 책의 리뷰도 이렇게 써지는 걸 보니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이 책의 리뷰를 쓰지 않고는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점을 한 번 더 언급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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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8-19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죠..위화 작가의 글솜씨는..정말 너무나 탁월하구요..

느티나무 2005-08-1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였다는 말 밖에 더 무슨 말을 보탤 수 있을까요? ㅎㅎ

심상이최고야 2005-08-2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셤 공부 하다가 갑자기 이주의 마이리뷰가 궁금해서 와 보니 이렇게 기쁜 소식이 있다니!! ㅋㅋ
축하드려요^^

해콩 2005-08-22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허삼관매혈기]도 디게 좋더만요..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해요~ 리뷰 당첨은 당연한 결과인듯.. 샘의 소개로 알라딘에서 산 책이 얼마야~~

느티나무 2005-08-27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상이 최고야님, 덕분이지요 ^^ 응원의 도움이 컸답니다.

느티나무 2005-08-27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콩님, 맞아요. 허삼관 매혈기도 좋지요. 좋은 책 소개라니요? 알라딘에서 산 책, 정말 많지요? 저도 그래요. 그래도 멈춰지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요? 어쩌죠?
 
 전출처 : 심상이최고야 > 기억은 약한자의 마지막 무기이다
십자군 이야기 1 - 충격과 공포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5
김태권 지음 / 길찾기 / 2003년 12월
절판


기억의 불씨가 살아있는 한, 숨죽여 있던 사람들은 현재와 미래의 불의를 좌시하지 않는다. 기회가 올 때마다 기억을 가진 사람들은 일어서서 싸울 것이다. 기억이 남아있는 한, 폭력은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다. 기억은, 살아남는다는 것 그 자체와 더불어, 폭력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가장 마지막 무기이다. (중략)
독선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는 십자군 전쟁의 기억은, 폭력에 맞서는 모든 인류의 무기가 된다.-5쪽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의 끈을 놓지 않는 이상, 폭력은 언젠가 물러나고 말 것이다. 이러한 희망을, 독자 한 분 한 분과 함께 이야기 하고 싶다. 그래서 이 책을 만들었다. 만화는 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7쪽

비인간화는...파괴하고 살상할 대상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물건'이나 징그러운 '벌레'정도로 인식하게 만드는 세뇌과정이다. 미국인들은 베트남전이나 한국전쟁에서 한국 민간인들을 살상할 때 이 작은 아시아인을 '국gook'이라 불렀다. 상대방을 인간이 아닌 열등 생물로 규정할 때 자신의 살상 행동이 정당화된다. 사람들이 벌레나 짐승을 죽일 때 도덕적 자의식을 갖지 않는 것과 거의 같은 종류의 것이다. 무차별적 대량 살육에는 극잔적인 형태의 비인간화 과정이 개입되어 있다. 인간을 죽이는 데 대한 도덕적 제약을 벗겨버리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gook:하찮은 것, 먼지)-2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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