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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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길’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나한테 ‘길’은 마치 삶의 온갖 풍상을 다 겪어 이제는 인생의 의미를 터득하고도, 아무에게나 그 속내를 털어내지 않고 무심한 듯 묵묵히 제 할 일만 하고 있는 지혜의 은자(隱者)처럼 느껴진다. 이 무심한 은자(隱者)가 나에게 가만가만히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있는데, 그 때가 언제냐면 내가 두 발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걸을 때다. 욕심을 덜어내고, 걸을 때라야 비로소 은자는 삶의 지혜를 들려주는 것이다.

   어디에서든 은자를 떠올리게 하는 ‘길’이라는 낱말만 나오면 한 번 더 쳐다보는 습관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비록 큰 자랑거리는 못 되지만, 나 역시 ‘길을 걸었다.’라는 몇 번의 경험이 내 마음을 잡아끄는 모양이다. 물론 그래봐야, 나는 팔자 편한 여행자일 뿐이지만. 그래도 온전히 두 발로 다니면서 만난 ‘사람 사는 세상’은 자동차로 달리면서 스치듯 본 것과는 분명 달랐다. 내가 읽은 이 책도 그랬다.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裏面)을 보려면 빨리 가려는 마음, 앞서가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해 주는 듯하다.

  ‘길에서 만난 세상’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박영희, 오수연, 전성태 씨는 글로, 김윤섭 씨는 사진으로 우리 사회 ‘약자’들의 안타까운 현재 현실과 그들의 소박하지만 소중한 바람을 전하고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사는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은 멀고 가깝고, 편하고 험한 길을 가리지 않고 나섰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무엇인가를 향해 급하게 달리려는 마음, 남을 앞질러야 한다는 이기적인 마음은 이 책을 읽는 동안 잠시 접어두었으면 한다. 차 안에서 스치듯 바라본 풍경으로서의 세상이 아니라 지은이들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우리 사회 인권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떤 느낌의 글을  멋지게 쓰더라도(능력도 안 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짧게나마 직접 소개해주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것이 이 책을 가장 정확하게 소개하는 글이라고 믿고 정리해 보았다.


“정규직도 좋으나 그보다 먼저 저는 퇴사 당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했으면 합니다. 더는 쓰다 버린 소모품 정도로 다뤄지는 그런 인생이 아니었으면 좋겠고요. 인격은 고사하고 인간적인 차별까지 받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하잖습니까?”[24쪽, 비정규직 노동자, 이상호 씨]

“(베트남으로 돌아가) 무엇을 해 볼 수 있을 만큼 돈은 모았지요. 그러나 사람을 믿는 마음은 많이 잃었어요.”[39쪽, 이주노동자, 투안(베트남)]

“어느 누가 내가 겪은 슬픔과, 민주 덕에 얻은 기쁨을 알까 싶어요. 아이를 포기하고 비밀을 간직한 채 깨끗한 척하느니, 손가락질을 받아도 내게 찾아온 생명을 책임지기로 했죠. 뭐라도 해서 한 달에 80만 원만 벌면 민주하고 살 수 있지 않겠어요? 겁이 없어졌어요. 이제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아요.”[52쪽, 비혼모, 조순화 씨]

“집 나온 아이쯤으로 보는 건 그래도 웃어넘길 수 있었어요. 학교를 안 다닌다고 솔직히 말하면 사람들 눈이 어떻게 바뀌는지 아세요? 대번에 내가 천박한 사람으로 변하고 몸 파는 아이 취급을 당하고 말아요. 그뿐인 줄 아세요. 우리나라는 쯩이 없으면 한 발자국도 다닐 수 없어요.”[64쪽, 탈학교청소년, 효주]

“아이들이 더 크면 상급 학교도 보내야 하는데 교육비가 만만치 않아요. 한국 음식이라도 잘 만들면 좋겠는데 그렇지도 못하고요. 아이들이 많이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이곳은 놀아 줄 친구도 없어요.”[82쪽, 코시안, 로리타비 와드와찬 씨]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선택할 수가 없었어요. 대학을 졸업했지만 취직자리가 없었고, 우리 친정은 너무 가난해요. 아버지는 맹인이고, 어머니는 환자예요. 한국에 오기 전에 어떤 일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내가 버티고 있는 거예요. 하지만 이제 너무 지쳤어요”[94쪽, 아시아 여성, 진(가명, 필리핀여성)]

“여든이라는 나이가 우스운 나이인가? 오래 살기 싫어. 통장에 300만 원 있는데 1년에 100만 원씩 깨서 쓰면 한 3년은 그럭저럭 지낼 수 있겠지. 그거 다 떨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거야. 죽으면 호국 용사에 묻히겠지.”[117쪽, 도시의 노인들, 김 씨 할아버지]

“우리 남편 좀 병원에 입원시켜 줬으면 좋겠어요. 남편을 앞에 두고 이런 말 하면 죄받을 짓인 줄 알지만 사는 일이 너무 팍팍해서 그래요. 제발 우리 남편 좀 병원에 입원시켜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내 소원이에요.”[131쪽, 진폐증을 앓는 전직 광부 김병태 씨의 아내]

“이 나이에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학문을 해 온 사람으로 심경을 고백하자면 너무 힘이 듭니다. 전화가 되지 않을 땐 도청당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언제 또 구속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검열하느라 병이 날 지경입니다.”[146쪽, 보안관찰대상자, 박창희 씨]

“김선일 씨의 죽음에 그토록 비통해하던 한국인들이, 왜 하루에도 200-300명씩 죽어 가는 이라크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합니까?”[165쪽, 한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 자말(파키스탄) 씨]

“감옥이 따로 없지. 남들은 구경하느라 종로통으로 나오지들 않더라고? 근데 난 이 안에 갇혀서 세상 구경 못하고 사니 갑갑해. 30년을 이 속에서 지내다 보니 아픈 몸만 남았어. 발을 제대로 못 뻗으니까 무릎이 성치 않고, 조그만 창으로 손님을 맞아야 하니까 목이 또 안 좋아. 하도 아파서 X-레이 찍어 보니까 목뼈가 좋지 않대”[(177쪽, 0.3평에 사는 사람들, 김형주 씨]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것 같아. 바닥난 물고기도 물고기지만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게 있어야지. 한 달 경비 빼고 선주가 반을 가져가 버리는데 뭐 얼마나 남아 있겠어. 그야말로 콩고물이지.”[194쪽, 어부, 서 씨]

“그러나 같은 행위라도 자신이 선택했느냐 아니냐는 다르잖아요. 학생도 놀 권리가 있고 잠잘 권리와 쉴 권리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결국 어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게 문제 아닌가요?”[214쪽, 인문계고등학생, 찬주]

“왜냐고요? 여기는 희망이 없으니까요. 어른들도 농사짓든지 조그만 장사를 하든지, 이것저것 하다 말든지, 제대로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우리더러 학교만 마치면 얼른 떠나라고 해요. 여기 대학이 생긴다고 해도 가고 싶지 않아요. 이런 데서 대학 나와 봤자 뭘 해요? 젊은 사람들한테 나가라, 나가라 하는 데예요.”[230쪽, 농촌청소년, 보라, 주희, 수필]

“손가락이 없고 발가락이 없다 뿐 자식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까지 닳아지고 없을까. 아무려나 나병이 암보다 더 무서울까. 암은 유전될 수 있지만 나병은 그렇지 않거든. 감염만 해도 그래. 아주 극소수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느 의사, 어느 간호사가 그것도 몇십 년씩 이곳에 붙어 있겠어?”[243쪽, 한센인, 익명]

“전에는 죽으면 재라도 되어 부모 계시는 고향으로 가고 싶었지. 근데 지금은 아냐. 아무리 못된 자식이라도 아들들이 있는 이곳에 묻혀야지 왜 가? 한국 사람한테 시집와서 이쪽에서 육십 년 살아오니 이제 못 하는 말도 없고 심지어 욕도 할 줄 알아. 욕도 할 줄 아는데 이제 뭐가 무섭겠어. 여기가 고향이야.”[262쪽, 일본인 처, 아오키 할머니]

“작년, 재작년보다 경기가 더 안 좋아요. 지금쯤 뺑뺑 돌아가야 하는데. 일감이 떨어지면 먹는 거 줄이고, 아이들 학원비 줄이죠. 지금은 애들 둘 합기도만 보내요. 과외 공부시키는 엄마들도 있지만 한 아이 당 이십여만 원씩이나 하니. 엄마들이 돈을 만지기 때문에, 엄마가 일하는데 따라 아이들이 차이가 확확 나요.”[277쪽, 창신동 미싱사, 최혜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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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6-06-0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네요.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더 빛나겠어요.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우리시대의 논리 2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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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이었나, 재작년이었나, 아마 재작년 가을쯤이었나 보다. 우리 노동조합에서 하종강 선생님께  노동교육 강연에 부탁드린 일이 있었다. 이런 강연을 준비하다 보면 강사와 일정을 조정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데, (더구나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강연을 많이 다니기로 소문난 분이라 걱정도 많았는데) 의외로 쉽게 강연 부탁을 승낙해서 준비하는 실무자로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강연이 있던 날, 하필이면 비가 줄기차게 쏟아져서 내심 불안했다. 이미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이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소문은 났었지만, 이 빗속을 뚫고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오실까 걱정이 되었다. 한 분 두 분 오신 선생님들로 강연이 시작될 때는 듬성듬성 빈자리는 있었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선생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앉았다. (새삼, 소문의 위력을 실감했다.)

   하종강 선생님의 강연이 늘 그런지, 아니면 그날따라 비가 와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옆 사람에게 나지막하게 말하는 듯한 말투와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노동조합 활동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강연은 스스로를 노동자로 여기고 있는 교사들의 ‘이성’보다는 ‘마음’을 조용히 흔들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눈가를 훔치다가 나만 그런가 싶어서 뒤를 슬쩍 돌아보았더니 모두들 야단맞는 사람들처럼 의자 깊숙이 얼굴을 묻고(틀림없이 모두들 울고 있었다.) 말없이 강연을 듣고 있었다.

   그 날, 어떤 이야기를 듣고 나는 빗물같은 눈물을 흘렸더라?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은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권리지만, 전 세계가 이를 정당한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설명을 들었을 때, 학교에서 노동조합원인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노동자로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을 때, 강사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고백을 들었을 때는 더 이상 눈물을 훔치는 것도 그만 두고, 눈물이 흐르게 내버려뒀다.

   강연이 끝나고 온 선생님들과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강연에 대한 반응을 듣는데, 이구동성으로 지금처럼 ‘노동조합원’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앞으로 더욱 힘내서 ‘노조활동’도 열심히 하겠다고 하셨다. 나도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노조원이면서도 노동교육이라는 대체 무엇인지, 그게 왜 필요한지 그 때까지도 전혀 몰랐다. 아니 노동교육은커녕, 왜 교사에게 노조가 필요한지도 사실 잘 모르고 가입한 엉터리 조합원이었다. 당연했다.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 준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노동조합에 가입하게 되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인복(人福)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발령을 받아 첫 직장이었던 고등학교에서 신참 교사인 내가 존경하고 배울 만하다고 느낀 사람들은 모두 노조활동을 하고 있었던 선생님들이었으니까, 좋은 사람들을 따라 자연스럽게 가입하게 되었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가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만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노조활동의 방향은 학교를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공간으로 만들고, 학교의 부정하고 부패한 관행과 싸우고,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올바른 인성 교육을 위해  구조적인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제대로 된 선생 노릇을 하려면 노조활동은 기본적인 선택이어야 한다고 본다.(물론, 아주 예외적인 존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온 하종강 씨의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을 읽는 동안, 비 오던 날의 그 강연이 다시 떠올라 콧등이 시큰했다. 여전히 감성 어린 목소리로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조합 활동에 열성적인 노동자들에 대해, 진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 그의 글은 노동조합이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노동조합 활동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노동조합 활동이 왜 필요하고, 또 중요한지를 미처 알지 못하고 숫자만 채워주는 노동조합원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노동운동에 대한 애정을 고백하는 게 조심스럽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한 요즘에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고 아름답게 말하며 노동조합 활동에 희망을 건다고 애정을 표현하는 하종강 씨가 못내 고맙고, 또 반갑다. 한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가 이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려, 세상과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게 할 힘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새삼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희망’이어서 더욱 그렇다. 

   ‘아, 위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큰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위로할 수 있는 것이로구나….’(310쪽) 이 책에서 자신은 거듭 위로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의 말이 나 같은 얼치기 노동조합원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는지 그도 아마 짐작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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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이최고야 2006-05-2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으니 그때 그 강연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요즘처럼 노동운동에 대한 열의가 시들한 때에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기를 또 한번 희망해 봅니다.

느티나무 2006-05-29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이 들었던가요? ㅋㅋ 그날은 진짜 많이 울었지요. 뿌듯하고 자랑스러움에 어깨도 으쓱했구요. 지금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waits 2006-05-2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나는 강연, 6월에 부천에 오신대요. 저희 단체도 들으러가기로 했는데... 사 둔 책을 읽고 가도록 노력해야겠네요. 리뷰도 잘 읽었어요..^^

느티나무 2006-05-29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요...안 들어보셨으면 꼭 들어보세요. 名不虛傳!

파란-말 2006-06-09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티나무 님의 글을 읽고 저도 동감임을 밝힙니다. 하종강 님의 강의를 듣고 님 처럼 눈물 흘리지는 않았지만, 제가 무지했음을 깨달았고 부끄러웠습니다. 그의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지금 굉장히 바쁜 가운데 틈틈이 읽고 있어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사랑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쩌면 사랑을 아는 자만이 진정 분노하는 법도 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많이 권하는 책이에요. 항상 건투하시기 바랍니다. ^^

느티나무 2006-06-09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멋진 글을 남겨주시다니요. 하종강 님의 강연을 들으셨다니 진정 이 책의 진가를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저도 이 책 좋다고 사람들에게 권하는데요, 저희들이 좀 애쓰면 불가능하다던 10만부도 거뜬히 팔리지 않을까요? ㅋ 거듭 고맙습니다. 좋은 세상엔 좋은 책이 많이 팔리겠지요? ㅋ
 
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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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이번이 두 번째였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살아간다는 것’이 먼저였는지 아니면 이 책이 먼저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무튼 누군가로부터 ‘허삼관’은 아주 우습고 진지하고, 재미있고 눈물이 ‘핑’ 도는 이야기라는 말은 듣고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살아간다는 것’의 감동에 묻혀서 ‘허삼관’은 상대적으로 내 기억 속에서 금방 묻혀버렸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도 그 책 읽어봤는데, 괜찮던데…’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줄거리조차 가물가물한, 과시용 책이었다.

   좀처럼 읽은 책을 다시 펼치지 않지만, 아이들과 독서토론을 하기 위한 책으로 이 책을 골랐기 때문에 또 한 번 읽었다. 새롭게 읽으면서 내가 ‘허삼관 매혈기’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면서도 남들에게는 책을 읽었다고 폼을 잡았으니 이제야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남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웃기도 했다는데, 나는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재미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던데, 그 재미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재미야 눈물이 나서일 수 있고, 웃음을 주기도 해서 있고, 교훈을 주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먼저 평등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을 읽고 든 내 생각을 말해 보고 싶다. ‘허삼관’의 판단대로 본다면 지금 우리 나라는 무척 살기 힘든 곳일 거다. 우리 모두가 가난했던 그 때(?)를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때는 ‘허삼관’식으로 본다면 나름대로 평등했던 시대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조금은 풍요롭게 된 지금, 우리의 현실은 오직 죽음 앞의 평등 밖에 남은 게 없을 않을까 싶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야.만. 하는 ‘허삼관’은 분노했을까? 아니, 희죽 웃었을까?

  '허삼관'에게 ‘매혈’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책을 덮고 되돌아보면 희미하게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인생’이다. (이 단어는 이 소설을 쓴 작가의 4년 전 소설-살아간다는 것-을 장이모 감독이 영화화한 ‘인생’이라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어딘지 그 작품의 주제와 비슷하기도 하다.) 피를 팔아서 아내를 얻고, 집안의 경제적 위기를 극복해 하고, 한 집안의 생계를 유지하고, 아들의 병을 고치고(그것도 자기 자식이 아닌-그런 점에서 보면 일락이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허삼관’이 얼마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자기희생을 통해 한 집안을 이끌어 가야 했던 우리 아버지의 인생과 닮았다.

   그러다 결국 맨 마지막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고 할 때는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서 ‘허삼관’의 인생의 의미는 막을 내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허삼관’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이라는 것을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가 있고,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허삼관’의 인생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그런, 보잘 것 없는 삶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위화라는 작가의 전작(前作)에서 꾸준히 천착해 온 주제인 살아간다는 것은 눈물의 강을 건너는 것이고, 우리가 고통을 견디고 인생이라는 고통의 강을 건너고 나면, 그 뒤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영광의 흔적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지만, 결국엔 인생이라는 것은 눈물로 고통의 강을 건너는 그 자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아니 그런데도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글쎄, 그건 우리 스스로가 해답을 찾아야 할 몫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위대하다는 것이다. 만약 ‘‘허삼관’이 피를 팔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을 때 ‘허삼관’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허삼관’의 인생에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허삼관’이라는 사람을 마냥 우습게 바라보지 못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어느 집마다 나름대로 사연 한 보따리 정도는 없는 집이 있을까? 돌이켜 보면 우리 집도 그런 듯하다.

   아버지는 중학교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었다. 온 가족들이 달라붙어 맨주먹으로 개펄을 개간해서 겨우 농사지을 수 있는 땅으로 바꾸고 나니, 공항 부지를 확장한다며 나가라고 했다. 그 때는 서슬 퍼렇던 박정희 시절. 온 가족이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쫓겨났다. 당장 먹고 살 거리도 힘든 시절을 견디며, 새로운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아버지는 요즘도 시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시는데, 어머니는 지금도 그 때의 일이 끔찍해서 ‘농사’이야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신다.)

   아버지 밑으로 다섯 남매가 태어났고, 농사만으로는 살림은 더 어려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은 여전히 농사를 지었지만, 아버지와 고모들은 일터를 찾아 가까운 도시로 나왔다.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을 받아주는 일터는 역시나 험한 육체노동의 현장! 아버지는 그렇게 첫 직장인 주물공장을 십 오년 정도 다녔는데, 어릴 때 나도 몇 번 가 본 적이 있다. 험한 일이라 회사내에 목욕탕이 있어서 어떤 날은 어머니를 통해서 나를 꼭 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경비실에서 아버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같이 목욕을 해야했다. 그 음습하고 지저분한 목욕탕과 아저씨들의 격의 없는 농담이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근데 목욕하러 가는 날은 정말 싫었다. 갖은 핑계를 다 대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예순을 넘기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아버지가 집안의 가정이 되었다. 할머니와 고모, 삼촌들도 한 집에서 다 같이 살아서 우리 집은 식구가 많았고 적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다 보니 어머니도 일하러 다녔다. 내 기억에 아버지는 언제나 늦지도 않고, 이르지도 않게 8시 30분에 귀가하셨고, 주말이면 늘 큰고모네 댁에 농사를 도우러 가는 분이셨다. 어릴 때 아버지와의 가장 좋은 기억으로는 가끔 나를 비롯한 동네 아이들과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내에 있던 회사가 진해로 옮겨가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이참에 퇴직을 할 지, 회사를 따라 집을 옮길지를 고민하다가, 나이도 있고, 육체적으로 힘에 부치던 때라 퇴직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퇴직에다가 세상 물정에 어두운 탓에 한 동안 방황하다가 사업이라는 걸 시작했는데, 말 그대로 ‘사기꾼’한테 당해서 지금껏 벌어둔 돈에다 빚까지 얻게 되어 집안이 쫄딱 망했다.

   우리가 거리로 나앉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평생을 성실하게 산 증거물이자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인 ‘집’을 지키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신 건 기억에 분명하다. 결국 부모님은 무서운 빚 독촉을 받을까 봐(지금 생각하면 순박하셔서 그런 것 같다.) 다른 곳에서 거의 숨어 지내셨고 우리 세 남매는 작은 아버지네 가족과 같이 살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한두 달에 한 번 다녀가셨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 그래도 부모님에 대한 제사만은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사시는 곳까지 오라고 하셨는데, 그 때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밤길을 달릴 때의 서글픔은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아프게 남아있다.

   이후로 한참 시간은 한참 흘러 우리 가족은 다시 합쳐서 살게 되었고, 언제부턴가 아버지와는 약간 어렵고, 껄끄럽게 지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허삼관’이 매혈로 가족을 먹여 살린 것처럼 아버지는 한 번도 일하는 걸 멈춘 적이 없다. 끊임없는 육체노동! 오직 그것만이 당신이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일해 오신 듯하다.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그게 고마운 줄 몰랐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세월은 흘러 당신이 낳아 기른 세 자식 중에 둘은 이미 결혼을 해 분가해서 그런대로 살고 있고, 막내도 자신의 일터 가까이에 따로 살고 있어 그토록 지키고 싶어 하시던 그 집에 두 분만 덩그러니 계신다.(표현이 그래서 그렇지 집은 아주 작다.) 이제야 말로, 아버지는 ‘허삼관’처럼 자신을 위해 ‘매혈’을 하려고 하실지 모르겠다. 그 때 나도 ‘일락/이락/삼락’이처럼 ‘허삼관’의 마음을 모르는 아들이 될까봐 두렵다.


  자, 우리 아버지 이렇게 살아오신 분이다. 누가 이 인생에 대해 ‘의미’를 따질 수 있을까? 그것은 ‘의미’ 이전에 이미 위대한 무엇이 아닐까 싶다. 작가는 이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일이 어버이 날이다. 카네이션과 선물을 사기 위해 종종거리는 우리 모두는 기억해 두어야 한다. 모든 자식은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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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매일 아침 4시 30분, 우리 집에 신문이 배달된다. 출근하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면 현관문 앞에 지역신문 한 부와 중앙일간지 한 부가 덩그렇게 놓여 있다. 두 신문을 가방에 챙겨들고 직장으로 간다. 직장에도 물론 신문이 있고, 책상 위의 모니터만 켜도 세상의 온갖 정보를 다 알 수 있지만, 직장의 신문은 보기 싫고, 모니터로 읽는 정보는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들고 직장에 가는 것이다. 직장에서의 일과는 늘 바빠서 정신이 없지만, 간혹 점심시간에 신문을 펴들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생길 때면 이 때야 말로 제법 행복하다는 느낌도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돈을 내고 자신이 보고 싶은 신문을 선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가 선택한 신문이  곧 나의 ‘주인’ 행세를 하게 된다. 주인이 된 신문은 ‘당연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 방식’을 가르친다.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서 우리가 화를 내야할 때와 박수쳐야 할 때,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라는 ‘괴물’의 지배를 받고 있는 우리는 아직도 자신이 주인인 줄 알고 있다. 그러니까 분노와 박수, 행동과 멈춤이 자신의 주관적 판단의 결과인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신문이 정해준 방식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결정하고 행동하는데도 말이다.

  신문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다 전해 줄 수 없기에 중요한(사실은 ‘중요하다’고 판단한) 사건이 신문이 등장한다. 여기서 결정적인 문제가 생긴다. 바로 ‘누구에게 중요한가?’와 ‘누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가?’의 문제다. 보통 사람의 상식이라면 ‘다수의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모범 답안이 될 테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너무나 모범 답안이기에 신문사의 어느 벽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액자’로 고이 모셔진 글자로 남아 있을 뿐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입장이 수시로 바뀌는 신문사들도 ‘정론직필’이니 ‘불편부당’이라는 액자를 걸어놓고 있다고 들었다.)

  그럼 정답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다. 즉, 우리가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일은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전달한다. 여기서 ‘우리’는 물론, 신문사의 인칭대명사일 것이다. (아니, 조금 더 노골적-본질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신문사의 사주가 아닐까 싶다.)그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본다면, 2000년대 초반에 언론사 세무조사에서 보인 신문사들의 기형적인 편집 형태를 떠오른다. 세금 탈루의 범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지면(紙面)을 도배해 가면서 ‘언론탄압’을 부르대던 생경스러운 모습에 쓴웃음이 났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신문사의 편집국이 기자가 쓴 기사를 선택하고 크기와 배치를 결정하는 곳인데, 신문사의 어느 기자의 기사라도 이 편집국의 ‘심의’와 ‘검열’(?)을 거쳐야 기사가 실리는지의 여부와 기사의 크기와 배치가 결정된다. 당연히 신문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는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신문사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기사는 빠지거나 축소된다. 물론 세상의 모든 사건이 신문사의 유/불리를 기준으로만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비슷한 편집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에는 반드시 신문사의 시각에 따라서 기사의 내용과 배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신문사의 사정을 잘 모르면 모든 신문이 다 비슷하다고 여기게 된다. 자세히 보면 신문의 논리적 어조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나는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고 ‘그게 그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다. 우리가 ‘그게 그거’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우리가 신문을 읽는 행위는 ‘여론’으로 포장되고, 거기에 따라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문 하나 읽는 것에도 세심한 주의와 선택이 필요하다. 이렇게 신문을 읽을 때 주의를 기울이는 독자를 현명한 독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현명한 독자가 되어 신문의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라고 권유하고 있는데, 독자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우리가 읽는 신문에 기사가 실리게 되기까지의 기본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신문 기사가 특정한 기준에 의해서 ‘선택’된 정보임을 파악하고, 신문 기사를 읽을 때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인 수용이 능력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우리가 매일 읽는 신문 기사가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나,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세상 소식을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을 때나, 갑자기 신문이 내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낄 때,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오직 신문에 나왔다는 걸로만 주장하는 사람을 볼 때나, 청소년들에게 신문이 객관적인 진실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줄 때 꼭 필요하고도 기본적인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아울러 언제나 한결같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해 오고 있는 ‘손석춘’님께 존경하는 마음과 아울러 고마운 마음을 담아서 이 보잘 것 없는 ‘리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현명한 신문구독자가 되리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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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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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청산에서 책임자 처벌은 양보해도, 배상과 보상은 포기해도, 위령사업은 축소하더라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진상 규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진상 규명 없이 명예 회복이나 배상, 보상에만 매달린 경우가 많았다. 진상 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그리고 국가와 사회, 국가와 개인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의 과정을 통해 국가와 그 대리인들이 범한 범죄와 그 범죄를 저지르게 된 상황이 공개되고, 또 피해의 사실들과 피해자들의 고통이 알려지면 우리는 사회 내에서 타인이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러한 고통을 가져온 배경과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이 가졌던 공포와 무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084쪽쪽

그러나 반드시 우리가 규명하여 역사적인 책임을 물어야 할 부분은 친일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해방 뒤에 어떤 짓을 했는지이다. 일본군 중위나 동네 면장을 지낸 특정한 개인이 일제 강점기에 무슨 짓을 했나보다도, 반민특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와해됐고, 백범 김구가 어떤 세력에게 암살됐고, 이렇게 살아남은 친일파들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장악하여 민간인 학살과 군사독재 시기의 인권 침해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밝혀내는 일, 이것이 포괄적 과거 청산이다. -086쪽쪽

일본은 자위대를 이라크에 파병했다. 국가를 위해 죽는다는 일은 이제 가까운 장래에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정은 일본보다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한 한국도 피해 갈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죽은 이의 죽음을 비극으로 직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귀한 가치로 현창하는 일은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의 공통된 수법이다. '사의 찬미'는 윤심덕으로 족하다. -110쪽쪽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바로 처리되지 못한 데에는 미국의 책임도 크다. 여러 가지 악독한 인체실험을 한 일본군 731부대 문제를 미국이 덮어버린 것처럼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미국이 덮어버렸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전쟁범죄, 반인륜 범죄이지만 당시 미국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군의 심리전 당국이 일본군 패전 지역에서 생존한 일본군 '위안부'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했지만, 이 문제는 일본 전범을 단죄한 도쿄재판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00% 덮어진 것은 또 아니다.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네덜란드 출신 등 백인 여성들을 강제로 '위안부'로 삼은 일본군들은 전후에 전범으로 처벌됐다. 미국 등 연합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엄청난 전쟁범죄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들 입장에서 볼 때 백인 피해자의 인권과 조선인 등 아시아인 피해자의 인권이 같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116쪽쪽

이때까지는 그래도 간첨을 갖고 웃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간첩은 주로 북에서 내려온 존재였으니까. 그런데 동백림 사건이 터지고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재일동포 형제 간첩단 사건이 터지면서 얘기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첩이 우리의 일상을 옥죄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우리가 두려워한 것은 간첩 그 자체가 아니라, 간첩 잡는 사람들, 좀더 정확히 말하면 간첩을 만드는 사람들이 된 것이다. 박정희 시대의 2기가 시작된 것이다. -206쪽쪽

요즈음 박정희의 친일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박정희가 범한 친일행각이며, 좌익 활동과 전향이며, 군사반란이며, 독재와 인권 탄압에 대해서는 죄가 밉지 사람이 밉나 하며 좀 너그러운 척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일본놈 밑이지만 출세하고 싶고, 남로당이 정권 잡을 것 같고, 반란 음모로 걸렸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지도 팔 수 있고, 정권 잡고 싶으니 군대 동원할 수도 있고... 다 나븐 짓이긴 해도 유독 박정희만 이런 짓을 한 건 아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멸시와 차별 속에 살다가 민족적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국에 온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장학금을 주며 따뜻한 격려는 못할망정 거꾸로 매달아 간첩으로 만든 소행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꾸 <넘버3>에 나오는 조폭보다 더 조폭 같은 마동팔 검사 편에 서게 된다. 죄가 무슨 죄가 있냐구, 죄지은 놈이 정말 나쁜 놈이지...-216쪽쪽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도 사병이 사병을 통제하지 않을 수 없는 현행 병력 제도, 과도하게 많은 병력이 별다른 권리를 갖지 못한 채 불만에 찬 상태에서 24시간 영내 생활-에서 기인한다. 사병 상화간의 가혹행위는 간부 내의 가혹행위- 간부와 사병간의 가혹 행위의 파장이 사병 내부로 미쳐서 발생하는 것이다. 사병 상호간의 가혹행위 또는 고참의 행포란 군대의 위계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전가이다.
이렇게 폭력이 전가되는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인성 교육을 통해 가혹행위를 막아 보겠다는 시도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중략)
인성 교육도 안 하는 것보다야 백 번 낫겠지만 화가 나게 되는 근본 원인을 그대로 둔 채 그리고, 폭력의 전가와 화풀이를 강요하는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인성 교육만 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을까?-284쪽쪽

인분 사건과 관련해 떠오르는 두 가지 문제는 단체 기합과 명령 불복종의 문제이다. 먼저 군대와 학교에서 널리 행해지는 단체 기합은 사라져야 한다. 나의 행동이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처벌받아야 하는 단체 기합은 대표적인 연좌제이고, 따라서 헌법 위반이다. -287쪽쪽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이 1993년이다. 그동안 한국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얼마나 진전되었을까? 우리 사회는 단순히 군의 정치적 개입이 차단된 것에 만족할 뿐, 군대는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다. 군사정권 하에서 군인들의 처우와 복지에 대한 수십 개의 법령이 만들어졌지만, 일반 사병들의 권리에 대한 규정은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다. 군인도 사람이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군인의 인권에 대해 논하는 것은 사치일까? 도대체 군인에게 어떤 기본권이 주어져야 하고 어떤 기본권이 법률에 따라 제약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군인인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군대가 변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인권의 신장은 기대할 수 없다. 내 인격이 무시당한 경험, 남의 인격을 무시한 경험, 그 상처를 안고 매년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제복을 벗고 사회로 나온다. 인권 감수성의 하향 평준화가 군대에서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290쪽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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